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6일 요 3:1-17, 영원한 나라를 향한 기대
이제 제법 꽃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제가 처음에 인도에 온 것이 12월이라 당시의 삭막한 거리의 모습을 보고 인도에는 꽃이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인도도 꽤 많은 꽃들이 있습니다. 인도라는 곳에서 처음 보는 꽃들이 많아서 그런지 삭막한 이곳에서의 꽃은 더 매력적입니다. 꽃 이야기를 하니 한국 생각이 납니다. 이제 곧 한국에는 벚꽃 축제가 시작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장미, 아카시아, 라일락 등 이름만 불러도 기분이 좋습니다.
한국에서는 날씨가 풀리면 가까운 산에 가서 등산도 하고, 산에서 내려올 때 진입로에서 파는 군것질 거리를 먹고 오면, 기분이 참 좋습니다. 졸졸졸 흐르는 계곡물, 피톤치드 향이 나는 소나무 향을 걸으면서, 가족들과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상상만 해도 마음이 즐겁습니다. 해외에 있으니까 더욱 이러한 고국에 대한 그리움이 더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삶에 지치는 삶을 많이 사시는 분 일수록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많아집니다. 우리의 삶이 지칠 때를 “찌든다”라는 말로 많이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가장 편안하고, 쉼을 얻는 곳, 치유가 되는 곳을 많이들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진정한 쉼이 있는 곳을 많이 찾습니다.
특별히 우리 믿는 자들에게도 이러한 기대가 있어서 ‘천국’에 대한 기대감이 큽니다. 그러다보니, 간혹 사고가 납니다. 우리가 너무 사모하고 그리워하다보니, 그곳에 대한 상상이 이어지고, 간혹 그곳을 보고 왔다면서 자랑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의 말에 현혹이 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거룩한 곳으로, 그 크기나 아름다움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그곳이 이렇고, 저렇다고 설명이 되어지는 것은 애당초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보여주신 만큼 알고, 감사하고, 그리워하며, 아름다운 천국이 있음을 확실히 믿는 그 믿음만 필요합니다.
세상은 이 천국에 대한 기대보다도 파괴에 대한 이야기들로 계속 염려와 근심이 쌓이게 합니다. 말레이시아 항공 소속의 비행기가 하늘에서 239명이 탄 채로 실종이 되었습니다. 최첨단 인공위성과 장비가 있어도 아직까지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미국 뉴욕에서 오래된 아파트에 가스가 누출이 되어서 아파트가 폭발이 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3주년이 되는 해 인데도, 아직 복구가 되지 않아서 매일 300톤 가량의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출하고 있다고 합니다. 앞으로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이 올 것이라고 합니다. 북한은 계속 핵무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계속적인 세계의 골칫거리로 뉴스에 등장합니다. 인도에서도 5월에 선거가 있다보니, 지금이 아주 혼란기 같습니다. 모든 것이 멈춰진 것 같이 다 미뤄버립니다. 회사마다 큰 프로젝트들을 하려고 기다리고 있지만, 모두들 선거 이후로 미루는 인도의 현실에 묶여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이 계속해서 반복되다보니 사람들은 꿈을 꾸게 됩니다. 이상적인 나라, 이상적인 사회를 꿈꾸며, 우리가 노력하면, 이런 세계가 온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지만, 사람들은 선거철이나 사람들의 이슈를 끌기 위해 이런 이상적인 나라에 대한 건설을 이야기 합니다. 때로는 이런 나라를 세운다고 하면서, 자기 자신도 주체를 못하면서, 인생의 목적도 상실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도 의심하면서 길이 아닌 곳을 계속 길이라고 주장하고, 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것을 꿈꾸며, 사람들에게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하던 역사적인 흐름들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약 1,600여년전에 중국 동진 시대에 도잠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연명이라는 호가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 도연명이라는 사람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도화원기”라는 글을 썼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곳이 무릉도원입니다. 