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7 비난

      날짜 : 2014. 01. 23  글쓴이 : 관리자

      조회수 : 989
      추천 : 0

      목록
      • 2013217일 마태복음 27:11-14 말씀 앞에서의 침묵

         

        지난주에 한연예인이 위암으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32살의 나이고 얼마전에 결혼해서 이제 두 살된 딸이 있는 아빠였습니다.

        그런데 더 아쉬운 것은 그 동안 백댄서로 오랫동안 무명으로 활동을 하다가 오디션프로그램에서 발탁이 되어서 이제 막 이름이 알려지고, 유명해졌는데, 위암으로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울랄라세션의 임윤택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소식이 있었는데, 이 가수의 마지막 활동에 대한 못된 사람들의 악플이였습니다. 저도 인터넷에 올라온 사람들의 글을 보고, 너무나 놀랐습니다.

        위암이라고 동정표 받아서 인가 받았구나”, “위암인데 방송에서는 엄청 잘 먹돼”,“아직도 안죽었대, 가짜로 쇼한거 아니야”, “좋겠다 할거다하고, 즐길거 다 즐기고 죽고...”

        정말 그 글들을 보고, 이게 사람의 제 정신인가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죽음을 알고도 자기가 사랑하는 음악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한 사람한테, 위로는 못할망정...계속 익명성을 이용해서 거짓을 전파하고......

        그런데 오늘 이 가수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도 쉽게 발견이 되어집니다. 확인되지도 않은 말을 서슴없이 하고, 정말 정신나간 사람처럼 거짓을 꾸미는 사람들이 많아서 우리는 때로는 직장이나, 공동체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러한 비난에 자신감 있게 오랫동안 버티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견디다 못해 극단의 길을 택하기도 하고, 어려움을 겪을 때가 너무나도 많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 예수님이 보여 주신 방법을 같이 생각해보고, 함께 배워가기를 원합니다.

        오늘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전에 재판을 받으시러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재판은 누군가의 고소가 있어야 하고, 죄가 있어야 그곳에서 잘잘못을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사복음서에는 예수님이 재판을 당하시는 모습을 동일하게 설명을 해 놓았고, 그 장면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공통된 모습이 있었음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계십니다. 27:12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 27:13에도 당시의 유대에 부임한 로마 총독인 빌라도도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이르되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 하되그런데 예수님의 재판을 총괄하는 그 자리에서도 예수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십니다. 27: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

        이러한 모습에 우리는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보통 법정은 죄를 가리는 곳인데, 죄가 있는 사람도 형벌을 면하기 위해서 죄가 없다고 하는 곳이 법정인데, 예수님은 자신의 생명이 달린 중요한 자리인데, 그곳에서 아무런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한 번은 좀 엉뚱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죽으실 때 좀 멋있게 죽으시면 안되셨는가? 예를들면 아펜셀러 선교사는 군산 앞바다에서 물에 빠진 조선 여학생을 구하다가 죽었는데, 뭐 이런식으로 예수님이 죽으시면 안되었나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누구를 구해 주시다가 사랑의 하나님의 아들이 대신해서 죽으셨다. 뭐 이러면 그림도 좋고, 모양도 좋은데, 예수님이 법정에서 사형선교를 받을 정도의 심각한 죄인으로 사람들에게 알려진다음에, 하나님의 아들이고 능력이 많으신데, 그 때에는 하나도 능력을 못 사용하시고, 무능력하게 채찍에 맞고, 결국 사람들이 다 보는데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아무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돌아가신 결과적인 사실을 보면, 너무나도 안타깝습니다.

        특별히 이렇게 되기전에 법정에서 조금이라도 항변을 하시든지,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셔야, 되는데, 분명히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 모든 상황을 묵묵히 아무 말도 없이 당하신 모습을 보면서 왜 그러셨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항상 지지말라고 가르칩니다. 따지고 살아야 하고, 무시 당하지 않게 살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 주고 있는데, 오늘 예수님은 너무나도 무기력합니다.

