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가와 도요히고(賀川豊産)라는 사람이 있었다. 기생의 아들로 태어나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르고 자랐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야 했다. 그러다 예수를 믿게 되어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미국 프린스턴에서 신학을 공부한 그는 일본 고베 지방 빈민굴에 들어가 14년을 봉사하며 지냈다. 그는 스스로를 빈민굴의 밑을 닦아주는 사람이라고 자처했다. 그렇게 해서 발전된 그의 신학은 ‘항문의 신학’으로 명명되었다. 사람들은 그를 ‘일본의 바울’이라고 부른다. 스스로의 상처와 아픔을 딛고 일어서서 많은 사람을 돌보는 위치에 섰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상처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사용해 상처의 자리에 영광의 꽃이 피도록 했던 것이다.
과수원 농부들에 따르면 상처 있는 나무 과실이 더 맛있다고 한다. 꽃도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 자란 꽃들이 더 향이 짙다. 일본이 대지진으로 받은 큰 상처에 영광의 꽃을 피우도록 기도하자.
친구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란다. 친구에게 쉽게 상처 주지 마라.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한 번 두 번 계속되는 상처는 친구 관계를 해친단다. 친구가 너에게 준 아무 의미없는 상처는 잊어버리고 친구가 너에게 준 도움은 꼭 기억하거라.
- 우장홍의《어머니의 편지》중에서 -
* 소중한 친구일수록 상처도 많고 그 아픔도 큽니다. 작은 가시도 너무 아프게 박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가시를 얼른 뽑아내 '지나간 상처'로 바꿔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나간 상처'는 다시 재생되거나 반복되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도원의 아침편지
상처를 치료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앞에서 서로의 문제를 털어놓고 상대방의 원한을 풀어주어야 한다.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풀어줄 것은 풀어주어야 한다. 상대방의 목에 걸어놓은 멍에를 풀어주어야 한다. '나는 상처가 있다. 나는 하나님이 아니다. 나는 보이는 것처럼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하나님 앞에서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하나님이 아닌 것, 즉 나 자신의 철저한 무능을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나를 회복시킬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께 있으므로 희망을 품어야 한다. 아무도 내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하나님은 '내가 너를 위로하기 원한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상처 입었을 때 하나님은 '내가 너를 치료하기 원한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는 무력감을 느낄 때 하나님은 '내가 네게 힘을 주겠다'고 말씀하신다.
이렇게 풀어주고 인정하고 희망을 품을 때 상처가 치료되는 것이다.
/권성수 목사(대구동신교회) <국민일보 겨자씨>
남의 말에 쉽게 상처를 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는 그들의 영혼이 너무 얇아서 외부의 에너지가 쉽게 침투하기 때문입니다.
교도소에 수감되어 장기 복역중인 어떤 깡패 두목이 교도소 선교를 하는 목사님에게 이런 말을 털어 놓았다고 합니다.
“목사님, 제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저도 어렸을 때는 주일 학교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교회에서 못되게 굴다가 주일 학교 선생님이 저를 보고 ‘너 같은 것은 교회 안 나와도 좋으니 다음 주일부터는 나오지 마!’ 하는 말에 상처가 되어 그 다음 주일부터 교회에 나가지 않았고 결국 악의 구렁텅이에 깊이 빠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물론 제가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제 책임입니다만 주일 학교 선생님의 ‘너 같은 것은 교회 안 나와도 좋으니 다음 주일부터는 나오지 마!’ 하는 이 한 마디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상처되는 말 한 마디의 영향이 이렇게 크고 무섭습니다. 반대로 그저 한 마디 위로하고, 격려한 것이 상대방에게 큰 힘과 위로가 되기도 합니다. 교회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또한 이 각박한 세상을 권면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기관입니다. 위로하고 격려하는 일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성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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