무릉에 사는 어부가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복숭아 꽃잎들이 물에 둥둥 떠서 내려오는 것을 보고 물길을 따라 올라갔더니 처음 보는 동굴이 있었는데, 꽃이 만발한 도원에는 시간이 멈추어 섰고, 옛날 진나라 때 난리를 피해 그곳에 들어간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평화롭게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아무런 불만도 싸움도 없는 이상적인 곳이였습니다. 어부가 그 사람들에게 바깥 세상의 역사를 이야기 해 주었더니 모두 신기하게 여겼고, 배를 타고 나와서 나중에 다시 찾기 위해서 표시를 해 두고, 고을의 태수에게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 태수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도화원을 찾아 보려고 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고 하는 이야기가 도화원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서양에는 일찍이 아틀란티스 전설이 있었습니다. 플라톤에 의하면 지중해 서쪽 바다에 신비한 대륙이 있어 사람들이 완벽한 문명을 구축하며 살았지만, 타락과 사치로 신이 내린 재앙으로 멸망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고대의 전설을 모아서 16세기 토마스 모어가 이상 세계를 그린 작품이 “유토피아”라는 작품입니다. 대륙과 멀리 떨어진 인공적 섬에서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하며 존재의 평등과 소유의 평등을 완벽히 실현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남녀노소가 모두 공평하게 일을 하게 하루 여섯시간씩 일하고, 농사일 외에 두 가지 일을 할 수 있었으며, 그리고 나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입니다. 금이나, 은은 경멸의 대상으로 사용이 되어지는 곳으로 사람들이 상상하는 이상적 낙원을 부르는 명칭이 “유토피아”라고 부르는 명칭이 되었습니다.
상징적으로 1872년 영국의 작가 사무엘 버튼러가 쓴 “에레혼”이라는 작품에서는 어떤 양치기 소년이 산 넘고 물 건너 도달한 미지의 세계 “에레혼”에서 우리의 삶과 정반대되는 모습을 경험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병들면 고쳐주고, 죄지으면 벌을 주지만, 그곳에서는 병을 벌하고 죄는 정성들여 치료해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미있는 사실은 “에레혼(erehwon)"을 거꾸로 뒤집어 놓으면 Nowhere라는 단어로 이 단어의 뜻인 "어디에도 없다"라는 뜻이 되어집니다. 사실 유토피아라는 단어도 헬라어에서는 ‘우(ou)'는 부정을 나타내는 부사인데, 장소를 나타내는 "토포스(topos)"의 합성어로 역시 그 뜻은 “어디에도 없다” 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여러분 생각에도 여러분이 진짜 꼭 마음에 드는 곳은 어디입니까? 어디에 있습니까? 아주 아주 좋아도 했던 곳에서의 뉴스들을 들어보면 그게 진짜 맞습니까? 언젠가 노르웨이의 풍성함을 이야기 했지만, 제가 바로 그 나라의 자살률이 만만치 않다고 이야기를 드린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마음에 드는 정치가가 정치를 잘하면 이상국가가 됩니까? 그냥 이것저것 다 싫으니까 나중에 고향에나 내려가서 개나 키우고, 농사나 짓고 살고, 전원주택 같은거 하나 짓고 살면 무릉도원이 되고, 유토피아가 될 것 같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도 이런 생각을 안했겠습니까? 허균의 소설 홍길동전을 보면 홍길동이 서자로 태어나서 차별대우를 견디다 못해서 가출을 해서 도둑 떼를 거느리고 활빈당을 조직합니다. 탐욕스런 관리들의 재물을 빼앗아서 가난한 백성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조정에서는 잡으려고 애를 써도 잡히지가 않자 홍길동을 매수합니다. 그래서 홍길동이 무리를 이끌고 한 섬으로 갔는데 그 부근의 나라인 율도국을 쳐서 나라를 세우고 이상적인 통치를 했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곳은 “산적도불습유”라고 곧 ‘산에는 도둑이 없고, 길에는 물건을 줍는 사람이 없고, 모든 사람이 풍성해서 남의 물건을 탐내는 사람이 없다’고 했지만, 처음에 이야기 드린대로 가상의 나라였습니다.
