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9일 스바냐 3:14-20
제가 처음 교회에 다닐 때에는 교회에 가면 참 기분이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예의가 있었고, 생각보다 많은 사회의 저명인들이 교회에 출석을 했었습니다. 운동선수들, 연예인들도 교회를 참 많이 다니고 있었습니다. 유명한 대학교수나 사회에서 이름 있는 분들이 교회에 많이 출석을 하셨습니다. 물론 지금은 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를 출석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예전과 다른 것은 제가 처음 다니던 90년대 초반의 분위기하고 지금의 분위기하고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왠지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게 계속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변화되는 시대 눈높이를 교회가 놓친 것 같은 시대적인 아픔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인터넷이나 뉴스를 통해 그러한 사실들을 많이 접할 것입니다. 교회에 관련된 안타까운 소식들을 접하게 되면, 참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데 그 소식을 우리 주님도 들으실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내용들을 들으시고, ‘가만히 계속 침묵하지는 않으실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지난 과거의 역사속에서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일들에 대해 분명하게 하나님의 방법으로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이 온전해 지도록,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고, 하나님의 일들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어오셨습니다.
지금 교회에 대한 많은 공격이 있고, 또 그 가운데 발견되는 우리의 잘못된 모습들이 드러나서, 그것 때문에 아파하지만,그러한 가운데 우리 하나님은 회복의 영을 부어 주셔서 이 땅의 교회와 성도들이 돌아보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참 뜻을 구하며, 하나님 앞에 온전히 돌아가도록 우리 주님은 ‘주님의 프로젝트’를 운행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는 스바냐서를 통해서, 지난 과거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시키시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시대는 다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가 어떤 자세로 이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참된 믿음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함께 알아가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스바냐 선지자는 예수님이 오시기 전 BC 640년-621년 사이에 예언자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남유대에는 하나님의 백성임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의 풍습이 깊게 젖어 들어서, 우상숭배, 자연의 해와 달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많아지던 시대였습니다. 이뿐 아니라 하나님의 성전을 지키던 제사장들은 성전을 지키는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가르치는 일을 소홀히 했습니다. 거기에다가 가장 심각하고, 치명적인 것은 가르친 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기도하는 자리, 예배드리는 자리를 서서히 소홀히 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흔들리면서 정치계, 경제계, 학교, 자녀들에게까지 여파가 미치면서, 정말 온전치 못한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잘 사는 것 같아 보였지만, 잘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들이 즐겁게 사는 것 같아 보였고, 복 받은 것처럼 보였지만, 그들은 참된 복을 경험하지 못하고, 그저 눈에 즐거운 대로, 그들의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앞날에 일어날 일들을 전혀 예측 못하고 살고 있었습니다. 마치 폭포 앞을 향해 가지만, 기금은 평안하게 노를 젖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이 때 하나님은 이 안타까운 시대를 향해,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선지자 스바냐를 준비하십니다. 사람이 그 이름처럼 된다고 스바냐라는 히브리 원래 발음은 “츠판야” 인데 ‘감추다’라는 “챠판”과 여호와라는 “야”가 결합된 복합어로 그 뜻은“여호와께서 숨겨 주신 자, 여호와께서 보호해 주신 자”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름과 같이 스바냐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했던 하나님의 메시지는 이렇게 우상숭배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율법을 따라 살지 않으면 ‘곧 심판이 임한다’라는 메시지와 더불어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고,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위기속에 감추어 주시고, 보호하신다’라는 메시지를 스바냐는 전하게 됩니다.
