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26일 시편 139:13-18,“나를 지으시고, 나를 잘 아시는 하나님
시편 139편에서는 저자인 다윗이 하나님에 대한 고백의 시가 나옵니다. 그 고백의 주요 내용은 “우리의 하나님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다”라고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감찰하다는 말은 ‘항상 지켜 보다’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CCTV를 통해 우리를 통제하기 위해서 감찰하는 것과는 다른 것입니다. 마치 엄마가 아기에게서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것과 같이, 항상 우리를 살피고, 지키기 위해서 보신다는 내용과 동일합니다.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시고, 우리의 인생에 기대가 많으셔서, 항상 우리의 인생을 지켜 보시고, 우리의 인생 가운데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나와 똑같은 사람이 다시 태어날 확률은 10의 20억 제곱분의 1이라고 합니다. 이 숫자를 쓰는데 걸리는 시간은 한 잠도 자지 않고 밤 낮 70년을 써야 하는 숫자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나’ 라는 존재는 온 인류 역사를 통해서 유일한 존재입니다. 그 유일한 역사를 가진 ‘한 사람의 모든 삶’에 대해서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관심이 많으시고, 우리가 두 번이 아니고, 한 번 밖에 살 수 없는 이 땅에서 정말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사람은 그러기 때문에 너무나 소중한 존재입니다.
(예) 어느 선생님의 반에 한 아이가 있었다. 이 아이는 시력이 나빠서 안경을 벗으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을 아는 친구들이 자주 놀립니다. 그런데 그 아이를 친구들이 건드리면 어린아이처럼 엉엉 우는 아이이고, 수업시간에는 멀쩡하게 딴소리를 하거나, 책상에 엎드려서 자고, 춥고 더우면 마음대로 집에 가는 아이, 숙제는 거의 해 오는 법이 없고, 남들이 한, 두 개 틀릴 때, 모조리 틀리는 아이였습니다.
어느 날 결석을 몇 일을 하게 되어 선생님이 가정 방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의 집을 가보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셨는데, 그 아이는 그 집의 7대 독자였습니다. 학교에서는 별 볼일 없고, 무시를 당하는 아이였지만, 집에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꿈이였습니다. 이 아이가 건강하게 지내는 것만으로도 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꿈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집에서는 너무나 소중한 아이입니다.
하나님도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너무 너무 소중하고 귀중한 존재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인정도 못 받고, 부족한게 많아도, 우리 하나님의 눈에는 우리가 그렇게 안보이시나 봅니다.
(반전)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우리의 삶에 중요하고, 힘든 순간에는 그렇게 와서 간절하게 메달리고, 주님을 붙들더니, 조금 나아지고 적응할만하니까, 본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지, 하나님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있는지, 하나님 앞에 제대로 나오지도 못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실 때마다 얼마나 속상하시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를 기대하시고, 우리를 위해 풍성한 사랑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계속해서 무한한 사랑을 공급해 주십니다.
우리의 것을 가져다가 바치고, 우리가 빌면서 우리에게 마음을 돌려달라고, 염치없지만 우리를 축복해 달라고 사실 우리가 간청해야 하는데, 주님은 자존심도 없으신 것 같이, 아까 7대 독자를 사랑하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마음과 같이, 무한정 우리를 사랑해 주십니다.
주님은 이러한 우리를 이 세상에 나오게 하실 때, 그냥 생리적인 반응으로 우연히 이 세상에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을 가지고 이 땅에 보내셨고, 이 땅에서 되어질 우리 각 개인의 인생 스토리가 분명하게 있으셨습니다.
오늘 시편저자인 다윗은 이것을 너무나 잘 알았습니다.
특별히 다윗이 “감찰하시는 하나님”으로 고백을 하면서 오늘의 시편 고백을 한 내용을 살펴 볼 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도 정욕이 물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붙잡지 않았을 때, 그도 하나님을 보는 마음을 잃어버렸습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봐야 할 때 보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때 하나님께 온전히 나아가지 않으면, 그 자리를 다른 것들이 차지해 버립니다. 다윗은 그 자리에 정욕이 찾아왔고, 그로인해 “남의 부인인 밧세바”를 욕심으로 차지하는 정욕의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남의 부인, 그것도 자기에게 목숨을 걸고 충성하는 우리야라는 군인의 아내에게 마음을 빼앗깁니다. 이렇게 정욕이 우리의 눈을 가려버리면, 정해진 선도 없고, 지켜야 될 것도 잘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자리까지 갔었습니다.
그 밧베바의 남편을 죽여야 자신의 죄를 감출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왕이니 이를 덮기 위해서 다윗이 죽인 것처럼 하지 않고 죽게 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바셋바는 그럴듯하게 궁으로 들어와서 합당하지 않는 무서운 비밀을 가진 사람들인데, 평탄한 것 같이 사람들을 속였습니다. 그리고 행복이고, 축복인 것처럼 보이게 이 불편한 진리가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아기를 가졌습니다. 남들의 눈을 다 속였다고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귀중한 것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 그들의 삶에 개입하십니다. 갑자기 아기가 죽습니다. 비통해하며, 절망에 빠질 때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준비시켜서 다윗이 행한 모든 일을 나단 선지자의 입술을 통해 다 꾸짖으셨습니다.
