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2일, 요나서 2:3-10, 감사의 노래를 부르는 요나
여러분 ‘꿀 먹은 벙어리’라는 속담이 무슨 뜻인지 잘 알고 계시죠? 이런 저런 추측설이 있지만, 국어사전에서 이야기 하는 뜻은 “속에 있는 생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사람을 이르는 말”이라고 합니다. 인도에 와서 저도 어느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한인교회를 섬기는 목사인데, 한인들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고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한인들하고 눈도 잘 안 맞춥니다. 커피숍에 않아 있으면 기회가 생기면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정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속에서 해야 할 말은 많은데, 말 그대로 속이 타들어가는 것을 경험합니다.
한때는 전도왕 출신이고, 길에서도, 어느 곳이든 기회만 주어지면 복음을 전했는데, 왠지 여기에 와서는 힘을 못 서게 됩니다. 오히려 잘 모를 때는 가서 과감하게 전하게 되는데, 교민 사회도 좁고, 다 촘촘히 연결되어 있다 보니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더군다나 한인교회 목사에 대한 이야기들은 서로들 너무나 많은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어서, 다가서기가 망설여집니다. 그러면서도 주변에 하나님을 알아야 될 분들이 많은데, 하나님께로 오지 않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욱 마음이 타 들어갑니다.
지난번 첸나이에서 고구마 전도왕 김기동 목사님이 가르쳐 주신 전도 방법은 인도에서 참 적절한 전도 방법인데, 이미 방법을 알았음에도 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직접 복음을 전하는 것이 최고의 방법인데, 어느새 그 주변의 것에만 맴돌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영어로 말하면 “가정법 사역”만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교인이 온다면..., 만약에 교회 홈페이지를 본다면...., 만약에 우리 교회를 방문한다면...” 물론 이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우리 하나님께서 더욱 관심이 있어 하시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더욱 기뻐하십니다. 그런데 그러기까지 가장 힘든 것이 상대방으로부터 오는 “거절감”입니다. 이것 정말 힘듭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교인들에게도 간혹 거절감을 받으면 상당히 후유증이 오래갑니다.
목사가 되고, 이런 저런 자리에 서보고, 나름대로 안정적인 자리들을 경험해 보니, 더욱 힘들어집니다. “내가 나 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왜 자존심 상하게 거절감을 당해야 되는데...”,라고 하면서, 이것에 후유증을 경험해 보고 나니까 사람이 점점 굳어집니다. 이렇게 사람들 사이에서, 교인들 사이에서, 가까운 사람들에게서도 받는 거절감은 상당히 큰 타격을 줍니다.
그런데 우리 하나님도 우리에게 많은 거절감을 경험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싸들고 쫒아가서 구해야 할 텐데, 그 분이 오히려 많은 거절감을 당하십니다. 자기가 창조한 사라들, 그것도 죄에 바져서, 가치로 치면 가치가 없는 사람들에게....
오늘 우리가 읽은 요나서의 시작도 사실 요나라는 하나님의 선지자, 그러나 제대로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지 않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이 거절당하시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어떻게 반응하시는지를 우리에게 자세하게 보여 주고 계십니다.
요나서를 대하면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니, 더욱 깊이 하나님의 마음을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별 볼일 없는 말 안 듣는 선지자 요나에게 거절을 당하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으로 요나를 향해 기회를 주시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인도하시는 인내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회사나, 인간사회에서는 이런 경우 단칼에 관계를 정리해 버립니다. 나에게 조금이라도 불편하게 했거나, 내편이 아닌 모습을 보면, 가만 두지 않고, 거절감에 입은 상처를 만회하기 위해, 보복 행위를 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인정하고 나를 떠 받쳐 줄 때까지 계속 툭툭 건드리고, 힘들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요나의 그 부족한 성품을 그대로 수용하시면서, 그가 택한 길 속에서 그 만이 돌아 올 수 있는 일들을 만들어 주시면서, 그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장의 내용들은 이제 그 요나가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장면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요나는 지난 시간들을 통해 그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께로부터 멀어져 갔습니다. 그래서 요나서에 나오는 표현은 “내려갔다”라는 표현이 계속 반복되어집니다. 하늘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방향을 암시해 줍니다. 요나 1:3에는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라고 기록이 되었고, 요나 1:5에는 폭풍이 있어서 다 죽에 되어도 “사공들이 두려워하여 각각 자기의 신을 부르고 또 배를 가볍게 하려고 그 가운데 물건들을 바다에 던지니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요나는 2장에서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얼마나 많이 내려 왔는지를 이제 그 스스로 표현합니다. 