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0일 롬 10:9-13 하나님을 시인하는 삶
제가 목사가 되고 처음 세례를 준 곳은 티벳이였습니다.
청년선교사가 사역하는 티벳의 수도 라싸였는데, 세례를 주고 성찬식을 하는 것을 티벳에 도착해서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티벳도 라마불교가 대부분이라 기독교 선교가 제한적입니다. 그런데 사전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 노출이 될 것 같아서 제가 티벳에 도착하자마자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목사가 되고 처음하는 세례식인데 그것도 티벳 사람들에게......
당일이 되어서 시내에서 벗어나 한참을 들어가서 소위 가정교회에 갔더니 20명 남짓의 티벳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5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세례를 받을 준비를 했었습니다.
예식은 잘 거행이 되었고, 성찬식까지 이어지면서 주일 예배는 잘 마쳐졌습니다.
그런데 예배 후에 청년선교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여러 가지 생각할 내용이 생겼습니다. 티벳은 불교문화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불교와 밀접한 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불교를 떠나면 먹고 살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 선교사님과 함께 지내면서 믿음을 가지기 시작을 했고, 특별히 세례를 받을 때 한 자매가 휠체어를 타고 있었는데, 이 자매가 티벳의 추위에서 발가락이 동상을 입어서 회복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제대로 펴지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예수님을 믿고, 기도하는 가운데 발가락이 치유되고, 상처가 낫게 되면서, 자신도 더 이상 거부하지 않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이번에 세례를 신청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친구들이 세례를 받아도, 이들의 삶의 터전인 불교로 돌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그곳이 집이고, 그곳에 가야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세례를 받았지만, 다시 불교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교사님이 계획하고 있는 것이 티벳 성도들이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미용학원이나 기술교육을 병행해야만 이들이 불교에서 나올 수 있다고 이야기를 히 주었습니다. 그러니 티벳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는 것은 정말 보통일이 아닙니다.
옛날에는 세례를 받기전에 학습이라는 절차가 있었습니다. 보통 교회 출석을 6개월 정도하고 나면 학습을 받고, 학습을 받고 6개월이 지나야 세례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한국에 학습 제도가 강화된 이유는 선교초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전도를 받고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은 다음, 가정에서 가해지는 핍박으로 인한 재개종, 신앙의 포기 등이 쉽게 일어나자 세례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하여 취한 고육지책으로 학습제도를 만들어 낸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믿고 고백을 하는 자에게 누구나, 언제나 참여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총회 헌법에도 ‘예수를 믿기로 결심하고 공동예배에 참석하는 자로 15세 이상인자를 세례 줄 수 있다’고 정의를 해 놓았습니다. 제가 만 15세인지, 그냥 15세인지가 조금 불분명했는데 총회 헌법에 나온대로 15세 이상이 맞습니다. 이는 적어도 15살 정도가 되어야 자기가 스스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로 고백하고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되기 때문에 이 나이에 대한 규정은 정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은 조금 특별합니다. 워낙 귀신의 세력이 많고, 일본 사람들의 마음이 약해서 자기가 가진 이전의 신을 떠나면 병이 걸리거나, 이전의 귀신이 장난을 쳐서 위험하게 한다는 선입견들을 가지고 있고 불안해서, 일본 교회들의 일부는 세례식을 하기전에 자기가 기존에 가지고 다니던 신당이나, 우상들을 태우는 일을 먼저합니다. 그래고 일본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면 그 다음부터 교회를 안나옵니다. 세례를 통해 천국에 가는 자격증을 다 놓았으니, 이제 다른 신에게 가서 천국을 위한 기도를 드려야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일본의 경우에는 세례를 아주 신중하게, 그리고 분명한 신앙의 고백이 되는지를 확인을 하고 줍니다.
