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3 요나서 4:1-11 , 하나님의 성읍, 니느웨

      날짜 : 2014. 01. 23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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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13일 요나서 4:1-11 , 하나님의 성읍, 니느웨

        이중인격이라는 말을 우리는 잘 알 것입니다. 말 그대로 사람이 완전 딴 모습으로 되는 상태를 이야기 하면서 우리는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평소에는 얌전하다가, 무슨 일이 생기면 완전히 180도 사람이 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 사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고 놀라기도 합니다. 제가 대학교 다닐 때 편의점에서 물건을 사고 계산을 하는데, 앞에 예쁜 여대생이 물건을 사고 있었습니다. 아기자기한 예쁜 물건들이 하나씩 계산이 되더니, 갑자기 하나를 추가 했습니다. “아저씨 이 담배도 한 갑 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갑자기 앞전에 예쁘장한 여대생에 대한 환상이 다 깨져 버렸습니다.

        교회 생활 가운데에도 이러한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교회 안에서, 목회자 앞에서 보여지는 모습과 간혹 다른 모습들이 일반 세상 속에서 보여지면 많이 당황하게 됩니다.

        옛날에 섬겼던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시던 집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무단횡단을 하시다가 그렇게 사고를 당하셨습니다. 많이 햇 갈립니다. 믿음이 좋은 것하고 성품이 좋은 것 하고 일치가 되어야 하는데, 간혹 이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 많은 혼란이 생깁니다.

        오늘 성경에도 이런 모습을 보이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나온 요나는 참 이상한 성격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셔서, 니느웨라는 지역의 사람들에게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라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사실 이 메시지를 전하면서, 일반적인 마음은 모두가 회개해서, 멸망을 피해야 하는데, 요나는 이와는 반대로 이 백성이 회개하지 않아서 다 멸망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모습이 성경을 통해 발견되어집니다.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우리가 읽은 요나서 4장에 앞서서 3장은 이 니느웨 백성들이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모두 회개하여 하나님의 재앙이 내려지지 않는 모습이 소개됩니다. 요나서 3:10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사실 이 백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데 요나는 그 마음이 매우 불쾌하고 화가 났습니다. 요나서 4:1 “요나가 매우 싫어하고 성내며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도 횡설수설하면서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계획하신대로 징벌을 주고 재앙이 임하기를 원하였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것에 대해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습니다.

        한번 요나 입장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멸망한다고 외치고 다녔는데, 하나님이 회개하는 니느웨 사람들을 보고, 뜻을 돌이켜서 재앙을 주지 않으니, 결국 사람들에게 요나는 거짓말쟁이라고 알려지게 되어, 이것이 너무 수치스러웠던 것 같습니다. 곧고, 바른 사람이 이렇게 잘못된 사람이라고 몰리면 정말 그 수치심에 죽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도 정말 이런 일로 자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조금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하고, 용서를 구하면 되는데, 인정하기 싫고 자존심은 지키려고, 그냥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는 사람이 많은데, 오늘 요나도 너무나 자존심이 상하고 챙피했던 것 같습니다.

        4:3을 보면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내 생명을 거두어 가소서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음이니이다 하니라고 하면서 어릭석은 투정을 하고 있습니다. 자기가 좀 망가지고, 오해를 받아도, 이 성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으며, 생명을 건진 것이 낫다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고, 오직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을 합니다.

        우리도 가끔 이러한 모습을 가집니다. 내가 생각한대로 일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도 불구하고, 지금 되어지는 결과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되어집니다. 하나님의 깊은 생각을 한 번 더 헤아려보지 않고, 그저 요나처럼 자기 생각만 합니다. 자기가 만들어 놓은 계획, 자기가 구상한 시나리오대로 되지 않고, 그것이 약간만 흐트러지거나, 다르게 결과가 나오면 그것으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하나님께 책임을 묻기도 합니다. 사업이나, 가정이나, 학업에서도 자기가 목표한 것, 자기가 생각한 것이 가장 최고의 것이지, 흐트러지면 무척 어려워합니다. 하나님과 상의도 하지 않고, 하나님의 속마음도 읽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작정하고, 그것을 하지 못해서, 아니면 그대로 되지 않아서 속상해 합니다.

