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4일 빌립보서 2:5-8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사람”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 우리보다 더 힘들고 어려웠던 사람들의 이야기나, 과거에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면 “아 지금 내가 고생하는 것보다 더 고생한 분들이 있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위로를 받게 됩니다.
저는 이번에 “닥터 홀의 조선회상”이라는 책을 다시 보게 되면서 많은 위로를 얻었습니다. 이 책에는 우리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윌리엄 제임스 홀(William James Hall) 이라는 캐나다 선교사의 이야기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선교지에 오기 전에도 읽었는데, 선교지에 와서 읽으니 더욱 실감이 나고 가슴에 다가오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1. 조선에 도착한 윌리암 제임스 홀은 막 신혼이였고, 조선 땅에서 태어난 갓난아기에 대한 이야기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조선의 풍속대로 첫돌에는 돌잡이를 했는데, 기록에 의하면 “의사의 청진기는 가장 매력이 없는 것”이였다고 기록을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들이 소 젖으로 우유를 만들어 먹는다고 하면 “어떻게 사람이 소 젖을 먹느냐?”라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리고 조선에서 첫 번째 서양식 결혼을 했는데, 하얀 드레스가 당시 조선인들에게 사람이 죽으면 입는 하얀 소복과 같다고 여기면서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2.1902년 미국에서 조선으로 오는 길에 영국에서 경유를 하는데 영국의 갑자스러운 일정으로 운항이 취소되어서, 확실한 기약이 없는 중간 경유지인 영국에서 42일간을 체류했다” 라는 기록이 나옵니다. 우리는 비행기로 가다가 4시간 정도를 기다리는 것도 지치고 힘들다고 불평을 하는데, 아무 기약도 없이 무려 42일이나 조선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경유지에서 체류했다는 기록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줍니다.
3. 인도 머수리에 있는 우드스탁이 외국인과 선교사들 자녀들이 많이 가서 공부하는 학교로 지금은 아주 유명하지만, 1900년도 6월에 문을 연 “평양외국인학교”는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아시아 지역의 선교사 학교로 유명한 곳이였다라는 기록을 보게 되었습니다. 조선이라는 곳에, 그것도 115년 전에 유명한 외국인 학교가 있었다는게 실감이 나십니까?
그리고 이 학교에 교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지원한 첫 교사는 ‘오길비’라는 미국 여성으로 당시 18살의 나이로 당시에 가장 힘들고, 열악한 조선에서 일하는 선교사님들의 자녀 교육을 위해 이 조선 땅을 선택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나이가 너무 어려서 부담스러웠지만, 지원자가 이 오길비라는 사람 밖에 없어서, 그가 결국 이 일의 첫 사역자로 일을 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조선에 온 많은 선교사들은 대부분이 서른 살 이전의 젊은 청년들이였다는 사실을 주목해 보게 됩니다. 젊은 청년들이 영적으로 반응했을 때 하나님의 역사가 더 많이 이루어졌습니다.
4. 윌리엄 제임스 홀이 조선에 오게 된 배경에도 우리가 관심을 가질 내용이 있습니다. 자신보다는 사실 자신의 배우자가 될 셔우드 로제타 (Sherwood Rosetta)에게 먼저 조선에 대한 부르심이 있었습니다. 뉴욕의 리버티에서 태어나 대학을 졸업하고 당시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의 교사로 일하다가 교회에서 ‘케네스 챈들스’란 부인이 인도를 여행하고 난 뒤에 인도여성에게 복음전도자와 의사가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의료선교사가 되리라 결심합니다. 그래서 필라델피아에 있는 의과대학에서 공부하는 동안 뉴욕에 있는 중국 여성들의 무지를 들었고, 그보다 훨씬 더 무지하고 복음을 알지 못하고 있는 조선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조선으로 자원하게 되고, 남편이 될 연인 윌리엄 제임스 홀도 따라서 조선에 오게 됩니다.
우리가 지금은 인도를 무시하지만, 1900년도 당시에는 인도보다 휠씬 못한 나라가 우리 조선이였습니다.
5. 윌리엄 제임스 홀은 그 당시 외국인이 한 번도 살지 않았던 ‘평양’을 주목합니다.
