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8월 23일 베드로전서 1:8-12 구원의 은혜를 사모하는 성도
전투기 조종사가 비행중에 사고를 당해 최악의 상태를 맞이하게 되면, 비상탈출을 해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 옵니다. 그런데 그때 조종석 좌석에 붙어 있는 박스가 같이 딸려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을 비행기 조정사의 생환장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안에는 1인용 해상구명정, 물주머니, 물 정화 약품, 간단한 비상식량, 구조를 요청 할수 있는 여러가지 물품들인 신호거울, 신호총, 연막, 무전기, 염색약(물에서 사용가능), 호루라기 등이 있습니다. 그리고 전투용 칼, 라이터, 나침반, 낚시 바늘과 보트수리키트, 생환지침서 등이 있습니다.
모새골 공동체의 임영수 목사님께서 언젠가 미국 비행기 조종사를 만났을 때 이러한 일반적인 것에 새로운 것이 하나 더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바로 시편 23편을 코팅해서 이 생환장비에 넣어둔다고 합니다. 적진에 사로잡히거나, 부상이나 생사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조종사에게 가장 힘이 되는 것은 마음의 안정인데, 이 마음의 안정을 위해 성경의 시편 23편을 넣어둔다고 합니다.
우리도 힘이 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비상시기가 오면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게 됩니다.
오늘 베드로사도는 정말 어렵고 힘든 고난과 위기를 맡은 성도들을 편지로서 권면함에 있어서, 비행사의 생환장비처럼 정말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온다고 할찌라도 이것을 생각하고, 기억한다면, 그 어떠한 고난과 위기에서도 이길 수 있다는 분명한 확신으로 베드로 전서를 받는 성도들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것이 무엇인지를 같이 살펴보고, 우리의 위기의 순간, 고난의 순간에도 분명하게 붙잡아야 될 것을 붙잡고, 위기를 이기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베드로전서 본문 1:8에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 이 말씀은 늘 예수님 곁에서 같이 지냈던 베드로 자신과는 대조를 이루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베드로 사도가 이 말씀에 근거를 둔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에 부활하신 후에 부활을 의심하는 도마에게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요 20: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직접 예수님을 본 사람은 오늘의 인구수에 비교해 보면 소수입니다. 하지만 그 이후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1.전한 말씀으로, 2.성경을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는 자들이 더 복이 있다고 하시면서, 오늘 우리 성도들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직접 예수님을 보지 못하지만 “믿음”으로 예수님을 보고, “믿음”으로 예수님을 사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무척 귀중히 여기십니다. 이것이 저와 오늘 여러분에게 소망과 힘을 주는 내용입니다. 이것을 베드로 사도는 다시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러한 성도에게 오게 되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은 이 믿음을 가졌을 때 영혼의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벧전 1:8,9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라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믿음의 결국, 다시 말하면 우리의 믿음의 최종 목표가 바로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이다” 라고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치고 힘든, 고난의 시기에 놓치지 말고 분명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임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뭔가가 더 잘 되어야 좋다고 생각을 합니다. 돈도 더 잘 벌어야 하고, 사업도 잘되고, 공부도 더 잘 되고, 아프지 않아야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형통하고, 그것이 나를 지켜 주는 것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이 우리의 인생에 중요하기는 하지만, 우리의 인생을 절대적으로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이번에 한국을 가보니 대세는 “요리”였습니다. 요리사가 최고의 연예인으로 대접을 받았고, 각종 요리 프로그램, 그리고 드라마도 요리와 관계된 프로그램이 가장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요리를 위한 요리 재료들을 소개하는 프로그램들이 많은 인기를 끌었는데, 그 요리 재료를 소개해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 너무 좋은게 많습니다. 몸에 좋은 것, 안 좋은 것, 그리고 어떻게 먹어야 좋은지 나쁜지를 매일 방송을 합니다. 그런데 인도에서 살다가 그 방송을 보니 좀 억울했습니다. 인도에서 오래 살면 그 방송대로라면 오래 못 살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방송을 보고 사는 한국 사람들을 보면 한 200세는 살 것처럼 보입니다.
요리나 음식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과민합니다.
조금만 뭐를 해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삽니다.
자녀 교육은 정말 혀를 두를 정도로 민감합니다. 이익이나 피해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너무 너무 민감합니다. 정보도 너무 많고, 아는 것도 너무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놓치는 것은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시고, 우리에게 의미있고, 보람되게 살게 하면서, 이땅에서 하루 하루를 기쁘게 살도록 우리의 삶에 동행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별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것을 먹고, 맛있게 요리를 해서 먹어도, 우리의 몸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이는 우리가 온전할 수 없다는 사실이 제일 중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고, 다른 것을 봅니다. 그것이 최고라고 생각을 합니다.