요즘 한국의 신병 교육대에서도 이 세례식이 많이 거행이 됩니다. 저희 때는 교회에 가면 간식으로 쵸코파이를 주었는데, 요즘은 통닭을 조각으로 나누어서 준다고 합니다. 그런데 통닭을 먹으려고 교회에 오고, 세례만 달랑 받고, 통닭하나 얻어 먹는다고 해서 통닭 교인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조금은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불교의 경우에는 세례대신 수계를 준다고 하는데, 이 수계를 받으면 평생 자기가 불교인처럼 살아야 된다고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리고 종교란에 자신은 불교인이라고 기록을 합니다. 실제로 많은 분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님이 믿얻기에, 그리고 깊이 생각해보지 않고 행한 종교적 행동으로 평생 갇혀서 참 진리를 놓치는 모습은 너무나 아쉽습니다.
지금 캄보디아에서 사역하시는 김 아무개 선교사님은 목사 안수를 받을 때 3년을 고민을 했다고 하십니다. 그냥 신학교 졸업했고, 때가 되었으니 안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정말 이 목사가 될 자격이 있는지, 하나님의 부르심이 분명한지를 3년을 고민했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제 주변에서 흔하게 보기 힘든 결정을 하신 분이였습니다.
우리는 막무가내로, 덮어놓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그 분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알고, 내가 그 분을 분명히 믿어야겠다는 분명한 각오와 결단을 가지고 고백을 해야지 됩니다.
기독교 성경학자중에 많은 분들에게 존경을 받는 존 스토트 목사님은 예수를 믿기까지 몇가지 중요한 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별히 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여러 신들을 보고 그의 자서전에 보면 부처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는데, 이 세상을 초월한 듯한 묘한 웃음으로 평안한 자세를 가진 불상을 보면서 마음이 끌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신데도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죄가 없으심에도 십자가를 지고, 처절하게 고통당하신 그 분을 보면서 이 세상을 외면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고통을 당하신 그 분을 더욱 깊이 존경하고, 믿기로 결정을 했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前 문화부 장관을 하며, 이 시대 최고의 지성이라고 했던 이어령 교수도 많은 지식으로 평생을 예수님을 알기만 하고 받아들이지 않다가 최근 자신의 딸인 이민아 목사와 그 가족의 고난과 아픔속에서 하나님을 붙잡는 모습을 보면서 이어령 교수도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어령 교수의 이야기 가운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때 그가 국문학자로서, 냉철한 지성으로 비판을 하면서 성경을 보았을 때, 성경에 나와 있는 너무나 허술한 스토리 때문에 자신이 예수님을 부인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보통 신에 대한 기사나 이야기를 보면 놀라운 기적이나 초월적인 능력으로 신을 가장하거나 아름답게 꾸미는데, 예수님은 너무나 연약하게 십자가에 맞고 돌아가셔서 마지막에는 우리를 위해 비참하게 죽었다는 그 “신”답지 않은 모습에 오히려 마음이 끌렸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대학교 1학년 때 CCC라는 선교단체에서 성경공부를 하는데 삼단 논법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당시에 저는 교회를 다니기는 했지만, 누군가로부터 예수님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야기를 들은적이 없어서 두루뭉실하게 알던 시절이였습니다.
먼저는 그의 주장은 모두 거짓이었다. 또는 그의 주장은 모두 사실이었다라는 논리로 시작이 됩니다. 먼저 그의 주장이 모두 거짓이였다면 두가지 경우수가 생깁니다. 첫째는 자신의 모든 주장이 거짓임을 알고 고의로 거짓을 주장했다는 논리가 나옵니다. 그러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거짓말쟁이라면 위선자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은 거짓속에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치르라고 이야기를 했다면 그는 위선자입니다. 그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도 없고, 그 스스로도 자신을 증명해 낼 수도 없다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가르치신대로 사셨고, 그 가르친 대로의 삶으로 인해 십자가의 죽음까지도 당하게 되셨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그는 자신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논리를 가지게 됩니다. 그는 과대망상에 빠져서 자기가 하는 일을 자신도 모르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다닌다면 그것은 미치광이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는 모든 과정을 보면 논리가 결코 흔들리지 아니하고 분명합니다.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있었고, 그 목적대로 자신의 행보를 하나씩 걸으셨습니다. 그 행보 가운데에는 십자가와 같이 피하고 깊은 행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코 피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고 모두를 묵묵히 가셨습니다. 존스토트 목사님이 말한 힘없어 보이고, 연약해 보이는 길이지만, 그 길을 가셨습니다. 미치광이라면 이렇게 논리가 질서정연하게 되어질 수 없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거짓말쟁이도 아니고 미치광이가 아니라면 우리는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이 생깁니다. 그것은 “그분의 모든 주장이 사실이다.”라는 논제를 만나야 합니다. 그분의 주장은 그 분은 구주이시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라는 주장을 하셨는데, 그가 거짓말쟁이도 아니고, 미치광이도 아니라면 그 가 직접 말한 이 모든 삶은 진짜라는 것이였습니다.
