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다시 찾은 기회

      날짜 : 2014. 01. 23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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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06일 요나서 3:1-10, 다시 찾은 기회

         

        새로운 기회두 번째 기회, 이 말뜻이 어떻게 틀릴까요? 구지 비교를 해 본다면, 새로운 기회는 경험을 해 보지 않은 상태에서 가지게 되는 모습이고, 두 번째 기회는 한 번 경험을 해 보았지만, 실패를 하고 다시 기회를 얻는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새로운 기회와 두 번째 기회는 어떤 것이 더 성공확률이 있을까요?

        각자의 생각이 다르겠지만, 저는 두 번째 기회가 더 성공확률이 높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미 앞서서 한 번의 실패를 경험해 보았기 때문에, 그로인한 아픔과 댓가가 얼마나 큰지를 알기 때문에 경솔하거나, 무모하게 덤비지 않을 것 같고, 주어진 기회를 살리지 못한 원인을 분석하고, 두 번째 도전을 할 때에는 더욱 많은 준비를 하고 도전하기에 좀 더 성공할 확률은 높을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에도 첫 번째 기회를 잘 못 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들 가운데에는 아니야! 나는 내게 주어진 첫 번째 기회를 다 잡았어라고 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지만, 우리의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안타까웠던 순간들이 하나 둘씩은 있을 것입니다. 한 번씩 돌이켜 보십시오. ‘만약에 그 때, 그 기회를 잡았더라면...., 아 그건 꼭 잡았어야 하는데...’ 라는 것들...아니 어쩌면 지금 인도에서의 일들이 이미 기회를 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왜 항상 나에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거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요나라는 한 사람에게 하나님이 두 번째 기회를 주시는 내용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이 됩니다. 요나서 3:1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라고 기록이 됩니다. 요나는 이미 앞선 시간이 요나서 1:1,2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니느웨라는 땅으로 가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했는데, 요나가 속한 이스라엘과 적대적 관계인 니느웨에 하나님의 사랑이 전해져서, 혹시라도 그 원수 같은 니느웨 사람들이 축복 받는 것이 싫어서 도망을 갔었습니다. 그리고 배를 타고 도망을 가다가 큰 폭풍을 만나서, 큰 물고기에 삼켜지고, 그 물고기 뱃속에서 깊은 회개 기도를 하고, 지금 물 밖으로 토해져 나왔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하나님은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도망간 요나에게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다시 두 번째의 기회를 주십니. 사실 요나가 여기까지 돌아오는 과정 속에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까? 성경의 표현에 따르면,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하시겠습니까? 요나도 역시 지금 겪었던 고생들을 경험하고, 얼마나 많은 이야기 거리가 있습니까?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대로 다시 일을 맡기시는 것.....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간혹 누가 잘못을 하거나, 따져야 되는 것이 맞을 때도 있지만, 그것이 그렇게 되다가는 다시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아주 약해진 상태가 될 때가 있습니다. 우리도 간혹 우리 자녀들이 뭐를 잘못했을 때, 부부 관계가 좋아지지 않아서, 분명히 뭐라고 말을 하기는 해야 하는데, 그냥 넘어가주면서 가야 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짚고 넘어가면, 어쩌면 더 이상 일어서기가 어려워질 때가 있습니다.

        오늘 요나서에서 요나를 다시 부르시는 그 어떤 내용의 기록이 이어지지 않고 바로 요나에게 이전에 맡겼던 일을 다시 맡기십니다.

        요나서 2장의 마지막은 10절에는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고 이야기를 하고, 3장이 시작되는 1절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 하나님의 성품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이시기에 우리가 잠잠히 그 분 앞에 나아오는 것을 그 모습 자체를 통해 우리의 가장 깊은 부분을 만져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긴밀하게, 한마디도 빠지지 않고,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 좀 서먹한 관계처럼 보일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그 관계 속에서 우리에게 다시 힘을 주시고, 우리를 다시 일하도록, 그리고 우리를 다시 하나님과 회복된 관계 속으로 이끌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지금 혹시 하나님하고 좀 서먹하신 분이 계십니까? 같이 있어도 이야기가 잘 안되고, 좀 냉냉한 것 같으십니까? 예배를 드리는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돌보심의 과정들이 마음에 깊이 다가오지 않는 분이 혹시 계십니까?

        그것이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럴때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요나를 통해 보시다시피, 그렇게라도 그 끈을 놓치 않도록 우리가 잡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잡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 끈을 우리의 삶을 잘 보시고, 지금 우리가 느슨하게 잡았지만, 언젠가는 꽉 붙잡도록,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 주변을 잘 살펴보시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붙잡기 위해, 여러분을 사랑하기 때문에, 여러분을 놓치 않기 위해 여러 선들이 겹겹이 여러분 주변에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손만 뻗으면 언제든지 붙잡도록 주님이 항상 우리에게 가까지 계셨고, 계셨음을 잊지 않으시기를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는 요나가 순종하고 드디어 사역을 시작합니다.

