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21일 야고보서 4:4-8,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주시는 축복
여러분 혹시 도망을 다녀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저는 초등학교 5학년 정도 때 저랑 나이가 같은 사촌형이랑 동대문에 야구 구경을 하러 갔었습니다. 평소에도 둘이 잘 다녀서 아무생각이 없이 야구장을 향해서 갔습니다. 야구장을 가려면 옛날에는 전철 동대문 역에 내려서 걸어서 청계천 육교를 지나야 동대문 야구장에 다다릅니다. 저희가 육교에 올라가려는 순강 이상한 아저씨가 저희 뒤로 붙더니 저희 사촌형 몸에다 칼을 들이대었습니다. “똑바로 앞으로가 뒤에서 쫓아가는데 제대로 안 가면 죽여 버린다”라고 저희들 귀에 대고 칼을 들이대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 그 공포는, 초등학교 5학년이 느끼기에는 너무나 컸고 무서웠습니다. 진짜 몸이 얼어 붙는다는게 뭔지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육교 위를 걸어가는데, 뒤에서 지켜보며 따라오던 아저씨하고 네 걸음 정도가 차이가 나게 되었습니다. 그 때 갑자가 용기가 생겨서 사촌 형한테 “형 뛰어” 그리고 낼 수 있는 최고의 속도로 엄청나게 뛰었습니다. 어느 정도를 뛰었지만 어디서 나올지 몰라서 어린 마음으로 안전거리를 확보하기 위해서 버스를 타야겠다고 생각하고, 버스에 올라탔습니다..........만약에 그 때 끌려갔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간혹 가다가 ‘미아를 찾습니다.’ 신고를 보면 좀 길을 알만한 아이들이 실종신고가 되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잃어 버렸다기 보다는 이렇게 납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생각을 합니다. “만약 그 때 도망가지 않았다면.....내 인생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은 여러분과 도망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도망은 왠지 비굴해 보입니다. 도망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국에서 유명한 전쟁 비법이라고 알려지는 손자병법에도 이 도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손자병법의 36가지의 전략중에 제일 마지막에 나오는 전략인데, 바로 도망하는 것입니다. “제36계 : 때로는 전략상 후퇴도 필요하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난번 이번 시즌 2015년 유럽챔피언스리그에서 메시, 수아레즈, 네이마르라는 선수가 이끄는 바르셀로나 팀이 큰 업적을 이루며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축구 용어중에 트레블이란 용어가 있는데 이 용어의 뜻은 “한 시즌 기간 동안 자국 정규리그, 리그컵, 축구협회(FA)컵, 대륙별 챔피언스리그 중에서 3개 대회에서 동시에 우승하는 것”을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이 트레블을 이룬팀은 유럽 강호 7팀이 였는데, 이번에 스페인에 연고지를 둔 바르셀로나팀은 이번 시즌 우승으로 트레블을 달성했고, 그것도 트레블 2회를 하는 최초의 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 정도로 강자입니다.
이번에 맞붙은 팀은 이탈리아의 유벤투스라는 팀인데 축국 전략가들은 이 유벤투스라는 팀이 바르셀로나를 이기기 위한 전략들을 내놓았는데, 대부분의 축구 전략가들이 내놓은 전략은 “상대를 먼저 인정하라” 라는 것입니다. 바르셀로나라는 팀의 엄청나게 강하고, 상당한 실력임을 인정하고, 거기에 따라 틈이 생길 때 공격하는 전략을 가져야 이기지 그냥 열정만 가지고 부딪치다가는 100% 지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앞전에 많은 팀들도 이것을 무시하고 전면전을 펼치다가 거의 대부분 패배를 했지만, 좀 굴욕적이지만 상대방이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전략을 짠 팀들은 간혹 승리의 경험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조언해 주었습니다.
체코의 프라하 광장은 상당이 건축학도들에게 의미가 있는 지역입니다.
'북쪽의 로마,' '유럽의 심장,' '백탑의 황금도시,' '유럽의 음악원'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프라하 광장은 역사 상 수많은 갈등을 거치면서도 전쟁이나 여러 재난으로 부서지지 않고,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신비의 도시이기에 그 역사적 가치가 높게 인정을 받습니다. 천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로 웅장하고도 아름다운 건축물들을 즐비하게 거느리고 있으며,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등 시대적 건축물들이 한자리에 다 모여 있으며 온갖 양식의 예술품들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지에서 실감나는 이야기를 현지에 계신 선교사님이 해 주셨는데, 이웃 헝가리와 비교를 주셨습니다. 세계 2차 대전 때 수 많은 공습이 되어 모든 유럽도시가 파괴되었지만, 체코만은 히틀러가 공습을 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체코가 자신들의 국력을 알고, 일찍 협정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항복을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반면에 끝까지 저항을 하자고 했던 헝가리는 칼과 장총으로 저항을 했지만, 탱크, 비행기 등의 당시 최고의 무기로 밀고오는 독일군에게 완전하게 파괴되고, 결국 전쟁에서도 지는 일을 당했습니다.
