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회 교회요람 에스라 2:61-63 / 68-69
요즘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보는 드라마 중에 하나가 “뿌리 깊은 나무”라는 제목의 드라마입니다. 세종대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내용인데, 최근 제가 관심을 많이 가지고 보는 “소통”라는 주제를 깊이 접근하기에 기회가 되면 연결을 해서 봅니다. 특별히 이번 세종대왕은 지금까지의 세종대왕과 이미지가 많이 틀려서 욕을 많이 합니다. 드라마는 왜 세종대왕이 간혹 왜 욕을 하는지를 잘 설명해 줍니다. 그것은 앞선 왕들이 새롭게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보여 주었던 제왕적 권위, 다시 말하면 대의라는 것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이것으로 모든 것을 밀어 붙이고 백성들의 민의를 무시하는 모습에 한계를 느낄 때 어린 소년의 입에서 나온 한마디의 욕을 접하면서 이렇게 소통이 되지 않는 상태가 바로 그 욕이 표현하는 한 마디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순하게 한글을 창제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중화사상을 기반으로 하는 기득권과 이를 넘어서기 위한 설득의 과정, 역사책에서만 보던 집현전의 역할등을 보면서 그 동안 알지 못했던 내용들을 많이 배우고 적용을 하게 됩니다.
역사라는 것은 그러기에 매우 중요하고, 이 역사는 항상 기록이 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됩니다. 인천에 있는 임학성광교회라는 교회의 홈페이지를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이 교회도 그 교회의 역사를 보여 주는 ‘교회 요람’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 내용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니 어느 교회와는 다른 내용이 써 있었습니다. 대 부분이 교회 창립의 이야기를 000 사역자가 0월0일에 어디에서 예배를 드리다...또는 어느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다라고 시작을 하는데 이 교회에는 교회요람의 시작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우상숭배사상으로 영적 흑암에 잠겨 소망이 없던 곳에 최초로 하나님의 복된 성광교회를 설립하다.”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보통의 교회들과는 분명히 다르게 기록했고, 한편으로 감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교단 선교부의 지도를 받고 인도 델리에 한인공동체를 섬기기 위해서 이곳을 방문하여 한인교회 사역을 이야기를 하면 이구동성으로 이곳의 한인교회의 역사를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이 이야기는 믿는자나 믿지 않는자나 너무나도 인도 델리의 한인교회의 역사를 잘 알고 있었고, 정확하게 이야기를 했고, 내용도 같았습니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었는데 그 공통점의 역사 이야기가 그렇게 좋은 내용만은 아니였습니다. 상당히 부끄러움도 많이 느꼈습니다. 많이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마음에 품은 기도제목이 이곳에서 사역을 하면서 한인목회자들끼리의 연합사역을 잘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 기도제목이 응답이 되기 위해서 한인교회 목회자들과 자주 만나서 교제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서로 차 한잔 마시고, 식사하는 정도이지만, 이제 같이 모여서 운동도 하고, 같이 연합 사역도 하고, 이 지역 한인들이 필요로 하는 사역인데 함께 공유할 내용이라면 같이 힘을 모을 예정입니다. 아마 이렇게 되면 이제 델리인근 지역의 한인교회에 대해서 사람들이 다시 역사를 이야기 하겠죠..“중간에 조금 안타까운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함께 기도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감동을 주셔서 서로 크게 부흥했다. 그리고 세계에서 제일 연합 사역이 잘 되는 지역이 인도래....주재원 근무 가려면 인도로 지원해...거기 가야 그래도 해외에서 신앙생활 제대로 할 수 있대...가족들이 그렇게 변화를 받더라지.....” 이런 하나님의 역사가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면 ‘에스라’라고 하는 구약의 내용에서 이스라엘의 역사 이야기가 기록이 되어집니다. 그런데 시작하는 에스라 1:1을 보면 이스라엘의 역사인데 바사왕 고레스 원년이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사 왕 고레스 원년에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이루게 하시려고” 여기서 바사는 우리에게 알려진 나라로는 페르시아 국가로 기원전 539년 바벨론(요즘 이란,이라크 지역) 전역을 정복하였고, 이스라엘 역시 이들에게 정복이 되어서 바사 제국에 지배를 받게 된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지배를 당하고 정복을 당하면 사실 부끄러운 역사가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일제 36년을 겪어보았기에 이 시기를 보통 치욕의 시기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 역시 치욕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는 이스라엘에게 소망을 줍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서 범죄한 유다가 그 벌로써 바벨론에 끌려가 70년 동안 있겠으며, 그 70년이 다 차면 유다 자손을 권고하여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시리라고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 렘25:11,12 “ 이 민족들은 칠십 년 동안 바벨론의 왕을 섬기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칠십 년이 끝나면 내가 바벨론의 왕과 그의 나라와 갈대아인의 땅을 그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하여 영원히 폐허가 되게 하되 ”
