• 2015년 8월 30일 베드로전서 1:13-21,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니라”

      날짜 : 2015. 09. 10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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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830일 베드로전서 1:13-21,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찌니라

        지난주 주일에는 이제 예배를 인도하고 말씀을 전하는데 많이 안정이 되어서 저도 편안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사실 불편한 몸으로 제일 걱정했던 것이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교회의 계단을 내려오는 것이였고, 두 번째는 예배시간에 어떻게 서서 예배를 인도할 수 있을까? 였습니다. 아직 수술 부위에 피가 아래로 몰리면 힘이 듭니다. 그런데 두 주 정도 해보니 이제 적응이 많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갔습니다.

        저녁에도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생활을 했었는데, 그만 화장실에서 씻고 일어서다가 몸에 중심을 잃어서 넘어졌습니다. 지금 저에게 제일 안 좋은 상황은 수술한 왼발을 땅에 디디면 안되는 것입니다. 11월말까지 사용하면 안되는 상황인데, 감사하게도 왼발로 넘어지지는 않았는데, 앞으로 구르면서 왼팔 팔꿈치가 먼저 땅에 닿았습니다. 지난번에 왼발도 잠깐하는 순간 다친거라, 이번에도 걱정이 많이 되었습니다. 왼팔이 펴지지가 않았고, 통증이 심해서 힘도 가해지지 않았습니다.

        아침에 병원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고 왔습니다. 저희 부부가 많이 기도했습니다. 왼발 기브스에 왼팔 기브스를 하면 뭐 원 플러스 원도 아니고, 너무 보기도 좋지 않고, 그리고 겨우 움직이는데, 왼팔을 못 사용하면, 너무 불편합니다. 정말 또 앞이 캄캄했습니다. “주님 도와주세요라고 진료중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이번에는 근육이 좀 놀랐는데, 뼈가 부러지거나 금이 가지 않았다고, 오히려 굳어지지 않게 많이 사용해주라고, 일주일 정도 진통제를 먹으면 많이 좋아질거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혹시 이번에도 오진 아냐!” 라는 생각이 지나가기는 했지만 인도 의사 선생님의 말대로 조금씩 좋아지고 있습니다. 깁스를 하나 더 안한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제가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제가 욕실에서 한 번 넘어진 뒤로는 화장실에 갈 때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갑니다. 자세를 최대한 낮추고, 물기를 최대한 제거하고, 아주 긴장을 하고 조심조심해서 욕실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넘어진 원인을 보니, 수건이 너무 높은 곳에 걸려 있었고, 욕실 의자의 한쪽 홈을 고정하는 고무가 빠져 있었습니다. 작은 균형이 무너지면서 넘어진 것을 알고, 그것을 살펴서 최대한 조심조심하고 정신을 바짝 차려서 욕실을 갑니다. 조심 조심하는 제 모습을 생각해보면 어떤 때는 너무 웃깁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도 보니까 우리에게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베전 1:13을 보니까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라고 합니다.

        이 구절을 새번역 성경 버전으로 보니까 그러므로 여러분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을 차려서, 예수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여러분이 받을 은혜를 끝까지 바라고 있으십시오.”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이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을 차리라고 했던 것을 보면 이렇게 정신을 차리지 않을 때, 우리에게 경험되어질 그 무엇인가의 위험이 있기에 이렇게 주의를 주고 있는 것을 봅니다.

        벧전 1:14을 보면 우리가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을 차리지않을 때 일어날 일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 버전에서는 여러분이 전에는 몰라서 온갖 욕심에 따라 살았지만 이제는 순종하는 자녀답게 하나님께 복종하십시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는 가만히 두면, 가만히 있게 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는 자꾸 죄의 길로 걷게 됩니다. 왜냐하면 공중권세를 잡은 사단은 우리를 자꾸 죄를 향해 가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어 놓는 것이 바로 사욕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구원 받은 성도의 삶이 하나님을 향해서 살도록 되어 있는데, 이 사욕은 자꾸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몰랐을 때 했던 일로 돌아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살도록 인도해 주신 삶이 있는데, 그것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고, 우리에게 가장 값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 옛날의 생활 방식을 쫓아서 살아갑니다.