평양에 대한 당시 조선의 선교사들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 도시는 조선에서 가장 문란하고 더러운 도시라는 평을 받고 있으므로 선교의 도전 대상지이다. 이곳은 또한 자기들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돌을 던져서 때라는 유명한 폭력배들이 많다. 하지만 이곳은 서울과 북경을 연결하는 도로 선상에 있고, 인구 10만이 넘어가며 가능성 있는 도시가 되어 질 것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윌리암 제임스 홀은 이곳을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방문하게 되고, 그곳에 첫 외국인으로 거주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곳에 거주할 때 평양감사의 갖은 횡포와 협박, 그리고 함께 선교사를 도왔던 조선인 그리스도인을 옥에 가두고, 수 많은 뇌물을 요구하고, 결국 사형집행 전까지 갑니다.
이를 위해 조선 정부에 협력을 요청을 해도, 그리고 조선정부에서 수 많은 전령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평양감사가 막무가내였고, 특히 외국인을 모두 잡아 죽이라는 당시 유교와 동학의 영향을 몸으로 그대로 받으며, 윌리안 제임스 홀은 부인과 2살된 갓난아기를 데리고 드디어 평양에 거주를 하게 됩니다. 나중에 이곳이 조선의 대 부흥을 이끄는 가장 중요한 도시가 되어 ‘평양 대부흥 운동’이 일어나게 된 곳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도 FRRO에 외국인 등록이 어렵다고는 하지만, 복음을 위해서 평양에 첫 거주를 했던 윌리암 제임스 홀을 생각하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도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지만, 오래전 조선은 더 심했습니다.
6. 조선을 차지하기 위한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 한참 일 때 윌리암 제임스 홀이 배를 타고 서울로 오는데 그 배에는 6백 명의 병든 군인들이 타고 있었는데, 그 병들은 이질이나 각종 열병, 각종 전염병에 걸린 군인들이 대부분이라 한 배에 탔던 윌리암 제임스 홀에게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한 과정으로 그 배에 올라 탔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니, 요즘 메르스로 인해서 우리나라 전체가 들썩이는 모습을 비교해보게 됩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질병을 피해 다니는 우리의 모습과, 115여 년 전 우리에게 와서 복음을 전해 주기 위해 그 위험한 세균과 전염병 덩어리의 배에 올라탄 선교사님의 모습은 우리와 분명하게 비교가 되었습니다.
7. 이 윌리암 제임스 홀 가정의 선교를 통해, 이들이 세운 병원이 나중에 이대부속 병원으로 성장을 하고,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전신인 ‘경성여자의학 전문학교’를 열었고, 이들을 통해 김점동이라는 여자 청년은 요즘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의대 중에 하나인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의학석사를 받고, 우리 나라 최초의 여성의사가 됩니다.
계속적인 사역으로 조선 최초의 맹인교육을 위한 점자를 도입하고, 정신과 병동, 어린이 병동을 만들어가고, 당시 가장 힘든 질병 중에 하나인 결핵을 퇴치하기 위해 최초의 ‘크리스마스 씰’운동을 전개했고, 기독교 선교와 신교육을 목적으로 평양에서 소년 13명을 모집하여 한글ㆍ한문ㆍ성경 등을 가르쳤으나, 설립한 지 몇 달도 되지 않은 1894년 11월에 제임스 윌리암 홀 선교사가 죽게 되어 유명무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학교가 계속 이어져서, 오늘 마포에 있는 광성고등학교로 존재하게 됩니다.
8. 그리고 그의 부인 로제타 홀은 남편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선교적 결단으로 조선으로의 발길을 가져오게 됩니다. 그런데 조선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한참 신혼을 맛보고, 행복을 누려야 할 때 2년 6개월 만에 남편을 잃습니다. 그런데도 포기하지 않고, 4살, 2살이던 어린 자녀들과 사역을 합니다. 그런데 남편을 잃은지 얼마되지 않아서 막내 딸이 4살되던 해에 열병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남편과 어린 딸을 양화진 외국인 묘지에 묻고,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 하나님 , 지금 곁에 남이 있는 사랑하는 내 아들 셔우드 홀과 조선에서 오랫동안 사역을 할 수 있게 해 주시기 바랍니다.” 라고 기도하고, 1951년까지 사역을 하고, 남편과 딸이 묻힌 조선의 양화진에 묻혔습니다.
