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월 29일 베드로후서 1:10-11 당당하게 사는 이유
자신감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어떤 일을 함에 이 자신감만 있어도 많은 일을 이룰 수 있는데, 이 자신감을 상실하여 주저하다가 아예 일을 시작해 보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60년대 주먹세계를 주름 잡았던 김두환씨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출연하여 사회자로부터 “어떤 사람이 잘 싸우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걸걸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 “싸움은 빠른 놈이 잘하지, 그런데 빠른 놈은 힘센 놈을 못 당하고, 힘센 놈은 기술 좋은 놈 못 당하고, 기술 좋은 놈은 배짱이 센 놈을 못 당한다”고 했습니다. 이 ‘베짱이 센 놈’은 바로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도 이 베짱이 두둑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누가 이 베짱이 두둑한 사람이겠습니까?
저는 이 베짱이 두둑한 사람을 ‘다윗’이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무엘상 17:4을 보면 골리앗이 나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진영에서 싸움을 돋우는 자가 왔는데 그의 이름은 골리앗이요 가드 사람이라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라고 했습니다. 규빗은 또 뭡니까. cm도 inch도 아니고, 규빗은 팔꿈치에서 손가락 끝가지의 길이를 말한다고 해요. 고대 사람들의 신장을 고려했을때 팔길이는 444.5mm 정도 라고 한다면 1규빗 = 444.5mm 로 환산할수 있습니다. 센티미터로 하면 약 45센티미터, 45*6=270인데 여기에 한 뼘 정도라니, 약 15센티미터를 더 넣으면 2미터 85센티나 되는 엄청난 크기의 적수였습니다. 성경에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이 거대한 사람이 등장할 때 아마 별명을 붙인다면 “적수가 없다”,“대적불가”라는 별명을 붙일 수 있는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다윗은 정규군도 아니고, 그저 전쟁에 나온 형들의 음식을 가져다주기 위한 잔심부름꾼으로 이 상황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리고 특히 이 골리앗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에 무척 크게 분노를 했습니다. 분노로 그쳐야 될 때인데 다윗은 베짱이 두둑했습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 골리앗을 자기가 가서 한 번 싸워보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말도 안되는 게임입니다. 그런데 아까 김두환이라는 유명한 주먹세게의 사람이 말한대로 빠른 놈도 아니고, 힘센 논도 아닌데, 오직 하나님을 믿는 베짱 하나로 다윗이 싸움장에 나아갑니다. 지면 몆대 맞고 오는게 아니라 자기가 죽습니다. 그리고 전장에 나온 형도 죽고,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가 죽게 될 엄청난 싸움입니다. 이 정도 분위기라면 왠만한 강심장이 아니면 그 자리에 서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 자리를 겁 없이 나갑니다. 그리고 싸움에 필요할 것이라는 갑옷과 장비도 적절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엘상 17장 39,40절을 보면 “다윗이 칼을 군복 위에 차고는 익숙하지 못하므로 시험적으로 걸어 보다가 사울에게 말하되 익숙하지 못하니 이것을 입고 가지 못하겠나이다 하고 곧 벗고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블레셋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 라고 했습니다. 정말 폼도 안나고, 거시기 했습니다. 볼품이 없었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이렇게 베짱이 두둑했던 이유는 단 하나였습니다.
그는 이 상황을 하나님이 아시고, 자신이 양을 칠 때 무서운 짐승으로부터 지켜 주신 하나님을 분명하게 확신하고 있었고, 전쟁에서 사용하는 칼을 가지고 가면 아무래도 칼을 사용하는 기술이나 팔 길이 등의 신장으로는 상대가 안될 것이지만, 자기가 가지고 나간 이 돌맹이라는 무기로 볼 때 이것은 목표가 작은 것보다 큰게 맞추기가 더쉽습니다. 골리앗이 2미터 85센티미터의 엄청난 장수로 보인게 아니라 다른 사람보다 더 맞히기 쉬운 목표라는 자신감이 붙은 것입니다. 결국 그 자신감이 어떤 결과를 보여 줄지는 여러분이 잘 알 것입니다. 다윗이 목동 때만 이렇게 베짱이 두둑했던 것은 아닙니다.
