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월 24일 출애굽기 10:1-11 모세와 바로가 다른 이유
우리는 주변에서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사람들의 배경도 다 다릅니다. 비슷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도 많이 만나지만, 전혀 다른 배경의 삶을 살았던 사람도 만나게 됩니다. 오늘 성경에는 비슷한 배경들을 경험했지만 아주 다른 삶을 살았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의 이름은 모세와 바로라는 사람입니다.
이 두 사람은 이집트 애굽이라는 배경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애굽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 가운데 하나인 북동 아프리카에 자리를 잡은 나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스핑크스를 연상하면 잘 기억될 나라입니다. 이 피라미드는 이집트 왕의 무덤으로 최대로 큰 것은 사방 230.4m, 당초의 높이 약 146.6m(현재의 높이 137.8m)가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실제로 피라미드에 가서 서보니 그 돌 하나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크기를 가지고 있어서, 그 많은 사람들을 동원해서 과거에 이런 일을 했다고 한다면 엄청난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등장하는 바로라는 이름은 ‘파라오’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으로 애굽을 통치하는 사람을 가리킬 때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과 관계를 맺은 것은 요셉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형들에게 팔린 요셉이 애굽의 총리까지 올라가고, 당시 긴 흉년으로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모든 가족을 데리고 애굽 땅으로 이주하고 고센이라는 지방으로 정착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의 기록을 보면 초기에는 굉장히 환대를 받았으나 점점 어려워져서 천대를 받고, 나중에는 노예의 위치로 전락을 합니다. 사회적 지위도 무척 낮았고, 천박한 삶과 강제노동에 계속 동원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이 시기에 대한 이야기가 출애굽기에 나오고 그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모세와 바로가 등장을 합니다. 모세의 경우는 사실 이 애굽의 왕족과 관계가 없었던 사람이였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태어날 당시에 애굽 정부는 이스라엘 사람들 가운데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모두 죽이라는 법령을 내렸고, 이를 피해 나일 강 갈대 숲에 버려진 것을 바로의 딸이 목욕을 하러 나왔다가 모세를 보고, 너무나 준수하게 생긴 아이라 이 아이를 죽이지 않고 왕궁으로 데려갔고, 왕궁에서 40년간 살았습니다. 출애굽기에서는 모세의 이 어린 시절에 대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사도행전에서 스데반 집사가 이야기 한 것을 빌리면 모세는 “애굽 사람의 학술”을 다 배웠고, 또 뛰어난 언변과 지도력을 갖추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거기다 바로 공주가 볼 때 준수한 아이였다고 하니, 외모도 아주 출중했던 것으로 짐작이 되어지고, 최고의 교육에, 최고의 왕실 집안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역시 모세와 다르게 순수 애굽의 혈통만으로 왕실에서 자라서 정말 어려서부터 왕위 계승을 위해 최고의 교육을 받은 최고 지식의 사람이였을 것입니다. 그런점에서는 모세와 바로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애굽 당시에 이들의 만남은 정반대로 만나게 됩니다.
출애굽이란 말 자체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 생활에서 풀려 나온 사건을 가리키는데, 이 당시 바로는 이 이스라엘을 노예로 삼고 괴롭히는 통치자였고, 모세는 그들에게서 고통을 받는 노예들을 대표하는 지도자였습니다.
바로는 모든 권력과 힘과 재정을 가지고 있었지만, 모세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습니다. 가지지 못한 걸로 보면 모세는 자기 백성들에게서도 변변치 않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였습니다. 성경을 읽어보면 같은 배경은 있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먼저는 성격차이가 분명합니다.
