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요11:25-25, 병에서 나은 것과 죽음에서 살아난 것

      날짜 : 2015. 04. 17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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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46, 요한복음 11:24-25, 병에서 나은 것과 죽음에서 살아난

         

        예루살렘 부근의 베다니 마을에 세 남매가 살고 있었습니다. 마르다, 마리아, 그리고 남자형제인 나사로...., 그런데 이 나사로를 소개할 때 어떤 병자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 여자 형제들이 이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서 예수님께 치유를 요청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나사로는 아직 젊은 나이고, 젊은 나이에 병이 들어서 생사를 오고가는 위기에 놓인 것을 보게 될 때, 그 가족의 아품은 얼마나 크겠습니까?

        11:3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라고 간청을 합니다.

        사람을 통해 이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그런데 좀 이상하게 행동을 하십니다. 덤덤하게 그저 남의 일처럼 받아들이십니다. 11:4을 보면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래도 사람이 죽어간다는데, 빨리 가셔서 뭔가를 행하셔야 했었는데, 예수님은 지금 머물던 곳에서 계속 하던 일을 하십니다. 이를 본 제자들은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지금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인데, 지금 빨리 가도 될 듯 말 듯 한데, 그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르십니다.

        11:6 “나사로가 병들었다 함을 들으시고 그 계시던 곳에 이틀을 더 유하시고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사로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 11:11을 보면 나사로가 이미 죽었음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죽은 것을 아신 뒤에 그를 일으키러 가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또 이르시되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여기서 잠들었다고 표현하신 것은 죽은 것이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요 11:13 “예수는 그의 죽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4절에서 나사로가 잠든 것이 아니라 죽었다고 제자들에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밝히 이르시되 나사로가 죽었느니라라고 하십니다.

        갈수록 예수님이 이해가 안 됩니다. 죽기 전에 가셔야지, 왜 죽은 것을 이처럼 확인하고 가시려는지, 제자들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었습니다.

        (적용) 우리에게도 때로는 우리가 한계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리려는 시간을 주님이 넘겨 버리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쯤에서는 뭔가 일들이 일어나고, 기적은 아니더라도, 무슨 조짐이 있어야 하는데,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 기도대로 되지 않으니, 일은 더 엉망이 되어가고, 그나마 간절이 불렀던 주님의 인도하심은 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위기의 나사로의 죽음 앞에 예수님의 태도는 좀 이상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뭔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분명 예수님은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계셨다는 그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렇게 죽음을 확인 하신 것, 그리고, 이 가정은 예수님과 친분이 있는 가정이라는 사실등의 정황을 볼 때, 이렇게 여유를 가지시는 것은 분명한 연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되어집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나사로에게 도착해 보니 무덤에 있은지 나흘, 4이나 되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11:17 “예수께서 와서 보시니 나사로가 무덤에 있은 지 이미 나흘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곳에는 치유를 기다라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장례가 치루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하러 왔습니다. 이 조문객 사이로 예수님이 도착을 하십니다.

        마르다가 예수님이 오신다는 말에 뛰어나가서 그 동안 참아 왔던 말을 터트립니다. 11;21,22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했습니다.

        11:32에서 마리아도 같은 말을 합니다. “마리아가 예수 계신 곳에 가서 뵈옵고 그 발 앞에 엎드리어 이르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하더라 라고 했습니다.

        이 두 자매는 죽기 전에 예수님이 이곳에 계셨더면, 분명히 치유해 주실 줄로 믿었다고 고백을 합니다. 그들의 간절한 눈 빛을 보셨을 때 예수님의 마음은 긍휼의 마음으로 그들을 보셨습니다. 이 젊은 청년 나사로의 죽음, 그리고 그 여자 자매들의 울음, 그리고 조문객들의 울음....인간의 죽음에 대한 한계를 예수님이 보시면서 그들과 같이 우셨습니다. 11: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라고 하셨습니다.

