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22 역량

      날짜 : 2014. 01. 22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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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422일 창세기 25:27-34 능력과 역량

        매년 세계의 유명도시에서 수학 올림피아드가 열리고 전세계에서 1000여명의 중2학생들이 경쟁을 하면서 시험을 봅니다. 단 한 문제도 빼놓지 않고 푸는 학생이 많은 나라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긴 결과 놀랍게도 싱가포르, 한국,대만,중국,홍콩,그리고 일본의 순으로 나왔습니다. 세계의 모든 학생이 도전을 하지만 수학을 잘하는 상위권 학생은 대부분 아시아권 학생이라는 결론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 스타니슬라스 데하네의 저서 넘버 센스라는 책에는 영어권 나라들의 경우는 숫자를 세는 발음이 매우 길다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반면 위에 제시한 아시아 국가들은 상당히 짧습니다. 4,8,5,3,9,7,6을 우리는 20초안에 읽어 낼 수 있는데, 반면 영어는 좀 더 길게 발음해야 합니다. 십단위를 넘어가면 더 길어집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과 중국의 경우에는 네 살만 되도, 40까지 헤아립니다. 반면 미국 아이들은 고작 15까지 밖에 세지 못한다는 보고가 있습니다.

        말콤 글래드가 쓴 아웃라이어라는 책을 보면 위에서 제시한 수학올림피아드 상위 5개국은 공통적으로 쌀 농사를 짓는데, 이 쌀 농사라는 것은 많은 수확을 얻기 위해 한정된 땅에 머리를 잘 써서 자신의 시간과 노동을 잘 관리할 수 밖에 없는 삶을 살았고 그 결과로 지능이 뛰어날 수 밖에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유럽이나 서구권에서 들으면 기분 나쁘겠지만, 우리 아시아인들이 월등한 능력을 가진 부분은 이 외에도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능력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남들이 못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우대합니다. 그래서 능력이 많으면 사람들에게 대접을 잘 받고 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능력과 약간 비슷한 것 같은데 우리가 자주 쓰는 말 중에 역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역량((力量)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힘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 눙력과 역량을 조금 다르게 구별한 학자가 있습니다.

        하버드대학교의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능력(ability)은 말 그대로 우리 몸과 마음이 기능하는 수준을 말한다고 했고, 이런 능력을 7가지의 지능으로 설명하는데, 음악지능, 논리-수학적 지능, 신체-운동지능, 언어지능, 공간지능, 대인지능, 내성지능이 바로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개개의 능력이 아무리 훌륭하다 하더라도 그 능력을 자신과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적절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좀 더 포괄적인 무엇인가가 필요한데, 최근 학자들은 그것을 역량(competencies)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즘 기업에서는 신입사원을 뽑을 때 능력 있는 사원보다는 가진 능력을 주변 사람들과 자신의 환경에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역량이 있는 사원을 뽑도록 신경을 많이 쓴다고 합니다.

        우리 주위에는 정말 능력은 많은데 그 능력을 적절히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반면에 능력을 최대한 사용하여 이웃과 공동체에서 그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여 공동체를 살리는 사람들을 봅니다. 오늘 우리가 이 능력에 대해서 돌이켜 보고, 능력에을 사용하는 그 역량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하나님이 나에게 원하시는 역량이 무엇인지를 함게 살펴 보기를 원합니다.

