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30일 에베소서 5:8-14 어둠후에 빛이오며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랍비의 주석 “미드라쉬”에는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다윗왕이 큰 보석을 세공하면서 항상 손가락에 끼고 볼 반지를 만들게 했는데, 거기에 글귀 하나를 새기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윗왕은 명령을 내렸는데 “내가 승리할 때는 크게 기뻐할 것이다. 그 때 자만에 빠지지 않도록 할 글이 필요하다. 또 내가 패배할 때는 절망할 것이다. 그 때 나를 새롭게 일어나도록 할 글이 필요하다” 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신하들은 이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킬만한 말이 없어 고민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생각다 못해 지혜로운 솔로몬 왕자를 찾아 갔습니다. 한참을 생각하던 솔로몬은 한 줄의 글을 써서 보여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남겨진 글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것 또한 곧 지나갈 것이다”
정말 그렇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도 언젠가는 반드시 지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누리고 있는 여유와 만족과 풍요로움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입니다. 2014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올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계획을 세우고 시작한지가 얼마되지가 않는데 벌써 3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그리고 돌아보니 3개월 밖에 된 것 같지 않지만, 3개월 동안에도 참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자랑할 만한 일도 금새 잊혀지고, 정말 힘들었던 일들도 금새 잊혀져 버립니다. 인도에서 사는 이 시간도 언제 다 지나가려나? 하면서 인도 땅을 밣지만, 우리도 생각하지 못한 시간에 인도 땅을 떠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인도에서의 덥고,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들도 분명히 지나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지나갈 우리의 날들을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오늘 우리에게는
“이것 또한 곧 지나갈 것이다" 라는 글이 어떻게 다가오십니까?
지금 지나갔으면 하는 어려운 일들이 있으십니까? 아니면 지금 너무 좋아서 지나가지 말고 계속 되었으면 하는 상황에 계십니까? 좀 붙잡고 싶으시겠지만, “이것 또한 곧 지나갈 것입니다” 라는 이 이야기가 곧 절실하게 느껴지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 시대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생각해 보고, 우리에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가 이 땅에서 주님이 주신 시간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자세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의미있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삶의 본질적인 변화가 먼저 이루어져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엡 5:8을 보면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 존재의 변화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어두움과 빛은 그 본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어두움 속에서는 두렵고, 제대로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그리고 그 어둠속의 일은 결국 악을 행하는 길로 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에베소서 5장 3-5절에는 그 어둠의 시간에 행했던 일들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 들을 이야기 합니다. 엡 5:11에는 “열매없는 어두운 일이라고 했고,” 엡 5:12에는 “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들이라”고 했습니다. 드러날 것 같지 않지만, 어두움속에서의 일은 밝히 드러납니다. 그리고 엡 5:13에는 “책망 받는 모든 것”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고, 엡 5:14에는 잠자는 자여.....죽은 자들 가운데 있는자여..“ 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어두움의 일에 대한 본질적인 성격을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어두우면 아무도 볼 수 없기에, 남이 보지 못한다는 그 본질적인 속성 때문에 결국에는 죄를 짓습니다. 제대로 볼 수 없는 어두운 곳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은 세상에 떳떳하게 드러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숨기려고 합니다.다. 이 어둠에 있는 것은 밝은 곳에 나오는 것을 두려워 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이러한 우리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빛”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본질의 완전한 변화를 말씀하셨습니다. 어둠과 대조가 되는 이 빛은 빛이 발생하는 순간 어둠의 존재가 사라지게 됩니다. 정말 “순간”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듯이 빛이 비추면 순간적으로 확 바뀌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이렇게 순간적으로 확 바뀔 수 있는 근거는 “주안에서”라는 단어가 함께 해야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안에서 살고, 주님을 뜻을 따라 살면, 그리스도를 마음의 중심에 모시고 살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빛이 생깁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빛이 되었으면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빛을 받았으면 그 빛만 가지고 있다는 것에 그치지 말고, 빛을 가지고 사용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행동의 상황까지 가야 참된 빛의 자녀로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행동을 가지지 않는 삶을 살 때 우리들을 지칭하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육신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표현을 합니다. 이 사람은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인정하고, 주님이 무엇을 해야 기뻐하시는 줄을 알기는 하지만, 실제로 삶의 현장에서 그 어떠한 행동도 그리스도를 위해 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동이 따르지 않으니까, 어둠에 속한 사람처럼 욕심을 가지기도 하고, 그리스도인이면서 남들을 비난하고, 그리스도인이면서 남을 속이는 일을 행합니다. 신분상으로는 그리스도인으로 분류는 될 수 있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새롭게 분류한 것이 “가짜 그리스도인” 이라는 말을 합니다. 얼마나 부끄럽습니까?