요리만 그런 것이 아니고, 우리의 일상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대로만 생각을 합니다. 돈을 버는 것, 사업을 하는 것, 사람과의 관계를 맺는 것, 학교 생활하는 것도 우리의 생각으로만 봅니다. 우리의 가진 한계로만 봅니다. 그러다보니,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합니다. 우리를 위해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의 가장 큰 선물을 보지 못합니다.
우리를 위한 이 “영혼의 구원”에 대해서는 우리가 관심을 잘 가지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만 좀 잘 되면 그게 최고인줄 알고, 이 세상에서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인생전체가 실패했다고 생각합니다. 고난과 어려움을 통해서 깨닫게 해 주시고, 계획하신 하나님의 특별한 뜻을 헤아리지 않습니다.
이 “구원” 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빠져 버릴 어딘가로부터 건져냄을 받는다”는 의미에 상충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어디론가 계속 빠져 나오지 못할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과, 반대로 우리는 거기서 나와야 한다는 이 ‘구원’이라는 단어를 기억해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를 건져주시고, 구원해 주시는 분을 분명히 알고 그분께 구원 받도록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구약 성경에 나온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구원해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이상하게도 엉망이 됩니다. 타락하게 되고, 죄를 짓게 되고, 하나님을 멀리하게 되고, 결국 하나님을 떠나서, 복 받는 삶이 아닌, 엉뚱한 삶이 됩니다.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지 못하고 사는 정말 안타까운 삶이 됩니다.
(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셔서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중학교 때 축구를 하다가 공에 눈이 맞아서 실명을 해서 양쪽 눈의 시력을 모두 잃었습니다. 아들이 평생 시각장애로 살아가야 된다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그 충격으로 놀라서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8시간 만에 죽습니다. 남은 4남매였던 그의 가정은 그의 눈을 고치고 가장의 역할을 하던 큰 누나가 일을 하다가 과로로 또 죽습니다. 그리고 여동생은 고아원에 보내졌고, 남동생은 철물점에 보내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어떠한 위로나 힘이 될 만한 것이 없던 그는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만 메어 달렸습니다. 나의 참된 위로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고 고백을 하고 주님께만 메어 달렸습니다.
그는 18살로 맹인중학교 1학년에 입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연세대학교에 입학을 합니다. 당시에는 장애인을 받아 주지 않았었는데, 어렵게 들어간 연세대에서 ALL A 우등생을 첫학기, 둘째학기에 받게 됩니다.
1972년에는 문교부가 실시하는 유학시험에 합격해, 한국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는 미국에 유학을 가게 됩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많은 일을 했습니다. 한국 사람으로는 미국에서 제일 높은 관직에도 올랐습니다. 백악관 국가 장애위 정책차관보를 지내십니다. 그 분의 두 아들은 하버드와 예일을 졸업하고, 요즘에는 아버지 못지않게 큰 일을 하고 있는 자녀들로 소문이 났습니다. 바로 강영우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강영우 장로님이 처음에 눈을 다치고 모든 것을 잃었을 때에, 그는 “자신의 현재의 모습이 비록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있지만, 이 고난이 오히려 나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어려운 난관들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의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장애인으로 얼마나 많은 좌절이 있었겠고,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저도 지금 다리를 다쳐보니까 얼마나 많이 불편한지 모릅니다. 휠체어만 보면, 목발을 짚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불편해도 잘 다니는구나!” , 요즘은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장애인들도 참 편하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직접 그 장애들을 겪고 사니까 생각이 많이 바뀌게 됩니다.
그런데 후천성 시각 장애라는 고난을 받고, 부모님도 없고, 형제도 흩어진 상황에 놓여진 그를 붙드신 하나님, 그의 인생에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의 섭리를 강영우 장로님의 책과 간증을 들으면 하나님이 얼마나 그 분께 큰 힘이 되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우리의 상상이나 예측으로 감히 이야기 할 수 없습니다. 오늘 베드로 전서 1:12을 보면 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한 사람 한사람을 구원하여, 이 땅에서 살게 하시고, 우리를 이 땅에서만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까지 이끄셔서 우리 영원의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섭리는 천사들도 부러워하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인생에 이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그 분의 손길을 경험하고 살고 싶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인생을 여러분이 설계하고, 계획한대로만 살려고, 그 풍성한 하나님의 계획과 돌보심과 도우심을 배제하거나 무시하고 살아가고 싶으십니까?