나중에 사울왕에게 등용되어 장수로서 일을 할 때 사울왕보다 인기가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사울왕이 미친 듯이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다윗이 다급해져서 동굴에 숨어다니며 최악의 삶으로 전전긍긍해 나갈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벌어집니다.
사무엘상 24:3,4을 보면 “사울이 온 이스라엘에서 택한 사람 삼천 명을 거느리고 다윗과 그의 사람들을 찾으러 들염소 바위로 갈새 길 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 굴 깊은 곳에 있더니 ..”라고 했습니다.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이 컴컴한 굴속에서 바로 자기 앞에서 용무를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방이면 분명히 끝납니다. 이제 제법 칼도 쓸줄 알아서 한방이면 죽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쿨하게, 아주 베짱 좋게 살짝 사울의 옷자락만 베고 맙니다.
사무엘상 24:6을 보면 “자기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하고 ” 그냥 죽일 수 있었다라는 흔적만 남기고 죽이지 않습니다. 다시 자기를 죽이러 올 수 있고, 자기 뿐만 아니라 당시에 다윗을 따르는 사람도 적지 않았는데, 그냥 쿨하게, 베짱이 두둑하게 그냥 놔둡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하실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상 30장에도 다윗이 다른 전쟁에 나갔을 때 아말렉이라는 사람이 공격하여 성을 불사르고 가족들을 다 포로로 잡아 갔습니다.
사무엘상 30장 4절-5절을 보면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성읍에 이르러 본즉 성읍이 불탔고 자기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사로잡혔는지라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다윗의 두 아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과 갈멜 사람 나발의 아내였던 아비가일도 사로잡혔더라) 이 상황은 사실 다윗에게 가장 위태할 때 였습니다. 사무엘상 30장 6절을 보면 “백성들이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라고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다윗은 결코 흔들리지 않고, 이 힘든 상황에서도 베짱이 두둑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한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일생일대의 최대 위기이지만, 침착하게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회복시킬 것을 알았습니다. 사무엘상 30장 18절-20절을 보면 “다윗이 아말렉 사람들이 빼앗아 갔던 모든 것을 도로 찾고 그의 두 아내를 구원하였고 그들이 약탈하였던 것 곧 무리의 자녀들이나 빼앗겼던 것은 크고 작은 것을 막론하고 아무것도 잃은 것이 없이 모두 다윗이 도로 찾아왔고
다윗이 또 양 떼와 소 떼를 다 되찾았더니“ 라고 했습니다.
다윗의 일생을 보면 골리앗 앞에 섰을 때나, 사울왕이 죽이려 할 때, 아말렉이 와서 자신의 백성과 가족을 다 잡아갔어도, 다윗은 결코 겁먹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좀 속된 표현이 많이 나오는데 소위 쫄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저는 이 다윗의 모습을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과 연결을 시키려고 합니다.
베드로 후서 1:10-11을 보면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면 넘어지지 않고, 항상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베드로 후서가 쓰여진 시기에 로마의 네로 황제가 로마의 화재의 원인을 기독교인으로 지목하면서 엄청난 핍박이 있게 될 그 전후라고 성경학자들은 말해 주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를 앞두고 앞으로 당할 고난이 있지만, 그 어려운 시기를 당당하게 맞서라고 교인들을 권면하고 위로하는 내용이 이 베드로 전,후서입니다. 히브리서 11장 36-38절을 보면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들을 부활로 받아들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심한 고문을 받되 구차히 풀려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으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니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이 세상을 감당치 못할 정도의 강심장과 베짱이 있었던 사람들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 강심장과 베짱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온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건히 했을 때만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이 베짱과 강심장이 필요합니다.
