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5일 창세기 24장 1-4 종의 자세
인도에 와서 한인들이 모이면 심심치 않게 들리는 이야기가 ‘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한참을 이야기해야 시원한지, 속이 풀릴 때까지 이야기하시는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를 돕는 분들인데, 좀 가난하다는 이유와 우리가 그들에게 월급을 준다는 이유로 우리가 멸시도 하고, 때로는 실례를 범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이분들도 우리를 참 속상하게 합니다. 한국에서는 겪을 수 없는 특별한 관계가 인도 땅에서 경험되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돌면서 이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지내보면 정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은 함부로 막 대하는데, 그게 잘 먹힐 때가 있고, 어떤 사람은 신사적으로 해야 먹힐 때가 있습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슨 일이 생겨서 이 분들이 나가버리면 실제로 우리가 고생을 많이 합니다.
최근 인도 사람들의 북동인도 사람들에 대한 무차별 공격으로 이를 우려해서 많은 사람들이 북동인도로 돌아가게 되고, 이들이 각 영업장에서 “종”으로서 봉사하던 자리가 비게 되어 뜻하지 않은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에 메이드들을 구하기가 쉽지 않고, 디왈리를 전후해서 집에 다녀오는 사람들이 귀가하지 않아서 메이드에 대한 어려움이 많이 들려옵니다.
우리가 그들을 무시하고, 비인격적으로 다루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러기에 그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자세가 있음을 우리가 기억해야 합니다.
최근 그레이트 노이다 지역에서 한국인 음식점 사장을 총으로 위협하고 납치한 인도 사람들은 운전수와 같이 공모한 범인들로 추정을 하고 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주인이 매일 장사를 하고 은행에 들리는 상황들을 잘 알고, 그 시간에 미리 정보를 주고 사고를 일으켰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의 동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우리에게는 가장 무서운 일을 벌이기에 우리가 항상 주의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도 주인과 종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과 그의 종 엘리에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종인 엘리에셀인데 상당한 양의 분량이 소개되면서 그의 활동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엘리에셀의 이름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 15:3입니다. “나는 자식이 없사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사람 엘리에셀이니이다” 엘리에셀이라는 뜻은 “나의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창세기 15장에서는 그의 이름이 아브라함의 상속자로 언급이 되어지는데, 이것은 중동의 문화에서 자기 자녀가 없으면 주인이 신뢰하는 종을 양자로 삼아 주인의 장례를 책임지면서 모든 것을 상속하던 당시의 문화를 반영해서 이 엘리에셀이 아브라함의 상속자로 올려지던 것을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종이였지만, 주인의 모든 재산을 상속을 받는다는 것은 보통의 신뢰 관계가 아닙니다. 종으로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위에 까지 오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엘리에셀에 대한 이야기가 창세기 15장에 잠시 언급이 되고, 그리고 창세기 24장에 다시 언급이 됩니다. 이 때는 자식이 없던 아브라함에게 이스마엘과 이삭이 태어나고, 이삭이 장가를 가야 될 정도의 시간이 된 것으로보아, 상당히 많은 시간이 흘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엘리에셀은 여전히 종으로 아브라함 곁에 살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창세기 24:1,2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 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아브라함도 많이 늙었고, 그의 종 엘리에셀에게도 늙은 종이라고 불려지는 것을 볼 때, 상당히 오랫동안을 함께 지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이가 많이 들었던 아브라함이 이 엘리에셀에게 아주 중요한 과업을 부탁을 합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자기에게 약속으로 주신 이삭의 배필을 찾는 일을 이 늙은 종 엘리에셀에게 맡깁니다. 여러분 이삭은 나중에 아브라함의 상속자가 됩니다. 그리고 엘리에셀은 이 이삭만 없었으면 자기가 상속자가 되어 그 많은 아브라함의 재산을 쉽게 얻을 수 있었는데, 이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일을 맡았으니, 그가 보통 충직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이런 일은 쉽지 않은 일이였습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녀의 가장 중요한 혼인 문제를 여러분 메이드 보고 알아서 구해오라고 하면, 여러분이 쉽게 그 메이드가 구해 온 사람하고 혼인을 맺게 하겠습니까? 그리고 그 메이드가 정말 충성해서 결혼 상대자를 데리고 오던지, 아니면 자기가 나중에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계산된 사람을 데리고 오는지...이런저런 것 다 생각하면서 믿고 맡기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종이 하기에는 상당히 무리수를 많이 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을 엘리에셀이 맡았다고 한다면, 이는 주인인 아브라함과 보통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세기 24:10을 보면 “이에 종이 그 주인의 낙타 중 열 필을 끌고 떠났는데 곧 그의 주인의 모든 좋은 것을 가지고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의심의 눈으로 보면, 꽤 괜찮은 것들을 다 챙겨서 주인 멀리 떠납니다. 맘만 먹으면 정말 좋은 기회입니다. 새롭게 인생을 출발해 볼 수 있는 좋은 상황입니다.