마치 정전이 되어서 플레쉬를 켜려고 했는데, 불은 켜지는데 이 플레쉬 앞에 죄라는 먼지가 잔뜩껴서 빛을 다 막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렇게 되면 쓸모없게 되어집니다.
한번뿐인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쓸모없게 되어지면, 그것처럼 아쉬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지난번에 몽고에서 독수리를 잡아서 그 독수리를 길러서 사냥을 하는 두 부자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하는 일이 새끼 독수리를 훔쳐서, 그 독수리를 길들여서 사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척 힘듭니다. 야생독수리를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게 하려면 얼마나 노력을 많이 하겠습니까? 중간에 사냥을 하도록 시험을 하는데, 그냥 날아 가버립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몽골에서 태어나서 가족들하고 이렇게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여러분 좋으시겠습니까? 그 아버지의 일생 이력을 보니까 지금 65세인데 평생을 독수리 7마리를 길르는데 그의 전 시간을 다 드렸습니다. 물론 독수리에 대해서는 너무 너무 잘 압니다.
그런데 그런 삶이 부럽지는 안았습니다.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 우리가 이상하고 의미 없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 부자는 진지하게 그 일을 고민했습니다.
인도에서도 많이 봅니다. 카스트 제도들이 있어서, 그 일을 했던 사람들은 그 일이 대대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한 번 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이 이렇게 흘러가는대로, 그냥 “먹고 살기” 위한 삶으로 살게 되어진다면, 여러분이 마지막 생의 순간에 여러분의 인생을 돌이켜 보았을 때, 정말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살았다고 자신감을 가지고 이야기 할 수 있는 일들이 있는지 우리의 시간을 잘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 시간을 가장 알차고, 유익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우리를 이 땅에 보내시고, 우리에게 할 일을 주신 하나님의 계획대로 잘 사는 것입니다. 나를 가장 잘 아시는, 나의 인생에 가장 많이 관심을 가지신 그 분의 뜻에 맞게 사는 것이 우리에게 가장 우리의 시간을, 가장 후회되지 않게 사용하는 비결입니다.
우리의 10대, 20대, 30대,40대,50대,60대....각 시대를 사신 분들은 이것을 돌아볼 지혜가 생깁니다. 우리가 각 시기별로 가장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았던 시간들을 돌아본다면,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었을 때 일어났던 일들일 것입니다. 나를 인정해 주시고, 나에게 가장 좋고, 행복한 시간이 되도록, 나의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함께 해 주신 그 시간들을 되새겨 볼 때 우리는 분명한 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뜻을 따르며, 그 분과 교제하면서, 그 분의 음성을 들으며, 내가 이 땅에 온 이유를 발견하고,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을 해나가면서, 그 분과 교제하는 삶을 살 때 주시는 그 기쁨을 우리는 놓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탁하신 삶이 있습니다. 그것을 오늘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요약을 해 주듯이 분명하게 권면을 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로서의 그가 경험했던 것, 그리고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서, 이 땅에서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서 정말 필요한 삶이 무엇인지를 사도 바울은 너무나 잘 알았고, 이 에베소서를 읽는 교우들이 이렇게 살기를 간절히 바랬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빛을 가진 우리들이 이제 그 빛을 가지고 살아야 할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엡 5:9을 보면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 빛의 자녀들이 행해야 하는 중요한 행동 지침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 첫째가 되는 빛의 열매는 ‘착한 행실’과 관련이 있습니다. 마 5:16을 보면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고 했습니다. 우리가 보통 말하는 착한 행실은 어른이 아이들에게 권하며 가르칠 때 썼던 교육적 차원으로 것으로 마음씨나 태도가 바르고 고운 것을 지칭합니다. 악하지 않고 바르며 덕을 세우는 착한 삶이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자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면 그래서 착해야 됩니다. 양보도 하고, 손해도 보고, 남을 배려하고, 돌아보기도 하는 자세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면 이런 성품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인데 말도 험하게 하고, 남을 곤경에 처하게 만들고,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이기적이고, 구설수에 오르는 일을 삼가고, 선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남을 밣고, 살아남아야 하는 경쟁사회에서 이렇게 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우리가 빛의 자녀이기에 이 빛을 비추어서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게 해 주어야지, 사람들에게 혐오감을 주는 불빛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어둠에 있던 사람들이 우리의 이러한 모습을 보면서 그래도 그리스도인들은 “착하다” 라는 말을 들어야지, “교회 다니면서 못 된 짓을 다 골라서 하고 다닌다”라고 이야기 되어지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자꾸 힘을 잃는 이유는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가 착해야 하는데, 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착해야 합니다. 