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창세기 50:22-26,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돌보심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의 아들 마이클 레이건이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의 아버지가 나에게 주신 선물들은 많습니다. 말도 주셨고, 차도 주셨고 그 외의 많은 것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지만 내가 그분에게 받은 가장 귀하고 좋은 선물은 아버지가 알려주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버지는 그분이 체험한 하나님의 사랑,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해서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선물 중에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을 저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저는 아버지에게서 받은 최고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똑같이 제 자녀들에게도 전해 주기를 원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엄숙한 자리에서 들려진 전직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자리이지만, 사람들은 고인을 기리면서, 고인이 가장 귀하게 생각하는 자녀의 입을 통해 전해진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습니다.
오늘 성경에도 한 사람의 장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창세기의 위대한 마침을 한 사람의 장례이야기로 마무리를 합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기에 이렇게 성경에 중요한 부분에 소개되었는지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열한번째 아들로서 아버지 야곱의 많은 사랑을 받지만, 형들의 시기로 노예로 팔리고, 노예로 지내면서도 열심히 일을 잘해서 주인의 신뢰를 얻습니다. 하지만, 주인의 부인의 음탕한 욕심 때문에 오해를 받아 감옥에 같힙니다. 하지만, 감옥에서도 성실하게 일을 해서 감옥의 제반 사무를 맡습니다. 이 감옥에서 요셉은 애굽의 주요 관리들을 만나고, 어느 날 그들의 꿈을 해몽하는 일을 하다가, 후에 애굽 왕에게 불려가 애굽의 미래를 살리는 총리의 일을 하는 큰 일꾼이 되어집니다. 거기가 끝이 아니라 자기를 판 형제들과 가족들이 그 힘든 흉년의 시간에도 애굽에서 잘 살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줌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명맥을 유지하도록 큰 역할을 합니다.
이제 그 요셉의 거의 마지막 시간이 다가 온 것 같습니다. 성경은 그의 마지막 장면을 소개 해 줌으로서 우리에게 알리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소개해 줍니다.
첫째는 요셉의 축복을 소개해 줍니다.
요셉의 그 험난한 인생이, 하나님의 축복으로 바뀌어서 노년에 복을 받았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50:22을 보면 “요셉이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함께 애굽에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라고 이야기를 해 줍니다. 노년이 되어 가장 무서운 것이 쓸쓸한 것이 혼자사는 것인데, 요셉은 그 자녀들과 풍요롭게 산다라고 성경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고, 형들에게 팔리면서, 그 누구보다도 가족의 소중함을 깊이 알고 있던 요셉은 지금 이렇게 가족들과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 것입니다. 특별히 가족들에게 얹쳐사는 것이 아니라 요셉 때문에 그 가족들 모두가 흉년을 피해서 먹고 사는데 걱정 없는 곳에서 살아가기에 얼마나 요셉의 가정이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귀를 받겠습니까? 요셉이 노년에 살게 된 곳은 ‘고센’이라는 지역입니다. 요셉이 총리로 제직하는 시절, 애굽에 큰 공을 세워서 애굽 사람들이 요셉에게 고마워서 요셉뿐만 아니라 요셉의 가족들 모두가 살 수 있도록 배려해서 주어진 땅입니다.
외국에서 사는 우리가 이 부분을 잘 이해하듯이 외국 사람들이 남의 나라 땅에서 마음 놓고 살 수 있는 곳이라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우리가 인도에서 뭘 빼앗아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잘 살게 해 주고, 인도 산업을 발전 시키겠다고 해도 이 땅의 비자 문제가 까다로운데, 당시 요셉의 가족 뿐만 아니라 모든 친인척들은 요셉으로 말미암이 외국인 전용구역에서 아무 걱정 없이 살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고센이라는 지역은 나일강 동쪽지역인데, 이 지역은 홍수로 자주 물이 넘치는 바람에 사막 지역임에도 농사가 잘 되는 땅입니다. 뭐를 심어도 잘 나는 땅이라, 목축업을 주로 하는 이스라엘 민족이 살기에는 너무나도 좋은 땅입니다. 이 축복된 땅에서 늘 가족과 친지들의 사랑을 받으며, 존경을 받으며 살아가는 요셉의 노년은 분명하게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둘째로 요셉은 그 노년의 기간이 “백십세”라고 합니다.
