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14 이삭의 축복 2

      날짜 : 2014. 01. 23  글쓴이 : 관리자

      조회수 : 938
      추천 : 0

      목록
      • 20121014일 이삭의 축복 2 창세기 26:12-25우리는 지난주에 성경에서 놓치기 쉬운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이삭에 대해 살펴보기 시작했습니다. 이삭이 먼저는 심한 흉년이 들기 시작한 하나님의 지시한 그랄 땅에 가서 힘들고 어렵지만 하나님의 정하신 자기의 자리를 지킨 이야기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이 거하게 하신 곳을 묵묵히 지킨 자에게 하나님은 반드시 복을 주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이방 땅에서 농사도 지어보지 않은 사람인 이삭에게 농사의 축복과 목축의 축복으로 하나님이 응답해 주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은 지난 내용에 이어서 12절의 내용부터 시작하고자 합니다. 12-14절을 보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 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어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성경의 내용이 여기까지면 참 좋은데 문제는 거기가 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14절 하반부에는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방 사람이 들어와서 이렇게 부자가 되니까 원래 있던 사람들이 배가 아픕니다. 사람들은 남 잘 되는거 보면 기분이 좋아야 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불편하고, 속이 상합니다. 일이 잘 안되다고 할 때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다가도, 잘된다고 하면, 그 때부터 색안경을 끼고 봅니다. 조금만 벗어나도, 배가 불러서 저렇다니,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사람이 변했어... 그러면서 사람을 가만 놔두지 않습니다.

        시기심으로 눈이 멀게 되니 사람이 이성을 잃어버립니다. 더 나쁜 말로 하면 미쳐 버립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렇게 성공한 이삭을 보고 미쳐버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26:15을 보면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물이 귀한 시기인데, 이렇게 우물을 막아 버려서 물 근원을 없애 버리는 것은 이성을 잃은 행동입니다. 그리고 이유도 없이 이삭에게 자신들의 땅을 떠날 것을 요구합니다. 26:15을 보면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라고 합니다. 정말 밑도 끝도 없이 한 번 이성을 잃으면 보이는게 없는 것 같습니다. 사실 우물 물 근원을 막는 일은 전쟁을 하자고 하는 소리와도 같은 의미입니다. 싸우자고 달려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남의 축복을 배 아파하는 사람은 별짓을 다합니다. 그런고 이들의 태도는 계속해서 반복이 됩니다.

        26:20을 보면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라고 합니다. 우물을 메우더니, 쫒아내고, 쫏아낸 곳에서 다시 우물을 파서 물이 나오니 이번에는 자기들이 망쳐 놓은 우물임에도 다시 물이 나오니 자신의 것이라고 하는 뻔뻔함을 가집니다.

        26:21에 보면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라고 합니다. 죄를 지어도 상습적으로 죄를 짓고, 반복하여 괴롭게 합니다. 이방 사람..이삭...정말 외국에서 이리치이고 저리치이고, 텃새를 부리는 현지인들에게 톡톡히 당합니다.

        한 번도 아니고, 계속해서 삶의 터전을 빼앗고, 정당함이 아닌 모습으로 정당하고 성실하게 사는 사람을 어렵게 하는 모습속에서,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을 위협하는 대적들의 특색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정당하게 싸우는 것이면 그래도 좋겠는데, 권력을 가지고, 기득권을 가지고, 모사를 꾸며서, 사람을 완전히 바보로 만드는 일들......, 사람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고, 모든 것을 다 빼앗고, 나중에는 아님 말구라고 태연하게 던져버리는 우리들의 모습들....이로인해 멀쩡한 한 사람의 인생이 파괴되고, 무너져도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이 세상의 삶의 모습...그리고 그 가운데 사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절실하게 가르쳐 줍니다.