저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 당황을 했습니다. 내가 그저 복 받고 잘 살기 위해 교회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제대로 몰랐던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사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나 보다 더 똑똑한 사람들이 많을텐데 예수님이 주장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그 논리를 왜 여지껏 못 바꿨을까? 그 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면 그 주장이 사실이라는 말이 아닌가라는 논리를 남기게 되었습니다.
시릴조드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철학자 중의 한 사람으로 런던 대학의 철학과장을 지냈습니다. 그는 예수님은 단지 한 인간이고 하나님은 우주의 한 부분에 불과하며 만일 우주가 멸망하면 하나님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죄 같은 것은 없으며 인간은 이상향을 향하도록 운명지어졌다고 이야기를 하고, 인간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인간은 지구상에서 천국을 가질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1948년 로스엔젤리스 타임지에 기사를 썼습니다. 그는 수년 동안 기독교에 대해 어떻게 반대했는가를 말했고, 한 때는 죄를 부인하기도 했으나두번의 세계대전과 전쟁에 대한 위기로 인해 결론적으로 인간은 죄인이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리고 죄에 대한 유일한 설명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발견되며, 죄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습니다. 조드 박사는 죽기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열렬한 제자가 되었습니다.
또 한 사람이 있는데 유명한 장군이며, 문학적인 천재였던 류 웰리스라는 사람은 그의 친구들과 함께 기독교 신화를 영원히 도말해 버릴 책을 쓰자고 약속을 했고,유럽과 미국의 유명 도서관에서 기독교를 파괴할 자료를 2년 동안 연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책의 제 2장을 쓰다가 무릎을 끓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반박한 자료를 가지고 그의 재능을 사용해서 다시 쓴 책이 기독교 소설에서 가장 유명한 “벤허”라는 작품입니다.
시대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반발하기도 하고, 무시하기도 했지만, 역사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주장한 모든 말씀이 사실이라는 진리는 아직까지 뒤집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특별히 대학교 1학년이던 저는 NASA나 많은 과학자들이 하나님을 믿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들은 한 번도 예수님의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고학기술처 장관을 역임했던 정근모 교수님은 학교에 발을 들여 놓은 후로 1등을 빼앗겨 본적이 없습니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모두 전교 1등, 심지어는 전국 1등의 성적을 가졌습니다. 성적이 너무 우월해서 선생님들의 권유로 고1 때 대입검정고시를 보았는데 역시 1등으로 합격을 했습니다. 남보다 일찍 대학을 가게 되고, 23살에 박사학위를 받게 됩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 핵융합 발전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했고, MIT 핵공학 연구원으로도 일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KIST를 출범시켰고, 사람들은 그를 ‘천재’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책에서 분명하게 밝힙니다. “과학을 탐구하면 탐구할수록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의 아름다움과 합리성에 더욱 경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럴수록 인간의 한계를 느낍니다. 과학은 결코 신앙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앙의 근본바탕을 체계적으로 정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과학자라면 내면에 신앙을 소유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는 과학 뿐만 아닙니다. 요즘 한국에는 ‘코리아’라는 영화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남북한 단일팀으로 금메달을 땄던 현정화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이 현정화 선수는 세계 여장 탁구 사상 최초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사람입니다.그가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기 전, 1992년에는 공교롭게도 허리를 다쳐서 은퇴를 결심하고 고향에 내려 갔으나 다시 국가대표를 선발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그는 훈련을 하면서 밤마다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 매일매일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게 해 주옵소서..” 1993년 스웨덴 세계선수권이 열렸을 때, 허리 통증 때문에 너무나 힘들었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3:0으로 완승을 했고, 세계 최초의 그랜드 슬램을 여자 탁구에서 달성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세계가 다 보는 앞에서 무릎을 끓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 이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이루셨기 때문입니다.”라고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입으로, 우리의 삶으로 주님을 시인하는 삶을 살기를 너무나 원하십니다. 로마서 10:10을 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시인하는 것을 너무나도 원하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면 우리가 가진 것을 희생하거나, 뭔가를 손해본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그와는 정반대입니다. 로마서 10:11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고 보호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람들은 간혹 부담스러운 사람이나, 별볼일 없는 사람하고 엮이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결코 그렇지 않으십니다. “누구든지”입니다.