다윗은 너무 너무 놀랐습니다.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했던 일들이였는데, 하나님이 다 알고 계셨기에, 그는 깊은 심정 가운데 ‘하나님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지켜보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분은 어디서나, 언제든지, 무엇이든지 다 지켜보시고 계신 분이라는 것을 다윗의 삶 가운데 분명하게 경험하게 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시편 139:1-10을 보면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주께서 나의 앞뒤를 둘러싸시고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다윗에게는 감춰어야 할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는 것이 너무나 아프고 힘들었지만, 그로인해 다윗은 인생에서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의 남은 생애를 하나님을 위해서 온전히 쓸 수 있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치부가 드러나지 않을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쉽게 쉽게 생각하며, 하나님 앞에 소홀히 한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그러다가 점점 하나님과의 교제가 막히고 서먹해지면서, 회복하기 어려운 깊은 자리까지 내려가다가 후회를 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를 하시면서, 우리를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막아 놓으려고, 우리를 노예나 포로로 삼으시려고 우리를 감찰하시거나, 우리에게 윽박을 지르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 실 때, 가장 최선의 계획을 가지고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가운데 가장 최고의 계획을 우리를 위해 세워 놓으셨는데, 우리가 그 최고의 하나님의 계획을 놓치고 살아가기에 그것을 너무 너무 안타까워하십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잘 모르고, 자신이 세운 목표를 쫓는 삶을 삽니다.
엄밀히 말하면 자신이 세운 것도 아닙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목표를 좋다고 생각하고, 그냥 따릅니다. 소위 “성공신화”에 기반을 두고 그것을 위한 과정들을 하나의 목표로 만들고, 거기에 맞춰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기에 따라가지 못해서 너무 너무 힘들어 합니다.
하나님이 계획하신 자신의 인생이 있는데, 그것을 바로 알고, 그것을 위해서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하도록 하나님이 창조하셨는데, 그것을 놓칩니다.
그리고 더 안타까운 것은 내 인생 목표 따라잡기도 너무나 힘든데, 내 주변에서 자꾸 발목을 잡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데,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별히 어린 아이를 양육하는 애기엄마들은 너무나 힘듭니다. 아기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잠시도 눈을 떼면 안됩니다. 아기에게 눈을 떼었을 때 이루어지는 상황을 잘 알기에 그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잠시 내 인생을 양보해야 될 때가 있습니다. 참 힘듭니다.
특별히 꿈이 많았고, 실력이 많고, 능력이 많고, 사회 경험이 많았던 애기 엄마들의 경우에는 이로 인한 우울증이 심합니다. “나도 내 인생이 있는데, 아이 때문에 내 인생을 접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요즘 청년들에 대해서 다시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니, 청년들이 인생의 나이에서 제일 힘들 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청소년기에는 그래도 부모님의 보호 아래 있지만, 청년이 되면, 이제는 뭐든지 스스로 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혼자입니다. 나중에 가정을 가지면, 그래도 그 가족의 힘으로 살아가는데, 청년 때는 말 그대로 혼자입니다. 많은 꿈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도전하지만, 사회의 첫 문턱이 너무나 높습니다. 수 많은 전쟁터를 경험한 기성세대들이 이 청년들의 꿈을 잘 펼치고 살아가도록 그렇게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습니다.
청년들이 가장 힘든 것은 “자신의 삶인데, 자신이 주인공인데, 자신이 없습니다” 나를 위한 인생이 아니라 주변에서 쏟아 붙는 일들, 부탁 받은 일들, 그리고 해도 티도 안 나는 일, 열심히 했는데, 나도 다 옛날에 그렇게 했어...열심히 일은 했는데, 정작 회사에서는 소모품처럼 대하고 언제든지 바꾸어 버릴 때, 내 존재감이 없어질 때 겪는 그 아픔이 얼마나 큽니까?
우리 애기 엄마들과 청년들만 힘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가 때로는 이 힘든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해서 인생에 대해 회의감을 가지기도 하고, 좌절감도 가지고, 자신의 인생을 비관할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은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속상합니다. 내 인생이 왜 이렇게 초라한가? 나는 이렇게 살다가 그냥 지나가는가?
그런데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시편 139편을 보면 우리가 얼마나 공들여서, 귀하게 이 땅에 왔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시 139:10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라고 합니다. 나는 유전자 결합으로 생물학적 반응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나의 분명한 출처는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를 미리 계획해서 이 땅에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시 139편 11절을 보면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 라고 합니다. 나를 지으신 그 놀라운 솜씨, 그리고 나의 인생에 베풀어 놓으신 하나님의 그 독특하고, 특별한 삶의 스토리는 너무 너무 귀하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고,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나를 위한 하나님의 삶”이 특별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때로는 사람들은 나의 삶에 너무 무관심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심을 받기 위해서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합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으니까, 그래서 성공신화를 택하는 것입니다. 성공신화를 가지면 사람들이 알아봐 주니까....