        오늘 성경은 이 능력과 역량에 대해서 우리가 잘 이해하도록 두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그 이삭의 두 아들이 나오는데 이름이 에서와 야곱이라는 이름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두 형제는 나면서부터 싸움이 심했던 것 같습니다. 창세기 25:21,22을 보면 그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더니 그 아들들이 그의 태 속에서 서로 싸우는지라라고 했습니다. 태안에서 같이 있었던 것을 보니 쌍둥이라고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 25:24을 보면 그 해산 기한이 찬즉 태에 쌍둥이가 있었는데 먼저 나온 자는 붉고 전신이 털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하였고라고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쌍둥이 동생이 되는 아이도 보통은 아니였던 것 같습니다. 창세기 25:26을 보면 후에 나온 아우는 손으로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으므로 그 이름을 야곱이라 하였으며라고 하면서 나올 때부터 이 두 쌍둥이 형제의 관계가 복잡해 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구약성경 시대인 족장시대에는 맏아들에게 장자권의 능력이 주어집니다. 특별히 아브라함의 가문에서 장자권은 3가지의 특권을 가지게 되는데 첫째는 가나안 땅의 상속권을 받습니다. 둘째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을 권리, 그리고 셋째는 아들을 축복할 권리를 받게 되어집니다. 정말 장자로 태어난 것만으로도 엄청난 능력을 다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한두해 늦게 태어난 것도 아니고 불과 얼마의 시간으로 쌍둥이 동생으로 태어난 야곱은 이 장자권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를 어려서부터 조금씩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저도 어릴적 저희 외가친척이 다모이면 저하고 나이가 같은 사촌3명이 늘 같이 모입니다. 그런데 나이는 같은데, 한 아이는 큰 삼촌의 막내 아들인데, 소위 외가집의 장손입니다. 반면에 저는 저희 어머니가 8남매 여자 형제 막내입니다. 그 친구하고 저하고 항상 같이 다니고 같이 지내는데, 어려서부터 은근하게 차별을 당했습니다. 돌아가신 할머니도 본인의 제사를 지내 줄거라고 생각했는지 그 장손에게는 항상 화를 내지도 않고, 조심조심 대하셨습니다.

        친척들도 선물을 주면 그 집에 있는 그 아이에게 더 많이 주고 저는 거의 찬밥 신세였습니다. 어릴적 마음에는 작은 것도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명절날 선물을 주는데 그 아이에게는 장손이라 연필 종합세트를 주고, 저는 선물을 준비못했다고 나중에 준다고 외숙모가 이야기를 했는데 어린나이에 그게 얼마나 서운했는지 며칠을 펑펑운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야곱도 알게 모르게 어려서부터 자라면서 형 에서가 가진 장작권의 능력을 맛 보았을 것입니다. 별거도 아닌게 그저 그거 하나로 나하고 다르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열등감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항상 자신감에 차 있던 형 에서는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고, 야곱은 늘 형의 그늘에 묻혀 지냈는지, 조용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창세기 25:27을 보면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으므로 장막에 거주하니..”라고 했습니다.

        나면서부터 싸웠던 두 아이가 자라면서 이 아이들을 양육하던 부모도 조금씩 편가르기를 합니다. 아비인 이삭은 자신의 장자권을 이을 형 에서가 당시 사회에 맞는 능력인 사냥과 호탕한 성격이 너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인 리브가는 늘 형의 그늘에 가려진 동생 야곱에게 더 눈길이 같습니다. 같이 배아파 낳은 자식이라 그런지 약하고 연약한 아이에게 더 정이 많이 가는 것이 엄마의 마음인 것 같습니다.

        창세기 25:28을 보면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 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늘 빛을 못 보던 동생 야곱에게 기회가 찾아옵니다.

        야곱은 조용한 성격이라 그런지 조금 소심해 보입니다. 오늘 창세기 25:29을 보면 야곱이 죽을 쑤었더니..”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남성들이 자급자족하던 시대에 사냥을 하던지 뭔가 호텅한 일을 하는 당시 분위기와 맞지 않게 요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호탕하게 한바탕 사냥을 하고 돌아온 에서가 이 죽 냄새를 맡자 이성을 잃었습니다. 여러분 간혹 때 놓치면 이런 경우 많이 있지 않으십니까? 특별히 외국인에게 먹거리가 적절하지 않은 인도에서는 정말 배가 아주 많이 고풀대가 여러번 있지 않습니까? 덥기도 하고, 땀도 많이 흘리니, 시원하고 좋은데 가서 음식을 먹고 싶을 때가 여러번 있습니다. 그리고 너무 배가 고프면 정말 아무것도 안보일 때가 있지 않습니까? 아마 에서가 지금 그런 심정인 것 같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을 보면 야곱이 만든 죽을 붉은 것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이 붉은 것은 히브리 원어로 아돔이라고 불렀는데, 적갈색의 콩이나 팥으로 만든 죽을 이야기 하는데 오늘날도 시리아나 이집트에서는 이러한 죽을 먹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 죽이 에서에게는 당장의 배고픔을 사라지게 해 줄 너무나 중요한 것이였습니다. 이것만 먹으면 당자의 배고픔도 사라지고, 오직 그것 하나 외에는 그 어떠한 것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틈을 타서 동생 야곱이 형에게 본심을 드러냅니다. “형 그럼 내가 이 죽 줄테니까, 장자권 나한테 팔아라.....그게 뭐 중요해 지금 배가 고파 죽을 지경인데.......제발..”