당시 이스라엘 주변 정세는 앗수르라는 초강대국의 지나친 확장 정책과 내란으로 국력이 쇠퇴해서 흔들리던 시기였습니다. 당시에는 상상도 못할 이 강대국이 신흥세력인 바벨론에게 공격을 받게 되고, BC 612년 경에 앗수르 제국은 멸망하게 됩니다. 이 당시의 상황을 스바냐는 잘 알고, 앗수르가 멸망할 것이라는 것을 예언하였고, 그 이후로 이스라엘에 신흥강국 바벨론을 통해서 심한 고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을 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을 단련하시고, 훈련시키기 위해 때로는 주변 강대국을 사용하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세상적 관점으로는 우연히 강대국이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침공해서 박해를 했다고 하겠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이스라엘이 심하게 타락하고, 하나님께 대한 예배를 소홀히 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저버릴 때 이스라엘 주변의 강대국들이 사용되어져서,이스라엘이 정신을 차리도록 하는 일들이 구약에는 참으로 많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공통된 한 가지 중심 사상은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난 사랑과 은혜로 자기 백성들을 보호하시고, 도우시고, 그들과의 교제를 너무 너무 기뻐하셨는데, 이 이스라엘 백성은 좀 살만하면, 그 때부터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해집니다. 하나님만 바라보던 삶이 아니라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하고, 차츰차츰 하나씩 맛보기 시작한 세상에서 주는 쾌락들에 마음이 묶이기 시작합니다. 세상이 주는 것이 더 재미있어 보입니다. 세상이 주는 가치관이 더 좋아 보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지고, 세상 기준에 자신들을 맞추기 시작합니다.
여러분 세상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역사이래로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기준을 세워 보았습니다. 왕들이 기준을 세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왕의 지배 아래에 살다보니, 이 기준은 너무나 많은 기회와 삶이 왕에게 집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세상의 기준이 되는 정치 원리들이 자리를 잡게 됩니다. 자본주의, 민주주의, 공산주의,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그 공동체와 국가에 맞는 기준을 세우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자신들이 좋겠다고 생각한 그 세상의 기준들이 점점 무너집니다. 그러니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개인주의에 맞춥니다. 어제 러시아에서 개최된 소치 동계 올림픽 개막식을 보니까 세계를 공산주의를 물들이고, 미국과 냉전 체계를 유지하던 공산주의 국가 러시아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러시아하면, 군복과 전쟁 모자를 생각했던 그 러시아는 지금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자유분방한 젊은이들, 경제위기가 있었지만, 많은 발전을 거듭하며 우리나라 평창을 제치고 동계 올림픽을 거행하는 러시아의 모습들, 개막식에서 보여준 첨단 기기와 장비들과 그들의 예술적 감각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그 모습을 보면, 이전에 우리가 생각한 러시아하고는 너무나 다릅니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 때는 부의 상징이고, 모든 사람들이 이상 국가라고 했던, 미국도 지금은 많이 변했습니다. 전 세계를 구한다던 슈퍼맨과 같은 모습은 사라지고, 많은 무기거래, 그리고 성적인 타락과 많은 일들 앞에 자국의 이익을 구하는 나라로 바뀌어 집니다. 지금도 위상이 많이 흔들리고, 세계가 보는 시각도 이전에 미국을 보는 시각으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이전에 세상의 기준이라고 불려질 만큼 많은 인정을 받았지만, 지금은 많이 바뀌었습니다.
이처럼 세상의 기준들은 쉽게, 쉽게 변합니다. 사람들의 삶의 가치도 쉽게, 쉽게 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영원할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흔들리지 말고 지켜야 하는 분명한 영적인 관점을 놓쳐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기 백성을 어떻게 이끌어 주시고, 어떻게 보살피시는지를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늘 살펴보게 되어집니다. 태초에 우리 인간을 만드시고, 좋았다고 하신 하나님, 그러나 우리의 죄악이 날로 창대해져서 결국 노아를 통해 이 땅을 심판하시고,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주신 하나님, 그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항상 사랑의 방법으로 함께 해 주셨지만, 우리 인간은 번번히 그 약속을 깨트렸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리고, 지금 스바냐 시대에 겪었던 그 심판의 위기 앞에 항상 반복해서 서게 됩니다.
스바냐 선지자는 이 시대를 깨우기 위해 그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하나님에게 무관심하고, 하나님을 소홀히 하고, 온전하게 예배를 드리지 않고, 하나님이 가르쳐 주지 않은대로 살게 될 때, 앞으로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인가를 그들이 알아듣도록, 똑똑히 하나님의 음성으로 들려주었습니다. 그것이 스바냐 1장의 내용입니다. 온 세상에 대한 심판, 유다와 예루살렘에 임할 심판, 그리고 심판 받을 자들, 그리고 여호와의 날에 나타날 심판의 형편을 스바냐 1장에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바냐 1:14-18을 보면 “14.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슬피 우는도다 15.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16.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들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17.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맹인 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쏟아져서 티끌 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 같이 될지라 18.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켜지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주민을 멸절하되 놀랍게 멸절할 것임이라” 라고 스바냐 선지자는 선포합니다.
