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 100년전

      날짜 : 2014. 01. 23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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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92일 사도행전 151-12, 건강하게 소통하는 하나님의 교회

         

        최근들어 소통의 중요성이 많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 가장 안타까운 사례로 보고 되는 것이 도요타 자동차 몰락 이야기입니다. 토요타 자동차에는 다 짠 걸레도 다시 짜라는 운영철학이 있었습니다. 어떻게보면 절약정신이 깔려 있었는데, 사실은 당시 미국의 GM 자동차를 따라 잡기 위해 하청업체와 근로자들을 쥐어짜내면서 성장을 했는데, 이것이 효과가 생기니까 계속적인 희생만을 강조하였습니다. 이를 통해서 일어난 현상이 있어는데, 한쪽부서에서 조금만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주면 효과적으로 차를 만들 수 있었는데, 그 좋은 아이디어를 윗사람이나 관련부서에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조금만 변화를 시키려고 해도 수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야 하는데,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데 괜히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결국 구성원들의 소통의 퇴화되고, 발전없이 지내다시 결국 도요타 자동차는 자동차 명가를 몰락을 맞이하게 됩니다.

        말콤 글레이드의 아웃 라이어라는 책에서는 199785일의 대한항공 801편의 괌 추락 사고를 긴 장을 할애하면서 이야기를 해 줍니다. 이 사고로 탑승객 254명 중에 225명 사망합니다. 이 사고에 대한 조사는 여러 가지가 보고가 되었지만, 일반에게 잘 공개되지 않은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국인들의 의사소통 구조라는 것입니다. 기장과 부기장은 직급에 분명한 차이가 있지만, 분명한 자기 역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인들은 윗사람들에게 뭔 말을 잘 못한다는 것입니다. 부기장으로서 기장이 보지 못하는 날씨 정보나, 기계 결함등에 대해서 이야기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문화는 이것이 불가능하고, 거의 윗사람에 맞추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대한항공은 2000년 델타항공으로부터 데이비드 그린버그를 비행담당자로 영입을 합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한 것이 항공사 승무원들의 영어실력을 점검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 조정사의 업무의 기본으로 영어 사용을 규정화했습니다. 영어의 경우는 존칭에 대한 부분을 신경쓸 필요가 없습니다. 미국 영화를 보면 아이들이 엄마 아버지한테도 그냥 You , fathersla 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아빠도 you고 엄마도 you입니다. 부기장이 괜히 선배 기장에게 잘 보이려고 이런저런 신경 쓰지 않고 업무에 충실하도록 대화구조를 바꿔줌으로 소통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2002년 월드컵 대표팀을 이끌고 4강 신화를 만들었던 네덜란드의 히딩크 감독은 한국팀의 가장 고질적인 단점이 의사소통이였다고 합니다. 거의 10년차가 나는 운동선수들간에 보이지 않는 규율과 기합과 선배에 대한 후배들의 주눅이 들었있던 점을 착안하여 선수들 방배치를 최연소와 최고령, 안친한 사람끼리 방배치를 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경기장에서는 선배일지라도 그냥 이름을 불러서 경기장 안에서도 잘 소통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군대에서 축구를 했었습니다. 그 당시 이등병, 일병 중에 잘 하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항상 공을 몰고 가다가 골을 넣기전에 골을 넣지 않고 볼을 이리저리 돌립니다. 그리고 소통합니다. “ 김병장님 오십시오. 제가 공 보내겠습니다...” 이게 한국의 문화입니다.

