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년 4월 19일 마태복음 11:28-30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위로하시는 예수님”

      날짜 : 2015. 09. 10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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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419일 마태복음 11:28-30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위로하시는 예수님

         

        인도에서 살다보면 여러 가지 속상한 일이 많이 생기게 됩니다. , 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 전체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맘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집에 정전이 되어서 복구가 안 되어서 냉장고나 냉동고의 음식을 모두 버리는 일입니다. 집에 항상 거주하면 이것을 점검하겠지만, 어디 여행을 갔다가 온다든지, 아니면 비자 관계로 오래 집을 비우게 되면, 이것을 확인하지 못하게 되고, 그러다보면 냉장고나 냉동고는 치명타가 되어서, 모든 음식물들이 썩어 버립니다. 그러면 그 음식이 아까운 것도 있지만, 그 썩은 냄새를 지우기가 쉽지 않아서 무척 고생을 합니다.

        인도 사람들 이야기인데, 집에 정해진 전기 사용 용량이 있는데 그 용량을 초과하는 것이 자주 반복이 되면 어느 부분에 손실이 와서, 어느 순간에 이럴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면 한정된 전기 용량을 잘 맞춰서 사용해야 되는데, 방마다 온수를 위해 기저를 다 틀어 놓고, 방마다 겨울에 춥다고 히터를 다 틀어 놓고, 전자렌지를 사용하면서, 순간 온도기로 커피 물을 올리든지, 커피 메이커를 사용하거나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면, 동시에 많은 전기를 사용하면, 이렇게 전체 전원이 차단기를 통해서 내려간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생각 없이 전기를 써서 이런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인도는 전기 사용에 있어서도 좀 더 지혜가 필요합니다. 꽤 비싼 임대료를 주고 사시는 분의 가정에서 당한 일들이라 우리 모두에게는 남의 일 같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인도에 오니 또 안 쓰던 기계를 사용하게 되는데, UPS를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처음에 인도에 왔을 때에는 모든 전디 스위치는 다 여기를 통해서 써야 되는 줄 알았는데, 교회 프로젝트 같이 많은 전력이 한 번에 사용되는 기계들은 이 UPS에 사용하면, UPS 퓨즈가 터져 버립니다. 이유는 바로 UPS 용량이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이야기 해 드린 내용에서 공통으로 생각이 되는 한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과부하라는 것입니다. 원래 과부하 (過負荷)라는 단어는 일을 너무 많이 맡은 상태를 지칭하는 말인데, 이것이 전기에 사용되어 전기 과부하라는 말뜻으로 사용이 되어지면 전기 용량초과를 의미합니다.

        가령 100A까지 견딜 수 있는 전선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전기모터나 히터의 용량이 150A라고 한다면, 그럼 50A만큼 용량이 초과 하였으니 과부하라고 말합니다. 과부하가 되면 전선에 열이 발생하여 전선을 감싸고 있는 비닐 껍질인 피복이 견딜 수 없어 결국 화재로 이어 집니다.

        그래서 과부하 차단기를 설치하여 용량이 초과되면 차단기가 이 전류를 감자하여 차단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과부하가 걸릴 수 있습니다. 건강관리를 하지 않고 지내면 건강에 과부하가 걸립니다. 사람 관계에도 너무나 많은 사람을 만나든지, 부담스러운 만남들이 많아지면 과부하가 생깁니다. 최근에는 SNS 과부하가 걸리신 분들이 많습니다. 상당히 많은 시간을 페이스 북이나 카카오톡으로 보내고, 거기에 의존합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너무 무리수를 둔다든지, 위험요소를 생각하지 않고 사업을 하다가 과부하에 걸리신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삶의 여러 곳에서 우리는 많은 과부하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무거워하고 버거워합니다. 지금 여러분 자신이 너무 지쳐 있고, 마음이 어렵고, 속상한 일이 계시다면, 여러분의 어딘가에는 과부하가 걸리지 않았는지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조금 아쉬운 것은 과부하를 걸렸으면 그 원인을 먼저 잘 찾아서 고치든지, 대비를 해야 하는데, 교회를 다니시는 분들은 자기점검을 하기 보다는 모든 책임을 주님께 떠 맡기는 성향이 있습니다. 무조건 책임을 다 하나님께 둡니다. 물론 주님이 다 알아서 조정해 주시고, 위로해 주시지만, 간혹 우리의 잘못인데, 무턱대고 하나님께 핑계와 책임을 돌리고 하나님께 다 뒤집어 씌우는 모습을 적지 않게 봅니다.

