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마태복음 5:1-12 주님이 가르쳐 주신 참 된 복

      날짜 : 2014. 04. 01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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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22일 마태복음 5:1-12 주님이 가르쳐 주신 참 된 복

         

        구정이 되면 모든 사람들이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를 합니다. 카카오 톡이 되면서 카톡 연하장을 예쁘게 해서 보내시는 분이 많습니다. 편하기는 한데, 저는 직접 전화로 인사 드리거나, 그 분에게 관계된 의미 있는 축하의 글로 보내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어쨌거나 내용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포함을 시킵니다.

        중국도 이 시기가 되면 이란 한자를 곳곳에 장식을 하고, 복 받기 위한 수 많은 행사들이 펼쳐지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될 정도의 많은 일들을 벌립니다. 어딘선가 굴러 들어올 자기 자신을 위한 축복을 부르는 각종 전통행사와 종교행사들이 중국 전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시기가 좀 달라서 그렇지, 인도의 많은 축제들이 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그 신에게 잘 보여서 결국에는 나 자신과 우리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을 받기 위해서 정말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너나할 것 없이 연초가 되거나, 명절이 되면, 사람들은 복을 기다립니다.

        여러분들은 어떤 복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옛날에 한 은행 광고가 새해 인사를 바꾼 적이 있었습니다.

        여러분.....부자 되세요...” 새해 인사로 적합할까요?

        부자가 되면 복 받은 인생일까요? 그러면 모든 부자가 다 행복합니까?

        부자가 되고 나서도, 충분히 가질 만큼 가졌다고 생각되는 분들이 항상 텔레비전 뉴스에 등장을 합니다. 주된 원인은 좀 더 부자가 되려고가야 할 정도의 길을 걷지 않고 다른 길을 걷습니다.

        공부를 아주 잘하는 것, 뭔가의 특별한 것을 잘하는 것, 인생을 걱정 없이 사는 것, 아무 갈등 없이 사는 것이 우리의 바람은 될 수 있지만,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고 우리가 과연 복 받은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가 복 받은 사람이 부러워하던 사람이 갑자기 인생이 돌변하여 자살이나, 뒤바뀐 인생을 사는 경우를 우리는 참으로 많이 보아 왔습니다. 대기업 회사 사장이 검찰 조사를 받다가 건물에서 뛰어내려서 죽는 사건도 있었고, 유명한 정치인이었지만, 한강다리에서 잠시 차를 세워 놓고 뛰어내려 죽은 일도 있었습니다. 장례식장을 가보면 유명연예인들의 자살로 인한 장례행사가 생각보다 참으로 많습니다. 남들은 다 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정작 그들은 왜 그런 극단의 선택을 하게 되는 걸까요?

         

        혹시 인도에서 살기가 힘드니까, 한국으로 가고 싶은 분들 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한국이 살기가 더 어려우니까? 엄두가 안 나서 여기에 그냥 계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가끔 상상을 합니다. 그럼 인도도 아닌 한국도 아닌 제3의 나라에서 좀 축복 받는 삶을 살고 싶은 상상은 한 번쯤 해 보셨을 것입니다. 옛날에는 미국에 가는게 축복처럼 느껴져서 미국으로 많이 갔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미국을 축복이 넘치는 나라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최근 조사 보고서를 보니까 덴마크에 대한 성적이 잘 나왔습니다.

        덴마크가 행복지수가 높은 이유는 아이들이 시험에서 7학년까지 시험도 등수도 없습니다. 덴마크의 초등학교는 우리의 중학교 과정을 포함해 9학년인데 7학년까지는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 없고 등수도 없고, 공부를 잘한다고 상을 주는 일도 없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은 여러 가지 능력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여기고 학생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발견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고등학생들도 대학에 갈지 안 갈지, 무슨 학과를 갈지도 걱정 없고 느긋합니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어떤 압력도 받지 않고 자신의 앞날은 스스로 찾습니다.