        요나서 3:3,4입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여기서 가장 중요한 구절은 여호와의 말씀대로입니다. 요나 자기의 방식대로가 아니라,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자기가 가기 싫었던 니느웨로 갑니다. 그런데 정말 큰 성읍이였던 같습니다. 니느웨의 규모가 사흘길을 걸을만큼 크다고 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옛 우리 조상들이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가는데 10일 정도에 걸어갔다고 합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대략 400킬로미터라고 잡는다면 하루에 40키로미터 정도 걷는다는 소리인데, 제가 요즘 저희 아파트를 두 바퀴 돌면 4km인데, 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러니 하루에 한 10시간 걸으면 40km, 그럼 오늘 사흘이면, 120km 정도 되는 거리의 성읍이니 그 규모나 크기가 정말 어마 어마한 것 같습니다.

        옛날이지 않습니까? 이 정도의 고대도시에 곳곳에 성들로 둘러싸인 행정도시라면, 정말 엄청난 곳일 것입니다. 당시 목축업에 종사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볼 때 니느웨는 엄청난 규모의 나라였고, 도시였습니다. 아마 요나가 니느웨에 도착을 했을 때 많이 눌렸을 것입니다.

        제가 영국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 올 때 잠시 일본 동경에 머물 일이 생겼습니다. 그 전에도 일본은 많이 다녔지만, 동경은 제가 제대로 잘 다니지 못했기에 잠시 짬을 내서 동경에서 제일 번화한 동네에 한 백화점을 들어갔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선교지로 부름을 받고 준비하던 나라가 일본이라 당시에 일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기왕 온거 동경에 제일 번화가인 명동 같은 곳을 가보자고 마음을 먹고 갔었습니다. 막상 그곳에 가보니, 그 화려한 백화점에서 소위 명품들을 누리고, 좋은 환경에서 누리는 일본 도시 사람들을 보고, 세련된 옷과 그들의 문화를 보니, 제가 구지 이곳에 와서 선교사로 복음을 전해야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계속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같이 일본말도 잘 못하고, 차도 없이 초라한 제 모습이 이들에게 과연 도전이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니 정말 뭐가 누르는 것처럼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였습니다.

        아마 요나도 그런 심정이 아니었을까를 추측을 합니다. 하지만, 이번에 보여지는 요나는 과거의 그런 요나가 아니였습니다. 그리고 이 니느웨가 어떤지, 이제는 관심도 없습니다. 지금 그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만 전하는 것이 자기 일이기에 정말 그것만 집중합니다. 그래서 창피한지, 뭔지, 누가 뭐라 그러든지, 니느웨의 성읍을 돌아다니면서 하루동안 다니며 그것도 외쳤다고 합니다. 그 내용도 사십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라고 하면서 외쳤습니다.

        요나가 여기까지 와서 사역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실제로 사역을 한 것은 하루입니다. 보통 단기 선교팀도 일주일이 기본인데, 요나는 하루입니다. 단 하루....그런데 그 하루가 엄청난 결과로 이어집니다. 사실 외국인이 와서 이렇게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가서 이야기를 하고 다니면, 사람들이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습니까? 그리고 좋은 소리도 아니고 망한다고 하는데, 어느 누가 기분이 좋겠습니까? 그리고 사실 복음을 전하는 요나도, 요즘 유행어처럼 영혼 없는 외침입니다. 이들이 꼭 하나님께도 돌아와서 은혜를 받아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냥 던지고 나오는 이야기처럼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그런데....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 보겠습니다.

        요나서 3:5을 보면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고 했습니다. 멸시하고, 우습게 여기기는커녕 사람들이 요나가 전한 말을 다 그대로 믿고, 돌이켰습니다.

        3:6에는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 위에 앉으니라고 했습니다. 니느웨라는 그 엄청난 도시 전체를 구축하고, 다스리는 왕도 그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 앞에 얼굴을 조아립니다.

        그리고 3:7,8을 보면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사실 짐승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간혹 우리는 사람들이 종교심을 가지고, 보통 인간이 생각한 그 이상의 모습도 행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역사적인 많은 건축물이나, 예술품들에 종교적인 열정이 들어 갈 때 인간들이 자신들이 상상한 것 이상을 만드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니느웨의 왕의 생각에는 자신들의 금식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짐승들에게까지 이렇게 금식을 시키면 하나님이 노하지 않으실까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육신의 행위만을 한 것이 아니라, 3:8을 보면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대로 하나님께 반응합니다.