        저희 아파트에도 겨울에 오히려 전기가 더 많이 정전이 됩니다. 한국도 여름철 냉방기 사용량보다, 겨울철 히터기의 무분별한 가동으로 인해 겨울에 전기가 많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도도 점점 살기가 좋아지니까 추워지면 아파트 사람들이 히터를 많이 사용합니다. 여러 집들이 히터기를 과다하게 사용하니 전체 정전이 잦아지고, 저희 집에 자꾸 전기가 나가서 관리사무소에 가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인도의 한계야...”라고 하면서 무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파트 전기 기술자가 가정에서 정전이 잘 되지 않게 사용하는 법을 알려 주었습니다. 아까 말씀 하신대로, 너무 꺼번에 많이 전기를 사용하지 말게 하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잘 주지하고 생각을 하면서 전기를 사용하고, 가족들에게 알려주고, 사용을 했더니 요즘에는 겨울이나 여름에도 무리가 없이 잘 사용이 됩니다.

        한 동안은 집에 곰팡이가 많이나서, 이것도 인도 집이 문제야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저희 앞집에 계시는 인도 분의 집에는 곰팡이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 집의 라이프 스타일을 보니 항상 문을 열고 환기를 했습니다. 우리는 모기 들어 올까봐 환기도 안했고, 샤워나 음식을 하고 나서도 환기를 잘 안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생각을 했습니다. “집이 문제가 아니고 내가 문제구나..!” 따뜻한 습기가 집안 곳곳으로 흩어지고, 환기를 안하니, 그것이 먼지와 합쳐져서 곰팡이가 나는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고, 가족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샤워 후에는 꼭 환기를 하고, 음식을 한 뒤에도 환기를 하고, 정기적으로 공기가 고인 곳은 환기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곰팡이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내 삶이 문제이고, 내 방법이 잘못되어 문제가 생긴 것인데 내 잘못은 생각하지 못하고, 주변 탓을 할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사실 이런 부분이 많습니다. 이런 과부하가 발생하는 지점을 잘 파악하고, 주의를 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생각하지 않고, 나타난 결과에 따라서만, 다 하나님께로 가져와서 힘들고, 어렵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많은 문제들의 대부분이 사실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들의 욕심, 우리들의 잘못된 판단, 우리들의 어리석음으로 올 때가 많은데,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살펴보지 않고 뭐든지 하나님께 책임을 둡니다.

         

        구약성경 등장하는 인물 중에 사울이라는 인물은 이 과부하가 걸린 사람으로 상징되어도 될 만한 사람입니다. 그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습니다. 좋은 타이틀을 가지고, 잘 누리며 살 수 있었던, 좋은 기회를 가진 사람이였으나, 그의 삶을 성경을 통해서 보면 과부하에 걸립니다.

        나라를 통치하는데, 법도 없고, 선례도 없어서 처음에는 뭐가 뭔지 몰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전쟁에도 승리하고, 백성을 다스리는게 뭔지를 조금씩 알게 되면서, 자꾸 욕심이 생깁니다. “더 좋은 왕이 되고 싶었는데....”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욕심이 커지니까 과부하에 걸리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다윗이 등장하여 이스라엘의 모든 사랑을 한 몸에 받으니까, 사울에게 점점 과부하가 걸리기 시작합니다. “모든 백성의 사랑은 내가 다 받아야 하는데...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그의 정치 인생은 다윗을 죽이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습니다.

