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27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요한일서 4:7-12
2003년 2월 18일, 이 날은 세계에서 2번째로 규모가 큰 지하철 참사가 대구에서 일어난 날입니다. 192명이 사망, 151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그날 아침에 한 소녀가 겪은 이야기를 최근에 읽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한 달 중 제일 기다려지는 날이다. 왜냐하면 용돈을 받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번 주엔 게다가 수학여행도 있으니 용돈을 좀 더 주시지 않을까?’ 하지만 내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평소와 다를 바 없는 3만원.
‘아 옷도, 신발도 새로 사고 싶었는데! 맨 날 매던 가방 들고 가는 것도 챙피했는데…….’
내 속도 모르고 친구가 용돈을 넉넉히 받았다며 쇼핑을 가자고 한다. 쇼핑을 한참 즐길 때쯤 휴대전화가 울렸다. 확인해보니 엄마였다. 괜히 화가 나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
30분 후 다시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휴대전화를 꺼버리고, 배터리까지 빼버렸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보니 미안함이 밀려왔다. ‘집에 가면 엄마한테 제일 먼저 미안하다고 해야지.’
집에 도착하니 아무도 없다.
TV를 켜니, 드라마를 할 시간에 뉴스를 하고 있었다.
‘어? 내가 자주 타는 지하철이잖아?’ , 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엄마가 오지 않았다.
TV에서는 지하철 참사 소식이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불현 듯 불안감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당장 수화기를 들어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뚜............뚜뚜’ 아무리 전화를 해도 ‘
전화 연결음 밖에 들리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아까 꺼두었던 휴대전화를 들어 얼른 다시 켰다. 그 사이 문자가 다섯 통이 와있었다. 두 통은 엄마가 보낸 것이었다.
첫 번째 문자를 열었다.
“용돈 넉넉히 못 줘서 미안해. 집으로 가는 중이야. 신발하고 가방 샀어.”
휴대전화 위로 눈물이 번졌다.
잠시 후 눈물을 닦으며 미안한 마음으로 두 번째 문자를 열었다.
“미안하다. 가방이랑 신발 못 전하겠어. 돈까스도 해주려고 했는데……. 미안, 내 딸아……. 사랑한다.” 아마도 그 소녀의 어머니는 지하철 참사의 현장에서 더 이상의 문자를 보내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 것 같습니다.
그 위기의 화재 현장에서도, 자신의 생명이 불에 타 죽어가는 순간에도 아침에 투정을 부리고 간 딸을 걱정하는 것이 바로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오늘 우리는 고리도전서 13장에 이어 제2의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요한일서의 말씀을 읽으면서,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과연 어떠하셨는지를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먼저는 요한 일서 4:7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랑의 시작이 하나님이시고, 사랑이 하나님께 속했다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그냥 그리스 로마 신화의 사랑의 신이 있어서 뭐 큐피트의 화살을 쏘면 사랑이 생기고, 한 눈에 사랑에 눈이 멀어서 사람을 좋아하는 그런 사랑이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셨지만, 하나님의 뜻을 버리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 온 인간, 그리고 사람이 많아져도 그 속에 쌓인 죄악으로 결국 노예로 전락한 이스라엘을 출애굽을 통해 광야로 인도하여, 구름기둥, 불기둥으로 수 많은 기적으로 인도해 주셨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그 어리석은 백성을 위해 다시 한 번 속아주시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을 우리에게 사랑의 출처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그래 뭐 전능하신 하나님이신데, 구름기둥, 불기둥은 뭐 장난도 아니지 뭐, 하나님이신데 그까짓것 하나 못하실까?”라고 우리가 당돌하게 따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음 구절을 읽으면 조금씩 망설여지게 됩니다.
요한일서 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하나님이신데, 자신을 배반하고 속이고, 자신의 계획을 이해하지도 않고,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엉망으로 만드는 그 백성을 위해, 자신의 가장 소중하고, 가장 귀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우리를 위해, 우리와 같이 사시고, 우리를 대신해서, 아무 죄도 없는 그 분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그 사실을 알게 되면, 더 이상 우리가 하나님 앞에 당돌해 질 수 없습니다.
신은 하늘에서 품위있고, 고상하고, 전지전능함으로 계셔야 하는데, 왜 이렇게 자기의 가장 귀한 독생자까지 희생시키면서, 우리에게 다가 오셨는지를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한 영상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아버지의 선택 영상)
이 아버지는 둘 중에 하나를 선택을 했어야 했습니다. 자기와 상관없는 기차안에 있는 수 많은 승객을 살리든지, 아니면 하나 밖에 없는 자기의 가장 귀한 아들을 살리든지....
