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27일 이기기를 힘쓰는 그리스도인 고전 9:24-27(확인)
지난 11월 19일에 처음으로 인도에서 한인체육대회를 참석을 했습니다. 한인들이 많이 모인 자리라 그냥 사람들만 봐도 마음이 편안하고 위로가 되는 시간이였습니다. 그래도 명실공히 체육대회라 뭔가 나름 해야했기에 줄다리기에 참석을 했습니다. 구르가온팀이라 청팀으로 참석을 했는데, 기왕하는 경기라 이겼으면 하는 바람으로 참석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시다시피 줄다리기라는 게임은 아주 단순한 게임입니다. 그냥 당기면 되겠지 하는데 거기에도 사실은 전략이 있습니다. 먼저는 사람 배치입니다. 가장 팽팽한 접전이 되는 중간 지점에 힘세고 덩치가 큰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세를 최대한 낮춰야 합니다. 그리고 초기에는 앞 사람의 발을 지지대처럼 사용하여 힘을 모아야 운동에너지를 최대치로 만들 수 있습니다. 사실 여기까지가 제가 알고 있는 지식이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한 가지 전략이 더 추가가 되었는데, 가장 결정적인 전략은 온 구성원이 호흡을 맞춰서 “영차 영차”를 외치는 것이였습니다. 좀 말이 안 되는 전략입니다. 줄다리기가 힘을 쓰는 운동인데, 소리로 이긴다.....아무튼 이기는 것도 분명히 작전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러고보니 우리 주변의 삶은 이 운동경기처럼 승패가 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고상하게 말하면 승부이지만, 조금더 다가오게 이야기를 하면 “싸움”이 항상 우리 주변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책을 쓰면 잘 팔릴 것 같습니다.“인류의 싸움사”..싸움이란 주제로 책 시리즈를 내면 아마 잘 팔릴 것입니다. 베트남에 가보니 베트남 박물관에 자신들의 전쟁사를 설명해 주는데, 자신들은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으나 프랑스를 이겼고, 월남전에서 미국과 싸웠는데 미국을 이겼다, 그 어떤 나라도 미국을 이긴 나라가 없는데 우리는 미국을 이겼다라고 크게 자부심을 느끼고 박물관 곳곳에 광고를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말도 안되는 웃기는 싸움도 있습니다. 캄보디아가 공산 정권을 세우고 힘을 결집하는 과정에서 너무나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900만명에서 200만명을 죽였으니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그런 비난 여론을 잠식하기 위해 정황분석도 안하고 캄보디아가 겁도 없이 베트남을 공격을 했습니다. 베트남이 어떤 국가라고 했습니까? 미국을 이긴 나라라고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인데, 이들이 캄보디아의 공격에 바로 반격을 해서 4일만에 캄보디아를 정복했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캄보디아의 주요 관직은 베트남 인사들이 맡고 있습니다. 재미있는 전쟁사입니다. 전쟁이야기 싸움이야기 하면 우리나라도 셀수 없는ㄴ 엄청난 자료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미FTA 비준은 또 하나의 큰 싸움으로 시작되며 내년 총선(?)에도 많은 영향을 주게 될 것을 예고 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싸움은 여러 가지 모양으로 여러 곳에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싸움이 많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 기독교를 대표하는 한기총의 분열뿐만 아니라 연세대의 이사회 분열 등 굵직한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매년 총회 재판국에 들어오는 교회에서의 싸움과 분쟁도 적지 않게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의 싸움과 분열로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습니다. 아마 우리 델리한인장로교회도 아직은 서로를 잘 몰라서 그렇지 좀 알고 지내면 우리도 분명히 싸울 일이 생길 것입니다. 저는 결혼 주례할 때 싸우지 말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건 사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야기 하는 것이 언젠가 “부부싸움의 은혜”라는 책을 통해서 말씀드렸듯이 “싸우지 말라”라고 이야기 하기 보다는 ‘잘 싸우라, 다치지 않게 지혜롭게 잘 싸우라고..잘 살기 위해 싸우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싸움을 피하는 것이 좋지만 어차피 싸울 일이 생기면 서로 다치지 않게 다시 회복되도록 지혜롭게 싸우는게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내년도 2012년 달력이 이제 나오고 있는데 이번에 영국의 명문 축구클럽 멘체스터 유나이티드 팀의 달력에 드디어 박지성 선수가 메인 선수로 7월의 인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박지성 선수가 쓴 자선전 가운데 “더 큰 나를 위해 나를 버리라”라는 자서전에 보면 재미있는 한 이야기를 소개해 줍니다. 