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8 열매맺기

      날짜 : 2014. 01. 23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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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428, 요한복음 15:5-8절 열매맺는 그리스도인

         

        찰스 앨런이라는 신학자가 미국 기독교인들의 신앙 형태에 대해 조사를 했습니다. 그 결과 기독교인 중에 약 20%는 정기적으로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하고 종교를 적는칸에 기독교라고 쓰지만, 매 주일 교회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나 부활절, 아니면 송구영신예배나 결혼식 등 자기의 마음에 따라서 한번씩 가는 사람이 20%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25%의 기독교인은 전혀 기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들은 식사하거나 잠자리를 들 때도 전혀 기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가하면 35%의 기독교인은 전혀 성경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배 시간에 목사님이 읽어 주는 성경 외에 집에서 자발적으로 성경을 조금이라도 읽지 않는 사람이 35%이고, 40%의 사람은 헌금을 바르게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헌금하지 않고 자신의 기분에 따라 헌금 하는 사람들이 전 교인의 40%라는 것입니다.

        게다가 60%의 사람은 신앙에 관련된 서적을 한 권도 읽지 않는다고 합니다. 70%의 사람은 교회 봉사나 선교 등 교회 활동에 전혀 참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는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이 10명중 7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런가하면 85%의 사람은 전혀 전도의 사명을 느끼지 못한다고 합니다. 평생에 한명이라도 적극적으로 전도하지 못한 사람들이 교인 중에 85%라는 것입니다. 오직 15%의 교인만이 전도의 사명을 느끼고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찰스 앨런의 보고서 중에 100%가 하나 있습니다. 교인 중 100%가 천국에 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전혀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거나 전도하지 않으면서도 100%의 사람들은 모두 천국 가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것이 바르지는 않다라는 것에 동의할 것입니다. 마음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나는 이 보고서를 우리도 한 번쯤 재고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도 마음에 이렇게 되고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열매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열매에 대해서도 우리가 찰스 앨런의 보고서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열매를 맺기 위해 거쳐야 되는 과정들은 너무 힘들기에 다 피하고, 빠져 나가지만, 막상 나중에는 열매를 맺기를 원하는 논리가 맞지 않는 생각을 우리 모두도 하고 있습니다.

        삶의 영역에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은 그 만큼의 댓가를 치루었습니다. 최근에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 선수의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라이벌 일본의 아사다 마오를 정상으로 만들기 위해 일본이 얼마나 김연아를 괴롭혔는지를 알게 한 글이였는데, 일본은 김연아 선수를 쓰러뜨리기 위해 김연아 선수의 코칭 스테프들을 매수해서 김연아 선수로부터 떠나게 하고, 유명한 스케이트 장인이라는 한 일본 사람은 스케이트를 사러 온 사람이 일본의 라이벌 김연아 인 것을 알아보고, 사이즈를 하나 더 올려서 신어야 한다고 거짓 정보를 주고, 그로 인해 발에 심각한 손상을 가져 온 적도 있었고, 일본 기업의 엄청난 지원을 받는 아사다 마오와는 다르게 시간을 내어 직접 CF 광고를 찍으며 훈련비를 만드는 것을 운동에는 관심이 없다고 비난거리로 삼아서 견제를 하고 있습니다.

        경기를 보면 침착하고, 찔러도 피 한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선수인데, 사실 그 안에서 세계 1위를 위한 엄청난 사투가 벌어지는 것을 우리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1등이라는 열매를 위한 정말 피나는 노력이 그 결과를 가져다 줌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은 어떻게 열매만을 쉽게 얻을까를 늘 생각을 합니다.

        중간에 필요한 과정들을 생략하니 건강하게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을 보면 우리 주님도 우리에게 열매 맺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는 열매를 맺는 방법은 생각보다 상당히 쉽습니다. 세상의 열매는 정말 쉽지 않은 노력과 인내가 따른다고 이야기를 하지만, 오늘 우리에게 알려 주신 성경에서의 방법은 너무나 쉽습니다.