        요즘 우리가 함께 QT를 하는 마가복음 8장에도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많은 기적과 치유를 행하십니다.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능력과 치유를 행하시고, 어떤 때는 오천명이 기적을 통해 음식을 먹기도 하고, 바다위의 풍랑에서도 주님이 바다를 잔잔케하는 놀라운 일들을 경험합니다. 지금 자신들의 눈 앞에서 기적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르게 반응을 합니다.

        예수님 속으로 엄청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자신들을 좀 따르는 제자들은 기적과 능력을 보고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마가복음 8:17-18을 보면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라고 하십니다.

        늘 같이 다니는 제자들 조차도 예수님을 잘 이해를 못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에게 반감을 품었던 종교지도자들은 아예 엉뚱하게 알고, 잘못 이해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세리와 창기의 친구라고 소문을 내기도 했고, 율법을 범한자,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 거짓말쟁이 등의 온갖 엉둥한 것으로 예수님을 잘못 해석합니다. 알아 듣지 못하는자와 잘못 깨달은 자들이 항상 예수님 곁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면 마 27:12에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라고 기록이 되어 있고, 27:13에 보면 그들이 너를 쳐서 얼마나 많은 것으로 증언하는지 듣지 못하느냐라고 예수님께 되묻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것으로...” 라는 문장이 보여 주듯이 예수님에 대한 사람들의 이런 저런 이야기는 정말 엄청나게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예수님이 몆마디만 해도 쉽게 풀려나셨을텐데 결코 답변을 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침묵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침묵으로 결국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오시기 이전에 이러한 일에 대한 예언이 있었음을 이사야서의 말씀을 통해 알게 되어집니다. 53:7을 보면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오래전에 약속된 그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리고 인류의 죄를 지고 가시기 위해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 모든 인류의 죄를 위해 예수님이 걸어가시기로 정해진 그 길을 침묵으로 걸어가셨다는 것입니다.

        강병도 목사님은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위해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진리는 거짓증거에 대해서 굳이 변명하려 하지 않는다. 이 침묵은 천만마디의 변명보다 힘이 있어 거짓증거로 하여금 스스로의 정체를 드러내고 소멸되게 한다.” 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수 많은 거짓 증거들에 예수님이 일일이 쫒아다니시면서 변명하거나, 대항하셨다면, 아마 예수님은 이 땅에서의 짧은 시간의 많은 부분을 그런 일을 위해서 다니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참 진리이심을 분명하 아셨기에 거짓증거에 대해서 항변할 가치를 느끼지 않으셨고, 대신에 더 돌아보아야 할 가난한 자, 병든 자, 위로 받아야 할 자, 제자들을 주님의 제자로 양육하는데, 더 시간을 많이 쏟으셨습니다.

        초대교회에도 교회에 대한 이방인들과 로마교인들의 오해가 많았습니다. 초대교회는 예배시간에 성찬식을 했는데, 아시다시피 성찬식은 주님의 살과 피를 떡과 포도주르 재현하며 진행하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참여하지 않고, 잘못 알아 들은 사람은 기독교를 식인종의 종교라고 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사람을 잡아서 먹는 종교라고 했습니다. 찢어서 먹고, 사람의 피를 마시는 종교라고 소문을 냈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알려 주신 이 거룩한 예식을 사람들은 엉뚱하게 소문을 내서 흔들었습니다.

        요한복음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는 말씀으로 한 아버지가 되는 하나님을 모시는 우리 모두가 형제자매라고 하며, 서로의 지위나, 학력이나 차별됨이 없이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자매임을 알리는 귀중한 호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들은 사람은 기독교를 근친상간의 종교로 소문을 냈습니다.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다 섞여서 성관계를 해서, 다 형제자매가 되는 반인륜적 종교요, 비윤리적인 종교라고 소문을 내고 기독교를 비방하고, 이를 위해 기독교인을 잡아 감옥에 가두고 사자의 밥으로 주기도 하고, 많은 순교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그때의 초대교인들도 역시 일일이 다 따라다니며 항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항변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그럴때일수록 행했던 한 가지 모습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침묵하며, 더욱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하고,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오해를 받고, 하지도 않은 일에 비난을 받고,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할 때, 우리가 더욱 낮아져서 하나님께 엎드리기를 원합니다. 달려가서 같이 따지고, 잘잘못을 가리고, 내가 맞고 니가 틀리다라고 말하라고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잠잠하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 모세를 우리가 보통 온유함이 가장 뛰어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먹을 것도, 거처도 정해지지 않은 광야로 40년을 이끌었는데, 하나님이 주신 광야에서의 기적을 수 없이 맛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하루가 멀다하고 늘 불평을 하고, 모세를 비난을 했습니다. 그 결과 대다수의 백성들은 하나님이 약속해 주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좋은 것을 주실 때 구별되고, 준비된 자들을 위해서 예비해 주시는데, 항상 비난하고, 불평하고, 거짓증거하던 사람들에게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속에서 모세도 항상 일관된 법칙을 보여 줍니다.