그의 아들 셔우드 홀도 1940년까지 조선에서 사역을 하고, 조선에서 일본에 의해 스파이 혐의를 받고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추방이 되어서 인도 선교사로 와서 1963년 은퇴 할 때까지 사역을 했습니다. 이렇게 조선과 인도에서 사역을 했던 분이라 더욱 뜻 깊게 기억이 되는 분들이 이 홀 가정의 역사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보면서, 인도 땅에서 이 이야기를 다시 보니, 많은 것들을 다시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사건과 현상 가운데 아주 분명하고 굵직한 선들이 있는데, 이 가정의 가장이였던 아버지인 윌리암 제임스 홀은 그가 모든 것을 함에 정말 이 조선에 예수를 심어주기 위해 순간순간 최선을 다했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윌리암 제인스 홀은 “ 1894년 11월 24일 로제타와 결혼 2년 5개월 만에 34세로 순직하였다” 라고 전해집니다. 너무나 짧은 생애를 마쳤고, 신혼 생활과 함께 시작하여, 척박한 조선 땅에서 자기 아들과는 제대로 이야기 한 번 해 보지 못하고, 그 험한 여정들을 소화하다가 청일전쟁 가운데 고통당하는 병자들을 치유하다가 전염병에 감염이 되어서 이 땅에서의 삶을 마감했습니다. 그런데 그 짧은 2년 5개월이였지만, 그는 주어진 시간의 순간순간을 항상 복음을 조선인들에게 전하는데 사용했습니다. 먼 길이고, 힘든 길이지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누리고 싶은 신혼이지만, 함께 지내고 싶은 갓난아기이지만, 조선의 복음을 위한 우선순위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게 되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현재 인도 땅에 선교사로 살고 있는 제 모습과도 비교를 해 보니 제가 참으로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순전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전하기 위한 오직 하나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결단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든 일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오늘 인도라는 곳에서 사는 모습과 당시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우리들은 지금 어떤 생각과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윌리암 제임스 홀의 모습과는 너무나 많이 다른 삶과 모습을 가지고 살고 있지 않나? 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와 비교하면 우리는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고, 너무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것에 대한 감사보다는 더 가지지 못해서, 무언가 더 부족하다는 것에 얽매여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을 위해서 산다고는 했지만, 우리는 과연 하루하루를, 우리의 삶을 무엇을 생각하며 사는지, 마음에는 무엇을 담아두고 사는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을 전하기 위한 마음보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살기보다는 다른 것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며, 많이 부끄러웠습니다.
상대방이 무엇을 입었고, 차를 뭐를 가지고 있고, 사회적인 지위는 무엇이며, 그가 가진 외적인 것에 대한 관심은 있지만, 정작 상대방이 예수님을 알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너무나 부족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별히 우리보다 없어 보이고, 못 배운 것 같고, 지저분한 것 같은 사람을 보면 그냥 아예 사람 취급도 하지 않고, 그냥 아무 생각이 없이 지나칩니다.
윌리암 제임스 홀이 김점동이라는 자신을 돕는 별볼일 없는 소녀를 미국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의학석사까지 마치게 하고 조선인 최초의 여자의사가 되게했던 그 마음과 열정이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부족합니다. 사람을 존귀히 여기는 마음이 너무나 부족하고,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 대한 긍휼이 너무나 없습니다.
이번 월요일에 네팔의 지진 참사 현장을 방문하고 왔습니다. 마을이 아예 흙에 덮여서 반지하 마을이 되어 버렸습니다. 무너진 집더미 속에서 벽돌 한 장이라도 재사용하려는 사람들의 모습들, 특별히 네팔에서도 새롭게 고층 아파트를 야심차게 준비해서 14층 아파트를 얼마전에 완공하고 분양을 했는데, 이번에 지진이 나서 아파트에 금이 가서 사용 불가능이라는 판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제일 안타까웠던 것은 네팔에서 30여년을 사역하신 선교사님이 전 생애를 걸쳐서 네팔에 6층짜리 건물을 올려서 열심히 신학교를 통해 사역자를 양성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그 신학교 건물 곳곳에 금이 갔습니다. 여기도 재사용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모든 신학생들이 다 학교를 떠나버렸습니다. 평생을 선교지에서 바쳐서 일한 곳인데, 참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네팔에 있다보니 우리는 인도가 살기 어렵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지진 피해 현장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니, 인도는 네팔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크고 좋은 나라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네팔 사람들이 볼 때 이렇게 좋은 인도라는 환경에서 살고 있지만, 우리는 이곳이 이 세상에서 제일 살기 힘든 곳처럼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115년 전에 더 열악했던 조선, 평양에서 견디었던 홀 가정이 복음을 위해 견디었던 그 모습이 우리에게는 얼마나 남아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그의 마음에 복음으로 가득찬 열정의 마음이 왜 우리에게는 없는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 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복음을 전해 주고자 하는 그 마음은 없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아무런 생각도 없고, 열정도 없는 우리를 돌아볼 때, 우리는 도대체 그리스도인으로 하루하루를 무슨 생각과 마음으로 사는지를 생각하면 너무 너무 부끄럽습니다.