스바냐 2장도 계속해서 이 심판이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에도 임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블레셋, 모압과 암몬, 구스와 앗수르에 임할 심판을 선포하게 하셨습니다. 당시 최강 국가 앗수르가 자신들의 힘인 것 같이 세상을 호령했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 교만한 앗수르를 무너뜨리고, 그 부변의 앗수르를 의지하던 모든 국가들도 동일하게 무너지게 만드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스바냐 2:13 “13.여호와가 북쪽을 향하여 손을 펴서 앗수르를 멸하며 니느웨를 황폐하게 하여 사막 같이 메마르게 하리니” 하나님은 한 개인의 앉고 일어섬을 주장하시는 정도가 아니라, 국가의 흥망성쇠도 주장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세계 최강이라고 아무리 외쳐도, 하나님이 정하신 시간이 되면, 하나님 손을 드시면, 그 나라들이 역사속에서 계속 정리가 되어졌습니다. 지금 뉴스를 보면 복잡한 여러 국제 정세들, 북한과의 관계, 여러 일들이 다 국제뉴스 같이 여겨지지만, 성경은 이 세상의 모든 역사의 주관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일들이 생기지 않도록 우리가 돌이켜야 할 때 돌이켜야 합니다.
이 모든 역사속에서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중요한 교훈은 그 백성이 돌이키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할 때, 그들에게는 새로운 희망을 주셨습니다.
절망의 땅이라고 해도,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하나님의 예배가 회복되어질 때, 하나님은 그곳을 사용하셨고,그 가운데 있던 사람들을 사용하셨습니다.
영국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 세계로 전하려고 많은 선교사를 파송할 때, 하나님은 영국을 사용하셔서 그 나라를 세계에서“해가지지 않는 나라”라는 칭호를 받으며, 축복을 주셨습니다.
미국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전 세계에 증거하기 위해 많은 교회들이 헌신 할 때, 하나님이 그 미국을 축복해 주셨습니다.
대한민국도 일제시대,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을 때였지만, 오직 한가지 소망으로 하나님께 메어 달리고, 기도하고, 수요일에도, 금요일에도, 새벽에도, 간절히 모이고 선교사를 파송하며, 세계 2위 선교사 파송국가로 하나님께 부르짖고 나올 때 지난 짧은 시대 동안에 가장 많은 성장을 한 국가로 세계에 이름을 알리고 있습니다.
누가 상상했겠습니까? 우리나라 삼성이 만든 핸드폰이 전 세계에서 제일 잘 팔리고, 이런 동계 올림픽에 제대로 출전도 못했던 나라가 이제 김연아 같은 선수가 있어서 금메달 수위 10위권 안에 들어가는게 목표고, 이런 인도에서도 한국 기업이라면 많이 대우를 해 주는 시대가 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께 메어 달리면서 다가 온 지난 시대와 다르게 요즘은 계속 하나님께 죄송하고, 황망한 소식만 자꾸 전해 드리게 됩니다. 일반인들도 찌푸리게 되는 교회 이야기들이 계속 주님께 보고가 되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스바냐에서 보여 주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하게 살고, 하나님에 대해서 무관심하게 될 때, 하나님의 일을 소홀히 하고, 하나님과 점점 멀어진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은 그냥 가만히 방치해 두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잘 확인하게 되어집니다.
스바냐 3:1,2을 보면 “1.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
2.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우리 믿는 자들이 놓치지 말고 보아야 할 부분이 있는데, 그 메시지가 스바냐서에는 숨어 있습니다.스바냐 3:7을 보면 “7.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지만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고 힌트를 주십니다. 스바냐의 이름처럼, 하나님의 속성은 분명하게 심판을 하시는 분이시지만, 그가 택한 백성, 여호와 하나님을 위해 예배하는 사람,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를 지키는 사람, 하나님을 위해 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 지금 심판의 큰 혼란이 눈앞에 닥쳤지만,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삼는 사람, 세상이 주는 기준에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기준에 따르기 위해 살아가는 그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이 위기 속에서 감추시고, 보살펴 주신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계십니다.