창세기 50:22,23을 보면 “거주하여 백십 세를 살며, 에브라임의 자손 삼대를 보았으며 므낫세의 아들 마길의 아들들도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보통 인간의 수명보다도 아주 많이 길었습니다. 당시의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이렇게 오래사는 축복을 받는 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제일 연세가 오래되신 방지일 목사님..현재 101세이십니다. 한국 교회에서 최고 어른이십니다. 방지일 목사님의 삶의 역사는 한국교회의 역사입니다. 지난 한국 교회의 모든 역사를 다 경험하셨습니다. 목사님이 90세에 인터넷을 배우셔서, 지금도 후배 목회자들이 메일을 보내면 다 답을 해 주십니다. 총회에서도 선교사들을 위해 강의를 부탁을 드리면, 아직도 두시간씩 서서 강의를 하십니다. 저희 교회를 창립 할 때도 목사님께 글을 부탁드렸는데, 지금도 가장 힘이 되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 어장으로 나갈 때마다 ”주님 미리 인 치신 그를 만나게 해 주세요“ 항상 이렇게 기도하고 나가세요 그런분을 만나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십니다. 나는 심부름 꾼임을 꼭 아시고 기도하시면서 사역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글을 보내 주셨습니다. 교인이 한명도 없을 때 방지일 목사님의 글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준비된 일꾼을 보내신다는 말씀.....101년....그런데 요셉은 110세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주었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은 그 어느 업적보다도, 요셉의 축복 가운데 자녀의 축복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므낫세와 에브라임입니다. 요셉이 첫 아들의 이름인 므낫세의 뜻은 “잊게 만드는”이라는 뜻입니다. 요셉은 가족으로부터의 오랫동안의 상처와 시련을 다 잊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므낫세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에브라임은 하나님이 그 힘든 시련의 시간 가운데서도 풍성한 은혜를 주셨다는 것을 고백하며 “열매가 풍성한” 이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자녀들이 결혼을 해서 자녀를 낳고, 그 손주의 자식까지 보는 3대의 축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창세기 50:23을 보면 “요셉의 슬하에서 양육되었더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성경학자는 요셉의 가족이 어려움을 겪어서 요셉이 기른 것이 아니라, 늘 가까이에서 자녀들을 보면서 지냈다고 해석을 합니다. 할아버지들이 손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자기 자녀들은 기르느라고 책임이 있어서 그런지 그걸 잘 모르겠는데, 이 손주들은 그저 사랑만 주면 되어서 그런지 할아버지들은 더욱 특별히 이 손주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총회에서 교계 어른 되시는 여러 목사님들을 모시고, 같이 수행하면 교계의 지도자 답지 않게 늘 손주들 이야기를 하십니다. 손주들이 할아버지 골탕 먹이는 이야기를 여유 있는 웃음으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축복을 받은 요셉이 이제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게 됩니다.
사람이 자기의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지난주에 말씀 드린대로 대부분은 이 죽음을 피하려고 합니다. 지난 런던올림픽 한일전의 기쁜 소식이 있던 날에도 그날 한국에서 런던까지 가서 응원하던 이승규라는 30세 밖에 안된 연예인이 오토바이 사고로 경기장에서 돌아오다가 죽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공포를 쉽게 물리치기는 어렵고, 평소에 우리가 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정말 어렵습니다. 그 누구도 이 죽음을 기쁘게 맞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이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긴 인생 동안을 하나님이 철저하게 지켜 주셨고, 돌보아 주셨고, 지금까지 이루어진 축복들을 보면서, 더 이상 욕심도 없고, 감사만 넘쳤습니다.
