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9일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마 1:18-25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면서 가장 기쁘고, 좋은 것은 어떠한 어려움이 찾아오고, 위기가 다가와도, “주님이 늘 나와 함께 하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시기에 감히 나와 같은 존재와 어울려 주시지 않겠다고 했지만, 하나님이신 그 분이 스스로 나와 함께 계시겠다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것도 언제 어디서나, 무엇을 하든지....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보면, 한 번도 그 약속을 어기신 적이 없으십니다. 힘든 일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욱 가까이 계셔 주셨고, 항상 지켜보아 주시고, 어느 누구보다도 제 마음을 잘 아시고 격려해 주시고, 다시 일어설 힘을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1장의 내용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것에 대해서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 꿈을 통해서 깨닫게 되는 내용입니다. 이제 곧 결혼하게 될 마리아에게 함께 잠을 자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어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태어날 그 아이가 어떤 일을 하게 될 것인지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 1:18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앞운 자기의 약혼녀에게 잠자리도 들기전에 이런 일이 일어나기에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마리아를 부정한 여인으로 보고 헤어지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뭔가를 알려 줍니다.
마 1:19,20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그리고 더욱 분명하게 그 태어날 아이의 이름까지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 1:23을 보면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라고 했습니다. 이름은 오늘날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만, 성경시대에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가졌습니다. 사람의 신원을 확인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이름은 소유한 사람의 기본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역할도 했습니다. 따라서 한 사람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 이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나타나서 보여 주신 이 이름은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이 이름은 “함께하다”라는 “임”과 우리라는 “마누”, 그리고 하나님을 나타내는 “엘”이 하나가 되어서 그대로 해석하면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름대로 되어지는 삶이 라면, 이 이름대로 주님께서는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겠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신이면, 우리가 먼저 이렇게 기원해야 합니다. “늘 나와 함께 해 달라고...” 그런데 반대로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와 함께 해 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셔서 함께 하시겠다고 했지만, 사실 하나님과 우리 인간은 함께 있기에는 어울리지 않는 관계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죄를 지고 있고, 이 죄악된 삶을 살면서 거룩하신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된다는 것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께는 엄청난 부담감이 될 수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인 인간은 좀 잘 맞지 않습니다.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있기에는 “자격미달”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미달인 것은 우리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우리의 행실이나, 마음의 생각들,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우리의 죄성은 구지 설명하지 않아도 우리 스스로가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그러한 우리가 감히 하나님과 함께 있는다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너무나도 많은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구지 설명한다면, 부모님의 사랑입니다. 부모는 자기의 자녀가 엉망이 되어도 자기 몸으로 낳은 자녀를 결코 버리지 않습니다. 못나 보이고, 잘 안되는 자녀가 왠지 부모의 마음에는 더욱 안쓰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잘났건 못났건 늘 우리에게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우리와 항상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속에는 그 어떠한 전제나 조건이나,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분께 피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항상 함께 계시겠다는 이 사실을 우리가 있지 말아야 합니다.시편 9:10을 보면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아는 자는 주를 의지하오리니 이는 주를 찾는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심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오셔서 이 땅에서 사람들을 가리지 않고 항상 만나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1:19에는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세리와 죄인들은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로 완전히 배척을 당하는 사람들입니다. 정말 사람들도 포기한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함께 계셔 주면서 그들을 인격적으로 대해 주시고, 그들에게도 공평하게 하나님의 아들을 만나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버림 받은 사람들과도 자주 만나주시는 예수님을 보고, 대적자들이 바로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은 언제나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즐거워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플 때 같이 아파해 주시고, 우리가 지칠 때에도 옆을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를 돌보시고, 우리가 괴로울 때 늘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복음성가 중에 이런 가사가 있습니다. “내가 어둠 속에서 헤맬 때에도 주님은 함께 계셔, 내가 시험 당하여 괴로울 때도 주님은 함께 계셔, 힘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주님은 함께 계셔,세상 모든 형제와 자매들에게 주님은 함께 계셔”라고 했습니다. 오늘 찬양대가 부른 찬양가사 속에서도 “괴로울 때 다가와서 친구가 되어주는” 분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가사들처럼, 주님과 함께 하는 삶이 경험되어지게 되면, 우리의 삶이 달라지게 됩니다. 이것은 머리로 예수님을 믿는 것과는 다릅니다. 내가 지식적으로 예수님을 알게 되는 것과 달리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긴밀한 체험을 통해서 주님을 만나서 동행하는 삶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늘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와 동행하고 계심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분은 그분의 약속을 지키십니다. 오늘 마이아의 남편 요셉의 꿈에서 말씀하여 준 이 이야기는 이미 오래전에 약속된 내용이였습니다. 구약성경 이사야 7:14을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이사야서와 신약성경의 오늘 요셉의 시기는 적어도 750년정도의 시간차이가 있습니다.
