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30일 사도행전 11:19 - 26 안디옥 교회 이야기
오스트리아 출신이지만, 미국의 유명한 경제학자요, 교수이며 지난 1세기 동안 가장 많은 기업들에게 가르침을 준 피터 드러커에 대해서 공부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이미 박사 학위를 가지고, 교수이지만, 제가 그에게 배운 것은 그는 항상 자신은 배워야 된다는 마음으로 2년 단위로 자기 학습 목표를 정하고, 스스로 커리를 만들어서, 그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학식과 경험을 얻을 때까지 계속 배운다 라는 것입니다. 고령의 나이에도 이것을 계속적으로 실천을 하셨습니다.
저도 거기에 맞춰서 계속 자기 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인도에 있기에 인도학, 인도지리학, 인도 한인사회학, 인도 한인기업학, 국제사회학, 인도 선교사학, 한인교회학 등.....좀 낮선 과목이지만, 계속 수업을 한다고 생각하고 배우고 있습니다. 이번에 방문한 미조람에서의 특별 수업에서도 상당히 많은 과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계속 새로운 과정을 만들고, 그리고 저를 가르쳐 주실 분들을 항상 찾고 있습니다.
지난번 한국 방문시에 나름대로 계획을 잡았던 것 중에 하나는 새로운 스승님들을 찾는 일이였습니다. 해외 한인교회로서의 정체성과 중요성, 가능성에 대해서 좀 더 실제적인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스승이 누구인가? 를 묻고 답을 찾기 위해 여러 자료들을 살폈습니다.
한국에서 올 때 한권의 책을 붙잡게 되었는데, 그 때 강하게 인상을 준 것이 바로 “안디옥 교회”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미조람 수련회에 총회 총회장님이신 서문교회 손달익 목사님이 오셨는데, 미조람에서의 모임 동안 설교를 해 주셨는데 안디옥 교회를 설명해 주셨는데, 말씀을 들으면서 더욱 확신을 얻게 된 것은 다른 어떤 스승보다도 제가 이 안디옥 교회를 스승으로 생각하고, 이 안디옥 교회를 좀 더 깊이 연구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총회장님의 말씀을 듣는데, 우리 해외 한인교회하고 이 안디옥 교회하고 너무나 비슷한 상황이 많았고, 안디옥 교회가 중요한 만큼, 우리 델리한인장로교회도 얼마나 중요한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해외에 있는 어느 한인교회가 교회가 성도가 몆명이고, 선교를 얼마나 하는가, 그래서 배울 점이 무엇인가?’ 가 중요한게 아니라, 우리가 이 안디옥 교회를 잘 배우고, 우리가 해외에 있으면서 안디옥 교회와 같은 방향을 가지고 일을 하게 될 때, 하나님의 사명을 이루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앞으로의 많은 연구와 가르침을 안디옥 교회를 통해서 받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해외한인교회를 섬기면서 보게 된 소중한 연구가 될 것 같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시작은 그렇게 아름답게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 11:19을 보면 이 안디옥 교회는 “스데반의 환난”으로 시작된 교회라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여기서 소개된 스데반의 일은 사도행전 7장에 나타난 ‘스데반의 순교’를 이야기 합니다. 사도행전 7장 1-60절은 첫 순교자 스데반에 대해 아주 소상하게 잘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6:8을 보면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증거할 때 많은 일들이 일어났는데, 이에 반해서 많은 논쟁도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6:9을 보면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 새” 라고 했습니다. 그런 논쟁이 사도행전 7장에 기록이 되어 있고, 복음을 듣고 사람들이 찔렸는데, 회개하지 않고,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합니다. 사도행전 7: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행 7:57,58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스데반은 돌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하게 되어집니다.
이것이 오늘 사도행전 11:19에 소개된 “스데반의 일”입니다. 이 일을 계기로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 납니다. 행 8:1을 보면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의 자료에 의하면 이 때 박해로 인해,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이 알려지면, 엄청난 어려움이 왔습니다. 로마 정부의 박해로 인해 사람들이 다른 모든 지역으로 쫒겨 났습니다. 당시 자료들에 의하면 기독교인이라고 발각이 되어지면, 로마 공민권을 박탈해 버렸습니다. 이 공민권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권한과 생업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지는데, 삶에 대한 위험도 보장되지 않고, 경제활동이 제한이 되기에 도저히 살 수 없는 상황에서 택한 방법은 지금 살고 있는 곳을 떠나는 것입니다.
