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1 베드로

      날짜 : 2014. 01. 23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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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치 신앙 : 순수 신앙 마태복음 14:22-33

        성경을 보면 정말 이 사람은 좀 아니다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때로는 너무 충동적이고, 생각없이 이야기하고, 눈치는 하나도 없습니다. 거기에다가 욕심도 많습니다. 혈기도 많습니다. 생각없이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하다보니, 항상 실수 투성입니다. 과연 누구일까요?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바로 베드로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광야에서 말씀을 듣던 사람들이 먹을 것이 없자, 예수님께서 빵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놓고 기도하셨는데, 이것을 통해 장정 5000명이 먹고도 남을 음식이 공급되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 기적이 사람들에게 어떤 표적과 같은 정도로 여겨질까봐, 그 자리를 정리하시고,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재촉해서 배에 태워 한적한 곳으로 가십니다.

        14:22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그리고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기 위해 따로 산에 올라서 기도를 하러 가십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기도를 하고 내려오자 먼저 보낸 제자들의 배가 엄청난 어려움을 겪습니다. 심한 파도와 풍랑으로 제자들이 아주 어려운 상황에 처해 졌습니다.

        14:24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 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스르므로 물결로 말미암아 고난을 당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밤 사경쯔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난 것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밤 사경은 새벽 3시정도가 되는 시간입니다. 바다라 정말 깊은 어둠에 있었고, 아무리 제자들이 뱃사람들 이지만, 그곳에서의 심한 풍랑은 너무나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어려움속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찾아 오사 그들을 만나 주시고, 어려움 가운데 함께 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14:25-27 “밤 사경에 예수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시니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라 하며 무서워하여 소리 지르거늘 예수께서 즉시 이르시되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하십니다.

        다급한 순간의 제자들은 아무튼 어려움속에서 주님을 만났습니다. 이미 경험한 기적들을 통해 이번 풍랑도 반드시 도우실 것이라는 제자들의 마음이 있고, 지금 당장 이 풍랑이 잔잔해 지기를 바라는 그 순간 베드로의 호기심 천국씨리즈는 또 발동이 됩니다.

        그런게 힘들고, 풍랑이 심한 그 시간에 베드로는 튀는 행동을 합니다. 지금 풍랑이 멈추지 않는 긴박한 상황인데도, 베드로의 눈치 없는 돌발행동은 이어집니다. 간혹 수업시간에 황당한 질문을 해서 선생님을 당황하게 하는 학생과 같은 모습을 합니다. 그 질문은 이렇습니다. 14:28을 보면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만일 주님이시거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하니...”라고 했습니다. 지금 침몰직전의 배의 상황에서 베드로의 이런 돌발행동은 사실 본질적인 모습은 아닙니다. 좀 다르게 표현하면 엉뚱합니다. 지금 죽기직전의 심각한 상황인데, 그 상황에서 오히려 예수님을 마치 의심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니면, 호기심이 발동하여 괜히 튀는 행동으로 주목을 받으려고 하는 것과 같은 베드로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바로 꾸짖지 않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지하게 베드로를 나무랐을 것입니다. “야 지금 내가 니들 죽어가는 거 보고, 이 늦은 시간에 바다위를 걸어서 여기까지 왔는데, 지금 풍랑 안보이니, 내가 지금 물위를 걷는게 그렇게도 궁금하니... 뭐 물 위를 걷는 거 따라해 보고 싶다고....정신이 있냐 없냐...지금 나하고 장난하냐?”라고 이야기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거친 성격, 좀 돌발적인 성격, 즉흥적으로 눈치없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받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럼 그냥 와봐...한 번 와봐 너도 올 수 있어, 자 이리와봐라고 하셨습니다.

        14:29 “오라 하시니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께로 가되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간혹 보면 아주 합리적이시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것은 그 어느 것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환자를 고치고,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5,000명을 먹인 상황들은 모두가 다 대의명분이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베드로가 물위를 걷는 것은, 그리고 지금 풍랑으로 사경을 헤메는 바로 그 시점에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예수님은 받아 주십니다. 자기와 함께 하는 제자 베드로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 주십니다.

        저는 이런면에서 예수님이 참 좋습니다. 아주 급하고 힘들일이 있어도, 자신에게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닌데도, 예수님은 그 상황을 계산하지 않으시고, 그냥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마치 어린 아이가 응석을 부릴 때 부모가 사랑한다는 이유하나만으로 아이의 응석을 모두 받아 주듯이 베드로의 이러한 모습에, 그대로 받아 주십니다.

