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6월 9일 신명기 34:9-12 시작과 끝이 되시는 하나님
오늘의 예배는 이 장소에서 주일예배를 드리는 마지막 예배가 되었습니다. 지난 2년의 시간 동안 우리 델리한인장로교회의 기초가 되어지고, 많은 사역들을 경험할 수 있는 귀중한 장소였습니다. 처음 시작부터 지금까지 세밀하게 인도해 주신 하나님께 너무너무 감사를 드립니다. 이 장소는 인도 사람들에게는 잘 쓰이지 않는 곳이였지만, 이곳에서 보낸 지난 2년의 시간들을 돌이켜보면, 순간마다 감사한 제목들과 각종 사연들이 기억되어지고, 그 가운데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개업예배”는 잘 드리는데, “폐업예배”는 어느 누구도 드리지 않는다고....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비록 사업을 계속하지는 못해도, 그 동안 지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분명한 감사는 잊지 말아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었습니다. 일이 잘되든 잘되지 않든, 하나님께 당당하게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믿음의 모습이 참으로 귀하다고 생각이 되어집니다.
지난주에 박성구 집사님 가정이 근무지를 벵갈로로 옮기게 되어 예배 광고 시간에 이 자리에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비록 교회에는 인사를 했지만, 우리 교회 청소년부에서 진행하는 비전스쿨의 진행을 위해, 자신의 회사와, 한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파리다바드에 있는 공장에 우리 청소년들을 위해 설명과 안내와 인도 직원들과의 만남을 주선해 주었습니다. 교회를 떠나기전에 자신이 우리 교회에 있던 기간에 대한 감사의 고백을 당당히 하고 갈 수 있어서 너무 기뻤고, 떠나기까지 교회를 위해 일해 주고 섬긴 것이 참 감사했습니다. 목회자가 봐도 이렇게 기쁜데 하나님이 보실 때는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이렇게 끝이 좋게 되는 것도 큰 복입니다. 잘 되다가도 끝이 안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인도는 항상 잘 되다가 끝이 안 좋은 경험들이 많습니다. 끝이 깔끔해야 하는데, 뭔가 여운을 남기고, 사람들의 마음을 찜찜하게 만들게 되는데, 이렇게 끝이 안 좋으면, 또 다른 시작이 원만하게 되기가 참 어렵습니다.
여러분 아시나요?, 하나님이 우리를 훈련시킬 때, 그 훈련을 제대로 못 마치면, 그 훈련은 환경이 변해도 그 단계를 넘을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계시나요?
지금 내가 힘들다고, 내가 그 끝을 보지 못하고, 내가 주도적으로 그 환경을 바꾸면, 처음에는 괜찮지만, 좀 지나면 그 넘지 못했던 환경이 다시 나오게 되고, 그것을 다시 넘어야 하는 상황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끝’을 잘 맺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는 이 ‘끝’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언제가 겪게 될 그 ‘끝’을 영광과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늘 우리는 생각하고, 우리의 마음 가짐과 태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는 한 사람의 ‘끝’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구약 시대를 대표하는 믿음의 사람 ‘모세’의 끝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모세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고, 모세를 빼고 구약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정도로 아주 중요한 인물이 바로 모세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의 노예 상태로부터 구출해 내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일정을 준비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가 겪는 이적들만 모아도, 엄청난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인물입니다.
특별히 노예근성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할 때, 그리고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얻기 위해 오합지졸 같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전쟁을 이긴 역사를 볼 때, 이스라엘의 건국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이 모세의 이야기는 너무너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세의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 신명기 34장에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그 신명기 34장의 마지막 장면은 그 동안의 공로에 대한 그 어떠한 처우나 가족에 대한 예우가 설명된 것이 아니라,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가 세워질 것이라는 것과 그리고 간략한 모세에 대한 업적을 이야기하고 끝이 납니다.
요르단을 방문해서 모세가 죽었다고 전해지는 느보산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요르단에서 가장 오랫동안 사역하신 선교사님이신데, 그곳이 추정 장소지, 그곳에, 어디에 모세의 묘가 있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던 말씀이 만약 모세의 무덤이 발견되고, 시신이 발견되었다면, 여기 느보산이 엄청난 성지가 되었을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점과 아직도 발견되지 않은 점으로 볼 때, 모세가 역사적으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 신34:6을 보면 “벳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의 묻힌 곳을 아는 자가 없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모세가 조용히 죽어서 끝이 나는 이 장면을 보면서 특별한 한 가지를 배울 수가 있게 됩니다.
