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3 실수

      날짜 : 2014. 01. 22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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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1023일 사사기 16:28-31 실수의 사람 삼손의 아쉬움.

         

        살면서 한, 두번씩 실수를 하게 됩니다. 손주가 100세된 할머니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내용은 할머니 오래 사세요라고 보내야 하는데 자음 하나를 급하게 잘못 눌렀습니다.

        할머니 오래 사네요”, 한국에서 어느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명절인사를 보냈습니다. “집사님 추석 잘 보내세요그렇게 보냈더니 한 집사님이 답글 문자가 왔는데 여기도 약간 실수가 있었습니다. “목사님도 추석 잘 보내세요목사 니도 추석 잘 보내세요....” 글자 하나인데 정말 엄청난 차이입니다. 저도 이런적이 있었습니다. 군에서 군종병으로 섬김면서 주보를 만들 때 목사님이 휴가 가셨습니다.”목사님 휴거 가셨습니다라고 적어 놓아서 목사님을 완전히 천국으로 모실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작은 실수가 엄청나게 감당못할 결과로까지 이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에 아시아 클럽 축구대회에서 우리나라 삼성과 카타르의 경기가 있었습니다. 서로 볼을 가지려고 하다가 넘어진 한국선수의 얼굴을 카타르 선수가 발로 밟았습니다. 얼굴에 피를 흘린 선수를 동료선수를 보호하기 위해 한국선수가 공을 밖으로 차서 보내고 부축을 하고 나갔습니다. 여기까지는 그럴수도 있는 상황인데, 원래 이런 경우는 상대방이 공을 다시 공격을 하도록 기회를 주는게 관례인데, 한국측에 주겠지하던 공을 기회로 삼고 선수도 부상당해서 없는 사이에 몰고와서 골을 넣어 버렸습니다.

        이를 심판에게 항의하다가 한국팀에서 뛰던 외국 용병선수가 상대방 선수의 머리를 한 대 쳤고, 이것이 상대방을 겪분하게 해서 선수들끼리의 집단 난투극이 되었습니다. 좀 진정 되나 싶었는데 한국 관중이 운동장에 진입해서 카타르 골키퍼로 향했고, 이를 보던 카타르 선수가 한국 관중이 흠껏 두들겨 패는 것을 본 한국 선수들이 관중을 보호하기 위해 2차 난투극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실수들이 점점 커져서 엄청난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인도 신문에도 이 내용이 크게 보도 되었습니다. 참 어이가 없는 일입니다. 작은 실수들이 이어져서 큰 실수가 이어지는 것을 보면 실수들에도 뭔가 법칙이 있는 것 같습니다.

        2008512일 중국 쓰쫜성에서 일어났던 대지진의 경우를 보면 지진이 어느 순간 불쑥 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당시 지진은 강도 7.830년만의 대지진이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발생하기 전에 여러 징조들이 나타났습니다. 지진이 있기전 보름전에는 후베이 은스시에 있는 관인탕 저수지에 8만톤 가량의 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지진 10일전에는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들이 이동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중국 당국은 북경올림픽을 앞두고 있기에 대외 이미지를 의식해서 이를 무시했고, 아무 대책을 세우지 않는 엄청난 실수를 합니다.

        하버드 윌리엄 하인리히라는 사람은 보험회사에서 보험 감독관으로 산어ᅟᅥᆸ재해 관련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크고 작은 산업재해들을 보며 그 사고들 사이에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을 거라는 느낌을 받게 되면서 본격적인 연구를 착수했습니다. 그는 보험회사에 접수된 5만건의 사고를 분석하면서 어떤 사망 사고가 났다면, 동일한 원인으로 인한 부상이 29, 부상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사고가 날 뻔한 경우가 300건 정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1929년에 발표된 이 논문은 하인리히 법칙으로 명명되었습니다. 평소 우리가 가지는 작은 실수들이 계속해서 반복이 된다면 이것이 나중에 결국 엄청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 신앙인들, 그리스도인들도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의 실수들을 잘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실수[失手] 라고 하는 것은 사전적인 의미로는 조심하지 아니하여 잘못함. 또는 그런 행위.”를 이야기 합니다. 쉽게 넘기는 실수도 있지만 고의적으로 계속해서 반복되는 실수도 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아주 안타까운 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과연 성경에 실려도 될 정도의 사람인가라고 의심이 들 정도로 엄청나게 실수를 했던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삼손이라는 사람입니다.

        13:1을 보면 당시 이스라엘은 그들의 죄악으로 무려 40년 동안 블레셋에 지배를 당하던 때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 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넘겨 주시니라이 가운데 13:2부터 보면 단 지파의 마노아라는 사람에게 아이가 없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자녀를 가지는 축복을 받습니다.

        13: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13: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자녀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이 아이가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과의 관계 가운데 지켜야 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13:4-6을 보면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이렇게 아주 은혜 가운데 출생하게 되었고, 평생 하나님과의 깊은 관계를 위해 특별한 약속도 받았고, 정말 나면서부터 은혜가 충만했습니다.

