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분명히 가야 할 길

      날짜 : 2014. 01. 23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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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98, 요나서 1:7-16, 분명히 가야 할 길

         

        사람의 본성 중에 하나는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를 통해서 얻게 되는 교훈이나 귀중한 가치를 배우는 것이 아니고, “이게 다 누구 때문이다라는 회피주의자들이 됩니다. 그도 그럴것이 책임을 지게 되면 실제적인 손해를 다 끌어안아야 되기 때문에 책임을 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기업이나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제일 많이 부담을 가지는 것이 바로 책임을 지는 자리입니다. 보이기에는 좋아보여도 실제로는 책임져야 할 일이 많기에 참 부담스러운 자리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을 많이 해도 책임을 지지 않는 자리에 있는 분들과 일은 적게 해도 책임을 지는 자리에 계신 분들의 부담감과 거기에 따른 스트레스는 분명히 다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듬직한 분들을 만나는데, 그 분들의 한결같은 성품은, 자신의 일에 책임끝까지 지시는 분들입니다. 누구한테 뭔가를 부탁하면 어떤 분들은 자신의 일이 아니기에 무책임하게 일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반면에 어떤 분들은 자기에게 유리하든, 유리하지 않든 모든 일에 책임을 지며 끝까지 잘 감당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참 존경스럽고, 이런 분들과 같이 있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집니다.

        그런데 더 힘든 부류의 사람이 있는데, 책임을 질만한 분인데, 일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능력이 없어서 책임을 못 지는 분들이야, 본인도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하지만, 일을 할 수 있는 능력도 있는데, 전혀 일에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은 사실 더 얄밉습니다. 자신이 져야 할 책임을 지지 않고, 능력은 있다고, 자기 과시는 하지만, 실제로 책임을 져야 하는 순간에는 얼굴 빛 하나 변하지 않고, 사람들 앞에서 책임을 지지 않는 사람....우리가 보통 파렴치한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국어사전에는 파렴치한(破廉恥漢)체면이나 부끄러움을 모르는 뻔뻔스러운 사람이라고 정의를 하고 있는데, 오늘 성경은 아쉽게도 그 파렴치한 같은 사람이 오늘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선지자인 요나가 되어집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이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할 정도로 뻔뻔합니다. 그런데 그 뻔뻔한 사람인 요나를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게 되어 집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이루시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오늘 본문은 여호와의 말씀이 임해서 그 명령을 받고, 니느웨라는 지역으로 가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그 니느웨가 요나 선지자의 이스라엘을 괴롭힌 나라라, 요나는 의도적으로 그 명령을 거부하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낯을 피해서 배 밑에서 요나가 잠이 든 사이에 여호와께서 큰 폭풍을 내리셔서, 지금 배가 깨지고, 뒤집히게 생겼고, 배 위에서는 지금 선원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선원들이 가장 아끼는 도 바다에 다 던지고, 선원들 자신의 신에게도 기도를 해 보았지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바람과 폭풍은 더 거세어졌습니다.

        이런 위기가 오면 인간의 군중 심리는 이 일의 책임이 누구 때문인가를 이야기 하고, 그 책임질 희생양을 찾습니다. 선원들이기에 왜 기상예보를 못했냐?, 이 이 항로를 택했냐?, 왜 이렇게 을 많이 실었냐?, 왜 이렇게 위기관리가 안 됐냐? 등 사소한 모든 트집은 다 잡습니다. 진짜 위기가 오면, 정말 그 위기에서 책임을 뒤집어씌우고 자기가 빠져 나가려고 별별 트집을 다 잡습니다. 그러다보면 미움이 싹 트고, 사람을 신뢰하지 않고, 불신이 스며들어서 그 공동체가 금새 무너집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트집 잡을 실수들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은 그 책임을 질 사람을 찾기가 어려워지자, 그들 나름대로의 방법을 택합니다. 사실 이 엄청난 폭풍속에서 이렇게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메어 달립니다.