한 가정에 엄청난 일이 일어 났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표정없이 자기 하던 일을 그냥 그대로 하는 사람들, 그리고 자기 일을 돕다가 기계에 빨려 들어가 찢겨서 죽은 자신의 아들을 향해 통곡하며 울부짖는 아버지의 마음, 죽은 자신의 아이들 메고 걸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오늘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랫동안 많은 사랑을 주었음에도 아무 반응이 없고, 자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이미 받았습니다.
요한일서 4:9-10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라고 했습니다.
그 화목제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이 엄청난 사랑이 있기에 오늘 우리가 이 땅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도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 예수님의 희생에 대한 우리의 의무로 우리도 다른 사람을 서로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요한일서 4:11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랑을 이야기 할 때 좀 어울리지 않는 “이 마땅”하다라는 말이 나오는대, 이것을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깨달은 자로서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자답게 우리의 이웃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고, 이것은 선택이 아닌, 의무로 마땅히 해야 할 일, 즉 의무라고 이야기를 해 주는 것입니다. 이 말의 뜻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그 사랑을 갚아야 되는 의무가 있음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도 그 사랑을 실천하라고 우리에게 신신당부하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이것을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고, 하나님이 증거 되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마땅한 사랑을 과연 잘 감당하고 있는지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정을 정말 깊이 사랑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우리 가정은 정말 너무 힘들어....우리 가정은 소망이 없어....그런 이야기를 하고, 때로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가장 가까운 가정에서 조차 이 사랑을 제대로 보여 주지 못하고 있습니까?
가장 사랑한다고 이야기해야할 우리의 가정에서, 왜 그렇게 싸움이 그치지 않고, 의견이 다르고, 미워합니까? 가장 아껴주고, 가장 격려해 주고,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견디는 힘이 되어 주어야 할 가정에서 조차 우리가 설 자리를 잃어버린 이유가 무엇입니까?
여러분 “지금 우리 가정은 괜찮은데요?”라고 이야기 하실지 모르지만....최근 가정 통계에서 1년에 32만 9천명 100쌍이 결혼을 하고, 그 해 11만 4천 3백쌍이 이혼을 했습니다. OECD 국가중 최고 이혼 국가입니다. 자살률은 8년째 1위입니다. 인구 10만명당 33.5명으로 매년 15,566명이 자살을 합니다. 청소년 불행지수도 한국 학생들이 최고로 높습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사랑으로 덮어주고, 사랑으로 같이 견뎌주고, 사랑으로 참아주는 것인데, 우리가 이 사랑을 잃어버렸기에, 가장 사랑이 넘쳐야 할 우리의 가정에서 가장 어려움을 많이 겼습니다.
교회도 이 하나님의 사랑을 직접적으로 받아서 실천해야 할 곳인데, 교회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나님이 주신 이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을 들고 나아가는 곳이 되어야 하는 곳인데, 모두들 사랑만 해달라고 요구하는 서비스 존이 되어 버렸습니다. 밖에서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하니까, 교회에서라도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으려고 합니다. 그러다보니, 교회에서의 모습과 밖에서의 모습이 다릅니다. 교회안에서는 그래도 사랑을 해야 하나님께 복을 받으니까, 그래도 사랑의 옷을 입고 있는데, 문제는 교회 밖으로 나갈 때 이 사랑의 옷을 다 벗어 놓고 다닌다는 것입니다.
원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가 이 사랑을 밖으로 가지고 나가서 전해 주어야 하는데, 이것을 우리가 제대로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럴려면 교회가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되어야 하는데, 실상을 보면 사랑에 대해서 말은 많이 하지만, 정작 진짜 사랑은 하지 않습니다.
저도 돌아보았습니다. 한 교회를 섬기는 교회 목사로서, 저도 우리교회를 얼마나 사랑하냐?라고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교인들을 사랑하냐?라고 물어 보았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담임목사인데 이거 안 궁금하세요?
