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29 요한계시록 21:3-4 다시는 사망이 없고

      날짜 : 2014. 01. 23  글쓴이 : 관리자

      조회수 : 2229
      추천 : 0

      목록
      • 20131229일 요한계시록 21:3-4 다시는 사망이 없고

         

        동안교회에서 사역할 때 만난 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나이도 많으셨는데, 청년들도 감당하기 어려운 아프리카 팀을 서,너번씩 다녀올 정도로 굉장히 열정히 많으신 장로님이셨습니다. 저와도 캄보디아 사역을 같이 하셨던 장로님이십니다. 동안교회를 부임했을 때 새벽예배를 인도하고 오는데 장로님이 교역자 사무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제 앞에서 무릎을 꿇고 목사님 우리교회 선교를 위해서 목사님이 정말 힘 써 주셔야 합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청년들에게 이 장로님은 참 존경 받는 장로님이셨습니다. 그 힘든 선교훈련도 같이 받고, 한 달씩 가는 아프리카 사역을 같이 가고, 청년들이 정말 마음으로 존경하는 장로님이셨습니다. 총회에서 일을 하는 동안 뵙지 못했기에 최근에 안부를 묻기 위해 전화를 드리려다가 차일피일 미루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날 페이스북에 장로님 얼굴이 실린 장례예배 주보가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75세셨는데,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습니다. 평소에 장로님이시지만, 근육운동을 많이해서 방송 출연도 하고, 건강하셨던 분이셨는데 돌아가셨습니다.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페이스북은 아직도 최근에 장로님이 올린 글이 그대로 실려 있는데, 제가 글을 올려도 장로님이 읽으실 수 없습니다. 조화를 보내도 제 마음이 장로님에게 전달되지 못합니다.

        늘 할 수 있던 전화 한통화인데도, 장로님이 돌아가시고 나니까 더 이상,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지난주에는 GSS 전상희 선교사님, 박선희 선교사님이 지난 시간에 너무나 감사하다고 식사 대접을 해 주신다고 초청해 주셨습니다. 한인교회 목사가 식사를 대접해야 하는데, 주변에 계신 선교사님들이 참 저희들을 많이 돌보아 주십니다. 이번에 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들의 대화속에 새롭게 발견 되는게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분들이 지난시간 암에 걸려서 죽음을 눈 앞에 두고 계신 경험이 있기에 이제는 세상이 달라 보인다는 것입니다. 병상에서 정말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했다가도 결국 이겨내지 못하고 죽어서 나가는 바로 옆의 환자들을 보면서, 늘 자기도 언젠가 저런 순서가 있겠구나를 생각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병상에서 이겨내고, 항암 치료를 받기 위해서, 평소에 먹지도 않던 음식을 먹으면서 기운을 차리려는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죽음 앞에서 많은 한계를 느끼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치료가 되어서 인도에 오시니까, 그 모든 것이 더욱 새롭고, 마음에 여유가 생기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는 사역을 했어도 인도 사람들에게 때로는 아쉬움을 표현하기도 하고, 조밤심을 가지기도 하셨지만, 이 죽음의 시간이 어떤 것인지를 경험하게 되니까, 그 모든 것이 다르게 생각되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죽으면 모든게 다 끝나는데, 왜 그렇게 마음에 분노하고, 조급해하고, 안타까워했을까를 생각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내게 주신 이 하루가 정말 너무나 좋은 날이고, 복된 날인데, 왜 이 좋은 날을 그렇게 화를 내고, 의미없이 살아야 되는가?라고 물으시면서, 하루 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보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저희들이 사역하면서 힘든 일도 이야기하고, 속상한 이야기도 드렸더니, 만약에 죽으면 후회되게는 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중요한 일이 있어도 그 모든 것이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냐고, 주님 앞에서 그저 복되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이 땅을 마감하고, 주님 앞에 갔을 때 후회되지 않는 인생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병원심방을 갔더니, 화장실에 이런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제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은 환자들이 가장 그리워하는 그 날입니다. 오늘도 행복하게 사세요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몇 개월전에 한 선교사님이 인도를 철수하셨습니다. 갑자기 뱔견된 병 때문이였습니다. 심방에 이상이 있는데, 이 병을 가지면, 언제 심장이 멎을지 모른다는 의사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합니다. 이 병을 가지면 평균 40세를 못 넘기는데, 선교사님은 지금 50세입니다. 그리고 수술을 하면, 이것이 더욱 위험해서 수술도 불가능하기에 그냥 하루 하루 살려주시면 그냥 사는 것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선교사님은 그 이후로 매일 아침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께 하루 하루를 더욱 더 감사하면서 사신다고 하셨습니다.

        올해 우리는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건강하게 2013년 주일을 성수하고, 주일 예배를 드리고, 건강하게 다음해를 맞이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나 귀한 일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남의 이야기가 되는 죽음도 언젠가는 우리의 이야기가 되어집니다.