        그래서 제안된 방법이 제비뽑기입니다. 사실 말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그 위기의 상황에서 누구 때문인지를 알기 위해 제비를 뽑는다는 것....참 황당한 일입니다. 요나서 1:7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 보자 하고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제비라는 것은 당시 고대에도 많이 사용한 방법이였습니다. 그 제비는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거나 땅이나 물건을 분배할 때처럼 공정성을 요구하는 결정을 할 때 사용하는 방법중에 하나였습니다. 구약 성경의 역사에는 이러한 방법들이 많이 사용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제비는 사람이 뽑지만, 결정은 하나님이 하신다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 이 방법을 사용하신 사실들이 구약성경에는 여러곳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성경 잠언 16:33을 보면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습게 들리실 수도 있지만,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이 전쟁을 앞두고 이런 일을 행하기도 하였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를 충원할 때도 이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사도행전 1:26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가을이면 한국에서는 각 교단의 총회장을 선출하는 시기가 되어지는데, 선거이다보니, 인간적인 부작용과 아쉬움들이 존재할 수 있기에, 아예 작정해서 금식하고, 기도하고, 제비를 뽑아서 리더를 세우자는 이야기도 오래전부터 되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튼 오늘 지금 배위에서 난폭해지기도 하고, 지칠대로 지친 선원들이 도대체 누구의 죄 때문에 이런 큰 재앙을 받게 되었는지를 알고자 한 가닥의 희망을 가지고 제비를 뽑습니다. 마지막 방법은 이 천지를 주관하는 신이 노해서 이런 일이 생겼고, 그 신의 마음을 달래는 것이 이제 남은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험한 폭풍의 시간에도 제비를 뽑습니다. 배에 탄 모든 사람은 열외 없이 제비를 뽑아야 하는데, 분위기가 얼마나 긴장이 되겠습니까? 괜히 잘못 뽑히면, 지금 안 그래도 책임질 사람이 없는데, 바로 바다에 던져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긴장하며, 초조해하며, 조심해서 제비를 뽑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마 사람들이 제비를 뽑을 때, 뭔가 간절하게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이전에 지은 죄를 기억하고 용서를 구한다든지, 뭔가 자신에게는 이 제비에 뽑히지 않아서 재앙이 벗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그런 가운데 드디어 결과가 나옵니다.

        요나서 1:7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저는 요나서를 읽을 때, 참 분위기 좋지 않고 심각한 상황인데, 읽을 때마다, 너무 재미가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하면 좀 안되지만, 개그 콘서트를 보는 것 같습니다. 지금 하나님의 명령을 뒤로하고, 도망와서 그 폭풍속에서도 열심히 잠을 자면서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졸린 눈을 비비고 나온 요나가, 아무 생각 없이 제비를 뽑았는데, 그 제비가 자기에게 걸린 것입니다. 정신이 번쩍 났을 것입니다.

        배에 모든 사람이 모여서, 이 이스라엘 사람 요나가 제비에 뽑혔으므로, 이제 묻습니다. 요나서 1:8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에 우리에게 임하였는가 말하라 네 생업이 무엇이며 네가 어디서 왔으며 네 나라가 어디며 어느 민족에 속하였느냐 하니라고 묻습니다. 지금 이 자리가 무슨 자리입니까? 이 폭풍이 누구의 죄 때문인지를 밝히는 심문의 자리이지 않습니까? 즉결심판이 치러지고 있는 시간입니다. 그런데 요나가 대답을 합니다.

        요나 1:9 “그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라 하고자신을 너무나 당당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바다의 폭풍 때문에 죽게 생겼는데, 사람들 앞에서 바다와 육지를 창조하신 하나님, 그 분을 또 자기 자신은 경외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가뜩이나 계속 자기의 신들에게 간절히 기도했던 선원이었는데, 요나가 너무나도 자신 있게 이야기를 합니다. 지금 이 폭풍을 주관하시는 분이 자신이 믿는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이라고....그리고 10절의 내용을 이어서 이야기를 합니다.

        요나서 1:10 “자기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함인 줄을 그들에게 말하였으므로라고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여러 번 놀랐을 것입니다. 요나는 선원도 아니고 승객인데, 이 승객이 제비에 뽑힌 것도 놀라운데, 그가 뽑히고, 자기의 하나님이 바다를 주관하시는 분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그리고 요나 자신이 그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않아서 이 폭풍을 주셨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너무나 태연합니다.