그리고 정말 그 약속대로 하나님은 뜻하지 않게 바사 왕인 고레스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귀환을 시킵니다. 사실 새로운 땅을 정벌한 왕은 그 나라를 억누리기 위해 그 나라 역사 말살 정책을 사용하고, 특별히 종교는 그 지배 국가의 중심 사상이라 종교 말살정책을 쓰는 것이 일반론인데 이 바사왕은 오히려 피 지배 국가의 종교를 크게 장려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벨론으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은 없었지만, 종교의 자유도 허락이 되었고, 회당에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울 수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어 다시 이스라엘로 귀환하게 되었고, 에스라 2장은 이 귀환자 명단을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사실 이 2장의 본문에서 우리가 은혜를 얻기는 쉽지 않습니다. 좀 읽다가 보면 그냥 넘어가고 싶은 내용입니다....누구 누구의 자손중에 몆명이다라는 내용인데, 사실 우리에게는 낮선 인물들입니다. 그런데 이 명단이 쭉 나가다가 2장 61,62에 보면 약간 이상한 내용이 나옵니다.
“제사장 중에는 하바야 자손과 학고스 자손과 바르실래 자손이니 바르실래는 길르앗 사람 바르실래의 딸 중의 한 사람을 아내로 삼고 바르실래의 이름을 따른 자라
이 사람들은 계보 중에서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하므로 그들을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지 못하게 하고..“
그것은 한 제사장 가문이 나오는데 ‘바르실래’라는 자손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바르실래 자손은 무슨 연고인지 제사장 가문이지만 2:62을 보면 “자기 이름을 찾아도 얻지 못한 고로 저희를 부정하게 여겨 제사장 직분을 행치 못하게 하고...”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자세히 기록되지 않아 짐작하기 어렵지만, 바벨론 포로 기간 중에 제사장의 가문으로서 행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기억하는 사람은 그들을 분명하게 그 사실을 알고 역사적인 심판을 행한 것입니다.
낮선 땅에서 아무도 모를거라고 생각을 했었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행동 하나 하나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 사실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과 가정도 다 역사가 있어서 아무도 모르는 것 같지만 역사는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을 새롭게 채용할 때는 ‘이력서’라는 것을 반드시 첨부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이력서를 잘 보면 그 사람의 역사를 볼 수 있고, 그 역사들의 흔적을 보면서 이 사람이 정말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저도 이력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를 준비할 때 소개지를 만들었습니다. 그 소개지안에는 제 이력서를 간략하게 기록을 해 놓았습니다. 왜냐하면 교회를 선택하는 중요한 요건중에 하나가 교회를 섬기는 리더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역을 했는지를 알고 싶어 하기에 이 부분을 미리 기록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이끌어 주신 발자취를 정리하여 기록을 했고, 이제 그 발자취를 함께 할 성도들에게 알리는 것은 의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반면에 다 적지 못한 이력도 많습니다. 제 이력서를 보면 교회에 근무를 하면 오래 사역을 합니다. 어느 이력서들을 보면 일년이나, 2년마다 교회가 바뀌는 경우가 있지만, 저의 경우에는 보통 5-6년을 부교역자로 한 교회에서 사역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를 옮겨야 하는 경우는 대부분은 사역이 무슨 문제가 있어서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연속성을 가지고 이동을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전에 지도해 주셨던 목사님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고 아직도 지도를 받습니다. 그런데 그 역사 가운데서도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교육전도사로 장신대 신대원을 준비할 때 섬겼던 교회로 처음으로 11개월 근무라는 이력을 남기게 된 교회였습니다. 사유는 제가 신대원을 입학을 하게 되면 교회가 상가를 임대하다가 교회당을 얻어서 들어가게 되어 이사를 하게 된 교회라 교회의 재정 형편이 참 어려웠습니다.