        창세기 25:31을 보면 야곱이 이르되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 내게 팔라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형 에서가 쉽게 이 장자권을 야곱에게 줍니다. 그깟것 뭐가 그리 중요해, 그거 판다고 내가 뭐 바뀌나, 지금 배고파 죽겠으니, 장자권을 가지던 말던 어서 죽이나 줘라....아주 쿨한척 이야기를 했습니다. 창세기 25:32을 보면 에서가 이르되 내가 죽게 되었으니 이 장자의 명분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리요라고 그냥 쉽게 팔아버립니다.

        야곱은 장난 같은 일이지만, 그 동안 장자권에 빼앗긴 인생을 그 이름만이라도 되찾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 형 그럼 맹세해....거짓말 하면 안된다..” 창세기 25:33을 보면 야곱이 이르되 오늘 내게 맹세하라 에서가 맹세하고 장자의 명분을 야곱에게 판지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장자권을 팔아버린 형 에서에 대해서는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창세기 25:34을 보면 야곱이 떡과 팥죽을 에서에게 주매 에서가 먹으며 마시고 일어나 갔으니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가볍게 여김이었더라라고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을 너무 쉽게 포기한 에서의 이야기로 이 장은 마무리가 됩니다.

        이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는 것 같지만, 그 뒤의 창세기 부분은 형에게서 장자권을 약속받은 야곱이 진짜로 장자의 축복을 받고, 살아가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반면에 자신의 장자권을 쉽게 포기한 에서는 소위 그렇고 그런 인생, 거기서 거기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성경의 많은 내용의 이야기가 그 축이 야곱으로 이어지고, 에서는 정말 성경에서 별 볼일 없는 존재로 그럭저럭 사는 인생으로 나옵니다.

        에서는 장자권이라는 능력을 가졌었지만, 그 장자권이 주는 능력을 적절히 사용하는 역량을 맛보지 못했습니다. 반면 다른 사람인 야곱은 자신에게 찾아온 그 능력을 자신의 삶에 적절히 사용하면서 주변의 사람들과 자녀들에게 적절하게 사용하는 역량을 발휘 했습니다. 이스라엘 12지파의 근원이 되는 역사에 남겨지는 큰 인물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인, 성도라는 관계를 주님과 맺게 되면서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도 우리가 그 이름의 능력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이름의 능력을 주변 사람들과 적절하게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역량있게 사용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 주변에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그냥 에서와 같이 뭐 별거 있겠어...”라고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내가 가진 그리스도인의 역량을 마음껏 발휘해서 빛과 소금으로 이 땅에서 당당히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어떤 삶을 살기를 원하실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분명한 답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고 살 때가 너무나 많습니다.

        누가 이런 상상동화를 썼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이솝 우화의 토기와 거북이 경우 이야기, 이게 원래는 물에서 하기로 했던 시합이였는데, 그날 일정이 갑자기 바뀌어서 산에서 하게 되었다고....만약 이게 물에서 하게 되었다면 결과는 분명히 다르게 나왔을 것입니다. 거북이는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물에서는 토끼정도는 게임도 안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능력을 사용할 수 없는 산은 너무나 힘든 곳이었습니다. 자신의 역량을 잘 발휘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도 이 거북이처럼 자신의 능력을 잘 발휘를 못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순간순간 우리를 얼마나 도우시고, 위로해 주시고, 가르쳐 주시고, 힘들고 지칠 때마다 함께 해 주시겠다고 이야기하고, 능력이 부족할 때는 능력도 주시고, 필요한 것을 때를 따라 돕는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가 이것을 거의 망각하고 거북이처럼 지금 산을 오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곳에서 우리가 최대한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장소가 산인지, 바다인지도 구분 못하는 거북이처럼, 힘들게 갈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토끼가 꾀를 부려서 거북이가 어렵게 이기기는 했지만,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 인생 가운데 가장 최대한의 역량을 나타낼 수 있는 상황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역사하시고 주장하시는 하나님께 나를 맡기고, 나의 시간을 맡기고, 나의 삶을 맡기고 그분이 운행하시도록 맡기는 것이 가장 최선의 답입니다. 그것이 내가 이 땅에서 가장 최대한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나를 가장 나답게 살 수 있는 삶을 살게 해 주는 역량 있는 삶이 되게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내가 가진 능력을 하나님과 접붙임을 했느냐 안했느냐는 매우 중요한 변수입니다. 하나님의 그 엄청난 능력을 내가 잘 사용할 것인지, 아니면 내가 장자권을 판 다음에 그렇고 그런 인생이 된 에서처럼 살 것인지를 우리는 잘 구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에서는 평생을 먹을 것만 찾다가 인생이 마무리 됩니다. 반면 야곱은 능력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알고 자신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마음껏 사용했습니다. 평생 힘든 일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여 그의 역량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커졌습니다.