        성경도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 안에도 많은 죽음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구약 시대부터 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죽음의 이야기가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3장에는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면서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하지 않으면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3:3 “3.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4장에서는 가인이 자기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렇게 시작되어진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성경 전체에 계속해서 나옵니다. 노아,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 그리고 모세에게도, 그리고 사무엘상,,열왕기 상,, 역대기에서도 보면 그 인류 역사에 흐름에서 이 죽음은 항상 존재해 왔습니다. 신약에 와서도 우리는 이 죽음을 통해 가장 큰 사건을 경험하게 됩니다. 바로 예수님의 죽음을 보게 되어집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도 죽음은 피하지 않고 찾아 왔고, 많은 순교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죽음에 대한 우리의 삶에 대해서 그 이야기는 성경에 계속 되어집니다.

        바울 사도의 옥중서신이라 불리워지는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등은 모두 바울사도가 죽음을 앞두고 기록한 서신들입니다. 이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삶의 주위에 너무나 깊이 다가 와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한결 같이 생각하는 것은 이 죽음이 나의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오류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오는 순서가 있지만, 가는 순서가 없다고 했습니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오늘 성경 요한계시록은 성경의 맨 마지막 책입니다. 이 책에는 앞으로 우리에게 되어질 일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요즘 우리가 QT를 이 요한계시록으로 하고 있는데, 작년에도 한 번 전체를 QT를 하고, 이번에 다시 QT를 하게 되어서 그런지, 이번에는 더 많은 부분이 깊게 이해되고, 그 말씀들에 대한 기대감이 많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우리에게 죽음에 대해서,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내용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은 우리에게 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최후 심판에 대해서 기록한 앞장까지의 내용에 이어서 21장에서는 새하늘과 새 땅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의 특징은 구약에 나와 있는 표현들을 통해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내용들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 구약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 요한계시록에서 비유적으로 말한 내용은 이미 구약에서 예언한 내용이라든지, 이미 암시한 내용이라는 연결점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도 구약 이사야 60,65, 에스겔 40-48장의 내용이 배경이 되고 있고, 창세기 1-3장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새하늘과 새 땅에 대해서 언급되어집니다. 저자인 사도요한이 언급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통치 질서가 완전히 적용되는 곳으로서 초공간적이며, 인간들이 여태껏 체험할 수 없던 상태를 간직한 곳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베드로 후서 3:13에서 베드로는 이곳을 도덕적이며, 영적인 측면에서의 새로운 곳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의의 거하는 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 카이네는 시간적으로 새롭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네오스와는 달리 질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카이네로 표현된 새 하늘과 새 땅은 죄악과 사망과 고통이 지배하던 옛 땅이나 하늘과는 달리 하나님과 어린영을 따르던 참된 성도들의 공동체로 죄와 사망과 고통이 영원히 사라져 버린 곳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21:3,4을 보면 “ 3.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귀한 표현에 핵심에서 보여주신 것이 눈물을 씻기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눈물이 하나님의 뜻을 어긴데서 시작되었고, 죽은 자들에 대한 애통으로, 그리고 고통과 울부짖음에서 생기는 것인데, 이것에서 나타나는 눈물을 우리 주님께서 씻어 주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눈물을 흘릴 정도까지의 그 슬픔이 다시는 나타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하나님의 깊은 사랑과 자비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 표현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섬세하신지를 다시 한 번 느껴보게 되었습니다. 그냥 단순한 표현같지만, 이제는 주님께서 계신 그 새하늘과 새 땅에서는 눈물을 흘릴 일이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올 한해, 몆번 우셨습니까? 인도에서 와서 운게 평생 운 것 보다 많으신 분도 계시죠?

        여러분 남자는 안 웁니까? 남자도 웁니다. 저는 좀 눈물이 많습니다. 애국가 1-4절까지만 봐도 눈물을 흘립니다. 감격해서도 눈물을 흘리는데, 힘들고, 어려울 때는 얼마나 울겠습니까? 안보는데서 그렇지 많이 웁니다. 기도하면서도, 찬양하면서도 많이 웁니다.

