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7 빌 2:25-30 새롭게 쓰여질 우리들의 이야기

      날짜 : 2014. 01. 23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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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롭게 쓰여질 우리들의 이야기 빌 2:25-30

         

        저는 요즘 우리 교회가 참 좋습니다. 그냥 듣기 좋게, 좋지 않은 것을 좋다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은 시스템이 이전보다 좋아져서 좋은 것도 있지만, 더 좋은 이유는 우리 교회 교우들이 보여 주는 모습들이 참 좋습니다. 사실 이렇게 이야기 하기는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사람들의 모임인지라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 하는 것이 조금은 조심스럽습니다. 그래도 요즘은 마음이 참 좋습니다. 우리 교회가 좋은 것 중에 하나는 우리 교회가 이전과 비교해서 볼 때 모두들 서로를 배려하기 위해서 노력을 참 많이 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기에 이것이 참 기쁩니다. 이전 같으면 무슨 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 아쉬움이 많이 남았습니다. 조금만 배려를 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주었다면, 사람이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교회 생활을 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는데, 최근에 우리 교우들의 활동을 보면 변화가 많습니다.

        먼저 가장 큰 변화는 교인들이 많이 움직이고 일을 합니다. 저는 50여명이 모이는 교회도 있어 봤고, 150, 400,600, 2,000, 5,000명이 모이는 교회에도 있어 보았기에 교회의 여러 분위기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인원과 규모가 차이가 나도 교회의 일을 하는 사람들은 한정적이고, 일에 대한 열정이나 관심도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것에 비해서, 우리 교회의 년수에 비해서 우리 교우들이 참으로 열심히 책임을 가지고 자신이 맡은 교회의 일들을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사랑하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열심히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것입니다.

        저는 요즘 우리 교회 여성 성도님들이 화장실 앞에서 여러분들이 드시는 점심 그릇을 열심히 닦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대부분 집에서 메이드들이 일을 하기에, 주방도 없는 교회에서, 그것도 화장실 앞에서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데, 이 일을 위해서 애 쓰는 모습이 너무나 보기 좋습니다. 테이블에 먼지, 여러분의 메뉴, 수저 소독과 보관에서 주방도구 관리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귀하게 섬기는지 보면서 참 너무 귀했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집사님이 회사에서 콘테이너에 짐을 할당 받았는데, 자기 짐 넣기도 모자랄텐데, 적지 않은 공간을 내주면서 교회에 필요한 것 채우려는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뿐 아니라 서로 배려를 많이 합니다. 이전에는 남의 시간이나, 남의 상황은 잘 고려를 할 상황이 아니였습니다. 모두들 인도 오신지 얼마되지 않아 마음에 여유들이 없었고, 남들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씩 서로에 대해서 주의하고, 다치지 않도록 배려하고, 작은 것에도 서로 배려를 합니다. 서로의 시간을 조절하고, 같이 모이려고 하고, 같이 함께 하기 위해 자기의 것을 양보하고, 조절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성도에게 무슨 일이 생겨서 곤란을 당하면, 그 일을 돕기 위해 서로 자신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인도에서 당한 일이라 풀기 어렵고, 혼자서는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인데, 우리 교회 성도들이 하나씩, 둘씩 도우며 풀어나가는데 힘이 되어 줍니다. , 두건이 아니라 여러 어려움들이 많이 있었지만, 그 때마다 힘을 모아서 문제를 처리하고 일을 감당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은혜를 받습니다.

        사역 가운데서도 정말 다양한 일꾼들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비전트립팀이 오면, 그 팀을 돕고 섬기고, 사역을 잘하도록 도우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제가 혼자 차량 섭외, 숙소 준비, 일정 진행 하면 정말 많이 힘든데, 팀들이 올 때마다, 그런 일들을 도우시는 분들이 있기에 일을 감당합니다.

        행사를 진행해도, 혼자서 뛰어다니고, 기획하고, 진행순서 짜고 공연 준비하면 이 더운 날씨에 지쳐 버릴텐데, 음향을 알아보거나, 홍보지를 만들거나, 공연을 위해 갖은 일을 해야 할 때 항상 우리 교회 성도님들이 조금씩 조금씩 일을 맡아서 진행을 합니다. 이제는 주변의 선교사님들과 교회에서 우리교회에 묻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리고 같이 하면 안 되겠냐고 물으십니다. 참 감사한 일입니다.

