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 25일, 여호와의 낯을 피한 요나 요나서 1:1-3
성경에는 여러 인물들이 나옵니다. 그 가운데 구약성경의 요나서는 ‘재미있다’는 표현이 좀 걸맞지는 않지만, 웃지 않으면 안 될 상황들이 너무나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내용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요나라는 한 선지자가 좌충우돌하며, 실수하고, 부서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일들을 잘 감당하는 모습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면에서는 엄청난 하나님의 일들을 하지만, 그 내면에는 정말 “이럴수가 있나?”라는 질문을 던질 만큼 엉뚱한 내용들이 나타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요나를 끝까지 사용하시며,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게 되어 집니다.
그런데 이 요나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요즘 현대인들의 모습과 너무나 닮은 점들이 나오게 되어집니다. 하나씩 이야기를 전해 드릴 때 이 요나서를 통해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놓치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
이 요나서는 다른 선지서들이 그들의 메시지를 모아 놓은 것과는 다른 구조로 전개되어 있습니다. 요나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기록을 하였는데, 그 기록방법이 구약성경의 엘리야, 엘리사의 기록과 매우 유사합니다.
요나서의 시작은 여호와의 말씀에서부터 시작이 되어 집니다. 요나서 1:1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이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니라’는 말씀은 구약 성경에서 100회 이상 사용된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하나님의 사람들을 일하도록 하는 방법으로 말씀을 사용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없는 공동체, 말씀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과의 교감을 가질 수 없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말씀을 통해 확인하지 않으면 그 분의 일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따르는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예배, 우리의 QT 시간, 성경공부 시간,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는 시간을 하나님은 너무나 좋아하십니다. 사람이 말씀을 읽을 때 변화가 되듯이 하나님의 공동체가 건강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그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기를 원하십니다.
QT 세미나에서도 강조하였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먼저 우리가 그 말씀을 듣기 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말씀을 듣기 위한 때와 장소를 구별하여, 그 분을 향한 영적 안테나를 조정해야 합니다. 물론 하나님은 그 말씀을 주시기 위해 정신없이 일하는 우리를 붙들어 놓고, 이것저것을 간혹 이야기를 하실 때가 있습니다.
지난번 첸나이에 온 김기동 목사님은 교회 가는 아내를 방해하다가 차량 정면 충돌로 거의 죽다가 살아났고, 그 딸은 얼굴을 109번이나 꿰메는 큰 사고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김기동 목사의 입장에서 보면, 그냥 길에서 사영리나, 전도지 받고 예수님 영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보면, 가끔은 속상하다고 합니다. 자기는 엄청난 희생을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는데, 누구는 너무 쉽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나름 속상하다고 표현을 했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교 1학년 때 한 모임에서 받은 사영리라는 전도지를 받고, 그것을 읽다가 버스안에서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작은 책이였지만, 그 내용 안에서 전해지는 하나님의 음성은 정말 제 뇌리에 크게 전달이 되었고, 김기동 목사님이나, 요나처럼 큰 사건을 겪지는 않았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그 분의 음성을 듣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여러분 가운데 이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신 분들이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까지 여호와의 말씀이 들리지 않는 분들이 있습니까? 분명한 사실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능력이 많으신 분이고, 죽음에서 살아나시고, 부활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늘 우리를 찾아오신다는 사실입니다. 요나같이 여호와의 음성을 듣고, 도망치고, 엉뚱한 방향을 가더라도, 그가 들을 때까지 계속해서 말씀하시는 분이시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주님과 깊은 말씀을 가지고 교제하는 궤도가 아니거나, 이탈을 했더라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향해 하고 싶으신 말씀을 분명히 가지고 계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에서, 우리의 창조주 되신, 나를 만드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쉽습니까? 저도 좀 늦게 들은 것이 속상합니다. 좀 더 일찍 들었더라면, 좀 더 다른 인생의 시간들이 있었을텐데, 그게 좀 아쉽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에 좀 더 일찍 그분의 말씀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면, 공부하는 목적도 분명히 달랐을텐데, 조금 아쉽습니다.