        그 외에도 병원진료비 전액 무료, 실직하면 2년간 정부에서 급여, 교육비도 전액 무료, 대학등록금도 공짜이고 대학생이 되면 매달 우리 돈으로 약 120만 원씩을 생활비로 받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덴마크인들은 외롭지 않습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어떻게 돌볼지에 대해 별 걱정이 없습니다. 이웃끼리 다 연락을 해서 오늘은 어느 부모가 아이들을 돌볼 것인가를 정합니다. 세계에서 사람들간의 조직률이 가장 높은 곳이 덴마크인데 이런 이웃공동체들이 사람들을 외롭지 않게 하고 행복감을 높여주는 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자살률이 높은 나라를 치면 덴마크가 빠지지 않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을 계속 들어보면 우리가 복에 대해서 잘 생각해 봐야하고, 참된 복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복을 구해도 잘 구해야 될 것 같습니다. 남들이 복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복이 아닌 경우가 있기에 우리의 인생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이 복을 잘 구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복에 대해서 가르치고 계십니다. 복에 대해서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내용을 우리가 잘 귀담아 들음으로 우리가 예수님으로부터 받게 될 참 복을 분명히 알고, 복 받는 삶이 되기를 분명하게 간구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복이 아닌 것을 복인 줄로 알고 구하다가 잘못된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복을 구해도 바르게 구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예수님은 광야에서 제자들을 택하시고, 병을 고치시고, 많은 무리들이 따랐을 때, 한 산에서 이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셨습니다. 가르치셨던 말씀 가운데 가장 먼저 이 복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하셨습니다.

        이 부분에서 8가지 복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부분을 예수님의 산상수훈의 팔복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에 나온 8가지 복들을 이야기 하실 때 특별한 특징들이 있습니다. 먼저는 복이 있도다라고 선언을 하십니다. 그리고 둘째로는 복에 합당한 사람은 어떤 일을 하였는가라는 조건을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이 복을 받을 사람이 누릴 결과를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한글 성경은 문장 구조상 이것이 약간 바뀌어서 기록이 되어집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대로, 무엇을 하는 사람은 복이 있을 것인데, 그러면 어떤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당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온 사람들의 층은 매우 다양했습니다. 어떤 동종집단도 아니고, 나이나 직업도 다양했기에 예수님은 쉽고도 간결하면서도, 그들에게 꼭 필요한 내용으로 그들이 쉽게 기억할 수 있는 내용을 전달하셨습니다.

        당시의 분위기는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로, 우리 나라로 말하면 일제시대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였지만, 지금 힘이 없습니다. 이방인이 자신들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뜻이 선포되고 실현되기 보다는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로마에 붙는 정치인,종교인들이 많았고, 그 와중에도 동족들을 배신하는 사람들도 생기고, 눌려있던, 소위 말하면 소망이 없던 시기의 사람들이였습니다. 로마 문화를 통해 뭔가 새롭고 거창한 문물들이 전해져 왔을지도 모르지만, 이 이스라엘 백성 자체가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장 중요시 하는 사람들이라, 하나님의 도우심을 가장 절실히 필요로 했습니다. 그런 상황에 예수님이 등장하셔서,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 주시고, 기적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오래전에 예언되었던, 오랫동안 기록이 되었던 바로 그 메시야가 온 것 같은 뭔가의 기대감에 사로 잡혀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소망의 메시지가 너무나 절실했던 시대에 예수님께서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 팔복을 그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들으면 정말 말 그대로, 다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제대로 가진 것이 없고, 힘도 없고, 미래가 불투명하고, 내일이 기약되지 않은 그들이기에 이 예수님의 복은 너무나도 크게 가슴에 와 닿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예수님이 팔복이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냐는 것입니다.

        오늘 읽어보면 약간 우리의 실정하고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부유하고 즐거워하는 사람이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슬퍼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십니다, 박해를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합니다.