그래서 그가 아주 중요한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그 고백을 우리도 놓치지 말고 잘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50:24을 보면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그 모든 혈육들에게 분명하고 자신 있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신 것과 앞으로 돌보실 것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야기를 합니다. 소위 말하면 ‘가훈 발표’를 합니다. 정말 요셉의 삶의 역사에서 ‘하나님의 돌보심’을 빼면 그의 삶의 역사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의 힘들고 어려운 삶의 역사이지만, 하나님의 돌보심이 있었기에 그의 인생은 역전이 되기도 하고, 이렇게 노년까지 이어지는 축복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인생의 고비마다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돌보심은 그의 인생 전체에 깊숙이 뿌리박은 큰 힘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죽음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땅에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이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라는 소망의 시간으로 살기에 죽음에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그 힘든 요셉의 인생 가운데 큰 힘이 되고 소망이 되었던 자신의 자녀와 일가친척들에게도 동일하게 권면을 합니다. 나를 돌아보신 하나님이 여러분도 돌아보시기를 원한다는 권면을 합니다. 110세까지 살았던 그의 인생 전체를 종합해서 던져준 아주 중요한 메시지였습니다.
일본 CCC에서 사역을 하시는 안경달 목사님....원래는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셨습니다. 교장 선생님쯤 되면 그래도 지역의 유지이고, 편안히 살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100세 되신 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을 하셨다고 합니다. 내가 100세를 살아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 어느것도 다 헛되지만, 우리 하나님을 위해서 섬기고 봉사하는 것이 제일 최고다. 그러니 너는 그 가운데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선교를 담당해라, 그것도 이 대한민국이 제일 미워하는 일본으로 가라“고 유언을 하셨다고 합니다. 당시 60세였던 안경달 교장 선생님은 100세되신 어머님의 유언을 곰곰이 생각하고, 일본 선교를 위해 좀 어울리지 않지만, 일본 대학생선교회 간사로 지원하고 사역을 하고 목회를 해서 지금 일본 ccc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2003년에 배었을 때 6시간 거리를 직접 운전을 해서 나오셨고, 청바지에 티를 입고, 사시는 것은 단기선교팀이 남겨진 멸치와 고추장을 찍어먹으면서 어렵게 사셨지만, 매년 몇천명의 한국 단기팀과 일본의 교회를 연결하여 네트워크를 하는 중요한 사역을 하십니다. 언어도 거침없이 일본어를 구사하시고, 나이가 많으시다보니, 대학생선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일본 목회자들이 존경하는 목사니이 되셔서 일을 하셨습니다.
100세되신 어머님의 유언대로 사는 당시 69세의 할아버지 목사님....그의 인생 노년의 삶은 제게 많은 도전이 되었습니다.
요셉의 이 유언 “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하라”는 이 메시지를 듣는 후손에게는 분명히 하나님의 복이, 그들의 삶의 역사에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후손들은 그들의 삶의 역사에 하나님의 돌보심의 역사가 없습니다. 똑같은 100년을 살아도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은 사람과 아닌 사람의 인생은 분명히 다릅니다.
최근에 통일교 교주인 문선명이라는 사람이 응급실에 실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도 나이가 적지는 않습니다. 92세인데, 그런데 오래 살아도 사람들이 그를 축복되게 기억하지 않습니다. 지금 자녀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재산권 다툼들이 일어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지 못하고 살았던 인생은 정말 많은 것을 잃고 삽니다.