그런점에서 우리 청소년부 지체들이 부럽습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모태 신앙”이신 분들은 그 부모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나면서부터, 자동적으로 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기회들을 더 많이 가진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혹 부모로서 자녀들을 양육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도록 하는데 힘을 써야 합니다.
요나서 1:2에는 요나가 들은 여호와의 말씀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대로 이 니느웨성은 정말 큰 성이였습니다. 성의 길이가 96km나 되는 거리라고 합니다. 12개의 주요 관문들이 연결이 되어 있는 성인데, 이 당시가 BC 800년 경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도시는 엄청난 도시입니다. 지금 구르가온에서 올드델리까지 거의 50km 정도가 나오는데, 이보다 더 큰 96km 정도의 도시 규모면 엄청나게 큰 규모입니다. 고대학자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175,000명 정도의 주민들이 사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화와께서는 이 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실 때 악독이 가득 찬 도시라고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를 멸시하는 악을 범하기도 했고, 전쟁에서의 잔혹한 약탈 행위가 있었고, 음행과 마술, 상업적인 탈취 행위로 악명 높은 도시로 유명한 곳이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악명이 높은 도시라도, 여호와께서 보실 때에는 이곳도 하나님의 사랑이 필요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이 도시를 향해 요나라는 한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전달하고 싶어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의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그 사랑을 전해 주실 때, 왜 니느웨성과 같은 곳을 택하실까? 말도 잘 듣고, 모범적이고, 괜찮은 지역의 사람들을 택해 주시지 왜 이렇게 잔인하고, 악독이 가득한 땅을 목표로 삼으실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어 집니다. 혹 우리가 복음을 들고 나가서 전도를 하러 갈 때의 마음과 같습니다. 좋은 직장에, 좋은 인상의 사람, 좋은 성격의 사람, 나하고 관계가 괜찮은 사람에게 다가 가려고 하는 것은 정답은 아니다라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간혹 전도를 할 때 우리 스스로 사람들을 제한합니다. “저 사람은 절대로 안 믿을 사람이야, 저 사람은 교회에 나오면 덕이 안돼! ” 라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마음에 더 깊은 관심을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나의 직장 상사 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사고 뭉치인 직장 새내기 일 수 도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괜히 그 사람하고 어울리면 손해 볼 것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나를 배신하거나 뒤통수를 칠 것 같은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먼저 복음을 전해들은 우리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을 받은 우리가 다가갈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마음과 다르게 우리도 요나와 같은 마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요나서 1:3을 보면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임했지만, 요나는 그 말씀을 듣고, 순종하고, 주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그러나”로 시작되는 삶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 “그러나” 가 문제입니다. 조금만 생각했어도 쉽게 풀릴 문제인데, 요나는 쌓여진 감정의 지배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지 못하고, 감정의 지배를 받다 보니, 자기가 생각한 것, 자기의 경험에 의지해서 일을 처리합니다. 이 니느웨는 당시 이스라엘과 군사적인 대치를 하던 앗수르의 수도입니다. 조국에 가해를 입히고, 과거에도 3차례나 이스라엘을 공격했던 지역이고, 관계가 좋지 않습니다. 요나의 감정은 하나님이 이 앗수르의 심장인 니느웨를 멸망시켜 주기를 바랬지, 그곳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곳이 되는 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택한 길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한 일”입니다. 1:3에는 두 번이나 그 내용이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할 때, 우리가 우리 인생의 가장 치명적인 실수가 시작된다는 사실을 요나는 잊었습니다. 요즘 우리가 QT를 하는 본문들은 신명기입니다. 