2: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2:6에는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라고 이야기를 하며, 지금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했는지를 이 “내려갔다”라는 표현을 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의 거리를 측정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나님과의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여러분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난 시간들 동안 내가 했던 일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님을 가까이 했는지, 아니면 멀어진 행동을 했는지 하나씩 잘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사실 요나는 본인 스스로가 내려 간 것인데, 지금의 시점에서 엉뚱한 이야기를 합니다. 요나서 2:4을 보면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기가 도망 가놓고 책임은 마치 하나님이 자신을 쫓아내서 이렇게 고난을 받게 되었다고, 이 모든 책임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있습니다. 여기서 전형적인 인간의 연약함을 또 발견하게 됩니다. 잘못은 자기가 하고 결과의 책임은 하나님께도 돌리는 모습들....,
사실 지금 요나의 심정은 계속적으로 하나님께 거절감을 드렸기에 자신이 스스로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없습니다. 부끄러운 짓을 했기에, 그리고 선상에서 살려고 애 쓰는 선원들 앞에서 기도 한 번 하지 않은 자신의 도도함들이 다 생각이 났고, 결국 이 큰 물고기 뱃속에서 겪는 자신의 비참한 처지를 생각하는데, 이 모든게 자기 잘못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니, 도저히 하나님의 얼굴을 쳐다 볼 용기가 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나가 하는 말이 책임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주께서 자신을 쫓아내셨다고...”라는 감정으로 표협합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지금 내가 비참한 상황에 처했다고, 이 고난이 주께로부터 왔다고, 주님께 책임을 전가하면 안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큰 폭풍, 큰 물고기, 이 모두가 요나에게는 재앙으로 보였지만, 성경을 끝까지 읽어보면, 이 모든 것이 요나가 하나님과 바르게 살도록. 하나님이 요나를 사랑하셔서 계획한 특별한 조치였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속 좁으시게 삐지거나 그러셔서 재앙주시고, 우리 망하게 하려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가 잘되기를, 잘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가장 인간답게 살도록 우리 인생을 설계 하시고 계획하시는 분이 하나님 이십니다.
요한복음 10:10을 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예수님도 본인이 이 땅에 오신 이유를 분명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화난 인도의 신과 같이 우리가 제물을 드리거나 비위를 맞추면 우리의 사업도 잘되게 하고, 비위를 잘못 맞추면 우리를 망하게 하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보다도 더 우리가 잘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요나처럼 지금 고난을 받게 되니까, 이것 때문에 자기가 했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께 책임을 미루는 모습이 우리에게서 없어지기를 바랍니다.
요나에게도 하나님은 마찬 가지셨습니다. 항상 요나가 바르게 되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요나 곁에서 요나가 바르게 응답해 주기를 바라셨습니다.
이제 요나가 서서히 반응을 하기 시작합니다.
요나는 먼저 하나님과 멀어진 자신의 거리를 자세히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왔는지를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요나 2:3을 보면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 라고 했습니다. 2:5,6에는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라고 했습니다. 내가 컨트롤해서 마시는 물도 간혹 잘못 먹으면 얼마나 곤혹스러운지 모릅니다. 가끔 물놀이 가서 먹에 되는 물들이 얼마나 사람을 힘들에 하는지 모릅니다. 정말 누가 물에 빠져 보십시오. 수영을 못하면, 그 사람이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얼마나 처참합니까? 재산이 있든지, 학벌이 있든지, 교양이 있든지, 물로 당하는 고난에는 속수무책입니다. 너무나 처참하게 무어집니다.
요나는 그 물이 자신에게 넘쳐서 큰 물고기 뱃속에서 숨이 넘어가기까지의 고난이 반복되면서, 죽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물고기 뱃속까지 들어 온 바다풀이 엉기면서, 그 악취와 열기로 지금 정말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까지 가게 됩니다. 특별히 지금의 이 상황이 자기가 스스로 헤어 나올 수 없는 상황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2:6에 나온대로 자신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는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막았다고 이야기를 하면서, 그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이 갇혔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인도에서도 이런 경험을 많이 하지 않습니까? 간혹 엘리베이터 안에서 정전이 되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순간들....특별히 고층 아파트에서 이 일을 경험하게 되면 너무나 힘듭니다. 시간이 좀 지나신 분들이야 이제 좀 여유를 가지지만, 인도에 처음에 왔을 때는 말도 안 되지, 밖에 나가면 개가 돌아다니면서 물려고 그러지, 사람들은 눈 시퍼렇게 뜨고 속이려고 하고, 날씨도 덥지...그러면서 우리도 인도에서 꼼짝달싹 못하고 지내 본적이 모두에게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렇게 물리적으로만 갇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속에는 영적인 부분에서도 이렇게 꼼짝달싹 못하게 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의 죄, 탐욕, 습관들, 등등의 많은 유혹의 덫에 한 번 잡히면, 우리도 꼼짝달싹 못하게 됩니다. 덧이 참 무서운 것입니다. 한 번 잡히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멀쩡한데,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 이것이 상당히 무섭습니다.