고대로부터 지금까지 동양과 서양, 우리나라까지도 이 이상적인 나라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습니다. 싸우지 않고, 먹을것이 풍성하고, 재미있고, 서로 공평하고, 누구나 다 존중받는 세상....이런곳이 있기를 기대하지만, 사실 모두가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온전한 이상적인 나라를 찾는 사람들 가운데 오늘 성경에도 한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 이상적인 나라를 묻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 니고데모는 자신의 질문에 답하시는 예수님 앞에서 숨을 죽인 채 그 분이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를 경청하고 있습니다. 이곳은 ‘거듭나지 않으면 볼 수 없는 나라’, ‘성령으로 난 사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로, 이 나라에 들어갈 자는 믿는 자들로서 그들에게 영생을 주심으로 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다고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설명을 해 주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니고데모에게는 영원한 나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는 설명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한계시록 22:1-5을 보면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그가 수정 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 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 다시 저주가 없으며 하나님과 그 어린 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의 종들이 그를 섬기며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라고 했습니다.
완전한 영생의 장소이며, 풍성한 곳이며, 그 나뭇잎들은 만국을 치료하고, 그러기에 아픔과 죽음이 없는 곳입니다. 이 세상에 살던 우리의 근본적인 괴로움을 없애주시는 하나님의 힐링캠프, 영원한 우리의 고향입니다.
일찍이 에덴동산에는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있었습니다. 동산중앙에 있는 이 나무의 열매를 먹지말라고 하셨고, 이것을 먹는 날에는 죽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죽음에 대한 언급으로 두려움을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가 가게 될 영원한 나라에는 생명나무가 생명 강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고 하셨습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완전한 기쁨과 위로를 주는 나무들이 가득하고, 달마다 맺는 열매는 풍성한 은총으로 천국 백성을 즐겁게 해 줄 것입니다. 천국의 열매는 더 이상 금지된 것이 아니고, 병이나 고통이 없는 은혜가 생명나무로부터 온 백성에게 온전히 공급되는 곳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어린양의 보좌가 그 가운데 서 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시험과 고난을 이기고 천국에 들어온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어떤 죄도 없으며 결코 그로인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지 않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이 땅에서 가장 괴롭게 했던 사탄의 힘도 미치지 못하고, 그곳은 의로우신 하나님과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다스리신다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우리를 고통스럽게 했던 권력자도 없고, 우리를 실망스럽게 하며, 우리를 판단했던 누구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곳에서는 심판하시는 주님이 아니라 은혜의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시고, 어린양의 보혈로 우리 죄를 씻음 받아, 다시 저주가 없는 곳이며, 주님이 다스리시는 곳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누가, 어떻게, 어떠한 세력이 나라를 다스리는가가 항상 문제였습니다. 권력자 앞에서는 올바른 말도 해서는 안 되고, 괜히 올바른 말을 했다가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권력과 결탁한 사람들의 악생은 높아지고, 힘 없는 사람은 죄인이 되는 세상을 우리는 혐오해 왔습니다. 억울한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니였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정치체제가 ‘좋다, 나쁘다’라고 하면서 서로 싸우고 죽이며, 같은 형제와 민족 사이에서도 담을 쌓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에서는 이런 저주가 풀리고 모든 행위가 섬김의 모양으로 바뀔 것입을 주님은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요한복음 3:12에서는 “땅의 일과 하늘의 일”을 구분하시면서 예수님의 구원의 역사를 위해 십자가 위에서 높이 들려야 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늘의 일을 믿고 십자가로 구원 받은 천국 백성들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뵐 것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으로 인해 인간으로서는 그 거룩하심을 보고 살아난 자가 구약성경에서는 없었습니다. 모세까지도 하나님의 얼굴을 뵙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마음이 청결한 자는 그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볼 것임이요”라고 마 5:8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천국 백성들에게 드디어 하나님을 볼 수 있는 약속이 완성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만남과 소통, 이것은 꿈으로 그리던 최고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뵙고 싶었고, 또 모시고 싶었던 예배의 대상이신 그 분이 내 앞에 오셔서 나를 만나 주신다는 그 약속....감히 바라볼 수도 없던 우리가 대화의 문을 활짝 여시고 내 이야기를 들으시고, 귀를 기울여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무슨 말씀을 하실 것입니까?
고향에 가는 사람은 여러 가지 준비를 합니다. 그렇지만 물건은 잔뜩 사거나 만들거나 꾸리지만, 정작 고향의 부모님과 친척과 친구들을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지, 어떤 정겨운 대화를 할지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그리운 정과 감사를 표현하는 말은 다 생략해 버리고, 세상의 일들, 곧 집 이야기, 직장 이야기, 자녀 이야기나, 돈 이야기만 잔뜩 이야기 하다가 괜한 소리를 했다는 후회감만 남기고, 서로에게 상처만 남기고 오는 경우가 많았던 우리의 과거를 우리는 잘 압니다.