        어느 날 한 성도가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께 작정을 합니다. 하루에 성경을 10장씩 읽겠다고...., 하루에 한 명씩 전도를 하겠다고....그런데 이것을 하기 위해 애를 쓰고 힘쓰는 것은 좋은데, 어느새 이것이 자기 의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지키면 평안하고, 이것을 지키지 못하면 마음이 불안하고, 패배자 같은 삶을 살게 됩니다.

        제가 아는 어떤 청년은 하나님께 열심히 살겠다고 자기의 삶의 계획을 적어 놓았는데, 일주일에 신앙서적 얼마만큼 읽기, 좋은 설교 몇 번 듣기, 은혜의 찬양 몇 장씩 부르기, 그리고 20대에 어떻게, 30대에 어떻게, 40대에 어떻게를 꼼꼼히 적어 놓았는데, 그 모습은 참 좋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서를 보니, 이렇게 살려면 너무 힘들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렵게 지켜 나가는 모습도 귀했는데, 그것을 지켜나가지 못해서 너무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일을 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깊은 속마음은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의 입장에서만 하나님의 일을 하고, 그 결과를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다르게 나타나니 이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참지 못합니다. 간혹 결과가 다르게 나오는 일로 신앙생활에 혼동이 생기는 경우도 많습니다. 나는 열심히 교회를 봉사하고, 주님을 섬겼는데, 우리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진학을 못한다든지, 좋은 직장에 못 다니면, 그것으로 인해 힘들어 합니다. 반면에 아무개 집사 네는 신앙생활도 제대로 안하고, 별로 열심도 안 가지는데, 자녀들이 잘되고, 집안이 잘 풀린다고 생각이 되면, 은근히 배가 아픕니다.

        제가 아는 집사님도 같은 구역이었는데, 열심을 내는 집사님 자녀들은 취직도 잘 안되고, 자녀들 결혼도 잘 연결이 안되서 속상해하고 있는데, 옆집에 사는 집사님들은 교회 봉사도 잘 안하고, 별루인데 자녀들이 직장도 잘 연결되고, 소위 잘 풀리는 집안으로 혼담이 오고간다고 했을 때, 너무나 속상해 했습니다.

        여러분도 혹시 이런적이 없습니까? 남이 잘되면 진짜 축복해 주어야 하는데, 속마음은 요나처럼, 꼬여가지고, 남이 잘되는 것, 때문에 화나고, 이로 인해 낙심되고....

        하나님도 이런 요나에게 물으십니다. 요나 4: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 하시니라 라고 했습니다. 요나서에서 여러 모습으로 하나님과 요나가 이야기 하는 듯한 모습을 우리가 많이 보았지만, 이번 대회처럼 직접적으로 대면하여 물으신 것은 처음 인 것 같습니다.

        다일공동체에서 최일도 목사님께 영성훈련을 받을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저도 가장 힘들게 직면한 부분이 이 부분이었습니다. 인도자가 지난 과거 가운데 화가 날 일을 하나씩 이야기 해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씩 이야기를 하면, 인도자가 다시 묻습니다. “그 일이 화가 날 일입니까?” 그러면 다시 화가 날 일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면 다시 묻습니다. “정말 화가 날입니까?소위 이 부분이 분노 클리닉 파트였는데, 우리의 삶에서 화가 날 부분에 대한 우리의 인식전환을 통해 우리의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을 알려주는 부분인데, “정말 우리 인생에 화가 날일은 없다라는 것을 알게 해 주는 시간이였는데, 힘든 과정이지만, 잘 알아듣고 깨달았을 때, 많은 부분에서 아주 유용하게 적용하게 되었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 영성훈련을 경험하고 난 뒤에 제가 정말 많은 부분들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최일도 목사님을 인도에 모시고, 이 영성 훈련 캠프를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요나에게 이 모습으로 다가가십니다. 지금 니가 니느웨가 멸망당하지 않는 이 일로 인해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이 합당하냐라고 물으십니다.