        죽음 앞에 인간은 참 무기력합니다. 한참 인생을 살아야 할 나이에 갑작스런 죽음을 겪는다든지, 아니면, 뜻하지 않는 사고로 죽음을 당한다든지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나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특별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으면 그 충격은 너무나 큽니다.

        죽은 후 사흘, 이스라엘은 시체를 베라는 천으로 둘둘 감아 놓는데, 사흘이면 정말 그냥 사람도 그렇게 묶여 있으면, 밥도 못 먹고, , 소변도 못 가리고, 정말 너무 너무 힘들 것입니다. 그렇게 사흘이 지났으니, 우리의 판단으로는 살아난다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팠던 사람을 치료해서 고치는 것은 보았지만, 이렇게 확실하게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은 그 누구도 보지 못했습니다. 이제껏 수 많은 사람이 이 일을 시도해 보려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 일에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지만, 그 누구도 제대로 된 해결방법을 가진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지금 그 일을 행하시려고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일을 이루십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와 같이 나사로의 무덤에 가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를 하십니다. 11:41,42 “돌을 옮겨 놓으니 예수께서 눈을 들어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 하옵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시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셨습니다.

        그리고 큰 소리로 나사로를 불렀습니다. 11:43 “이 말씀을 하시고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이 이루어졌는데, 그 사흘을 죽었던 나사로가 일어났습니다.

        11:44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그 얼굴은 수건에 싸였더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 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지금 믿기지 않는 일이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제자들과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미 이렇게 하시기 전에 예수님은 몆번에 걸쳐서 우리에게 암시를 해 주셨습니다. 이 사실이 우리에게는 매우 중요한 적용점입니다.

        11:4에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11:23에는 마르다에게 다시 살아 날 것임을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그리고 요 11:25,26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이미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결과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우리 믿는 자들이게,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게, 그가 행하실 일들에 대해서 미리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와 같은 처지에 있던 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성령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실 승리의 시간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승리의 말씀은 병에서 나음을 입는 정도가 아니라, 그 누구도 할 수 없었던 죽음에서 살아나시는 일을 하십니다. 우리가 하다가 힘이 모자랄 때, 우리 대신에 좀 도와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가 전혀 할 수 없는 일, 꿈도 꿀 수 없는 일을 우리 주님은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주님의 자녀가 된 것에 감사를 하고, 우리가 그 주님이 계획하시는 일 가운데 우리의 인생이 살게 된다는 그 축복의 시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분은 우리 보다 좀 유명하신 분, 우리 보다 좀 더 능력이 있으신 그 정도가 아니라, 우리하고 그 존재 자체가 틀리신 분이십니다. 이번 나사로의 사건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 분의 계획가운데, 그분의 뜻 가운데 모든 것이 이루어 가도록 그 분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그 분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나의 뜻과 나의 생각으로 주님 보다 앞서 가서 안됩니다. 그 분의 시간을 기억하지 않고 내 시간에 주님을 맞추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내 시간은 분명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도 분명히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분의 생각과 시간 계획과 일 처리하시는 것을 신뢰하지 못하고, 믿지 못하고, 그 분이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레짐작으로 선수를 치고, 미리 다른 길을 생각하고, 미리 다른 방편을 생각하고,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정로를 가지 않고, 지름길 인줄 알고, 나아갑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과 생각으로 가장 좋은 길이라고 계산을 하고, 그 길을 갑니다. 때로는 그 길을 가기 위해 인생 전체를 다 쏟아 붓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가족들을 다 그 길로 끌고 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신이 만든 길이 가장 좋은 길이라고 확신을 하며, 그 길로 거침없이 가고,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위해 가장 귀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주신 하나님의 사랑의 길을 버리고, 나를 가장 최선의 길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길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29:11에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10:10에는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오늘 나사로와 같은 삶의 문제, 내 한계를 넘어서는 일 앞에서는 우리가 믿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한계를 넘어서,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 도우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경험하지 못합니다.

