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10일 “그리스도인의 부모섬김” 에베소서 6:1-3
동안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 “동대문 노인복지관”을 교회의 사역으로 운영한 적이 있었습니다. 노인 복지사 40명에 매일 900여명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오고 가는 규모가 있는 사역이였습니다. 매주 월요일에 노인 복지사들을 위한 직원 예배가 있어서 예배를 인도하러 가는데, 노인 복지사 분들이 아주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자신들은 직업적으로 노인들을 잘 모시고 섬기는 데에는 최고의 전문가들이지만, 특별한 공통점이 있는데 자신들의 부모님을 모시는 데에는 제일 부족한 사람들이 자신들이다”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아이러니했습니다.
노인들에 대해서 공부하고, 그들을 섬기는 방법과 기술을 가진 사람이였지만, 정작 자신의 부모님을 섬기는데에는 그 기술과 전문지식으로만은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시간이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녀를 섬기는 일에는 항상 ‘최선’으로 ‘최대’한이라는 기준으로 자녀들에게 대합니다. 그런데 부모님에 대해서만은 항상 ‘최소’한으로 기준을 정해서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목회자가 되기 전에 제일 힘들었던 결단 중에 하나가 “부모님”에 대한 부분이였습니다.
제가 또 여형제가 없는 외아들이다보니,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위치였습니다.
당시에 빚보증을 잘못서서 집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가서 돈을 벌어서 은행 이자라도 내야 하는 것이 현실적인 상황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역자로 계속적인 부르심이 있었고, 아무래도 ‘제 인생을 하나님을 위해서 바치는 것’이라는 것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부모님을 모시는 부분”에 대한 것이였습니다. 당시에 부모님은 예수님을 믿지 않으셨습니다. 절에 다니셨고, 제가 교회 생활하는 것을 무척 반대 하셨었는데, 겨우 대학을 졸업시켜 놓았는데, 집안도 어려운데, 신학교를 가야 한다고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오랫동안 고민하고, 이 부분을 많이 기도했습니다.
마음이 편해야 신학교를 갈 수 있는데, 계속 이 부분이 걸렸습니다.
하나님이 막무가네로 부르실 분이 아니신데, 이렇게 무리수를 두실 분이 아니신데, 왜 이렇게 마음을 힘들게 하시는지에 대해서 많은 기도를 하고, 주님의 음성을 쫓았습니다.
그 때 들려주신 하나님은 음성이 있었습니다.
“용구야 너희 부모를 니가 돈 벌어서 책임지는게 좋겠니, 아니면 전능하신 하나님인 내가 주관하고 책임지는 것이 좋겠니?” 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 음성을 듣고 나니, 정말 제가 직장 가서 얼마를 벌어서 송금해 드리는 것보다, 인간의 역사를 주관하시고,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부모님들을 지키시고, 돌보시는 것이 훨씬 낫고, 감히 제가 효도하는 것보다는 주님이 하시는 것이 백배 천배 낫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 깨달음을 가졌을 때, 저희 부모님도 “정 니가 그렇게 하나님이 좋으면 하나님을 위해서 니 길을 가라”고 허락을 해 주셨습니다.
신학교를 가고 교육전도사가 되고, 전임전도사가 되고...그리고 결혼을 하고 신혼생할을 하는데 정말 제코가 석자라 부모님을 모시고 챙길 형편이 되지 않았습니다.
교인들 가정에 가정 행사에 간혹 초대를 받아서 예배 인도를 하거나, 그 가족들이 부모님을 섬기는 이야기를 들으면 많이 흔들렸습니다. 부모님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듣게 되어도, 약간의 성의만 표시하지, 넉넉하게, 마음껏 부모님을 위해서 뭔가를 할 수 없는 처지였습니다.
때때로는 하나님께 되묻기도 합니다.
“하나님...하나님이 제가 주님의 종이 될 때 주님이 제 부모님 책임져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근데 아닌 것 같아요......” 라고 간간히 묻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그 말씀대로 주님이 살펴 주시고, 보살펴 주신 것들을 확인을 하고, 앞으로도 지켜 주시고, 살펴 주실 것을 기대하고, 제가 하지 못한 부분을 우리 하나님께서 갚아 주실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만 때로는 인간적인 마음으로는 부모님께는 너무 죄송합니다.
