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7일 욥기 21:7-22 “왜 하나님이 가만히 놔두실까?”
우리는 간혹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님이 반드시 벌을 내리실거야”,“하나님이 살아계신데 어떻게 감히 그럴 수 있지?” 라고 혀를 내두르면서 이야기를 할 때가 있습니다. 소위 말하는 ‘천벌’ 다시 말하면 ‘하늘에서 내려오는 벌’이 나쁜 짓을 하는 사람에게 임하기를 기대합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천둥이나 번개가 한 번 내려서 확실하고 분명하게 벌을 내려 주기를 바랍니다. 아니..그게 좀 힘들다 싶으면 그 ‘흔한 자동차 사고’나, ‘질병’에 걸리면 그것을 바라보면서 “거봐 그럴 줄 알았어!” 라고 이야기를 하게 되는 상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런 일이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악인인데도,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손가락질을 받는 사람인데도 이상하게 잘 삽니다. 또 오래 삽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한 번씩 이를 갈고, 욕하고 손가락질을 할 북한의 김일성은 같은 동족끼리 서로 죽이게 만드는 전쟁을 일으켰고, 지금도 남과 북이 분단이 되어서 계속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일성은 1994년에 82세에 병환으로 죽었습니다. 죽음 앞에 오는 고통이야 있었겠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악인의 죽음과는 달랐습니다. 죄 값을 충분히 받고 고통스럽게 죽기를 수 많은 사람이 기대했지만,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수 많은 북한 주민들이 그의 장례식장에 가서 슬퍼하고,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그를 기억하고 슬퍼한다고 합니다.
원래 이러면 안되지 않습니까? 영화에서 보게 되는 상황은 뭔가 더 자극적이고, “그래 저렇게 죽어야지 악인이지... ” 라는 그 무언가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욥기는 이러한 우리의 궁금증을 잘 설명해 줍니다.
욥은 하나님 앞에서 칭찬 받는 의로운 사람이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의 상징처럼 재물과 자녀들 모두에게 복 받은 사람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시험 대상이 됩니다. 그의 삶에 갑자기 “고난”이 찾아옵니다. 가진 모든 재산이 갑작스런 기후 변화와 강도로 인해 모두 사라집니다. 사랑하는 자녀들 열 명이 모두 사고로 한꺼번에 목숨을 잃습니다. 자신의 몸도 갑자기 극심한 질병으로 괴로워 잠을 자지 못하고, 집의 지붕 기와를 가지고 몸을 긁어야만 살 수 있는 심각한 병에 걸렸습니다.
그런 욥에게 욥의 친구들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심각한 고난이 찾아 온 것은 “너의 죄” 때문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욥은 자신이 당한 이 일은 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친구들과 욥의 대화가 계속해서 나오게 되는데, 우리는 그 대화를 통해 중요한 것들을 배우게 됩니다.
먼저는 우리는 욥의 친구들을 통해 인간이 평범하게 생각하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들입이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우리 인간이라면 가질 수 있는 생각으로 “하나님은 이러실거야!”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욥은 그 평범하게 생각되는 그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이 분명하게 경험하고 알게 된 하나님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럴거야!’ 라고 추측으로 알고 믿는게 아니라 ‘분명한 경험으로 알게 된 것’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오늘 본문은 그 가운데서 ‘악인의 형통’함에 대해서 이야기를 합니다.
욥의 친구들은 악인은 분명히 ‘벌을 받는다’ 라는 관점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욥은 이 한 가지 공식으로는 우리의 인생사 모두에게 적용할 수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욥기 21:7-16은 악인들도 잘 되는 일이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욥 21:7을 보면 “어찌하여 악인이 생존하고 장수하며 세력이 강하냐?” 라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8절-13절을 보면 “그들의 후손이 앞에서 그들과 함께 굳게 서고 자손이 그들의 목전에서 그러하구나 그들의 집이 평안하여 두려움이 없고 하나님의 매가 그들 위에 임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수소는 새끼를 배고 그들의 암소는 낙태하는 일이 없이 새끼를 낳는구나 그들은 아이들을 양 떼 같이 내보내고 그들의 자녀들은 춤추는구나 그들은 소고와 수금으로 노래하고 피리 불어 즐기며 그들의 날을 행복하게 지내다가”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악인인데 이 세상에서 잘 지낸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더군다나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욥 21:14,15을 보면 “그들은 하나님께 말하기를 우리를 떠나소서 우리가 주의 도리 알기를 바라지 아니하나이다 전능자가 누구이기에 우리가 섬기며 우리가 그에게 기도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하는구나”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좀 더 쉽게 풀어서 이야기를 하면 “뭐하러 하나님께 메여서 삽니까? 하나님이 도대체 누구신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까? 우리가 알아서 벌어 먹고 잘 살 수 있는데, 왜 구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합니까?”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나 당돌합니다. 그러니까 악인이라고 불려지죠...