        교회도 때때로 소통의 문제가 많이 일어납니다. 아니요, 솔직히 말하면 소통이 대부분의 문제입니다. 소통이 안되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초대교회에서 이 소통의 문제를 잘 해결하는 좋은 사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오늘 행 15을 보통 제목을 붙이면 예루살렘 회의라고 이름을 붙입니다. 회의가 일어나게 된 배경은 사실 분쟁이 시발점이 되었습니다. 15:1,2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라고 했습니다. 당시 초기 교회에 복음의 역사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전통과 더불어 혼란스러운 부분들이 생겨났습니다. 오늘 나온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구약시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아야 된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할례라는 것이 남자 아이가 태어난지 팔일만에 생식기 끝의 껍질을 끊어내는 의식인데, 이 의식은 이스라엘 사람들에는 이스라엘 자손의 영적,육적인 계속성을 상징하는 행위였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도 이 할례를 행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이 복음이 이제 이스라엘을 넘어서 모든 이방인에게도 가는 입장에서 타국이나, 타지의 사람들까지 이 할례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은 무리라는 주장이 부딪쳤습니다. 난지 팔일만에 받는 것이야 별로 큰 어려움은 아니였지만, 성인이 되어 예수님을 믿었는데, 이 의식을 했느냐, 안했느냐에 따라 구원이 정해진다고 하니 뭔가 불합리한 요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이 문제가 시작이 되었던 안디옥 교회에서 바울과 바나바만이 해결할 문제가 아니였습니다. 이 문제는 초대교회와 이방지역으로 가는 복음의 역사를 위해 반드시 모든 교회가 분명하게 정리해야 할 중요한 문제라 이 일을 위해 예루살렘에서 정식으로 모여 회의를 하게 되었습니다. 15:2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와 몇 사람이 예루살렘에 가서 회의를 합니다. 그리고 행 15:6,7을 보면 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감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와 장로들이 이 일을 의논하러 모여 많은 변론이 있은 후에...” 라고 합니다. 문제에 대한 분명한 의사소통을 합니다. 누가 발언을 해서 결과가 어떻게 되었고, 그 배경을 이야기하자면 깁니다. 하지만, 이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들은 바울과 바나바가 보고한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뜻에 집중했고, 그로인해 형식적인 할례보다 더 중요한 문제를 결의합니다. 그 결의 내용은 예루살렘 회의 당시 예루살렘교회 감독이였던 야고보가 동의하고,, 이 말을 들은 회의 참석자들이 이것에 재청하여 결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의안을 이방인 신자들에게 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해 예루살렘 회의에서 바울과 바나바만 가지 않도록 사람을 정해서 같이 파송을 합니다.

        그 결의문은 이렇습니다. 사도행전 15:24-29입니다.

        들은즉 우리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이 우리의 지시도 없이 나가서 말로 너희를 괴롭게 하고 마음을 혼란하게 한다 하기로 사람을 택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는 자인 우리가 사랑하는 바나바와 바울과 함께 너희에게 보내기를 만장일치로 결정하였노라 그리하여 유다와 실라를 보내니 그들도 이 일을 말로 전하리라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는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옳은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평안함을 원하노라 하였더라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이에 스스로 삼가면 잘되리라

        자칫 하면 엄청난 파장을 가져올 문제가 회의를 통해서 잘 정리되고, 이것이 기초가 되어 교회가 안정을 찾는 것을 보게 됩니다. 소통을 통한 문제 해결의 좋은 모습을 보여 줍니다.

        오늘은 한국에 선교사님들이 들어오시고, 신학교가 생기고, 그 졸업자들이 목회를 시작하고, 어느 정도 조직과 규모가 되어서 처음으로 총회를 한지 100년이 되는 주일입니다.

        목사 96(선교사 44명 한국인 목사 52)과 장로 125명 도합 221명이 191291일 평양에 있는 장로회신학교 강당에서 개회예배를 드리고 첫 총회로 모인 날이였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특별히 첫 총회를 할 때 우리 나라는 인도장로교회의 신조를 빌려다가 우리의 총회의 기초를 구성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인도에 선교를 한다고 했지만, 100년 총회 때 우리가 오히려 인도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이 회의에 초대 총회장에 원두우 선교사(언더우드)를 선출하였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총회를 조직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중국 산동성으로 박태로 사병순 김영훈 목사를 파송키로 결의 하였다는 것입니다. 1911년이 어느 해입니까? 1910년 한일합방이 되고, 나라가 좌절과 고통에 쌓여 있을 때 아니였습니까? 그런데, 교회도 어렵고 힘들었던 그 순간에 우리 한국교회는 받은 은혜를 감사해서, 당시에 아시아에 가장 영향력을 준 공자의 고향인 산동성에 가서 복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자고 선교사를 보냅니다. 이 세사람은 당시에도 꽤 크게 목회를 하고 있던 분들인데, 총회의 결정을 순종하고, 우리나라의 첫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나아가게 됩니다. 이들이 나간 소식은 세계선교계에 아주 참신한 뉴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많은 선교사들이 그 당시의 조선에 집중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히려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으로 오고, 많은 지원들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총회는 당시 매년마다 되어지는 회의를 통해 많은 결의들을 했는데, 1925년에는 아주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한석진, 당시 부총회장님으로서 중요한 선교사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 선교 사업을 성공시키며, 가장 효과적으로 하려면 선교사가 한 나라에 오래 머물러있지 말고, 교회의 기초가 서면 그 사업을 원주민에게 맡기고, 다른 곳에 가서 새로 일을 시작하는 것이 좋습니다. 선교사들이 한 곳에 오랫동안 체류하면서 자기가 세운 교회며, 학교라는 생각으로 우월감을 가지고 영도권을 행사하면, 참된 복음의 정신이 위배됩니다. 우리 나라에서 수고 많이 해서 머리가 희게 되었으니 감사하지만, 이제 우리 나라에서 할 일은 다했으니 돌아가십시오.. ”