우리 예수님의 삶은 100세까지는 못 사셨습니다. 고작 33세입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그 분의 일을 시작한 것은 3년 정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의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짧은 생애였지만, 분명한 사명과 목적을 위해서 이 땅에서의 삶을 사셨습니다. 짦은 삶이셨지만,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시는 삶으로 너무나 고귀한 삶을 사셨습니다. 그 분의 십자가의 고난과 고통들이 예수님의 인생 가운데 많았지만, 예수님의 삶을 통해 우리가 나음을 입었고, 새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셉보다도 더 구체적으로 주님을 만나고, 교제하고, 그분을 위해 살도록 우리는 은혜의 약속을 얻었습니다.
요셉은 죽음을 앞두고, 잃지 않은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의 조상때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이였습니다. 창세기 50:24을 보면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비록 이 땅이 지금은 먹고 살기 괜찮은 땅이였을지 모르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땅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그것에 대한 소망을 둡니다. 그리고 요셉은 자신의 유골도 나중에 그 약속된 땅에 옮겨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소망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창세기 50:25을 보면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 라고 했습니다. 죽음 뒤에도 하나님이 이루실 것에 대환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가족묘에 대한 사모함이 있습니다. 가족들이 죽어서 함께 있기를 원했고,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해 주신 축복의 땅에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대로 여호수아 24:32을 보면 요셉의 유골이 약속된 땅에 묻히게 됩니다. “또 이스라엘자손이 애굽에서 가져 온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이곳은 야곱이 백 크시타를 주고 세겜의 아버지 하몰의 자손들에게서 산 밭이라 그것이 요셉 자손의 기업이 되었더라 ”라고 기록이 됩니다. 요셉의 후손들이 요셉의 유언을 이루었던 것을 봅니다.
죽음 뒤에도 축복이 이어집니다. 자신이 죽기전에 선포한대로 그 후손들이 복을 받아 하나님의 약속을 받는 것이 이어집니다. 자신을 돌보셨던 하나님의 돌보심이 시대가 지나도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역사를 점검해 보기를 원합니다. 최근 한일문제가 역사 문제로 다시 불거지고 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 지우고 싶은 역사인데, 역사는 지울 수 없기에 그 후손들인 우리들에게도 반복이 됩니다.
오늘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 앞에 당당하도록, 우리의 자손들에게 부끄러움이 없도록 우리가 하루하루의 역사를 잘 만들어가기를 원합니다. 인도에서의 신앙생활이 예배도 잘 못드리고 영적으로 나약해지는, 또 그것이 당연시 되어지는 잘못된 역사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신앙의 역사를 이곳에서 쓰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인도에서의 신앙의 역사는 교회에 예배 출석하고, 간혹 특별한 예배나 교육이 있으면 나오는 것이였다면, 그만큼밖에 신앙의 역사가 만들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예배의 뜨거운 감격도 있고, 모이는데에도 최선을 다해서 주님안에서 잘 모이고,, 하나님의 돌보심을 깊이 경험하고 그 역사를 만들어 가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대로 평일에는 나에게 주신 직장과 학교와 가정에서 최선을 다하고, 주일에는 정말 주님으로부터 힘을 얻고, 하나님을 만나고, 믿은 자들이 만나서 교제하고 같이 기도도 하고, 영적으로 힘을 얻는 역사가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각 가정이 정말 기도의 분량을 늘려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넘어야 될 산을 기도로 넘지 못하면, 주저 앉습니다. 주님을 향해서 더욱 많은 역사들을 만들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처음에 다녔던 대학은 인천에 있는 전문대학교였습니다. 처음에는 성적이 좋지 않아서 이 학교 밖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를 졸업할 때 학교 교정을 걸으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대학 입학 첫 교실에서 만난 선교단체의 한 여학생의 칠판 글씨, 언젠가 이야기를 했죠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위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라는 글로 시작된 첫 대학생활, 수업 후에 빈교실에서 리더에게 배웠던 성경에 대한 가르침, 매일 아침 다른 학생들보다 먼저와서 빈교실에서 같이 QT를 하면서 은혜를 나누던 곳, 매주 화요일마다 찬양으로 전도하기 위해 캠퍼스 정문에서 부르던 찬양의 시간들, 그리고 캠퍼스 전도를 위해 메인광장에서 사영리 전도를 하던 교정의 곳곳의 추억들, 그리고 복음이 들어가지 않았던 체육학부를 위해 매일 빈교실을 다니면서 기도했던 시간들...그리고 캠퍼스 주위에서 자취하던 형제들의 집에서 모여서 성경공부를 하고 기도회를 하고, 곳곳에 벽보를 붙이고 전도집회를 알렸던 그 장소들, 학교에서 가장 가까운 제물포 역에서 늘 전도하던 그 발자취들.....그리고 그렇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힘쓰던 곳곳의 장소들을 거닐면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덤으로 전도를 많이 하기 위해, 크리스찬이기에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공부못한다는 소리가 더 이상 듣기 싫어서 컨닝안하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랬더니 공부와 관련이 없는 줄 았았는데, 공부에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되는 축복도 받았습니다.