        13:24을 보면 하나님이 정말 그에게 복을 주셨습니다.“그 여인이 아들을 낳으매 그의 이름을 삼손이라 하니라 그 아이가 자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복을 주시더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데..그런데...이 귀한 삼손이 하나씩 실수를 하기 시작합니다.

        14:1을 보면 이방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이스라엘 사람들의 삶의 원칙인데 삼손이 이것을 깨는 실수를 합니다.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거기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그리고 2절에는 그를 아내로 삼으려고 합니다. “내가 딤나에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았사오니 이제 그를 맞이하여 내 아내로 삼게 하소서 하매라고 했습니다. 16:1에도 이 사건이 이어집니다.“삼손이 가사에 가서 거기서 한 기생을 보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16:4을 보면 이 후에 삼손이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매라고 기록이 됩니다. 한번 두번 말씀을 어긴 것이 결국 화로 다가옵니다.

        16장에는 삼손의 실수가 구체적으로 나옵니다. 블레셋에게 삼손이라는 존재는 너무나도 강한 존재이기에 타도 집중타도 대상이였습니다. 그래서 블레셋이 들릴라를 협박하여 삼손의 약점을 알아오도록 협박을 합니다. 삼손은 그 엄청난 힘의 능력이 머리를 깎찌 않는데서 오게 된다고 나면서부터 알고 있었는데 여인의 꾀임에 하나씩 실수데이터를 쌓아갑니다.

        16:7 “삼손이 그에게 이르되 만일 마르지 아니한 새 활줄 일곱으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6:11에는 만일 쓰지 아니한 새 밧줄들로 나를 결박하면 내가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 그리고 16:13을 보면 점점 진실에 가까워집니다. “그대가 만일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에 섞어 짜면 되리라 하는지라그리고 16:17에 보면 삼손이 진심을 드러내어 그에게 이르되 내 머리 위에는 삭도를 대지 아니하였나니 이는 내가 모태에서부터 하나님의 나실인이 되었음이라 만일 내 머리가 밀리면 내 힘이 내게서 떠나고 나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과 같으리라 하니라

        결국 이 작은 실수들이 쌓이더니 결국 하나님의 힘을 잃어버립니다.

        16:19을 보면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기 무릎을 베고 자게 하고 사람을 불러 그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밀고 괴롭게 하여 본즉 그의 힘이 없어졌더라결국 그의 하나 하나의 실수가 결국 재앙으로 이어집니다. 16:21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그를 붙잡아 그의 눈을 빼고 끌고 가사에 내려가 놋 줄로 매고 그에게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하였더라 하나님의 사람 삼손..나귀턱뼈 하나로 블레셋 천명을 죽인 이스라엘의 최대 용장이 이제 블레셋의 포로요, 조롱거리로 전락을 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작은 실수들이 계속 누적이 되면서 쌓일 때 엄청난 결과가 온다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도 기억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니 실수한 이야기들이 너무나 많이 있었습니다. 하와의 실수로 생명나무 실과를 먹은 일부터해서, 아브라함이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하는 일도 있었고, 정복전쟁을 나섰던 여호수아도 이방 기브온 족속을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이스라엘에 거주하게 하는 실수를 저지릅니다. 믿음의 사람 다윗은 제사장만 먹어야 하는 떡을 거짓말을 해서 먹고 결국 그 결과로 멀쩡했던 제사장의 일가친척 85명이 전멸을 당합니다. 그리고도 또 자기 준사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을 죽는데에 몰아세워 버립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롯유다도 자기가 생각한 예수님이 메시야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팔아버립니다. 그리고 그 실수를 덮기 위해, 덮기보다는 피해보려고 자살을 택합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도 항상 실수를 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웃어넘길 작은 실수도 있겠지만, 잘못하면 교인들에게 서로 상처를 줄 수도 있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결정적인 실수를 우리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뭘까를 고민했습니다.

        첫째는 우리가 실수를 자꾸하게 되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삼손은 자기 자신이 좀 더 말씀을 가까이 하고, 영적인 공동체에 잘 속해 있었다면 그의 실수들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블레셋과 자주 교류하고, 이방여인들과 더 가까이 하였습니다. 그것이 실수의 촉매제들이 되었습니다.

        한 번 경험했던 실수들을 잘 되새기고 교훈을 받아서 다음번에 실수의 환경에 다가가지 말아야 합니다. 화를 잘 내는 사람은 화를 낼 상황을 미리 감지하고 자신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남에게 상처 주는 실수를 했다면 남들이 왜 상처를 받는지를 잘 살펴서 다시 그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제가 아는 분은 술만 마시면 핸드폰을 집어 던진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인이 핸드폰을 항상 중고폰..그중에서도 제일 안 좋은 것만 사도록 한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성적인 호기심이 많은 청소년들이나 사람들도 이상한 싸이트에 접속하는 환경을 피해야 합니다. 싸이트 접속이 불가하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고, 인터넷을 공개된 장소에서 하기도 하고, 컴퓨터 주변에 가족 사진들을 놓는다든지, 가급적 자신이 실수를 반복하게 하는 환경을 피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 저희 교회 선물을 나중에 하면 마우스 패드로 할려고 합니다. 마우스 패드에 말씀을 넣어서 클릭할 때마다 말씀을 보면서 이상한 싸이트에 접속하지 못하게 하려고...)