        () 요즘은 광견병, 개에게 물리면 5번의 주사를 맞는다고 합니다. 닥터 홀의 조선회상이라는 책에서 보면 1935년도에 닥터 홀의 부인과 아이, 그리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기르던 강아지에게 물려서 7,8명이 광견병이 걸립니다. 당시의 이야기를 보니까 광견병 면역 주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토끼에게 광견병 바이러스를 투입시키면 14일 정도 되면 토끼가 죽는다고 합니다. 그때 죽은 토끼의 척추를 말리고, 갈아서, 액체에 타서 주사용액으로 만드는데, 그 과정이 너무 복잡합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을 무려 17번을 해서, 주사를 17번 맞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복잡한 전과정은 완벽하게라는 조건에 맞아야 면역이 성공한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주사의 통증이 너무 심하고, 주사 맞은 자리가 거무스름하게 변하고, 17번이면 더 이상 주사를 놓을 자리도 없다고 합니다. 불순물이 들어가면 심하게 가렵고, 염증이 나고, 종기가 생겨서 또 수술을 해야하는 정말 힘든 일이였다고 합니다.

        이를 진행하는 의사선교사님도 힘들었지만, 부인과 아이를 포함한 환자들의 고통도 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당시 조선 사람들은 광견병에 걸리면 그 광견병을 옮긴 개의 껍질을 벗겨서 그 털과 함께 광견병 걸린 사람에게 상처가 있으면 거기다가 놓고 태웠습니다. 소위 뜸뜨는 방법을 따라 한 것이였습니다.

        그리고 의사 선교사가 치료하는 과정을 들은 조선 사람들은 어떻게 토끼의 몸에서 만든 물로 광견병을 치료한다는 것이요라고 하면서 선교사를 미친 사람 취급을 했고, 선교사가 세운 병원도 그렇게 신세를 많이지고 병을 많이 치료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사 집에 있던 개가 물어서 생긴 병이니 선교사의 병원도 철수하라고 외쳤습니다. 불과 100년도 안된 이야기입니다. 근거없는 옛날 방식을 고집했던 조선 사람들, 어쩌면 우리도 그 당시에 살았다면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살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 베드로전서 1:14이 다시 생각이 납니다.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라는 이 말씀이 생각이 납니다. 100년 전의 이야기라 남의 이야기처럼 생각을 하지만, 사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받고, 새로운 사람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도 자꾸 이전에, 옛날의 방식을 고집합니다. 죄의 노예가 되었을 때, 우리가 잘못 살았을 때를 다시 돌아간다고 했을 때는 어쩌면 100여 년 전의 조선 사람과 별로 다르지 않는 삶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너무나 귀중한 구원의 약속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귀중히 여기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의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을 따르지 않고, 다시 옛날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성도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하나님께 집중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권세를 잡은 사단 마귀들은 항상 우리 믿는 성도들을 흔들어 놓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 사도는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합니다.

        옛날 방식과 죄의 유혹에 끌려 다니는 인생이 되지 않기 위해 우리 믿는 자들이 붙잡아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거룩에 대한 권면입니다.

        벧전 1:15에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라고 권면을 하였고, 하나님께서 직접 전해 주신 말까지 인용했습니다. 1:16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라고 했는데 구약성경 레위기 11:45에는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노예로 430년간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구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종살이 하는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귀중한 하나님의 백성이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자녀들이 다시 그 옛날 노예 생활로 되돌아가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 그 옛날 노예 생활에서 배웠던 것들, 우상을 숭배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들을 하나씩 가지고 들어와서 그것을 따릅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에서 그 엄청난 이스라엘 백성을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지켜 주시고,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셔서 먹을 것을 주시기까지 하면서 엄청난 사랑을 부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말씀들을 새기지 못했습니다.

        결국 나라는 망하고, 소망도 없는 시기에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셨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보고, 예수님의 기적들을 수 없이 많이 보고, 곁에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서 죽여 버렸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것을 가장 가까이에서 똑똑히 목격한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이 베드로 전서를 받는 당시 소아시아 지역에 있는 사람들, 그리고 오늘날에 우리까지도 이 주님의 말씀은 너무나 귀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당부하고 있습니다.

