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11일 사도행전 16:29-34 내가 어떻게 구원을 받으리이까?
캄보이아에 처음 선교 사역을 나갔을 때 팀원들과 고민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선교사님을 처음 만나는데, 무뚝뚝한 인상이였고, 왠지 조심 스러웠습니다. 선교사님고하 잘 지내야 사역들을 잘 감당할텐데, 어찌할까를 고민하다가 팀원이 10명 정도였는데, 10명이 캄보디아의 정치,문화,교회,가정 등의 분야를 나누어서 선교사님과 틈만 나면 자기 분야에 대한 질문을 하라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아무래도 선교사님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 해 주시다보면 이야기 하는 가운데 친근감도 생기고, 교제의 폭이 넓어질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예상대로 좋은 대화들이 많이 오고 갔고, 많은 친근감이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선교사님이 나중에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아니, 여러팀을 받아보았지만, 이렇게 질문을 많이 하는 팀은 처음 보았다고, 선교사님이 아는지 모르는지 꼭 시험 보는 느낌이였다고, 그리고 어떤 때는 본부에서 비밀 감사팀이 나온 줄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우리가 선교사님과 친하게 지내려고 각자 파트를 나누어서 질문을 했다고 말씀을 드렸고, 선교사님도 그제야 웃으시면서 마음의 이야기를 해 주신 시간이 있었습니다. “이 팀은 이미 한국에서 공부하고 올 내용까지도 질문을 하기도 하고, 아주 당황스런 질문을 해서 많이 긴장이 되었다고....” 아무튼 그 질문의 힘으로 2002년까지 지금도 계속 사역을 하고 관계를 맺습니다.
외국에서 생활을 하다보면, 질문이 많아집니다. 특히 인도라는 곳도 질문할게 참 많습니다. 질문은 이해가 되지 않을 때, 모를 때 질문을 합니다. 인도는 길을 가다가 질문을 하면, 대답들을 참 잘합니다. 그런데 틀린 답을 아주 확실하게 이야기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두,세번은 다시 질문을 해야 합니다. 잠깐 한 눈 파는 사이에도 질문을 하지 않으면 은근슬쩍 넘어가는 일이 많습니다. 오토 릭샤를 탈 때도 분명히 얼마인지를 물어보고 타고, 어디까지인디 분명이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하는데, 물어보지 않으면 자기들이 가진 방식을 여과없이 이야기하고, 손해를 입힙니다.
저희 교회도 택시를 이용하는데, 지금 연결이 된 회사는 그래도 잘 도와주는데, 어느 회사는 택시를 빌린 시작점에 항상 5-10km가 더해져 있습니다. 이게 뭐냐고 안 물으면 그냥 그대로 갑니다. 그것은 택시를 빌린 지점이 집에서 집까지이냐, 아니면, 회사가 기준점이되느냐에 따라서 요금이 달라집니다. 한국 사람들은 내가 택시를 탄 지점부터 거리 계산을 하고 내린 지점까지를 생각하는데, 인도는 회사에서 집까지 오는 거리, 집에 내려주고 자기 회사라고 하는 곳까지 가는 곳을 더해서 요금을 청구합니다. 그런데 질문을 하고 조율을 하면, 조정이 돠지만, 질문을 안하면, 그대로 그냥 당합니다.
인도만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선진국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한 사무실에 새로운 직원이 오건, 같이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선임자가 있는데, 후임자나 신입 사원들이 와서 물어보지 않는 것을 절대로 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뭣 모르고 일을 진행하다가 실수를 했는데, 이미 선임자들은 다 알고 있는데, 후임자가 당하게 되고, 선임자에게 되 묻습니다. 왜 이런거 가르쳐 주지 않았냐고?, 그러면 선임자가가 당당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니가 언제 물어봤냐?”
그러고 보니, 질문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질문을 통해 정보를 얻게 되고, 그것이 나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우리의 일상의 삶을 통해서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사이토 다카시가 쓴 “질문의 힘”이라는 책은 우리의 삶에서 질문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저자는 말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질문을 잘 하는 사람이 그 대화를 이끌어 간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도 질문에 답을 잘하는 학생 보다는 이미 수업의 내용을 파악하고, 그 가운데, 모르는 것을 질문하는 그 사람이 더 유능하다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책으로 저술을 했습니다.