        백성들이 모세를 비난하고, 불평하고, 어려움을 주면 모세는 백성들에게 일일이 다 맞서지 않았습니다. 출애굽기 15:24-25 “백성이 모세에게 원망하여 이르되 우리가 무엇을 마실까 하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민수기 11:1,2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백성이 모세에게 부르짖으므로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불이 꺼졌더라

        모세는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들이 터져나오기 시작하면, 그것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서 엎드립니다. 백성들에게는 침묵하지만,하나님께는 나아갑니다.

        오늘 이것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귀중한 영적인 법칙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에서 겪는 어려운 일, 거짓 증언들, 훼방, 고소, 비난들을 당할 때 그 상대방을 일일이 쫒아다니며, ‘항변하고, 너 왜 그랬어, 니가 도대체 뭔데 나한테 그래....’를 이야기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그럴 때 여호와 앞에 나아와서 모든 것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여호와께 맡기고, 그분이 하시도록 모든 것 앞에 잠잠하고, 여호와 앞에 나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함정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잘못 이해하며, 그냥 무조건 침묵만 하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주의 깊게 보면, 그냥 침묵하고 뒤로 물러나라는 것이 아니라, 비난하고 괴롭히는 상대에게 침묵하는 것이지, 우리의 상황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엎드리라는 것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되겠습니다.

        간혹 신앙 생활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을 보면, “그냥 침묵하는 것이 좋다고 여기고 침묵합니다. 나오던 예배를 안나오고, 하던 성경공부를 쉬고, 영적인 활동을 중단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오는 예배를 중단합니다. 그것이 침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온전한 침묵이 아닙니다. 온전한 침묵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나를 힘들게 하는 대상들에 대한 대응의 침묵이며, 이와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오고, 그분의 말씀을 듣는데 더욱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 많은 찬양사역을 하는 마커스 위십팀이 당분간 사역을 중단하기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마커스가 너무 유명해져서,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데 멀어졌다는 판단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에 대한 여러 가지 많은 사건과 사고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지금 우리가 잘못하지 않았다고 항변할 때가 아니라 조용히 침묵하며, 더욱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저는 지난주 월요일에 아주 큰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예수전도단의 홍성건 목사님이 오셔서 목회자 세미나를 해 주신다고 해서 큰 기대를 가지고 세미나를 참석했습니다. 홍목사님은 저희 예수 전도단을 위해 크게 쓰임을 받으신 목사님 이십니다.

        그런데 2시간에 걸친 목사님의 강의 내용은 너무나 평범했습니다. 제가 기대했던 목회자의 사명과 사역현장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들을 어떻게 목회자가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 아니라, 그냥 우리가 잘 아는 다윗과 골리앗에 대한 내용을 말씀만을 가지고 2시간 전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배신감도 들었습니다. 먼 곳까지 갔는데, 너무 인도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 멀리서 오셔서 준비가 안되셨나?.....그런데 참 놀라운 것은 그 두 시간의 시간동안 말씀만 가지고 이야기를 하셨는데, 제가 지금 고민하는 목회현장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필요한 지를 말씀을 통해 아주 분명하게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냥 말씀인데...그것도 평소에 너무나 잘아는 말씀인데....그 말씀이 저를 움직이고, 새힘을 주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너무나 분명히 알려 주었습니다.