정말 말씀 곳곳에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말씀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금요일 QT의 내용에도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광야에서 40년을 돌던 그들에게 하나님이 새로운 땅에서는 산과 골짜기가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기에 하늘에서 비를 흡수하여 땅이 비옥한 땅이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신명기 11:10-12을 보면 “네가 들어가 차지하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에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 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축복은 그 다음절인 신명기 11:13 에 지시하신 일을 행할 때 가능하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내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섬기면” 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쏟아 부어 주시겠다고 합니다. 신명기 11:14,15을 계속 보면 “여호와께서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또 가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의 말씀을 청종하고, 잘 듣고, 그의 얼굴을 구하기를 그 무엇보다도 원하십니다. 이것만 해도 우리에게 가장 큰 복을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선지자인 요나는 1:3에만 두 번이나 그의 마음이 나타납니다.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그리고 하나님이 가라는 방향과 정반대로 가는 길을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결정을 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있는 요나에게 가라고 한 니느웨는 동쪽으로 800km 정도를 가야 하는 방향인데, 요나는 그 반대방향인 욥바라는 지역으로 56km를 가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하신 것과 반대 방향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직분인 선지자 라는 직분을 받은 요나처럼, 여호와의 말씀에 반대하여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호와의 낮을 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면으로 그 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에게 필요한대로, 스스로 조절해서,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의 말씀의 방향을 바꿉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가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을 임의대로 바꿉니다. 아예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상황을 더욱 주시합니다.
요나는 3번이나 크게 이스라엘을 공격한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에 이 말씀을 전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에 우리 청년들과 일본인 지체 2명이 만나서 식사를 했습니다. 이로서 우리가 관계를 맺는 일본 청년들이 3명이 되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일본인 교회를 설립하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조금씩 인도해 주고 계심을 봅니다. 만나서 한국과 일본 사람이 인도에서 사는 이야기를 했는데, 재미 있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좋은 정보도 많이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 일본이 원전파괴로, 국가 재정의 위기로 많이 어려워졌습니다. 계속되는 쓰나미와 최근에는 후지산의 폭발징후까지, 여러모로 고민입니다. 지금 어려워진 일본인에게 다가가는 것은 별로 무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마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하고, 통치했을 때라면, 우리도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최근 자료에 의하면 명성왕후를 일본 자객들이 살해할 때 그냥 죽인게 아니라 더 몹쓸 짓을 하고 죽였다고 들었습니다. 한나라의 국모를 죽이는 그들의 잔인한 모습을 들으면 사실 지금도 일본인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돕겠다는 마음이 싹 가실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일본도 사랑하시고, 그리고 오늘 요나서에 나온 것처럼, 니느웨도 사랑하셨습니다. 요나서 4장쯤에 나오는 내용을 보면, 이 니느웨도 하나님이 분명히 사랑하는 곳이라는 것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여호와의 낮을 피한 요나는 점점 다른 방향으로 가게 되어집니다.
지금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읽지 못하고 하나님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가진 감정으로, 내가 가진 지식으로, 내가 가진 경험으로 내 인생의 방향이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인생의 방향을 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주에 방문한 고선정 집사님...사회복지학을 전공했습니다. 사회복지 단체에서 일을 했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기업의 사회 공헌, 사회적 책임이라는 사회적 이슈에 의해, 현대에서 일하도록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이번에 현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처음 입사 할 때 경력직으로 입사를 했는데, 이전에 현대에 여자 경력직이 입사한 적이 처음이라 사람들이 진짜 많이 자신을 구경하러 왔다고 합니다. 남자들이 많은 현대에서 오히려 여자이기에 이 부분을 섬세하게 잘 기획하고 구조를 만들어서 매년 ‘기업의 사회 공헌 프로젝트’에 250억 가량의 예산을 집행합니다.