        스승이자 정신적인 리더였던 마펫 선교사가 일어나서 항의하려고 하자, “마 목사님, 당신도 속히 이 나라를 떠나지 않으면 금후에는 유해무익한 존재가 됩니다. 마 목사님은 나와 함께 일한 친구요 동지로서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실제로 교회를 지을 때에도 평양 장대현교회 건축시 '우리 예배당이니 선교사의 도움을 받지 말고 우리 힘으로 짓도록 하자. 하다가 안 되면 그때 도움을 청할 일이지 처음부터 선교사의 도움을 받을 요량이면 될 일도 안된다'라고 단호하게 교인들을 지도했습니다.

        한석진 목사님은 그 순간 많은 지탄을 받았을지 모르지만, 한국교회를 살리는 중요한 발언을 했고, 실제로 그 이후로 한국교회는 자립을 위해 얼마나 애를 쎴는지 모릅니다. 재정이 없을 때 날연보라는 제도도 있었습니다. 돈이 없어서 헌금을 못하니, 매주 일정한 시간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을 하겠다고 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선배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를 선교사님들도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한석진 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충격에 빠진 마펫 선교사님, 저희 장신대의 설립자입니다. 지금 장신대가 있는 광나루 역 주변의 많은 학교 부지, 그 주변에 전망과, 산과 강과 어울러지고, 워키힐 호텔등과 맞물리면서 엄청난 땅 값인데...이 모든 것을 마펫 선교사님이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정말 한석진 목사님의 말대로 우리의 자립 정신을 기억하시고, 구입당시에 가격으로 다시 팔아 주셨습니다. 당시 가격과 지금 가격하고 얼마나 차이가 나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잘 헤아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일방적으로 주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안타까운 것은 한국이 1988년 이 후 해외 여행자유화가 되면서 선교현장들을 많이 방문해서 많은 지원을 했는데, 특히 북한 선교를 위해, 중국 선교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고, 중국 조선족 선교를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이 자립 정신을 주지 못하고, 지원 선교만 하다보니, 지금은 조선족 지역의 교회들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받는데만 익숙하지, 스스로 일어서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희 교회도 지난 826일에 첫 제직회가 열렸습니다.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공식적인 의사소통 구조 기관을 가지게 되었고, 이를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교회의 문제를 논의할 기관을 가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이제 혼자서 하던 일을 조직적으로 일을 나누고, 우리 교회의 방향과 미래도 같이 상의할 교회 조직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한번의 회의 였지만, 중요한 내용들이 참 많았습니다. 교회를 잘 섬기기 위해 그 동안 잠재되었던 집사님들의 열정이 느껴졌습니다.

        예산, 결산을 하면서 저희가 불문율처럼 정한게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뭐 다른 시설 투자나 다른 어떤 이슈가 아니라, 우리 교회가 적어도 예산의 20%는 선교와 전도를 위해서 써야 한다는 결의가 있었습니다. 담임목사 입에서 나와야 될 이야기가 성도님들에게서 나와서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직접 예산을 짜고 기획을 하는데, 20% 만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만들려면, 우리가 그 동안 누렸던 것을 줄여야 하는 부담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이곳에서 선교사님을 대접하고, 사역들을 돕고, 그 자녀들을 섬기고, 이곳에서 인도인들을 직,간접으로 돕는 일에 모두가 마음을 같이하여 동참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저런 교회를 위한 아이디어와 대안들이 논의되면서 교회가 이제 막 탈바꿈을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누군가 이야기를 했듯이 1-10까지 더하면 55밖에 안되지만, 1에서 10까지 곱하면 3,628,800입니다. 처음에 12를 곱하고, 여기에 3을 곱하면 처음에는 별로였는데, 뒤로 갈수록 그 숫자가 어마어마해 졌습니다.

