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예배

      날짜 : 2014. 01. 22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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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34일 골로새서 3:16,17

         

        요셉 케이보는 체코슬로바키아가 공산주의 통치하에 있을 때 아주 유명했던 인물입니다. 아버지는 학교에서 공산주의를 가르치는 교사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어릴 때 그는 주일 아침이면 3시간동안 기차를 타고 프라하로 갑니다. 교회에 가서 2시간30분동안 예배를 드립니다. 예배를 마치면 공원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점심을 먹은 후에 다시 2시간30분의 예배를 드리기 위해 교회로 다시 갑니다. 그리고 3시간 걸려서 다시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힘을 쏟아야 예배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1주일에 예배 한번 드리는 것이 이렇게 소중한 일입니다. 한번의 예배를 위해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예배를 드리러 가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예배하기를 기뻐해야 합니다. 예배하러 가는 것은 그 자체가 가치입니다.

         

        80년대 말경 구 소련의 어느 도시에서 이삭 목사는 한 비밀 예배처를 탐방할 기회를 얻었다고 합니다. 예배처에 가보니 예배를 드리기 전부터 성경 통독을 하면서 울던 성도들은 예배가 시작되어서도 울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낡은 풍금으로 반주를 하는 단 몇 명뿐인 성가대의 송영도 울음 때문에 제대로 나오지 않고 회중의 찬송 소리에도 울음이 섞였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나 성찬을 나눌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배를 마친 후 그렇게 울면서 예배를 드린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 그것이 이 세상에서 드리는 마지막 예배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라고 한 사람이 대답을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어느날 갑자기 KGB에 잡혀가서 20년 혹은 30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했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운 환경에서 주일마다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우리는 고난 속에서 목숨을 걸고 감격적으로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있다는 사실에 대해 어떤 느낌을 가집니까?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5: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22:27)

         

        예배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며 예배하는 데 지장 되는 것은 모두 배제해야 한다.(아더 스텐리)

         

        보잘 것 없는 인간이여, 이제 나아오라. 잠깐 동안이라도 당신의 일을 피하라. 당신의 혼란스러운 생각으로부터 떠나 조그만 장소로 피하라. 잠깐 동안 만이라도 당신의 시간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 안에서 편히 쉬어 보라.(성 안셀름)

         

        예배 시간에 습관적으로 빠지는 사람 치고 조만간 자신이나 그의 가족에게 슬픈 일이 생기지 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헨리 W. 벨로즈

         

        제일 먼저 하나님께 예배드려라 기도하는 것을 망각한 사람은 좋은 내일이나, 좋은 날을 기대할 수 없다. (T. 랜돌프)

         

        나의 말은 하늘로 올라가고, 나의 생각은 이 땅에 머무는 구나. 생각이 없는 말은 결코 하늘로 올라가지 않는다. (월리엄 셰익스피어)

         

        사람에게 내리는 재앙 주 예배의 손실보다 더 큰 재앙이 무엇이란 말인가!(토마스 칼라일)

         

        평양 어떤 공장 지하교회 성도들이 기도회를 갖고 있을 때다. 이들에게는 성경이나 찬송가가 없으므로 종이 쪽지에 성경 귀절을 적어서 돌려가며 읽고 입만 벙긋벙긋 벌리며 찬송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노동당 반장이 뒤에 와서 서 있는 것도 모르고 열심히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소리 없는 찬송을 부르고 있는데 그 반장이 다가와 `동무들, 무엇하고 있는 거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한 대담한 여공 성도가 `우리는 지금 독보회를 하고 있소. 동무도 같이 앉아서 안하시려오?`라고 했습니다. 영문도 무르고 그 반장은 한참 앉아 있다가 `동무들이나 많이 하소`라고 하고는 가버렸습니다. 그 순간 이들은 그 반장의 눈을 어둡게 하여 그들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눈물로 감사했습니다. 그들은 때로는 눈을 뜨고 기도드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이토록 생명을 걸고 드리는 성도들의 예배와 수만 명이 모였으나 마음은 세상에 가 있는 형식적인 예배가 있다면 하나님은 과연 어느 것을 기뻐 받으시겠습니까? 우리는 자유롭게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는 데도 이를 소홀히 한다면 분명히 그때를 그리워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시편 202절에 보면 성소에서 너를 도와주시고 시온에서 너를 붙드시며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나오는 자를 좋아하시고, 사랑하시고, 도와주십니다. 시온에서 늘 우리를 붙들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집에 나오는 것입니다. 교회는 참으로 신령하고 신비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집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축복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을 주셨습니다. 성전을 귀히 여기며 성전을 사랑하고 성전에 가는 것을 기뻐했던 개인, 가정, 민족 모두 인류 역사상 크게 쓰임을 받았습니다. 어디에 축복이 있습니까? 어디에 기쁨이 있습니까? 성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데 있습니다