        만약 베드로가 생각이 깊었던 사람이라면, 이것은 사실 불신의 행동일 수도 있습니다. 제자들이 처음에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이라고 했던 상황이라면, 지금 이러한 기적을 준 것이 예수님이 아닌 유령이 아닌가 의심했다는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지금 제자들 사이에 서열이 정해진 것도 아닌데, 다른 제자들 한참 배멀미하고 배에 들어 온 물 치우고, 안정을 찾아야 하는 그 시점에서 왜 분위기 파악 못하고, 이렇게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런 짓은 아이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아이들이 주변에 눈치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한번 틀어지면, 주변 상황 보지 않고 떼를 쓰고, 자기가 원하는 거 주어지기까지 계속 보채고, 울어버리는 것처럼, 아이들은 절대로 주변에 눈치 보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들보고 부모들이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계산해서 대해줍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그냥 그대로 대면합니다.

        오늘 베드로가 이렇게 황당하게 일을 벌립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런 일을 한 것이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마가복음 9:2-3을 보면 예수님께서 특별한 기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높은 산에 가셨는데, 그 때 그들 앞에서 변형이 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희게 변하여 졌고, 구약 시대의 인물들인 엘리야, 모세와 함께 이야기 하시는 장면이 나타납니다. 9:2-4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 그런데 이 놀라운 광경을 본 베드로...또 슬슬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그리고 돌발행동이 또 슬슬 작동을 합니다. 보통 사람이면, 그 영광의 모습을 보고, 주님...주님이 정말 하나님의 아들 이시군요....이렇게 모세와 엘리야 같은 사람을 시대를 초월해서 만나시다니 놀랍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베드로가 그 상황에서 뭐라고 하는지 오늘 막 9:5을 보겠습니다. “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베드로는 지금 보고 있는 이 상황에 대한 본질을 알지 못하고, 그냥, 그 장면이 연장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또 이렇게 엉뚱한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는게 중요하지, 베드로에게 잘 보이려고, 지금 여기다가 초막을 짓고, 베드로 보기 좋으라고 이렇게 한 일이 아닌데...베드로는 또 여기서 이렇게 엉뚱한 짓을 합니다.

        요한복음 13장에도 보면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시는 예수님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중동지역은 식사전에 이렇게 발을 씻는 일이 있는데, 이것은 그 그룹에서 제일 막내가 하는 일인데, 최근에 제자들 사이에서 리더십의 자리로 약간 균열이 생긴 것을 아시고, 예수님이 직접 섬김의 모범을 보여 주신 장면이 나옵니다. 13:4,5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그런데 이번에도 베드로는 그냥 못 넘어 갑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절합니다. “아니 주님이 어떻게 제 발을 씻어 주십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 발을 씻는 것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또 계속 말댓구합니다. 13:6-8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예수님의 표현도 제가 느낄 때는 조금 짜증이 썩여있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보통 뭐를 하려고 하는데, 옆에서 누가 자꾸 깐족거리면, 그냥 밀고 나갈 때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도 이런 말을 간혹 합니다. “이거 내가 너를 위해 한다..그런데 이거 못하게 하면, 너하고 나하고, 아무 사이 아니다..” 예수님이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지 않고 이렇게 하니 좀 짜증이 나지 않으셨나 생각이 듭니다.

        사실 이렇게 힘든 전도 여행중에 예수님이 발을 씻어 주시면서 대 놓고, “야 니들 요즘 너희들 너무 싸우더라....내가 이제 너희의 발을 닦아 주는 것을 보면서, 서로 섬겨라...”이렇게 말하고 섬기시면 얼마나 제자들도 부담스럽고, 예수님도 무슨 오버액션 같은 느낌이 들지 않겠습니까? 제가 교육전도사 때 청소년부 수련회를 하는데 아이들 150명의 발을 씻겨 준적이 있었습니다. 더운 여름 수련회에 한참을 뛰놓는 청소년 아이들 발을 씻어 주는데,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냄새도 많이 났고, 아이들 비누로 씻겨 주고, 닦아주고, 로션을 발라 주었는데, 허리도 아프고, 장난끼 많은 아이들이 깐족거리니까, 분위기도 안 잡히고, 힘들었습니다.