스바냐 3:15-17을 보면 “15.여호와가 네 형벌을 제거하였고 네 원수를 쫓아냈으며 이스라엘 왕 여호와가 네 가운데 계시니 네가 다시는 화를 당할까 두려워하지 아니할 것이라
16.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17.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라고 했습니다.
“이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라는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첫째는 '너를 보호하시는 전사와 같은'(like warrior, to keep you safe, NEB) 의미를 가지고 둘째는 '승리한 전사'(victorious warrior, JB)의 의미입니다. 시대적 큰 전쟁 속에서 숨어서 피하게 하시는 정도의 보호가 아니라, 승리하여, 이기시며, 그 가운데 보호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이야기 해 주십니다. 숨어서 눈치 보면서, 보호하시는 분이 아니라, 분명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보호하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그리고 스바냐 3:19,20의 말씀을 주십니다. “19.그 때에 내가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저는 자를 구원하며 쫓겨난 자를 모으며 온 세상에서 수욕 받는 자에게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리라
20.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라고 하셨습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자로 하나님이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를 통해서요? 강대국을 통해서? 아니요,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주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애 쓰는 우리 남은 자, 이 시대의 어려움 가운데 흔들리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관심을 가지고, 그 분의 뜻을 이루려는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잃어버린 명예와 영광을 회복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모세를 들어서, 다니엘을 들어서, 느혜미야를 들어서, 시대마다 들어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회복의 역사를 이루셨듯이 하나님이 그 회복의 역사를 하나님께 나오는 사람을 통해서 이루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여러 문제들을 해결하겠다고 여러 전문가들이 대안을 내 놓고 있지만, 그 대안들은 어디까지나 대안입니다. 이 험하고, 힘든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손안에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음을 우리는 잘 기억하고, 그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땅에서 다시 그 분의 회복하심을 경험함, 그 분의 영광을 나타낼 하나님의 일꾼이 되어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들려지는 교회 이야기들...안 좋게 들려지는 여러 교회의 이야기들.....또 이를 기회라고 여겨서 심하게 이야기하는 일반인들의 이야기, 대책없이, 대안없이, 책임없이 전개하는 세상의 일들....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도 그 이야기를 다 듣고 계시고, 스바냐를 통해 하셨던 말씀처럼, 당시의 시대를 정리하셨던 하나님의 역사처럼, 오늘날의 혼란스러운 여러 상황들을 우리 하나님도 분명히 정리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새로운 하나님의 회복시대에 정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온전히 받으며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이 혼탁하고, 좋지 않은 여러 이야기들 가운데, 그런 속상한 이야기가 들려지는 세상의 이야기를 듣고 낙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최근에 이런 저런 이유로 교회를 등한히 하는 사람들이 한국에는 많이 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미지근하게 신앙생활을 합니다. 축복을 놓치기 싫어서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에 나가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나타내고 살아가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남들이 교회를 욕할 때, 그냥 말은 안하지만, 마음으로는 동의를 하고, 그들의 이야기에 더욱 귀를 기울입니다.
그러니 점점 교회에 대한 열의가 식어지고, 형식적이 되어집니다.
습 3:16을 보면 “16.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고 했습니다.손을 늘어 뜨린다는 말은 히브리어 원문의 뜻은 '손을 늘어뜨리다' 라는 말로 공포와 근심으로 인하여 손이 아래로 축 처진 상태를 나타내는 표현으로서,
'손이 피곤케 되다'(사 13 : 7) 또는 '손 맥이 풀어지다' (삼하 4 . 1) 등으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의 안타까운 이런저런 소식을 들으면 손이 축 늘어집니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그런 소식을 듣고 우리의 손을 늘어 뜨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그러한 일들을 곧 정리하실 것이고, 그 가운데에서도 손을 늘어뜨리지 않고, 부지런히 모우고, 기도하고, 그 손으로 부지런히 주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이웃을 위해 섬기며,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는 그 손을 너무나도 사랑하시고, 좋아하시고,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두울 때 빛은 더욱 잘 드러납니다. 우리가 인도에서 열심히 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를 방문하신 분들이 공통적으로 하시는 말씀이 외형은 약간 허술한 것 같지만, 예배 속에 생동감이 있고, 우리 교회 교우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제 역할을 감당하는 모습이 부럽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습 3:17 “17.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예배를 드리고, 특히 인도에서 참 신앙생활하기 힘든 이곳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일에 자신이 맡은 일에 봉사하며, 우리에게 맡겨진 일이 힘이 겹지만, 감당하는 우리 교회와 우리 공동체를 통해 하나님이 너무 너무 기뻐하시는 것을 분명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우리가 이 인도 땅에서 주님을 향해서 나아가는 모습들, 지난주에도 아버지 기도회, 목요중보기도모임, 리더십 스쿨이 새롭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리가 이곳에서 하나님을 향해 나아가려고 애 쓰고 몸부림치는 이 모습을 우리 하나님이 너무나도 기뻐하십니다. 우리 교회를 통해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가는 모습을 우리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십니다.