        인도에 오기전에도 가장 힘이 되는 말씀이 물이 변하여 포도주 되었다는 너무나 쉬운 말씀에서 응답을 얻고, 힘을 얻었는데, 정말 놀라웠습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의 고민들이 사라지고, 성경의 인물들의 모습을 들으며, 하나님이 그 성경의 사람들을 대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지금 저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정말 필요한 말씀을 너무나 분명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냥 침묵으로 일관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더 깊이 듣는 가운데 침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번 나이스크 컨퍼런스와 부흥회는 그런면에서 많은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목회 현장이 어떤 전도방법, 어떤 세미나들이 유행처럼 지나가면서 교회 성장을 이야기 할 때 모두들 엄청난 뭐가 있는 것처럼 많은 목회자와 교회들이 그 물결이 휩쓸렸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지금 한국교회가 성장하지 못하고, 계속적인 마이너스 성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하나님께서 이 단체를 들어 사용하시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목회에 그 어떤 방법이나 기술을 접목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하나님을 위한 온전한 예배와 헌신을 이야기 해 주며, 우리가 참된 예배자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 주었습니다. 아직 저도 부족하지만, 이 나이스크 모임을 통해 제 설교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기존에 찾아보던 좋은 책, 텔레비전 이야기, 감동 사연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고, 기억이 남는 설교에서, 그냥 말씀 자체에서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전하는 것으로 많이 바뀌고 있습니다.

        완벽한 설교를 위한 다듬어진 설교를 향한 방향보다는 좀 다듬어지지 않았고, 조금은 재미없고, 조금은 식상한 내용일지는 모르지만, 성경안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하나님의 말씀을 찾는데 많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나이스크를 통해 말씀의 능력과 말씀으로 해야하는 사역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예수전도단의 홍성건 목사님의 강의는 사실 성도들을 향한 기회가 있었지만, 너무 홍보가 없었고, 알려지지 않아서, 우리 교인들에게는 알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나이스크 컨퍼런스와 부흥회는 우리가 놓치지 않기를 원합니다. 올해 우리 교회 표어가 말씀을 삶속에서, 삶속에서 말씀을입니다. 우리가 침묵할 일이 많지만, 그냥 침묵이 아닌 말씀안에서의 침묵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냥 잠잠함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배우면서, 하나님께 더욱 엎드리기 원합니다. 지난 213일부터 사순절 기간이 시작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을 다시 되새기며, 나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을 묵상하는 귀중한 절기입니다.

        이번 사순절 기간, 우리가 밖으로는 잠잠하고 침묵하되, 우리의 속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나아감과 열정이 더욱 회복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본뭉에 나온대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 위해, 많은 것을 이야기 하실 수도 있었지만, 주님은 침묵하시면서, 잠잠하셨습니다.

        주님의 음성을 더욱 또렸이 듣고 주님의 인도하심과 위로와 사랑을 더욱 깊이 체험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우리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관계없는 거짓 증언들과 잘못된 소식들이 우리를 어지럽히고, 혼란스럽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이 땅에서 그러한 것들을 겪으시면서 보여 주신 모습을 기억합니다. 일일이 다 상대하지 않으시고, 침묵하시고,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고 더욱 주님을 의지했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삶에서 가져야 할 지혜를 얻습니다.

        우리고 이 사순절 기간 묵묵히 고난당하시고 참으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더욱 주님을 의지하고 주의 말씀 앞에 서는 훈련을 하도록 주여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그 때 그 무리들이

         

        말씀과 나눔

        * 주일 말씀을 함께 나누며 은혜를 나누실 수 있습니다.(가정,직장, 청소년,청년구역 모임시 )

        성 경 : 마태복음 27:11-14 / 제 목 : 말씀 앞에서의 침묵

         

        1. 오늘 말씀을 듣고 기억나는 말씀이나 깨달았던 말씀을 나누어 보세요

         

        2. 뜻하지 않게 오해 받은 일로 속상해 본 적이 있나요? 어떻게 대처를 했습니까?

        3. 오늘 예수님이 받으신 오해들은 무엇입니까? 예수님은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4. 침묵하고, 말씀 앞에 엎드린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나는 어떻게 말씀 앞에 엎드릴 수 있

        습니까?.

    신고하기

    • 추천 목록

    • 댓글(0)

    • 글을 작성시 등록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