그런데 솔직한 제 대답은 아직 사랑이 많이 모자란다는 것입니다. 2-3년 있으면 다 바뀔 사람인데 뭐...., 나보다 다 잘 사는 사람들인데 뭐,....,, 시간을 많이 들여서 같이 예배드리고, 비전을 공유하고 나눠도, 뭐 하나 틀어지면 금방 옮길텐데 뭐....., 한국 간다 그러면 뒤도 안돌아보도, 좋다고 갈텐데 뭐..., “우리 교인이라고 생각했더니, 한국에 있는 교회가 진짜 교회라고 하고 여기는 잠깐 다니는 교회라고 하는데...” 라는 마음이 많이 있다보니, 저도 쉽게 마음을 깊이 주고 사랑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마음 잘 아십니다. 그리고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래서 조금씩 마음을 바꾸어 주시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이켜 주십니다. 우리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주시는지, 그리고 우리 교인들을 하나님이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면서,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들이기에, 저에게 맡기셔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에 마음이 조금씩 많이 바뀝니다. 그래서 진짜 제 마음을 표현 한 것 같은 복음성가가 있었습니다.
“나의 힘으로 당신을 사랑 할 수 없네, 나의 가진 모든 것으로 당신을 축복할 수 없지만, 주님이 주신 크고도 놀라우신 그 사랑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을 축복합니다. ”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정말 주님이 주시는 사랑으로 사랑해야, 제대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정곡으로 찌르면 가르쳐 주신 말씀이 바로 요한일서 3:18에 나옵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사랑으로 제대로 서로 사랑하라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요한 일서 4:20-21에도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고린도전서 13장 4-7에 잘 나와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 했습니다. 지금 여러분과 같이 지내는 분들을 한 분씩 떠올리면서, 이 성경말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그 사람 앞에서 행한 것이 이 말씀에 잘 적용이 되면, 일단은 사랑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례히 행하거나, 함부로 한다든지,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있었다면, 우리는 사랑을 잃어버리고 산 것입니다. 내 사랑의 온도지수를 잘 살펴야 합니다. 아마 상대방 보다는 내가 더 문제가 있다는 것을 쉽게 발견하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세상을 사는 동안 우리가 ‘좀 더 아껴주고, 배려해 주고, 더욱 돌아보는 것’을 우리 주님이 원하고 계십니다.
지난주에 말씀 드린 잠비아 여자 선교사님의 죽음, 지하철 역에서의 죽은 딸의 어머니, 기차 선로를 바꾸다가 아들을 읽은 아버지....이 모든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것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맡기산 시간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 하루하루를 귀중히 여겨서 서로 사랑하고, 우리를 위해 가장 귀한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독생자를 우리에게 주시기까지 하셨던 그 하나님의 그 사랑을 서로 실천하기를 원하십니다.
요한일서 4:12을 보면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저는 요즘 우리 교회에서 그 사랑들을 봅니다. 부모님의 장례가 난 청년을 위해 위해 급하게 모인 시간이지만, 함께 모여서 위로 예배를 드리고, 밤 늦게까지 같이 있어 준 성도들, 우리 교회의 예배를 위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기 위해 열악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연습하는 찬양대원들, 교회 예배를 위해 시설물을 설치하기 위해 일찍오고 늦게 가면서 교회를 섬기시는 분들, 적든 많든 힘들게 인도에서 고생하면서 번 돈들인데 교회를 위해서 정성껏 헌금생활을 하시는 분들, 아직은 몇 명 안되는 어린 아이들을 이지만, 이들을 위해 정성껏 준비하시는 분들, 교회 식사를 위해 집에서 밥통과 냄비들을 다 동원해서 힘 쓰시는 분들, 교회의 장비나 설치될 여러 일들을 위해 아낌없이 만들고, 설치해 주시고, 도우시는 분들...이 외에도 여러모양 여러모습으로, 교회를 섬겨 주시고 사랑해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 너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 이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이구나를 늘 깊이 경험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겠다고 하신 거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가장 귀중한 것을 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으로 우리도 우리게에 맡겨진 우르이 가정, 교우들, 직장 동료들 그리고 특별히 이 인도에서 만나는 많은 한인들과 선교사님들, 그리고 인도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요한일서에 나온대로 말과 혀로만 하지말고, 진실한 사랑으로 사랑을 서로 보여야 합니다.
올 2013년도에도 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실천하고 보이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날 사랑하신 주님의 큰 사랑을 찬양합니다. 가장 귀한 그 사랑을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잘 알고 그 사랑을 우리 교회를 통해, 우리 가정을 통해 넓혀나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성 경 : 요한일서 4:7-12 / 제 목 :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1. 오늘 말씀을 듣고 기억나는 말씀이나 깨달았던 말씀을 나누어 보세요
2. 대구 지하철 참사 문자, 아버지의 선택 영상을 보고 느낀점을 나누어 봅니다.
3.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4. 하나님의 독생자를 주신 사랑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사랑에 희생이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를 나누어 보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위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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