왜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 이 귀한 복음을 전하기 위한 마음이 충분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우리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 우리가 행복하게 되기를 위해서는 이런 저런 마음으로는 가득 차 있지만, 정작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 그 분을 위한 순종과 섬김의 마음이 얼마나 차 있느냐?’ 는 물음에는 자신 있게 대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 제자들의 마음, 우리 조선에 왔던 선교사들의 마음과 같이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오늘 바울은 우리에게 빌립보서 2:5에서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라고 하셨습니다. 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은 빌립보서 2: 6-8에 나온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고 하신 주님의 마음을 품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항상 사람들을 만나실 때 뭔가를 상대방으로부터 얻으려고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앞에 있는 사람에게서 뭔가를 얻기 위해, 비위를 맞추거나, 그 사람에게 잘 보여야 나중에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생각하고, 이것저것 고려하면서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이 어떤 출세나, 의도적인 목표를 통해 자신을 유명하게 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면, 예수님의 제자들 대부분이 어부들이고 잘 못 배우고,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갈리리 지역의 사람들을 제자로 선택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여인, 삭개오, 막달라 마리아와 같이 남자관계가 복잡하거나, 나라를 팔아먹은 세리나,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기피하거나 만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을 만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들을 항상 가리지 않고 만나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9:10을 보면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 일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님이 사람을 만나셨을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려놓고, 종의 모습을 가지시고, 십자가를 지시는 그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이 땅에 오셨던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서 만나는 사람들조차, 그 고통과 짧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사람들을 만나실 때 그 초점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하기 위한 분명한 초점을 가지고 만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윌리암 제임스 홀과 같이 모든 것을,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분명한 중심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까? 만약 전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삶을 위한 마음을 가지고 이 땅에서 살고 있습니까?
우리의 마음은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합니까?
우리의 마음은 무엇에 집중되어 있습니까?
혹시 헛된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면, 이 시간 주님께 간절히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이 헛된 것들로 가득차서 사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주님이 주신 마음으로 살기를 기대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기를 원합니다.
주님, 제 마음을 붙들어 주시옵소서. 헛된 생각과 헛된 마음으로 살아가는 저를 고쳐 주시옵소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마음 부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을 강팍하지 말게 하시고, 거짓된 마음과 음란한 마음에서 멀어지도록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주시옵소서...그리고 우리의 마음을 성령이 주장하셔서,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품었던 닥터 셔우드 홀의 가정이 조선 땅에 와서 수 많은 어려움과 박해속에서도 예수님의 마음으로 조선에 살았을 때 조선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오늘 우리도 이 인도 땅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살기를 원합니다.
우리도 이 인도 땅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산다면, 우리의 삶이 분명히 바뀌어 질것입니다.
그 주님의 마음을 주시옵소서...라고 우리가 이 시간 잠깐 여러분의 고백으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개인적으로 잠시 여러분의 고백으로 기도하기 원합니다. 주님께서 도우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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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주님 우리에게 오셔서 주님 마음 주시옵소서. 우리는 너무 약해서 주님이 주신 마음을 자꾸 깨뜨리고, 우리의 이기적인 마음, 우리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마음, 우리의 쾌락과 정욕을 이루기 위한 마음으로 가득차게 살고 있습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역사하셔서 주님의 마음을 주시옵소서. 조선 땅에서 귀한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았던 닥터 홀의 가정과 같이 우리도 인도 땅에서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기 원합니다.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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