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0 교제

      날짜 : 2014. 01. 23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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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120일 복음을 촉진 시키는 성도의 교제 사도행전 2:42-47

         

        아프리카의 속담중에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속담을 듣고 생각해 보니, 아프리카의 경우는 짐승들도 많고, 길이 험해서 혼자 다니기는 정말 위험한 곳입니다. 그래서 서로 경계를 같이 서기도 하고, 먹고 생활하는 인프라가 힘들어서 같이 잠자리도 만들어야 되고, 음식도 구하기 어려워 사냥도 같이 해야 되고, 밤에 잘 때도 서로 보초를 서 주어야 잠을 잘 수 있기에 이 속담은 아프리카의 실정에 참 잘 맞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혼자하면 남 간섭 안 받고, 잘 될 것 같고, 돈을 벌어도 혼자서 다 차지하기 때문에 좋을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과 섞이지 않고, 혼자만 믿음 생활 잘 하면 될 것 같지만, 이상하게도 주변에서 혼자서 자기 관리를 아주 잘하면서 남과 섞이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 하는 사람들은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간혹 자신은 남들과 섞이지 않고 믿음 생활을 잘 한다고 하는데,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는 그 사람 때문에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저도 처음 교회를 다녔을 때 교회 문화가 너무 낮설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처음 교회에 갔는데, 교회에 가니까 중고등부 모임 때, 찬양을 하다가 율동을 하는데, 옆에 사람 손을 잡고 뭐를 하는데 그게 너무 어색했습니다. 잘 모르는 사람인데, 자꾸 손 잡고, 얼굴보고 노래 부르면서 웃어야 하니까 그게 고역이였습니다. 이런저런 이유가 자꾸 생겨서, 어린 마음에 교회는 그냥 예배만 드리고 그냥 와야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만 만나면 되지, 구지 사람들과 섞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중심으로 살고, 교회의 지도자가 되면서 살게 되면서 자세히 살펴보니, 우리의 신앙이 자라는 비결 가운데 하나는 좋은 신앙의 동지들과의 만남이 너무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마다 좋은 신앙의 동지들, 동역자들, 성도들을 통해서 힘을 얻고, 삶에서 기쁨을 얻고, 신앙이 더욱 깊어지고, 믿음이 자라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성경은 보니 초대 교회의 모습을 묘사해 주는데 바로 이러한 요소들이 분명하게 언급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도행전 2:42을 보면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을 묘사하면서, 우리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는 것, 그리고 기도에 힘쓰는 것은 많이 주목해서 보았지만,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라는 부분은 우리가 쉽게 지나가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떡을 뗀다라는 말 때문에 우리가 보통 주님의 몸과 살을 떼는 성찬식을 의미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여기서 가르키는 것은 성찬식 뿐만 아니라 보통 식사를 모두 포함하는 용어입니다.

        그런데 이 용어 앞에 교제하며라는 단어를 깊이 생각해야 하는데, 이 말은 코이노니아라는 말로 교제 또는 참여, 또는 기여라는 뜻이 포함된 단어인데, 단순하게 즐겁게 시간을 보내기 위한 정도가 아니라, 삶을 서로 나누고, 자신들이 함께 추구하는 것을 나눈다라는 의미의 단어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초대 교회가 성장하는 배경으로 사도의 가르침과 기도, 그리고 이 성도의 교제가 언급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하면서 우리의 교회도 이 교제가 매우 중요한 요서라는 것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제목으로 삼은 복음을 촉진시키는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중요한 지를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교회 안에서의 교제의 목적은 한 가지 이유입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의 신앙이 깊어지는 것으로, 서로 믿음이 자라도록 끌어주고, 당겨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시작할 때 고백하는 사도신경, 사도들의 신앙고백에도 성도의 교제가 언급이 되어 있습니다. 옛날 번역에는 성도가 서로 교통하며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사도들의 신앙고백에 이 내용이 포함된 것을 보면 신앙생활에 있어서 성도의 교제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81-5절을 보면 마게도냐 교회가 등장하고, 이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섬겼던 성도의 교제를 소개 하고 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심한 기근과 로마의 박해로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마게도냐 교회 역시 로마 정복자들에게 많은 천연자원을 빼앗기고 통치를 받아서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된 교회이지만, 모교회가 되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하 어려운 가운데서도 헌금을 모아서 도왔던 사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고후 8:1-4을 보면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의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힘대로 할 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라고 했습니다. 액수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의 정성과 섬김이 예루살렘 교회에 큰 힘이 되었고, 이 사실은 모든 교회들에게 큰 귀감과 용기를 주게 되었습니다.

