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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짜 : 2014. 01. 22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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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429일 사도행전 6:1-7 초대교회 이야기

        지난 주중에 홈페이지 작업을 새롭게 했습니다. 홈페이지를 만드는 것도 지속적으로 돈이 들어가고, 더욱 중요한 것은 제가 원하는 폼을 외주로 주게 되면 그 때마다 부탁해서 바꾸는 것이 쉽지 않아서 아예 만드는 법을 배우고 저희 교회 홈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전문가가 만든 것이 아니라 약간은 어설픕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기적으로 업데이터 하고 수정하고 관리하는 일이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은 고민도 해 보았습니다. 이제는 외주를 맡기고 좀 그럴듯하게 하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홈페이지에 문제가 생겨서 초기화면이 모두 삭제가 되었습니다. 상당히 당황되는 내용입니다. 왜냐하면 초기화면 만들 때 들어갔던 시간과 작업이라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이것저것 물어보고, 머리에 쥐난다라는 말이 뭔지 알 정도로 컴퓨터 앞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어차피 새로 할려고 마음 먹었으니까, 다시 하자라고 마음먹고 하나씩 내용을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만들면서 이런저런 자료들을 올리다가 보니 참 많은 은혜가 있었습니다. 이 홈페이지 만들 때 교회는 시작도 안했고, 교인이 한명도 없어서, 교인 사진들을 이곳 저곳에서 꾸어다가 메꾸고...그래서 뒷모습 사진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짧은 시간이지만, 곳곳에 우리 교우들의 사진들이 자리를 잡았습니다. 함께 예배를 드리는 모습, 경배와 찬양예배, 성탄절 행사, 송구영신 예배, 우리교회 찬양대, 청소년부 아이들 등등을 보면서 이제는 남의 교회 성도들 사진 안 꾸워와도 된다는 그 자체에 마음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 어느덧 우리라는 존재로 바뀌어서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도가 많아져서 좋기는 좋은데, 문제도 이제 하나씩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저 자신도 그냥 개인이 아니라 저희 공동체를 섬기는 중요한 자리이기에 사람을 만나도 제가 나타내고 싶은 감정을 다 나타내기가 조심스럽습니다. 교회 초기에는 우리 교회를 아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크게 부담이 안되었는데, 요즘은 외부에서 우리교회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으면 가끔 깜짝깜짝 놀랍니다.

        그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중요하게 느끼게 하는 한 가지가 있었는데, 우리교회가 이제 또 하나의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하기를 원하신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 탈바꿈의 핵심은 우리 교회의 일들을 이제는 같이 나누어서 해야 한다는 마음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나누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함께 우리 공동체를 위해 고민하고, 아픔을 같이 짊어지고, 교회 때문에 얻는 성장통을 같이 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적인 생명을 잉태하는 곳이기에 해산의 수고가 동반되어야 하는 곳입니다. 좋은 사람이 소위 괜찮은 사람이 교회에 올수도 있지만, 각자의 아픔과 상처들이 있고, 힘든 분들이 오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가운데 우리가 은혜를 체험하고 서로 보듬어주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시지만, 그 보듬는 과정에서 상대방의 가시에 내가 찔리기도 하고, 상대방의 상처를 만지다가 나까지 감염이 되는 어려움도 겪게 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우리끼리만 있다면 우리가 혼란스럽겠지만, 우리 주님이 우리의 그 연약함을 다 아시고, 우리를 돌보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공동체를 통해 함께 하나님을 더욱 많이 만나고,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초대 교회에도 우리교회와 같은 전환기를 겪었던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6:1을 보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제자라는 용어까지 사용한 것을 보면 당시에 교회의 분위기가 단순하게 모였다가 흩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전적으로 따르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제자라는 표현까지 사용한 것으로 보아서,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증거하기 위해 힘썼던 사람이 많아졌음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교회에 이런 제자가 많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단순하게 방문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교회를 위해 뭔가를 하려고 고민하고, 자신의 재능과 힘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려는 사람이 많은 것은 축복입니다. 반면에 수 많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지만, 정작 헌신되고, 준비된 일꾼이 없이 회중만 있는 교회는 모이기는 하겠지만,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을 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초대교회의 공동체에 문제가 생깁니다.