        교회에서 행사를 개최해도 상금을 받아도 교회에 다 반납을 하고, 교회 전체가 다같이 나누자는 모습들, 우리 교회 재정 관리를 위해 새벽까지 모여서 정리하고, 결산하는 분들, 주일예배를 드리고 싶지만, 부족한 교사 인원으로 인해, 때로는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서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 봉사로 섬기는 교사들, 홍보를 위해 주보와 전도지, 홈페이지와 강단 디자인을 위해서 수고하시는 분들, 같이 회의를 하면 제가 용어가 딸리고 내용을 몰라서 버벅거리지, 우리 성도님들이 얼마나 전문성을 가지고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교회 건축연구에 대한 모임에서도, 인도의 법과 상황을 잘 알고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을 분명하게 진단하고, 방향을 정하고, 이번에 교회에서 차량을 구입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도 우리 집사님들이 전문성을 다해서 최선을 다하시는 모습들, 이 교회 장소를 구할 때도 세밀하게 점검하고, 인도인들과 협의하고, 살피고, 확인하는 일들, 그렇고, 우리 청소년들도 같이 성경공부를 해 보니까 마음 밭이 얼마나 고른지 모릅니다. 그리고 같이 함께 한 사역들을 보면 너무나 재미가 있고, 즐겁습니다. 인도에서 이렇게 즐겁고, 재미있는 일이 적은데, 우리 청소년들이 신앙 중심으로 함께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도 은혜가 많이 됩니다.

        내부 뿐만 아니라 외부 사역에서도 우리 교회를 통해 섬기는 일들이 좋은 열매들을 맺고 있습니다. 이번에 11월에 북사협에서 진행되는 선교사 자녀 수련회...이번에 처음으로 프로그램을 구상해서 진행을 하는데, 어떤 선교사 자녀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직까지 한 번도 이런적이 없었어요?그냥 가서 영화보고, 있다가 오는 거예요...부모님이 가니까 그냥 가는 거예요!“ 라는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 교회가 꾸준히 선교사 자녀에 대한 지원과 투자를 해서, 이제 델리-벵갈로-첸나이-캘커타로 이어지는 선교사 자녀 돌봄 시스템이 확산되고, 전인도 사역자 협의회에서도 이 모임이 조직이 될 예정입니다.

        인도 CNI 교단에 세인트마틴 교회와의 관계도, 조금씩 깊어지고 있고, 다음주에 있을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 인도 지도부와 함께 참석을 해서 좀 더 가까워지려고 합니다. 그동안 각각의 일을 한 것들이 구심력을 가지면서, 합해지면서 상당히 큰 사역들로 확장이 되고 있습니다. 지금 남인도에 우리 교단에서 350개의 교회를 건축한 일로 인해, 북인도 CNI 교단에서도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CNI 교단 총회 본부를 방문했는데, 진짜 인도 델리의 중심부, 장관과 정부청사가 즐비한 곳에 엄청난 규모의 CNI 교단 총회 본부를 보고 놀랐습니다. 인도에서 10여년 이상을 사역을 하셔도, 이곳에 정식 초청을 받거나 동역을 못했던 곳에, 이번에 저희 총회에서 오신 목사님이 총회장실을 사용하시고, 예배를 인도하시고, 저도 덩달아 인사를 하면서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장래에 우리 교회 장소 문제 등에 대해서도 이번 부산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서 인도 대표들과 이야기를 꺼내려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안, 밖의 일들을 보면서 느끼는 것은 아직도 사실 부족한 일이 많지만, 이 지역에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을 준비시키시는 하나님의 예비하심을 느끼게 되어집니다. 아직은 퍼즐 조각 같이 큰 모양은 나오지 않았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하나씩 맞춰질 내용들은 우리 하나님이 계획하신 인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 먼 이곳 인도까지 온 한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어질 것을 기대합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곳에 제한된 시간을 살아야하기에 그 그림을 다 보지 못할지라도, 이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께 쓰임을 받으며, 우리의 퍼즐 조각을 인도에 남기는 역사적인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요즘은 다른 것들보다도, 우리 성도들의 마음 밭을 준비시키시며, 서로 돌아보고, 챙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며, 그 안에서 발견된 은혜의 삶이 많은 도전이 되어집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오래전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이던 빌립보 교회의 이야기를 잠시 나누고자 합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사도에 의해서 새워진 초기의 교회입니다. 시간이 지나고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와 빌립보 교우들과의 관계 속에서 보여 지는 모습은 시간과 장소를 초월해서 더욱 깊어지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시간과 공간이 바뀌었음에도 변함없는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는 해외 한인교회 교우들로 구성된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중요한 내용입니다.