        정당한 방법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해를 입히는 사람들....직장에서 부당하게 일을 하는 모습들, 승진과 자기 이익을 위해 동료애고 뭐고 그냥 다 짓밣아버리는 삶, 학교에서 성적을 올리기 위해 컨닝을 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고, 성적을 올리기 위해 친구를 깔아 뭉게고 무시하는 삶, 좋은 성적을 받기 위해서는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것이 좋은 것이라고 오해하는 모습들, 공동체 안에서도 인정받기 위해 상대방을 무시하고, 비겁하고, 유치하게 무시하는 모습들....

        오늘 어쩌면 우리의 모습속에서 이삭을 핍박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숨어있지는 않습니까? 남이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지 않고, 가장 필요한 우물물을 흙으로 막아 버리는 것처럼, 남의 앞길을 막거나, 남을 온전히 걸어가지 못하도록 흔들어 놓는 삶을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도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 방법을 써서, 여기까지 걸어오면서 고개를 들수 없는 치사하고 야비한 방법으로 살아오고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하나님은 이러한 인생들에게 이삭의 삶을 보여 주심으로 그들의 잘못을 시인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배우도록 인도해 주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그들의 반복적인 방해와 대적에도 불구하고, 이삭이 그 때마다 대처했던 방법들은 오히려 그 대적들을 부끄럽게 합니다. 로마서 12:21에 나온대로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에게 이삭의 삶을 통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이제 이렇게 어처구니 없이 반응한 대적들에 대하는 이삭의 반응들을 보고자 합니다.

        26:17 “이삭이 그 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거류하며우물 물을 흙으로 막고, 자기가 사과해야 할 때 사과도 하지 않으면서, 이삭을 오히려 떠나라고 했던 그들에게 이삭이 그 어떤 반항과 다툼으로 나아가지 않고, 그냥 그 자리를 떠납니다.

        아예 상대가 되지도 않을 사람들이기에 내가 거기에서 에너지를 쏟아 붙고, 다투는데 에너지를 쓰지 않고, 이 땅으로 인도해 주신 하나님을 쫓아서 그냥 다시 새로운 땅으로 이동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또 우물을 팠더니 물이 나왔고, 거기에서 또 다툼이 일어나자 이번에도 또 그냥 떠납니다. 26:20-21을 보면 그랄 목자들이 이삭의 목자와 다투어 이르되 이 물은 우리의 것이라 하매 이삭이 그 다툼으로 말미암아 그 우물 이름을 에섹이라 하였으며, 또 다른 우물을 팠더니 그들이 또 다투므로..” 라고 했습니다. “라는 말이 반복 되는 것으로 볼 때, 이 말속에 이삭이 또다시 다툼의 자리를 피하고 양보하는 반복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다툼이 있을 때마다 이삭은 자신이 손해를 보지만, 항상 양보하고, 나옵니다. 좀 한 성질 하시는 분은 이 본문을 보면 화가 나실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을 지켜야지, 왜 비겁하게 피하냐고....왜 그렇게 우유부단 하냐고.....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나오는 이삭은 그냥 자기의 기득권을 양보합니다.

        흉년이라 먹고 살기 힘든 이방 사람들 역시, 지금 이것이 아주 갈급한 것입니다.

        어쩌면 이미 많은 것을 가진 자로서의 여유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삭의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방 사람들도 먹고 살기 힘든데.. 하나님의 백성이 그것을 움켜진다는 것이 그 당시의 상황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우물들을 포기해도, 지금까지 자신을 인도하신 하나님은 또 다른 것으로 예비해 주실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삭의 삶 가운데 경험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고백은 하나님은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아버지 아브라함으로부터 여호와 이레의 사건을 깊이 경험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라고 했을 때 그것을 묵묵히 따르고, 믿음대로 자신을 잡아 제물로 바치려고 하자 그 믿음을 인정하시고, 이삭 자신 대신에 숫양을 준비해 주셔서 제사를 드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곳이 일어난 지역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하시는 즉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다라고 가르쳐 주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분명히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삭은 지금 이 난처한 일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 또 새로운 것을 준비해 주시리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대적들이 내 앞길을 막아도, 그 길을 피해서 걸어가지만, 하나님은 또 다른 것, 더 새로운 것으로 예비해 주신다는 분명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중요한 영적 진리를 우리가 적용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생활의 현장에서도 간혹 믿는 자이기에 손해를 보거나 양보를 해야 하는 일이 있습니다. 내가 믿지 않는 자면 술도 마시고, 직장 상사한테 뇌물도 많이 주고,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다 할 수 있는데, 그리스도인이라 어쩔수 없이 정도를 걸어야 하고, 이렇게 걷다보면, 항상 뒤처지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도에서 한국 물자가 귀한데, 그러다보니 물건 욕심이 많아집니다. 다 양보해도 이것은 절대로 양보가 안 됩니다. 교회 안에서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겠다고 했는데, 관계로 부딪치면 절대로 양보하지 못하는 무엇이 있습니까? 우리를 위히 죽기까지 복종하신 주님은 생각이 안 납니까?