현지의 역사적 자료를 연구하신 선교사님은 좀 자존심은 구겨졌지만, 오늘날 체코의 프라하 광장에 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것을 보면 체코가 택한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방법”도 방법도 하나의 작전이였던 것 같다고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아주 강한 적이 있습니다. 바로 사탄, 마귀들의 세력입니다. 이 사탄 마귀의 세력은 정말 무섭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나오는 마귀는 헬라어로 “디아블로스” 라고 번역이 되는데 그 뜻은 ‘비방가’라는 뜻으로 ‘남을 욕하고, 비난하는 존재’를 표현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이 용어는 ‘하나님께 대한 우일하고 초자연적인 대적자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유혹자와 현혹하는 존재’로도 나타납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그들의 활동들을 근거로 그들을 지칭하는 용어들이 성경에 나오는데 그 뜻을 살펴보면 시험하는 자, 악한 자, 참소하는 자, 원수, 이 세상의 임금, 공중 권세를 잡은 자 등으로 성경 곳곳에서 그들의 존재에 대해 기록이 되어집니다.
이 마귀의 주요 특징은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가 악한 행동과 격한 감정을 나게해서 사람을 분노하게 하고, 사람의 자제력을 상실하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게 하고, 이들은 심지어 믿음을 가진 자들까지도 현혹한다’고 성경은 곳곳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정말 무서운 존재입니다.
이 마귀의 존재에 대해서 아주 분명하게 의미를 가지고 만든 찬양이 찬송가 585장입니다.“내 주는 강한 성이요”라는 찬양인데,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가 만든 곡입니다. 그런데 이 곡을 부르실 때 주의하실 것이 있습니다. 좀 바쁘다고 이 찬송가 1절만 부르게 되면 좀 이상하게 됩니다. 1절을 보면 “내주는 강한 성이요 방패와 병기되시니 큰 환난에서 우리를 구하여 내시리로다 옛 원수 마귀는 이때도 힘을 써 모략과 권세로 무기를 삼으니 천하에 누가 당하랴” 라고, 곡의 끝이 오히려 마귀가 힘이 세다는 것을 인정하고 찬양이 끝나게 됩니다. 2,3절을 다 불러야 전체 가사가 온전해 지는 찬양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마귀는 무서운 존재입니다. 쉽게 볼 상대가 아닙니다. 이 마귀를 우리 스스로가 절대로 이길 수 없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마귀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힘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을 때에만 이 마귀를 능히 대적하고 이길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찬송가 585장에 2절에 나온 것을 보면 “내 힘만 의지할 때는 패 할 수 밖에 없도다 힘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 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라고 합니다.
우리가 쉽게 생각하고 만만하게 볼 상대가 아닙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요셉이 등장합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죽을 위기에 처하게 되고, 결국 다른 나라에 노예로 팔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성실하게 일하고, 믿음직하게 일해서 주인인 보디발이라는 사람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그런데 그 보디발의 부인이 이 요셉을 유혹을 합니다. 자꾸 같이 잠자리를 하자고 하고, 유혹을 합니다.
창세기 39:6-10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요셉이 거절하며.....” 라고 뿌리 칩니다.
그리고 요셉이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라고 합니다.
분명하게 선을 그어서 거리를 둡니다.
그런데 여인은 집요합니다. 마귀가 우리를 넘어뜨리기 위해서 집요하듯이 끈질기에 요셉을 힘들게 합니다.
창세기 39:11-13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라고 했습니다.
온 집 안 사람들을 다 나가고 없을 틈만 노리고 그 때가 오자 더 적극적으로 요셉을 유혹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주목해 볼 장면이 있습니다.
요셉이 어떻게 했습니까? 이전에는 말로 물리쳤지만, 그것도 안되니까 ‘요셉이 그 자리를 떠서, 도망갔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아니 신앙인인 하나님의 사람 요셉이 도망을 가? 이거는 잘 맞지 않는 컨셉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도망을 갔습니다. 소위 36계 줄행랑을 쳤습니다.