이사야서에서는 예루살렘이 주변으로부터 공격을 받고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은 고난당하는 백성을 방치하지 않으시고 돌보신다는 상징적인 말씀으로, 이 말씀을 주시고, 실제로 이 말씀이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응답되고, 성취되는 말씀으로 임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은, 그저 우리가 구하는 무슨 목표가 달성되거나, 무엇하나를 얻는 것과는 다릅니다. 내가 필요한 것을 얻는 정도가 아니라 나의 전 존재를 책임지고, 나의 갈 길을 예비해 주시고, 내가 만날 사람을 예비해 주시고, 내가 이 땅에서 정말 의미있게 살도록 나를 인도하실 가장 분명한 인도자가 되신다는 소리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길을 가장 복되고, 참되게 하실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분의 이름을 믿고, 그 분을 따를 때, 우리는 이미 이 모든 것을 얻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탄절이 되면 이 말씀을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사실....우리는 그러면서, 내가 과연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삶을 살았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내 말과 행동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사람의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아니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도 못하게 살고 있지 않았는지 우리는 잘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지난번 김영자 선교사님과 이곳에 계신 현회장님이라는 분과의 만남에 동석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반공포로로 거제도 수용소에서 인도를 택해서 인도에서 사신지 60년이 되셨습니다. 82세, 그리고 70세의 선교사님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첫 인사들은 먼저 돌아가신 분들의 이야기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대화 가운데 어느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내용은 그 사람을 한,두해 본 것이 아니라 몆십년, 아니 그 사람의 후손까지도 살펴본터라, 아줘 오랫동안 한 인물을 살펴보고, 두 분이 공통으로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아버지가 인생을 살면서 기회들을 참 많이 얻었는데, 그 기회들을 번번히 다 놓쳤다고 두 분은 회상을 했습니다. 그 기회를 놓친 원인은 사람을 속이고, 눈 앞에 이익에만 머무르고, 그리고 거짓말을 했다고 하시면서, 그 자손들까지 지금 고생하는 것을 보면 너무나 안타깝다고,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인도에서 70,80세를 사신 분들이 하시는 말씀속에 귀한 교훈이 있었습니다. 사람도 오래 살면서 사람에 대해서 겪을 때 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성공과 실패에 대해서 분명하게 분석을 하는구나라고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도 시간이 지나면서 한 사람의 인생을 헤아리고, 그 인생이 잘 살았는지, 헛된지, 아니면 보람되었는지를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데, 우리도 우리의 인생을 나중에 분명히 누군가가 이야기를 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답게 살았는지, 아니면 사랍답게 살지 못한 사람으로 평가 받고 싶은지, 오늘 우리의 삶과 태도가 분명히 반영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칭찬과 존경이 따르는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한 번 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을 우리가 정말 안타깝게 마무리 하지 말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에 오점을 남기는 안타까운 일들이 우리의 인생에서 사라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인생은 “그 사람 하나님을 만나고, 변화되었어...하나님을 알고 사람이 달라졌어, 그리고 정말 그 사람은 하나님이 많이 도와 주셨어” 라고 이야기 하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반대로...“그 사람 교회 다니는 사람인데, 별 볼일없어...교회 안다니는 사람만도 못해..”라고 평가를 받는다면 얼마나 속상하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이 약속의 말씀에 부끄럽지 않게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삶을 사는데,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되어야지, 하나님의 영광을 잘못 받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항상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삶으로 증거 되어져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경을 통해 주님의 뜻을 알려 주시고, 그 분의 뜻을 알려 주시고, 우리에게 교통하십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의 말씀을 정기적으로 묵상하고, 연구하고, 읽어야 합니다. 지난주 김영자 선교사님과 선교세미나를 하면서 아주 귀중한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해외 한인교회로서 선교사역을 담당해야 하는데, 선교사님을 돕고, 선교사 자녀를 돕고, 청년 선교사를 양성하는 일을 하는 것 다 좋은데 제일 중요한 것이 빠졌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말씀으로 으로 하는 선교”입니다. 