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3 부모님

      날짜 : 2014. 01. 22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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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513일 아버지의 사랑 잠언 23:22-25

        교회에서 설교를 하면서 사실 제일 어려운 본문이 바로 오늘의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제일 지키기 어려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을 가까이에 두고 모셔야 하는데, 선교지로 나와 있고, 더군다나 저는 외아들입니다. 지금은 아버님 돌아가시고 어머님 홀로 계시는데 여러 가지를 생각하면 참 고민이 많이 됩니다.

        이 고민을 신학교 입학 전에 했습니다. 당시에도 상황이 어려웠습니다. 좋은 집을 가지고 계셨는데, 보증을 잘못 서 주셔서 집이 경매에 처하게 될 상황이였습니다. 돈을 벌어서 부모님을 모셔야 하는 상황인데, 하나님의 부르심 앞에서 많은 갈등을 했습니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부모님이 교회도 다니지 않으셨습니다.

        그때 들려 주셨던 말씀은 예수전도단의 문희곤 목사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씀입니다. 청년 사역자로 부르신 하나님 앞에서 선배로서 같은 고민을 했는데, 어느날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는데, “너희 부모님을 니가 책임지는게 낫겠냐, 아니면 전능하신 나 여호와가 책임지는게 낫겠느냐라는 음성을 듣고 자신 보다는 자신보다 더욱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 자신의 부모님을 책임지시는게 낫겠다라는 생각을 하고 순종했다고 합니다.

        제가 섬겼던 일본 오사카 예수전도단 베이스 캠프를 섬기는 백준영 선교사 백성원 선교사라는 남매가 있습니다. 이 분들의 부모님은 안수집사님 권사님이셨는데, 정말 착하고 순한 두 남매가 모두 선교사로 일본에서 사역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집사님은 이문동에 꽤 큰 빌딩을 가지고 있습니다. 매달 수입의 일부를 아들에게 선교비로 보내줍니다. 그런데 이 선교비를 넉넉히 받은 아들과 딸은 자신들의 선교비를 예수전도단 공동체에 몽땅 헌금을 합니다. 2005년도에 심방을 가서 보았는데, 정말 30명의 젊은이들과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초등학생이 둘이나 있는 가정인데도 너무 어렵게 살았습니다. 화장실 물도 한번에 내리기가 부담스러워 같이 소변을 보고 내립니다. 일본 추위도 장난이 아닌데 우리가 집에서 쓰는 히터 하나로 집 전체를 버팁니다. 부인은 일본 사람으로 한국돈 300만원 정도를 버는데, 이 금액도 공동체에 다 헌금을 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만큼만 타서 씁니다. 이 가정이 사실 예수전도단 오사카 지부를 다 운영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 선교사님들보다, 그 분들의 부모님을 가까이에 두고 삽니다.

        매년 어린이 날이면 이 집사님 권사님이 롯데월드에 가십니다. 왜 가냐고 물으면 손주들이 너무 보고 싶은데 우리 자식들은 선교하느라고 못 보니, 다른 집 자식이라도 봐야 위로가 된다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영국에 선교를 가신 선교사님 가정을 섬기고 있었는데, 역시 이 가정에는 80세나 되는 노모가 계십니다. 장남이 선교사로 갔고, 차남은 직장도 변변치 않아서 노모를 잘 못 모시는 상황입니다. 젊을 때 일했던 것이 있어서 집은 있으신데, 매일 생활비가 넉넉지 않으시니까 매일 니어커를 끌고 페지를 주으러 다니십니다. 체구가 아주 왜소하신데, 리어커가 감당이 안될 정도로 엄청난 양을 끌고 다니십니다. 그 주변에는 경희대 학생들이 많이 다녔는데, 너무나 분명하게 대조되는 모습이였습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하던 사역중에 하나가 선교사님 부모님을 모시는 사역을 했었습니다. 어버이날에는 선교사님 부모님들을 초청해서 정중하게 식사를 대접해 드렸고, 선교사님들이 너무나 자랑스럽다고, 교회에서 얼마나 자랑스럽게 여기는지 모른다고 엄청 칭찬을 해 드렸습니다. 대부분 선교사님 부모님들이 그렇게 여유롭지는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역만리 먼 외국에서 일하는 자식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이시는지 많이들 우셨습니다.