“질문”에 대한 단어 주제만으로도 이렇게 책이 나올 정도임을 볼 때, 세상 사람들은 질문에 대해서 많이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도 중요한 질문을 하는 한 장면을 보게 되어집니다.
오늘 읽은 본문 사도행전 16장은 바울 사도가 이제 하나님의 지시를 받고, 유럽 지역에 복을을 전파하는 역사들을 기록을 합니다. 16장 초반에는 빌립보 지역을 전도하다가 루디아를 만나는 장면도 나오고, 오늘 본문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16장 16절에는 복음을 전하다가 바울 사도가 핍박을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귀신들린 여종을 통해 점치는 장사를 하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 여종이 불쌍하여, 귀신을 쫓아내주었는데, 이렇게 귀신들려 점치던 여자 아이가 귀신이 쫓겨나서 온전해지자, 점을 칠 수 없게 되어, 이를 분하게 여겨서 바울 사도를 고소하고 옥에 가두는 사건이 납니다.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입니다.
고마워하지 않고, 오히려 옥에 가두고 심하게 때리고, 차꼬를 채워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렇지만,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가 낙심하지 않고 기도와 찬송을 부릅니다. 그런데, 그 때 갑자기 큰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이고, 매인 것이 다 벗어지는 아주 엄청난 일이 생기게 됩니다. 사도행전 16:26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라고 했습니다. 엄청난 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양면성이 있듯이 이렇게 큰 기적의 혜택자가 된 죄수는 이 때가 기회라고 모두들 도망을 쳤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 일로 어려움을 당하게 된 사람이 생겼는데, 바로 이 감옥을 지키던 간수들이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로마법에는 죄수를 지키지 못한 자는 그 형벌로 엄청난 댓가가 수반이 되었습니다. 당시 로마법은 죄수가 도망을 치면, 그를 지키던 간수가 그 죄수의 남은 형량만큼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법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시 세계를 호령하던 로마의 군인으로서 간수를 놓친 것에 대한 책임은 상당히 많은 압박으로 존재하던 것이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택할 수 있던 길은 “자살”이였습니다.
사도행전 16:27을 보면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한 음성이 들렸는데 바로 바울 사도가 아직도 감옥안에서 크게 소리를 지르면 이야기를 합니다. 행 16:28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이에 간수가 놀라서 등불을 달라하고 직접 가서 그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성경의 표현에 의하면 그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렸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행 16:29 “간수가 등불을 달라고 하며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자기에게 올 모든 불이익을 벗어날 수 있다는 안도의 한숨과 더불어 아니 도대체 어떤 사람들이기에 이렇게 쉬운 탈출을 하지 않았을까 궁금해지기 시작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돌아보니, 이들이 한 짓이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 준 것 뿐이고, 감옥에서도 난동을 부르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기도하고 찬송하면서, 그 맞은 상처에도 불구하고 더욱 평안히 거했던 모습, 그리고 감옥을 탈출할 수 있음에도 나가지 않은 삶을 보면서 마음에 도전을 받습니다. 사실 이전에 보았던 사람들과 정말 다른 사람들이 라는 것을 그 자신이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질문을 합니다. 오늘 행 16: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라고 묻습니다.
오늘 내용의 핵심 내용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미 나와 있기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뭐냐가 중요하다가 보다는 우리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이런 질문을 얼마나 자주 하냐? 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우리 삶에서 잘 풀리지 않는 일을 경험하거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 이러한 질문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많은 신앙의 인물들이나 신앙의 선배들이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났습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모세도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고, 자신을 불러서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 삼으시는 장면에서도 질문을 합니다. 모세는 자신이 이집트 왕궁에서 권력을 누리고 좋은 기회일 때는 하나님이 부르시지 아니하고, 이렇게 광야에서 아무것도 못하는 양치기 일 때 부르시니, 모세가 의아했습니다. 이제 나이도 많고, 상황도 아닌 이 시점에 자신을 세우시는 하나님의 뜻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3:11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리이까”, 그리고 3:13에도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4:1에도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4:10에도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라고 하면서 끊임없이 하나님께 질문을 하는 장면을 성경은 우리에게 보여 줍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작초기에만 이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인도하면서, 문제가 터질 때마다, 하나님께 질문을 합니다. “하나님 어쪄죠?, 하나님 이거 어떻게 하면 좋죠?” 끊임없이 하나님과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그런데, 이것이 모세에게 있어서 가장 큰 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모세는 수시로, 때마다 어려운 일을 겪을 때 마다 하나님께 질문을 하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항상 하나님으로부터 듣습니다.