        사도행전 6:1 후반절을 보면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라고 했습니다. 헬라파 유대인들이란 본래는 유대인이였는데, 그들이 각처에 가서 흩어져 살게 되면서 이방세계에서 출생한 2세들을 지칭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그들은 대개가 헬라어를 사용하며, 헬라문화에 영향아래 살았던 사람입니다. 헬라문화는 마케도니아의 왕이였던 알렉사더 대왕이 (BC 356~BC 323, 재위 BC 336~BC 323).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였으며, 그 정복지에 다수의 도시를 건설하여 동서 교통과 경제 발전에 기여하였고, 그리스 문화와 오리엔트 문화를 융합한 소위 헬레니즘 문화를 이룩한데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때 이스라엘도 영향을 받았고, 이주 정책들로 인해 부득이하게 이스라엘을 떠난 오늘 본문에 나온대로 헬라파 유대인들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히브리파 유대인이라는 그룹이 나오는데, 이 사람은 헬라파 유대인들과 달리 당시 이스라엘 팔레스틴에서 출생하여 이스라엘의 언어인 아람어와 그 문화권에 살았던 사람입니다. 다 같이 유대인이라는 한핏줄인데, 당시의 정황으로 같은 유대인인데,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게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초대교회에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하나되어 구별되지 않고 모두가 하나의 예배공동체로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신령한 말씀을 먹고 영적인 교제를 하면서 은혜를 체험하는 일에는 별 문제가 없이 모두가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터지게 되는데, 그것은 초대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며 주의 사랑을 나누는 섬김 사역을 했는데, 그것이 바로 그 당시에 가장 문제가 되었던 것은 과부들이였습니다. 구약성경에도 이 불쌍한 과부를 돌보도록 했고, 여러 규정을 들어 과부들을 보호하는 법을 만들었지만, 과부들은 생계를 책임졌던 남편이 없어지면, 경제적인 불이익과 부당한 착취들을 받았습니다. 초대 교회 내에는 특별히 이 과부에 대한 여러 가지 논란이 많았습니다. 신약성경 곳곳에 그들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당시 가장 약자였던 과부에 대한 교회의 책임감은 매우 중요한 요소였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습니다.