         

        여러분 만약에 마르다와 마리아가 생각했던 시간, 나사로가 죽기 전에 오셔서 치유를 해 주셨다면, 그 때 예수님에 대해서 가졌던 믿음과 지금처럼, 죽음 뒤에 살아나게 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비교해 본다면, 어떤 것이 더욱 큰 영향을 주겠습니까?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도 때로는 주님이 이렇게 우리의 믿음을 키우기 위해서, 좀 지체하시는 부분들,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인도해 주시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에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 모든 일의 시작과 끝을 아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가장 최선의 길을 인도해 주십니다.

         

        (예화) 어느 분이 너무 건강이 약해져서,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건강을 달라고....그런데 주님이 주신 음성은 집 앞에 자기 몸의 세배가 넘는 바위를 먼저 지정한 장소로 옮기라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지금 일어날 기운도 없었는데, 그렇게 엉뚱한 음성을 주시는 하나님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 음성에 순종하고자 그 일에 순종을 하고 진행을 했습니다. 그런데 바위는 끔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 종일, 열흘을, 그리고 몆 주를, 몆 달을 계속해서 움직여 보려고 했지만, 결코 움직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참다 참다 못해서 하나님께 따졌습니다. 건강을 구했는데, 건강도 주시지 않고, 쓸데없는, 알 수 없는, 하지도 못할 일을 주시고, 지금 결과도 하나도 없는 그 일을 가지고 하나님께 원망을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비록 그 바위돌은 하나도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그 바윗돌을 움직이기 위해 힘을 쓰면서, 땀을 흘리면서 만들어진 자신의 팔 근육을 보았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렇게 안 움직이던 돌을 옮기기 위해 애를 쓰다보니, 자신의 병은 어느새 없어 졌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러한 시간들이 많습니다.

        (예화2) 저는 대학교 2학년 때 선교사로 나가겠다고 서원을 했습니다. 선교지에서의 사역보다 선교사님들이 현장에서 오랫동안 잘 사역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도하심을 받고, 전공을 선교사님들을 돕는 선교행정을 전공했습니다. 대학 때부터 항상 선교지에 나간다는 생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첫 선교지로는 일본을 생각을 했습니다. 일본을 가면 소니가 전세계로 나갔듯이, 이 복음이 전세계에 나가겠구나, 신학교 학부 논문도 일본 기독교에 관련한 논문을 썼습니다. 일본에 선교사로 갈 줄 알았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가는 사람마다 일본에 대한 이야기, 일본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 했습니다. 그런데, 선교지로 나가려는 쯤에 제 마음속에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지금 니가 가려고 하는 것은 니 사역이지, 내 사역과는 다르다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처음에 낮설었습니다. 아니 일본에 대해서 바람 넣으실때는 언제구....그런데 주님이 마음에 주신 내용은 니가 정해 놓고 가는 선교가 아니라, 내가 필요한 곳으로, 내가 부를 때 가라는 음성이였습니다. 그 뒤에 기회가 있는대로 응답을 했습니다. 신대원 1학년 때는 아르헨티나, 동안교회에서는 다시 일본으로...그런데 정작 일본에 지원을 했더니, 일본에서 응답이 없었습니다. 캄보디아로 지원을 하고 한참을 준비했는데, 캄보디아에는 선교사님이 너무 많아서 안된다고 합니다. 4년을 준비하고 진짜 가려고 했는데, 또 아니였습니다.