        빌립보서를 우리가 보통 옥중서신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바울은 나이가 들고, 이제 여러번의 복음전도사역 가운데, 감옥에 갇히고, 이제 로마감옥에까지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장소입니다. 이전이 일시적이고, 충동적인 일로 감옥에 잡히는 경우가 있었지만, 이번에는 바울 사도가 제대로 법에 의해서 사역이 제한이 되도록 그 과정이 진행되는 감옥생활이었습니다. 우리로 말하면, 일반 법원에서 고등법원으로, 그리고 대법원으로 가는 것과 같은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제 이 로마감옥에서의 수감 후의 재판이 정말 바울에게는 더 이상 복음전도의 기회가 없을 정도의 마지막 과정 일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역사속에서 바울은 이 로마감옥 이 후에 처형이 되어 순교를 당하게 되어집니다.

        지금 이렇게 힘든 상황에 있는 바울을 위해서, 오래전에 바울을 통해 은혜를 경험한 빌립보 교회가 바울 사도를 위해 특사를 파견합니다. 말이 특사지, 사실 위문을 하러 감옥에 찾아 가는 것입니다. 바울의 감옥 생활을 위해서 도울 수 있거나, 그를 풀어줄 수 있는 능력은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 사도의 감옥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모우고, 또 옷이나, 음식들, 책이나, 자료들을 준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했던 바울 사도가 제일 궁금해 할 빌립보 교회의 이야기를 제대로 알고, 들려줄 사람을 찾아서 바울이 있는 감옥으로 위문을 보냅니다. 성경은 그 사람의 이름을 에바브로디도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겠습니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기를 위해, 누구도 나서지 않는 자신을 위해, 먼 곳에서 이렇게 자신을 위해 사람을 보내 준 교회의 배려와 사랑에 바울 사도는 크게 힘을 얻었습니다.

        지난번에 주일 오후 커피브레이크 모임에서 이 부분을 나누면서, 해외에서 살면서 이제까지 자신이 받아 본 것 중에 가장 기억이 되는 것을 나누라고 했을 때, 한국에서 부모님이 보내 주신 김치가 너무나도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해외에서도 다 사먹을 수 있었지만, 그래도, 그것을 보내기 위해 어머님의 수고가 그 도착한 김치를 보면서 새록새록 생각이 나기에, 그것에 감격하여 많이들 울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만,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서 생각해 주고, 섬겨 줄 때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바울을 찾아 온 에바브로디도가 바울에게 너무나 큰 힘이 되었을 것이고, 정성껏 준비해서 보낸 빌립보 교회의 위문품은 감옥에 있으면서 제한된 삶을 사는 바울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들려주는 에바브로디도의 빌립보 교회 이야기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가 시작될 때는 당시에 점치는 귀신을 치료해 준 뒤에 오해를 받아서 그 때도 엄청 두드려 맞고, 감옥에 갇힌 경험이 있던 곳이었습니다. 그 때 감옥에서 함께 갇힌 실라와 찬양을 할 때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려서 도말갈 수 있었는데, 바울이 도망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사도의 이러한 초연한 모습에 감동한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데리고 자기 집에 초청해서 음식을 대접하고, 바울의 말씀을 듣고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경역사에 의하면 이 간수가 나중에 빌립보 교회의 중요한 영적 지도자가 된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모이지 않았던 빌립보 교회가 성장하는 이야기는 바울에게는 너무나 귀중한 힘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우리도 간혹 힘이 되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 이야기가 에너지가 되어서 우리에게 살아갈 원동력이 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때로는 돈이 없거나, 물리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보이지 않는 이러한 사랑과 배려와 힘이 더욱 강력한 삶의 원초적 힘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서 2:25에서 에바브로디도를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이 말을 표현함으로 에바브로디도에 대한 고마움을 깊이 표현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이러한 사랑의 배려에 대해, 바울 사도가 다시 한 번 그를 배려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바울 사도는 지금 그에게 육체적으로, 물리적으로 유일한 통로가 되는 그를 다시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이유는 에바브로디도가 로마감옥까지 오기는 왔지만, 상태가 심히 안 좋게 왔습니다. 빌립보서 2:26,27을 보면 그가 심히 병이들어서, 그것을 참고 로마감옥까지 억지로 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가 너희 무리를 간절히 사모하고 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저가 병들어 죽게 되었으나...”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 사도가 자신의 편리를 위해서 이 에바브로디도와 함께 있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이미 그의 병세에 대해서 들은 빌립보 교회가 걱정하고, 지금 지친 에바브로디도가 어서 집으로 가서 편히 쉬고, 병이 낫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를 아쉽지만 돌려 보냅니다.