        아니 그럼 그거 다 알고 있었다면, 진작에 좀 기도를 하던가.....부탁을 해서 바다를 잠잠케 해달라고 하던가. 지금 바다에 자기들 생계가 달린 물건도 다 집어 던진 상태인데....요나가 이렇게 이야기를 당돌하게 이야기 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놀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제 좀 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지만, 요나는 계속해서 기도를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원들은 계속 기도를 하지만, 요나는 상황이 더 안 좋아져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선지자이고, 하나님의 사람인데, 기도해야 하는 사람인데, 그리고 지금 모든 문제가 자기 때문인데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기도해야 할 사람이, 기도하지 않으면, 이렇게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선원들이 오히려 묻습니다. 요나서 1:10 하반절 무리가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그리고 대안을 찾습니다. 요나서 1:11 “바다가 점점 흉용한지라 무리가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여야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하겠느냐 하니 라고 묻습니다. 참 오늘 이 배의 선원들 괜찮습니다. 지금 죽기 일보 직전인데, 제비 뽑힌 요나를 그냥 바다에 던져 버려도 분이 풀릴까 말까인데, 요나에게 묻습니다. 지금 그럼 자기들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분위기상 그냥 확 제물로 바쳐야 이 신의 노여움을 풀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있을텐데....그냥 요나에게 묻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대답을 합니다.

        요나서 1:12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라고 했습니다. 지금 분위기 상 살려 달라고 애걸해야 하는 요나가 먼저 자기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걸 알면 자기가 그냥 바다에 뛰어 내리지, 왜 또 자기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라고 합니까? 참 성격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게 참 묘합니다. 제비에 뽑혔고, 바다에 던져져야 하는데, 괜히 또 사람들 바다에 던지면, 이건 사람 하나를 죽이는 일인데, 누가 또 이 궂은일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이 선원들 진짜 괜찮은 사람들입니다. 요나서 1:12을 보면 요나의 말을 듣고도, 이제 대의 명분도 생기고, 누가 뭐라해도 본인이 바다에 던지라고 했기에 적절한 근거도 생겨서 이제 하면 되는데, 선원들은 요나가 시키는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요나서 1:13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라고 했습니다. 선원들은 요나가 비록 제비에 걸리고, 스스로 바다에 던져 달라고는 했지만, 그래도 그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볼 수 있는 모습은 비록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지만, 오히려 더 매너가 있고, 사람답게 생각하고, 기본적인 예의를 아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반면, 요나는 지금 하나님의 사람임에도 그 어느 것도 하지 않습니다. 같이 살기 위해 노를 젓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기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지금 살려고 정말 최선을 다해서 노력을 하는데, 하나님의 사람임에도 최선을 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람 인 것을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그 공동체, 그 사회에 아무런 덕이 되지 않습니다.

        이창동 감동의 영화 밀양 에서는 한 여자가 남편과 사별하고, 하나 밖에 없는 자기 남자 아이와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여자의 아이가 납치가 되고 결국은 죽게 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은 그 살인자가 너무 밉고, 싫었는데, 어느 날 그 살인자를 교도소에서 만날 시간이 있어서 찾아갑니다. 그런데, 이 살인자는 교도소에서 여인이 생각했을 때 미안해 하거나, 죄책감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교도소에서 교회를 다니기 시작했고, 거기서 기도하고 용서를 받았고, 이제 새 생명을 얻었다고 합니다. 너무나 온화한 얼굴로 자신의 죄는 주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다고 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여인은 더욱 절망하는 모습을 영화에서는 보여 줍니다..