이번에 미조람에도 가보니, 우리가 구르가온 지역에 많은 미조람 지역에소 온 메이드들이 많아서, 저는 미조람이 산악지대이고, 살기 어려워서 다 도시로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산 꼭대기에 집을 지어 놓고 살아도, 길도 좁고, 낙후된 것 같아도, 자기들의 부모 형제와 모든 생애의 터전이 된 그곳이 더 좋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산속에다가 얼마나 많이 빼곡하게 집을 지어 놓고 사는지....참 놀랐습니다.
사람들은 정말 어지간한 상황이 되지 않으면, 자기의 삶의 기반이 있는 곳을 떠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으로 인한 박해와 핍박으로 자신의 터전을 두고 떠나게 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북으로 480km 정도가 되는 거리이니까,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가 440km 되니까, 당시에 도보로 상당히 많이 움직인 거리입니다. 그래서 안디옥 지역까지 오게 된 성도들이 세운 소위 이민 교회가 바로 안디옥 교회라는 것입니다.
요즘에 해외로 오는 한인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더 좋은 삶을 위해서 오지만, 당시에는 정말 살기 위해서 자신의 근거지를 두고 떠나서 오게 되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행 11:19에 보면 “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다고 하는데, 요즘 우리와 비교해 본다면, 해외한인교회처럼, 본의 아니게 핍박으로 만들어진 해외유대 그리스도인 교회가 된 것입니다.
단일민족과 같은 개념으로, 하나님의 선택한 백성이라는 생각으로, 이방세계를 멸시하고 경멸했던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어, 유대를 떠나서 이방 땅에서 세워진 교회이기에 이 교회의 모습들을 잘 비교해 보면, 해외한인교회의 모습과 비슷한 일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러기에 인도라는 지역에 세워진 한인교회로서, 이 안디옥교회를 잘 연구하면 우리와 비슷한 특징들이 많이 일어났고, 이 교회를 잘 배울 때, 우리 교회의 정체성과 앞으로의 방향을 잘 알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 안디옥 교회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사도행전에는 먼저 ‘예루살렘 교회’가 등장을 합니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직제자들이 활동을 하고, 베드로가 설교하면 하루에 3,000명의 신자들을 얻을 정도의 엄청난 역사가 있었던 교회였습니다. 여기에 비하면 이 안디옥 교회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빈약합니다. 예수님의 직제자가 설립했다기 보다는 핍박을 피해 자발적으로 발생한 교회였습니다. 초라한 개척 이민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 안디옥교회는 교회사에서 엄청난 출발을 하게 됩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안디옥 교회를 통한 “기독교의 세계화”가 시작이 되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유대 예루살렘에 머물던 예루살렘 교회가 규모면에서는 엄청나지만, 오늘날까지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결과를 보면, 해외 이민교회였던 안디옥 교회의 역사로 전 세계로 교회가 확장된 것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로마문화의 타락과 이빙민족들의 정신적 공황기에 이 안디옥 교회 사람들의 활동과 모습은 유럽 전역에 확산되면서, 온 인류가 받아들일 영적인 가치관으로 전해지는 것을 우리는 알게 되어집니다.
사실 안디옥 교회 사람들은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 모인 것입니다. 당시 로마가 전체를 지배하던 시기였기에, 이 로마의 중심세력에서 벗어나고, 로마에 어떠한 영향력도 행사 할 수 없는 존재들이였습니다. 고린도전서 4:13에서 바울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의 세상적 가치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어떠한 힘도 없었던 이 교회가 이렇게 세상을 주도하는 엄청난 영적인 가치를 전달하는 교회가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분명하게 기억해야 할 중요한 요소입니다.