로마서 10:12을 보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라고 했습니다. 어린아이가 불러도, 70대 할아버지가 불러도, 모두에게 응답해 주시기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로마서 10:13에 기록된 분명한 약속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라고 하신 주의 음성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이 약속을 분명히 해 주신 것입니다. 너무나 쉽습니다. 그냥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
인도의 지도자 마하트마 간디가 영궁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입니다. 당시 영국에 인도가 정복을 당한 시기라 온갖 차별과 냉대에 시달리면서 어려운 유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성경책을 발견하고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마태복음 5-8장에서 많은 가르침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은 간디는 하나님을 위해 그의 일생을 바쳐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교회의 문을 두드렸으나, 인도를 지배한 영국인은 인도 사람 간디를 미개인 취급을 했습니다. 교회를 찾아가 청원도 해 보았지만, 모든 교회에서 냉대들 받았습니다.
그리고 간디는 이런말을 했습니다. “ 나는 그리스도는 너무 존경하지만, 그리스도인은 경멸한다.” 라고 하며 결국 교회를 떠났습니다.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교회들에 이런 일들이 반복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대로 예수님을 시인하고는 있지만, 그 능력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디도서 1:16에는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인도 땅에서 건강하게 주님을 시인하는 공동체가 되어져야 합니다. 처음 믿음을 가진 분들이 하나님에 대해서 눈을 떠 가도록 우리가 그들을 도와 주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건강하게 주님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 입맛에 맞게만 고백하고, 아닌 것은 토해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제자 공동체로 건강하게 하나님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제 곧 세례와 입교 예식을 거행할텐데. 창립 1주년이 되어지는 시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실 일입니다. 교회는 이들이 온전한 신앙고백을 건강하게 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도 우리가 신앙고백적으로 감당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학업, 우리의 사업에도 하나님을 향한 신앙고백으로 시인하며 주님을 높여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너무나 지쳐서 교회까지 왔는데, 마하트마 간디처럼 교회마저 발붙일 곳이 없어서 떠나게 해서는 안됩니다. 그들이 스스로 믿음을 가지고 이 험한 세상을 잘 이기도록 우리가 힘을 다해서 도와야 합니다.
그리고 아직 믿음이 없어서 주님을 시인하지 못하시는 분이있다면 감정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분명하게, 그리고 정확하게 예수님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이 있기를 원합니다. 그 분이 하신 모든 말씀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우리 인생의 오랜 시간을 허비하며, 그 분 앞에 주저할 수 없습니다. 내가 도를 닦고, 완전한 경지에 오르면 예수님께 나오지, 세례 받지, 뭐..이런 분이 계시면 평생을 가도 주님 앞에 못 나옵니다. 주님은 그냥 지금 그 모습 그대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시인하고 인정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주님 앞에 용기를 내어 걸어나오십시오...이제 주님이 용기를 내어 걸어나오는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누가복음 12:8에도 보면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삶의 여정을 아시고, 주님을 시인하며 나아갈 때 우리를 도우십니다.
잠언 3:6에도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시인하고 인정할 때, 하나님은 더 많은 것으로 우리를 인정하고 복 주시는 하나님 이신 줄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우리의 삶과 행실이 하나님을 온전히 인정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시인하고 고백하고,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선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삶속에서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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