동안교회에 있을 때 했던 일 가운데 하나가 선교사님들의 부모님들을 섬기는 일이였습니다. 그 가운데 한 선교사님 어머님은 연세가 80이 넘으셨는데, 그 집을 간혹 심방을 갑니다. 집안에는 온통 폐지들로 가득 찼습니다. 몸무게가 40kg도 안되는 체중으로 두배 세배의 무게의 리어커에 온갖 동네의 폐지를 다 주우십니다. 무거운 리어커를 너무 오래 끄셔서 그런지 허리도 너무 많이 휘으셨고, 모자를 푹 눌러 쓰시고, 무더운 여름에 땀을 흘리며 페지를 줍는 선교사님의 어머님을 보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동네가 또 경희대 앞이라 젊은이들 앞에서 그 일을 하시는 선교사님의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프기도 하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저 모습을 그냥 보시고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 선교사님의 사역에도 축복을 주시고, 아들을 선교지로 보낸 그 어머니를 하나님이 축복해 주실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을 가지게 되지만, 정작 저도 제 부모님들께는 이 믿음을 자신 있게 가지지 못하고 간혹 갈등을 합니다. 그래서 어버이날 설교는 정말 힘이 들고 어렵습니다.
오늘 성경 본문에서 바울 사도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부모님께 순종하고, 공경해야 된다는 것을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원칙으로 제시해 주었습니다. 다른 물질적인 보상이나, 대체할 만한 다른 것이 아니라 ‘부모님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바로 그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그리고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입니다.
한때 ‘미생’이라는 드라마의 김대리 광고편이 크게 유행을 한적이 있었습니다.
장난감 로봇을 사달라고 서럽게 우는 5살짜리 꼬마에게 아빠가 묻습니다. “로봇이 좋아 아빠가 좋아” 라고 물으니까...아이가 눈물을 닦으면서..자그마한 목소리로 “아빠” 라고 대답을 했더니...아빠가 그 한마디에 너무 좋고 감격해서 로봇을 사주었습니다. 그런데 화면이 바뀌면서 아이가 친구들 앞에서 로봇을 들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아빠..라고 했더니 로봇을 사주었어..”
그리고 2편이 있는데 아이의 일기장을 보는 아빠의 모습이 있는데, 일기장에 로봇이 직장에서 아빠를 괴롭히는 사람들을 무찔렀습니다“ 라고 썼더니 아빠가 또 감격해서 웁니다. 그리고 로봇을 사줍니다...그런데 역시 이 장면에도 아이가 친구들 앞에서 로봇을 들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이렇게 썼더니 로봇을 사주었어...” 라고...., 부모님의 마음을 잘 이용한 광고였습니다.
부모님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자기 자녀들이 부모님을 공경하고, 부모님에게 순종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말을 잘 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부모님이 자녀문제로 가장 괴로울 때는 자녀들이 부모님을 무시하고, 부모님의 말을 안 듣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원칙이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이 됩니다.
나이가 드신 부모님도 자기 자녀에게서 제일 좋아하는 것이 부모의 말을 잘 들어주는 자식을 좋아합니다. 좀 나이가 들었다고, 좀 안다고, 부모님을 무시하고, 부모님의 말을 듣지 않고, 공경하지 않을 때 부모님의 가장 실망하고, 가장 속상해 합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이 부모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는 것 앞에 전제를 달았는데, 그것이 바로 “주안에서” 라는 단어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주안에서” 라는 단어를 잘 생각하며 부모님께 잘 순종해야 합니다. 제가 처음 목회로 부름을 받을 때, 주셨던 말씀처럼, “제가 책임지는 부모님보다는 전능하신 우리 하나님이 책임지시도록 하는 것”이 우리 부모님께도 훨씬 낫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목회자인 저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동일하게 포함이 되는 말씀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참되게 부모님을 잘 섬기려면, 우리가 “주안에서”라는 이 말씀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부모님을 지키시고, 돌보시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주안에서 바른 관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로 나아가며, 건강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살아가며, 주님과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것을 통해,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도 복을 주시고, 우리의 부모님께도 그 복이 흘러넘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 부모님께 세상적인 기준으로 섬기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주님 안에서도 부끄럽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가정으로 온전히 서서 주님 안에서 부모님을 섬기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예배를 드리고, 온전히 주님께 헌신하는 삶의 자세를 기초로 하여 우리의 부모님을 섬기고 순종하고 공경할 때 그 효도는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시고, 우리 부모님께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성공은 했지만, 하나님을 떠난 자녀들이 주위에 많습니다.