        그것은 요 15:4에 나온대로 내 안에 거하라는 것입니다. 주님 안에 거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으로 열매를 맺으라고 말씀 하십니다. 이것은 내 능력으로 뭔가를 만들어서 업적을 쌓아서 열매를 만드는 세상의 방법과 다른 것입니다. 그저 주님 안에 거하라라고 이야기를 하고 계십니다. 참 쉽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쉬운 것을 우리는 잘못하고 있을까요?

        너무 쉬운 것을 가르쳐 주셨지만, 우리는 항상 주님 안에 거하지 않고, “내 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나의 스타일, 나만의 방식, 나의 생각과 경험, 나의 배경안에 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신앙도 주님의 스타일, 주님의 방법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데, 신앙에서 조차 나의 신앙 스타일, 나만의 방식을 가질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열왕기상 12장에는 여로보암이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이 솔로몬 시대 이 후에 왕국이 북,남으로 나뉘면서 북왕국의 초대 왕이 되는 사람입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무리한 정치적인 고집을 피우자 나머지 열지파가 등을 돌리고, 그들의 지지를 얻어서 왕이 됩니다.

        그런데 이 북왕국에는 결정적인 약점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남유대 예루살렘에서 드리는 절기예배를 놓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남이 분리 되었기에 남쪽 예루살렘으로 갈 길이 없습니다. 그런데 왕으로 통치를 하다보니, 사람들의 환심을 사야 되고, 자칫하면 종교적인 성향이 강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남쪽으로 흘러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로보암은 사람들을 잡으려고 특단의 조치를 취합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을 대신해서 북이스라엘 지역에 있는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웁니다. 그리고 산당을 지어서 보통 레위인이 성전을 섬기던 일을 하던 것을 대체해서 모든 사회 계층을 대신해서 새 제사장을 임명합니다. 분명히 구별되고, 정해진 성전 봉사자들을 세워야 함에도, 그럴듯한 사람들을 대표로 뽑아 성전 봉사를 맡겨 버립니다. 이렇게 저렇게 전통적으로 지키던 이스라엘의 절기들을 자기 맘대로 바꿔 버립니다.

        떠나려는 백성을 붙잡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했던 특단의 조치들이 결국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가장 어두운 어두움을 끌고 들어갔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백성을 잡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 편법을 썼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이것저것 바꾸고, 자기가 임의로 정한 것으로 사람들을 선동하며, 혼란 스럽게 했고, 결국 그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가장 최고의 악질로 불려집니다.