그러나 천국 시민은 우리는 주님께 드릴 감사의 말씀과 그 분의 은혜에 대한 이야기 거리가 잘 준비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만났을 때 할 이야기가 없어서, 서로 민망하게 있으면 어떻합니까? 우리 자녀들이 학교를 갔다 오면, 그 있었던 일을 부모님께 조근 조근하게 다 이야기 하는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처럼, 주님이 이 땅에 보내실 때, 우리의 사명들, 그것을 이루고 순종하면서 받은 은혜들, 그리고 주님이 어떻게 도우셨나를 조근조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되도록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이 중요합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곳에서 왕 노릇 할 것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거기가면 또 종이 있나?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 개념이 아니라 우리가 왕이라는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 앞에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완전한 자유,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기쁨을 온전하게 누리는 상태가 되어짐을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은 천국 백성인 우리를 ‘나라’ 곧 왕국을 삼으셨다고 하십니다. 계 1:6을 보면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 라고 했습니다. 우리들 자체가 나라라고 하셨습니다. 벧전 2:9에도 보면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시면서, 우리가 바로 하늘 나라 그 자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니고데모에게 설명하신 “하늘의 일”과 연결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나라인 우리들은 이제부터 어두움을 벗어나, 두려움에서 벗어나 기이한 빛, 즉 햇빛도 필요 없는 영원하고 밝은 그리스도의 왕국 자체로 존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도 경험한 사람이 없으므로 이 기쁨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꼈던 확신과 기대와 사랑을 모두 합하고, 이 복음의 말씀을 온전히 받아들이며, 본향을 사모하는 간곡한 마음들을 한데 모우면 영원한 나라, 천국의 감격의 일부를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빛나는 왕국이며 왕으로 영광 속에 있다는 오늘 니고데모에게 소개한 “하늘의 일”보다 더 좋은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이토록 아름답고 영화로운 천국을 그려보니 이 세상에 살 마음이 없어져 버린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 다 그만두고 천국만 사모하자는 생각이 들 수 도 있습니다. 사실 그러다가 이단종파가 무수하게 생겨났습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의 삶을 보냄으로써 천국이 그 만큼 더 더 가까워졌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사실입니다. 이 과정에서 신실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를 가기 위한 준비가 조용히 진행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구원의 보좌 앞에 서기 위해서, 어둠이 없는 천국을 대비하여 롬 13:12의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라는 말씀을 매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 내 얼굴을 보여드려야 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준비를 잘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볼 것이라고 했던 주님의 말씀처럼 주님 앞에 깨끗한 모습으로 서서, 온갖 세파를 믿음으로 극복하고 생명수 샘물로 씻은 얼굴을 주님 앞에 보여 드려야 합니다. 죄로 인해 추해지고 세속에 물든 내 모습은 아닌가를 염려하면서 주님을 만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늘이 사순절 두 번째 주일입니다. 참회의 시간이 깊어지고,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통을 깊이 생각하며, 주님을 바라보는 이 시간들을 우리는 보내고 있습니다. 주님의 구원으로 얻은 그 영생의 나라가 곧 우리에게도 오게 됩니다.
이 사순절 기간 주님을 더욱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의 본향을 가기 위한 믿음의 길을 매일 매일 온전히 걸어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들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지상낙원은 그냥 사람들의 상상 속에서 되어진 곳으로 그 이름처럼, No Where,어느 곳에도 없으나,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밤과 어두움이 없는 no more night’, 신비하고 거룩한 곳에 영원한 나라를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며, 그 영원한 나라의 백성으로 이 땅에서의 하루하루를 주님을 만나기에 부족함이 없도록 깨끗하게 준비하는 삶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사랑의 주님, 사순절 두 번째 주일을 맞이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하늘의 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도 하나님의 천국백성으로 영원한 그 날을 소망하고 기대하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의 하루가 천국을 사모하는 백성들이 주님을 만나뵙기 위해 준비하는 귀중한 한날 한날임을 기억하며, 순결하고 깨끗하게 하나님의 나라를 더욱 사모하는 우리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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