이제는 개인적으로, 개인 이름으로 하기 보다는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교회들이 이 땅에 바로 세워지고, 이 교회들이 함께 힘을 모아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는 시간이 되어져야 할 것입니다. 지난 30년 인도의 한인교회 역사가 개교회주의, 개인주의로 되어지다보니, 우리가 그 안에서 서로 포용하지도 못하고, 싸우고, 서로 으르렁 거리기만 했습니다. 내가 하는 사역이 제일 좋은 사역이고, 우리만이 최고다라고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흐름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서로 목회자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교제하고, 목회 정보를 나누고, 사역도 공동으로 함께 합니다. 연합 부흥회도 하고, 예배 세미나도 하고, 청소년 연합집회도 하고, 좋은 행사가 있으면 서로가 참여해 주고 재정적으로도 돕고, 봉사로도 돕습니다. 내일부터는 이것이 확대되어 전인도한인교회들이 모입니다.
자기 교회 이름을 좀 내려놓고, 자기 개인의 이름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하나님의 교회들이 사명을 잘 감당하도록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지켜 나갈 때, 그곳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공동체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우리의 구역, 우리의 부서, 우리의 모임들이 잘 되어지도록 그 모임속에 녹아지고, 그 모임을 하나님이 받으시도록, 주님이 기뻐하시도록 우리가 협력해야 합니다. 혼자하는 것은 쉽습니다. 내 마음에 안들면 안하면 되고, 남의 비위 맞추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함께 하고, 연합하는 것은 참 어렵습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는 바로 이처럼 자기만 복 받으려고, 나만 인정 받으려고 하는데서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모든 것에 중심이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나만 보입니다. 내 중심으로 모든 것을 보고 해석을 합니다.
그 자기 중심의 ‘나’가 아니라, 우리의 공동체를 위해 자신을 감추고, 주님을 높이는 ‘나’로, 시대와 상황의 아픔이 있지만,그 가운데 온전한 헌신과 하나님을 향한 그 온전한 마음을 흐트러 뜨리지 않고 주님을 알아가고 닮아가는 믿음의 삶이 되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한 사람, 한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교회의 영광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스바냐 3:20 “20.내가 그 때에 너희를 이끌고 그 때에 너희를 모을지라 내가 너희 목전에서 너희의 사로잡힘을 돌이킬 때에 너희에게 천하 만민 가운데서 명성과 칭찬을 얻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고 하신 이 회복의 말씀을 우리가 경험하게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경건한 하나님의 사람들, 겸손하게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을 높이는 사람, 거짓되지 아니하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사람, 그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그 이웃들도 기뻐하는 하나님의 영광이 다시 시작되는 그 놀라운 축복을 놓치지 않는 우리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호와의 영광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요즘 들리는 우리 한국교회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면 너무나 마음이 아픕니다. 이로인해 낙담하고, 소망을 잃은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 잘못된 것은 오늘 스바냐 말씀처럼 도려내 주시고, 원래의 모습대로 회복이 되도록 우리 주님께서 붙들어 주시고, 그 가운데 낙담하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얼굴을 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회복하기 위해 나아가는 믿음의 사람들을 주님이 그 전능하신 주님의 품에 붙들어 주시고 감추어 주시옵소서. 다시 회복하실 때 나타날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사람들로 준비시켜 주시고, 이 인도에 있는 동안 우리의 델리한인장로교회를 통해, 우리가 속한 믿음의 현장들을 통해 더욱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우리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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