        이를 위해 오늘 본문을 보면 초대교회가 이들을 위해서 구제사역을 했습니다.사도행전 6:2에는 이것을 좀더 구체적인 표현으로 접대라고 했지만, 옛날의 개역한글판 성경에는 공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이 공궤는 우리가 잘 안쓰는 말이지만, 의미는 더 잘 이해가 되는데, 이것은 음식을 나누어 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사도행전 6장의 개념에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교회의 구제품까지 나누어주는 일이 동반이 되었고 좀 더 넓게 이야기를 하면 초대교회의 일상적인 식사나 애찬을 준비하는 일까지도 같이 동반이 되어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나눌 때는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이 구제 즉 과부들에게 음식을 나누는 일을 하는데 원망과 시비가 생긴 것 같았습니다. 사도행전 6:2을 보면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주시해서 볼 것은 문제가 터진 초대교회의 사도들과 제자들은 이 원망과 시비가 일어나게 한 사람을 찾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문제가 터지면 그것을 벌린 사람이 누구인지, 그 사람 책임론을 들고 나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숙했던 사도들은 문제에 대한 원인 제공자에 대해서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진짜로 중요한 것은 왜 그런일이 하나님의 말씀의 공동체에 일어났는지와, 왜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를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가 다시 발생하지 않게 만듭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사실 우리도 역시 벗어나지 않습니다. 앞으로 사람이 많아진다든지, 무슨 일을 하게 될 때 원망과 시비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이야 서로 규모도 작고, 서로에게 크게 작용하지 않아서 쉽게 넘어가지만, 나중이 되면 이런 저런 일로 교회가 원망과 시비가 생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원망과 시비가 일어날 때 사도들이 보여준 태도처럼, 우리도 누가 이렇게 했어라고 하는 몰아넣기식 반응은 우리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제가 처음으로 교회에 봉사를 했던 때는 대학교 1학년 때인 것 같습니다. 여름성경학교 교사보조를 처음으로 일을 했는데, 그 때 했던 일이 34일의 어린이 여름성경학교 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여름성경학교에 손이 얼마나 많이 가게 됩니까? 그때 저는 5명의 아이들이 있는 반에 보조교사였는데, 반별로 연극을 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처음 맡은 교사였고, 잘해 보려는 의욕에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발표회 하는날 모세가 홍해를 가르는 장면을 발표해야 하는데, 당시에는 성경도 잘 모르던 제가 아이들에게 모세의 지팡이로 바다를 치면 물이 갈라지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그것을 연극으로 만들었습니다. 사실은 지팡이는 필요없고, 성경에는 모세가 바다위로 손을 내밀었다고 하는데괜히 그렇게 하면 밋밋하니까 모세의 지팡이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도 민밋하니까. 그 지팡이에 특수장치를 했습니다. 그 끝에 불꽃놀이 장치를 달아서 바다로 만들어 놓았던 곳을 향하면 불꽃이 막 일어나서 바다가 갈라진다는 설정이였습니다. 정말 엉터리였습니다. 그런데 엉터리 교사에 엉터리 학생이 있다고 모세 역할을 맡은 아이가 자기도 이 지팡이를 바닥에 놓으면 잘 안보이니까. 이 아이가 이 불꽃이 막 튀는 지팡이를 교회 성전 휘장을 가리키고 홍해야 갈라져라라고 했습니다. 이 엉터리 그럴듯한 교회 연극에 사람들은 어린아이의 연극으로 웃으며 넘어가주었는데, 문제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지팡이 끝의 불꽃이 튀면서 성전 휘장을 그슬렀고, 결국 불이 났습니다. 사람들은 그것도 설정인줄 알고 다들 박수를 치면서 재미있어 했는데, 상황을 판단한 관리집사님이 급하게 올라오셔서 불을 끄셨습니다. 당시의 교회 분위기......짐작이 가시겠습니까? 그 자리에 교회 중요 제직들, 담임목사님 다 계셨었는데........그리고 그 연극을 맡아 지도하고 시킨 제가 얼마나 챙피하고, 무안했겠습니까? 당시에 저는 선교단체에서 훈련 받고 전도를 열심히 한다고 그래도 교회에서 시켜주었는데, 은혜를 받고 사는 것과 실전에서 봉사를 하는 것과는 정말 다른 일이였습니다.

        교인들이 가고 교회에서 제일 무섭다고 하는 장로님과 관리집사님이 오셨습니다. 어쩔줄 모르고 당황하던 제 앞에서 그 두분은 아무 말씀 안하시고, 커텐을 이리저리 움직이시더니, 주름 접힌 곳을 펴시고, 조정하시면서, 이거 이렇게하니까 괜찮네...하고 그냥 모든 것이 종결되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정교사도, 전도사님도 그 누구도 저의 그 엄청난 실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시는 분이 없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또래들도 그 누구도 이 일에 대해서 토를 달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나중에 그 교회에서 첫 번째 전도사 사역을 하고, 그 교회당에서 결혼을 하고, 그 무서웠던 장로님이 제가 담당한 부서에 담당 장로님이 되셨지만, 아무런 무리없이 사역을 잘 감당했습니다. 만약 그 때 이거 누가 이렇게 했어라고 책임론으로 간다면, 당시 교회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저는 많은 상처를 받고 교회에 발을 끊었을 것입니다. 제가 지금 교회 정서를 알고, 분위기를 아는 상황에는 당시의 그 일에 대해서 모두가 책임론을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교회의 지도자 되시는 분들이, 교회에 처음으로 봉사했던 보조교사가 한일이고, 용구형제가 처음으로 맡은 일인데 뭐라하지 말자...라고 이야기 했던 것 같습니다.

