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4 골로새서 1:15-22 예수님은 누구신가

      날짜 : 2014. 01. 23  글쓴이 : 관리자

      조회수 : 1564
      추천 : 0

      목록
      • 20131124, 예수님은 누구신가?

         

        오늘 우리 주위에 사람들이 찾아와서 우리에게 와서 당신이 믿는 예수님은 누구십니까?라고 묻는다든지, 아니면 왜 당신은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뭐 여러 가지 대답이 있을 것입니다. “그 분은 나를 위로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 분은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 분은 나를 축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라고 이야기를 할 수 도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대로, 내가 느낀대로, 그 분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주님에 대해서 깊이 경험하지 못하고, 충분하게 주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면 충분하게, 분명하게 주님에 대해서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습 이상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 더욱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분은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습니다.”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살아나셔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믿음이 없으니까, 자신도 설명을 하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공부도 많이 하시고, 똑똑하신 분이시고, 연세도 좀 있으신 분인데, 믿은지 얼마 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식사 기도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제 기도의 끝에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했더니, 통 마음이 불편하셨던 것 같습니다. 식사내내 망설이시더니, 결국 물으셨습니다. “왜 살아계신 예수님의 이름으로...”라고, “지금 그 분이 살아계신 거냐고...” 물으셨습니다.

        이처럼 믿음이 적든 많든 이성을 초월한 예수님의 신적인 부분에 대한 언급을 하면 자신있게 대답을 못합니다. 종교적 인물로 받아들이고, 사랑을 행한 실천가로는 받아들이고, 희생을 하신 분으로는 받아들이는데, 그 분의 부활, 영생, 심판, 기적과 능력, 구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는 본인도 믿어지지 않으니까 쉽게 이야기를 못합니다. 그러니까 하는 이야기가 일단 믿어봐, 그러면 좋아, 마음이 편안해져.....교회가면 밥도 줘....이렇게 소개를 하게 되어집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는 밥은 식당에서 먹으면 되는데, 왜 구지 교회 가서 밥 먹냐고, 내가 뭐 없는 사람도 아닌데, “그런거 말고, 왜 당신이 교회를 가는지, 그리고 당신이 믿는 예수님은 누구신지 분명하게 말을 해 달라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에 대한 분명한 답을 예수님이 스스로, 직접 하시는 장면을 우리는 보게 되어집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소개하시면서, 그 개념을 아버지의 집이라고 묘사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거할 곳이 많다고 하시면서,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영접하면 그곳에 함께 있게 하시겠다고 직접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14:2,3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거할 곳이 어떤 번역 성경에는 “mansion, 저택으로 되어진 곳도 있고, 어떤 번역 성경에는 “homes, 가정으로 소개 되어져 있는데, 헬라어 원어는 모나이라는 단어로 머물다라는 동사인 메노에서 파생이 되어진 단어입니다. 원어적인 의미는 안식처, 거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이 나그네이고, 이 세상이 유한하다면, 영원한 안식처, 거할 곳을 소개해 주시면서,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해 주실 것이라고 예수님은 직접 말씀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하니, 제자중에 하나인 도마가 궁금했습니다. 궁금하거나, 의심이 가면 못 참는 캐릭터인 도마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14:5 “도마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주님, 가시려는 그 길, 우리에게 알려 주시려던 길,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알 수 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분명하게 발견하게 되는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모르는 것이 아직도 너무나 많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치 모든 것을 안다라고 생각하고, 특별히 과학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일본 후쿠오카 과학관에 다녀 온 적이 있는데, 어린이 과학관을 너무 잘 꾸며 놓았습니다. 그곳에서 입체 영화를 상영해 주었는데, 그 내용은 우주의 생성에 관한 최첨단 영상으로 지구의 시작과 현재, 그리고 과학이 얼마나 많은 부분에서 연구를 했는지, 그리고 그 연구를 많이 해 놓은 일본의 우수성을 소개하는 과학관이었습니다. 다 보고나서 느낀점이 어릴적에 아무 생각없이 와서 이 영상을 다섯 번 정도만 봐도 아이들이 세뇌되겠구나...“과학”....이거 참 위험하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류가 과학의 혜택을 많이 보기는 하지만, 일부를 아는 것인데, 약간 더 우리에게 맞게 편하게 발전시킨 것인데, 그것을 창조주의 오며한 섭리와 맞 먹으려고 합니다. 작은 벌레 한 마리만 들여다봐도 너무나 신비하고 오묘합니다. 그 작은 생명을 우리의 과학의 이룰수는 없습니다. 조금 아는 것을 가지고 우리를 높입니다.