질문의 힘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는 그의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문제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시험 문제는 시시할 정도로 간단히 풀린다고 했습니다” 이 말을 우리가 신앙적인 기준으로 적용해 보면, 우리의 모든 어려운 문제와 시험에 가장 최고의 답을 주실 분은 우리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 주님이 풀지 못할 일은 없으십니다. 시험지의 문제는 정보를 알면 풀리지만, 우리의 삶의 문제는 얼마나 풀기 어려운 것이 많습니까? 관계의 문제, 재물의 문제, 건강의 문제, 자녀의 문제, 가정의 문제 등 정말 풀기 힘든 일이 너무 너무 많습니다. 하지만, 이미 답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 이시기에 우리가 가장 정확한 답을 얻기 위해서는 주님께 분명하게 물어야 합니다. 답이 나올 곳에, 분명한 답을 알고 계신 주님께 물어야 하는데, 아쉽게도 우리가 잘못된 곳에 가서 답을 구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때로운 답도 구하지 못하고 오히려 이용만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발만 동동구를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한 번 돌이켜 보기를 원합니다. 나는 지금 내 문제를 누구에게 질문하고 있고, 과연 무슨 질문을 하고 있는지 돌아보기를 원합니다.
간혹 세미나나 강의 후에 질문을 하시는 분을 보면, 핵심을 질문하지 않고 빙빙돌려서 묻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은 질문인데, 자신이 얼만큼 이 문제에 대해서 알고 있는지를 자랑하면서, 질문은 방대하게 하는데, 진짜 질문은 단답형으로 물어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질문은 간단하고, 명료하고, 상대방으로부터 정보를 얻기 위함이라는 기본적인 사실을 모르고, 질문자의 입장을 잊어버린 행동을 합니다.
지금 여러분의 문제와 입장을 하나님께서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빙빙돌리지 말고,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질문을 하십시오. 여러분의 반복되는 죄라든지, 숨기고 싶은 일이 있어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기지 마십시오. 자신의 핵심적인 문제이지, 괜히 주변 사람 걸고 들어가서 핑계되지 말고, 하나님께 이야기 하십시오.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문제이고, 자신에 대한 질문인데, 괜히 남에게 걸쳐서 질문하지 마십시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에 나온 간수는 아주 간결하게, 그리고 핵심을 질문했습니다.
사도행전 16:30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이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남이 아닌 자신이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이 질문이 나오기까지, 귀신들린 여종을 고쳐 준 일, 그리고 감옥에서 보여 준 흔들림없는 삶의 자세들을 통해서, 간수의 마음속에 존경심과 이들을 통해 익히 간접적으로 들었던 하나님에 대한 질문이 나온 것입니다. 좀 더 질문을 풀면 “아니 그렇게 좋을 일을 하고도 이렇게 억울하게 고소를 당하고, 엄청 맞았음에도, 감옥에서 찬송을 부를 수 있는 힘은 무엇이고, 지진이 나서 탈출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탈출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무엇인 당신들로 하여금 그토록 평안을 주고 안정을 주었습니까? 혹시 여러분이 믿는 그 분이 그 일을 하셨다면, 나도 그 분을 믿으면 그렇게 됩니까? 저 같은 사람도 그 분을 믿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라고 질문을 한 것입니다.
오늘 이 한 질문이 많은 역사를 일으킵니다.
행 16:31을 보면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이야기를 하고, 이 말씀을 그와 그 온 가족에게 전하고, 그들이 바울과 실라를 영접하고, 그들을 치료해 주고, 다시 이 말씀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을 전해듣고 이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습니다. 세례가 무엇입니까? 세례는 신앙의 고백에 기초하여 신앙인들의 공동체에 가입이 되는 것에 대한 분명한 자기 표현인 것입니다. 내가 이 교회 공동체에 마음을 같이 하고, 이 신앙 공동체에서 따르는 하나님을 분명히 믿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죽으시고, 날아나셨다는 사실과 그의 성령께서 함께 하신다는 것을 분명히 믿는 는 고백을 하는 것이 세례입니다.