        총회에서 하던 일도 선교사님들의 부모님 장례식에 가는 일이 많습니다. 선교사님들이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오고 싶어도 비행기 값이 없어서 못 오는 경우가 계십니다. 남미에서 한국에 오려면 31시간이 걸려야 하는데, 가슴을 치면서 울었던 선교사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저도 목이 메입니다. 그래서 장례식장에 가면 제가 아드님, 따님 대신 왔다고 이야기하고, 우리 총회에서 얼마나 귀하게 여기는지 모른다고 가족들을 위로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님들께 전화를 드립니다. 대신 가서 인사드리고 왔다고, 그러면 전화기를 대고 우시면서 이야기하시는 선교사님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그런데 저도 정작 저희 부모님들께는 잘못해 드립니다. 제가 가장 속상했을 때는 전도사 시절이였습니다. 아버님이 환갑이 되셨는데, 저희가 정말 집도 경매되고, 어렵게 신학교 공부하고, 단칸방에서 아이들 키우면서 간신히 살아가던 시절이라 감히 환갑잔치를 해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에 7000원짜리 고기 뷔페에 가서 저희 가족만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저희 가족중에 그날 저녁에 환갑잔치를 하시는 집사님이 계셨는데, 좋은 호텔에서 잔치를 했습니다. 환갑예배 주보도 만들어야 했고, 가서 예배 인도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분이 교회에서 평판이 좀 좋지 않은 분이였습니다. 교회를 시끄럽게 하고, 목회자들을 우습게 여기고, 제가 모시던 담임목사님을 곤경에 빠뜨렸던 분인데, 가족들이 모였는데 모두들 건실하고 든든하게 부모님의 환갑잔치를 해 주는 모습을 보고 왔는데 , 점심 때 아버지하고 먹었던 고기 뷔페 7000원짜리가 너무 마음에 걸렸습니다.

        그날 저녁에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하나님이 저 대신에 책임 져 주신다고 했는데 맞나요...저 무지 속상한데요...” 지금도 간혹 홀로 계신 어머님이 힘들어 하시면 이 기도를 합니다. “아직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뭐라고 말씀은 안 해 주십니다. 그리고 더 속상한 것은 그런 상황을 알고도, 제가 맘껏 최선을 다해 섬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 더욱 마음이 상합니다. 최선을 다하려고 해도 힘들어 하시는 곁을 떠나 있는 것 하나만으로 그 이상의 변명을 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하기 힘든 설교가 어버이 주일 설교입니다.

        그래서 이 부분을 더욱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게 됩니다.