성경학자들에 의하면, 안디옥 교회는, 디오클레시안 황제의 박해 때 수많은 순교자를 냈고, 역경과 환난을 이겨내고 200여년 지나면서 안디옥 학파를 형성하여 바질, 크리소스톰 등 많은 걸출한 학자들을 배출하였습니다. 오늘날의 신학이 안디옥 학파 출신 학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350년이 지나면서 안디옥 시 전체 기독교화 되었습니다.
이번에 미조람의 아이졸신학대학 총장을 만났는데, 이 미조람은 통계상으로는 100%의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미조람의 수상(Chief Ministry)을 만나게 되었는데, 정치인이지만, 그의 포부는 이 미조람이 현재 620명의 선교사를 파송했는데, 1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기를 기대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시 전체가 기독교화가 되어서 인도 선교를 꿈꾸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미조람 사람들이 인도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고, 자신들도 인도인인 것을 싫어하지만, 자신들이 살아가는 정체성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사용해서 인도선교를 할 것이라는 기대로 미조람의 교회, 정치 지도자들은 한마음을 품고 기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참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안디옥 시 전체가 기독교가 되었다는 것을 통해 볼 때, 그냥 쉽게 된 것이 아닙니다. 교회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을 받았고, 그래서, 로마의 정치, 문화적인 압력을 다 물리치고, 온 동네가 예수님을 따르는 도시가 되었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가 도대체 어떠했는지를 우리가 잘 배워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그중에 첫 번째 요소인 “말씀 중심의 교회”였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 행 11:20,21을 보면 이 안디옥 교회가 해외이민교회로 피난 온 사람들의 중심체로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 ” 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같은 피난민의 마음, 고향을 떠난 사람들의 마음으로 서로 연락하고, 긍황을 물어보고, 정보를 주고 받는 중심지로 안디옥 교회가 중심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핍박을 당해 나온 사람들의 공통점이 유대 그리스도인이기에 이는 당연한 결과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1:22에는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라는 영적인 지도자를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보냅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라고 합니다. 안디옥 교회를 도착한 바나바는 이곳의 성도들의 삶을 보고, 결심을 하는데, 다소라는 지방으로 찾아가서 사울, 바울을 만나서, 안디옥의 상황을 설명합니다. 바울은 앞서 스데반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기도 한데, 사도행전 9장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회심을 하고, 주의 제자로 변하여 다소라는 지역에서 거주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바울을 바나바가 안디옥으로 데리고 와서 성도들을 가르칩니다.
행 11:25,26을 보면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르쳤고 뒤에 나오는 말씀이 있는데 행 11:26을 보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해외이주민들이 고향음식 먹고, 정보 찾고, 고향 생각하는 정도에서 그쳤다면, 역사적인 교회가 되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당시 최고의 바나바와 바울을 통해 주의 말씀을 일년동안 철저하게 가르침을 받고 배움을 받았을 때 그들은 하나님 사역의 중심이 되어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 델리한인장로교회의 기능도, 전자처럼, 해외동포 향수를 달래는 교회로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그냥 한국을 떠났으니까, 마지못해서 다니는 출석교회로만이 아니라, 말씀을 더 잘 배우는 한인교회로 기초를 잡아야 합니다. 작년에 인도 최초의 한인선교사인 김영자 선교사님께서 우리 교회가 어떻게 나아가야 합니까? 라고 물었을 때 선교사이신 그 분이 하신 말씀은 “구체적인 한인교회의 방법론은 잘 모르겠지만, 분명한 것은 무엇을 하든지 말씀 중심으로 해야 합니다” 라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교회의 원조가 되는 예루살렘교회, 안디옥교회, 로마교회의 뿌리를 보면 모두가 한결 같은 요소가 있는데, 말씀이 중심이 되어 있는 교회입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처음 시작했을 때를 보면 행 2:42에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성장하고 커질 때, 그들은 말씀을 더 듣기 위해 조직을 개편합니다. 그들의 편의나 안락함을 위해 조직을 개편하지 않고, 말씀을 듣기 위해 모든 것에 우선 순위를 세웁니다. 행 6:3,4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많은 기록이 되어 있지 않지만, 나중에 유럽 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던 로마 교회에 대한 이야기도 행 28:30-31에 나오는데,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처럼 사도행전에 나온 교회의 분명한 특징은 “말씀 중심의 교회”입니다. 해외에 있는 교회이기에, 간혹 우리가 우선 순위를 바꿀 수 있는데, 우리는 분명한 우선 순위를 가지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을 분명히 하는 교회가 되어져야 합니다. 말씀 중심의 교회가 되어야 하고, 말씀을 배우는데 힘 써야 하고, 우리 교회 자녀들이 말씀을 잘 배우는데 힘 써야 하고, 우리가 모일 때도 말씀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이 중심되지 아니하고, 다른 것이 중심이 되면 교회는 교회다울 수 가 없습니다.