        사람들이 욕을 할 때, “에라 이 여로보암 같은 놈아라고 이야기를 하면 이스라엘에서는 아주 심각한 욕입니다. 그 말은 역사적인 예배 방해자로 기록 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열매를 맺는 가장 쉬운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이것저것 여로보암과 같이 특단의 조치를 취하면서, 진정한 예배의 회복을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기가 제대로 하지 않고 있기에 이것이 민망해서, 합리화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들 열심히 하는데 슬쩍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일을 성수하라고 하셨는데, 우리가 은근슬쩍, 자기만의 방식으로 바꾸어 놓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명료하게 우리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정해 놓고, 분명하게 지켰던 아름다운 역사들이 있는데, 우리가 자기 합리화로, 주님 안에 거하지 않고, 내안에 거하면서, 나에게 맞추는 신앙생활로 믿음의 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나라도 찰스 엘런과 같은 조사를 했는데, 한국기독교목회자 협의회가 7대도시 18세 이상 기독교인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우리나라도 10분의 1은 기독교인이지만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 누구나, 조직에 얽메이기 싫어서 라는 이유를 말한 사람이 30%라는 것입니다. 이들이 교회를 나가지 않는 이유는 자기의 신앙관이 변한데 원인이 있다고 말하고, 그러한 이들의 42.2%교회에는 문제가 없었다라고 응답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렇게 자유롭게 자기방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의 67%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고 응답을 했다고 합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는 참다운 교회의 모습과 목회자의 리더십, 개인의 영적인 특성과 같이 교회와 성도를 바르게 세울 수 있도록 서로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이들은 그냥 교회에 와서 예배만 드리고 싶어합니다. 모임이나 조직이나 사람들과의 만남도 가지기 싫어합니다. 사실 저도 그랬습니다. 저는 더 심해서 3년을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관계도 가지고, 예배도 드렸는데, 사람들과 어울리는 모임은 싫었습니다. 시간도 아까웠고, 사람들 성향도 안 맞았고, 우리가 그런 분들도 우리교회안에 있음을 우리는 인식해야 합니다.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어느 누가와도 하나님과의 만남을 가지도록 하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 나오고 안 나오는 것에 대해서 최대한 강요하지 말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믿음의 생활을 하다가 신앙의 기본들을 다른 것으로 대체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나 그냥 인터넷으로 예배보자, 예배 더운데 설교만 듣고 오자, 예배 한 달에 한번만 보자, 그리고 거꾸로 모임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을 향해 정죄해서도 안됩니다. 혼자해서 잘 안되니까 서로 같이 모여서 권면하고 하는 것이기에 그것도 정죄해서는 안됩니다. 서로 개인의 특성에 따라 존중을 해 주는 것이라면, 교회 공동체가 하는 일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저것 다 안하고 개인적 취향으로 모든 것을 하고, 그러면서도 천국은 100%로 가야한다는 보고를 했던 찰스 앨런의 보고서처럼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우리 편한대로, 우리방식대로, 하나님 앞에 분명히 해야 할 것을 함부로 바꾸는 것은 그러기에 참으로 조심스럽고 위험한 일입니다.

        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헌금을 많이하라 적게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헌금도 정해진 법도가 있고, 신앙의 흐름이 있는데, 그것을 언제부터 자기 마음대로 바꿉니다.

        헌금하지 말고, 어려운 사람들 밥이나 사주자, 십일조...., 이거 얼마나 힘들게 번 것인데, 교회는 헌금하는 사람많으니까, 내가 더 의미있게 이 돈이 사용되기 원하니까, 어려운 고아원에 보내자...연말정산 받아야 하니까, 선교단체에서 기부금 납입증명서 끊어주는데 내자....

        이렇게 마음을 먹기 시작하는 것은 조심스럽습니다. 헌금은 말 그대로 출석하고 섬기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께 그 은혜에 감사해서 드리는 것이지, 내가 구상해서 쓸곳까지 다 계산하고, 거기에 드리면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고 드리는 방법도 온전치 않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냥 주님을 사랑하는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바로 온전한 헌금이지, 내가 헌금의 주인이 되어서 운영하는 방식으로 헌금을 하는 것은 정도의 길에서 벗어난 것이 되고 맙니다. 이렇게 자기의 생각대로 정도의 길을 버리고 자기의 방법과 방식의 헌금으로 되어지게 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가장 경계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너무나 쉽게 쉽게, 환경에 따라서 나에게 맞게 바꾸는 것은 지금은 편해도 나중에 더욱 우리를 힘들게 할 수 있습니다.

        193899일은 우리한국교회가 일제에 신사참배를 종교가 아닌 문화행사라고 교묘하게 바꿔서 신사참배를 결의한 교회 역사적으로 정말 부끄러운 날이였습니다. 이 시대에는 남한보다 북한에 교회가 더 많았고, 영적인 부흥이 더 많았습니다. 특별히 1907년의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의 대부흥운동은 민족복음화의 큰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영적인 운동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곳에서 총회를 하고, 한국교회는 일제의 신사에 참배하기로 결의를 합니다.