그런데 이 엘리에셀은 주인에 대한 마음이 변함이 없습니다. 주인의 아들의 배우자를 찾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자녀의 배우자를 찾는 것과 같은 간절한 마음으로 이 과업을 성취하게 위해 흐트러지지 않고 일하는 모습을 보게 되어집니다.
창 24:12을 보면 “그가 이르되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오늘 나에게 순조롭게 만나게 하사 내 주인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주인 아브라함이 항상 하나님과 기도하며, 교제하는 것과 같이 종이지만 엘리에셀도, 주인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 자기 자신도 동일하게 역사해 주셔서, 주인의 일에 형통하게 될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순간 순간 기도하면서 주인이 맡긴 일을 하나씩 해나가고 있습니다.
주인 아브라함의 집에서 경험되어지고 배우게 된 기도의 삶이 종인 엘리에셀에게도 동일하게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가 기도가운데 배필 후보자가 되는 리브가를 만나고, 그는 또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창세기 24:26,27을 보면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이르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나의 주인에게 주의 사랑과 성실을 그치지 아니하셨사오며 여호와께서 길에서 나를 인도하사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나이다 하니라 소녀가 달려가서 이 일을 어머니 집에 알렸더니 ” 라고 합니다.
당시 이방 땅인 가나안 족속이 지내던 곳에 거주하던 아브라함은 이 이방족속의 방종한 생활을 알기에 같은 신앙을 가진 믿음의 사람과 결혼하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래서 같은 이스라엘의 혈통을 가진 배우자감을 만나기를 원했는데, 오늘 만난 이 가정은 오늘 창세기 24:27을 보면 “내 주인의 동생 집에 이르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도우신 분명한 역사라고 엘리에셀은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 가운데 만나고, 만남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엘리에셀은 일을 처리하는 과정속에서도 충실하게 자신의 직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창 24:34을 보면 “그가 이르되 나는 아브라함의 종이니이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구지 종이라고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종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종으로서 하는 일임을 분명히 합니다.
