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4 느낌

      날짜 : 2014. 01. 23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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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24일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자 막 6:45-52

         

        미국의 티모시 헨리 그레이라는 사람이 친인척으로부터 200억원대의 유산을 상속 받았지만, 그 사실을 모른채 길에서 저체온증으로 죽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뉴스 기자는 3일만 빨리 알았어도...라는 내용으로 뉴스를 마무리했습니다. 엄청난 것을 얻을 수 있었는데, 이것을 알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엄마가 일찍 죽게 되어 아빠와 같이 살던 유치원 아이 가정이 있었습니다.

        퇴근해서 집에 와서 침대에 앉았는데, 침대속에는 빨간 양념국과 손가락만한 라면발이 이불에 퍼질러졌습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는 뒷전으로 하고 자기방에서 동화책을 읽던 아이를 붙잡아장단지며 엉덩이며 마구때렸습니다. 왜 아빠를 속상하게 해? 하며 때린것을 멈추지 않고 있을 때 아들의 울음 섞인 몇 마디가 손을 멈추게 했습니다.

        아빠가 가스렌지 불을 함부로 켜서는 안된다는 말에, 보일러 온도를 높여서 데어진 물을 컵라면에 부어서 하나는 자기가 먹고 하나는 아빠 드릴려고 식을까 봐 이불속에 넣어둔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엄마없이 자란 유치원 아이의 아빠 사랑인데, 유치원생이라 서툴지만, 이 아이의 사랑을 듣고 아빠는 아이 보다 더 울었습니다.

        어느 형제가 있었는데, 이 형제는 항상 자매에게 친절하게 대해줍니다. 그런데 그 친절을 받는 자매는 이 형제가 나를 좋아하는구나, 생각을 하고, 자신도 호감을 가지고 그 형제를 좋아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오랫동안 형제에게 자기의 마음을 보여주었는데, 이상하게도 이 형제는 더 이상의 반응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 형제는 모든 자매들에게 똑같이 친절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 형제의 주변에는 그런 자매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리 사랑을 보여 주려고 해도, 그 형제는 자신의 행동이 자매들에게 오해를 불러 일으킨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도 때로는 속상할 때가 있습니다. 무언가를 좀 알아 주었으면 하고, 아니면, 내 마음을 전달해 주고 싶었는데, 상대방이 이것을 몰라주면 이것 때문에 너무너무 애 타는 경우를 겪게 됩니다.

        어느 CF 광고가 인상이 깊었습니다. 고등학생 아들은 뭐 하나를 제대로 하는게 없습니다. 맨날 사고 뭉치고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골치 덩어리입니다. 아버지도 그 자식의 그 못난 모습이 싫어서 밥 먹을 때 말도 안합니다. 그런데 출근길에 아버지의 핸드폰을 잃어버려서 아들이 자신의 핸드폰으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서 찾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고, 벨이 울리는 아버지의 핸드폰을 찾아 보았는데, 전화를 걸고 있는 자신의 번호와 함께 기록된 것은 자신의 이름이 아니라 나의 보물이라는 이름으로 저장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들은 무뚝뚝하고 말없던 아버지기 자신을 자신의 보물로 생각한다는 그 내용을 보고 울기 시작합니다.

        오늘 성경에도 이러한 일과 비슷한 일이 기록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지만 우리가 그 사랑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 앞에는 예수님의 오병이어 사건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광야에 모였는데, 시간이 지나자 생리적인 필요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자는거야 좀 당시 사람들이 불편하게 자도 되겠지만, 먹는 거는 예나 지금이나 피할 수 없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그런데 모인 사람은 장정만 5000...적지 않은 숫자인데, 이를 위해 식사를 해결한다는 것은 엄청난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에서 보면 이 일을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기적을 보여 주시고 해결해 주시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입속에 음식을 먹으며 직접 경험한 이 놀라운 기적을 체험을 했지만, 그들은 영적으로 둔해져서 이것을 깨닫지 못했다라고 성경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도 일반인들이 아니라 제자들이 그러한 일을 겪습니다.

        마가복음 6:45,46을 보면 오제자들은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하고, 사람들에게 빵을 나누는 엄청난 일을 한 후 예수님께서 그들을 따로 떼어 놓으시는 장면을 보게 됩니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라고 했습니다. 기도를 하신 후에 먼저 보낸 제자들을 보니, 배가 바다 가운데서 큰 바람으로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보셨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6:48을 보면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힘들어하는 제자들을 향해 주님께서 그들을 도우러 가셨는데,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고 오히려 놀랍니다.