이쯤 되면 하나님이 번개하나 날려 주시면 좋겠는데, 욥은 ‘이 세상이 그렇지않다’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욥은 악인들이 이 세상에서 꼭 형벌을 받고, 그 마지막이 우리가 생각하는 그 멸망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해 줍니다.
욥기 21:29-33을 보면 어떤 경우에는 악인들은 재난의 날에도 잘 피하여 남기도 하고,그 들은 죽을 때에도 수 많은 사람들의 찾아와서 장례식장이 사람으로 가득하여 넘치고, 죽은 뒤에도 무덤에 무덤지기를 둔 상태에서 무덤에 있게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처음에 말씀 드린 북한의 김일성이 지금 그렇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김일성의 무덤을 성지처럼 만들고, 수 많은 돈을 들이고 사람들을 세워서 그곳을 지키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기에 욥은 욥의 친구들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은 매우 복잡한 것이기에 어떤 한 가지 법칙 즉 “악인은 다 형통하지 않고 다 망한다” 라는 것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욥은 그 자신이 악한 일을 행하지 않고, 죄를 짓지 않았지만, 엄청난 고난과 고통을 당합니다. 주변 사람들과 친구들은 욥의 이 겉모습만 보고, 욥이 우리가 모르는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욥이 악을 행했기 때문이라고 지적을 하는데, 욥은 자신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단호하고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욥은 한 가지 예를 더 듭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어떤 사람들은 나면서부터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서 남부럽지 않게 잘 살다가 인생에서 별로 고생없이 잘 살다가 죽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죽도록 고생을 하고, 인생에서 맘편하게 발 뻗고 잘 수 없을 정도로 고난만 당하고 살아갑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욥기 21:23-25 “어떤 사람은 죽도록 기운이 충실하여 안전하며 평안하고, 그의 그릇에는 젖이 가득하며 그의 골수는 윤택하고 어떤 사람은 마음에 고통을 품고 죽으므로 행복을 맛보지 못하는도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 이런 사람을 우리가 누구는 축복이고, 누구는 저주라고 이야기 할 수 있습니까?
누구는 선인이고, 누구는 악인이라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까?
(예화) 얼마전 BBC 방송을 보니까 백인 여자 리포터가 아프리카 흑인 종족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부족은 살아있는 소를 잡아서 화살 같은 것을 목에 쏘아서 구멍을 내고, 그 소피를 받아서 어린아이들에게 마시게 합니다. 위생처리도 없이 그냥 바로 마시게 합니다. 그 아이 얼굴은 온통 파리가 붙어서 엉망입니다. 그 피에 얼마나 균이 많을 텐 데, 오히려 그것을 먹고 더 위험할 텐 데라고 우리가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생각합니다. 아프리카는 미개하고, 더럽고 천박하고, 그래서 축복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고, 그렇다면 이들은 과거에 뭔가 죄를 지어서 그 후손이 이렇게 저주에 묶여서 지금 이렇게 못살고 미개하게 사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욥기 21:26에는 이렇게 세상에서 사는 사람들은 다 같은 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둘이 매 한 가지로 흙 속에 눕고 그들 위에 구더기가 덮이는구나”
악인도, 선인도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모두가 흙으로 돌아가는 것은 같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럼 도대체 뭐냐?”라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때 욥은 답변을 합니다. “우리 인간의 한계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말자”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욥 21:22을 보면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자들을 심판하시나니 누가 능히 하나님께 지식을 가르치겠느냐” 라고 합니다. “누구도 하나님이 되어서 인생의 복잡한 일을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설명할 수 없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자신이 당한 이 ‘이유 없는 고난’도 헤아릴 수 없는 일이고, 이것도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 가운데 있는 것이지, 자신이 지은 죄로 인해 되어 진 것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욥이 하나님께서 모든 악인들을 무조건 용서하시고 참고 묵인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판” 하신다고 말씀을 하셨고, 사람은 누구나 다 이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가 헤아릴 수 없는 하나님의 방법으로 분명하게 심판을 하실 것이라는 것을 성경은 이야기를 하고 있고, 욥도 그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동의를 하고 있습니다.