신앙인들도 가끔 이 덫에 빠집니다. 우리를 시험 들게 하는 사단, 마귀들이 우리의 페이스를 잃게 합니다. 이 덫을 빨리 제거해 주지 않으면 죽습니다. 아무 것도 안하는 것 같지만, 덫에 걸린 시간부터는 죽음을 향해 가는 시간입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덫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지금 하나님께로 나오지 않는 분들도 자세히 살펴보면 이런 덫에 걸려 있습니다. 사단 마귀가 이것을 너무나 잘 알고, 각 사람에게 맞는 덫을 설치해서 사람들을 흔들어 놓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살려고 하는 여러분을 붙잡는 그 덫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온전하게 예배를 드리는 상황을 막고, 방해하고, 우리가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덫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 덫을 피해야 하고, 빨리 헤어 나와야 됩니다. 그런데 간혹, 덫에 걸렸는데도 좋다고 거기서 누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누리고 좋아도, 죄와 사망으로 가는 길이면, 어서 빠져 나오고 돌아와야 합니다. 한 번 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이 묶이지 말 것에 묶여서 우리 인생을 그냥 흘러가는 인생으로 살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을 묶고 있는 죄의 습관들, 특별히 말로 짓는 죄의 습관들, 은밀하게 자기만이 즐기는 것에 묶여서,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속히 주님께로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요나는 이것을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지금 자기가 처한 큰 물고기 뱃속에서는 절대로 혼자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2:5,6에서 “바다 풀이 엉기고, 자신이 땅 깊은 뿌리까지 내려 갔는데, 그곳이 빗장으로 굳게 잠겨 있어서 올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 요나에게 드디어 바라고 바라던 일이 생깁니다.
요나 2:6에 보면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라고 합니다. 여기서 정확하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스스로 뚫고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건져 주시는 분이 계셨다는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에서 여호와의 성품이 잘 드러납니다. 이 구원이라는 것은 마치 덫에 걸려 치명적인 타격을 입은 짐승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상황에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서 이 덫에서 풀리는 상태를 이야기 해 줍니다.
저는 시편 40편 2절의 다윗의 고백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웅덩이는 우리가 옛날에 영화를 보면, 그곳에 한 번 빠지면 사람이 계속 빨려 들어가서 죽게 되는 무서운 곳입니다. 그곳에서도 빠져 나오려면 누군가의 손을 잡고 나오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곳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 곳, 그것도 이름이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이라고 했습니다. 각자 인생에서 자신이 빠진 고난을 이야기 할 때 이런 표현 많이 씁니다. 내 고생한 이야기를 쓰면, 소설이 되고도 남을 정도의 기가 막힐 이야기라고....그런데 그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건져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후반절에 나온대로, “내 발을 반석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수렁에 빠져서 밑으로 빨려 들어가다가도, 큰 반석을 밟게 되면, 더 이상 빠지지 않습니다. 너무나 정확하게 다가오는 이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들으면서, 우리의 인생에 여러 수렁과 웅덩이가 있어도 우리 하나님을 붙잡으면,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도 신실하게 건져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보게 됩니다.
지금 하나님은 요나를 깊은 바닷 속에서 진짜 건져내 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사람임에도 그렇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던 요나를 다시 살려 주심으로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다시 한 번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 마음을 열고 간절히 구하면 우리의 과거를 묻지 않으시고, 우리를 구해 주시는 하나님 이십니다.
요나 2:1,2을 보면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라고 합니다. 2:4을 보면 “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라고 합니다. 2:7에도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라고 합니다.
2:9에도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라며, 요나의 기도가 점점 더 깊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 침묵으로 일관하던 요나가 점점 더 입을 열고, 하나님께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자신은 하나님께 나아가고 싶다고, 주님이 계신 성전에서 예배드리기를 원한다고, 하나님께 고백하며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다시 온전한 예배자로 서겠다고,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갚겠다고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그 어떤 일 보다도, 그 분께 나아와서, 그 분을 인정하며, 그 분을 노래하고, 그 분을 찬양하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십니다. 많은 일을 하나님께 하지 않을지라도, 그 분 안에서 거하는 것을 우리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요나도 이 특별하고 흔치 않은 상황에서 죽겠다고 소리치던 모습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이처럼 자신을 위해서 하나님이 많은 일을 하신 것에 대해서 하나씩 헤아려 보니까, 자신이 하나님을 도망 한 것에 비해서, 하나님이 자신을 쫓아내었다고 생각하는 자신과 다르게, 하나님은 항상 요나를 위해서 더 깊은 사랑을 가지고, 자신을 도우셨다는 그 생각을 하면서 이제 감사가 나왔습니다. 2:9을 보면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감사가 끝나자 기적이 일어납니다.