        커피브레이크 모임에서도 빌립보서를 공부하고 있는데, 로마 감옥에 갇혀 죽을 위험에 처한 바울 사도를 위해 빌립보 교회가 에바브로디도라는 사람을 보내서 바울사도의 감옥 생활에서 어려운 것들을 싸서 공급해 줍니다. 가는 길이 험해서 이 에바브로디도는 병이나고, 이 병난 에바브로디도를 걱정하며, 빌립보 교회를 생각하면서 쓴 글이 바로 빌립보서입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사도가 유럽을 향해 발길을 돌리면서 세워진 최초의 교회이고, 이곳에서 자주 장사 루디아를 만나고, 간수를 만나서 전도하여 세운 교회입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치고, 그들이 예배를 드리고, 믿음이 자라서 감옥에 갇힌 바울 사도를 도우러 온 것을 보면서 서로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때문에 되어지는 성도의 교제,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믿음이 촉진되는 성도의 교제, 이것을 주님께서 간절히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7을 보면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빚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의 사랑의 빛을 받아서 서로 힘들고 어려워하는 곳을 비추어주면,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는 삶의 여정을 함께 가는 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항상 이것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친구에는 4가지 분류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꽃과 같은 친구인데, 꽃이 피어서 예쁠 때는 그 아름다움에 찬사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꽃이 지고 나면 돌아보는 이 하나 없듯 자기 좋을 때만 찾아오는 친구는 바로 꽃과 같은 친구입니다.

        둘째 저울과 같은 친구입니다. 저울은 무게에 따라 이쪽으로 또는 저쪽으로 기웁니다. 그와 같이 나에게 이익이 있는가 없는가를 따져 이익이 큰 쪽으로만 움직이는 친구가 바로 저울과 같은 친구입니다.

        셋째 산과 같은 친구입니다.

        산이란 온갖 새와 짐승의 안식처이며 멀리 보거나 가까이 가거나 늘 그 자리에서 반겨줍니다. 그처럼 생각만 해도 편안하고 마음 든든한 친구가 바로 산과 같은 친구입니다.

        넷째 땅과 같은 친구

        땅은 뭇 생명의 싹을 틔워주고 곡식을 길러내며 누구에게도 조건 없이 기쁜 마음으로 은혜를 베풀어 줍니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 지지해 주는 친구가 바로 땅과 같은 친구입니다.