        조금 억지로 맞춰보려고 해도, 지금 나는 심령이 가난하지도 않고,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고, 예수님을 위해 핍박을 받지도 않습니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좀 더 솔직하게 접근하면, 우리가 주님의 복을 받으려면 이 복 받을 내용대로 삶을 살아야 하는데, 이 내용들을 뒤집어서 읽어보면, 내가 처한 상황과 거리가 좀 멉니다.

        예를 들면, 나는 지금 심령이 가난하지 않습니다. 나는 이름 있는 회사에 다니고, 인도에서는 한국보다 대우를 해 주어서 차도 있고, 집도 한국보다 좋은 집에서 삽니다. 골프도 치고, 내가 몸으로 직접 일을 하지 않아도 인도 사람이 일을 다 합니다. 좋은 호텔과 좋은 식당들에서 회의도 하고, 식사도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높은 사람들이 자주 오기에...내가 지금 심령이 가난하다고 이야기하기에는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그렇게 깊이 동조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둘째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애통은 무슨 애통입니까? 분통이겠지요? 여기서 사용된 단어 mourn은 슬퍼하다, 한탄하다, 죽음에 대해서 애도하다 등의 슬픔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인데, 우리가 사는 인도가 힘이 들기는 하지만, 우리의 삶이 그렇게 비참하고, 좌절되고 눈물이 날 정도로 곤고하지는 않습니다. 정말 너무 절망이 깊고 한탄할 정도면 인도에 있지 않습니다. 한국 가면 됩니다. 그래도 아직은 견딜만하니까, 뭔가가 인도에서 기대감이 있고, 가능성이 있으니까 인도에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경에서 이 원 뜻은 죄에 대해서 내가 얼마나 애통해하느냐? 라는 것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서 우리와 주님과 거리가 멀어졌는지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아쉬움이 애통이 될 정도로 그렇게 우리가 지고하지 않습니다. 그냥 인도니까? 요즘 세상에서 뭐 그 정도 죄야 다 짓는거지 뭐, 나 정도야 양반이지 뭐, 남 한테 안 속고 살려면 나도 더 강해져야지라고 하면서 점점 더 무뎌집니다. 주님과 좀 멀어졌다고, 그렇게 애통해 하는 분들을 최근에는 잘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헌신하지 못했다고, 내가 은혜의 자리에 가지 못했다고, 내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빠지게 되었다고, 이 일로 안타까워서 애통해 하시는 분들을 찾아보기가 힘이 듭니다. 오히려 엉뚱하게 적용이 되어집니다. 조금만 거리끼는 일이 있어도 이것도 다 하나님의 뜻이야, 다음에 하지 뭐, 그래 나 없이 잘 되나 보자 등의 마음들이 우리 마음속에 있지, 주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렇게 애절하게 애통하는 모습들을 보기가 참 어렵습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지켜 주었던 신앙의 정신을 우리가 많이 퇴보시켰습니다.

        고통받는 지역의 성도들은 성경책 자체도 없을 뿐만 아니라 들고 다니다가 걸릴까봐, 성경 하나를 찢어가지고, 나누어서 읽고, 그리고 읽은 성경을 다시 줘야 되기에 그것을 다시 적어 놓든지, 아니면, 통째로 암기한다는 중국 가정교회의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것들이 남의 이야기처럼 되어진지는 너무 오래 되었습니다.

         

        세 번째는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라고 했습니다.

        인도와서 제일 부딪칩니다. 인도와서 처음에는 길거리 걸인들에게 돈도 주고 그랬는데, 그 아이들을 관리하는 조폭이 있고, 아이들도 일부러 다치게 만든다고 하니까, 그렇게 사는 것을 오히려 즐기고, 구걸을 할 때 돈을 안주면, 맨 나중에는 저주를 퍼붓는다는 것을 알고 난 뒤에는 섬짓하게 되어서 돈을 잘 안 주게 됩니다. 온유하게 해야 하는데, 인도 사람들에게 그렇게 온유하게 했다가는 늘 당합니다. 그러다보니, 가장 가까운 가족들, 회사 동료들에게도 온유하게 안합니다. 잠시 만났다가 잠시 뒤에 갈 사람들인데, 뭐 그렇게 예우를 해 줄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온유해야 땅을 받는다고 하는데, 땅을 받는 축복은 받고 싶은데, 온유하게 살면 사람들이 바보처럼 여깁니다.