너무 쉬워서 유치해 보이시죠? 그런데 좀 착하게 살아야겠습니다. 요즘 세상이 너무 강팍하다보니까, 착한 사람들 찾아 보기 좀 어렵습니다. 약은 사람, 똑똑한 사람들은 많은데 착한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옆에 계신 분들과 한 번 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주안에서 착하게 삽시다” 우리 델리한인장로교회 사람들은 ‘착한 사람’입니다. 라고 소문이 나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빛의 열매는 ‘의로움’이라고 했습니다. 의로움은 정의의 차원에서 공공적 가치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의는 하나님과 인류에 대한 자신의 의무를 다하며 그것을 공정하게 수행할 때 나타나는 빛의 열매입니다. 신명기 6:25에는 “우리가 그 명령하신 대로 이 모든 명령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삼가 지키면 그것이 곧 우리의 의로움이니라 할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정하고 공평하게 은혜를 베푸셨음으로 그 뜻을 따라 지키는 사람이 의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가지고 세상에 나아가 불의를 척결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사회적인 많은 약자들 편에 서 주는 것, 그들의 불익을 대변해 주는 것에 우리가 맞서서 힘을 길러야 합니다. 어그러지게 된 것, 누군가에게 피해가 가도록 구조적인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실력을 가져야 합니다.
"Strong to Serve : The Alliance High School of Kikuyu, Kenya" 미국 예일대에서 철학박사(PH.D)를 받은 학위논문의 제목입니다. 장로교, 성공회, 감리교, 아프리카 내지교회 등 네 교단이 에큐메니칼 협력으로 , 최초로 아프리카 학생들에게 고등학교 교육을 제공하기 위해 1926년 시작한 케냐의 최고의 고등학교입니다. 학교가 세워진 이래로 거의 매해 전국1위 성적을 차지했고, 같은 모토와 정신으로 1948년 아프리카 여학생들을 위해 세워진 Alliance Girl's High School 역시 최고의 명문으로 이 나라의 거의 모든 여성 지도자들이 이 학교 출신이라고 합니다. 설립정신과 지도자를 키워내는 방식으로 인해 박사학위논문의 리서치 대상이 될 정도라고 합니다. 잘 세운 기독교 학교 하나가 훌륭한 인재들을 키우며 한 나라의 100년을 이끌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학교의 정신이 바로 "제대로 섬기기 위해 강해져라"입니다. 지배하고, 다스리고, 성공하고, 기득권층이 되기 위해 강해져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이웃을 잘 섬기기 위해서 강해져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믿는 자들이 강해져야 합니다. 비리비리하고, 기본적인 매너도 없고, 약속 시간 하나 못 지키기고, 가장 기본적인 책임 있는 행동조차 못하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서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어렵습니다. 파괴적인 강함이 아니라, 섬기기 위한 강함이 있어야 합니다. 강한 힘이 있어야 이 시대 사회의 약자들의 대변인이 되어서 그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삶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델리한인장로교회가 약한 자들, 고난 받는 자들 편에 서서, 그들을 돕는 강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이 지역에 리더십의 지위를 가진 사람은 있지만, 참된 리더십이 그 동안 많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리더십 스쿨을 합니다. 청소년들이 책을 외우고 시험만 잘 치는 기술을 얻도록 하지 않게 하려고, 그들의 앞으로 공부할 수 있는 이유를 알게 하려고, 이곳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현실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이 일찍 공부하는 이유를 눈 뜨게 하려고 비전스쿨을 하고 있습니다. 뒤죽박죽이 된 교육현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게 누락된 부분, 바로 아버지의 자리, 특별히 기도하는 아버지가 되기 위해 “자녀를 위한 아버지 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직장 생활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쉽게 놓쳐 버리기 쉬운 자신의 목표와 꿈을 직장 생활 첫 단추 때 잘 꿰어서 나가고 그들이 주역이 되는 세상에서 큰 꿈을 가지라고 “드림스쿨”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부부들이 함께 말씀을 배우며, 말씀속에서 가정이 건강하게 서도록 하는 ‘부부학교’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인들 인도 현지인들 가운데 가서 사역하도록 자주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도 교회 교인들과도 만나도록 기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인도 교단과도 함께 사역을 하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음악교실도 곧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곳에서 정말 뜨겁게 찬양하는 기회가 너무 적은데, 이런 음악 학교들을 통해 실력 있는 음악인들이나 찬양사역자들을 양성해서, 정말 주님을 잘 찬양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강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강해져야 섬길 수 있습니다. 