         

        오늘 성경은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성경은 예배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육신이 좋아하는 먹는 것이나, 운동이나, 노는 것이나,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배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가장 좋아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바로 하나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이곳에 나오셨으니 얼마나 축복된 존재들입니까? 하나님이 크신 복을 내려주실 줄로 믿습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께서 이렇게 좋아하는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나님이 더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는지

         

         

        어떤 집사님은 교회에서 집사 직분까지 받았으나 교회 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너무 지겨워했습니다. 그는 주일 날 아침만 되면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예배를 드리지 않을 궁리만 했습니다. 하루는 여보, 오늘 우리 두 사람 중에 당신이 대표로 교회 가서 예배를 드리구려. 나는 대표로 남아서 집을 볼게.”라고 하면서 아내 혼자만 보냈습니다. 그는 예배 시간에 집에 혼자 남아 낮잠을 자다가 문득 꿈을 꾸게 되었습니다. 꿈속에서 그는 아내와 함께 천국 문 앞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문을 지키고 있던 천사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지요? 그럼 대표로 한 사람만 천국에 들어오시오!” 집사님은 소스라치게 놀라 꿈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예배를 지루하게 여기며 자원해서 드리기를 거부한 죄를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후로는 다시는 예배에 빠지지 않고 성도의 의무를 충실히 감당하는 사람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배를 가볍게 여기고 방해한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결국 심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한평생 사는 동안 예배를 통해 주님을 친히 뵙고 교제하는 일을 무한한 특권으로 여겨야 합니다.

         

        오래 전 토요일 밤이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다시 서재로 가려는데 마침 아이들이 컴퓨터로 오락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아이들 틈에 끼어 잠시 오락을 즐겼다. 고작 15분 정도였다. 그리고 다시 서재에서 주일설교 준비를 계속했다. 다음 날 아침, 예배당에 들어가서 눈을 감았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눈을 감는 순간, ‘하는 소리와 함께 내 눈앞에 전자오락의 화면이 펼쳐진 것이다.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지만, 나는 그 순간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나는 목사다. 그리고 주일 1부 예배가 시작되기 전, 금요일 오후부터 근 40시간 동안 주일예배를 준비하면서 마음을 가다듬는다. 40시간에 비하면, 내가 전자오락을 즐긴 15분은 무시해도 좋을 만큼 짧은 시간이었다. 그런데도 그 짧은 15분 동안의 영상이 나도 모르게 주일 아침까지 내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다면, 아무 준비 없이 주일예배에 참석하는 교인들의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토요일 밤에 그 이튿날 드릴 흠 없는 예배를 위해 기도로 준비하는 사람의 예배와, 12시가 넘기까지 TV를 시청하는 사람의 예배가 동일할 수는 없다. 예배 시간 전에 미리 예배당에 나와 기도로 예배를 시작하는 사람의 예배와, 예배가 시작된 후 허겁지겁 달려와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의 예배가 동일할 수도 없다. 예배는 준비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예배는 예배당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다. 예배는 그대가 그대의 집에서 예배를 준비하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새신자반/ 이재철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우리 가족은 애완견을 키웠다. 가족은 들판에서 개와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기에 개털에서 진드기를 찾아내는 것은 우리의 일상이었다. 만일 진드기를 본 적이 없다면, 당신은 참 행운아다. 진드기는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도 있지만 파리만 한 것도 있는데, 참으로 넌더리가 나는 것들이다. 조금 전문적으로 말하면, 그것들은 거미나 전갈과 같이 거미류에 속한다. 어쨌든 백과사전에서 그들의 삶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무언가를 붙잡을 수 있는 그들의 앞발은 기생하는 동물이나 식물에 올라타기 쉽게 한다. 그들은 숙주의 몸에서 안전한 장소를 재빨리 찾아내어 입 부분을 살 속에 넣고 빨아먹기 시작한다. 그리고 배가 부르면 숙주를 떠난다"(내 삶의 방식이 이런 ''''에 속하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엄청나지 않은가! 자신들이 살아갈 만큼만 기생하다가 필요가 채워지면 떠나서 새로 시작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이런 식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산다. 주일 아침이면 교회에 가서 다음 주일까지 살아갈 만큼만 하나님께 생명을 얻은 다음, 남은 6일 동안 하나님을 무시하면 된다. 당신은 어떤가? 때로 하나님을 그냥 방문할 뿐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당신의 거처가 되시는가? 당신이 예배 인도자라면 예배 사역 때문에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할 따름인가, 아니면 당신은 실제로 주님이 머무시는 본향이 되는가?