        아마 초대교회도 이 과부의 구제에 대해 원망이 생긴 이 일....이제까지 예수님을 따르고 영적으로만 자리를 잡던 교회의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은 이 사건은 책임자 추궁으로 가지 않고, 왜 이런 일이 우리 공동체에 일어났을까라고 하면서 공동체의 패러다임이 변하는 중요한 촉매제로 사용이 되어집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6:2을 보면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이 문제가 일어난 것에 대해서 어느 사도가, 어느 제자가 실수한 것으로 몰지 않고, 공동으로 모든 책임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통해 정말 자신들이 해야하는 일이 무엇인지, 우리가 본질적으로 해야하는 일을 위해 이번 일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두가 고민을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 6:3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자신들이 집중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에 집중하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사도행전 6: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공동체에 일어났던 불미스러운 일이 오히려 공동체를 건강하게 하는 촉매제로 사용 되는 귀중한 장면을 보게 됩니다. 책임추긍자를 찾고, 그를 비판하고, 말꼬리를 만드는 것보다는 진정한 해결책을 찾아서, 그리고 그 일에 모든 사도들과 제자들이 함께 힘써서 해결방법을 찾은 것과 같이 공동체가 유기적으로 한 몸으로 움직였습니다.

        아마 누구인지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 관련 사도나 제자가 마음속으로 받았을 위로와 사랑이 더욱 교회를 위해 열심히 봉사하게 하고, 섬김이 깊어지도록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배울 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공동체가 문제없이 평탄하게만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위기관리 능력인데, 위기가 와도 성도들이 함께 기도하고 마음을 단단히 해서 그 어려움을 어떻게 지혜롭게 푸느냐가 아주 중요한 변수로 작용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이 일을 위해 처음으로 일꾼을 세웁니다.

        사도행전 6:5,6을 보면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라고 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이 조직을 최초의 교회의 집사제도의 시작이라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집사라는 용어를 검색하면 초대교회에 회중에게 봉사하는 어떤 직분을 맡은 자를 의미하는 신약의 용어이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 초대교회가 사도행전 6:3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라는 말과 같이 이 일은 하찮은 일이라 하찮은 사람을 택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가운데 소위 제일 괜찮은 사람들을 택했습니다. 원망과 시비가 있었기에 꺼려하는 일 같았지만, 일의 중요성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영적으로도 기도를 많이하고, 일을 처리하는데에도 지혜롭고, 그리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관계에도 무리가 없는 사람을 택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세가지 요소가 잘 조화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간혹 이 세가지 요소가 불균형해서, 한쪽으로 치우치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특별히 요즘에는 이것외에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을 보거나, 나이나 연륜을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성경이 가르쳐 준, 성경대로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는데 힘써야 합니다. 그래야 그 사람이 하나님이 세운 사람이라고 인정하게 되어 무리가 없이 일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좋은 사람이, 준비된 사람이, 그리고 오늘 성경에 기록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고, 칭찬받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어지럽고 시끄러운 이유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교회가 돈이 없거나 가난해서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시작이 사람 때문입니다. 반대로 교회가 건강하고, 하나님의 일을 왕성하게 하는 교회들을 살펴보십시오. 그곳에는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감당하기에 필요한 사람들이 반드시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오늘 초대교회는 문제가 터졌을 때, 그 책임자를 찾은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발견하고, 그 일에 적합한 준비된 일꾼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사도행전 6:7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잃어버린 영혼을 보내실 때 준비된 교회로 보내십니다.

        위기를 기회로 삼아 교회를 든든히 했기에 계속적인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일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교회를 건강하고, 든든하게 세워나가기를 기도합니다. 이제는 교회를 처음 시작했던 목회자 가정의 모습보다는 이 교회에 함께 하는 성도들이 잘 어우러지고, 주안에서 초대교회와 같이 건강한 일꾼도 세우고, 조직도 세우고 힘을 모아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준비된 교회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그 준비된 자에게 일만 맡기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위해 일하는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값진 것으로 우리에게 응답해 주시며, 우리를 인도해 주실 줄 믿습니다.

         

        기도

        하나님!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세워지고, 하나님을 위해 건강하게 교회를 섬길 일꾼과 조직과 섬김의 현장들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초대교회가 이를 통해 더욱 든든히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했듯이 인도에서 우리들을 통해 더욱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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