        그리고 하는 소리가 6:49에 나옵니다. “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라고 했습니다. 그냥 인식해서 유령이다라고 한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심한 풍랑이 있었고, 성경의 표현에 의하면 소리를 지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도 좀 당황하신 것 같습니다. 일단은 제자들을 안정 시키셨습니다. 6:50을 보면 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곧 제자들의 배에 올라 타셨고, 곧 바람이 그치고 평안해 졌습니다. 6:51을 보면 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을 겪고 기록된 반응이 6:52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둔하여졌다는 말은 돌처럼 굳어졌다라는 표현을 하게 되는데, 이 표현은 이미 많은 기적을 보고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에 대해서 별 생각없이 지냈다는 것을 우리에게 이야기 해 주는 표현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으로 행하고, 우리와 같이 행동하셨지만, 분명한 것은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적인 능력과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하실 수 있는 분이라는 사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늘 같이 있던 제자들이 그 사실에 대해서 특별하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좀 더 속되게 표현하면, 눈앞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만, 믿음으로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눈 앞에 풍랑이 일고 어려움이 다가 왔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 어려운 환경을 이기게 하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예수님이 계셨지만, 예수님을 자신들의 삶과 관련하여, 나를 도우실 수 있는 분이라고, 나의 모든 환경을 돌보시고, 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었음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노숙자처럼, 엄청난 유산을 상속 벋고 죽은 것과 같이, 오늘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폭풍과 같은 위험과 어려움도 분명히 이기고, 나에게 가장 필요한 평안을 주실 분이 계심에도 불구하고, 전혀 주님의 도움을 구하지 않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나에게 이미 주어진 특권인데, 내가 그것을 잘못 알고, 고집하여 모든 것을 놓치는 안타까운 모습을 이야기 하면서 그 마음이 둔하여 졌다고이야기를 합니다.

        유명 호텔에서 결혼식을 했는데, 순서를 맡고 식사를 하려는데 호텔식사가 너무 비싼 것 같아서 결혼식하는 분들 돈을 아껴주려고 식사를 안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배부르다고 안 먹고 나와서 편의점에서 라면을 사먹고 왔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호텔 식사는 이미 몇 명분을 맞춰 놓은 것이라 그날 인원이 많이 안와서 호텔에만 좋은 일을 했더고 들었습니다.

        정말 좋은 일류 호텔의 식사였는데, 제대로 알지 못하고, 둔하게 행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행동을 우리도 예수님께 자주 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엄청나게 풍성한 사랑을 이미 우리에게 공급해 주셨는데, 그 사랑을 깨닫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고, 아니 아예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치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아니야 그럴리없어 나같은 사람한테 그렇게 친절하시지도 않고, 하나님이신데, 나같은 사람한테 그렇게 많은 자비를 베푸실리 없어, 바쁘실텐데, 높으신데, 나는 나야라고 단정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믿기는 믿는데, 내 폭풍의 배안에 들어오셔서, 폭풍을 그치고 나에게 평안을 주실 수 있는 분이신데, 그 분을 단지 알기는 아는데, 우리가 그 분이 나를 위해서 뭔가를 해 주실 것에 대한 기대감 없이, 하나님이 나에게 뭔가를 이루실 것이라는 것에 대한 기대감은 없어서 그 하나님의 능력을 제대로 체험해 보지 못하고 사시는 분은 혹시 없습니까?

        이미 우리에게 풍성하게 예비되어진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데, 그것을 내가 필요때마다 공급받지 못하고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분이 이것을 위해 이미 자신의 목숨을 가치없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달려 돌아가시면서 우리에게 다 주셨는데, 가장 중요한 생명까지 주신 분이신데, 우리도 당시의 제자들처럼 마음이 둔해져서 예수님의 능력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지금 영적으로 갈급하고, 목마르고, 충분히 채워져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마치 핸드폰 배터리가 2-3% 밖에 안남은 것 같이 나의 영적 상태가 부족하다고 느끼거나 부족하다고 느끼고 계신 분은 없으십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핸드폰의 배터리는 충전을 하지 않으면 자꾸 감소되지만, 이 때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충전을 하는 것입니다. 충전기는 별거 없는 것 같지만, 그 충전기를 통해 거대한 전압과 전류를 내가 가장 최적화해서 사용하도록 하는 일은 내가 해야 하는 일입니다.

        새에게 날으라고 날개를 주었는데, 그 날개를 접고, 걸어다니면, 얼마나 둔하겠습니까?

        주님은 이미 큰 능력으로 우리에게 역사해 주셨고, 늘 우리 곁에서 항상 함께 있는데, 우리가 그 주님을 나의 일상에서 사용하지 않고, 나의 삶과 일치되게 하지 않으면 우리도 오늘 기적을 체험하고도, 주님을 곁에 모시고서도 주님의 힘을 사용하지 못하는 둔한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지금 내가 갈급하다면, 먼저 나의 힘되신 여호와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어느 선교사님이 카카오톡으로 좋은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제목은 크리스찬의 비상연락망 ...