        -예배자가 알아야 할 60가지 메시지/ 탐 크라우터 외

         

        켄터키의 한 고등학교를 다닐 때, 나는 교향악단에서 오보에를 연주했다. 지휘자가 연주곡을 발표하면, 우리는 각자 주중에 연습을 해야 했다. 따라서 악보를 집으로 가져갔다. 다음 연습 때 합주단이 얼마나 잘 연주하는지는 각자가 집에서 얼마나 연습하느냐에 달려 있었다. 예배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하이드 파크에 있는 연설대에 가서 여기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백 명의 사람을 세워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싶어요라고 한다면 말이 안 된다. 우리가 예배하러 모일 때, 하나님은 회중 속 각 사람 가운데 계시는 성령의 임재를 찾으신다. 위대한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는 귀가 너무 좋아 네 번째 줄 5번 바이올린 연주자가 약간만 음을 다르게 연주해도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도 우리를 이처럼 세밀하게 아신다. 우리는 그분을 속이거나 기만할 수 없다. 일주일에 6일을 엉망으로 살다가 주일에만 경건하게 행동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교회가 아무리 부흥할지라도, 각 교인이 삶에서 지휘자의 악보를 따르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오케스트라가 내는 소리는 각 악기 소리를 합한 것보다 크지 않다. 우리의 예배도 각자가 자신의 악보를 정확히 따르는 합주여야 한다.

         

        -예배에 숨겨진 비밀/ R. T. 켄달

         

        한 수도원의 새벽 예배 시간이었습니다. 수도원장은 남들보다 1시간이나 일찍 나와 예배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신참 수도사가 수도원장에게 인사를 하며 들어왔습니다. 예배를 준비하기 위해 시간보다도 일찍 나온 수도사가 기특했던 수도원장은 웃으며 말을 건넸습니다.

         

        아직 시간이 되려면 멀었는데, 무슨 일로 이렇게 일찍 왔는가?”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왔습니다. 같은 방의 친구들은 모두들 자고 있지만 이렇게 저는 일찍 일어나 하나님을 경배하려 합니다.”

         

        그러자 수도승의 대답을 들은 원장은 금방 얼굴이 굳어졌습니다.

         

        자네는 그냥 다시 돌아가 잠을 자는 편이 좋겠네.”

         

        ?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부지런을 떨며 형제들을 낮추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네.”

         

        수도원장의 말을 듣고 경배의 의미를 올바로 깨달은 수도승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언제나 남을 먼저 세우는 겸손한 자세의 훌륭한 수도승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라는 명목으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올바른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율법보다 사랑을 우선으로 생각하셨습니다. 자신보다 남을 세워주고 사랑하십시오.

         

         

        * 기도: 주님! 외식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시고 언제나 진실하게 하소서.

         

        * 묵상: 보여주기 위한 선행을 하지 마십시오. 나보다 남을 먼저 세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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