바로 전에 사역했던 교회에서 중등부를 맡았을 때 학생 150명에 1년 예산을 1800만원을 배정을 받았었는데, 이 교회에는 학생회를 중고등부 통합을 했는데 1년 예산이 50만원이고 학생은 30명 정도였습니다. 아주 여유가 없었습니다. 짧은 기간이고 교육파트였지만, 목사님이 박사과정 공부를 하시다가 1개월을 비우시게 되어 1개월동안 전체 교회를 다 맡기도 했고, 교회를 이사해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모든 이사짐을 싸고 잘 알지도 못하는 장비들을 땀을 흘려가면서 세팅을 하고, 어스선한 교회의 이사 분위기를 안정시키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일을 많이 했던 교회였습니다. 하지만 교회 재정이 어려워지고, 제가 대학원을 입학해야 하는데 학비 지원이 어려우니 목사님께서 어느날 부르셔서 우리 교회의 재정으로 인해 전도사님이 신대원 입학하면 장학금 지원이 어려우니 좋은 조건의 교회를 찾아 가는 것이 좋겠다고 통보를 받았습니다. 교회의 어려운 상황을 알기에 고집해서 있는다는 것도 교회ㅏ에 부담을 주는 상황이라 아쉽지만 교회를 11개월만에 사임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에 간혹 제 이력서를 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간혹 왜 이 교회는 이렇게 짧게 일했습니까? 무슨 문제가 있었습니까? 라고 묻습니다.
잘못된 역사도 아닌데,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여러분 개인도 아마 이런 이력서들이 다 있을 것입니다. 무슨 공부를 하고, 무슨 일을 했고, 살아오면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성공한 역사도 있겠지만, 실패의 역사도 함께 가지고 있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인이기에 교회이력도 항상 같이 따라 다닙니다. 우리가 어느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고, 거기서 무슨 봉사를 했고, 어떠했느냐도 항상 같이 따라다닙니다. 교회학교 시절, 학생회 시절, 청년부 시절, 장년부 시절 등..다양한 흐름의 역사를 가지게 됩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우리의 신앙의 역사도 잘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상황과 환경에서 얼마나 충실하게 하나님과의 역사를 잘 만들었는지를 살피며 부끄럽지 않은 하나님의 역사의 일꾼으로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2:15을 보면 “너는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에스라 2:61,62절에 나온 이 제사장 가문은 가문 전체가 부끄러운 역사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사장으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직무가 하나님게 제사를 드리는 일임에도 이것을 참여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주의 깊게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과연 오늘 인도에서 살아가는 나의 신앙의 역사가 부끄러울 것이 없는 온전한 모습인지, 우리는 늘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반면에 다른 역사의 이야기가 기록이 됩니다. 에스라 2장 68절을 보면 누구라고 이야기는 하지 않고 “어떤 족장”이라고만 나옵니다. 소위 요즘 우리가 말하는대로 “무명”입니다. 이들에 대해 성경은 자세히 소개를 하는데 “어떤 족장들이 예루살렘 여호와의 전 터에 이르러 하나님의 전을 그곳에 다시 건축하려고 예물을 즐거이 드리되..”라고 기록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포로로 바벨론에 살았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언젠가 말씀대로 회복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예물을 준비했던 사람이였던 것 같습니다. 단지 어느 누구라고 이름을 적으면 미처 준비하지 못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배려적 측면에서 이렇게 “어떤 족장”이라고 기록되었는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름은 감추어져도 그 사람들의 행동과 역사를 기록이 되어집니다. 사실 포로에서 귀환해서 다시 돌아온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지만, 본인들도 불편합니다. 익숙했던 환경을 떠나야했습니다. 오히려 바벨론이지만 거기가 더 편안하고 활동도 마음껏 할 수 잇던 곳이였는데...그곳에서 70여년을 지나면서 기득권도 얻고, 먹고사는 기반도 어느 정도 잘 마련이 되었는데, 그것을 뒤로하고 다시 귀환해서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이스라엘을 다시 재건하는 일은 엄청난 부담이였을 것입니다. 