        그런데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떠나게 되면, 일단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 자기가 생각하는데로 잘 안되는데, 자꾸 하나님이 계획하신 길을 걷지 않으니 사울이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정신은 사나워지고,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성경은 심지어 사울이 악령에 지배를 받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무엘상 16:14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자기 스스로, 자기의 문제의 짐을 과도하게 만들어 나갑니다. 성경을 통해서 발견되는 사울의 이 과부하에 걸린 모습은 때로는 제사장의 역할을 했던 사무엘의 역할까지 자기가 스스로 할려고 합니다. 사무엘이 와서 제사장의 역할을 해 주어야 하는데, 사울이 변명을 만들고, 자기가 사무엘의 역할까지 해 버립니다.

        사무엘상 13:8,9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으나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아니하매 백성이 사울에게서 흩어지는지라.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무엘상 13:12을 보면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사울이 사무엘 앞에서 부득이하여라고 표현을 한 것은 보면, 정당하거나, 당연한 일은 분명히 아니였습니다. 이렇게 자꾸 무리수를 둡니다.

        언젠가 말씀 드린 대로, 전쟁에 나가 목숨을 걸고 지쳐 있는 병사들에게 금식령을 선포해서 제대로 음식도 못 먹게 하고, 거의 배가 고파 죽게 될 병사들이 여호와께서 금하신 음식까지 먹게 되는 무리수가 생깁니다.

        자기에게 목숨 걸고 나가서 적장 골리앗을 이기고 오고, 수 많은 전투에서도 승리하고 돌아오는 다윗을 틈만 나면 죽여 버리려고 합니다. 창을 다윗의 바로 앞에서 두 번이나 던지지 않나, 다윗을 잡으로려고 군사 3,000명을 풀어서 다윗을 추격하는 일을 합니다. 그렇게 많은 군대를 소집하고 아무것도 없는 다윗을 잡으려고 해도, 두 번이나 사울이 오히려 다윗에게 죽을 뻔한 위기를 당합니다.

        사울의 삶을 보면 왕으로써 누려야 하고, 보장 받는 삶을 살 수 있는, 그의 인생에 과부하가 단단히 걸립니다.

        사무엘상 28장을 보면 저는 사울이 얼마나 많은 무거운 짐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울의 주변에는 계속 블레셋과 전쟁이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전쟁이 나면 항상 제사장을 통해서 하나님께 묻고,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이 역할을 했던 사무엘이 죽습니다. 사울은 이제 제사장 사무엘도 없이 전쟁 앞에 왕으로 놓여 있습니다.

        사무엘 상 28:3 “사무엘이 죽었으므로 온 이스라엘이 그를 두고 슬피 울며 그의 고향 라마에 장사하였고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울이 얼마나 짐이 무거웠던지를 삼상 28:6을 통해서 볼 수 있었는데요..“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라고 합니다.

        오죽하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사울이 하나님이 금하신 무당을 찾아 갔을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가 가진 무거운 짐을 하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해결했어야 하는데, 사울은 하나님께로 오지 않고, 점점 커져가는 짐을 가지고, 이리저리 자기 힘으로 해결하기 위해 돌아다니다가, 무당 앞에까지 가서 서 있는 지치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 그렇게 사울의 인생의 짐은 무거울까? 남이 짐을 지여 준 것도 아닌데, 성경을 통해서 보게된 사울의 짐은 대부분이 스스로 만든 것이였습니다. 스스로 만든 그 무거운 짐에 눌려서 이것도 저것도 못하는 사울의 인생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적용) 사울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고,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해 줍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에 과부하가 걸려서 사울처럼 갈 길을 잃어서, 가야 할 곳을 가지 않고, 가지 말아야 할 곳에서 주저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사울이 지친 몸과 마음으로 무당 앞에 서 있었다면, 오늘 우리는 지친 우리의 몸과 마음으로 어디 앞에 서 있습니까?