        절대로 지면 안됩니까? 지면 잠이 안옵니까? 꼭 이기고, 내 권리를 주장하고, 내가 이겨야 잠이 옵니까? 이삭과 같이 자기주장 한 번 제대로 못하면 바보 같습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은 긴 내용을 통해 이삭의 태도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툼의 자리를 피하고, 양보하고,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가야할 길을 아무것도 없고 망막한 길이지만, 하나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길에 복을 주십니다.

        남들이 볼 때는 안 되는 길인데, 이상하게 이삭이 가는 길마다 일이 잘 됩니다.

        사람들에게는 늘 지고, 바보처럼 보일지라도, 그것이 하나님 다투거나 분쟁하지 말고, 양보하고, 사랑하고 섬기라는 그 말씀을 지키고 실천한 이삭에게 하나님의 복으로 응답하십니다.

        우물을 팔 때마다 다투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물을 팔 때마다 물이 나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삭이 우물을 팔 때마다 우물에서 물이 나온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다투던 사람들, 황당하게 이삭의 우물 물을 빼앗으려던 사람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들도 억지를 쓰고, 항당하게 이삭을 힘들게 했지만, 이삭에 자신들에게 화를 내거나, 분노하거나, 다툼을 일으키지 않고, 그때마다 떠났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역사가 계속 이삭과 함께 있어서 가는 곳 마다, 파는 곳마다 물을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보면서, 이들의 마음이 돌아섭니다. 26:26을 보면 아비멜렉이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 장관 비골과 더불어 그랄에서부터 이삭에게로 온지라 이삭을 괴롭히던 자들이 이삭을 찾습니다. 이삭도 바보가 아닌 이상, 그들의 그 무모한 행동에 대한 피해자로 감정은 남아 있습니다. 그들이 잘 되는 자신을 미워하는 그 감정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렇게 뜻밖에 자신을 찾아 온 그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26:27 “이삭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26:28을 보면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라고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이 말은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믿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는 중요한 방법과 원칙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도, 우리에게 못된짓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살피시고, 도우시고, 축복해 주시는 그 놀라운 역사를 보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분명히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이삭을 통해서 얻고,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태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대사로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우리의 삶을 통해 보여 주어야 합니다.

        믿는자로서 양보하고, 희생하고 손해를 보는 것 같은데, 더 행복해하고, 하나님께서 그런자를 복주시는 것을 보면서 이웃의 사람들이 마음을 열려서 하나님을 믿고 싶어 하는 그러한 삶이 되도록 우리의 삶이 빛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이러한 삶을 우리에게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믿는자가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찌질하고, 마음도 좁고, 속도 좁고, 사람들하고 더 관계도 못하고,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게 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없습니다.