최근에 상담학을 전공하신 분들이나, 교회 사역자들 가운데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찾아오는 ‘여러 가지 유혹들을 어떻게 이길 것이냐?’라는 질문에 답들을 해 놓은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특히 청소년기에 성적으로 민감한 아이들이나, 분별력이 없는 상황에서 다가오는 여러 가지 유혹들을 어떻게 이길 것인가?를 조사한 분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지만, 그 중에 한 가지 방법이 바로, “그 유혹의 현장에서 요셉처럼 도망을 나오라고 이야기” 합니다.
유혹의 현장을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그 유혹의 현장에 자신을 계속 노출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자신을 넘어뜨리고 흔들어 놓는 현장에서 과감하게 멀리 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 사사기에는 삼손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힘이 장사입니다. 그 누구도 힘으로 이 삼손을 제압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삼손과 적국이였던 블레셋이라는 나라는 이 삼손을 처리하기 위해 작전을 썼는데, 삼손이 좋아하는 ‘들릴라’ 라는 여인을 자기들 편으로 만들어서 뇌물을 주기로 하고, ‘삼손의 힘’이 어디서 나오는지를 알아오라고 했습니다.
사사기 16:4-5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
블레셋 사람의 방백들이 그 여인에게로 올라가서 그에게 이르되 삼손을 꾀어서 무엇으로 말미암아 그 큰 힘이 생기는지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하면 능히 그를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알아보라 그리하면 우리가 각각 은 천백 개씩을 네게 주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삼손은 성경에서 그가 힘이 생기는 것은 어릴적 하나님으로부터 전해진 이야기로 ‘자신의 머리털’을 깎지 않는 것이였는데, 삼손은 이것이 남들에게 알려지면 자신의 힘이 없어진다는 것을 알고도, 자기는 자신을 관리할 줄 안다고 교만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유혹하기로 작정한 그 여인을 충분히 제어하고, 관리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사사기 16:6-7 “들릴라가 삼손에게 말하되 청하건대 당신의 큰 힘이 무엇으로 말미암아 생기며 어떻게 하면 능히 당신을 결박하여 굴복하게 할 수 있을는지 내게 말하라 하니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 이야기를 들은 여인은 그 정보를 적국에다가 주고, 몰래 삼손을 새 활줄 일곱으로 결박을 했습니다.
그렇게 했으나 거짓말이라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다시 삼손에게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두 번째는 “쓰지 아니한 새 밧줄들로 나를 결박하면...” 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그리고 계속 거짓말이 되고, 이것이 반복이 됩니다. 세 번째에는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되리라 하는지라” 라고 하고...했는데 역시 아니였습니다. 그런데 여인이 계속 집요하게 묻습니다.
사사기 16:16을 보면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그리고 귀찮아서 확 이야기를 해 버립니다.
사사기 16:17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그리고 삼손의 이 이야기는 적국으로 전해져서 잠이 들었을 때, 정말 머리털이 밀리고, 진짜 힘이 없어져 버리고, 잡히게 됩니다. 그리고 눈을 모두 뽑히고 짐승처럼 큰 절구를 돌리는 노예로 전략해 버립니다. 그의 교만이 그를 유혹의 자리에서 머물러 있게 했고, 결국 그는 그 교만으로 인해 인생 최악을 경험하게 됩니다.
‘교만’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후페레파노스” 라는 말로 “타인보다도 자신을 높이 세우는 행위 , 타인을 무시한다”는 뜻이 언어에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유혹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고 자리를 박차고 도망을 갔지만, 삼손은 유혹을 그냥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유혹의 현장에서 머물러 있었습니다.
청소년 사역 전문가들은 성적으로 민감한 청소년 시기에 음란물이나 여러 유혹의 현장에 노출이 될 경우, 우리 청소년들에게 그 자리를 “빨리 떠나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유혹으로 현장으로부터 멀어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이 없으면 도망을 가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신약성경 야고보서는 이 부분의 이야기를 더욱 정확하게 이야기를 해 줍니다.
야고보서 4장에는 오늘을 사는 우리가 두 군데의 중요한 지점에 서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한 곳은 세상과 벗이 되려는 자리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자리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둘의 자리는 서로 반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약 4:4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공존할 수 없는 자리이기에 분명하게 우리가 가야할 곳과 분명하게 우리가 떠나야 할 곳이 있음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하게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약 4:7을 보면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택하고, 마귀의 길들을 대적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마귀가 우리를 피한다고 했습니다.
마귀의 길을 대적하는 방법 중에 하나는 마귀가 다가올 때 도망치는 것입니다. 어디로 도망을 칩니까? 마귀가 더 이상 쫓아오지 못할 곳, 더 이상 마귀가 접근할 수 없는 우리 주님이 계신 곳으로 도망가야 합니다.