선교를 함에도 우리가 말씀이 중심이 되어서 해야지, 말씀없이 사역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선교가 되어야하기 때문에 우리 교회가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말씀의 기초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교회 사역도 말씀에 기초를 두는 방향으로 계획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기초가 어떤 성경지식을 전달해 주는 것도 좋지만, 이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성경지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경을 보고, 그 가운데 말씀을 깨달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실천하는 삶의 훈련이 되도록 우리 교회가 힘써야 하겠다...라는 깨달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구역예배도 QT 모임과 연개해서 구상을 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만 모여서 성경지식을 배우는 게 아니라, 한주동안 매일 묵상한 말씀을 나누고 그 가운데 성경을 연구하고, 함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는 그림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나누는 것도 좋지만, 삶을 나누는 것은 어느 정도가 지나고 대충 나누어지면, 식상해 집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나누고, 말씀속에서 주신 은혜를 나누는 믿음의 장들이 많아지도록 힘써서,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증거로 말씀이 충만한 교회, 가정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삶으로 증거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선택을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그 선택에 따라 이득이 되기도 하고, 손해도 보는 삶을 살게 되어집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이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삶이 되어서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의 품격을 갖추기를 원합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모시고 경험하는 사람의 이야기들로 가득차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나타내기를 원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바로 이렇게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다니엘, 다윗 등의 성경의 인물들의 내용은 임마누엘의 하나님, 즉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의 삶을 통해 보여 준 삶입니다. 순간순간 하나님이 동행함을 보여준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힘들고 어려울 때 항상 하나님은 그들을 지켜 주시고, 살펴 주시고, 함께 계셨습니다,
그렇게 자상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우리가 후회할 행동으로 인해 하나님을 아프시게 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매일 매일의 삶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으로 이어져야 될 줄로 믿습니다. 올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계심을 증거하는 마일리지가 얼마나 쌓이셨습니까? 오히려 하나님 임재 마일리지가 차감되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는 엉뚱한 일로 마이너스 포인트로만 채워져 있지 않습니까?
우리가 이 성탄절에 임마누엘의 하나님, 우리와 함께 계신 하나님의 이름을 받은자로, 나와 내 주변에서 얼마나 충실하게 이 이름을 영광스럽게 했는지 돌아보시고, 이번 성탄절을 통해 더욱 하나님이 함께 계신 사람으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나의 행동들로 하나님의 함께 계심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면, 이번 성탄절에 하나님의 사랑도 좀 나누시고, 사과의 식사도 좀 하고,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나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함께 하심을 나타내기 위해 사랑의 선물도 좀 하고, 그 동안 서먹해진 사람들에게 찾아가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그저 우리의 목적을 위해서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날을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우리가 선포하는 영적인 다짐을 하는 시간으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산타도 착한 일을 한다고 이 날을 이용하는데, 정작 이 기쁜 구원의 소식을 들은 우리들이 이 날을 그냥 지나가든지, 그 의미를 잊어버린다면 얼마나 안타깝습니까? 이번 성탄절은 임마누엘의 하나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심을 우리의 삶을 통해 이웃과 나누고 주안에서 사랑으로 섬기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것을 못해도...적어도 한 가지 만이라고 하나님이 함께 계심을 실천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 나와 함께 계시는 그 하나님을 깊이 체험하고, 인도에서의 우리의 삶이 주님과 깊이 동행하는 삶으로 이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성 경 봉 독 마태복음 1:18-25 /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
1. 오늘 말씀을 듣고 기억나는 말씀이나 깨달았던 말씀을 나누어 보세요
2.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란 우리 삶에 어떤 의미인지를 나누어 보세요
3. 최근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한 일이 있었는지를 나누어 보세요. 만약 없다면 우리 주위에서 이런 일을 경험한 사례를 들어서 나누어 보시기 바랍니다.
4. 성탄절을 앞두고 나는 하나님이 함께 계신 사람으로 이웃들에게 어떻게 다가갈지를 나누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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