        앞에도 서보기도 해보고, 권력 앞에 서 보기도 해 보고, 좋은 집이나 앞에 서보기도 했는데, 왠지 우리도 사울처럼 점점 더 미궁에 빠지거나, 짐이 무거워지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발버둥도 쳐보고, 몸부림도 쳐 보지만, 짐이 더 무거워지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해 보지 않으셨습니까?

        우리는 과부하에 걸린 우리의 삶을 다시 한 번 잘 점검해야 합니다.

        앞전에 말씀 드린대로,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사용하는 것이 바로 차단기라는 것이였습니다. 용량을 계산해서, 용량을 초과하면 저절로 전기를 중단시켜서 더 큰 사고를 막아 주는 것이 바로 차단기입니다.

        이를 적용해서 말씀 드리면 첫째 우리의 삶의 용량들을 잘 계산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 너무 많은 무리수를 두거나, 감당하지 못할 일들을 잘 정리해야 합니다.

        목적 없는 일들이나, 의미 없는 일들, 의도하지 않게 방치되어진 나의 삶을 먼저 잘 정리할 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신앙인들은 6:33에 나온 것처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을 쫓아서, 우리의 우선순위를 주님께 먼저 드리는 삶으로 관리를 해야 합니다. 시간이 나면 주님께 나아가는게 아니라, 주님께 나아가기 위해 시간을 관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참된 쉼을 주시고 우리를 온전히 쉬게 하실 주님 앞에 온전히 나아가야 주님으로부터 얻는 참된 평안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뭔가 새로운 일이 생겼는데, 그것이 주님과의 교제를 하는데 걸림돌이 되거나, 하나님과의 교제를 막는 일이 된다면, 그것은 미리 계산을 해서 정리를 해 놓아야 합니다. 주님과의 교제에 분명히 지장이 생길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서 주님을 놓치면 영적인 과부하가 시작이 될 것입니다. 정말 간절한 마음으로 노력하고, 어떻게 해서든 상황 속에서 주님을 만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너무 쉽게 주님과 교제하는 것을 미루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일입니다.

        유럽 교회들은 주일날 예배가 끝나면 같이 점심 먹고, 교제하는 일들이 많이 사라져간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주일날 각 축구 클럽에서 모임이 있어서 자녀들이 가서 경기하는 것 응원해 주고, 차로 데려다 주어야 하기에, 주일날 그 모임에 가기 위해서 교회에서 같이 식사를 하고, 교제를 하는게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작은 것이지만, 교회에서 교제가 사라지고, 유럽 교회들이 문을 닫는 원인 중에 하나가 되었습니다.

        주님이나 교회가 가진 무슨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삶이 스스로 영적인 과부하가 걸리도록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것 하나씩 둘씩 다 만들어 놓고, 무거워서 감당하지 못하고, 주님께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억지입니다. 그런데 간혹 이러한 분들을 보게 됩니다. 먼저 자신의 삶을 잘 돌아보고, 정리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둘째는 차단기에 간혹 먼지가 쌓이거나 차단기에 나사가 풀어지면 차단기의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어서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간혹 교회를 다니는 것이 우리의 모든 것을 막고, 자유를 주지 않는다고 생각하면서 이 차단기와 같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교회에 다니면 이것도 제한이 되고, 저것도 제한이 되고....그래서 교회에 가기 싫다고 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예를 들면 술과 담배....“교회에 가면 술도 안되고, 담배도 안되, 나쁜짓도 안되....” 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술과 담배의 경우에는 교회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도 있지만, 일반인들도 술과 담배가 안좋으니 안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교육이 전반적으로 부족한 인도도 텔레비전을 보면 꼭 담배피는 장면이 나오면, “담배는 몸이 해롭습니다. 그리고 그냥 공손이 이야기 하는게 아니고, 이거 계속하면 죽습니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까지 세상도 이야기를 하고 안 좋다고 하는 것을 스스로 즐기고, 좋아하고, 그리고 핑게는 교회에다가 이야기를 합니다. “교회가면 답답하다고 합니다. 자꾸 차단기가 내려오는 것 같다고 숨이 막힌다고 합니다.