(적용) 오늘 우리가 이 이야기를 듣고 깊게 세 가지 정도 생각해 볼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악인이 잘못을 저지를 때마다 그것을 가지고 바로 바로 심판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우리가 잘못할 때마다 하나님이 바로 바로 심판하시고 징벌을 주신다면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참으시고, 다시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보기에는 심각한 악인인데도 이 세상에서 별 탈 없이 잘 살다가 죽는 것 같습니다. “저렇게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그냥 놔두시는 구나!”
그래서 우리도 어느 순간 두리 뭉실해 집니다. 우리도 혼란스럽습니다.
그래서 한 번 두 번 슬슬 마음을 돌이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씩 둘씩 하나님께 불순종도 해보고, 남들에게는 신실한 것처럼 보여도 남이 모르는 곳에서는 정말 하지 말아야 될 것을 하나씩 둘씩 진행해 봅니다.
하나님이 그때마다 징계를 하실 줄 알았는데, 괜찮았습니다. 점점 강도가 세집니다.
그런데 기억해야 될 것이 있습니다.
심판은 분명히 있습니다.
히 9:27에도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심판은 있습니다. 결산할 때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입니다.
두 번째는 이 세상은 우리가 죽는 순간까지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 이 후에 우리 하나님이 예비하신 영원한 천국까지의 시간대를 가지고 전체를 봐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을 설명할 때, 이 땅에서의 삶은 “잠깐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은 삶이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디 여행가서 잠깐 머무르는 곳과 같은 것이 우리 인생이라고 했습니다. 아주 좋은 5성 호텔에 머무르는 것이나, 단기 선교 가서 제대로 잘 곳도 없는 곳에 가서 열악하게 자는 것도 다 임시로 자는 것입니다. 몇 일 자다가 옵니다. 좋은 곳에서 자고 오면 아쉬움이 있습니다. 좀 더 있고 싶어집니다. 그런데도 몇 일을 더 있어보면 그냥 우리 집이 더 좋습니다. 아무리 좋아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서 그런지 우리집이 더 좋습니다.
열악한 상황에서 잠을 자면 몇 일만 더 버티면 ‘우리집에 간다’라는 생각으로 참아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인생이 나그네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로 잠깐 왔다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가는 ‘임시 정거장’입니다.임시 정거장을 아무리 잘 꾸며 놓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악인들은 이 임시정거장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차이점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다음 목적지인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데, 그것을 듣지 못하고 이 세상이 전부인 줄 알고 살아갑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도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하나님 나라 백성의 참된 축복이 뭔지도 모르면서 임시정거장이 최고인줄 알고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거부하며, 악행을 일삼고 살기에 영원한 것을 얻을 기회조차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임시 정거장을 부러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 임시 정거장을 잘못 이해하고 거기를 정착지로 삼는 사람들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곧 오게 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열차’가 오는데, 그래서 고생이 되더라도 참고, 주어진 상황에서 견디고, 곧 오게 될 천국열차를 타고, 하나님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좋다고 하시고,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그곳을 위해 가는 천국 열차를 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악인은 그 기차가 오면 탈 자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천국열차에 탑승하라고, 그 임시정거장인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가 아니라고 누차 이야기 하면서 기회를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거부합니다. 남들이 다 천국 열차에 탑승을 하는 그 축복된 자리에서 악인들은 그냥 임시정거장에 좋다고 거기에 그냥 있습니다. 아예 탈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불쌍합니까?
우리는 이 임시정거장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다리고, 그 분을 소망하는 삶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세째로는 우리 믿는 자들에게는 사실 믿음으로 이 천국열차에 모두 탈 수 있는 자격은 되어집니다. 그런데 사람이 약아서 그런지 임시정거장인 이 세상에서도 잘 지내보려고 하고, 그리고 천국열차가 오면 그 기차에 바로 몸을 실으려고 합니다.
임시정거장인 이 세상에서도 잘 살고, 천국 열차도 꼭 타려고 합니다.