모세는 출애굽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보는데 까지’만이 자기의 임무였습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광야에서 그 인생 전부를 바쳐서 최선을 다했는데,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은 것도 아닌데, 바로 코앞에서 그 가나안 땅을 보기만 하고 들어가 보지 못하고 죽게 됩니다. 민수기 27장 12절에서 14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 아바림 산에 올라가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준 땅을 바라보라 본 후에는 네 형 아론이 돌아간 것 같이 너도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이는 신 광야에서 회중이 분쟁할 때에 너희가 내 명령을 거역하고 그 물 가에서 내 거룩함을 그들의 목전에 나타내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출애굽 이후의 광야에서 엄청난 기적들을 날마다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의 역사는 계속적인 불평과 원망의 역사로 이어져 갔고, 하나님께서는 결국, 불평하는 세대로는 가나안 땅을 밝지 못하게 하는 결단을 서게 하셨고, 모세 역시, 결국 그 약속하신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밟지 못하게 됩니다.
사실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입성 시키는 가장 영광된 자리에는 모세 자신도 누락이 된다는 그 사실에서부터 얼마나 속상한 일이겠습니까? 평생을 통해 이룬 업적인데 하나님께서 한 번 보는 것까지만 허락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속으로는 상심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을 계속 읽어보아도, 그 어느 곳에도, 모세가 여기에 직접 대놓고 항변을 한다든지, 하나님께 따진다든지 하는 장면을 보지 못하였습니다. 한번쯤 사정해도 될텐데, 모세는 철저하게 종의 자세로 하나님의 역사를 뒤집거나 자기의 뜻대로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민수기 27장에서도 한 번 쯤 되물을 수도 있는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바로 자기의 후계자를 위해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민 27:15-17을 보면 “모세가 여호와께 여짜와 이르되
여호와,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시여 원하건대 한 사람을 이 회중 위에 세워서
그로 그들 앞에 출입하며 그들을 인도하여 출입하게 하사 여호와의 회중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이나, 자기의 입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자신이 없어진 후에 어떻게 될 것인가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내용에는 모세가 이제 “너는 끝이다”라고 하는 여호와의 계획에 대해서 조금도 섭섭해 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신명기 31:2을 보면 “이제 내 나이 백이십 세라 내가 더 이상 출입하지 못하겠고 여호와께서도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이 요단을 건너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면서, 백성들 앞에서도 이 사실을 숨기지 않고, 공포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 여호수아를 백성들에게 소개하고, 그를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우는 마무리를 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모세가 참 많은 일을 했지만, 그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했던 일인, 후계자 여호수아를 세우고, 백성들에게 새로운 지도자 여호수아를 따르게 한 일은 모세가 한 일 가운데, 잘 기억되지는 않는 이야기 이지만, 참으로 중요한 마무리를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신 34:10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영이 충만하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의 말을 순종하였더라”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거기까지”가 자기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역사적으로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호수아’라는 모세의 뒤를 이은 지도자가 얼마나 큰일을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일하게 되었는지를, 성경 ‘여호수아’서를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모세 본인에게는 결과적으로 “끝”이였지만, 모세의 하나님의 결정에 대한 신실한 순종과 믿음의 자세를 통한 깔끔한 마무리가 이스라엘 백성을 더 큰 축복의 자리에 가도록 인도해 주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적용)
그런데 간혹 우리는 우리에게 “끝”이라고 하는 시간이 다가오면, 모세처럼 행동하지 못합니다. 좀 더 지키고 싶어하고, 좀 더 안간힘을 써서, 나의 자리를 지키고, 내가 끝난 뒤에도 자리를 만들어 놓습니다. 한 때 대통령이였고, 재임중에 많은 무리를 일으키고도 아직도 하는 행동들을 보면 전직 대통령이라는 자리를 붙잡고 놓치 않는 모습을 봅니다. 어디까지 추해지는지, 온 국민들이 그 전직 대통령 이야기만 하면, 조롱하고 놀립니다.
사람들은 이렇듯 자신의 “끝”을 잘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점은 사람들마다 언젠가 오게 될 자신의 “끝”에 대한 준비를 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끝”을 경험하게 되므로 그로인한 아쉬움과 욕심들이 교차가 되어집니다. 그러나 평소 자신의 끝을 알았던 모세는 끝이 참 깔끔합니다.
오늘 우리도 인도에서 이렇게 만났지만, 언제 인도 생활이 끝날지 모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반드시 모두에게 인도 생활은 끝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인도 생활을 끝마칠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마무리를 하고 갈지를 우리는 평소에 늘 대비를 하고, 좋은 끝을 위한 매일의 삶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일반인들과 이야기를 하면 종종 한인세계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이름이 오르내립니다. 어떤 이의 이름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던 이야기가 “ 아 그 사람 돈대면 뭐든지 하는 사람” 이라는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교회를 다니시는 분인데, 교회를 안다니시는 일반인이 속속들이 다 알고 이야기를 합니다.
또 아무개 이야기를 하면, “아 그 사람 이렇게 저렇게 하다가 인도생활 끝났어”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끝이 깔끔하지 않고, 흐립니다.