인도에서 우리가 뭔가를 하려고 하니 항상 상당히 불안합니다. 사업을 벌이려고 해도 벅차고 항상 뒤를 따라다니면서 우리를 불안하게 합니다. 특별히 인도라는 땅에 오니 새롭게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당장 밖에 나가면 말도 잘 통하지 않고, 그래서 말을 배우려고 해도 도무지 겁이 나서 말을 못할 것 같습니다. 한 번 시도했다가 크게 뒷감당을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주저 앉아서 회복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골리앗도 많고, 사울도 많고, 다윗의 심복들이 다윗을 죽이자고 할 정도의 다급한 상황이 내 주변에서 항상 도사리고 있습니다. 인도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언제 나와 우리 가족을 배반하고 힘들게 할지 모릅니다.
회사나 사업에서도 일을 안하면 별로 말이 없는데 꼭 이상하게 일을 시작하면 말이 나기 시작하고, 그런 일을 자주 겪다보면 침체되기 쉽고, 자신감을 잃습니다.
암을 고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분석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니, 정말 대부분은 의학적으로는 가망이 없는 사람들이였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암에서 고쳐진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 암에 겁을 먹고 주저 앉는게 아니라, 그 암을 당당하게 마주친 사람들, 그 암을 똑바로 인식하고 대처한 사람들은 암을 이겨냈다고 합니다. 전 서울대 병원장을 지낸 한만청 박사는 그래서 “암과 싸우지 말고 친구가 되라”는 저서를 내었습니다.
생명을 위협하는 암 앞에서도 당당하게 나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김수영이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지방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니던 그였지만, 1999년 골든벨을 당당하게 울리고, 연세대에 당당하게 합격을 했습니다. 대학 졸업 때 무려 50여개 회사에 이력서를 냈지만, 불합격이 되었지만, 당당하게 계속 도전을 하고 세계 최고의 투자은행 골드만 삭스에 입사를 했습니다. 연봉이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제가 아는 집사님 딸이 비슷한 규모의 회사에서 대졸 3년차인데 연봉이 1억5천이라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었는데, 아마 아주 잘 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 입사하지마자 암세포가 발견되었고, 그 기간에 다시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의 꿈을 적어보면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런던행 표를 끊고 당당하게 세상에 도전을 했습니다. 책을 쭉 읽다보면 나중에 영국에 가서는 그 흔한 스타벅스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도 못 얻을 정도로 힘들게 지내지만, 세계 최고의 석유 에너지 기업인 로열 더치 쉘 본사에서 매니저로 일하며 블러그를 통해 27만명에게 해외취업 정보를 나누고 있습니다. 이제 겨우 27살입니다. 인도에 오기전에 이 친구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젊은 친구인데 너무나도 자신의 인생을 당당하게 살아갑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멋있습니다. 힘들다고 주저 않고, 좌절하고 낙낭하는 사람보다는 힘들어도 도전하고, 자신감을 가지고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이 너무 멋이 있습니다.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이끌어갑니다. 그냥 주저하고, 망설이고, 이것 저것 제다가는 아무것도 하기 어렵습니다. 무모한 도전은 위험하지만, 가능성 있는 도전과 사업과 새로운 시작은 우리가 과감하게 도전해야 합니다.
오영석이라는 소년은 가난하여 상급학교에 진학할 수 없게 되자 <하나님 진학의 길을 열어 주십시요>라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습니다. 겉봉에 [하나님께]라고 적힌 이편지를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던 우체국에서 생각끝에 어느 교회로 보냈습니다. 그 교회 목사의 주선으로 이 소년은 대학에 진학하고 해외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한신대의 조직신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박지성 선수가 히딩크 감독이 있던 아인트호벤에 있을 때 지금 뛰는 영국의 멘체스터유나이티드에서 입단 제의를 받았을 때 히딩크를 비롯해서 모두 아직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한 때는 박지성의 별명이 벤치를 많이 치킨다고 해서 별명을 붙었는데, 그 별명이 ‘벤치성’ 그리고 밥만 축낸다고 ‘밥치성’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맨유의 주전으로 당당하게 뛰는 그를 보고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네덜란드 아인트호벤 시절에서만 만족했다면 그 다음이 없었을 것입니다.