        요즘에 전염병이 도는 것 같습니다. 얼마전만해도 우리가 하는 사역들 하나하나가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데, 일을 하다보니, 우리의 인격이 드러나고, 성격이 나타나서, 서로 한,두번 부딪치니까, 부딪치기 싫어서 모임에 나오지 않습니다. 안나오니까 뭐 하나님이 징계도 주지 않으시고 편합니다. 그래서 착각을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평안이 아닌가하고.....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한 마음들이 교회 전체를 멍들게 합니다. 우리는 모이기를 힘쓰고, 어떻게해서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마음을 주님께 모우고, 주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해야 합니다. 그 외에 것들은 좀 내가 불편해도, 내가 좀 망가지는 자리에 있어도, 오늘 이삭과 같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는 사람들이 참되게 믿는 모습을 원하지 이것 저것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지키라는 자리를 지키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과의 교제의 자리는 없어지게 됩니다.

        유럽교회는 부활절에 성탄절에 교회 문을 닫고 모두들 휴가를 갑니다.

        교인들이 주일날 아이들 축구클럽 따라 다니느라고 교회 마치자마자 아이들 축구장 따라 다닌느라고 교회가 썰렁합니다. 그러니 교회가 모슬렘들한테 팔려서 교회 십자가를 잘라내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에서 모슬렘들이 알라를 부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안에서도 이것 싫고 저거 싫고, 내가 절대 양보할 수 없다고, 이삭의 우물물에 흙으로 메우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물에 흙을 메우면 이삭도 물을 못 먹지만, 자기도 물을 못 먹습니다. 자기 자식도 물을 못 먹습니다.

        우리가 교회안에서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고, 주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말씀 안에서 살아가는 것외에는 우리도 서로 양보하고, 져주기 훈련을 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2:3에도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이삭의 마음만 잘 가지면, 우리가 하나님의 큰 축복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자꾸 초점이 흐려지니까, 자꾸 초점을 흐려지게 하는 사람들에 휘둘려서 진짜 양보하지 말아야 하는 주님은 양보하는 모습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제가 여러번 이야기 했습니다. 새로 오신 분들에게 등록카드 주고, 꼭 부담 느끼게 하지 말고, 그 에너지를 차라리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데 사용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새로 오신 분에게 등록카드 적게 하는 것보다, 어떻게 교회에서 편안하게 느낄지 같이 식사도 하고, 말도 걸고, 안내도 하고, 집에 어떻게 차를 가지고 왔는지, 다음주에 오면 차가 어떻게 되는지.....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요한14:12에는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이삭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이방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돌아 왔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험악하고, 경쟁적이고, 항상 속고 속이고, 대접 받으려고 하고, 자기 자랑만 하려고 하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서로 사랑함으로 세상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한 영적인 공동체를 경험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과 분명 다른 그 무엇인가를 교회에서 경험하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다툼의 현장에서 다투지 아니하고, 양보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다툼의 자리를 피하였던 이삭을 기쁘게 보셨습니다. 마태복음 5:5에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정말 이삭을 통해 이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 되어집니다.

        오늘 본문 26:29을 보십시오. 정말 이삭을 대적하던 자들이 꼬리를 내립니다.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네가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라고합니다.

        이 정도 되면 이삭도 한 소리 해도 되는데, 정말 쿨합니다. 과거에 그렇게 자기 힘들게 했던 사람들이지만,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베풀고 쿨하게 대접을 합니다.

        26:30 “이삭이 그들을 위하여 잔치를 베풀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이것이 참 멋진 그리스도인입니다. 쪼잔하지 않습니다. 뒤끝이 없습니다.

        참되신 하나님을 믿고 알기에, 그 분을 경험한 사람의 여유입니다.

        이 여유있는 믿음의 삶을 오늘 우리의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나타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의 삶의 현장은 항상 우리를 넘어뜨리고, 시기하는 일들이 많습니다.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적이 되고, 언제 이익을 위해 우리를 궁지에 몰아 넣을지 모르는 살벌한 삶의 현장에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삶의 현장에 주님이 개입해 주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삭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맡보며, 세상 사람들이 놀라고, 하나님의 역사를 거꾸로 증거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도록 주님께서 지켜 주시옵소서.

    신고하기

    • 추천 목록

    • 댓글(0)

    • 글을 작성시 등록하신
      비밀번호를 입력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