그런데 그 ‘성공신화 따라 하기’도 엄밀히 말하면 내 인생이 아닙니다.
나만의 특별한 하나님의 계획과 설계가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발견하고, 이것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우리 인생에 가장 행복한 삶을 살게 되는데, 이것을 놓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우리 인간의 숫자가 너무 많고, 지역과 문화의 스펙트럼이 너무 넗으니까, 바쁘고 힘드시니까, 그럴 듯하게 대충 처리해 놓으신 인생이 결코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창조하시고, 계획하신 인생의 계획은 너무 너무 멋진 계획이십니다.
시편 139:16-18에는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하나님이여 주의 생각이 내게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그 수가 어찌 그리 많은지요. 내가 세려고 할지라도 그 수가 모래보다 많도소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를 위한 계획과 생각, 내가 잘 되기를 바라시고, 내가 행복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그 생각과 계획이 너무 너무나 많고, 셀 수 없다..라는 표현으로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잘못된 길로 가지 말고, 나를 위해 가장 최고의 길을 예비해 놓으신 주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그 분 아래에서, 그 분과 교제하며, 그 분이 인도해 주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설계하고, 나도 제대로 가지 못할 그 길을 걷다가 지치지 말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길을 가야 합니다. 그 하나님의 계획 속에 살아갈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을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가진 자원의 한계만 보고, 나를 위해 놀라운 계획을 하실 하나님을 제한해서는 안됩니다.
이전의 실패의 경험으로, 나를 제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도우시면, 나의 부족도 하나님의 중요한 도구로 사용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붙들려 살 때 우리는 우리 인생의 가장 최고의 기쁨을 경험하며 살 수 있습니다.
내가 경험하고, 내가 계획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붙드시는 삶이 될 때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 “아! 하나님이 그래서 이렇게 내 인생에 셀 수 없는 많은 생각을 하셨구나!”를 생각하게 됩니다.
한계가 많은 우리의 삶과 자원에서 나온 계획에 따라 사는 삶이 아니라, 우리의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이미 우리의 삶의 계획들을 셀 수 없이 많이 가지고, 우리와 교제하며, 이 땅에서 기쁨으로 살기 원하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우리가 반드시 놓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외형적인 축복의 삶도 중요합니다. 내가 기도한 그 몇 가지가 응답이 되었다고 하는데만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그 외형적인 축복의 삶보다는 나를 향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온전한 계획이 이루어져서, 나를 향한 그분의 계획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 한 번 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을 왜 남이 정해준 성공신화에 맞춰살고, 그 목표가 너무 높아서 도달하지 못할 좌절감으로 숨막히게 살아갑니까?
하나님께 온전히 한 번 맡겨 보시고 살아 보시기 바랍니다.
사업을 해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면서 사업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사업과 프로젝트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한 일을 하실지를 기대하며 일을 바라보십시오..
오늘 내가 공부하는 이것이 어떠한 열매를 맺어서, 나의 미래의 삶에 하나님의 역사를 이룰지를 꿈꾸며 학교 공부를 해 보십시오...
나의 환경이 이것저것 제한되어 있어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삶을 산다고 하시는 분들도, 하나님께 전적으로 나와 보십시오. 내 인생을 그 분이 온전히 운행하시도록 나의 모든 부분을 그 분 앞에 제설정해 보십시오.
그럴 때 우리의 인생은 우리가 생각해 보지도 못하고, 꿈도 꿔보지 못한 놀라운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만큼 우리의 인생이 소중하다고, 그 만큼 우리를 지으실 때, 우리를 향한 쉘 수 없는 많은 계획을 가지셨다고 하신 주님 앞에 나와 보시기 바랍니다.
한 번 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인데, 아직도 어디엔가 좋은 인생 매뉴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찾아다니는 일에 그만 메달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을 위해 그 누구보다도, 우리 자신보다도 더 많이 고민하시고, 쉘 수 없을 만큼 풍성한 계획을 가지신 주님께 온전히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시간, 물질, 재능, 우리의 가정, 회사, 사업, 우리의 모든 것들을 내가 계획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설계하신 그 계획대로 살도록 그 분 앞에 한 번 나와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보다 크신 하나님이 이루실 하나님의 특별한 방법과 역사들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생각을 뛰어 넘어서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날 때부터 우리를 지켜보신 그 분이, 나를 감찰하시는 그 분이 가지고 계신 그 계획을 맛보며 살아가시는 우리가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나를 너무나 잘 아시는 하나님, 나를 정확히 아시는 하나님, 그 주님이 예비하신 나를 위한 그 셀 수 없는 풍성한 계획에 우리를 온전히 맡겨 드립니다. 나의 분명한 소유가 주님께 있음을 기억하며, 주님께 우리의 삶을 온전히 드리는 시간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 우리를 주님의 원래 프로젝트에 온전히 움직여지는 인생이 되게 하시고, 세상의 성공신화를 쫓다가 지치는 인생이 아닌 하나님이 붙드시는 인생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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