        그리고 하나의 일이 시작이 됩니다.

        요나는 하나님이 자기의 생각대로 움직이시지 않고, 니느웨에 재앙을 내리지 않고, 자기가 사기꾼처럼 거짓 예언자로 몰린 것이 분하여,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니느웨가 정말 멸망당하지 않는가?라는 것을 보기위해서 니느웨 성을 관찰하러 갑니다. 요나서 4:5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개그맨 같습니다. 아니면 아주 순수한 사람이던지....어린 아이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요나가 잘못되었다고 나무라거나, 꾸짖지 않고, 요나가 스스로 깨달아 알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요나서 4:6에는 박넝쿨 하나를 하나님께서 예비 하셨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 박넝쿨이 뜨거운 태양을 막는 그늘이 되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우리도 인도에서 더운데 살아서 이 기쁨을 압니다. 더위 가운데 가끔 그늘이 생기면, 기온차이가 많이 납니다. 그리고 가끔 시원한 바람 한 번만 불어줘도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그런데 지금 요나는 기분이 좋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번에 또 다른 것을 예비하십니다. 벌레를 예비하셔서 벌레가 박 넝쿨을 모두 갉아 먹게 만드는 사건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늘을 없어지게 하고,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셔서 요나의 머리에 조이게 합니다. 요나서 4:7,8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조금전만 해도, 박넝쿨 그늘에서 좋다고, 키득거리던, 요나가 없어진 그늘에서 뜨거운 바람을 맞으면서는 이제 죽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치고는 너무 경박하다 싶을 정도로 요나는 이랬다 저랬다하는 사람입니다. 진득하지 않습니다. 가라는대로 가지 않고, 하라는 대로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죽겠다라고 하고, 조금 괜찮아지면, 헤헤 거리며, 좋아하다가, 조금만 틀어지면 죽겠다, 죽겠다라고 변덕이 죽 끓 듯합니다.

        우리도 믿음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득하게, 묵묵하게 하나님의 역사를 기다리지 않고, 너무 쉽게 좋았다, 나뻤다를 반복하면서, 우리 주위의 가족들이나, 직장 동료들, 그리고 교회 안에서 우리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지 않습니까? 믿는 사람 같은데, 어떤 때 보면 믿음이 많은 것 같은데, 하는 짓을 보면, , 뒤 가리지 않고 아이처럼 되어 버려서 삐지기도 잘 삐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풀리기도 잘 풀리고, 도무지 예측을 할 수 없는 사람처럼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그런 요나에게 하나님은 섬세하게 역사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온대로, 넝쿨을, 벌레를, 그리고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중요한 신앙의 관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특별하고, 쇼킹한 사건들을 통해서 역사하시기도 하지만, 이렇게 평범한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 우리에게 역사하십니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에 찾아 오셔서, 우리들의 삶속에서 우리와 함께 동행하시며, 우리들을 인도하시고, 우리들이 하나님을 깨달아 알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요나서를 보면, 큰 폭풍도, 큰 물고기도, 그리고 박넝쿨도, 벌레도, 동풍도 하나님이 때를 따라 적절히 사용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모습은 오늘 우리에게도 적용이 되어집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우리의 일상을 다 보고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도록 우리의 주변을 사용하십니다. 작은 사물들, 그리고 별 것 아닌 것 같은 만남들, 그렇게 중요한 것 같지 않은 사소한 우리의 일상이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통해서 우리에게 깨닫게 해 주시고, 알려 주시고, 우리들을 도우십니다.

        작은 것이고, 보잘 것 없는 것이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손에 들려져서, 우리에게 다가오면, 우리에게 소중한 깨달음을 주는 하나님의 도구들로 바뀝니다.