        좋은 친구를 구별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같이 있는 시간이 부담스럽지 않고, 즐겁고 또 만나고 싶으면 좋은 친구인데, 반대로 빨리 헤어지고 싶고, 피하고 싶은 친구는 좋은 친구는 아닙니다. 성도의 교제도 그러기에 서로의 아픔도 같이 들어주고, 힘들 때는 같이 들어주고, 서로 격려해주고, 한결같은 마음으로 대해주는 모임이 되어야 하는데, 상황 따라 항상 변하는 것은 좋은 만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2:15을 보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했습니다. 잘 될 때, 권력이 있을 때, 나에게 이용가치가 있을 때만. 저울질하고 만나는 것이 아니라, 힘들고 어려울 때 많은 교제가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지고, 어렵고 힘들 때 같이 울어주고, 함께 해 주라고 주님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지난주 화요일 밤에 한국에서 문자가 왔습니다.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사역하던 선교사님의 아내가 난소 종양으로 솜을 거두고 장례를 치루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동안교회 세계선교부를 담당할 때 총무 역할로 제 일을 참 많이 도와준 분들입니다. 결혼 후에 같이 아프리카로 가서 선교를 한다고 공항을 바래다 주고, 저희 가정도 조금씩 후원을 하고, 한국에 오면 저희 집에서 쉬었다 가고, 계속 교제를 하던 후배 선교사 가정인데, 그 아내가 난소 종양으로 거의 16개월을 먹지도 못하고, 수액으로만 살다가 결국 지난주에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삽십대 후반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리고 이번에 장신대 신대원에 드디어 합격을 해서 사역자의 길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는데,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그 어떤 위로보다도 한참을 같이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도 있었지만, 가장 힘들 때 전화를 통해 교제하면서,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평소보다 많은 속 표현을 저에게 해 주었습니다. 늦은 시간이고, 거리는 먼 한국과 인도이지만, 전화로 서로 위로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전화 가운데서도 울먹이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고생한 이야기들, 즐거웠던 시간들, 병상에서의 이야기들...그리고 우리 가정과 함께 한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너무나 큰 슬픔이라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지금 당장은 어찌할 바를 모르겠지만, 성도의 교제를 연결시키고, 복음을 촉진시키는 그리스도의 안에서의 성도의 교제가 반드시 이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지금 당장은 모르지만, 조만간 뭔가를 도울 일이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의 교제를 완성하시는 분이시기에 분명히 다음 과정에서 서로에게 복음에 촉진되는 교제의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인도도 항상 어떤 일이 어떻게 있을지 모릅니다. 인도에서 사는 삶이 항상 변수가 있고, 예상치 못한 어려움들이 도사리고 있기에 우리에게 더욱 절실히 필요한 것은 복음을 촉진시키는 성도의 교제입니다. 그냥 한국 음식 나누어 먹고 운전 기사 이야기, 메이드 이야기, 그리고 교회에 누구를 흠잡는 이야기를 하는 모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서로를 돌아보고,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고, 인도 땅에서 믿음이 자라도록 서로 격려를 해 주어야 합니다. 가뜩이나 힘든데, 모일 때마다 힘이 되고, 격려가 되어야지, 짐만 지고 오고, 찝찝한 모임이 되면 안됩니다.

        기러기들이 브이(V)자를 그리며 날아가는 모습은 매우 아름답습니다. 기러기들이 브이자를 만드는 것은 공기의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인데, 이때는 그냥 날아갈 때보다 70%의 힘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맨 앞에 날아가는 기러기가 공기의 저항을 가장 많이 받기에 가장 빨리 지치기 때문에 그들은 자리를 바꾸어가며 여행을 합니다. 그 덕분에 뒤에 따라오는 기러기들은 공기의 저항을 거의 받지 않습니다. 기러기들은 또 서로 소리를 질러대며 방향을 알려주고 격려합니다. 만약 한 마리가 부상을 당해 비행을 할 수 없으면 반드시 서너 마리가 낙오자와 함께 머뭅니다. 기러기는 동료의 불행을 외면하는 법이 없습니다.

        하물며 새도 이 정도인데,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이 기러기만도 못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기러기의 비행이 소문이 나듯이 우리 교회의 성도의 삶도 건강하게 소문이 나기를 바랍니다. 가뜩이나 힘든 인도 사회와 고국에 힘이 되어야지, 더 짐이 되면 안 될 것입니다.