축구 자체는 승부가 갈리는 것이기에 엄격히 말하면 싸움입니다. 그 싸움의 발단이 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하면 바로 “태클”입니다. 상대방의 다리를 거는 것입니다. 이 태클을 잘못해서 엄청난 싸움을 하게 되고, 이 태클을 뒤에서 걸면 축구경기에서 가장 가혹한 징계인 레드카드를 받고 퇴장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박지성 선수는 이 태클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었습니다. 박지성은 유명한 선수이기에 상대방이 항상 2-3명이 감싸고 공을 빼앗으려고 하고 그게 잘 안되면 태클을 걸어서 넘어 드립니다. 많이 다치기도 하고 위험하지만, 박지성의 태클에 대한 입장은 태클을 즐기는 선수로 자신을 훈련했습니다. 그래서 태클을 당하면 좋은 지점에서 공격 기회를 얻게 되는데 박지성 선수는 그러기에 자신의 운동 연습 가운데 태클을 대비하는 기술을 같이 훈련 한다고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공을 차는 훈련만이 아니라 전혀 다른 분야이지만 이 태클도 중요한 전략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태클을 잘 다룰줄 아는 선수가 진짜 프로선수라고 이야기 합니다. 자세히 보십시오. 박지성 선수가 태클을 당하면 경기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감정으로 이어지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싸움을 걸어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괜하게 시비를 걸고 태클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흠집을 주기 위해 엄청난 세력으로 다가와서 우리의 마음이 녹도록 우리를 위협합니다. 인신공격, 배반, 거짓정보, 왕따 시키기 등 수 많은 전략으로 우리의 에너지를 완전히 다 빼앗아 갑니다. 그래서 그 싸움에서 당한 수모로 무너지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압박감을 이기지 못해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무슨 싸움에 걸려 있습니까? 관계의 싸움, 돈에 대한 싸움, 가정에서의 싸움, 여러분 자신과의 싸움...무슨 싸움입니까?
이제 우리가 성경을 통해 이 싸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성경은 먼저 이 세상이 싸움의 현장임을 인정합니다. 에베소서 6:12은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에게도 싸움이 있을 것이라고 성경은 가르쳐 줍니다. 성경의 전방적인 입장은 싸움을 만들지 말고 화평하라고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마 5:9에도 보면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싸움을 만드는 것을 경계하지만, 진리의 말씀을 왜곡하거나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에게 대해서 힘써 싸우라고 성경은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구약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고 싸우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출애굽기의 모세, 여호수아, 사사기 시대, 다윗, 솔로몬의 이야기를 봐도 곳곳에서 싸움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출애굽기 17:9을 보면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성경에서 나온 직책의 이름가운데에는 창세기 32:1,2을 보면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야곱이 그들을 볼 때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하고..”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볼 때 하나님도 싸움에 개입하시는 분이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신약에서도 예수님은 유대인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과 정면으로 충돌하신 적이 여러번 있던 것을 보게 됩니다. 그 결정이 달하는 것이 성전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분노하시면서 그 모든 것을 뒤집어 엎으시는 그 장면을 보면 좀 놀라게 됩니다.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라고 했습니다. 좀 무섭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신데...