바로는 말 바꾸기 선수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리도록 요청을 하지만 그때마다 계속 말을 바꿉니다. 10가지 애굽 초유의 국가적 대 재앙을 경험하면서도 순간순간 말바꾸기를 쉬지 않고 합니다. 얼마나 진을 빼는지 모릅니다. 출애굽기 7:13에 나온대로 “출애굽기 7:13 그러나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여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 ”라고 한 표현이 출애굽기에는 여러번 나옵니다. 정말 강심장입니다. 한가지 재앙만 와도 엄청난데 그 엄청난 재앙을 겪고 겪고 또 겪어도 결코 흔들리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10장에는 메뚜기 재앙이 아옵니다. 출애굽기 10:5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면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너희를 위하여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이 메뚜기 재앙은 중동 아프리카에서는 가장 무서운 재앙으로 이 메뚜기떼가 지나가면 모든 것을 다 먹어버립니다.
1평방미터, 1m*1m의 면적안에 보통 150,000만 마리가 지나간다고 이야기하는 학자들의 이야기가 있는데, 모든 씨앗과 먹거리들이 다 싹쓸이 되는 것입니다. 애굽은 매년 나일강이 흘러 넘치는 일이 반복되어 부담은 되었지만, 그 물들이 흘러 넘침으로 땅을 비옥하게 해서 항상 풍요의 상징이 될 정도의 나라였습니다. 당시에 애굽의 부는 최고였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그런데 그 국가가 완전히 초토화가 되었습니다. 이런 재앙이 한 번도 아니고 열 번이나 지나가도 바로는 정말 완강합니다. 자기의 잘못된 고집으로 나라가 완전히 쑥대밭이 됩니다.
모세와 바로를 비교함에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합니다. 바로가 약속을 자꾸 어기고, 거짓말을 하고, 말 바꾸기로 자기의 자존심만을 지켜 나갈 때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자기가 왕이면 자기의 백성을 지켜야 되는데, 왕이라는 것을 잃고 자기 자신의 그 잘난 자존심을 지키다가 나라 전체를 망하게 하는 공공의 적이 되었습니다.
출애굽기 10:7을 보면 바로의 신하들도 왕을 말립니다.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고 ” 말립니다.
애굽 왕국에서 배운 최고 엘리트이지만, 모세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반면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그 말씀 대로 살려고 무던히 애를 썼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비천한 노예 출신들을 이끌면서 애굽 왕조에 정면으로 맞선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바로도 강심장이지만, 사실 이 점에서는 모세 역시 강심장입니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로 될 줄 믿고 그대로 나아갑니다.
바로는 자기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온 백성을 멸망으로 가게 했는데, 모세는 자기의 자존심은 내려 놓고 온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위험과 위기를 정면으로 나아갔습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이 애걸해야 되는 상황인데도 그렇지 않고 담대하게 나아갔습니다. 똑같이 최고의 교육을 받은 사람인데, 살아가는 모습은 정반대입니다. 한 사람은 백성을 모두 멸망하게 하고, 한 사람은 백성 전체를 살리는 일을 합니다.