그리고 24:54을 보면 일을 마치고 난 뒤에는 더 머물거나 시간을 때우거나 자신의 수고를 보상 받기 위한 쉼을 구하지 아니하고 바로 주인인 아브라함에게 돌아가서 이 소식을 전하고 싶어합니다. “이에 그들 곧 종과 동행자들이 먹고 마시고 유숙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그가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주인에게로 돌아가게 하소서”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항상 주인을 생각하고, 주인에게 충성하는 신실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사람이 누군가에게 충성을 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특별히 오늘 같은 현대인들의 삶에서 참된 충성은 정말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진심을 다해서 자기의 주인, 상사를 섬긴다고 하는 것은 쉽지 않고, 부하 직원이나 종들이 이렇게 마음을 다해서 충성하고 싶은 리더도 사실 드문게 요즘의 현실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이렇게 아브라함과 엘리에셀이 주인과 종이지만, 가족의 아주 깊은 일까지 처리하는 이 장면을 보면서, 우리는 단순한 종이 아니라 동역자 이상의 일을 서로 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즘 같은 현대에는 이 ‘종’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지만, 같이 일하는 관계에서는 아직도 이 개념이 잘 사용이 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어집니다. 엘리에셀은 비록 종이였지만, 종으로서 얻을 최고의 대우를 받습니다. 늙도록 종으로 있었지만, 상속자가 될 뻔한 신뢰를 계속 받고 있었고, 주인의 아들의 혼례를 주선하는 중책을 맡기도 했습니다. 이 정도의 관계는 이미 ‘주인과 종’의 관계를 떠난 삶입니다. 그리고 엘리에셀은 오늘 창세기 24장에서 보여 준 것과 같이 늙은 나이에도 섭섭해하거나, 아쉬워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최선을 다해서 감당하며,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의 삶에 잘 적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는 우리가 대하는 인도 사람들입니다. 정말 화나게 하고, 살살 약오르게 하면서 우리를 가지고 노는 것 같아서 이것으로 인해 분통이 터지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이들의 기본적인 삶에 대해 잘 예우해 주어야 합니다.
이들도 인격이 있기에 이들을 나를 돕는 동역자, 나를 통해 일을 하고, 한 가정을 책임지는 가장으로, 부모들이라는 점을 우리가 기억하고 잘 돌보아 주어야 합니다.
구약성경은 당시 중동의 다른 엄격한 노예를 다루는 법과 다르게 종에 대해서 좀 더 인격적인 대우를 해 주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에는 종들에게도 안식이 주어졌고, 주인이 종을 쳐서 상하게 하면, 그를 놓아주어야 하고, 이스라엘은 종들이 6년을 지나면 자유를 돌려 받게 하였고, 그리고 희년이 되면 자유를 얻어서 그 조상의 기업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종을 인간적인 온정을 가지고 대하도록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가 대하는 기사, 메이드들, 우리를 돕는 자들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섬김을 우리가 놓치지 말고 인격적으로 잘대해 주어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 역시 그리스도안에서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사명과 충성을 잘 감당해야 합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종으로 불렀습니다. 여기에 종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주인이 되셨다는 것을 의미하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 엘리에셀과 같이 주인의 일에 즐거워하며, 기쁨으로 자신의 일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내가 주인이 되고, 내가 주역이 되려고 하면 다툼이 많습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종과 같이 낮아져서 서로 섬기면 문제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종이 가끔 주인 행세를 하면, 거기에는 100%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엘리에셀이 먼곳에서도 자신이 종임을 나타낸 것 같이, 우리가 항상 하나님께 속하여 그 분의 종됨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속해 있는 종임을 분명히 나타내야 합니다. 돈의 종, 권력의 종, 명예의 종, 체면의 종, 게임의 종, 쾌락의 종 등 나를 붙잡고 주인 삼으려는 주변 환경에 휩쓸려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피흘려 돌아가신 나를 위해 대신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는 종은 자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종은 자기 주장을 하지 않습니다. 종이 주인에게 맞서서,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만 하겠다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종에게는 오직 “예” 밖에는 없습니다. 우리가 이렇고 저렇다고 변명을 할 수 없습니다.
엘리에셀은 변명을 하려면 할 것이 많았습니다. 제가 어떻게 주인님의 아들 혼사를 준비하고, 배우자를 고릅니까?, 말이 되어야죠....저는 나이가 많습니다. 가보지도 않는데 저를그렇게 보내시면, 저보고 죽으라고 하는 말입니까?
그러나 엘리에셀은 이렇게 저렇게 토를 달지 않습니다. 그냥 순종만이 있을 뿐입니다. 교회의 일도 편안하게 부탁을 하고 싶은 사람이 있고, 뭐 하나 부탁을 하면, 온 교회가 시끄럽습니다. 조용하게 지나가듯이 일을 처리하면 좋은데 온데 간데 다 휘집고 돌아다닙니다. 그러면 교회가 항상 시끄럽습니다.