        2:28 “ 그러므로 내가 더욱 급히 저를 보낸 것은 너희로 저를 다시 보고 기뻐하게 하며 내 근심도 덜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배려 받고, 사랑 받고, 위로 받아도 견디기 힘든 죽음을 앞둔 감옥임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자신보다는 자신에게 사랑을 전해 준 빌립보 교회를 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빌 2:29을 보태닙니다. 특사로 온 에바브로디도가 와서 이렇게 일찍 돌아가게 됨으로 말미암아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고, 마치 실패하고 돌아 온 사람처럼 대우하지 말라고 이야기를 덧 붙입니다. “이러므로 너희가 주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저를 영접하고 또 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30에는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보지 아니한 것은 나를 섬기는 너희의 일에 부족함을 채우려 함이니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지쳐서 힘든 상황에서 돌아 가지만, 빌립보 교회를 대신하여 특사로 와서 귀한 위로를 주고 간 이 에바브로디도를 격려하고, 그를 위해 함께 축하해 주고, 위로해 줄 것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지금 남 걱정 할 때가 아닌데, 바울 사도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이렇게 빌립보 교회와 에바브로디도를 섬세하게 섬겼습니다. 이 귀한 서로를 향한 사랑과 섬김.....이것이 빌립보 교회의 이야기입니다. 서로를 위한 사랑과 섬김, 배려와, 섬세한 마음들.....교회를 든든하게 하는 것은 이와같은 사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이야기는 이윤을 추구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찾기가 어렵습니다. 먹고 살기 힘든 시절이라, 그리고 기독교인에 대한 극심한 박해와 어려움들이 있던 그 시절, 남 보기에도 별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인 것 같지만, 서로 챙겨주고, 사랑하고, 돌아보고, 배려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최초의 동기, 바울이 자신을 내려놓고, 자신만을 위한 삶이 아닌 이와 같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초연하게 섬길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 자신이 빌립보서 2장 앞부분에서 이미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면서 이 모든 것이 가능했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예수님께서 이미 자기에게 보여 주신 분명한 모습으로 인해, 자신도 이처럼 남을 뱌려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를 해 줍니다.

        2:6,7,8 을 보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빌립보 교회와 에바브로디도에게 초연하게, 그들을 섬길 수 있었던 이유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와 같이 하셨기에 자신도 예수님처럼 따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이는 바울이 한 것과는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셨지만, 그 신분을 내려 놓으시고, 인간처럼 오셨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쳐 주시고, 그리고 우리의 죄를 뒤집어 쓰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그가 행하신 이 겸손을 통해 바울 사도의 가치관은 이미 변해 있었습니다.

        사람은 가장 좋은 것을 가져 보고 경험해 보면, 그 다음 레벨은 별로 크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없었을때는 그렇게 가지고 싶었는데, 막상 가져 보면 별것 아닌 것을 알게 되는 것과 같이, 바울 사도는 이미 너무 너문 뛰어나신 하나님의 그 깊고 놀라우신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나니, 그 다음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바울 자신도 전에 자신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가말리엘의 문하에 있던 사람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말은 아주 좋은 가문이면서, 최고의 학벌과 인맥을 가졌다는 소리인데, 바울은 이런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다시 설명 할 때 이 모든 것이 배설물이였다고 고백을 합니다. 빌립보서 3:7,8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고 했습니다.

        가장 고상한 예수 그리스도를, 가장 최고의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나니 그 다음은 더 욕심도 없고 미련도 없습니다. 오직 그 분을 위한 삶, 오직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바울에게는 가장 중요했고, 이 마음으로 빌립보 교회를 세우고, 그리고 이 마음으로 빌립보 교회를 대하고, 이 마음으로 에바브로디도를 섬기니,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 모범을 잘 쫓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우리 주님께 목표를 두며, 그 분을 위한 삶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이웃들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배려하고 섬겨야 합니다.