        벧전 1:18,19을 보면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이 물려 준 헛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금도 은도 비싸고 가치 있는 것이지만, 그것은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부탁하신 이 구원의 역사에 참여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은 너무 너무 귀중하고 보배로운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적용)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 거룩한 삶이란 무엇입니까?

        거룩한 삶은 나쁜 일을 안 하는 것, ‘금욕주의적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목사님 착하게 살면 거룩하게 사는 것 아닙니까?라고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좋은 일 많이 하고 살면, 그게 다 좋은게 좋은거 아닙니까? 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웃에게 피해를 안 끼치고 정직하게 살면 그것이 거룩한 삶이 아닙니까?

        그런데 좀 더 명확하게 이야기를 하면, 이 거룩한 삶이라는 것은 어떤 행실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방향성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의 방향성을 하나님을 향해서 맞추고 나아가기로 결심하고,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나아가는 것,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그 길을 가는 것을 바로 거룩한 삶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 기준에서 행하는 선행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에 맞게 따르는 삶을 거룩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만약이 선행이 최고의 가치라면, 우리 주변에서 매년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가장 많이 내는 사람이 하나님께 칭찬을 받아야 합니다. 착한 일을 많이 하는 사람을 거룩이라고 한다면, 착한 일을 제대로 한 사람 중에 제일 많은 가지수를 차지한 사람이 최고로 복 받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이러한 것들로 기준을 삼으셨다면, 많이 가지지 못한 사람, 몸이 불편해서 제대로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하는 사람들은 너무나 낙심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러한 것들 보다는 우리의 마음과 태도가 먼저 바르게 하나님을 향해 정해져 있는지, 그리고 주님이 인도해 주시는대로 살기로 작정을 했는지, 그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그 중심으로 주님을 따르는 삶을 거룩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하나님을 향해서 마음을 정하고, 그 뜻대로 살기 원하는 자기의 백성들을 기뻐하시고, 자신이 직접 챙기십니다.

         

        () 이번에 823일을 전,후로 남,북한의 사태가 심각했습니다.

        그때 군에서 제대를 앞둔 장병들이 이번 사태가 잠잠해지기 전까지 제대를 하지 않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생각보다 꽤 많은 청년들이 제대를 하지 않겠다고 하고 혹시나 모를 전쟁 위험에 동참하겠다고 부대에 남았다고 합니다.

        정말 심각한 사태 때 목숨을 걸었던 우리 청년들을 귀하게 생각해서 대기업에서 그 청년들을 이번에 특채로 채용하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50여명 정도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귀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누구 페이스북에서 그 기사를 뒤집어보면 어떻했을까?를 기사로 올렸습니다. “어느 대기업에서 이번 823일 남북 사태로 인해 제대를 연기하는 장병들에게는 나중에 대기업에 취업 특혜를 주겠습니다.” 라고 공고가 나왔다면, 어떻겠습니까? 청년들의 귀한 희생이 아름다운 이야기로 소개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거룩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이득을 위해, 뭔가 얻을게 있어서, 복 받기 위해서, 댓가를 얻기 위해서 나아가는 것은 참된 거룩의 삶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던,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나 같이 보잘 것 없는 존재를 위해,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서 죽으셨다는 그 분의 사랑, 아주 오래전부터 나를 위해 예비 하셨다는 그 분의 사랑 때문에 그 분과 함께 사는 것이 기쁘고, 그 분과 함께 지내는 것이 가장 기쁘기에 그 분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거룩이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가정에서도, 사업과 직장생활에서도, 학교 공부에서도, 나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나를 위해 사랑을 베푸신 그 분을 기억하며, 그 분이 기뻐하시는 삶을 위해서 살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거룩입니다.

        교회사에 나타난 기도의 거장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기도를 연구해 보면, 우리와는 다른 것이 있었습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우리들이 간구하는 것이나, 구하는 것, 아니면 남에게 받은 상처에 대한 분풀이, 이기적인 자기의 혈기 방출 등이 대부분이지만, 기도의 거장들의 기도 내용을 살펴보면, 그들은 대부분 진지하게 자신의 내면을 그리스도안에서 되돌아보고, 주님 그 자체로 기뻐하며, 그 분을 찬양하고, 그 분에 대해서 감사하며, 그 분께 헌신하고 결단하는 기도들이 대부분이였습니다. 단지 그 분만을 위한, 오직 주님만을 위한 기도의 시간들이 너무나 많이 사라졌습니다.