이번에 오신 총회장님이 오셔서 잠시 교회 이야기를 해 주셨는데, 지금 서문 교회에서 27년을 사역을 하셨는데, 사람이 참 변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27년전에도 문제를 일으키고 말썽을 일으킨 사람은 27년이 지나도 정말 변하지 않고 똑같이 속상하게 하고, 어려움을 계속해서 주는데, 그 때마다 참 한계를 많이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으신 것은 사람은 절대로 “야단”쳐서는 못 변화시킨다는 것을 아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시면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사람들이 그래도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목회 현장에서 보셨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가 일 년의 절반에 서 있습니다.
새해에 우리가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말씀 속에 살겠다고 다짐한 것이 어느 정도 달려 왔는지를 우리는 살펴야 할 것입니다. 성경 읽기, QT, 말씀속에 살기로 한 다짐들이 혹시 흐트러지지 않았는지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시는 사업이나, 진로도 내가 말씀안에서 잘 가고 있는지, 아니면 말씀에서 벗어나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 번 잘 분별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지난 6개월을 얼마나 성실하게 말씀 속에서 살아 왔는지를 점검하고, 이제 후반전에 더욱 말씀으로 충만하게 살도록 우리가 작전을 잘 짜야 합니다.
좀 더 확장하면, 인도에서의 삶도 분명하게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남은 인도에서의 시간을 얼마만큼 더 말씀에 충실하게 다가갈 지를 우리가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교회를 새로 이전하고 무엇보다도 점검해야 할 것은 시설 점검도 중요하고, 외부사역도 중요하지만, 우리 모두가 말씀의 자리를 건강하게 잘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시설이 부족하고, 임대교회이고, 열악한 게 많다는 것이 우리의 부끄러움은 아닙니다.
이 안디옥교회도 거의 300여년간 교회당 없이 동굴 안에서 건물 없이 예배를 드렸다고 전해집니다. 어두운 동굴속, 열악한 환경속에서, 로마정부의 감시를 피해 말씀에 충실한 교회로 성장해 갔습니다. 이미 앞에서 말한 지금까지의 신학의 근간을 만든 중요 신학자들도 이 안디옥 교회에서 많이 배출이 되었습니다.
당시 안디옥 교회의 환경적 요소로 비하면 지금 우리는 너무나 좋습니다.
사실 한국이나 미국에 비하면, 여기도 너무 열악하고, 힘들고, 외국인이고, 기독교인인 우리이기에 힘든게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안디옥 교회를 생각하고, 우리도 잘 이겨내고, 우리 교회도 하나님의 말씀 중심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잘 배우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을 존중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모임이 많아져야 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가 되어집니다.
안디옥 교회이야기는 좀 더 이어선 전하려고 합니다.
다음주에는 이 안디옥 교회에 어떤 사람들이 말씀을 가르쳤는지를 전하려고 합니다.
정말 굉장한 가르침이 있습니다.
우리가 안디옥 교회의 모델을 잘 배워서, 해외한인교회로서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잘 감당하는 하나님의 일꾼, 하나님의 사람 되시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도 안디옥 교회처럼 해외이민교회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고, 말씀이 중심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힘 쓰는 하나님의 사람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안디옥 교회...시작이 핍박을 통해 어쩔 수 없는 이민으로 시작된 교회였지만, 말씀으로 훈련되고, 준비되었기에 세계 선교 역사를 바꾸는 교회로 사용해 주셨습니다.
주님 우리도 바라옵건데, 인도에서 있는 동안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보람되고, 의미있게 살기를 소원합니다. 우리도 안디옥교회와 같이 말씀으로 잘 준비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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