        그래서 슬쩍 차단기를 제거해 보려고 합니다. 그런데 살짝 차단기를 제거했더니, 그 위험이 어느 한 개인에게만이 아니라 전체에게까지 이어집니다. 최근에 한국에서 물의를 일으킨 사람들 가운데 교회의 지도자들이 자꾸 거론이 됩니다. 그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교회의 차단기를 살짝 조정해 버렸습니다. 죄를 짓고, 타락을 해도,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지 않아도 차단기가 내려 오지 않게 차단기를 조작했습니다.

        그리고 사울과 같이 주님으로부터 치유를 받지 못하고, 주님이 주시는 기회를 온전히 살리지 못하고, 결국 용량이 초과되어 전선이 타 들어가서 화재로 이어지듯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과 물의를 일으킨 사람으로, 그리고 교회의 이름을 부끄럽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사람으로 안타가운 삶을 살게 되어집니다.

        우리는 우리의 차단기에 죄의 먼지나, 안아함으로 인해 나사가 풀리지 않았는지, 나의 차단기가 온전히 잘 작동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큐티이고, 성경공부이고, 봉사이고, 신앙인의 교제이, 우리의 헌금생활입니다. 그 어느 것을 소홀히 하면,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서서히 용량이 초과되어 과부하에 걸리게 됩니다.

        우리가 왜 신앙생활을 교회 안에서 같이 해야 하냐?”고 물으신다면, 우리 스스로는 늘 죄의 본성에 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혼자 있으면 잘 할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혼자 있을 때 더 깊게 과부하에 걸리게 됩니다. 성경에서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대부분 혼자 있을 때 심각한 범죄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서로가 권면해 주고, 서로 점검을 해 줄 때 우리의 영적인 차단기가 온전히 작동이 됩니다. 반복되는 일상이라, 우리는 우리의 삶에 죄의 먼지가 많이 끼어 있는지, 지금 영적인 나사가 풀려 있는지를 잘 모릅니다. 우리는 자신을 너무 낙관적으로 보고, 잘 해낼 것으로 봅니다. 그런데 오히려 내 가까이에서 지켜보는 이들이 우리의 차단기가 잘 작동이 되는지를 나 보다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사울이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 가다가 결국 무너졌습니다.

        무거운 짐이 있는 그 자신을 감추고 싶었습니다.

        자신이 밤잠을 설치고, 악령에 지배를 받을 정도로 심각했지만, 남들에게는 짐이 없는 모습으로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남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고, 갈팡질팡하는 삶의 모습을 보여 주기가 싫었습니다. 그래서 문을 이중 삼중으로 꼭꼭 닫고 지냈습니다.

        결국 그는 자기의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가다가 그의 인생을 마감했습니다.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사람은 문제가 없는 사람 같아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가 그를 아직 잘 모르는 상태이다라고 했습니다. 문제가 없고, 짐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모두가 나만의 크고 무거운 짐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에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김구라라는 연예인이 자신의 부인으로 인해 진 빚이 17억이라는 이야기를 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김구라라는 사람은 거침없이 말도 하고, 욕도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우리가 모르는 큰 짐이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게 되는 짐들이 있음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 11:28에는 우리 주님께서 삶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우리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고, 그리고 그러한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우리의 짐이 그렇게 무거운지, 왜 그렇게 무거운 짐을 들고 낑낑 거리며 사느냐고 물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짐을 지면 실패할 거라고, 어떻게 해야 짐을 잘 질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 해 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냥다 오라고 하시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무거운 짐을 지고 다니면서 지치고, 상한 그들에게 쉼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평생 그 짐으로 고민하고, 속 끓였던 그에게 인생에서 가장 무거웠던 그 짐을 풀고 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혼자 속 끓였던 그 짐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로 나아오면 마음에 쉼을 얻고, 주님이 주는 짐은 어렵고 힘든 짐이 아니라 쉽고 가벼운 짐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인생에 큰 전환점이 일어날 것 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사실 복음입니다.