        이것도 그렇고...

        이러게 계속 팔복들을 하나씩 살펴보면, 오늘날의 우리 현실에서 우리가 복 받을 만할 일들이 참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당시 이스라엘이나, 복음이 제한적으로 접해지는 곳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면서 억압되어 살면 이 팔복이 잘 들어 올텐데,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는 쉽게 이것을 복이라고 하면서, 그 조건에 맞는 행동을 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좋은 대학을 나와서 좋은 직장을 가지고 편안한 삶을 가지려면 토익, 토플을 몆점을 받도록 힘 써라...그리하면 너희에게 복이 임할 것이요....이러면 잘 알아 들을텐데...

        인간관계를 잘 가져서 그 속에서 인맥을 만들고, 그들을 너의 성공의 발판으로 삼아라, 단 득이 되지 않고 손실이 되면, 언제든지 짓밣아 버려라, 이것이 생존의 법칙이다....라고 하면, 잘 알아들을텐데...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복들은 왠지 오늘과 맞지 않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는 그렇게 매력적인 복이 아닙니다. 이렇게 살면 재미없습니다. 더 복된 것 같은 좋은 삶이 많은데, 이렇게 뒤처지고, 손해보고, 바보 같은 삶을 사는 것은 나에게 마이너스 인생이라고 생각하고 포기하게 되어집니다.

         

        그냥 앞의 조건부를 빼고 차라리 주실 복만 이야기 하면 그것은 마음에 듭니다.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니요,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등등..., 축복은 다 조건들이 괜찮고 타당한데, 복들을 받기 위한 조건들이 요즘 우리세대에는 잘 맞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정 합니다. 다른 것들은 포기하고, 그래도 괜찮은 것이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씀인데, 이 말은 싸우지 말라는 것인데....결과적인 복은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좀 잘 살면서 누리고 과시하고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알려지면, 좀 부담이 됩니다. 그래서 사실 세 번째 복인 온유한 자가 되어서 땅을 기업으로 받고 싶은데’.....도대체 이 온유라고 하는 것이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복들 앞에 두 가지 성향의 단어들을 덧붙이면, 재미있는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 단어의 특징이 하나는 자기중심적, 이기적인이라는 특징이고, 다른 하나는 이타적인,남을 위한이라는 단어의 특징으로 표현이 되어집니다.

        먼저 주님이 가르쳐 주신 복들 앞에, “자기중심, 이기적이라는 스타일의 단어를 붙여보면 내용들이 잘 맞지 않습니다. 마치 쌓아놓은 블록이 다 무너지는 느낌이 듭니다.

        나를 위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자신을 위해 애통해 하는 자는, 자기 자신에게 온유한 자는, 자기 가족을 위해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자기를 긍휼히 여기는 자는,,,,,” 다 닭살이 돋는 내용으로 바뀝니다.

        그런데 내용 앞에 이타적인 성격이 있는 단어로 이웃을 위해라는 단어만 넣어 보십시오.

        이웃을 위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이웃을 위해 애통하는 자는

        이웃을 위해 온유한 자는

        이웃을 위해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

        이상하게도 문자의 조합이 잘 맞습니다. 저는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 주님이 주신 팔복을 나만을 위해 쌓아가려고 할 때는 무리가 생기지만, 이것을 이웃을 위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이 복을 헤아리며, 이 말씀대로 살아갈 때는 이것이 가능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팔복 앞에 더 멋진 조합이 있는데 그 앞에 주님을 위해라는 말을 붙이면 더욱 깊은 뜻이 되어집니다.