        기러기에게 선두가 있듯이 우리의 선두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 분이 모든 것을 우리를 대신해서 담당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분 안에 거하고 따라만 가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길로 온전히 갈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2:46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했는데 그 모임의 장소가 성전에 모이라는 것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입니다. 기도와 말씀을 배우는 곳입니다. 인도가 물론 이런 성전이 없지만, 우리가 이 본문을 적용해서 우리의 모임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기도하고, 말씀을 배우는 일에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국음식이 우리의 중심이 되어서도 안되고, 한국 드리마가 우리 모임의 중심이 되어서도 안되고, 남을 흉보는 일이 우리 모임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모이기는 모이는데 전진이 안되고 자꾸 뒷걸음쳐지는 모임이 있습니다. 어렵게 시간을 내서 모였는데, 복음에 촉진되는 이야기는 뒤로하고 자꾸 뒤걸음질 쳐지는 만남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모임입니다.

        잠언 20:19을 보면 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가뜩이나 힘든 인도의 모임에서 긍정적인 것을 하나라도 더 찾아서 밝게 살기도 쉽지 않은데, 만날 때마다 마음이 힘들어지는 이야기를 서슴없이 합니다. 확인도 되지 않은 이야기를 자기 살려고 남을 너무 쉽게 죽이면서 이야기를 합니다. 믿음 생활한지 얼마 되지도 않는 성도들에게 성도의 교제를 한다고 하면서, 복음에 촉진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말을 전합니다. 만나고 나면 믿음이 생기고, 성경을 더 보고 싶고, 예배를 드리고 싶고, 기도하고 싶어야 하는데, 만나고 나면 교회 가기 싫어지고 모임 가기 싫어지고, 봉사하기 싫어지게 만듭니다. 이런 모임은 복음을 촉진하는 모임이 아닙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2에는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했습니다.

        잠언 13:20을 보면 지혜로운 자와 동행하면 지혜를 얻고 미련한 자와 사귀면 해를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14:20을 보면 가난한 자는 이웃에게도 미움을 받게 되나 부요한 자는 친구가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22:24에도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성경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성도의 교제가 복음을 촉진시키고, 믿음이 자랄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하고, 우리의 말과 행동도 이를 위해서 사용되어져야 함을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에너지를 우리가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는 일로 사용하기에도 너무나 시간이 부족하고 할 일이 많습니다.

        우리가 구역모임도 생기고, 성경공부 모임도 생기고, 교회학교, 청소년부, 찬양대, 그리고함께 교회의 일을 하면서 모이는 일들이 많아지고, 성도들간에서 잦은 모임이 많아 집니다. 많은 모임들 가운데 많은 일들이 생기겠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그러한 일들 가운데 분명하게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읽은 사도행전에 나온 모임과 같이 복음을 촉진시키는 모임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초대교회가 함께 말씀을 배우고,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에 힘 쓴 것과 같이 우리가 모이는 모임에 분명한 이 목적을 흐트러트리면 안됩니다.

        학자 김정국은 '천금으로 밭은 사고, 만금으로 이웃을 산다'는 시를 남겼습니다. 그리고 그가 지은 향약문에 보면 이웃은 사촌이 아니라 삼촌반이란 말을 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이웃간의 담장에 구멍을 뚫어 놓게 마련인데 이를 '비린 구멍'이라고 불렀습니다.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이 아닌 별식을 말들었을 때 그것을 주고받기 위한 구멍인 것입니다. 쇠고기나 돼지고기를 비롯, 멸치까지를 포함한 각종 어육음식을 별식으로 쳤고 어육류를 비린 음식이라 했기에 비린 구멍이란 이름이 생겼다고 합니다. 따뜻하고 진한 정이 오갔던 정신적 구멍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까이에 살면서 늘 만나는 이웃이 멀리 떨어져 살면서 뜸하게 만나는 사촌보다 훨씬 더 다정하고 낫다는 말입니다. 환난을 당했을 때 친구와 이웃은 누구보다도 나의 사정을 잘 알고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며 힘과 용기를 주어 환난을 이겨내게 해줍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친구 관계, 이웃 관계, 교우 관계를 돈독하게 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고 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간혹 태풍이 지나가면 거대한 나무들이 바람에 뿌리채 뽑히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뿌리가 깊에 내려도 이렇게 뽑히는 경우가 있는데, 반면 뿌리가 깊지 않아도, 간혹 나무들끼리 서로 뿌리가 엮여 있으면 위에서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서로 견디어 주고, 붙들어 준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우리도 나 혼자만 깊게 뿌리를 내렸다고 자신감 있게 서 있기 보다는 우리의 성도들과 신앙을 통해 견고하게 엮여 있으면, 우리도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겨 낼 수 있습니다.