        예수님도 제자들 발 일일이 씻어 주고, 닦아 주는게 싶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물도 구하기 쉽지 않고, 이런 저런 환경이 열악했을텐데...그래도 제자들에게 섬김의 본을 보이려고 하는데, 베드로가 이걸 파악하지 못하고, 계속 깐족거립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좀 강하게 나오니 베드로가 또 특유의 오버액션을 합니다. 13: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라고 합니다. 아마 보통 사람 같으면 아 진짜 베드로는 머리 나빠, 분위기 파악 못해....어이구 저걸, 왜 저 나이 되도록 저걸 저렇게 모르지....에구 짜증나....” 라고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번에는 조금은 쌀쌀 맞은 느낌으로 대답을 하셨습니다. 13: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상의 모습을 보면서, 과연 누가 이 베드로를 예수님의 수제자로, 예수님이 이 땅에 안 계신 동안 교회의 지도자로 생각할 수 있었겠습니까? 조금 눈치 빠르고, 싹싹하고, 주변 분위기 파악하고, 같은 제자들 사이에서도 문제 안 일으키고 신뢰와 사랑을 존중 받는 사람이 수제자가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1등감은 안되고, 적어도 2-3등 감의 모습은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베드로의 하는 짓들을 보면 계속 이렇습니다. 예수님 생전에 이런 모습이 계속 반복이 됩니다. 예수님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인류의 죄를 구원하시는 역사를 이루려고 하시는데, 이를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러 오는 사람들에게 베드로가 성질을 내고, 제사장의 종의 귀를 잘라버립니다.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베드로가 하는 짓이 정말 도움이 안됩니다. 예수님 고난 받으실 때도 여종 앞에서 베드로는 평소의 항당함과 엉뚱함을 뒤로하고, 그 때는 제 정신으로 돌아갑니다. “난 예수님 모른다고, 진짜 모른다고, ” 적어도 그렇게 평소에 많이 예수님이 그 엉뚱함과 돌발행동을 받아 주었으면, 여종 앞에서는 한 번쯤은 예수님을 부인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거기서는 자기 살기 위해 정신을 차립니다. 마치 청개구리 이야기 같이 살아갑니다. 평소에는 예수님 죽으시면 안됩니다. 라고 하면서 그 이야기만 나오면 펄쩍펄쩍 뛰던 베드로였는데, 그의 행동은 도무지 일관성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베드로를 우리 예수님이 사랑해 주시고, 수제자로 삼아 주시고,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으로 리더로 사용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적인 판단으로는 아닌 사람이였지만, 주님은 베드로를 계속해서 품어 주시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최고의 사도로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그런 좌충우돌, 엉망진창, 엉뚱한 태도를 베드로의 순수함이라는 것으로 받아 주셨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모든 것이 다 엉뚱하고, 공동체에 도움을 주지 않는다는 안경을 끼고 본 것이라면, 예수님이 가지신 안경은 이 모든 것을 베드로가 순수해서 그래라는 안경으로 보면 다 용납이 되는 모습입니다.

        그 때 물위를 걷게 해달라고 할 때......신기하기도 하고 호기심이 나서, 자기도 한 번 걷고 싶었나 보지, 초막 셋을 짓고 머물자고 할 때도, 그냥 그 모습이 좋으니까 주저 앉자고 했지...나를 잡으로 온 제사장의 귀를 자른 것....베드로 성격이니까 충성심에세 한 번 그런거지 뭐...나를 부인할 때...잘못하면 죽는데, 아직 여기까지는 용기가 없었나보지...” 예수님은 모든 면을 순수한 그대로, 다 받아 주셨습니다. “베드로가 좀 눈치가 없어서 그렇지, 원래 마음은 어린 아이처럼 순수해, 그러니 그렇게 행동하지, 좀 알고 점잖 빼고, 체면 차리면 그렇게 못하지....” 그런 베드로가 진짜 나중에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진정한 제자의 삶을 살고 존경을 받고, 나중에는 예수님을 위해 믿음을 고백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을 때도 사실 그 고유의 엉뚱한 특성이 나옵니다. “나 같은 죄인은 예수님과 같이 죽을 수 없다. 나는 뒤집혀서 달리겠다라고 해서 결국 그렇게 순교를 했습니다.

        이렇게 모든 베드로의 처음과 죽음까지를 다 보신 주님은 베드로가 비록 부족하고, 엉뚱하고, 눈치 없었지만, “베드로가 순수하기에...” 그 솔직하고, 순수하고, 그냥 호기심이 생기면 넘어가지 않는 그 모습이 귀하다고 생각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우리도 사실 베드로의 이 순수한 마음을 배워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앞뒤 좌우를 재고 삽니다. 신앙생활을 해도, 이것 저것 재든지 따지고 생활을 합니다. 베드로 같은 순수함이 없습니다. 이거 이렇게 하면 망신당할 텐데....아니면 누가 뭐라고 할 텐데...그러다 보니 항상 뒷전입니다. 베드로처럼 용기내어 실수도 안합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기준에서는 합격점이지만, 예수님의 기준에는 많이 못 미칩니다. 그냥 교회안에서도 순수하게 생활하지 못하고, 노련하게만 생활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못합니다. “괜히 내가 찬양하다가 은혜 받고 울면 챙피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아멘도 안합니다. 분명히 은혜를 받았는데, 아멘이라고 외치면 왠지 우습게 보입니다.” “통성기도도 안합니다. 통성기도하면, 신들인 사람같고, 왠지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과의 교제 시간에도 내가 가진 아픔이나 기도제목을 솔직하게 나누지 않습니다. 이것을 나누면 나를 무시하든지, 내가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까봐, 나를 오픈하지 않습니다” “간혹 눈물을 흘리고, 울면서 기도하는 사람을 보면, 좀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을 꽁꽁 포장하고, 감추고, 삽니다. “내가 베드로처럼 되면 어떻게 해, 나는 좀 우아하게 생활해야해라는 마음으로 이눈치 저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니, 사람들 사이에서는 이리저리 잘 빠져 나갑니다.