이번 미국 국무성에서 이 분야에 최고의 담당자를 5명을 뽑아서 미국 기업의 사회 공헌 현장 연수에도 제일 첫 번째로 뽑힌 인재였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고민은 그가 사회적으로는 명성을 얻고, 인정을 받고, 부족함 없이 일을 해 왔지만, 그가 이번에 인도를 방문한 것은 이제 남은 인생의 시간은 좀 더 “여호와의 낯”을 구하고 싶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짧은 일정이였지만, 사람들을 만나고, 사역지들을 방문하면서, 여호와의 음성을 들으려고 바짝 귀를 기울이고,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어떤 결정이 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가장 최선의 길로 그 집사님을 인도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분명히 확신합니다. 여화와의 얼굴을 구하고, 그 분을 피하지 않고, 그분을 향해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자기 자녀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알기에 이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7:9-11을 보면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우리의 가정, 우리의 직장, 우리의 사업에서도, 우리가 공부를 하는데에도, 우리가 무슨 일을 할지라도 이 원리는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하는 일 가운데 더욱 주님을 구하고, 주님을 집중하면, 주님의 얼굴을 구하면, 우리는 우리 하나님이 주시는 가장 좋은 것들을 누리며, 하나님 품안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면 어쩌면 요나의 길을 걸어갈 지도 모른다는 것을 요나서는 우리에게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감정, 상황을 내려놓고, 여호와의 말씀을 온전히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혹시 지금 주님이 말씀해 주신 방향과 다른 곳으로 가고 계시는 분은 없습니까?
좀 힘들어도, 지금은 멀게 보이고, 나에게 손해가 될 것 같지만, 주님이 가라고 하는 방향으로 방향을 돌리시기 원합니다.
여러분에게 가라고 하시는 니느웨는 어디입니까?
요나서 1:3절에 요나는 하나님이 반대하시는 방향임에도, 마침 그 방향으로 가는 배가 있다고 하여, 방향을 쉽게 바꾸었습니다. 우리의 삶을 분별하지 못하고, 쉽게, “마침”이라는 단어로 자기의 길을 갔던 요나의 실수가 우리 삶에서 이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혹시 너무 잘 나가고 계시는 분은 없습니까? 너무 쉽게 일이 잘 풀리고, 해야 하는 일이 쉽게 잘 풀리고 계십니까? 주님이 제시한 방향과는 다른데, 마침 요나가 다시스로 가려고 할 때, 그 방향으로 가는 배를 욥바에서 만난 것 같이, 쉽게 풀리는데 알고 보니, 그 길이 주님과 멀어지는 길이라면, 이 말씀을 잘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여호와의 낯을 구하고, 주님을 볼 때 부끄러움이나 부족함이 없다면 괜찮습니다. 하지만, 지금 잘 나가는 그 길이 “여호와의 낯”을 보기에 민만한 일 이라면 다시 한 번 잘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지금 가는 길이 너무 어렵고, 힘드십니까?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의 낯을 구하고 가시는 길이라면, 그 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여러분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가장 최선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 요나서의 요나를 기억하면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이 정해 주시는 나의 일생의 온전한 방향을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찬양 - 여호와의 말씀이 임하는 삶이 되도록, 주님의 말씀을 받는 삶이 되도록
- 여호와의 낯을 피하지 말고, 주님을 바라보는 삶이 되도록
- 니느웨 같은 우리 주변에 내가 포기한 그 사람들, 하나님은 결코 포기 하지 않으 십니다. 우리 주변에 이 니느웨 같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힘을 주시기를
기도: 하나님, 우리가 주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온전히 가고 싶습니다. 때로는 요나처럼 가고 싶지 않은 곳일 수도 있지만, 나를 가장 잘 아시고, 나를 인도하시는 주님의 길로 온전히 따르기를 원합니다. 우리 주위에 니느웨들이 많습니다. 주님이 그들에게 가라고 하셨는데, 내 인간적인 관계와 계산으로 우리 주위의 니느웨를 포기하고, 저도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에게 주님이 지시하시는 길을 갈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힘을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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