        제리 브리지스는 날마다 자라는 믿음이라는 책에서 영적 교제란 사회 활동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랄 수 있도록 돕는 둘 이상의 그리스도인이 갖는 관계를 말한다. 하나님은 그분을 의지하며 서로를 의지하는 존재로 우리를 창조하셨다.” 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서로 힘이 되도록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생명을 모두 주시고, 우리를 이 세상에서 살도록 붙들어 주신 것과 같이, 우리도 우리의 성도들, 내가 만나는 우리의 교우들이 복음안에서 믿음이 자라도록 영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건강한 성도의 관계를 만들도록 힘써야 합니다.

        인도 한인사회는 특별히 참 좁은 사회입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면 다 들립니다.

        어디에서 누가 말을 더해서 전하는지까지 다 들리는 사회입니다.

        목사이기에 사람들을 많이 만나기에 많은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 교인들에 대해서도 저에게 묻기도 합니다.

        참 무서운 곳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지켜 보고 있습니다.

        조금 부담이 되지만, 우리가 거기에 주눅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냥 원래 우리가 하던대로 우리의 모임이 복음에 촉진이 되는 모임이 되는 그 한 가지, 우리의 모임을 통해서 주님이 기뻐하시고, 그 모임을 통해 사람들이 위로를 얻고 치유가 되는 모임이 되기에 집중하고, 힘쓰는 모임에 목표를 두고 우리 모임을 해 나간다면 우리의 모임이 더욱 견고해 질 것입니다.

        우리 주안에서 오늘 사도행전 2장에 나온 풍성한 교제가 우리 교회에도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다시한 번 오늘 읽은 본문을 읽기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런 교회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라고 아멘으로 마치기를 바랍니다. 42-47절 시작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아멘

         

        기도) 하나님, 우리의 모임 가운데 임하셔서, 우리가 모일 때마다 복음에 촉진이 되는,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가는 모임들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모일 때 마다 초대교회의 역사처럼, 서로를 견고히 붙들어 주고, 서로를 위로해 주고, 힘이 되는 모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d교회 안 밖에서 확인이 안된 내용으로, 상대방들이 오해하게 말을 전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요즘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가 발달이 되어서 먼 곳에도 소식이 발 빠르게 전달이 됩니다. 간혹 누가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이야기 하는지 모르지만,

         

        이로써 네 믿음의 교제가 우리 가운데 있는 선을 알게 하고 그리스도께 미치도록 역사하느니라’(빌레몬서 1:6) 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교제를 통해 더욱 주님을 알아가고, 주님께 다가가는 믿음의 교제가 이 인도 땅에서, 우리 교회를 통해서 더욱 풍성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 경 : 사도행전 2:42-47 / 제 목 : 복음을 촉진시키는 성도의 교제

        1. 오늘 말씀을 듣고 기억나는 말씀이나 깨달았던 말씀을 나누어 보세요

         

        2. 복음을 촉진케하는 모임이나 만남과 그렇지 않은 모임이나 만남을 비교해 봅니다.

        3. 나는 나의 모임과 공동체를 위해 복음을 촉진케 하는 자입니까? 아니면 걱정을 끼치고

        사람들에게 짐이 되고, 부담이 되는 사람입니까? 나의 어떤 행동이 그런 결과를 가져오게 합니

        ?

        4. 나는 나의 공동체가 복음에 촉진되는 모임이 되게 하기 위해 어떻게 하기를 원합니까?

        내가 고칠 자세를 하나씩 나누고 같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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