우리는 오늘 항상 끝을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있으나 마나 한 사람이 아니라, 떠나거나 끝이라고 하면, “잘 됐다.”라고 비양거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 사람, 진짜 아쉽네, 그 사람 떠나는 거 정말 서운하네, 붙잡고 쉽은데, 꼭 가야하나....”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작만 좋고, 끝은 흔적도 없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 시간과 범위까지, 최선을 다해서, 삶에 충성하며, 언젠가 오게 될 끝을 잘 준비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단지 인도에서의 삶 만이 아니라 우리 인생 전체에 대한 삶의 자세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정해 준 삶은 반드시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도 마찬가지로 끝에 대한 준비를 잘 해야 합니다.
전도서 3:11에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라고 합니다. 사람에게는 본성이 있는데,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래살고, 평생 늙지 않는 것을 최고로 여깁니다. 솔로몬 저자는 그런 인생들 가운데 누려볼 것을 누리지 못한 것이 없을 정도로 누려 본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누려볼 만큼 누려보고 고백한 말이 전도서 3:12입니다. “사람들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는 줄을 내가 알았고” 라고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마감하는 순간 그 어떠한 것도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더 큰 만족이 없다는 것을 자신의 삶의 경험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이번에 교회에서 처음으로 청소년부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실제 청소년부 인원은 5명이지만, 들러리로 간 사람들이 13명이였습니다. 그런데 들러리로 갔지만, 말이 들러리지, 30시간을 버스로 왕복하고, 그리고 그 길이 정말 눈 뜨고 다니기 힘든 절벽들을 지나가는데, 저도 왠만하면 참으려고 했는데, 무서워서 몇 번씩 눈을 감고, “주여, 주여”를 외친 시간이 많을 정도로 힘든 시간이였습니다. 고생이 되고,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청소년들이 이런 시간을 통해서, 기뻐하고, 교회를 통한 사랑을 경험하고, 순간 순간의 쉼을 통한 위로를 얻고, 전체 일정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에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 교회가 청소년들이 수련회를 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도 감사하고, 이들을 위한 교사가 있어서 감사하고, 이들을 인도할 집사님이 계셔서 감사하고, 이들을 따라가서 밥을 해 주고, 간식을 챙겨주고, 인도에서 먹거리가 얼마나 중요한 데, 세심하게 신경 써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하고, 비록 같이 가시지는 못 했지만, 찬조와 기도와 사랑으로 함께 해 주신 성도들을 보고, 이 전체를 함께 하고, 하나님이 우리 교회를 움직여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어제 새벽에 도착 할 때쯤 정리되는 생각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번 수련회가 여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과, 우리 교회가 해야 할 또 하나의 사역들을 몆가지를 주셨습니다. 진짜 해 보니, 이렇게 더울 때, 여기에 남아 있는 청소년들이 같이 모여서 더위를 피하는데만 급급해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같이 모여 좋은 시간을 가지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고, 내년에는 좀 더 잘 준비해서, 우리 교회 청소년부의 전통적인 사역으로 자리를 잡아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인도에 온지 1년이 안되신 선교사님 가정을 모시고 갔는데, 사실 인도에서의 첫 1년은 너무 어렵습니다. 어디 가려고 해도 엄두도 안 되고 가장 힘든 시간인데, 이렇게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초임 선교사님들을 위해 이러한 프로그램을 통해 함께 목적지를 정하고, 함께 여행을 하면서, 위로도 받고, 인도 생활의 어려운 점을 같이 나누고, 기도하게 하고, 인도 정보를 같이 나누는 시간을 가지면, 인도선교에 첫 단추를 끼우는 귀중한 시간에 우리 교회를 통한 섬김을 받고, 그것이 기초가 되어 인도 선교의 시작을 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기쁘시게 생각하시겠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시작도 주시고, 좋은 끝도 주시고, 그 끝에 또 다른 시작을 계획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계시록 22:13 에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하나님의 성품은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을 소개할 때, 자신의 특성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 자체과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처음뿐만 아니라, 마지막도 주님 안에서 마쳐야 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을 우리에게 계시해 주실 때 주님은 시작과 마침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시작과 마침이 되시는 주님께 우리는 모든 것을 온전히 의탁해야 합니다.
인도 생활의 시작과 끝도 주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지난 2년 동안의 이곳에서의 시작과 마침을 인도해 주신 주님께서, 이제 새로운 예배 처소에서의 시작과 끝도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우리가 함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시작과 끝을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부끄럽지 않도록 온전히 주님께 맡기고 나야가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모세와 같이 시작과 끝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철저하게 순종하는 믿음의 자세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억지로 늘리거나, 주어진 시간을 뒤집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값지게, 알차게 써야 합니다. 그래야 시작과 끝이신 우리 주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하심을 깊이 경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시작과 끝이 되시는 알파와 오메가 되신 하나님, 하나님의 그 역사를 보며, 주님의 소중한 모습 가운데 하나님을 기억하며, 항상 시작과 끝이 주님안에서 진행되고, 주님을 항상 모시고, 우리의 삶을 살아가기를 원합니다.
이곳에서의 지난 2년간의 시작과 끝을 이루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제 새로운 처소에서 시작될 하나님의 시작과 끝을 기대합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며 나아가는 우리들이 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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