        제일 많이 울 때가 언제 였습니까? 내 마음을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 때, 나만이 가지고 있는 그 고통으로인해 얼마나 많이 울었습니까? 지금도 사실 펑펑 울고 싶은데, 체면 때문에, 남이 볼까봐 못 울고 계신 분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이 마지막 성경인 요한 계시록에서 보여 주시는 소망의 말씀은 우리가 더 이상 울지 않게 될 것이라고, 눈물을 흘리지 않는 곳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마감하고, 주님을 영원히 만날 그 곳에서는 우리는 더 이상 울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너무 좋습니다. 뭐 황금이 이렇고, 저렇고 이야기들이 있는데, 저는 제가 이 세상을 마감하고, 주님이 예비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을 가게 될 때, 그곳이 눈물이 없는 곳이라는 그 말씀 자체만으로도, 얼마나 우리 주님이 섬세하게, 배려있게 우리의 아픔을 아시고 준비해 주신 곳을 기대하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끝까지 낙심하지 않고, 기다리고, 참고 주님을 기다리는 자를 위해 이 영원한 기쁨의 장소가 예비가 되었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의 하루하루가, 언제 죽을지를 모르고 두려워하거나, 초초해하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해 두신 그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한 한걸음 한걸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땅은 영원한 곳이 아니라, 임시이고, 잠시이고, “나그네같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시편 144:4에는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전도서 6:12에도 헛된 생명의 모든 날을 그림자 같이 보내는 일평생에 사람에게 무엇이 낙인지를 누가 알며 그 후에 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을 것을 누가 능히 그에게 고하리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러기에 그림자 같은 인생, 나그네 같은 우리 인생에 너무 붙잡혀 살아서는 안됩니다. 이것은 본체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고집하고 있는 것, 붙잡고 놓지 않고 있는 것, 그 모든 것이 이 세상에서는 죽으면 끝나는 일이라면, 우리가 그것에 너무 연연해서 그것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의 삶을 낭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는 이상한 신하 한 사람을 두었다고 합니다. 그는 아침마다 다른 일은 전혀 하지 않고 대왕의 침실 앞에서 "대왕이여! 당신은 죽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menber, that you must die!)."라고 한 마디 말만 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28세 때 내란 음모 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는 영하 50도가 되는 겨울날 형장에 끌려와 기둥에 묶였습니다. 사형 집행 시간을 생각하며 시계를 보니 땅 위에서 살 수 있는 시간이 딱 5분 남아 있었습니다. 28년을 살아왔지만 단 5분이 이렇게 천금 같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이제 5분을 어떻게 쓸까 생각해 봤습니다. 형장에 함께 끌려온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는 데 2, 오늘까지 살아온 인생을 생각하는 데 2분을 쓰기로 했습니다. 남은 1분은 이 시간까지 발붙이고 살던 땅과 자연을 둘러보는 데 쓰기로 했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는 데 2분이 흘렀습니다. 이제 삶을 정리하자니 문득 3분 뒤엔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앞이 캄캄하고 정신이 아찔했습니다. 다시 한 번만 살 수 있다면 순간순간을 정말 값지게 쓰련만! 이윽고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로 그때였습니다. 형장이 떠들썩하더니 한 병사가 흰 수건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황제의 특사령(特赦令)을 받고 온 병사였습니다. 사형을 면한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베리아에서 유형 생활을 하는 동안 인생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고, 죄와 벌,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같은 명작을 남겼습니다.

        오늘 2013년을 마무리하는 우리는 이 2013년에 우리에게 주신 시간들, 건강들, 그리고 만나게 해 주신 사람들, 그리고 우리의 물질과 재능을 과연 얼마만큼 의미있게, 가치있게 소중하게 사용했습니까? 아니면 그냥 그 귀중함을 모르고 하루 하루를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그냥 흘러가듯이 아무 생각없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 죽음을 늘 생각을 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서, 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이 죽음 뒤에 믿는자에게 약속해 주신 새하늘과 새 땅, 그곳에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그 곳을 가기 위한 아름다운 준비를 하는 곳을 가는 아름다운 삶이 하루 하루 쌓여야 합니다.

        전상희 박선희 선교사님이 암을 겪고 하신 말 중에 마음에 새겨지는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재능과 물질들이 있었는데, 이것을 가지고, 이 땅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이것을 잘못 써서 나중에 하나님 앞에 갔을 때, 하나님 앞에서 이 땅에서 아무것도 전해드릴 이야기가 없다면, 얼마나 안타깝겠냐고 하셨습니다.

        2013년을 돌아보면서, 우리가 얼마나 충실하게 하나님을 위해서 나를 드렸습니까?

        나의 시간과 재능과 물질, 그리고 나의 삶의 우선 순위를 주님을 위해 얼마나 잘 썼는지를 우리는 이해가 지나가는 이 시점에서 분명히 결산을 해야 합니다.

        결산하지 아니하고, 또 다시 그냥 “Happy New Year"만 해치는 것으로 2014년을 맞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찾아올 죽음...언제일지 모르는 그 순간을 위해,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허락된 하루, 나의 삶, 나의 이웃, 나의 교회, 나의 가족, 그리고 지금 나를 만나 주시는 주님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기억하며 주님 안에서 새해를 준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사랑의 주님,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어렵고 힘들고, 피하고 싶은 관문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믿는자에게는 그 것이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임을 믿습니다.

        이 소망을 가진 믿는자로 살게 해 주시고, 오늘 함께 있는 우리 가족들이 귀하고, 우리 교우들이 귀하고, 함께 지내는 이 인도 땅이 귀합니다. 이 귀한 하루 하루를 마치고 이제 2013년을 보내고, 2014년을 맞이하는 우리 성도들이 새해에는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주님을 바라며, 하나님과 기쁨으로 교제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더불어 언제일지 모르는 우리의 마지막 순간도 주님이 늘 붙들어 주사, 부끄러움이 없이, 후회함이 없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신고하기

    • 추천 목록

    • 댓글(0)

    • 글을 작성시 등록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