        억지로 껴 맞추기는 어렵지만, 어느 목사님의 글에는 그 뒤 10년뒤인 194899일은 북한정권 수립의 날로 되어집니다. 여로보암과 같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했던 특단의 조치였는데, 그로부터 10년 북한은 신앙의 자유가 없어지고, 북한 공산정권이 들어서게 됩니다. 그리고 1907년 평양 부흥운동의 역사가 있던 장대현 교회는 당시에 2000명을 수용할 대표적인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그 장대현 교회가 있던 터인 만수대 광장은 그 믿음의 흔적이 사라지고 그곳에 20m짜리 김일성 동상이 서고, 북한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그곳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고 고개 숙여 절을 하게 됩니다. 마치 성경에서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을 인용하듯이....

        1938년 신사참배는 어쩔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였지만, 현실에 맞춘 특단의 조치들이 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분명한 징계를 받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주님을 고백하고, 주님 안에 거하는 자들은 어떻게 되든지, 다 하나님 안에서 열매를 맺습니다.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좀 의아해 보이지만, 하나님 안에 거하는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으로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고, 자기 방식으로, 자기의 뜻대로 마음을 정하고, 하나씩 둘씩,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기 시작을 하면, 되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오늘 성경 요15:4을 보면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그리고 15:5을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예쁜 꽂이라도 꽃가게에서 사온 꽃은 일주일을 못갑니다. 왜냐하면, 가지에 붙어있지 않기에 점점 수분이 빠져서 죽는 것입니다. 좀 못 생겨도, 들꽃은 가지와 뿌리까지 틑튼하게 연결이 되어서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고, 분명하게 더 오래 꽃을 피울 수 있고, 꽃이 지면, 열매까지도 자연스럽게 이러지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이렇게 꽃이 되지 못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요 15:6을 보면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주님 안에 거하는 것들을 자꾸 하나씩 둘씩 다른 것으로 대체하고, 내가 정한 대로, 임의로 정한 대로 내가 주님에게 나오면, 잘못하면 불에 던져 사르게 되는 삶을 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아까 이야기 한 대로, 영적으로 갈급하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영적으로 갈급할 자신의 상태와 마음과 환경을 임의로 만들어 놓고, 이미 갈급한 것을 채울 수 있는 영적인 관계들이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방식과 스타일로 철저히 무장하고, 주님 안에 거하지 않고, 내안에 거하는 삶을 살기에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참 쉽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15:7을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고 약속 하셨습니다. 누가 뭐하나 주는 것도 때로는 마음이 너무 좋은데, 전능하신 하나님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고 했는데, 얼마나 파격적인 조건임에도 우리가 이것을 놓치고 있지 않은지 다시 한 번 돌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히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고..” 라는 말씀을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은 이미 우리에게 모든 답을 다 주셨습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보물 찾기를 하듯이 성경안에는 우리에게 필요한 귀중한 보석들이 많이 있습니다. 모든 상황과 환경이 다 다르다고 했지만, 성경안에는 우리가 나아갈 방향과 모든 상황을 분명하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 목사님들만 그렇게 한다구요...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사업문제, 계약하는 것, 때로는 수량이나, 종목과 항목들도, 성경은 우리에게 읽는 순간 영감을 얻게 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계십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의 모든 말씀은 하나님이 자기의 사랑하는 백성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셨고, 그 언약의 말씀을 지키고 따르는 백성에게 너무나 분명하게 모든 것을 예비해 주셨다는 것을 우리에게 반복해서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배 시간에 말씀을 듣는 일, 그리고 커피브레이크나 성경공부 모임을 통해 말씀을 배우는 일, 구역에서 우리가 QT를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 말씀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알아야, 우리가 힘들 때, 우리가 어려울 때, 우리를 그 상황에서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내 안에 말씀이 거하도록 하기 위해서 우리가 말씀을 읽고 배우고, 가까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코 하버드 대학교 학생이나, 아이큐 200이상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쉽게 따르도록 알려 주셨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그리고 내 말이 우리 안에 거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재미있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지난 여름에 땀 흘린 생각을 했었습니다. 여름에 다들 한국에 가서 텅빈 이곳에, 작년에 서울대학교 성악과 찬양팀이 왔었습니다. 당시에 교인이 25명 정도였을 때, 학생들이 30명이 왔었습니다. 공연이 힘들 거라고 했지만, 곳곳에 다니면서 찬양을 드렸습니다. 한인교회가 30년만에 처음으로 연합해서 찬양을 드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의 기업, 인도의 학교와 사역지들을 돌고, 저 멀리 첸나이, 벵갈로까지, 이 우상이 가득한 인도에서 찬양을 하나님께 올려 드렸습니다. 그 친구들이 우리 교회 찬양대에 이름을 지어 주고 갔습니다. 힘든 인도에서 더 많이 찬양을 드리고, 주님의 꿈이 되라고 더드림(The Dream) 찬양대”...