        지금 일본은 그 과학의 댓가를 독톡히 치루고 있습니다. 지금 그들의 과학으로 만든 원전이 지진으로 파괴되어 최근 몆년 동안 지진 관련으로 죽은 사람만 일본에서 300명입니다. 그리고 그 원전을 사용하지 않게 처리를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지진이나, 실수 등에 대한 불안과 염려, 그리고 이제는 일본 뿐 아니라 그 파장이 지구 전체를 흘러 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인간의 존재는 참 유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본문이 말해 주는 우리의 정체성인 질문을 하는 삶을 통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 정확히 묻는 삶의 훈련을 해야 합니다. 유한한 우리가 이 땅에서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이 가장 복되고 행복할 수 있는지, 세계속에서 굶주리고, 아파하고, 전쟁과 위협속에 어려움을 당하는 세계의 이웃들,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힘들어하는 이웃들을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물어야 할 때 묻지 않으니까? 쉽게 답을 얻고 갈 수 있는 길인데도 멀리 돌아갑니다. 그 놈의 자존심 때문에 묻지 않습니다. 유한한 삶이라는 자신의 정체성만 알고 자존심만 내려놓아도 멀리 돌아가지 않을 텐데 묻지 않습니다. 가 아는 지식은 한계가 있습니다. 내가 경험한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만드시고,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까지 내어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자꾸 물어야 합니다. 물어야 할 것은 묻지 않고, 자기가 필요한 것만 달라고 하니, 하나님께서 너무 답답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도마가 이렇게 쉽게 묻듯이 우리의 삶의 현장으로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 배우고, 예수님께 묻고, 예수님께서 답하신 것을 알게 됨으로 말미암아 분명하게 삶의 의미를 알고 살아가도록 특별한 방법을 취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계속 물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시간은 그래서 간구하는 시간들도 중요하지만, 내가 구하는 기도보다 사실 묻는 시간이 더 많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기도의 시간을 그 분께 묻는 시간으로 많이 채워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진로, 여러분의 사업, 여러분의 미래....많이 물을 때 여러분은 여러분이 유한적으로 생각하고, 구했던 그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얻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 알게 되는 정체성은 우리 주님은 우리의 질문에 답을 해 주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도마의 질문에 예수님은 아주 분명하게 답을 해 주십니다. 14:6을 보면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답변은 어떤 추측이나 가능성을 이야기 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분명하게 이다라고 끝맺음을 하십니다. 이렇게 하는 것은 보통 강심장으로는 못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답변이 과거에 있었던 일이 아니고, 앞으로 될 일이기에 이것을 어떤 근거없이 분명하게 말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무나 쉽게,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종교의 공통점이 이렇게 하면 이렇게 될 것이다입니다. “선행을 많이 하면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남을 많이 도우면 너도 많이 도움을 받게 될 것이다...” 로 미래형입니다. 분명하게 지금의 시점에서 예수님처럼 당당하게 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이렇게 예수님을 따라 하다가 그 예측이 빚나가고, 그 결과를 물을 때는 그 자신도 책임을 지지 못하기에 극단적인 방법을 택하거나, 잠적해 버리는 경우도 역사적으로 많았습니다. 가끔은 맞기도 맞지만, 계속해서, 연이어서, 항상 맞지는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답을 주실 때 어정쩡하게 주시지 않고 분명하게 주십니다.

        이미 예수님 자체가 구약 성경의 오랜 약속가운데 성취되신 분이십니다. 구약성경은 예수님이 오시기 7-800년전에 300회 이상 집중적으로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언하고, 그 예언은 예수님을 통해 아주 세세한 것도 다 이루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7:14에는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예언을 하였고, 실제로 예수님은 처녀인 마리아를 통해 잉태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약성경 미가서 5:2에도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나실 것을 예언했고, 그대로 되셨습니다.