그런데 우리 자녀들 이 말씀을 듣고 아 예수님도 뒤집어 엎으셨구나...“아 그럼 나도 이제 싸워도 되겠구나” 라고 이해하고 동생들 때리면 안됩니다. (아 동생한테 맞는다구요...) 아무튼 문자적으로만 해석하면 안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정확하게 이야기 하고 싶은 내용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 싸움이 존재하고, 우리가 하나님은 우리의 그 싸움 가운데서도 우리를 도우시고, 그 싸움에 이길 수 있는 힘도 주시고, 싸움에 져서 패배한 우리에게도 오셔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위로해 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참 큰 힘이 됩니다. 아이들이 말다툼을 합니다. “니가 맞네, 내가 맞네” 그런데 사실 아는게 거기가 거기입니다. 그럴 때 그 싸움을 종결하는 한 마디가 있는데 그 말은 “우리 아빠가 그랬어 씨...” 그러면 금새 승부가 납니다. 동생이 형한테 얻어 맞으면 쓰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항상 아빠 엄마가 있는 쪽을 향해서 크게 웁니다. 그러면 잠시뒤에 모든 것이 정리가 됩니다. 이와같이 우리도 우리 곁에 큰 힘이 있음을 기억하고 그 힘을 잘 사용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금 겪는 많은 싸움...혼자서 다 싸우려면 지칩니다. 우리 주님은 주안에서 잘 싸우는 방법과 승리의 비결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십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전쟁을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부터 어떻게 전략을 써야 할지 아주 구체적으로 지도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얻을 수 있는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할 때 확실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싸움을 하게 되겠지만 주님을 믿고 나아가는 싸움은 반드시 “이기는 싸움”을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길지 질지 모르는 불안한 싸움이 아니라 반드시 이기는 싸움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하는 사업에서 진행되는 싸움이나, 우리 자녀들이 학교에서 겪는 학업과의 싸움, 그리고 여러 가지 많은 싸움들은 하나님을 잘 믿고, 기도하며 그 분의 뜻을 따르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는 이미 결론이 나버린 승부라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가 경기 중간에 불안해할 때가 있습니다. 현재의 상황을 보면 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다가 끝장날 것 같고, 완전이 지겠구나라고 생각이 될 때도 있습니다.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이 세상의 권세에 굴복되어 하나님의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진정한 승리의 카드가 있었다는 사실은 계산을 못했습니다. 마지막에 모든 것을 뒤집어 엎듯이 예수님은 때때로 우리의 삶을 가만히 방치하는 것 같이 두고 보실 때가 있습니다. 무기력하게 패배자의 삶을 사는 것과 같이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을 붙잡을 때 우리는 이기는 경기를 변함없이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바울 사도를 통해 이 땅을 살아가며 치열한 싸움과 승부의 세계에서 사는 우리들이 가져야 하는 아주 구체적인 자세를 좀 더 구체적으로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기기 위해서 싸우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고전 9:24을 보면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상은 대충해서는 받기 어렵습니다. 남들보다 좀 더 해야 그에 대한 결과가 옵니다. 백지연 아나운서가 쓴 뜨거운 침묵에서는 11바퀴의 법칙이라는 것이 나옵니다. 백지연 아나운서는 연세대 심리학과를 나오고 영국 옥스퍼드대 로이터 펠로우십 과정을 밟고 입사 5개월만에 MBC 9시 뉴스 최연소, 최장수 앵커 기록을 가진 사람입니다. 그런 그도 어릴적에 자기보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했고, 자신보다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는 그들을 보면 감정이 많이 상했다고 합니다. 간혹 자기가 패배자처럼 느껴지고 누군가에게 밀릴 면 분노가 폭발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그 분노를 이기는 법을 배웠는데 ”네가 10바퀴를 뛸 때, 그 친구는 11바퀴를 뛰었나 보다 생각해라, 네가 7시간 잘 때 그 친구는 6시간 잤나보다 라고 생각하라“는 이야기와 ”왜 너는 남의 성공은 쉬워보이고 내 성공만 어렵다고 생각하니?“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것을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는 다윗과 골리앗의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다윗의 물맷돌을 이야기 합니다. 그 때 골리앗의 급소를 맞춘 다윗의 물맺돌은 그냥 우연히 던져서 맞힌게 아니라, 양을 지키는 목동으로서 수 없이 많이 던진 그 이전의 수만번의 연습이 주는 결과였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은 이 시대를 성공한, 승리한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프로그램인데 성공한 사람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피나는 노력”이라는 한결같은 기초들이 깔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에 대한 철저한 훈련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도 그러기에 오늘 바울 사도가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 생활을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이렇게 상을 받기 위해서 하듯이 최선을 다하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상주시는 이인 주님을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서 달려가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 말을 적용하면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게 되는 여러 가지 싸움에서도 적당히 대충 넘어가거나 피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상주시는 이인 주님을 생각하며 이겨내고 견디고 그 현장에서 감당해내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업을 맡기셨으면 한 번 최고가 되기 위해서 힘써 보시기 바랍니다. 공부를 하나님이 하도록 시간을 주셨으면 하나님을 위해서 최고가 되도록 힘써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삶을 하나님은 기대하고 계십니다.
둘째는 이기기 위한 비결로 성경은 “절제”를 이야기 합니다. 고전 9:25을 보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라고 했습니다. 이기는 사람들을 승부욕이 있다고 하는데 저는 이 승부욕을 집중력이라고 합니다. 이 집중력이라고 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힘과 지혜와 기술을 이기기 위해서 총동원해서 사용하는 것이 바로 이 집중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집중력은 경기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축구 피파 랭킹 39위가 피파랭킹 29위인 일본에 한상 우세한 전적을 가지는 것도 실력과 기술보다는 집중력입니다. 집중한다는 말을 뒤집으면 집중하는 하나 빼고는 전부 보이는 게 없다는 소리와 같은 말입니다. 이기기 위해 목표를 가졌으면 다른데 신경쓰지 말고 이기는데 모든 신경을 집중해야 합니다. 이것도 거꾸로 말하면 이기는데 필요하지 않는 모든 것은 신경 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을 가장 적절하게 해 준 말이 오늘 본문에 나온 ‘절제’입니다.