        지난 시간을 돌이켜 보면, 우리 교회의 규모나 상황은 참 부족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 찬양대를 많이 사랑해 주셨습니다. 좋은 분들의 헌신적인 수고가 가장 중요했지만, 그 분들의 수고를 만들어 내신 분은 우리 하나님이시라고 생각합니다. 찬양이 끊어지지 않도록 대원이면 대원, 지휘자면 지휘자, 반주자면 반주자를 하나님이 항상 준비시켜 주셨습니다. 누가 열심히 한다고 쉽게 되는 일이 아닌데, 일이 되어지는 것을 보면, 분명하게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시작은 늦지만, 교회학교도 요즘 많이 발전이 되어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양육시스템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모든 중심에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고자 하는 갈망이 깊게 자리를 잡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들이였습니다. 인도라 잘 안된다고,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이렇게 하면 주님과 더 가까워지고, “주님 안에 거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고 진행했던 일들이 열매를 맺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예배 잘 드리고, 하나님 말씀 잘 배우고, 기도 잘하고, 봉사 잘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겠다는 생각이 흔들리지 않을 때, 하나님이 자연스럽게 부흥의 은혜도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마음이 결코 흔들리지 말아야 될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주안에 거하던 것들을 하나씩 내 마음대로 바꾸고, 다른것과 대치하고, 바꾸기 시작할 때, 지금 당장은 잘 모를지 몰라도, 자기의 열매는 분명히 자기가 맺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3:9에는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주님도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기 원하십니다.

        15:8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라고 했습니다.

        인도 생활을 하고 한국으로 귀국을 하는데, 인도에서 아무 열매가 없이 돌아가면 얼마나 속상합니까? 이곳이 열매 맺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을 우리 주님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열악하고, 힘들고, 뭐하나 제대로 되지 않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우리가 열심히 주님을 위해 모이고, 주님을 예배하고, 우리가 힘써서 하나님을 섬기면, 우리 하나님이 이렇게 열악한 곳에서 힘쓴 우리에게 더 좋은 열매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고, 내가 정한대로, 내가 생각한대로 열매를 꼭 맺으려고 하는 것도 조심스럽습니다. 우리보고 무슨 열매, 어떤 크기, 상품인지, 하품인지를 신경 쓰라고 하지 않으시고, 그냥 내안에 거하라고 하셨고, 내가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주님이 정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설계한 나의 유한한 한계속에 정한 내 인생의 열매가 아니라, 요한복음 10:10에 나온대로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주님이 맺게 해 주시는 열매를 얻게 되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우리가 열매맺기를 원하시는 주님...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열매를 우리가 잘 맺도록 인도해 주시고

        이 인도 땅에서도 주님이 맺기를 원하시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우리가 때로는 우리의 생각과 편안을 위해 하나님이 주신 정도를 벗어나는 경우도 있습니 다. 역사적 사건 가운데 일어난 일을 잘 기억하며, 하나님을 만나는데, 주님안에 거하는 일에 우리 모두가 접붙임을 온전히 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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