        구약 성경 스가랴 11:12,13에서는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품삯을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그만두라 그들이 곧 은 삼십 개를 달아서 내 품삯을 삼은지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그들이 나를 헤아린 바 그 삯을 토기장이에게 던지라 하시기로 내가 곧 그 은 삼십 개를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라고 했는데, 가롯유다가 은 30에 예수님을 팔 것이라는 예언의 말씀도 그대로 실행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 자체도 아주 분명하게 정확하게 되어 질 일을 이루신 것처럼, 예수님도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셔서, 분명하게, 정확하게 답변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만약 정확한 답을 알지 못하고, 답을 하면, 우리는 그 사람을 거짓말쟁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답이 아닌 것을 답이라고 주장 하고 이야기 하는 사람을 우리는 미친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어떤 거짓말쟁이든지, 사기꾼이든지 자기를 위해, 자기의 유익이나 만족을 위해서 살지, 자기 목숨을 내어 놓으면서 죽음의 고통을 참아가며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랬다면, 이미 앞전에 수 없이 많은 사람이 예수님에 대한 사실을 뒤집었을 것입니다. 실제로 유명한 장군이면서 문학적인 천재였던 루 웰리스라는 사람은 그의 친구 잉거솔은 기독교의 신화를 영원히 도말해 버릴 책을 쓰자고 같이 약속을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고 예배하는 사람들이 신화 같은 말도 되지 않는 기독교의 이야기의 굴레에 갇혀 있는 것에 분개했었습니다. 류 웰리스는 유럽과 미국의 유명한 도서관에서 기독교를 파괴할 자료를 찾으면서 2년 동안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책 제 2장을 쓰다가 무릎을 꿇고 예수님께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며 울부 짖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신적인 성격이 확증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사기꾼이라고 폭로하려던 그 분이 그를 사로잡고 말은 것이었습니다. 후에 류 웰리스는 그가 그리스도를 반박하기 위한 자료를 다시 원래대로 정리하여서 그리스도에 생애에 관한 소설을 쓰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아카데미 9개 부분에서 수상한 영화의 원작인 벤허라는 작품입니다.

         

        그러한 예수님께서 오늘 자신이 누구신지를 이야기 하실 때,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외에도 성경 곳곳에서는 예수님도 자기 자신을 누구라고 하셨는지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10:30 에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라고 예수님이 말씀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8:18에는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라고 하시면서, 모든 권세를 가지셨다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특별히 바울 사도가 고백한 예수님은 누구신가에 대한 내용이 골로새서 1:15-22에 나옵니다. 같이 한 번 읽어 보겠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라고 하셨습니다.

        한 구절 한 구절이 바울 사도가 분명히 경험하고 확신한 내용으로 그의 믿음의 고백으로 이야기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 주변의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이야기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분명하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분명하게 알아야 하고, 분명하게 알기 위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삶을 살아야 더욱 분명히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 가운데에는 성경학자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것은 알기는 알아도 그들 가운데에는 지식으로만 알지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것도 또한 분명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사는 가족을 소개할 때, 키는 몇 센티이고, 몸무게가 몇이고, 성격은 어떻고, 무엇을 좋아하고, 이렇고, 저렇고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이렇게까지는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냥 제 아내입니다, 제 아들입니다, 제 딸입니다....”정도로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도 누구도 의심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분명한 사실과 확신이 있기에 그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신학적, 지식적으로 예수님을 소개하고, 설명하는 것도 좋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더욱 분명하고, 자신 있게, 확신에 차서, “그 분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그분은 나의 전부 이십니다. 그분이 나를 위해 가장 좋은 것을 예비해 주시는 분이십니다.라고 분명하고 확신 있게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이 이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주위에 있는 분들에게 분명히 이야기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위에 이 이야기를 듣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신의 인생이 정답인줄 알고 지금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이 하나님을 알고 주님께 그 분들의 인생을 묻고 살아가는 시간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중국의 시골 버스 안에서 일어난 실화라고 합니다. 중국의 어느 시골마을 버스 안에서의 일입니다. 아름다운 여자를 험악하게 생긴 두 건달이 희롱하고 있었습니다. 버스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 광경을 힐끔힐끔 쳐다보기는 했으나 모두가 다 외면하였습니다. 급기야 두 건달은 운전사에게 정지할 것을 명하고 말을 듣지 않자 운전사를 두드려 패 버립니다.

        그리고 두 건달은 버스에서 여자를 강제로 끌어내려 버스 옆 풀밭으로 데려가 돌아가며 강간합니다. 버스 안에는 건장한 남자도 수십명 있었지만 누구 한 사람도 정의롭게 나서지 않았습니다. 그냥 차창너머로 슬금슬금 눈치 보며 그 광경을 구경만 합니다.