        이번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많은 능력 있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능력은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과 조화롭게 그 능력을 사용하면서 적절하게 자신의 능력을 펼치지 못한 사람들은 자신 뿐 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힘들게 하는 안타까운 결과를 보여 주었습니다. 능력은 있었는데 역량이 부족하여, 그 능력을 엉뚱한데 갖다가 쓴 사람들입니다.

        어느 잘 알려진 목사님이 자신에게 안타까운 일을 이야기 했습니다. 지금 교계에서는 꽤 알려져 있고, 이곳저곳 강의 나가고, 책 쓰고 방송 출연해서 불편하지 않게 잘 살고 있는데, 아쉬운 것은 자신은 국내용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영어 공부할 때 공부 안해서 너무 안타깝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영어만 공부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면 이 귀한 복음의 내용과 사역을 더 넓게 사용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할 수 있었는데..., 내 역량은 국내용이라고......

        여러분 지금 하시는 일과 생활 가운데 그 능력이 부족해서, 그 역량을 마음껏 발휘하지 못하고 계신 분은 없습니까? 이미 여러분은 넘치도록 능력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힘이 되어주시겠다고 하셨고, 항상 필요할 때마다 그 능력을 공급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 능력을 내가 역량이 부족해서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엉뚱한데 사용한다면, 그거야말로 정말 심각한 오류이고, 낭비가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귀하게 사용하는 사람들을 칭찬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3:8에는 빌라델피아 교회를 칭찬하는 말씀이 있는데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라고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이 인도 땅에서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최대한 드러내고 나타내도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대사로서, 이 땅에서 그 능력을 나타내도록 부름을 받았는데, 우리가 그 능력을 의심한다든지, 그 능력이 있는 것 조차를 망각한다든지, 그 능력을 묻어 놓고 산다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안타까워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신 그 능력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최대한 발휘하며 나타내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역량을 나타내는 모습이라고 이야기를 하십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만 살지 말고, 정말 하나님이 뜻하신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발견하고 그 일을 위해 나의 재능과 시간과 물질을 최대한 하나님께 드려서 그 분이 원하시는 삶으로 여러분의 능력을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그럴 때 여러분의 역량을 더욱 넓혀 주실 것입니다.

        야곱은 장자권이라는 능력을 자신의 삶에서 충분히 사용했습니다. 그 길이 엄청 고생이 되고, 광야였지만, 그의 가족과 후손들에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충분하게 자신의 역량을 사용했습니다.

        빌립보서 4:13을 보면 초대 기독교에서 가장 그리스도인의 역량을 잘 사용하였던 바울 사도의 고백이 있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 주님과 함께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주님의 능력을 이미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이 능력을 가지고만 있어서는 안됩니다. 이 능력을 우리가 우리의 이웃과 삶의 현장에서 사용하는 역량은 우리의 몫입니다. 이웃을 섬기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에 순종하며 우리의 역량을 드러내야 합니다. 능력만 있고, 그것을 적절하게 사용못하는 역량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능력을 쓰기 원하는 곳에 충분히 사용해서 여러분이 하나님의 축복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그 능력의 역량을 충분히 드러내는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우리안에 있는 능력을 소멸하지 말고, 환경에지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 품안에 안겨 능력 주시는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삶을 살아서, 우리의 그리스도인의 역량을 최 대한 발휘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 하나님의 교회되기를 기도합니다.

         

        나의 영혼이 :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는 그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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