        그러나 그러다보니, 진정한 마음이 결여되고, 신앙이 자라지 않습니다. 눈치 보느라 성경공부도 안하고, 눈치 보느라 봉사도 안하고, 눈치 보느라 교회에서도 자신을 감춥니다. 특별히 인도의 한인사회가 좁고, 직장과 사업이 맞물려 있다보니, 교회안에서도 힘듭니다. 사장님들은 사장님이라 품위 유지하기 위해 신앙의 눈치를 보고, 직원들은 사장님 눈치 살피느라 조심스러워합니다. 부인들도, 눈치를 봅니다. 직장 상사는 직장 상사대로, 직원들을 직원들대로 눈치를 봅니다.

        오늘 우리는 믿음 생활 만큼은 눈치를 안보고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께 기도하고 싶으면 기도하고, 찬양하고 싶으면 찬양하고, 내가 힘든 문제가 있으면 함께 나누고, 믿음이 자라기 위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눈치 보지 않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한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나님을 온전히 만나기 위한 곳이 되어야지 눈치 보면 안됩니다.

        처음 믿는다고 눈치 볼 필요도 없습니다. 오래 믿은 사람들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이 눈치 저눈치 보다가 진짜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주님의 싸인을 놓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가 순수하게 나아가야 복을 받습니다.

        내가 나중에 사업에 이용하려고, 내가 나중에 직분자 되려고, 내가 나중에 뭐가 되기 위해서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면, 절대로 신앙이 자랄 수 없습니다.

        조금 엉뚱해도, 그리고 앞 뒤가 맞지 않는 것 같지만, 어린 아이 같은 마음으로 순수하게 주님을 꼭 붙잡고 따르면, 베드로를 제자 삼아 주신 주님께서 우리도 베드로와 같이 그 평생을 하나님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았듯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서도 베드로 물위를 걷다가 결국 물에 빠집니다. 14:30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 소리 질러 이르되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 하니물에 빠져서 챙피합니다. 가만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텐데, 괜히 나서다가 깐족거리다가 망신을 당합니다.

        하지만 마 14:31을 보면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이르시되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치는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손을 잡으면 깊은 믿음의 세계를 경험합니다. “주님을 절대로 의심하면 안되는 구나, 그 분은 물위를 걷게 하실 뿐만 아니라, 지금 이 바다의 바람도 잔잔하게 하시는 분이시구나이것이 바로 체험 신앙입니다. 주님의 믿음을 내가 아는 것에서 직접 체험하면, 절대로 주님을 떠날 수 없습니다. 직접 주님을 통해 경험되어지고, 체험한 믿음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이 떠나시고 난 뒤에 항상 이것을 생각할 것입니다. 나를 물위를 걷게 하신 예수님, 나를 물에서 건져 주신 예수님...바다를 잠잠케 하신 예수님.....그 놀라운 예수님에 대한 확신을 가졌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그러기에 눈치보지 말고, 주님께로 과감하게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그 주님이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물위를 걷게 해 주시고, 물에서 건져 주시고, 풍랑을 잠잠캐 해 주실 줄 믿습니다.

        그 예수님이 우리 델리한인장로교회도 순수하게 주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주님이 맡기시는 사명을 눈치 보지 않고, 감당하면, 우리에게도 이 놀라운 기적과 체험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체험의 신앙을 함께 경험하는 하나님의 공동체, 우리 개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과 나눔

        * 주일 말씀을 함께 나누며 은혜를 나누실 수 있습니다.(가정,직장, 청소년,청년구역 모임시 )

        성 경 : 마태복음 14:22-33 / 제 목 : 눈치신앙 순수신앙

         

        1. 오늘 말씀을 듣고 기억나는 말씀이나 깨달았던 말씀을 나누어 보세요

         

        2. 베드로가 보여준 눈치없는 행동들을 한 번 이야기 해 보세요

        3. 그런 눈치없는 베드로를 예수님은 어떻게 대해 주셨나요?

         

        4. 나는 신앙적인 성장을 위하여, 눈치를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순수신앙으로 나아갑니까? 함께 나누어 보고 순수신앙을 위한 다짐을 나누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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