        그러더니 동티모르로 부르심이 왔습니다. 동티모르는 신생 독립국이라 치안도 불안하고, 아이들 학교도 없고, 정말 어려운 곳이였습니다. 두려움이 있었지만, 순종했습니다. 그런데, 동티모르에 저희가 가기에는 여러 가지 상황이 맞지 않는다고 교회에서 일단 기다리라는 통보가 왔습니다. 아주 오지로 가서 사역하는 것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교회에서 갑자기 미국으로의 사역 요청이 와서 갑자기 미국에서의 사역에 대한 부름이 왔습니다. 전 선진국 안 좋아해서, 미국은 가기 싫었습니다. 오지를 가려다가, 선진국으로 가려니 그것도 참 이상했습니다. 그래도 순종이 필요하다면...이라는 마음으로 주권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미국도 거의 결정이 되다 싶었는데, 뭐가 딱 맞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2년을 더 기다렸습니다. 저보다 늦게 헌신하고, 이미 오래전에 간 친구들의 비아냥도 있었습니다. 제 사정도 모르고 계속 한국에 있냐고 간혹 약을 올리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는데, 그것도 참 쉽게 수용하기 힘든게, 종로 5가 총회 본부 세계선교부였습니다. 선교지가 어디냐고 물을 때, 종로 5가로가 대답하는게 무척 힘들었습니다. 우리 교단 1호 본부선교사였기에....

        그러나 여기에서 제 전공을 살려서 선교사님들을 돕는 선교행정을 하는 것이였습니다. 교회 목사로 있다가 기관 목사로 있으니, 낮설은 부분도 많았지만, 제 전공이 살려지고, 다른 면들을 많이 배우게 되어서 총회에서 참 일을 하면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유럽, 중동,남아시아, 오세아니아가 제 지역이라 언제든 외국 선교지에 나갈 기회가 많았습니다. 교단에서 선교사 훈련을 담당하는 책임 교관이였고, 비전트립에 대한 책을 쓰게 되었는데, 이게 총회 비전트립 교과서가 되어서, 전국구로 강의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계속 의문을 가졌던 것은 왜 이런 일을 진작에 시키시지 왜 교회안에 들어가서 그렇게 긴 시간을 목회를 하게 하셨나를 생각했습니다. 큰교회, 작은교회,상가교회,중형교회, 다양한 부서, 교회행정, 교회학교 사역들, 오랜 시간 청소년부, 청년부 사역들, 교구 사역들, 찬양인도는 왜 했고, 당회는 왜 참석하고, 제직회는 왜 참석하고, 교회 예산을 짜거나, 심방을 하는 일, 기관을 담당하는 일, 이런거 왜 했나 싶었습니다. 그냥 일찍 선교행정을 하게 하시면 좋았을텐데..... 그런데 그 당시에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 한인교회를 하게 하신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저를 알고 준비시키셨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니, 주님은 다 뜻이 있으셨습니다.

        한인교회는 생각도 하지 않은 일이였고, 그것도 교회를 개척하는 일이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셨습니다. 한인들의 영적인 인도자가 되는 것, 그리고 그 한인들과 선교지를 섬기는 것, 거점이 되어서, 한국과 인도를 잇는 일을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대학교 2학년 때 선교사로 작정할 때는 한인교회를 개척하는 것은 생각도 안했던 일이였습니다.

        그런데 한인교회를 섬기면서 그 동안 제가 알지 못했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많이 배우게 됩니다. 한인목회를 하려면, 목회를 잘 알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이를 위해서 한국교회에서 잘 준비시켜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교지이기에, 선교사님들을 잘 알고, 선교사역들을 잘 알아야 하는데, 선교행정을 공부하며, 교회와 총회에서 선교에 대해서 많은 부분을 알게 하신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일본에 대해서 오랜 마음을 주셨던 것, 특별히 저는 대학원 공부를 일본 교회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를 했습니다. 항상 일본을 위해서 뭔가 갚아야 된다고 생각을 했는데, 인도로 올 때 일본은 전혀 생각을 안했습니다. 인도 오는날이 일본 쓰나미로 원전 파괴 되는 날이였습니다. 그냥 그런줄 알고, 이제 일본에 대한 생각을 별로 안해도 되나 싶었는데, 그런데 지금 인도에 오니, 더 많은 일본인들을 만날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일본 본토보다, 더 효과적으로 일본인들을 주께로 인도할 전략들이 인도에서 하나씩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총회를 통해 전국에 강의를 나가면서, 만났던 많은 교단의 교회들, 옛날에는 전라도에 무슨 교회가 있는지 경상도에 무슨 교회가 있는지, 충청도에 무슨 교회가 있는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런데 총회에서 경험한 전국구 사역을 통해, 왠만하면, 전국에 있는 교회들의 특성과 흐름들을 알고, 새로 오신 분들과 말 동무가 될 공통 분모들을 가지게 됩니다.