        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동대문 노인 복지관을 운영했습니다. 700명 정도의 어르신들을 위해 매일 식사도 준비하고,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을 하는데, 이곳에서 일하는 노인들을 위한 사회복지사들에게 가서 설교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데, 자신들도 다른 부모님들은 잘 섬기는데, 이상하게도 자기 부모님을 섬기는 것은 정말 어렵다고 이야기를 해 줍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네 살 때에는 '아버지는 전능(全能)하다'라고 생각합니다. 못하는 게 없는 줄 압니다. 다섯 살이 되면 '아버지는 전지(全知)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것이 없구나'라고 느낍니다. 그러나 여덟 살이 되면 이제 '다 아는 것은 아니구나. 모르는 것도 있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열 두 살이 되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그도 그럴것이 옛날 사람이니까'라고 생각합니다. 열네 살이 되면 '아버지에게 신경쓸 필요없다. 워낙 무식하니까'하고, 스무살이 되면 ', 부모는 구제불능이다. 너무 뒤떨어진 소리만 하는구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35세가 되면 '아버지께 여쭈어보았으면 좋겠다'하고 아쉬워 진다고 합니다. 40세가 되면 '아버지라면 이런 때에 어떻게 하셨을까. 살아계셨으면 꼭 한번 여쭈어보겠는데...'하게 되고 그 잔소리가 오히려 그리워집니다. 50세가 되면 '아버지는 훌륭했다. 나보다 훨씬 훌륭했다. 지금 후회가 많다. 젊었을 때에 아버지의 그 소중한 지혜의 말씀을 좀 더 귀담아 들어 둘 것을...'하고 뉘우치게 된다고 소망교회 곽선희 목사님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부모님께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오늘 잠언 23:22을 보면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했습니다. 잠언 23:25을 보면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신명기 5:16에도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고 했고, 이 부모님을 섬기는 것이 우리에게 축복의 통로라고 성경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신명기 27:16을 보면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찌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상하게도 자기 자식이나 가족을 위해 어떤 희생을 치루더라도 이겨내지만, 부모님에 대해서는 조금 다르게 변해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일본의 전설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는 아들이 자라서 어떤 여자를 알게 되고 교제하다가 결혼까지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이 여자가 무서운 병에 걸렸습니다. 이 병은 시간을 다투는 병이었습니다. 더구나 이 병을 고치는 약은 매우 구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산 사람의 간()을 먹어야 낫는다는 병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은 자기의 애인을 살리려는 욕심에 그만 어머니를 살해하여 어머니의 간을 꺼내 가지고 자기 애인이 있는 곳으로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빨리 뛰어가고 잇는 아들에게 어머니의 혼이 나타나 "얘야, 너무 빨리 뛰어가다가 넘어질라!" 하였다고 합니다. 이것은 전설이지만, 우리 주변에 자식에 대한 부모님의 사랑이야기는 이 전설을 능가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가시고기라는 물고기가 있습니다. 지느러미가 변해서 된 가시가 등지느러미와 배지느러미에 있어서 가시고기라고 이름을 부릅니다. 그런데 이 가시고기의 부성애는 대단합니다. 암컷이 알을 낳고 떠나버리면 수컷은 가슴지느러미로 부채질을 하듯이 하여 둥지에 신선한 물을 보냅니다. 신선한 물은 알의 성장에 필요한 산소를 공급합니다. 수컷이 돌보지 않으면 알은 죽어서 물곰팡이와 같은 것의 침입을 받게 됩니다. 다른 물고기들을 알을 잡아 먹으려면 몸집이 크고 작고를 떠나 죽기를 각오하고 싸웁니다. 이렇게 사투를 벌이다가 가시고기 수컷은 결국 새끼들이 있는 쪽으로 머리를 하고 죽게 됩니다.(영상을 잠깐 보겠습니다. - 가시고기)

        이 가시고기를 기초해서 조창인이라는 분이 가시고기라는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근육이 점점 굳어져가는 희귀병에 걸린 친구의 아들과 아버지를 바라보며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강원도 사북에서 광부의 아들로 태어나 탄광사고로 아버지 다리가 절단된 후 가족이 해체되고 아버지마저 자살하자 혼자 남겨져 고아원을 거쳐 사회인이 된 정호연이 백혈병에 걸린 자신의 아들 다움을 간병하면서 일어나는 일과 그의 삶을 다룬 내용입니다. 아빠는 대학시절 시단에 등단하여 미술을 전공하던 부잣집 딸 엄마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으나, 엄마는 자신의 삶을 위해 은사와 재혼하여 아들을 떠나 파리로 가서 성공합니다. 아빠는 새끼가 부화해 독립할 때까지 둥지를 지키고 보호하는 습성이 있어 부성애의 상징인 가시고기처럼 아들의 간병과 비용 때문에 출판사, 잡지사 등을 다니다가 집도 팔고, ‘돈을 위해 세상의 발가락을 핥기로 작정을 하고시인이라는 자존심도 팔아 시집을 출판하면서 간병에만 전념합니다. 빈털터리가 된 아빠는 돈이 행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어도 얼마든지 불행의 구렁텅이로 빠뜨릴 능력은 갖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백혈병이 세 번이나 재발하고 골수이식을 받아야 하는 아들을 살리고자 자신의 간을 밀매하고자 하나 간암 말기로 불가능하여 각막을 밀매, 병원비를 조달하면서도, 빈털터리가 됩니다. 이런 모습을 일부분만 본 아내가 돌아와서 아들의 치료까지 포기한 아빠에게 아들을 맡길 수 없다면서 병원비를 부담하려는 아내의 청을 거절햇지만, 아빠는조각에 소질이 있는 아들의 장래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아들을 파리로 데려가려는 엄마의 희망대로 그를 파리로 떠나보낸 후 아이와 함께 보냈던 사막골에서 숨을 거둔다는 이야기입니다. 마치 가시고기가 자기 새끼를 향해 머리를 두고 죽는 것처럼....