성전도 파괴되고, 먹고 살 것도 망막했을 때,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결정하고 귀환했던 그 모습은 역사에서 귀중하게 평가를 받게 됩니다. 그 내용들이 주로 에스라, 느헤미야서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부족했지만 역사를 만들어 갑니다. 성전을 새롭게 건축하는 역사도 있었고, 그 성전공사를 방해하는 사람들로 인해 모욕을 당하는 역사도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더욱 크게 그들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가시는 것을 보는 역사도 이 에스라 느헤미야서 곳곳에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 포로기, 암흑기라는 아주 어두운 시기의 역사이지만, 그 가운데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을 발하는 역사를 오늘 성경은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역사는 인도라는 배경에서 더해 질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이 인도학교에서 공부를 하며 기록되는 역사도 있을 것이고, 우리가 인도에서 사업을 하면서 얻어질 역사도 있게 될 것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인도의 더위를 이기는 우리의 재미있는 역사도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 인도에서의 우리의 신앙 역사도 더해질 것입니다. “한국보다 열악한 신앙공동체임에도 불구하고 더욱 하나님과 깊은 교제와 동행함이 있었다.” 한국에서보다 오히려 더 많이 하나님께 봉사하고, 하나님께 더 많은 축복을 받게 되었다라고 고백하는 신앙의 역사가 기록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한국초대교회 이야기를 보면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은 아펜셀러 언더우드 선교사 이야기가 처음으로 기록이 됩니다. 하지만 이 역사이야기 이전에 이미 조선에는 하나님의 역사가 기록이 되어져 있습니다. 영국선교사였던 토마스 선교사는 중국에서 사역을 하는 가운데 새로운 사역지인 조선에 눈을 뜨고 조선의 선교를 위해서 문을 두드립니다.그러나 당시 조선의 쇄국정책으로 국경진입이 어려워지자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통역사로 입국을 시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결국 조선 수군의 강력한 반대로 대동강에서 제너럴셔먼호는 불에 타고 토마스 선교사는 잡혀서 1866년 9월 26세의 나이로 참수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 이 기사는 영국선교사 토마스 선교사의 죽음이라는 기사와 더불어 런던타임즈에 대서특필이 되고, 이 이야기를 듣고 세계 선교의 뜨거운 열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조선”이라는 이름이 분명하게 새겨진 계기가 되었습니다. 토마스 선교사는 비록 제대로 사역을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많은 사람이 조선을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조선을 위해 사역자들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로스 선교사입니다. 그 역시 조선의 입국이 어려워서 조선 근처 중국접경에 근거지를 두고 사역을 준비하였습니다. 1874년 10월, 만주 통화현 고려문은 당시 청나라와 조선의 국경이자 합법적인 교역 관문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많은 조선 상인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때마침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평안북도 의주 출신인 이응찬이라는 분을 만납니다. 이응찬의 도움으로 로스 선교사의 어학 실력은 날이 갈수록 늘었습니다. 단지 언어만을 배우는 것을 목적으로 했지만, 자신의 말을 배워주는 선교사의 열정과 그리고 사랑의 모습에 감동이 되면서 이 조선 사람들은 이 외국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마음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 매일 하늘을 보면서 이야기하는 것, 노래를 부르는 것, 검은색 표지에 쌓인 그 책을 자주 읽는 모습을 보고, 자신들에게도 선생님처럼 살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로스 선교사는 이런 시간이 오기를 3년을 기다리면서 이제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고, 그들은 곧 매킨타이어 선교사를 통해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은 서상륜입니다. 