        우리가 무겁게 지고 다닌 그 짐, 우리 인생에 과부하가 걸리게 했던 그 짐이 아니라, 우리 주님이 그 무거운 짐을 쉽고, 가볍게 만들어 주시는 그 짐을 우리가 지고 우리의 남은 인생을 기쁨으로 살아간다는 것,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마태복음 11:28-30의 이 말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라고 하신 이 기쁜 소식을 우리가 듣고, 그 무거운 짐을 주님께 드리고, 자유함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지고 있는 짐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 고통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너무나 잘 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를 위해서 예비하신 그 사랑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혹시 어디에서 과부하가 걸리셨습니까?

        어디쯤에서 그 과부하가 시작이 되었습니까?

        그 과부하로 인해 차단기가 내려져 있지는 않으십니까?

        내려진 차단기는 다시 올려져야 전원이 공급이 됩니다.

        그 차단기를 내려 놓은지 오래 되지 않으셨습니까?

        우리 인생 가운데 말 못할 우리의 짐들...

        이제 더 이상 사울처럼, 자기 힘으로 이리저리 질질 끌고 다니지 마시기 바랍니다.

        남에게 보이기 창피해서 꼭꼭 숨겨 놓은 짐 보따리 다 주님 앞에 가지고 나와서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 관계의 문제, 나만 알고 있는 그 은밀한 문제까지도 주님께 그냥 그대로 가지고 오십시오. 주님 앞에 부끄러워서 주저 될지라도, 주님은 우리의 짐 자체가 왜 그랬냐고 묻지 않으십니다.

        이러한 주님께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사울이 이 주님을 뒤로하고 무당을 찾아갔던 그 모습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왕으로 언제든 자신이 길이 될 수 있었고, 자신이 길을 만들 수 있었지만, 그 길이 생명의 길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는 길이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참된 길을 걷도록 하는 주님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 영적인 원리를 뒤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울처럼 헤 볼 것 다 해 보고도 제 길을 못 찾는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라, 우리는 그 때 그 때 넘어지고, 때로는 좀 창피하고, 속상해도, 주님 앞에 그 때 그 때마다 가지고 나아오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이 나의 짐을 가볍게 해 주시고, 나에게 참된 쉼을 주시는 그 은혜를 꼭 맛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는 가운데 나의 삶의 과부하가 걸린 곳을 우리 주님께서 하나씩, 점검해 주실 것입니다. 내려진 차단기도 올려 주실 것이고, 풀려진 나사도 조여 주시고, 차단기에 붙은 먼지도 제거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이것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자신이 있으시기에 우리에게 무거운 짐을 혼자 지고 가지 말고, 주님께로 나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짐을 주님께 우리 모두가 맡기며, 우리의 짐을 대신 지시고, 가벼운 짐으로 바꾸어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주님의 사랑을 맛보게 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 모두가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기도) 사랑하는 주님 우리의 삶에 많은 과부하가 걸린 것을 주님은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우리의 욕심과 우리의 어리석음으로 우리의 짐이 너무나 커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입을 살아서, 잘못은 우리가 했는데 책임은 주님께서 져 주시라고 외쳤던 우리안에 어리석은 모습을 고백합니다. 사랑하는 주님..온전하게 우리의 짐을 져 주시고, 쉽고 가볍게 해 주시는 주님께 우리의 인생에서 힘든 짐을 질 때마다 주님 앞에 나아오기 원합니다. 주님 우리에게 늘 역사하여 주시옵소서...우리를 늘 붙들어 주시옵소서....우리를 사랑하시고 도우시며, 우리의 짐을 가볍게 해 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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