의심이 있거나, 뭔가 확신이 없으면 하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도 뭔가의 중요한 것에 마지막 절차는 그 원칙과 방향에 동의를 한다는 싸인을 하는 것입니다. 바로 동의합니다. 내가 따르겠습니다. 라고 고백하는 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이 세례를 오늘 간수는 온 가족이 다 받았다고 성경은 전해주고 있습니다.
행 16:32,33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그 밤 그 시각에 간수가 그들을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어 주고 자기와 그 온 가족이 다 세례를 받은 후“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가족도 이 집의 가장인 간수의 이야기를 듣고, 더욱 분명하게 반응을 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사건과 장소가 얼마나 어수선 합니까? 지진이 나고, 옥터가 움직였으면, 얼마나 혼란이 많았겠습니까? 그리고 실제로 도망한 사람이 없었겠습니까? 지진만 나도 엄청난 혼란의 시기인데, 이 혼란의 시기....이 모든 것을 뀌뚫는 가운데 드린 간수의 질문 한 마다...“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라는 이 한 마디의 질문이 이 간수 뿐만 아니라 그의 모든 가족을 진정한 구원으로 이끄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와 같이 우리의 삶에서 질문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내 형편과 환경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를 가장 잘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질문에 분명한 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지금 고민하는 문제, 해결받지 못한 문제, 어려운 문제에 대해서 하나님은 분명한 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도 이것을 우리에게 원하십니다.
사람을 만나면 좀 답답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 하면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입니다.
반응이 없습니다. 좋은지 나쁜지 도저히 속을 알 수 없습니다.
반면에 좋은지, 나쁜지를 수시로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질문을 해야 그들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얼마나 알고 있는지, 소화하고 있는지..
그런데 그렇지 않고 질문이 없으면 속을 모릅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질문을 하거나 마주 대하면, 자신의 부족함이 드러날까봐 이것을 싫어하고 기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하나님께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우리교회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쓰임을 받으려면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 우리 교회가 이 한인들을 섬기고, 하나님께로 인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 우리교회의 선교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하나님 우리 교회의 부족한 점은 이런 것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등 우리는 많은 질문들을 하나님께 묻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최근에도 하나님께 많은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역시 변함없이 많은 답들을 해 주셨습니다. 그 답들을 들으니 불안했던 마음들이 평안해졌고, 우리 교회에 대해 하나님이 하실 일이 더욱 크게 기대가 되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물었던 질문에 대해 아주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고, 전혀 생각도 못한 방법으로 일을 풀어가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보면서 마음에 큰 기쁨이 있었습니다.
행 16:34을 보면 이들이 단순히 대답을 얻고 믿겠다고 말한 것으로 꿑나지 않은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그들을 데리고 자기 집에 올라가서 음식을 차려 주고 그와 온 집안이 하나님을 믿으므로 크게 기뻐하니라 ”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 그와 온 집안이 다 하나님을 믿었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가정에서 나온 질문이 이 가정에게 진정한 답이 되었고, 해결의 실마리가 된 것을 우리는 보게 되어집니다.
오늘 우리도 지금 상황에서 하나님께 무슨 질문을 하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떠한 하나님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의 형편을 가장 정확히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한 답변을 우리에게 주실 줄 믿습니다. 지금 사업, 공부, 사역, 관계 등...하나님께 한 번 물어보십시오..그리고 하나님이 알려 주신 방법대로 순종하십시오.
간혹 하나님께 질문만 하고 답을 안 듣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도 참 아쉽습니다.
분명한 답을 주시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서 때로는 은밀하게 아무도 모르는 은밀한 부분 일지라도, 하나님은 분명한 답으로 여러분에게 말씀 하실 줄 믿습니다.
그 질문을 통해 우리도 우리의 삶속에서 지속적으로 주님께 묻고, 답하고 주님과 친밀한 교제가 이 인도에서 더욱 깊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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