        믿음이 없는 이 여인은 이를 계기로 더욱 하나님을 저주하고, 교회를 더 멀리하게 됩니다. 영화의 내용이 기독교에 대해서 약간은 다른 시각을 가지도록 하는 아쉬움은 있었지만, 실제로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면서, 쉽게 보는 모습 일 수가 있습니다. 이 살인자는 제대로 회개를 하지 않은 것입니다. 제대로 회개를 했다면, 자신의 죄가 하나님께 고백이 되어지고, 용서를 받았다면, 피해를 입은 이 아이의 부모에게도 진심으로 사죄하고, 용서를 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대로 회개하지 않고, 제대로 용서 받지 않았기에, 성숙되지 않은 모습으로, 더욱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기본적인 상식과 예의와 인격에서 벗어나서 오직 하나님만을 믿는 신도가 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기본적인 태도와 예의와 매너는 이미 의무적으로 전제가 되어져야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보다 더 높은 기준과 도덕 관념이 있어야 될 그리스도인들이, 모든 잘못은 다 저질러 놓고, 스스로 책임 질 수 도 있고, 책임져야 하는 일인데, 모든 핑게는 하나님께만 맡기고, 자기는 죄가 없다고, 당당하다고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이 진짜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됩니다.

        지금 요나가 꼭 그런 꼴입니다. 자기 죄가 주원인이라면, 자기 때문에 죽게 된 선원들과 승객들을 위해서 뭔가 하나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도 해야 하는데, 잠만 자고, 입은 살아가지고, 자기가 하나님 믿는다고, 어쩌고 저쩌고, 자기가 믿는 하나님이 바다와 육지를 다스리는 분이라고 어쩌구, 저쩌구...이야기를 하난데, 하나도 감동이 안 되는 소리고, 오히려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드는 행동들을 합니다. 차라리 말이라도 안하면 좋겠는데, 말은 청산유수로 잘합니다.

        그런데 상황은 더 좋아지지 않습니다. 요나서 1:13을 보면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라고 합니다. 더 이상 못 버티는 최고 정점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그래서 그들이 최종 결정을 합니다. 요나를 바다에 던지기로.....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하는지 보면 놀랍습니다. 요나서 1:14을 보면 무리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여호와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기도를 합니다.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던 그들이 시키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 기도를 합니다.

        기도 한 번 안하던 요나와는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요나서 1:15을 보면 요나를 결국 바다에 던집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 납니다.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라고 했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지만,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진짜로 모든 문제는 요나 때문이였습니다.

        진짜 기도해야 할 사람이 요나였는데, 괜히 엉뚱한 사람들이 요나 때문에 피해를 입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는 이어집니다.

        요나서 1:16을 보면 그 사람들이 여호와를 크게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더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요나는 이 선원들과 승객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지도 않고, 기도조차 하지 않고, 그 어느 것 하나 도움을 주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을 통해 배에 있던 사람들이 여호와를 알고 여호와께 제물을 드리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방법대로 행하신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이 잔잔하고, 여유 있는 내 삶일지라도, 아니면 저 험난한 바다 중앙의 폭풍 속 일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묵묵히 진행하십니다.

        우리가 요나처럼 배 밑에서 잠이 들지라도, 큰 풍랑으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 일지라도, 하나님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일을 담당하십니다. 오늘 우리가 있는 이곳이 인도일지라도, 우상이 많고, 신앙생활을 하는데, 한국보다 열악한 상황이 많을지라도, 우리 하나님은 이곳에서 이루실 일을 오늘도 묵묵히 수행하십니다. 선원과 배의 승객들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방법으로 구원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예배하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역사가 오늘 우리 주변에도 있습니다. 이 인도 땅에서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 인도 사람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리 각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프로젝트는 우리가 모를지라도 계속적으로 쉬지 않고 운행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구원하시기 위한 프로젝트는 쉬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절대로 하나님이 택한 사람들을 포기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또 하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요나처럼 쓰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인데, 그 사람 때문에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경우를 간혹 볼 수 있습니다.

        제가 한국에서 단기선교팀, 비전트립팀들을 위해서 강의를 할 때 꼭 해 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단기선교를 오면, 팀 안에 꼭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격이 이상하거나, 태도가 이상한 사람들이 꼭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요인은 팀 훈련과 교육을 빠진 사람들이 팀에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많이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실제로 여러 모임을 보면, 꼭 그런 사람들이 이상하게 쓰임을 많이 받습니다. 그 사람 때문에 팀원들이 마음 아파하고, 상처 받고, 그래서 그 사람 때문에 더 기도하게 되고, 더 하나님께 다가가는 팀이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물론 기본적인 성품이나 성격에 문제가 있지만, 그래도 그런 사람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이유는 팀 훈련에 불참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팀 훈련에 불참하면, 팀이 가서 무엇을 해야 할지, 왜 가는지, 그리고 팀이 무엇을 준비할지를 알면, 팀과 호흡을 맞춰서 따라가는데, 이것저것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 방식대로만 하니까 팀에서 문제를 일으킵니다.