적용)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렇게 대조되는 삶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없습니까? 좋은 환경과 배경에서 자라서 잘 교육을 받고 남부럽지 않게 다 가지고 있는데, 정작 자기 자존심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모든 것을 가지고 남을 위해서 공헌하는 사람이 있지 않는지 우리는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난주에 우리나라에 아주 큰 일이 있었습니다. 김용이라는 좀 낮선 이름이 계속 검색어 상위에 랭크가 되었습니다. 이 분은 미국의 다트머스대학교에 총장으로 계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 다트머스대학교는 1769년에 세워진 대학으로 현재 미국 대학 순위 11위, 전세계 대학 순위 99위인 미국 아이비리그 6번째의 대학입니다. 2009년에 아시안인 최초로 김용이라는 분이 이 대학의 총장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 당시에도 엄청난 일이였습니다. 그런데 2012년 3월 23일 오전에 미국 백악관에서 바락 오바마 대통령이 세계은행 총재로 이 김용 총장을 내정해서 전세계에 발표를 했습니다. 이 세계은행은 제2차 세계 대전(第二次世界大戰) 이후의 경제 부흥과 개발 도상국의 개발을 위하여 장기 자금의 제공을 목적으로 설립한 국제 은행인데 UN, IMF(국제통화기금)과 더불어 빅3대 국제조직입니다. 이번 김용총장의 세계은행 총재 내정을 두고 세계의 3대 조직 가운데 하나인 정치에서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그리고 경제계에서 세계은행 총재에 김용 총장이 내정되어 세계를 움직이는 권력의 핵심에 한국인들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기사평을 보도했습니다. 이 김용 총장의 이력을 보면 화려합니다. 1959년 생으로 서울에서 출생하여 1982년 미국 브라운대를 졸업하고, 1991년 하버드 의대를 졸업하였는데 그의 이력에는 1996년에는 하버드 대학교에서 감염질병 및 사회변혁 프로그램 국장을 2004년에는 죽음의 병이라고 부르는 세계보건기구 에이즈 담당 국장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그 분에 대한 일반인의 평을 들어보면 “김용 총장은 평생을 저개발국가에서 다제내성결핵과 에이즈에 걸린 극빈층 환자에 대한 정책 개발과 저렴한 치료제 공급에 힘써 오신 분”이라고 평가를 하고 있습니다.
이분은 나이도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1959년생이면 53세입니다. 앞으로 세계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습니다.
반면에 비슷한 지위를 가지거나 배경을 가진 사람이지만, 항상 자기만을 위해서 살다가 안타까운 인생을 사는 사람도 많이 봅니다. 최근에는 48세의 미국의 팝가수 휘트니 휴스턴이 마약과다복욕으로 욕실에 빠져서 익사한 사고가 있었습니다. 휘트니 휴스턴은 세계 최고의 가수입니다. 수상1999년 제42회 미국 그래미 어워즈 최우수 여성 R&B 보컬상, 1994년 아메리칸 뮤직어워드 최우수 여성 R&B보컬상,1994년 아메리칸 뮤직어워드 최우수 여성 팝앨범상을 받았습니다, 휘트니 휴스턴의 데뷔앨범은 세계 여성들 가운데 가장 많이 팔린 1억 4000만장이 팔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혼 이 후 가정 생활에서 누수가 생기면서 결국 자신의 인생이 더 꽃피기 전에 생애를 마감했습니다.
적용2) 우리 자신의 평가는 이제 우리 자신이 내려야 합니다. 한 번 밖에 없는 우리의 인생을 제 몸가누기도 못해서 바로나 휘트니 휴스턴처럼 비참하게 끝나든지, 아니면 모세와 김용 세계은행총재 내정자와 같이 남을 위해서 정말 우리의 인생을 의미있게 살 것인지는 이제 여러분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어린이 청소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별로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나중이 되면 반드시 차이가 납니다. 자기 몸도 못 가누고, 사람들의 비판을 받으며 살 것인지, 아니면, 정말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을 의미 있게 살 것인지를 우리는 분명하게 목표를 정하고 살아야 할 것입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모세의 길입니까? 아니면 바로의 길입니까?
또 하나 바로와 모세의 분명한 차이는
바로는 스스로 하나님이 된 것처럼 착각을 하고 살았습니다. 반면 모세는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모세가 그처럼 열악한 상황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모세와 바로를 분명하게 갈라 놓는 분명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이를 좀 더 다르게 표현하면 ‘자기가 최고인 사람’과 ‘하나님이 최고인 사람’으로 구별이 될 수 있습니다. 전자는 자기 인생만을 위해서 살다가 죽습니다. 우리 주위에도 그런 사람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간혹 부럽기도 합니다. 그런데 어느 누구도 그의 존재에 대해서 소중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냥 지나가는 한 사람으로만 살아갑니다. 그런데 자기를 창조하고, 그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의 사람을 드리며 하나님이 최고인 사람으로 사는 사람은 분명하게 다릅니다. 주변에서 항상 그 사람을 귀중히 여깁니다. 하나님도 그를 귀중히 여깁니다.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여러분 바로는 이렇게 분류하면 있으나 마나한 사람이 아니라 없어졌어야 할 사람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구분되어진다면 어디에 속하고 계십니까?