         

        요나는 이 사실에 놀랍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이 말씀하시고, 기적을 보여 주시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선지자, 제사장 들을 통해서, 그리고 때로는 그들을 통해 기록된 말씀으로, 여러 가지 국가적인 상황으로 말씀을 많이 해도, 이스라엘 백성을 듣지 않고, 돌아서서, 하나님께 죄를 짓고,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을 배반하는데, 이 니느웨 백성은 그 나라 전체가 다 믿어 버리는 집단 개종이 일어납니다.

        사실 나중에 베드로와 제자들이 함께 말씀을 전파 할 때 삼천명이 한꺼번에 믿었다는 기록이 있고, 그것도 엄청나다고 하지만, 유명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도, 인생 전체를 다 드려서 복음전도자로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주께로 이끌기는 했지만, 오늘 요나처럼 이렇게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것도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고, 억지로 전했는데, 나라 전체가 다 믿는 초대박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숫자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양적인 결과로 비교해서 보았을 때 요나의 사역은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나님은 간혹 우리의 기대와 예측과 전혀 다르게 일하시는 분임을 보여 주는 일들을 많이 보여 주십니다. 특별히 니느웨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볼 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것이라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까지 그 누구도 그곳에 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겠다고 생각조차 해 보지 않은 곳이였고, 이스라엘 백성도 자기 백성을 넘어서 그 누구에게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생각해 보지 않은 일이였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도 초반에 그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하나님의 명령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반대 방향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단 한번의, 단 하루의 요나의 메시지를 듣고 나라 전체가 다 주님을 따르는 일이 생겨 버립니다.

        이를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은 하나님의 사역을 제한하지 말라, 하나님의 사역을 계산하지 말라라는 사실입니다. ‘저 사람은 복음을 받아 들일만하니까 가서 한 번 전해볼까?라는 마음이 들어서 가보면 생각지 않게 아주 강하게 반발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 사람은 절대로 마음을 열지 않게 생길 것 같이 견고하게 보이는 분들이라도, 생각지도 않게 마음을 열고 다가와서 하나님에 대해서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군에서 군종병으로 생활할 때 의무부대의 정재용이라는 상병은 부대에서 넘버2 였습니다. 넘버 1이 교회 찬양대 지휘자였기에 제가 자주 그곳에 놀러 가는데, 제가 가면 별로 안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기억이 선명한 얼굴 전체를 다 가리는 시커먼 안경, 그리고 들리는 국어사전에서 도저히 찾아 볼 수 없는 다양한 명사들을 붙여서 액센트를 주면서 하는 욕들, 그리고 하루 두갑의 줄담배와 정말 무시무시하게 생긴 웃지 않는 인상.....그런데 그런 그가 어느 날 부대에서 영화를 보고 있는데, 제 옆에 와서 묻습니다. “얼마 전 고향에 있는 누나가 편지를 보냈는데, 가까운 사람 중에 교회 다니는 사람 있으면 교회 다니라고 했는데 왜 정군종은 나보고는 교회가자는 말 안하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참 미안했었습니다. 그 분에게 사영리로 복음을 전하고, 영접을 하고, 제대하기까지 열심히 교회를 나오고, 제대해서 선교단체에 들어가서, 제자 훈련을 받고, 자기도 복음전도자가 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 주위에도 우리가 다가가지 않아서 이렇게 그냥 니느웨처럼 방치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 누구도 한 번 다가가서 예수님 믿으세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여러분 이거 되게 쉬운 것 같은데 굉장히 어렵습니다. “교회 다니세요는 쉽게 할 수 있는데, “예수님 믿으세요는 진짜 자기 입에서 잘 떨어지지 않습니다.

        의사 전도왕으로 잘 알려진 이병욱 장로님은 외과의사이기에 싸우다가 다친 조폭들을 많이 만나기도 한다고 합니다. 복부에 칼을 맞아서 와도, 어느 조폭은 치료보다도, 문신 잘 맞춰서 꿰메 달라고 하고, 제대로 치료하라고 으름장을 논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병욱 장로님은 그런 분들이 복음을 들으면 더 잘 듣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가서 말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주변에 제대로 된 복음을 나누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이 아무도 생각하지 않던 니느웨를 위해서 하나님은 요나를 준비하시고, 요나를 보내십니다. 하나님은 절대 자기의 백성을 포기 하지 않으십니다. 강제적으로 돌이키지 않으시고, 러브콜은 계속 보내시고, 계속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깨달아 알도록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역사를 이루십니다.

        여기 모인 모든 분들도, 어느 날 갑자기 짠하고 마음을 먹고 교회를 오신 분이 없으실 것입니다. 각자의 나름대로의 사연이 있고, 그러한 가운데, 각자에게 맞춰진 가장 최선의 방법으로 우리를 주님께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십니다.