        오늘 요나도 마찬 가지입니다.

        니느웨...본인은 좀 가기 싫었지만, 왜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셨는지를 알았다면,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갔다면, 오늘 요나서에 나오는 풍랑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힘든 일을 맡기신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알았다면, 요나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면서 사용이 되었을텐데,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한 요나이기에 쓰임을 받기는 하지만, 잘못된 사례가 되어서 사용이 됩니다.

        지난주에 알츠하이머라고 부르는 치매에 대한 특집 다큐멘터리를 보았습니다.

        이 치매는 고대 이집트에서도 보고가 된 인류에게 가장 무서운 병중에 하나입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립니다. 70, 80세 치매 노인들의 삶을 보여 주는데, 정말 무서운 병이였습니다. 아무것도 못합니다. 노인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병이 바로 이 치매라고 합니다. 정말 아무것도 못하고, 갓난 아기처럼 되어지는데, 자신에 대한 아무것도 모르고 죽어가고, 그 가족들이 얼마나 고통을 당하는지 모릅니다. 우리나라 인구의 270만 명이 지금 치매 증상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특별한 원인도 없이 어느 날 찾아 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우리가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할 시간이 우리에게도 기다리고 있습니다. 누구도 내일 일은 장담을 못합니다. 그렇다면, 오늘을 주신 하나님께, 우리가 정말 알차게 그 분을 예배하고, 그 분을 찬양하고,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는 하루, 하루를 더욱 소중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요나처럼, 문제를 만들어 내는 사람으로, 쓰임을 받기는 쓰임을 받는데, 잘못된 도구로 사용되어지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요나의 가장 큰 실수는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자기 생각과 자기감정만을 따랐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과 우리의 생각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야 우리의 인생을 헛되게 살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주의 음성을 듣기 위해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고, 우리가 기도를 합니다. 주님께 아주 분명하게 집중을 해야 우리가 요나처럼 살지 않게 됩니다.

        우리 델리한인장로교회 공동체로 우리가 서로 아름다운 믿음의 자리를 지켜나가고, 주님의 음성을 깊이 들음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가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한 교회로 묶어 주신 이유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이 인도에서 온전히 나아가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나처럼 감당하기 어려운 니느웨로 가라고 하실 수도 있습니다. 우리교회가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맡기 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이 가라 하시면, 주님이 명하시면, 우리가 손해 보는 일 같아도 그 길을 온전히 따라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을 따라가야, 그 분이 가라고 하는 방향을 잃지 말고 다라가야, 우리에게 가장 최고의 길, 최선의 길이 됩니다. 그 길을 기쁨으로 나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우리를 주님의 뜻 가운데로 인도하시는 주님, 우리도 때로는 주님을 향한 방향을 잃고, 내가 걸었던 경험에 의지하고, 내 감정에 의지하여, 주님과 정반대로 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주님 나의 삶의 이정표가 되어 주사, 우리의 갈 길을 분명히 알게 해 주시고, 주님이 지시하신 그 길을 온전히 갈 수 있는 힘을 주시옵소서, 때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주님의 뜻을 헤아리기 어렵지만, 지금 주님이 오라고 하신 그 길을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가장 최선의 길로 인도해 주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더불어 우리를 잘못된 요나로서, 사용하지 말아 주셔서, 주님의 일을 위해 사용되기는 하나, 사람들의 놀림과 손가락질속에서 사용되어지는 일이 없도록,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우리에게 허락된 이 땅에서의 삶,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며, 귀하고 복되게 하루 하루를 의미 있게 사용하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내 주여 뜻 대로

        주님 뜻 대로 살기로 했네

        주님 말씀 하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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