자신이 하는 한마디 말, 한번의 행동이 계속적인 여파로 교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조용하게 차분하게 진행해야 하는데, 이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엘리에셀은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잘했다고 칭찬해주는 사람도 없는데, 이 아브라함 가정의 계보를 잇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자세가 우리에게 너무나 필요합니다.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만 나타나고,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나고, 은혜와 덕이 나타나고, 사랑이 나타나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남아야 하는데, 심술궂은 종의 모습이 나타나면 곤란합니다.
넷째는 주인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 20장 9절에서 18절을 보면, 포도원 농부의 비유가 나오는데,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주고, 타국에 가서 있다가, 때가 이르러 소출을 받으러 보냈는데, 이 농부들이 자신의 것을 아까워서 주인에게 주지 않고, 돈을 받으러오는 사람들을 죽이고, 심지어 알들이면 죽이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 알들까지 죽여 버리는 아주 황당한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여기서도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면, 일을 하기는 하는데 주인의 뜻과 다르게 합니다.
인도에서 사람을 시켜서 코카 콜라를 사오라고 시키면,간혹 코카 콜라가 없어서 못 사왔다고 합니다. 그럼 옆에 펩시 콜라가 있었냐고, 물어보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럼 왜 안사 왔냐고 물르면, 코커콜라 사오라고 했지, 언제 펩시콜라 사오라고 시켰냐고, 아무런 부담감 없이 쳐다보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시킬 때 코카콜라 사오고 없으면 그 옆에 펩시 콜라 사오라는 이야기까지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인도 사람들은 시키면, 그래도 시키는대로는 아주 잘합니다. 인도가 세계의 주요 사무업무들을 하청 받는 이유가, 일단 매뉴얼을 잘 주면 일을 매뉴얼대로 잘합니다.
그런데 아마 한국 사람들은 매뉴얼 주면, 대부분 사람들은 안 읽어보고, 그냥 합니다. 하다가 문제 생기면 그 때 물어보고, 그거 다 매뉴얼에 있다고 이야기를 해도, 그런거 언제 읽어보냐고, 거꾸로 화를 냅니다.
종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종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종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살라고 가르쳐 주신 매뉴얼인 이 성경의 말씀을 잘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교회를 위해서도 잘 배워야 합니다. 교회에 정한 질서가 있고, 흐름이 있는데, 그런 흐름을 다 생각하지 않고, 나만의 방식으로 교회 생활을 하면, 교회가 질서가 무너지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다 각각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경험을 가지고, 다른 나이, 다른 직업,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모두가 서로 서로에게 종의 모습으로 섬기는 종이 되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0:44-45은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말씀인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도라는 세상에서는 우리가 종을 쓰면서 집 청소와 요리와 자동차 기사를 쓰지만, 성경에서는, 교회안에서는 우리가 서로 종노릇 하라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종으로서 상대방들을 대할 때 조심해서 대해야 합니다.
어린이들에게도 조심해서 대해야 합니다.
특별히 민감한 나이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부모들의 대화는 항상 조심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성도들을 대할 때 천사같이 대하다가 집에만 오면 그 사람, 이 사람 이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함부로 말하는 것들이 아이들이 식탁에서 다 듣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신앙에 의구심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중적인 삶이 젖어들게 되어서 아이들의 마음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 자라지 못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4:29을 보면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종들은 주인에게 토를 달지 못합니다. 그냥 무조건 순종하고 묵묵히 자기의 일을 담당합니다.
오늘 우리는 늙은 종 엘리에셀....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교회, 우리의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주인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온전한 헌신을 만들어가며,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는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를 주님의 종으로 불러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이 되셔서 우리의 길을 열어 주시고, 주님의 칭찬 받는 종이 되어 주님의 뜻을 기쁘게 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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