뭐를 하려고 하는데, 아무런 준비없이 행동없이 말 만하고, 실력이 없으면 우리가 꿈이 있어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하나님의 의를 행하려면, 우리가 지금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실력을 잘 갖추는 일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현재 하시는 일에 그리스도 안에서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잠언 22:29에는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 델리한인장로교회 모든 성도들이 각자가 처해 있는 위치에서 빛의 자녀로 의로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 빛의 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진실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진실함은 참됨과 거짓으로서의 내면적 차원의 문제를 포함합니다. 거짓을 버리고 마음과 행동을 하나로 일치시켜야 진실에 이르게 됩니다. 요사이 각종현상에 거품들이 많습니다. 속된 용어로 하면 “뻥”이 심합니다. 제가 알고 있는 한 분이 있는데, 이 분은 미국에서 공부를 하셨고, 박사학위도 있고, 전공도 유망한 분야이고, 키도 크고, 생긴 것도 남자답게 잘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만나기만 하면, 그 주변 사람을 하나씩 이야기를 합니다. 한 시간만 같이 있으면 연예인 아는 사람도 두,서너명 나오고, 교수님들은 한 세,네 사람 나오고, 국회의원도 한 두, 세사람 나옵니다. 참 아는 사람이 많고, 이 분 만나고 나면 되게 위축이 되는 것 같습니다. 본인 실력 자체도 상당히 좋은데, 거기다가 주변 사람들 이야기를 더하면 정말 그 앞에 서면 초라해집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같이 일하는 사람이 그 사람을 싫어합니다.’ 두,세시간씩 엄청나게 이야기를 하면, 그냥 마지못해 들어주는 거지, 진지하게 그 분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가까이서 보니까 친구가 없습니다. 아는 사람은 많은데 진짜 친구가 없습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부럽다는 생각이 안 들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분에게는 진실성이 없습니다. 거품이 너무 많았습니다. 사람이 좀 못나보여도 진득하니, 신뢰가 가야하는데, 신뢰가 가지 않고, 다 뻥 같습니다. 허황된 ‘자기 높이기 캐릭터’에 빠져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거품을 빼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그 당시 사람들이 알아주던 실력파였고, 가문, 배경에서 그 어느 것 하나 유대인들에게 밀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바울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뒤 그 모든 거품을 뺐습니다.
빌립보서 3:8에는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고백하면서 자신의 삶에서 거품을 빼고, 그의 남은 생애를 그리스도를 위해 빛의 자녀로 온전히 살았습니다. 그의 빛 된 삶은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비춰지고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진실해야 합니다. 거짓인 것을 진실로 속여서도 안되고, 진실이 아닌데, 진실이라고 해서도 안됩니다. 자기의 치부가 드러나고 부끄럽게 되도, 진실함으로 그 부족함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야지, 자기의 헛된 거품으로 그 진실을 채우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만나면 또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되어야지, 한 번 만나고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되면 안됩니다. 그런데 그 원동력이 바로 진실함입니다.
우리를 진실되지 않게 하는 우리의 소비 문화, 생활 패턴들도 우리가 한 번 잘 생각해 보아야 하는 부분입니다. 좀 투박해도, 좀 없어 보여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진실되게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삶의 현장에서도 당장에는 좀 힘들어 보여도, 믿는 자로서 이 진실함을 가지고 빛의 자녀로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이렇게 말씀 드린 대로 빛의 자녀로 우리에게 곧 지나쳐 버릴 이 세대, “이것 또한 곧 지나갈 것이다” 라는 이 시대, 쉽게 잊혀질 이 세대, 영원하지 않은 이 세대에서, 주님의 빛을 비추는 빛의 열매를 위해, 착함으로, 의로움으로, 진실함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어둠의 세대가 아닌 빛의 세대를 살아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힘으로는 이렇게 살기 정말 어렵습니다.
우리가 빛을 만들어 가려면 너무 너무 힘듭니다. 가능성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 안에 살 때, 주님은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 주십니다.
어둠에 살던 우리들에게 빛된 삶을 살도록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엡 5:14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비추어야 이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께 비췸을 받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지기를 기대합니다.
기도 : 사랑하는 주님, 우리의 이 시대 좋을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또한 곧 지나갈 것이다’ 라는 이야기처럼 흘려보낼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소중한 삶, 특별히 한국인으로서 인도에서 사는 이 소중한 시간을 하나님께 맡기고, 더욱 의미있게 사용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도우시고, 우리를 붙들어 주셔서, 하나님을 위해 아름답게 빛의 자녀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으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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