꼭 있었으면 하는 사람....
있으나 마나한 사람...
없어도 될 사람..
꼭 없어야 될 사람...
이제 여러분의 삶을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게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살아가시기를 기대합니다. 그래도 난 모세하고 바로처럼 왕실 교육도 없었어, 난 외모도 안되 이것저것 다 안돼...난 나이도 많아....등등으로 주저 앉지 마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 10:10을 보면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더욱 풍성하게 우리의 삶을 붙들어 주시려고 합니다.
인도에서 교회를 섬기니 한국에서보다 더 좋은 재능과 실력과 학력을 갖추신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이 분들이 정말 하나님 앞에 잘 준비되어 잘 쓰여졌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이 있습니다. 하시는 일들을 보면 정말 비전이 있습니다. 정말 옥토입니다.
인도라는 열악한 상황에서도 잘 이겨나가는 훌륭한 분들입니다.
이제 선택은 여러분이 하시는 것입니다.
바로도 왕실이라는 옥토에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옥토에서 모든 것을 파괴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반면 모세는 환경이 옥토는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을 붙잡고 그 환경과 이스라엘 백성을 옥토로 나아가게 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장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가며 정말 주님안에 꼭 필요하고, 의미있는 삶의 시간들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는 좀 아이러니 합니다. 깊게 생각해야 이해가 됩니다.
이 모세와 바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우리가 “모세처럼 살자, 바로처럼 살면 안돼”라는 생각을 가지며 중요한 사실을 하나 놓친 것입니다. 진짜 중요한 하나님의 교훈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놓칩니다.
출애굽기 10:1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라고 이야기 합니다. 사실 바로가 이렇게 완강했지만, 그렇게 완강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좀 아이러니 합니다. 그럼 이제까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볼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10:2을 보면 하나님이 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 주고 계십니다.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 라고 하셨습니다. 사실 이렇게 큰 재앙을 주면서 큰 일을 하신 것이 애굽에게 교훈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진정한 교훈은 바로도 아니고 모세도 아니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기 위함이였습니다. 이 이스라엘 백성이 나중에 이렇게 힘들었던 과정속에서도 역사하신 하나님을 잊고 살까봐 하나님은 후손들이 이 사실을 기억하여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기 위한 가르침이 진짜 목적이였습니다. 나중에 이스라엘 백성을 보면 이렇게 은혜를 체험하고도, 금새 잊어버립니다. 또 우상을 만들고, 예수님이 직접 오셨을 때에도 결국 십자가에 못박아 죽여 버립니다.
참 못 말리는 백성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묵상해보니 진짜 중요한 것은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그렇게 체험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고도 항상 하나님의 뜻대로 산다고 했지만, 나의 삶은 여전히 바로처럼 살고 있습니다. 모세처럼 사는 사람도 보고, 하나님의 사역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면서도 나하고는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알았으면 그 은혜의 하나님을 온전히 따르는 삶으로 우리의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 하는데, 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하면서 아직도 자기 중심적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인생의 진정한 방향과 목적을 정하지 않고, 지금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출애굽기의 그 장대한 내용과 이야기는 사실 바로처럼 강팍하고 완악한 나를 위해서, 나를 일깨우시기 위한 하나님의 오래전부터 계획된 말씀입니다. 이 모든 이야기와 내용이 고대의 한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주님이 하고 싶으신 말씀입니다. 주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우리가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는 모세와 같은 삶을 살기를 주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이 삶을 위해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시며 주님과 함께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모세와 바로의 삶은 출발은 같았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분명하게 달랐고, 한 사람은 공공의 적으로 한 사람은 백성을 살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오늘 우리를 붙들어 주사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붙들어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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