그러면서 신학 공부를 위한 새로운 진로를 예비해 주신 하나님의 돌보심을 보면서 모든 것이 하나하나 감사했습니다.
처음에는 전문대라, 그것도 지방이라 별 기대를 안했던 그곳에 제가 하나님을 만나는 축복의 대학이 되었고, 제 인생을 바꾸어 주는 축복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았지만,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과 함께 살게 되니 정말 하나님의 역사의 현장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또 하나의 삶의 현장이 있습니다. 인도라는 이곳....그것도 이곳에서 교회를 개척하여 시작하는 역사들....저는 앞으로 어떨지 모르지만, 이곳에서 함께 신앙 생활을 하는 우리 교우들과 더불어 이전에 있었던 그 어떤 시간보다도 귀한 하나님의 역사가 이어질 줄로 믿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지금까지 보여준 역사가 힘든 곳일수록 더 많이 역사해 주셨습니다. 군대에서도 그랬고, 어느 곳이든지 힘든 곳일수록 더욱 하나님의 역사가 컸습니다. 그러기에 이 힘든 인도가 하나님의 역사가 가장 크게 나타나는 장소가 될 줄로 믿습니다.
이 역사에 여러분들과 같이 하나님의 역사를 만들어 가기를 원합니다. 그냥 돈 만 벌다가 취미생활 좀 하다가, 시간만 보내고 가는 그런 역사 말고, 하나님이 이 땅에 보낸 분명한 목적을 알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우리의 삶을 움직이시는 역사를 모두가 경험하고 가시기를 바랍니다. 학생들도 마찬 가지입니다. 인도에서 공부했던 나의 삶의 역사가 있었기에 보다 나은 미래가,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더 깊이 느꼈다고 고백하는 역사가 있어지기를 바랍니다. 주부들도 그냥 이전까지의 소위 마담들의 “주부 역사”에 휩쓸려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보여 주신 그 역사를 써 내려가시기를 바랍니다.
창세기 50:26에 보면 정말 요셉은 죽습니다. “요셉이 백십 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아마도 요셉의 장례가 성대하게 치루어졌겠지만, 성경은 그의 죽음으로 창세기라는 엄청난 역사의 이야기를 마칩니다. 단 한줄이지만, 가장 처음의 성경의 장을 마무리하는 인생으로 축복을 받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이야기가 아름답게 마무리 되도록 하나님의 돌보심을 경험하는 인생이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없이 산.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삶으로 우리 인생이 마무리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분명한 축복도 받고,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귀감과 축복의 통로가 되었음을 증거하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 축복의 역사가 오늘 하루 하루를 통해 풍성하게 열매맺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의 역사를 주장하여 주사, 하나님을 통해 얻는 복을 온전히 얻도록 지켜 주시고, 하나님이 붙들어 주시는 삶으로 우리의 역사, 교회의 역사를 따라가도록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요셉의 삶에 역사해 주셨던 하나님의 풀어 주심을 우리가 깊이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신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