        우리가 거룩의 영성을 찾는 것은 단지 나쁜 짓을 안 하고, 착한 일을 많이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구하는 삶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를 우리의 일상에서 끊임없이 살펴보고, 주의해서 보고, 그 길을 쫓아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것을 위해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마음을 단단히 먹고 이 세상에 흐르는대로 주는 사욕을 쫓는 삶을 살지 말고 주님을 온전히 쫓는거룩의 삶을 살도록 권면하고 있습니다.

        (재도전) 베드로전서가 전해지던 당시의 사람들은 긴 옷들을 입고 다녔고, 뭔가를 하려면 이 거추장스러운 옷의 허리에 주름을 잡고 옷을 동여 메었습니다. 벧전 1:13을 자시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삶에 있어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님을 바라보기 위해서 이제 새로운 마음과 각오로 출발을 해야 합니다.

        이제까지 제대로 방향을 잘 잡지 못하고 주님을 믿었던 분들이 계시다면, 지금부터라도 주님께로 방향을 잘 잡고 주님을 향해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잘 따라오다가 지금 약간 샛길로 가신 분들이 계시다면, 더 멀리 가면 위험합니다. 옛길에 너무 오래 머무르면 주님이 주신 길을 잃어버립니다. 처음에는 괜찮겠지하고, 한 걸음 한걸음 뒤로 가다가 정말 길 잃어버리면 나중에 크게 후회합니다.

        그리고 잘 따라오셨던 분들은 더욱 깊이 주님께 문을 두드려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이 무엇인지, 하나님께서 정말로 무엇을 하기 원하시는지를 주의 깊게 귀 기울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면에서 이번에 성경통독90은 좋은 출발의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저는 지난 1월 저희교회에서 진행된 선교사 사모 교실 이 후에 우리가 하려는 이 방법으로 성경을 통독하시는 사모님들을 보면서, 가정이 회복되고, 선교사님들의 사역이 회복되고, 모두에게 평안이 임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씀에 붙들림을 받는 분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시작하는 TEE 성경공부도 새로운 계기가 될 것입니다. 제가 놓쳤던 부분들이 우리 고등학생들입니다. 고등학교 마치면 부모님 품을 떠나 혼자 신앙생활을 하는데, 부모님도 없이 신앙이 흔들이는 청년들을 많이 보아 왔습니다. 그러나 분명하게 성경으로 무장되고, 하나님의 말씀의 접붙임을 받는다면, 하나님이 반드시 붙들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하였습니다. 우리 직장에 계신 남성분들, 그리고 믿음에 열심을 내기 원하는 분들이 꼭 붙잡을 때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그리고 101-3일까지의 나이스크 예배회복 인도 패밀리 컨퍼런스는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특별한 은혜의 자리가 될 것입니다. 이번 뉴욕 방문에서 이 나이스크 예배 회복을 통해 정말 주님께 붙들린 분들을 보고 도전을 많이 받았습니다. 뉴욕에서의 한인들의 삶은 정말 고되고, 바쁘고 힘듭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힘들고, 바쁘고, 지치는, 빠듯한 일정에서도 예배의 기쁨을 누리고, 예배자로 살기 위해 애쓰는지, 그 성도들의 모습을 보고 더 많이 도전을 받았습니다. 예배자로 사는 성도들의 삶은 이런 것이구나! 교회는 이런 곳이구나!”를 분명하게 배웠습니다.

        이번 나이스크 예배 회복 인도 패밀리 컨퍼런스에도 하나님은 이 열악하고 힘든 상황속에서도 참되게 하나님 아버지를 예배하고 찾는 자들을 찾으실 것입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 이것이 바로 거룩을 향한 나아감입니다.

         

        내 앞에 주어진 하나님의 부르심에 잘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때 그때 부르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며, 믿음의 길을 걷기로 작정하며, 거룩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예비된 천국잔치입니다. 그 하나님 나라의 천국 잔치에 우리가 기쁨으로 만나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기로 작정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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