        저는 불교 집안에서 쭉 자라고 성장을 했는데, 고등학교 1학년때 기독교 학교에 배정을 받았습니다. 일주일에 두, 세번 학교 예배 시간에 들었던 교회 이야기들이 새로웠습니다. 제 환경 속에서는 감히 다가갈 수 없었던 교회의 문화를 기독교 학교를 통해서 경험하고, 그곳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아침 조회 시간에 기도하는 소리가 처음에는 형식적으로 들리더니, 조금씩 마음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급기야는 제 스스로 주일날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되었고, 그 시간이 되기까지 하나님은 제가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님은 각자에게 맞는 가장 필요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부르시고, 초청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택한 사람들을 위해서 요나보다 더 드라마틱한 방법을 통해 한사람, 한사람을 인격적으로 부르십니다.

        우리 주위에 계신 분들을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한사람 한 사람을 이 하나님의 눈으로 보시기를 바랍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만나보고 싶어 하시고, 주님이 교제하고 싶어 하시고, 그 분들이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항상 이 부분을 염두해 두고, 우리 주위의 분들을 만나고, 열린 마음으로 언제가 주님의 이 특별한 부르심을 받으실 분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주변에 계신 분들을 한 분 한 분 보시기를 바랍니다. 지금은 저 멀리, 견고한 니느웨성 같이 굳게 잠겨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은 그 분들을 향해 오늘 여러분을 요나처럼, 그 분들에게 보내고 싶어 하실지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요나서 3:10을 보겠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를 보면 아니 사랑의 하나님이 왜 재앙을 내려라고 반문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도 하시지만,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사랑하는 자기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돌보시기 위해, 죄를 철저하게 징벌하시는 분입니다.

        이 니느웨는 1:2에 보면 이 성의 악독이 내 앞에 상달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하나님께서 직접 하셨습니다. 그 성에서 일어나는 천인공로할 악들이 하나님께도 상달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니느웨를 향해 징벌전에 마지막에 택한 방법이 사랑의 메신저인 요나를 한 번 보내서, 기회를 더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죄를 심판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재앙도 거두어가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요나서에서 때로는 바람을 예비하시고, 폭풍을 예비하시고, 그 폭풍을 잠잠하게 하시고, 큰물고기를 예비하시고 요나를 삼키게도 하시고, 요나를 밖으로 토해내기도 하게 하시고, 니느웨를 재앙에서 건져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들을 적지 않게 보게 되었습니다. 그 어떠한 것도 우연이나, 갑자기 되어진 것이 아니라, 분명한 시간에 적절한 시간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것을 우리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만이 아니라 오늘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 하시고, 미래의 시간에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분명히 믿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해 지금 어떠한 상황들을 사용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까? 느끼고 계십니까? 하나님은 이것을 위해 때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기도 하십니다.

        목회자이기에 이런 일을 많이 겪는데, 간혹 멀정하게 지내다가도 유독 생각이 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화를 했는데, 그냥 뭐라고하지 않고 들어만 주었는데, “오늘 하나님이 너무나 많은 말씀을 해 주셨어요라고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을 가끔 봅니다. 식사 가운데 한참 이야기를 듣고 나면, 전혀 생각이 안나다가 전해 주어야겠다고 생각되는 한마디가 생각이 나서 전해 주면,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음성이시라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믿는 자들에게 경험되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인도라는 나라를 결정하려고 40일의 작정 기도회를 하는 시간 동안에, 서울 종로 한복판에서 일하는 저에게, 일본에서, 스리랑카에서, 탄자니아에서, 호주에서, 필리핀에서, 체코에서, 인도에서, 독일에서, 그리고 제주도에서 그리고 참 다양한 사람들이 찾아와서 꼭 저에게 필요한 말씀을 해 주고 가시는 것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참 신기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서도 때로는 자연적으로, 상황적으로, 때로는 사람을 보내기도 하시고, 일을 통해서 나에게 주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하시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하시고,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나 하나를 위해 이처럼 많은 것을 사용하셔서, 나의 마음이 온전히 주님께 열리도록 하게 하시고, 나를 존대해 주시고, 인격적으로 다루어주십니다.

        그러기에 그 분을 따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하나님을 만나고, 그 분과 교제하며, 주님과 즐겁게 동행하며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한 번 따라하시겠습니다.

        -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회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 하나님의 역사는 나의 계산과 예측으로 할 수 없다

        -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하심을 깨닫게 하소서

         

        이 세가지 말씀 가운데 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놓치지 않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하나님의 기회를 항상 잘 깨닫고 놓치지 않도록

        - 예측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알아가도록

        - 하나님의 주권과 역사하심을 깨닫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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