        위험에 처했을 때는 시편 91

        외롭거나 두려울 때는 시편 23

        신앙인으로 확신이 필요할 때는 로마서 8

        죄지었을 때는 시편 51

        근심이 있을 때는 마태복음 819-34

        풀이 죽거나 따돌림을 당할 때는 로마서 831-37

        사람이 실망시킬 때는 시편 27....등등 많은 비상 연락망을 보내 주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그냥 우리의 고난과 위험을 그냥 쳐다 보시고, 아무 대안 없이 지켜 보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분명한 대안과 방향을 주시며,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분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믿음의 눈을 뜨지 않고, 둔하여 져서, 민감하지 못해서 그렇지, 우리를 위해서 얼마나 곳곳에서 그 사랑을 준비해 놓으신 줄 모릅니다.

        그 분은 오늘 제자들처럼, 폭풍에 힘들고 어려울 때는 이것저것 체면 차리지 않고,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제자들에게 다가오시려고 물위를 걸어오실 정도로 그 능력을 가지고 우리를 위해 오시는데,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오늘 제자들처럼, “유령아냐라는 식으로 예수님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학교에서 부모님 오시는 날을 너무 싫어하는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의 엄마는 참 예쁘고, 좋은데 우리 엄마는 얼굴에 큰 흉터가 있어서 학교에 오면 챙피하고, 아이들이 놀리니까 엄마만 학교에 오면 도망가는 딸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딸이 자라서 엄마의 그 상처가 어릴 때 집에난 화재때 자신을 지키려고 엄마가 자신을 감싸다가 불에 탄 상처라는 것을 안 뒤에는 엄마를 더 이상 피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우리를 위한 예수님의 상처와 흔적을 너무나 잘 알지 않습니까? 나를 위해 죄 없으신 그 분이 얼마나 많이 맞으셨습니까? 그리고 그 수 많은 채찍질에 고난을 당하시면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서 나를 위해 모든 피와 물을 흘리시면서 돌아가신 그 상처를 여러분은 이미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예수님이 여러분을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루셨는지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 하나님의 사랑을 이미 받았는데, 우리가 우리의 삶에서 그 분에 대하여 둔감하고, 그 분이 나의 삶에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원하시는데 그것을 느끼지 못하고, 그냥 나의 날만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의 하루, 여러분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르십니까? 주님이 그냥 그냥의 하루가 아니라 오늘 나의 이 하루는 너무나 중요한 날이고, 오늘 본문의 제자들처럼 우리가 정말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하는 날입니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라는 영화를 보면 19446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

        전쟁에서 3형제가 전사하고 적진에서 실종된 유일한 생존자인 막내 라이언 일병을 위한 미 행정부의 특별한 임무가 내려지는데, 단 한명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의 특수 임무를 맡은 군인들은 모두 죽습니다. 그 마지막 장면에 그 라이언이 자신의 생명을 살려준 여덟명의 전우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정말 행복하게, 즐겁게, 보람되게 살기 위한 흔적들을 보여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를 살려 주시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주신 예수님을 위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우리도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삶속에서 많은 능력과 사랑을 주시는 것을 느끼면서 그 분을 위해 우리도 그 분께 사랑을 드리고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그 사랑과 은혜가 엄청남에도 불구하고 오늘 풍랑 만난 제자처럼, 깨닫지 못하고, 둔감하게 사는 살 것인지를 우리는 한 번 스스로 점검을 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잘사냐 못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잘사냐 못사냐는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힘들고 어려울 때도 주님과 동행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사는 것이고, 내가 잘 살아도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이 축복을 주셔서 이렇게 살게 하셨고, 이렇게 축복 주신 것을 통해 내가 하나님을 위해 섬기는 삶을 통해 주님과 교제하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생각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영적으로 주님께 민감하게 살지, 아니면, 바로 앞에 주님을 모셔도, 그 분이 능력을 베풀어 주셔도, 이게 주님의 능력인지 아닌지, 구분도 못하고, 오늘 성경에 나온 제자들처럼 둔감하게 사는지를 우리는 살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인도에서 사는 날 동안 더욱 주님께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지금 힘들고 어려운 인도 생활 가운데 매일 우리의 위험에 발 벗고 도와 주시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을 우리가 꼭 만나기를 원합니다.

        그 주님을 인도 생활 가운데, 더욱 생생하게 체험하며, 기쁨으로 주님이 주신 하르 하루를 의미있고, 보람되게,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주님 우리에게 주신 사랑이 너무나 많은데 우리가 주님의 그 사랑에 집중하지 못하고, 주님의 사랑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하고, 둔감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주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경험하고, 나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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