한국에서 구역예배를 갔을 때 제일 힘들고, 응답이 더딘 기도 제목이 바로 신앙을 잃어버린 자녀에 대한 부모님들의 후회였습니다. 너무 오랜 시간 자녀들이 신앙을 잃어버려서, 그로인해 속을 끓는 부모님들을 너무 많이 보았습니다.
우리의 참된 효는 부모님 앞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참되게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위해 충성할 때, 그리고 그것이 기초가 되는 가운데 우리의 부모님께 순종을 하게 될 때, 이것이 하나님 앞에 이르는 효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우리의 부모님을 도우시고, 우리의 부모님께 평안을 주시고, 우리의 부모님도 우리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삶의 모습을 보고, 우리가 하나님의 일꾼으로 교회에서 건강하게 생활하는 모습을 통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울 것이 없도록 우리가 “주안에서” 잘 서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우리가 주안에 잘 서 있을 때, 우리 하나님은 우리만이 아니라, 우리의 부모님도 잘 감찰해 주시고, 우리가 챙기지 못하고 돕지 못하는 부분에서, 우리보다 더 많이 우리를 도우십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부모님을 돕고, 지키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의 부모님을 하나님이 도우시도록 우리가 먼저 바르게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화) 저희 장모님은 계속 동안교회에 출석을 하십니다. 동안교회는 출석성도가 6000명이 넘는 대형교회입니다. 사위가 선교사이고, 인도에서 개척교회를 하기에 늘 많이 기도해 주십니다. 그런데 가끔 장모님과 이야기를 들으면 장모님의 중심은 사위가 사역하는 인도의 델리한인장로교회가 아니라 늘 동안교회입니다. 동안교회 목사님이 늘 최고고 거기에서 일하는 부목사님들은 너무 너무 훌륭한 분들이라고 합니다. 멀리 인도에서 고생하는 사위와 딸 보다 동안교회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을 더 측은히 여기고, 더 많이 응원을 하고, 기도를 하십니다.
심지어는 동안교회에서 인도네시아에 파송한 한인교회 사역자가 있습니다. 제 학교 후배로, 같은 동안교회 사역자로도 한참 후배입니다. 그런데 장모님은 거기를 더 많이 기도하시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고생하는지 모른다고 이야기를 하시며, 그 교회를 위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이야기 하시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보면 외동 딸과 사위가 사역하는 델리한인장로교회가 최고가 되어야 하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속으로 생각을 합니다. “가족끼리 이러면 안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그 이유를 최근에 알게 되었습니다.
장모님은 가족 사랑도 중요했지만, 주안에서 가족 사랑을 하셨습니다.
동안 교회의 교인으로서, 동안 교회의 직분자로서 지금 섬기는 동안교회에 충성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고, 그 안에서 믿음의 뿌리를 건강하게 할 때, 인도에서 사역하는 딸과 사위의 교회가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동안교회에 다니면서, 가족들이 인도에 있다고 그 인도에 있는 델리한인장로교회를 위해서만 기도하면, 지금 다니는 동안교회에서 덕스럽지 못하고, 온전치 못할게 아니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위와 딸이 선교사일지라도, 지금 다니는 교회 목사님과 교역자들과 교회 사역에 충실하게 참여할 때, 그것이 온전한 성도가 되는 것이고, 그럴 때 하나님이 더 큰 상급을 주시는게 아니겠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동안교회에 충성하십니다. 그러니 항상 은혜가 마르지 않으시고 충만하십니다.