        요나는 지금 하나님이 예비하신 박넝쿨, 벌레, 뜨거운 동풍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어집니다. 요나 4:9-10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니느웨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계획을 알려 주셨습니다.

        요나가 싫어했던 니느웨, 요나가 그렇게 발버둥 치면서 순종하지 않으려고 했던 원수의 땅 니느웨....그러나 하나님은 그 니느웨를 위해서, 분명한 사랑을 가지고 계심을 요나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이 포기하고, 가지 않으려고 했던 곳....그러나 그곳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을 알려주시기 위해 작정하신 곳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 니느웨는 어디입니까?

        오늘 내 주변에 있는 니느웨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요나가 볼 때 니느웨가 가진 부유함과 국가적 위상처럼, 오늘 내 주변의 니느웨 사람들은 나보다 더 잘살고, 부유하고, 더 많이 배운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를 위로하고,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축복하시는 그 주님을 다른 사람이 공유하면,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나의 하나님은 나만 바라보고, 나만 축복하고, 내 가정에만 축복하고, 내 사업체에만 축복해 주셔야 된다고, 하나님을 내 주변에 꼭 묶어 놓습니다.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하나님에 대해서 소개하지 않습니다.

        제가 교회를 개척하면서, 경험하게 된 재미있는 사실은 성도들이 교회가 부흥되기를 별로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교회가 부흥되기를 바랄 때는 자신들의 일손이 부족하거나, 부담이니 책임이 있게 될 때, 나누어지려고 할 때는 부흥이 되기를 원하지만, 아쉽게도, 부흥이 되면, 나에게 관심이 덜 가고, “새가족에게 관심이 많이 쏠리게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저희 막내도 교인이 별로 없을 때는 교인들이 항상 알아주고, 인사해 주고, 귀여워해주고 그랬는데, 점점 더 어린아이들이 오고, 우리 교회 제일 막내인 돌도 안 지난 서연이가 오니까, 이제 사람들이 자기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 어떤 분들도, 우리 교회가 처음에 어설프게 할 때가 좋았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잘 안 들리는 마이크, 목사님이 혼자 땀 삘삘 흘리면서 고생하는 모습이 좋았다고 하시면서, 교회가 조직화되고, 새로워지는데, 그것을 싫어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은 새 가족만 좋아해 라고 이야기 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우리도 요나같은 모습이 존재합니다. 정말 하나님을 몰라서, 신앙 생활을 못 하셨던 분들이 교회에 와서 주님을 만나고,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을 위해 봉사하고, 주님의 제자가 되는 모습을 기대하고, 그러한 사람이 많은 예배 공동체가 되기를 기뻐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데, 아직도 우리도 요나 같은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렇게 준비되지 않고, 속 좁은 마음으로, 요나처럼 마음을 먹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성도들을 우리 교회에 보내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공을 들여서, 준비를 시켜서 하나님의 교회로 사람을 보내시는데, 교회에 가보니, 자기들끼리만 친하고, 새가족은 전혀 배려도 없고, 밥을 먹는지, 교회 오고 갈 때 차를 잘 타고 가는지, 교회에 와서 믿음 생활하는데 무슨 어려움이 있는지를 잘 살피는 마음이 있어야, 주님도 안심하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교회로 보내는데, 다른 마음을 먹고, 진심으로 새로운 성도들을 향한 섬기는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어떻게 그 귀한 영혼을 우리 교회에 보내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지도 않은 니느웨를 향한 그분의 계획을 이미 운행 중에 있으십니다. 그리고 그 니느웨를 향해 우리를 보내시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 결과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가기만 하면 됩니다. 저도 이제 개인전도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이제 방법이 생겼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가는 커피숍에 않아 있으면, 정말 한국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갑니다. 옛날에는 일이 있어서 그런 곳을 방문했지만, 앞으로는 일주일에 시간을 정해서 그런 곳들을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전략을 짜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도 6명을 만났는데, 아직 용기가 안 나서 사실 그날도 망설이다가 복음을 전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고, 그들을 보면서 기도하는 일 까지 했습니다. 좀 더 용기를 내면,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교회 초기에 맥도날드에서 만난 분에게 인사를 하고, 교회를 초청했습니다. 그 분이 정말 교회를 나오셨고, 그 분이 다른 분들을 교회로 초청하셨고, 지금도, 그 가지들이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우리 주변에 니느웨에 우리를 보내려고 하십니다.