2:10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라고 합니다. 여기서도 주목해서 보아야 하는 단어가 있는데, 그 단어는 “여호와께서”라는 단어입니다. 물고기를 주관하시는 분이 여전히 하나님이심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의 입에서 모든 것을 인정하고, 지금까지 이루어진 상황이 잘못되었다고 따지듯이 자기 자신이 교묘하게 빠져 나갔던 요나가 이 모든 것을 인정하고, 주님께서 자신을 사랑해 주심을 깨닫고 감사의 고백을 할 때, 주님은 그를 다시 살게 해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스스로 깊은 깨달음을 얻고 진심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고백할 때,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의 삶속에서 불평하고, 힘들어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감사하고, 주님을 인정할 때 하나님이 우리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3:6에도 보면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잘 적용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인도가 힘든 곳이기에, 이곳에서 더욱 하나님의 손길을 경험하고, 여호와를 인정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길을 열어 주십니다. 지금 회사가 어렵고, 가정이 문제가 있고, 건강에 어려움이 있으시다면, 감사의 제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지켜 주신 하나님을 인정하십시오. 그 분의 손길을 인정하고, 매 순간에 감사하며, 주님께 나아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 감사하는 자를 요나를 육지에 토해 내신 것과 같이 구원하심의 역사가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찬양하는 자리를 많이 가져야 합니다. 찬양은 그 자체가 하나님을 인정하고, 입술로 고백하는 시간입니다. 그러기에 찬양을 많이 불러야 하는 이유가, 우리가 기도가 좀 부족해도, 그 찬양의 가사를 고백하면, 그 가사 대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이 축복의 시간을 놓치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나가 이 모든 것을 깨달았을 때, 주님은 그를 물고기 뱃속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가 온전히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계속적으로 상황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배워야 할 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않고 피하면, 그것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합니다. 잠시 눈앞에서는 그것이 없어졌을지는 몰라도, 다른 곳으로 가면, 이상하게도 그러한 환경을 다시 경험하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분명하게 깨달음을 가져야 되고, 그러기 위해 잘 참고, 이겨나가야 합니다.
사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관계도, 신앙생활도, 교회에서의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이삭을 속인 야곱은 자기보다 더 심한 사기꾼 삼촌 라반을 만나서 인생 전체의 시간을 통해 깨닫기까지 고난을 당합니다.
내가 지금 당하는 그 일, 여러분 자신이 잘 알 것입니다. 여러분의 한계를 누구보다도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그런데 힘들다고 피하지 마십시오. 주님이 감당할 힘을 주시기에 좀 힘들고, 어려워도 지금 있는 그 상황에서 잘 견디고 버티시기 바랍니다.
지금 요나에게 수없이 물이 넘치고, 호흡이 가빠지는 어려운 상황까지 갔을지라도 요나가 그곳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깨달았습니다. 다른 것을 해 볼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 굴리던 잔머리도 굴리지 않고, 쏟아지는 물을 뒤집어쓰면서, 그냥 하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그것이 재앙이 아니라 감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러분 이 감사의 노래가 물 밖에 토해지기 전에 불려 졌다는 사실을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금 고난 중에 부르는 감사의 노래가 우리 하나님께 올려 졌습니다.
지금 인도에서 사는 것이 어려움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살아도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시기에 더욱 감사의 노래를 하나님께 올려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놓인 가운데, 여호와를 인정하며 감사의 노래를 부르는 하나님의 백성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 델리한인장로교회 모든 교우들은 이 감사의 찬양으로 주님께 나아가며, 요나를 육지로 토해 내신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며, 지금 고난의 현장에서 토해져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의 땅에서 승리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를 인도 땅에서 만나 주시고, 우리를 이곳에 부르셔서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립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서 처음에는 요나처럼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했지만, 돌아보니, 그 모든 순간에 하나님이 나를 위해 계획하신 놀라운 일이였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인도에서 더욱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기 원합니다. 우리가 부족하오니, 힘을 주시고, 여호와를 인정하며 감사할 때 새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가 깊이 경험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지난주에 기쁜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 청소년부 학생 중에서 하나님께 십일조를 구별하여 드렸습니다. 나중에 부모님을 통해서 듣게 되었는데, 이번에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았는데, 그 장학금의 십일조를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렸다는 것입니다. 인도 학생들과 견주어서 성적을 잘 받는 것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그 순간에 하나님을 인정한 것입니다. 흔치 않는 일이지만, 그 흔치 않는 상황에서도 먼저 하나님을 인정하고, 자신이 공부 할 때 지혜 주시고, 도우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린 것입니다.
아직 신앙이 성숙하지 않는 청소년 시기임에도 이렇게 자신이 분별하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물질을 정성껏 구별하여 드린 귀한 믿음을 하나님은 좋아하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것에 대해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가 빠져 나와야 된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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