저도 잘 이해가 안될 때는 아쉬워했지만, 그렇게 깊은 믿음을 가지고 계신 장모님이 동안교회에서 신앙으로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이기고 믿음이 충만하게 사시고, 교회에 덕스러운 모습으로 생활을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연민의 정으로 우리에게 대하시는 것이 아니라 분명하게 주안에 서서 우리를 대하시기에 하나님이 하나님의 방법으로 우리의 가족들을 돌보시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기에 지금 ‘이 자리에서 건강하게 주안에 서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가족들이 서로 사랑하는 것, 부모님께 효도하는 것, 인간적인 기준과 보상으로 하게 되면, 우리의 힘이 부치거나 어려움이 생기면 우리는 한계를 느낍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안에서 건강하게 서 있을 때, 그리고 그 가운데 더해지는 부모님을 향한 섬김, 가족을 위한 섬김이 되어질 때 우리는 그 범위가 우리를 넘어서 하나님의 영역이 되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책임지고 돌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안에 서게 되면 주님이 우리의 가정과 부모님과 자녀들을 책임져 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모님을 위해 송금하는 금액이 우리의 부모님을 절대 지키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분명하게 서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만남이 전제가 되어서, 우리의 부모님을 위해 기도하고, 섬기는 것이 될 때, 우리 부모님을 하나님이 만지시고 붙들게 하는 키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책임지는 것보다, 하나님이 책임지시니 더욱 풍성하게 채워주십니다.
그러기에 온 가족이 주안에 잘 서는 일에 힘을 써야 합니다.
우리의 하나님이 우리가 주안에서 서는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며, “그래 저들의 수고를 내가 기억하니, 저들의 부모들을 견고하게 돕고, 내가 돕는다” 라는 마음이 드시도록 우리가 분명하게 주안에 서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있는 이곳에서 주님 앞에 서 보십시오.
이곳 인도가 힘들고 어려운 곳이기에 이곳은 영적인 마일리지가 더 잘 쌓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인도에서 서로 돕고, 서로 봉사하고, 서로 위로하고, 모이기를 힘쓰고, 전도와 선교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힘쓸 때 하나님은 주안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기뻐하시며, 우리의 축복의 영역을 우리의 가족으로 확장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부모님을 참되게 축복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경험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믿음을 가지시고, 건강한 믿음을 가지신 부모님이라면, 우리들이 보내는 얼마의 송금한 돈 보다는 우리가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더 기뻐하시고 행복해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참된 효의 바탕과 근본”이 바로 “우리가 주안에서 견고히 서는 것, 하나님과 분명한 신뢰의 관계, 그 분의 인도하심을 분명히 받는 것”에 분명한 기초를 두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참되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님이라면, 우리의 자녀들이 먼저 하나님 앞에, 주안에 든든히 서는 것을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 에베소서 6:3에는 “이로써 내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 없이 잘 되는 것.....
자기의 힘만으로 잘 되는 것....
그것보다는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사랑을 경험하며, 하나님 안에서, 주안에서 살아가며,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가정으로 살아가며, 확실한 “주안에서” 살아가며, 부모님을 순종하고, 공경하는 삶을 하나님은 축복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만든 축복의 자리를 위해 사시겠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이 복 주시는 그 축복의 자리를 우리의 부모님과 함께 누리며
영원한 천국에서 부끄러움이 없이 사는 삶이 되고 싶어 하십니까?
이 분명한 주님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그리스도인의 참된 부모 섬김을 기억하며 실천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우리에게 참된 부모님을 섬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성경을 통해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적인 기준, 물질적인 보상을 우선으로 생각할 때가 많았고, 일시적인 기쁨을 우선시 하는 경우가 많았었습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를 보지 못하고 살았을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여, 주안에 서서, 주님이 우리의 부모님까지도 축복해 주시는 그 은혜를 경험하기 원하오니, 우리가 먼저 주안에 바로 설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지금 이 자리가 주님을 위한 최선의 자리이오니, 지금 이 자리에서 주님께 충성하며, 주님을 위해 날마다 한걸음씩 나아가는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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