확실하게 주님께로 가야 마귀가 못 쫓아옵니다.
제 도망자 이야기 씨리즈가 하나 더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점심시간에 술래잡기 놀이가 있었습니다. 술래에게 잡히면 벌칙이 있어 난처해집니다. 근데 제가 초등학교 6학년때는 부끄러움이 많았습니다. 남자 키로는 반에서 거의 맨 뒷줄 이였는데, 쑥스러움이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밥 먹을 때 여자애들이 밥 먹는거 쳐다보면서 놀리면 밥을 제대로 못 먹었습니다. “용구는 밥을 참 예쁘게 먹네....” 라고 자주 놀림을 받았습니다.(지금 생각해 보면 저를 좋아한 애들 같았는데....)근데 술래잡기 놀이를 하는데, 정말 술래가 다른 애들 다 놔두고 저만 무섭게 쫓아왔습니다. 한참을 뛰어도 너무 오래 쫓아오니까 오기가 발동해서 내가 ‘이번에는 절대로 안 잡힌다’라고 다짐을 하고 죽어라 뛰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5미터 높이의 언덕 아래에 인공 호수를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가로 세로 10미터 정도의 호수인데 물 깊이가 1미터 50센티미터 정도 되었던 곳이였습니다. 도망을 치다가 막바지에 다다른 곳이 마침 무슨 영화처럼 이 호수 진입로의 언덕 이였습니다. 언덕 밑에는 호수가 있었구요...
그런데 쫓아오는 술래가 얼마나 싫었고, 잡히기 싫었던지, 제가 그냥 언덕아래 호수로 뛰어서 호수에 풍덩 빠져 버렸습니다. (왜 그랬나 모릅니다. 수영도 못했었는데..)옷은 다 젖었고 학교 친구들이 호수 주변에 다 몰려들었습니다. 저를 쫓아오던 술래는 호수 위편 언덕에서 저를 쳐다보다가 어이가 없었던지 더 이상은 쫓아오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학교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조용하던 용구가 깡다구가 장난이 아니라고...., 점심 먹을 때 여자 애들이 더 이상 안 놀렸습니다. 제 건드리지 말라고, 제 물불 안가리고 호수에 뛰어 내리는 애라고....)
여러분, 우리가 사탄 마귀가 쫓아오고 유혹을 할 때는 적당히 도망가면 안됩니다.
우리보다 무섭고, 집요하고, 상황과 환경을 최대한 이용해서 우리를 흔들어 놓습니다.
거기에서 있어도 나는 “이겨낼 수 있다”라고, “이 정도 쯤이야” 라고 교만하게 버티고 머물러 있으면 삼손처럼 됩니다.
좀 굴욕적인 것 같아도, 요셉처럼 도망가는 것도 필요합니다. 확실하게 도망가야 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원수마귀의 세력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 주님께 도망을 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서 머무르고 있습니다.
음란물, 도박, 정욕과 쾌락의 현장들....성경 야고보서는 이러한 것들에 대한 분명한 선으로 “세상과 벗된 것”이라고 정의를 해 놓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세상과 벗 되어 있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세상적으로 좋아서 주님을 포기했거나, 세상이 더 좋아 보여서 주님을 놓친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4:8에는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라는 말씀을 우리에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지금 세상과 가까운지, 주님과 가까운지.....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 전체를 뒤흔들고 유혹하는 마귀의 세력에서 도망쳐서 우리를 지키시고, 바른 길을 가게 하시고, 보호하시는 주님께로 가까이 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이 기준을 가지고 삶의 현장에 부단히 주님을 가까이 하는 자에게 우리 주님은 축복해 주시고, 세상에서 얻는 것과 비교될 수 없는 축복과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기로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의 자리를 향해 주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좀 세상과 가깝지만, 방향이라도 분명하게 주님을 향해 방향을 바꾸고, 조금씩이라도 나아간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자리를 분명하게 붙잡게 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 무더운 이 여름에도 열심히 주님을 가까이 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우리의 힘은 너무나 약합니다. 유혹이 와도 유혹인지 모르고, 유혹을 이길 수 있다는 잘못한 판단으로 유혹의 자리에서 머물며, 하나씩 하나씩 원수마귀에게 우리를 노출합니다.
사랑하는 주님 우리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사오니,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주시는 주님께 나아가 피하기를 원합니다. 주님께로 가까이 나가게 하시고, 주님의 주시는 은혜의 길로 우리를 지켜 주셔서 우리가 삼손과 같이 넘어지는, 쓰러지는 삶이 되지 않도록 주님이 붙들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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