        주님을 위해 심령이 가난한 자는...”

        주님을 위해 애통하는 자는

        주님을 위해 온유한 자는

        주님을 위해 의에 주리고 목 마른 자는등등...

        우리가 참된 복을 받으며 살도록 하는 중요한 원리가 오늘에도 분명히 적용될 수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복된 삶을 사는 것은 나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함께 하고, 특별히 우리 주님을 위해서 살아갈 때, 우리 주님으로부터 오는 참된 복을 경험할 수 있다는 말씀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것을 가르치시고, 이 땅에서 사실 때 이 말씀대로 복된 삶을 사셨습니다. 자기 몸을 챙기며 사시지 않았습니다. 8:20에는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자신을 위해 재물을 쌓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남을 위해 애통해하시고, 그들과 함께 울어주시고, 그들을 긍휼이 여기셨고, 화평케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내어 주셨습니다. 이 땅에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지키기 위하여 사셨습니다.

         

        우리가 이 원리를 잘 기억하면 우리 인생은 복 받는 삶이 됩니다.

        공부를 해도 자기를 위해공부하면, 팔복의 내용이 말이 안 되는 것처럼, 공부를 해도 남을 위해 하면 그 깊이가 달라집니다.

        저는 영국 옥스퍼드 청년들의 눈 빛이 남다른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대학에 가기전에 1년 정도 준비를 하면서, 6개월 정도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고, 어려운 나라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남은 6개월을 그 나라에 가서 살아보고, 봉사도 하고, 정말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가슴에 분명히 전달 받고 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왜 자신이 공부를 해야하는지 목표를 가지고 공부를 한다고 합니다. 정말 학생들의 진지한 태도와 눈매에서 불이 났었습니다.

        비전트립, 단기선교를 온 청년들이나 성도들, 계산적으로 하면 차라리 이곳에 돈을 만들어서 계좌로 송금해 주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들이 이곳에서 어려움을 겪고, 힘든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그 가운데 예수님의 역사와 능력을 보면서, 인생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참된 복인지를 알고 남은 생애를 살아갑니다.

        비전트립, 단기선교를 다녀가고 나면, 돈 씀씀이가 달라집니다. 시간 씀씀이가 달라집니다. 자신의 목표가 달라집니다. 복되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한 번 분명히 알게 된 사람은 이것이 힘들지만 절대로 놓치지 않습니다.

        작년에 큰 이슈가 되었던 LA 다저스의 투수 커쇼, 2014년에도 미국 메이저리거 최고 연봉 계약자로 3070만 달러, 7년간 21500만달러에 계약을 했습니다. 역대 최고입니다. 그런 그가 세계적인 투수임에도, 비정기 시즌이 되면, 아프리카 잠비아에 갑니다. 신실한 크리스찬인 커쇼는 청소년 시절에 자기도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섬기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하였고, 자기의 아내와 신혼여행을 아프리카 잠비아로 갔고, 그곳에 희망의 집이라 고아원을 짓고, 비정규 시즌에는 자신이 직접 가서 그곳에 살면서 봉사를 합니다. 그리고 시즌중에는 삼진 아웃 하나를 잡을 때마다 100달씩을 선교지로 적립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이웃과 주님을 향해 방향을 바꿀 때,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구정을 맞아 그냥 인사치레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 주고 받으며 그냥 지내는 시간이 아니라, 진정한 참복을 가르쳐 주시고, 참복을 받는 삶을 사시며, 우리를 위해 피 한 방울, 물 한방울까지 다 쏟으시며, 우리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기억하며, 참된 복을 경험하며, 누리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에게 진정한 참된 복을 가르쳐 주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우리가 이 복을 어떻게 얻는지 분명히 알려 주셨습니다. 나를 위해 복 받기를 간절히 구하는 일반적인 삶이 아니라, 이웃을 향해, 주님을 향해 참된 복을 알아가며, 누리며, 경험하는 은혜의 시간이 되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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