절제를 하는 이유는 이기기 위해서 이기기에 필요하지 않은 모든 것은 버린다는 소리입니다. 운동선수들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귀에 따갑도록 듣는 말이 바로 이 절제 일것입니다. 특별히 체중관리 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안쓰럽습니다.한 방송에서 김연아 선수가 세계대회에서 금메달을 따고 인터뷰에서 한 말은 그 어떤 멋진 말이 아니라 “간식을 먹고 싶다”였습니다. 김연아 선수는 세계 최정상이 되기 위해 14살부터 20살까지 한 번도 간식을 안 먹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보통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이 치러야 하는 댓가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오늘 바울 사도도 본문을 통해 이기기 위해서 절제하는 것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절대적인 필요요소라고 보았습니다. 당시 고린도는 항구도시로 아주 빠른 시간에 급속도로 성장한 도시였습니다. 고린도에는 사치와 향락과 매춘이 독버섯처럼 항상 존재를 했습니다. 고린도의 타락성을 보여 주는 헬라어 단어로 “코린티아 조마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 말의 뜻은 “고린도인처럼 행다다”라는 말뜻인데 이 말은 바로 성매매를 하다라는 은어로 사용된 단어입니다. 영어 단어 중에 corinthian 이라는 뜻은 사치하고 게으른,난봉꾼 이라는 말로 이어지는 것을 볼 때 고린도의 모습을 쉽게 엿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 전서를 기록한 이 시기도 교회에 엄청난 분파가 생긴시기였습니다. 고전 1:12을 보면 “내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한다는 것이니 ..”라고 하면서 교회가 이 사람 저사람 파당을 만들었다는 소리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어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믿음 생활을 하지만 교회의 안과 밖으로 집중하지 못하게 할 상황이 너무 많았습니다. 교회 밖은 타락과 향락의 문화로, 그리고 교회안은 분열과 다툼으로 온전하게 마음을 두고 믿음을 자라게 하기에는 너무나 힘든 상황이였습니다. 그러기에 바울 사도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속에서 있는 성도들에게 이기기 위한 믿음의 자세를 소개하면서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하나니...”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승리하는 신앙 생활을 위해서는 집중하지 말아야 할 것은 분명히 피하고 집중해야 할 것은 분명하게 집중하는 절제의 미가 아주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바울 사도 자신도 9:27을 보면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인도에서도 신앙생활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많습니다. 한국처럼 교회가 많지도 않고, 교민사회라고 하는 것은 항상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회입니다. 그리고 인도라는 힌두와 모슬렘이 크게 활동하는 이곳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쉽지 않은 믿음의 경주입니다. 자칫하면 포기하고 싶어지기도 하고, 이탈을 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져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서서 인도에서 나에게 맡기신 목적을 분명히 기억하며 매일 매일 이기기 위한 우리 삶의 다양한 각종 싸움들을 이겨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겨나가기 위해서 절제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전 9:25의 썩을 승리자의 면류관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우리 주님의 영생의 면류관을 얻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집중시키고, 나아가야 합니다. 사업을 해도, 공부를 해도, 가정에서 생활을 해도 이 약속을 분명히 믿고 상주시는 이인 주님을 보고 흔들리지 말고 나아가야 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인도에서의 믿음의 싸움을 당당하게 그리고 멋있게, 그리고 후회없이 이겨나가시기를 바라고, 이기는 성도들이 가득한 델리한인장로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이 세상에 참 많은 싸움들이 있습니다. 우리도 때로는 그 싸움의 진흙탕속에서 우리의 한계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 이제 주님 안에서 다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비하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싸움들을 이겨나가기를 원하오니 우리가 주님과 함께 이기는 삶을 경험하도록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파송의 인사
우리의 삶의 많은 싸움이 있습니다. 그 싸움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서 주님의 지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주님도 이 세상의 싸움에서 물러나기 보다는 주님과 함께 싸워나가며 승리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이를 위해 상주시는 이인 주님을 바라보고 삶속에서 절제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아가는 시간이 되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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