        왜냐하면 남의 일에 참견했다가 칼이라도 맞을까봐 두려웠겠죠..그때, 보다 못한 한 청년이 나서서 건달과 싸웁니다. 건달들은 청년을 칼로 무참히 찌르고 달아납니다.

        여자가 울면서 옷을 차려입고 버스에 오르자 아무도 말이 없습니다. 창피한건 아는지 여자와 눈길을 마주치지 않으려고 모두가 무관심한척 창밖만 바라보고 있습니다.

        운전사는 테러당해서 운전할 수 없고 여자가 헝클어진 상태로 운전석에 앉습니다.

        그때, 피를 흘리며 청년이 차에 타려하자 여자가 소리칩니다.

        왜 남의 일에 참견하시는 겁니까?” 라며 그 여자는 청년에게 화를 내고 버스 문을 닫아버립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인가!!..

        청년은 기껏 여자를 도왔으나 그가 행한 선의에 대한 대가는 이제 먼~ 길을 아픈 몸을 이끌고 혼자 걸어가야만 했습니다. 여자가 운전한 버스는 먼지를 일으키며 청년의 시야에서 벗어났고 청년은 칼에 찔린 고통을 참으며 시골 길을 터벅터벅 한참을 걸었습니다.

        그런데 저 앞에 경찰차들이 줄을 이어 몰려오고 있었습니다.

        청년이 무슨 일인가 묻자 교통을 통제하는 경찰관이 말하길 버스가 천길 낭떠러지에 떨어져 승객이 모두 사망한 사고라합니다. 천길 낭떠러지를 내려다보니 방금 자신이 타고 왔던 그 버스였습니다.

        버스에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죄를 짓지 않았지만 다시 보면 악을 방관한 큰 죄를 지은 사람들임은 틀림이 없습니다. 잘못된 일 되어지고, 정답을 말해야 하는데, 그들은 아무도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직 살만한 가치가 있던 그 청년은 비록 정답을 말하고, 비참하게 피해를 당했지만, 그것이 오히려 그를 버스에 타지 못하게 하고 승객들이 모두 죽은 가운데 자신만은 살아 남게 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까?

        인생의 정답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만 알고, 나만 축복 받고, 나만 잘되는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때로는 무시하고, 업신여겨도, 잘못된 길을 가는 여러분의 이웃을 위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소개하고, 주님이 주신 이 참된 인생, 예수님께서도 직접 오셔서 말씀 하신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라고 하신 그 길을같이 나누고 공유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참된 이웃이 있으시다면, 그 분들이 인격적으로 이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알아갈 수 있도록 이 복된 소식,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나누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2월은 이 말을 하기에 너무 좋은 시간입니다. 성탄절이 있고, 연말연시라 한해를 돌아보고 준비하며, 많은 질문을 할 때입니다. 이 귀한 시간, 특별히 2013년 올 한해 한병에게도 이 말을 전하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올해가 가기전에 이 이야기를 한 번 나눠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오셔서....“내가 너에게 참 많은 말을 해 주었고, 너를 가장 좋은 길로 가도록 너를 많이 도왔는데, 너는 내 이야기를 듣고, 니 주변에 왜 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니

        라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한해를 이제 한 달을 남긴 이 시점에 주의 복음을 들고,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전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회식과 만남의 자리가 있습니다. 복음의 나눔을 위해 기도하시고, 준비하시면서, 여러분 주변에 가장 소중한 분에게 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리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주님 우리도 때로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몰라서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니요, 지금도 그렇습니다. 교회는 오래 다녔지만, 그냥 착하게 지내고, 좋게 지내기 위한 공동체에 오는 것이지, 예수님에 대해서 분명하게 답하지도 못하고, 우리 자신도 주님께 주님이 누구신지 묻지 않았습니다. 그저 나의 평안과 간구를 응답받기 위해 기복신앙처럼, 나만의 복을 위해 나왔었습니다. 이제 분명히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그 구원과 소망의 살아계신 하나님을 전파하기 원합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고 나누는 삶이 되도록 우리들에게 확신을 주시고, 그 확신을 분명히 하는 주님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신고하기

    • 추천 목록

    • 댓글(0)

    • 글을 작성시 등록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