        저희가 교회를 개척하고, 지금까지는 한 분 두분이 더해져서 사역을 했지만, 이제 조직을 가지고, 우리들의 은사들이 합쳐서서, 이 땅에서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더하기가 아닌 곱하기가 되면 하나님의 엄청난 일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이를 위해 한 달란트로 곱해 질 것인지, 아니면, 510배의 달란트를 남겨서 곱해질 것인지는 우리 각자가 주님의 부름에 맞게 최선을 다할 때 결정되어질 것입니다.

        이제 우리 교회에서 이번주에는 저희 교단 북인도 현지선교사회 창립총회가 개최됩니다. 100년전 인도 장로교회 신조를 빌려다가 시작한 총회가 이제 인도로 선교사를 보내, 지난 30년은 남인도 중심으로 사역을 했지만, 이제 북인도를 중심으로 사역하자고, 첫 창립 총회를 하고, 저희 교회가 그 일을 섬기는 역사적인 시작을 합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지난 1년이 넘는 시간 우리의 교회에는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아직은 초보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냥 모이는 군중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모이고, 이제 구성된 제직회와 교회 조직들을 통해 우리의 은사들을 사용할 때 더욱 많은 일을 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오늘 성경의 예루살렘 총회의 귀중한 결의가 이방선교의 흐름을 주도했듯이, 100년전 한국에서 시작된 첫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의 시작에서 첫 총회에 선교사를 파송하고, 우리의 자립을 위해 선교사님들에게 우리의 소리를 분명히 전했던 지난 100년의 총회 역사처럼...오늘 이곳 인도에서 시작하는 우리 교회도 우리 교회 후손들과 이 지역사회에 분명하게 하나님의 소리를 나타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이제 우리가 구성된 조직들이 더욱 교회를 건강하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1에서 10까지 열심히 곱하기를 하고 최선을 다하는데, 한 두사람이 0을 곱하거나, 마이너스를 곱하면, 그 전체가 확 바뀝니다.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성격이 다른 것도 인정하지만, 하나되게 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건강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공동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예루살렘교회의 회의는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 때문에 회의가 만들어지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 바나바의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가 보고가 되고, 베드로와 예루삼렘의 감독이였던 야고보가 중요한 발언들을 함으로 하나님의 원하시는 방향으로 교회 공동체가 움직여졌습니다.

        그냥 뭉게거나, 대충하지 않고, 바울과 바나바가 보내지고, 회의의 결과로 또 사람을 보내어 보내지며, 최대한 존중하고 예우를 갖추게 됩니다. 이를 통해 초대교회가 건강한 소통을 하고, 하나님의 건강한 공동체로 세워짐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오늘 예루살렘 회의의 귀중한 모습속에 기억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회의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결정된 것은 바울과 바나바에게서 보여진 하나님의 열정입니다. 그들이 하는 보고와 이야기를 듣고, 하나님의 역사와 열정을 보면서 결정을 했습니다. 생소한 이방인 문제에 대해서 부담스러워 했고, 이기적인 관점들이 정리가 되었지만, 하나님이 보여주신 일들, 그리고 하나님이 하신 일들을 나누면서 모두는 한마음과 한뜻으로 마음이 정해지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우리의 예배, 매주 마다 되어지는 하나님의 사역과 열정들을 보면서 하나님이 운행에 온전히 따라가는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한 개인의 삶과 ,직장과 가정에서 쓰여지는 하나님의 역사가 다 모여져서 우리 교회의 에너지가 됩니다. 여러분의 삶의 현장이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더 많이 소통하고, 나누고, 기도하고, 함께 하나님을 위해 나아간다면, 지난 100년을 지켜 주신 하나님의 총회의 역사처럼, 우리교회와 우리 가정의 신앙의 역사도 주님이 강건하게 붙들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교회안에 소통의 문제를 성경을 통해 알려 주심에 감사를 드립니다. 열정있고 헌신하는 소수가 움직이는 교회가 아니라 우리 교회 모두가 골고루 소통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나누는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를 원합니다. 100년전에 이 인도땅 장로교회의 신조를 기초로 세운 한국 총회가 이제 100주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거꾸로 그 인도 땅에 와 있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 있는 줄로 압니다. 100년의 역사적 전통속에 세워졌던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계속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전해지게 하시고, 우리 가정의 신앙의 역사로 날로 주님 안에서 새로워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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