        이번 1222일 전도대회는 그래서 이름을 니느웨 153이라고 만들었습니다. 우리 주위에 니느웨를 향해 우리를 사용해 주시도록 간구하고, 153은 한 사람이 5가지의 사역들, 기도하기, 전화하기, 식사하기, 선물하기, 편지쓰기를 통해 세 명의 사람을 초청하는 사역을 이야기 합니다. 적어도 내 주변에 세 명을 초청하도록 우리가 주변에 계신 분들을 찾아야 합니다. 인도는 한국과 달라서, 교회를 안 나오시는 분들도 있지만, 교회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못 나오시는 분들도 많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그런 분들이 이 힘든 인도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인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요나서에서 배운대로, 자기만 복 받으려는, 이웃에게 가기를 싫어하는 요나의 모습을 버리기를 기대합니다. 좌우를 분멸하지 못하는 십이만명의 니느웨 라고 말씀 하신 주님의 마음을 우리가 잊지 말라야 합니다. 우리가 하루밤에 썩어 없어질 호박을 부여잡고, 사라질 그늘에서 만족하며,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주님의 동역자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교제하는 유람선이 아닙니다. 교회는 물에 빠진 사람을 구원하는 구호선입니다. 구호선이 자신의 본분을 잊고, 배를 사람들이 좋게 교제하는 장소로 만들면, 그 기능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모인 예배 공동체, 교회 공동체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일과 사역이 이 일에 집중이 되어져야 합니다.

        무슨 일을 결정할 때도, 이 일을 위해서 우선순위를 세우고, 이를 위해 나아가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공동체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 배에 함께 탈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가야 합니다. 영화 타이타닉 호의 마지막 장면에서 물에 빠진 한 사람을 찾기 위해 죽은 시체들 사이를 휘집고 다니면서, 사람을 찾는 그 구호보트의 모습, 그리고 그 가운데 여자 주인공이 부는 호루라기 소리를 듣고, 그 여인을 구해서, 그 여인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영화는 그 여인의 인생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게 해 주는 사진들이 소개되어집니다.

        오늘 우리도 이렇게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 분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함께 배를 타고, 믿음을 배우고, 신앙을 배우고, 하나님을 알아가면서, 살아갈 그들의 인생 사진을 우리도 기대해야 합니다. 이 위대한 일에 우리 주님이 여러분을 사용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우리가 거부하고, 두드려 맞고, 쓰임 받는 요나가 되지 말고, 주님이 쓰시고자 할 때, 기꺼이 우리의 삶을 드리고, 우리의 시간을 드리고, 재능을 드려서, 주님께 귀하게 쓰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7주간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요나서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던 요나를 다시금 새로운 기회로 주셔서 사역하게 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을 위해서, 큰 배를, 폭풍을,큰물고기를, 박넝쿨을 벌레를, 드거운 바람을 준비하시면서,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배웠고, 우리 주변에 있는 니느웨에 대해서도 분명하게 하나님의 마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 델리한인장로교회도 주님이 명하신 이 구원의 역사를 위해 주님의 마음을 품고 니느웨를 찾아가는 구원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인도하사, 우리 주변에 니느웨로 우리를 보내 주시고, 우리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 사역이 일어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특별히 우리 교회가 성숙한 믿음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주님이 보내시는 귀한 영혼들을 잘 섬기고, 믿음 생활을 잘 하도록 돕는 공동체가 되도록 우리를 훈련 시켜 주시고, 우리를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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