그래요..여러분들은 다 어른이고, 알만한 사람들이이까 여러분 인생 여러분이 알아서 살다가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이 그렇게 끔찍하게 사랑하는 여러분의 자녀들이 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역사하심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아니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나서 살아가고, 하나님과 등 돌리고 살아간다면, 여러분은 어떻시겠습니까?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이 놀랍고 풍성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누리고 사는 일을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아주 오래전부터 여러분 한사람, 한사람에 대한 분명하고 확실한 구원의 계획과 여정을 다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지금의 고난도 당장은 잘 알기 어렵습니다. 일이 잘 안되고, 꼬이고, 앞이 캄캄해 보이지만, 주님께서는 선하게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의지하는 우리들에게 그 구원의 역사를 베푸실 것입니다. 이것을 “천사들이 살펴본다”고 벧전 1:1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적용) 이 관점으로 우리의 이웃을 보면, 우리는 다른 관점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주위에 있는 그리스도인 한 사람 한사람은 정말 천사도 흠모할 그 아름다운 구원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성도라는 사실입니다. 내 기준에는 아닌 것 같아 보이고, 객관적인 기준에도 좀 모자라 보이고, 지금의 모습이 정말 아닌 것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리스도안에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그 구원 계획안에서 한사람 한사람을 다 다듬고 계십니다.
우리와 함께 예배를 드리는 어린이,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주안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우리 주님이 붙잡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이웃들인 내 형제 자매들을 대할 때, 그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사람들을 대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전해진 이 구원의 역사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계획이 되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벧전 1:10-12을 보면, 이 구원은 오래전부터 구약성경 시대에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핀 것으로, 이것이 역사적으로 계속 흘러서 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전달이 되어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이 구원의 역사가 다가온 것 같지만, 성경은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에게 이 구원의 역사가 전해지기 위한 많은 수고와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지나 온 시간을 보면, 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특별한 일들을 우리 인생 곳곳에 숨겨 두고 계신지 모릅니다.
우리가 힘들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복음의 위로를 곳곳에 숨겨 두셨습니다. 때로는 그것을 사람을 통해 알게 하시고, 때로는 특별한 상황을 통해 알게 하십니다.
우리가 순간순간 그것이 하나님의 역사라고 발견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의 삶에도 그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게 될 때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을 한다고 합니다.
정말 하나님의 그 역사하심은 우리가 감히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하시는 자녀를 위해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구원계획은 우리가 감히 흉내 내거나, 비슷하게 다시 각색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결국 즉 영혼의 구원을 위해 우리의 일생 곳곳에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잊지말고, 힘이 들수록 그 구원의 역사를 더욱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구약의 선지자들과 성령을 통해 복음 전도자들을 통해 나에게 전해진 이 구원의 놀라운 이야기를 나에게 전달이 되어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직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아직도 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모르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한 번 이 구원의 역사가 제대로 전해지면, 그 사람의 인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족과 이웃과 친구들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 바로 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그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소중하고, 보람된 일은 없습니다.
정리) 비상 탈출한 비행기 조종사에게 살아남기 위한 여러 가지 것들이 있었지만, 그 가운데 시편 23편은 부상과 외로움과 적에게 잡혀 죽을지 모르는 그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기다리는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이곳 인도에서 그 주님의 특별한 구원의 역사를 경험해야 합니다.
그냥 왔다가 시간되면 가는 사람이 되면 안되겠습니다.
우리를 인도로 보내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우리의 소중한 하루 하루의 삶을 소중하게 의미를 두고 살아야 합니다.
인도에서 더욱 의미 있고, 깊게 주님의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어떠한 것인지를 이 인도에서 깊이 생각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내가 그린 나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그려 주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그러기에 성도 한 사람 한사람은 서로 서로가 소중합니다. 그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함께 이루어지는 것을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 귀한 것이 진행되는 것을 방해하거나, 훼방되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됩니다. 우리 서로 서로가 이 힘든 인도에 있는 동안 함께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는 소중한 하나님의 동역자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각자를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 원합니다.
우리에게도 제2의 강영우 박사와 같은, 아니 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아름다운 구원의 역사가 우리 델리한인장로교회에도 동일하게 역사하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나타내는,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아름다운 믿음의 공동체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고난의 시기,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기를 , 천사도 흠모하는 이 구원의 역사를 인도에서도 깊이 경험하고, 알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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