        그런데 조창인 작가는 이 소설을 쓰면서 하나님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자녀인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찢겨져 돌아가신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육신의 아버지를 넘어선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깊이 경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표현하는 장면이 많습니다.

        요한일서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고린도 후서 6:18에도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부성애의 상징으로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져 있고, 그 부성애의 절정은 독생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 주시는 그 사랑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우리의 자녀들을 양육하고, 우리의 육신의 부모님께도 성경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그 은혜를 잊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7:11- 13을 보면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 포로기 이후에 생겨난 관례인데, 하나님께 바치게 되었다는 근거를 가지고 모든 것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악습을 이야기 합니다. 부모에게 드려야 하는 것을 고르반 즉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말하기만 하면 더 이상 부모님에게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말 만하고, 자기 자신을 위해 사용해도 무방하였기에 부모님에 대한 자식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도 되는 합법적인 근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위해서 한다는 핑게도 부모님에게 소홀히 하는 자들을 정면으로 비판하시면서 가르쳐 주시면서 삶의 실제적인 면에서의 부모님을 향한 섬김을 실천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부모님에 대한 사랑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이 부모님의 사랑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과도 아주 긴밀합니다. 이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주는 영상을 하나 더 보겠습니다. 이미 보신 분들도 계시겠지만, 다시 보면서도 늘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영상입니다.

        (영상 - 아버지의 사랑)

        아들을 위해 달리는 아버지의 사랑.....

        우리 육신의 부모님도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다 바쳐서 우리를 섬겨 주셨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이 부모님을 잘 섬기는 것이 우리의 아주 중요한 삶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 주시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표현해 주셨습니다.

        마지막 대사가 마음에 남습니다.

        아들 : 아버지가 있어서 모든 것이 가능했습니다.

        아버지 : 아들이 있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

        오늘 이 깊은 사랑에 우리 가정에 넘치기를 원합니다. 이 깊은 사랑이 넘칠 때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어버이 주일, 주님을 더욱 깊이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의 부모님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귀한 희생과 사랑으로 우리가 철모르고 무지할 때 모든 것을 받아 주셨던 부모님들을 기억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부모가 되었지만, 우리의 부모를 잊고, 우리의 자식만을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부모님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는 있지만, 이것을 실천하기에는 너무나도 계산적이고, 이기적인 우리의 모습을 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아낌없는 사랑을 통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이 모든 것을 보셨던 주님....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달아 이 사랑을 우리 이웃에게 전하기를 원합니다. 특별히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오신 선교사님들의 부모님을 축복합니다.. 그들의 아픔을 위로해 주시고, 이 세상의 계산법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진정된 축복이 넘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먼 이곳에 일하러 온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부모님들이 있습니다. 같이 있어주지 못하는 아픔이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해 주셔서 더 큰 위로와 사랑이 항상 넘치도록, 우리가 이 땅에서 일할 때 하나님이 더욱 귀히 여기시고 살펴주시는 축복을 주시옵소서.

        우리가 또한 우리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기를 원합니다. 그 사랑을 알고, 아직 하나님을 모르는 이웃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잘 전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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