         

        이를 통해 제가 알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는 하나도 버리시는 것이 없게 미리 다 알고 준비해 주셔서, 사역을 합니다. 앞으로 어떤 스토리가 구상이 될지 모르지만, 제안에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오늘 마르다와 마리아의 나사로를 살려달라는 요청에 이미 분명하게 응답을 해 주신 예수님께서, 제가 갈 길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미리 예비하고 계신다는 확신을 합니다.

        물론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주님의 계획의 일부라 아직 잘 모르는 일들이 많습니다. 아직 감도 못 잡는 일도 많습니다. 마르다, 마리아가 요청해도 오시니 않았던 것처럼, 답답하고, 되어지지 않았으면 했던 나사로의 죽음처럼, 이미 상황이 종료가 되어서 난감한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확신은 우리 주님은 우리가 못하는 일에 대한 연장선으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전혀 할 수 도 없고, 상상도 못한 일이지만, 주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자들을 통해 놀랍고 위대한 일을 이루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신뢰합니다.

        지금 앞에 보이는 것이 없지만, 지금 주님이 역사해 주시는 것 같지 않지만, 우리 주님은 이미 모든 답을 아시고, 우리에게 가장 분명하고 좋은 길로 우리와 동행하고 계십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는 그 일들, 버려지는 일들이 아니라, 주님이 여러분의 기도에 응답하시기 위한 과정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을 사용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들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야기한 스토리보다 더 많은 부분에서 더욱 깊고, 오묘한 하나님의 살피심과 도우심이 우리 모두에게 나타날 줄 믿습니다. 사업에서, 여러분의 공부에서, 여러분의 직장 생활에서, 여러분의 가정 생활에서,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인도생활에서 하나님은 그 어느 것하나 버릴 것 없이 여러분을 준비시키고 훈련시키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나사로의 죽음을 두고, 11:4에는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하신 것처럼, 지금 겪고 있는 어려움과 한계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의 축복임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가장 큰 한계인 이 죽음을 넘어서서, 기적을 보이신 주님은 오늘 여러분 각자의 삶과 가정과 직장에서 감히 생각지도 못했던 일, 우리의 한계라고 여겼던 그 일에 반드시 주님의 기적을 일으켜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내가 역사해 주시기를 바라는 만큼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나사로가 살았을 때, 그를 치료해 주심으로, 마르다, 마리아가 바란 만큼이 아니라, 감히 상상도 못했던, 죽은지 사흘이나 된 시간에, 살아나게 하시는 생명의 역사로 우리들의 삶속에도 동일하게 임하여 주실 줄로 믿습니다.

        지금 풀리지 않는 그 일, 그 일은 나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일입니다. 이럴 때 더욱 주님을 신뢰하고, 주님을 만나고, 발견하는 믿음의 삶으로 나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주의 도우심을 바라봅니다. 우리가 원하는 만큼이 아니라,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우리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 주셔서, 더욱 주님을 바라보고, 더욱 주님을 의지하게 해 주시고, 지금 쓸모없어 보이고, 내가 생각한 길이 아닐지라도, 이 모든 과정들을 꼼꼼하게 지켜 보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 아름다운, 귀하신 주님의 역사를 경험하도록 우리 모두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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