배를 만드는 현대조선소를 설립한 고 정주영 회장은 울산조선소 1호선을 기공한 후 현대조선중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하였습니다. 당시에 그는 미포만 해변 사진 한 장과 외국 조선소에서 빌린 유조선 설계도 하나 들고 유럽을 돌았습니다. 외국으로부터 돈을 빌리기 위해서 다녔는데 부정적인 반응만 받았습니다. 1971년 9월 영국 바클레이 은행의 롱바톰 회장을 만났지만 대답은 역시 'No'였습니다. 이 때 정주영은 우리나라 5백원짜리 지폐를 꺼내 거기 그려진 거북선 그림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는 영국보다 300년이나 앞선 1500년대에 이미 철갑선을 만들어 외국을 물리쳤소. 비록 쇄국정책으로 시기가 좀 늦어졌지만, 그 잠재력만큼은 충분하다고 생각하오."라며 돈을 좀 빌려 주십시요라고 설득해 결국 차관 도입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대한민국은 세계 선박 시장의 41,1%를 차지하는 조선업 사업 1위의 국가가 되었습니다.
미국 미사간 주의 성 요셉고아원에 문제소년 한 명이 들어왔습니다. 소년은 원생들과 싸움을 일삼았고, 그를 지도하던 베라다 선생은 인내심을 갖고 끊임없이 소년을 격려했습니다.
"하나님은 너를 매우 사랑하신다. 큰 꿈을 가져라." 그러나 소년의 행동에는 변화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 문제소년은 퇴학을 당하고 말았고, 소년은 퇴학당한 후에 비로소 베라다 선생의 소중한 가르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피자가게에 취직해 열심히 일했는데, 소년에겐 피자 한 개를 11초에 반죽하는 탁월한 솜씨가 있었습니다. 그의 머리 속은 베라다 선생이 심어준 '큰 꿈'으로 가득 찼습니다. 소년은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 피자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이 회사가 바로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도미노피자'입니다. 인도에서도 많이 보죠... 이 고아 소년의 이름은 토머스 모나한입니다. 현재 토머스는 피자사업을 통해 벌어들인 돈으로 미국 프로야구 명문구단인 디트로이트를 운영하고 있고, 그리고 수많은 청소년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이 사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베라다 선생의 가르침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토머스는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 꿈을 크게 가져라."
오늘 성경도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벧후1:10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자신감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에 분명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럴 때 베드로전서 1:10 하반절에는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11을 보면 “이같이 하면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감을 넉넉히 너희에게 주시리라” 고 했습니다. 여기서 사용한 넉넉함이라는 단어를 영어성경에는 rich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헬라어로는 (플루시오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이 말은 하나님께서 거룩한 관대함으로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기에 충분하도록 하실 것임을 시사하는 내용입니다.
이 말이 인도에서 더 다가옵니다. 인도에서는 이 나라에 살기 위해 비자내기가 얼마나 까다롭고 어렵습니까? 유럽은 그냥 여권만 보여주면 도장하나 찍어주고 그냥 넘어 갈 때도 많습니다. 국가간에 상호 비자 협정이 잘 되어 있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인도는 그렇지 않은지 참 좁습니다. 선교사님들이나, 사업하시는 분들이나, 특별히 주재원들까지도 비자 때문에 속석이는게 인도의 비자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가는 비자는 우리 하나님이 이 ‘플루시오스’라는 단어에서 보여 주듯이 풍성히, 넉넉히 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이곳에서 주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하고, 믿음을 자라게 하여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기도하고 나아가면 주저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손을 잡아 주시고 도우실 것입니다.
빌립보서 4:5-7을 보면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며 인도에서 좌절을 겪고, 지금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는데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다면, 이미 오랫동안 포기했던 하나님이 주신 꿈이 있다면, 주저 앉지 말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과 힘을 얻어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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