양반 가문에서 태어났으나 13세 때 부모를 잃고 만주에서 홍삼장사를 하였는데, 31세 때 만주에서 장티푸스로 사경을 헤맬 때 스코틀랜드 연합장로회의 목사인 매킨타이어(McIntyre, J., 馬勒泰)에게 구호를 받은 후 완쾌되어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 뒤에 이성하(李成夏)ㆍ이응찬(李應贊)ㆍ백홍준(白鴻俊)과 함께 신약성서를 번역하기 시작하여 1882년 가을 쪽 복음 형태로 『예수셩교 누가복음젼셔』를 간행하였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에 선교사가 들어오기 3년 전의 일로, 민족교회 성립의 기초를 이룬 것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조국 조선에 복음을 전하러 갑니다. 먼저는 성경을 번역해서, 입국을 시도하지만 이것이 막혀서 번역한 성경을 찢어 새끼줄로 위장시켜 그것을 다시 풀어 성경을 만들어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는 황해도 장연군 솔내(松川) 마을로 이주, 교회를 세우고 전도활동을 하였는데 그 교회가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인 1883년에 세워진 솔내교회입니다. 1887년 서울 새문안교회가 설립될 때 설립교인 14명 중 13명이 그의 전도로 교인이 된 사람들이었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에 감동이 있습니다.
저희 교회도 모우는 글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보에 실린 내용입니다. “델리한인장로교회” 이야기라고 하는 제목 아래 매주 진행된 일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모우고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잊혀질 내용이지만, 그리고 좀 더 자세하고 섬세하게 기록은 못하지만, 이 기록들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교회에 어떻게 일하고 계신지,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를 우리 후손들에게 아름답게 전해 주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록을 하고 공유를 합니다.
이 글을 써 나가면서 느끼는 것은 글들의 내용이 이제 점점 복수형이 되고, 개인의 내용보다는 전체의 내용들이 많아지고, 일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공동체의 역사로 방향이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주중에도 우리 교회 성도님들의 신앙적 삶으로 제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교회를 향한 성도님들의 생각과 사랑과 결정과 섬김들을 보면서 제가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저도 하기 힘든 결정들을 하면서 델리한인장로교회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모습을 보면서 큰 감동을 얻습니다. 이제 우리도 성경에 나온 역사를 잘 기억하면서 부끄러운 역사가 아닌 하나님의 아름다운 역사를 만들어가며 주님께 나아가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언젠가 우리 후손들에게 들려줄 델리한인장로교회의 교회요람이 하나님이 이끄시는 역사로 이어지며 아름답게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는 시간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께서 세우시고 이끄시는 역사를 알게 해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이 항상 우리를 이끌어 주셔서 이 길을 한걸음 한걸음 잘 나아가게 해 주시옵소서...특별히 인도 땅에서 만들어 가는 우리의 신앙의 역사를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이 인도해 주시는 아름다운 역사를 이루게 해 주시고, 우리가 함께 믿음으로 나아가는 델리한인장로교회라는 공동체의 역사도 주님께 맡깁니다. 주여 도와주시옵소서..
헌금기도-자녀, 청소년을 위한 기도
파송의 말씀
역사는 모든 것을 다 담습니다. 잘못된 것, 잘된 것....오늘 에스라서를 통해 이스라엘의 귀환 역사를 보았습니다. 잘못된 역사로 부끄러움을 당하는 역사, 아름다운 믿음의 역사를 남긴 역사...오늘 우리 인도 땅에서의 역사가 아름답고 바르게 새워지기를..시작한 델리한인장로교회의 교회요람도 아름다운 주님의 행적으로 가득차고, 우리 모두가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귀한 시간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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