         

        우리가 높아지려고 하면, 남을 배려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처럼 낮아지고,

        바울 사도처럼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삶을 살아 갈 때

        우리도 계속적인 성도의 교제와 아름다운 믿음의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기대하십니다.

        지금 우리교회가 잔잔하고, 아름다운 배려와 사랑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소식들이 이어지는 이유는 우리가 조금씩 더 주님께 다가 갔기에 이것이 가능합니다.

        내 눈높이에서, 내 시각으로 이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의 높이에서 보게 되어지기에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서로 배려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하게 되어집니다.

        삭막한 인도에서 하나님은 정말로 이러한 모습에 많은 기대를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귀한 은혜의 이야기들을 주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 델리한인장로교회를 많이 기대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도 너무나 힘들고, 어렵기에, 오히려 멀리 있는 우리 한인교회, 아직도 부족한게 많은 우리들의 신앙의 이야기를 하나님은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 같습니다.

        지난 금요일 심야 기도회에서 정말 마음껏 찬양하고, 마음껏 기도하고, 주님을 부르짖으니, 얼마나 큰 힘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이 인도에서...이렇게 하는 모습....한국에서는 너무 쉽지만, 지난 시간 이렇게 하지 못해서 힘들었던 과거를 생각해 보면, 이것도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앞으로 또 어떤 스토리가 이어질지 모릅니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이야기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힘들고 어려운 스토리도, 하나님의 도우시면, 은혜의 스토리, 감동의 스토리, 협력하여 선을 이루는 스토리도 바꾸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 대해서 하나님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시고, 이야기 하고 싶어 하십니다.

        하나님은 너무 너무 기뻐 하십니다. 우리의 이야기에 너무나 관심이 많으십니다.

        스바냐 3:17에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열악한 것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하나님을 향해 그리스도안에 하나된 우리가 주안에서 모이고, 이런 아름다운 소식들을 이어나가는 것을 우리 주님은 주님은 너무나도 기뻐하십니다.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가 신앙적으로 살아가고, 서로 배려하고, 주님안에 사는 모습에 너무 기뻐하신다고 합니다.

         

        이제 새롭게 주보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6면입니다.

        기존 4면에는 우리교회의 사역들을 중심으로 한 델리한인장로교회 이야기가 씌어져 있습니다. 거의 대부분 제가 주중에 있었던 이야기를 씁니다. 이 글의 목적은 의사소통을 위해서입니다. 교회에서 되어진 아주 기본적인 일들은 함께 공유하고 가자는 의도에서 만들어진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제 주보 6면을 만들면, 새로운 면이 만들어지는데, 아직 코너 이름은 적지 않았지만, 가칭은 델리한인장로교회 성도들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우리들이 신상생활을 하면서, 인도에 있으면서 경험한 은혜나, 감동의 글, , 찬양, 심지어는 어린이들의 그림들을 채우려고 합니다. 아마 더욱더 많은 은혜의 글들이 채워질 것으로 기대가 됩니다.

        이 글들처럼, 우리 교회에 빌립보 교회와 바울 사도의 아름다운 이야기와 같은 은혜의 스토리가 계속적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에 여러분 모두가 하나 이상씩 아름다운 스토리에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그 스토리의 주인공이 되실 여러분의 삶을 위해,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의 직장에서, 여러분의 학교에서, 여러분의 교회 안에서의 삶을 통해, 그리고 인도에서의 삶을 통해 놀랍고 귀한 일들을 계획하고 계십니다.

        그 아름다운 믿음의 스토리를 함께 나누며,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를 나누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빌립보 교회에 에바브로디도가 있었다면, 델리한인장로교회에는 여러분이 있습니다.

        그 귀한 하나님의 성도로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를 세우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를 인도에서 만나게 해 주시고, 인도에서 한 공동체로 믿음의 생활을 하게 하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하나되게 하시기 위해, 우리가 주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와 사랑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시고, 우리가 주안에서 서로 배려하고, 섬기고,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해 나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빌립보 교회와 바울 사도와 같이, 그 가운데 있었던 에바브로디도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교회의 성도가 되어, 아름다운 이 이야기들을 계속 주님께 올려 드리고 싶사오니, 우리안에 오셔서,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안에서, 기뻐하시며, 사랑하시는 그 은혜를 계속적으로 더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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