정거장은 기다리는 곳입니다. 내가 가야할 목적지에 가는 교통수단을 기다라는 곳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임시정거장과 같은 세상에서 우리의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태우러 오실 주님을 기쁜 마음으로 소망하면서 그 천국 열차를 타고, 주님과 영원한 천국을 가면서 주님께, 이 임시정거장 같은 세상에서 있었던 이야기보따리들을 풀어서 말씀을 드려야 합니다. 아마 말씀 하시기전에 주님이 이미 다 알고 하나씩 물으실 것입니다.
“그 때 인도에서 살 때 고생했었지, 더운데 거기서 열심히 교회 생활하면서 나를 예배하고, 봉사하고, 내가 부탁한 일을 정성껏 해 줘서 너무 고맙다..너무 고생했다” 라는 이야기를 주님으로부터 듣는다면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이 예비하신 천국열차를 탔는데, 주님하고 할 말이 없습니다.
아예 고개를 푹 숙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임시정거장에 충실하느라고,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를 위한 밑은 바 역할을 감당을 못했습니다. 정착과 떠남은 반대개념인데, 떠나야 할 곳에서 정착을 하기 위해 사는 삶이 반대이듯이, 이 세상 임시정거장의 개념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는 것과는 반대입니다. 그러다보니, 임시정거장에서 잘 살기 위해서 하나님이 맡기신 일들을 안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영원하신 하나님 나라도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냥 이 세상 임시정거장에서 잘 누리다가 나중에 천국열차 오면 타기만 하면 된다는 마음으로 살았기 때문에 주님 앞에 가면 할 이야기가 없습니다.
주님이 여러번 기회를 주었어도, 이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주님께 별로 이야기 할 것이 없습니다.
전도서 12:13,14에는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전도서의 저자 솔로몬은 소위 임시정거장인 이 세상에서 해보지 않고, 누려보지 않을 것이 없을 정도로 다 경험해 보았습니다. 그런 그가 맨 마지막에 이야기를 한 것이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나중에 반드시 결산할 때가 있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다 결산을 하신다는 것을....
교회를 다니면서도 간혹 이 영원한 나라에 대한 분명한 소망을 가지지 못해서 임시정거장에 충실한 성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인데,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처럼 살아갑니다. 그래서 간혹 우리도 욥의 친구들 같이 생각합니다.
저렇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거짓말하고, 이중적으로 신앙생활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준비하신 번개쇼 한 번 맛보게 해 주세요....”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리고 은근히 기대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에 대해서는 우리 하나님이 분명히 결산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그렇게까지 하는 행동은 반드시 하나님과 결산을 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 오히려 그 임시정거장에서 하나님을 진실되게 만나고, 그 분과 교제하며, 그 분과 이 임시정거장에서 영적인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고, 그 분의 부탁을 감당하여, 영원한 천국열차에 탑승하여 주님께 칭찬 받는 것을 놓치는 그 자체도 심판입니다.
우리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해 주시는 분을 놓치는 것 그 자체가 가장 치명적인 심판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것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인도라는 우리 인생에서의 특별한 임시정거장에서, 델리한인장로교회라는 공동체에서 우리가 함께 주님의 천국 열차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주님을 기다리면서 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보따리가 준비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함께 가야할 곳이 있기 때문입니다.
임시정거장에서 천국 열차를 놓치고 서 있는 성도가 없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이웃 가운데 천국 열차를 타고 가는 우리를 보고, “아니 저거를 왜 재네들만 타지, 평소에 한 번도 저런 천국 열차 이야기를 해 준적이 없었는데...” 라는 우리 이웃의 시선이 없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이 임시정거장이 세상에서 기쁨으로 주님의 천국 열차를 타기 위한 아름다운 준비가 오늘 우리의 삶에서, 가정에서, 직장에서, 우리의 공부하는 현장에서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우리가 때로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의아해 할 때가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실패하시는 것 같고, 악인들이 더 잘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참 뜻을 헤아리지 못할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욥기서를 통해 우리는 임시정거장에 정착하는 삶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열차를 위한 탑승자로 준비되는 삶이 되어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우리의 모든 성도들이 이 천국열차를 고대하고, 이 임시정거장에서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일들을 감당하며, 기쁨으로 주님이 준비하신 천국열차를 함께 타기를 원합니다.
세상의 마귀는 권세가 강해서 우리에게 이 임시정거장이 좋다고 합니다.
그 꾀임에 빠지지 않고 온전히 주님만 바라보고 나가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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