        싸움을 잘해서 실수하시는 분은 싸움을 피하는 환경으로, 술을 많이 드셔서 실수를 경험하신 분은 술을 피하는 분위기로, 재정으로 남을 속인다든지 실수를 한다면 재정에 청렴하게 되는 상황을 만들어서 그 실수의 환경을 피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 실수의 환경을 가장 강력하게 피하는 방법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입니다.

        5:15을 보면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빚되신 주님을 내 삶에 모시면 우리 주변에 어두움들 실수들이 모두 물러갑니다. 그 발걸음을 주님이 지켜 주십니다. 성경의 사람들의 실수의 공통점은 하나님을 멀리했을 때 실수들이 찾아왔고, 하나님을 가까이 했을 때 열러 실수들에게 건져짐을 받았습니다. 4:8을 보면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고 했습니다. 빚 되신 하나님께 가까이 갈 때 우리의 어두움 실수들이 사라질 줄 로 믿습니다.

        둘째는 우리의 실수를 건강하게 극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실수를 하면 그것을 덮기 위해서 갖은 힘을 다 씁니다. 먼저는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한계를 보면서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실수를 어떻게든 이겨보려고 합니다. 교정선교를 하시는 목소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재소자들이 들어와서 죄를 뉘우치기보다는 이번에 이렇게 실수해서 걸렸는데 다음에 나가면 이번에 했던 실수를 만회하려는데 모든 생각을 다 쏟는다고 합니다.

        실수의 원칙이 있는데 한 번 하면 원상태로 복구가 불가능하고 그에 다른 결과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직장이나 가정에서도 이 실수로 인해 리더십이 무너지기도 하고, 다시 회복되기 어려운 극한 좌절을 겪다가 자살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실수하면 너무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제가 4년전에 교회에서 특별 새벽기도회를 할 때입니다. 진짜 특별이라 준비를 많이 해야 하는 예배였습니다. 저는 예배담당 목사에다가 기획업무들을 주로 맡기 때문에 해야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교역자들은 밤 늦게까지 일하고 새벽에 320분에 모입니다. 그리고 예배를 위한 안내, 주차, 방송, 강사 등 짧은 시간에 라이브로 진행되는 모든 예배를 점검하는 중요한 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삼일째 되는 날 아침에 일어나서 교회를 오는데 계단이 막 흔들리는 겁니다. 사람들이 두명으로 보이고 현기증이 나고, 앞을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일로 온몸이 굳어졌습니다. 이러다가 쓰러지는구나... 교역자들에게 응급상태를 이야기하고 부축을 받으며 예배당 뒤편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알려서 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이야기를 할려고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용기를 내어서 전화를 했습니다.“여보세요..자기야 난데.....” 그런데 아내가 갑자기 말을 끊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 자기 안경 바꿔쓰고 갔지....어이구 사람이 그렇게 정신이 없냐...” 전화를 받으면서 안경을 확인해 보니......안경을 확인해 보니......정말 어디가 아프고 싶었습니다. 교역자들에게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여러분 실수는 정말 창피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실수를 감추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자주 하는 실수들을 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이건, 가정이건, 직장이건, 국가나 나라건 실수는 무조건 감추려고 무던히 애를 씁니다. 그런데 미국 미네소타 아동병원은 실수를 성공적으로 바꾸기 위한 시도를 했습니다. 이전에는 사고 보고서라는 내용을 실수를 할 때마다 적게 했는데, 여기에서 오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바꾸어서 안전학습 보고서라고 바꾸었습니다. 그러자 직원들이 자유롭게 실수 경험담을 드러내면서 다같이 실수를 없애기 위해 협력하는 문화가 조성이 되었습니다.

        한국의 한 기업은 지식공유 시스템을 만들어서 직원들의 실수사례를 공유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사례를 올릴 때마다 포인트를 적립해서 연말에 현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으로 확실하게 실수들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했다고 합니다. 맥도날드의 경우도 치즈버거를 만드는 제조 매뉴얼은 500페이지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치즈버거의 제조법은 17페이지 뿐이고, 나머지는 전 세계 프렌차이즈에서 치즈 버거를 만들고 판매하는 과정에서 일어났던 다양한 실수 사례들을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오히려 실수를 감추기 보다는 반복적인 실수를 남들이 하지 않도록 자신이 한 경험을 나누는 자세가 오히려 더욱 중요한 실수로부터의 자기 관리라고 합니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칼 하인리거 바거를은 어리석은 사람들은 항상 언제나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현명한 사람들은 언제나 새로운 실수를 한다고 했습니다.

        삼손도 자기 실수보고서를 그때 그때마다 잘 써서 실수의 늪에서 벗어났다면 그렇게까지 망가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1950년 프랭크 맥마나라는 사람이 뉴욕에서 친구들을 불러 놓고 근사한 식사대접을 하기로 했는데 그만 지갑을 가져 오지 못했습니다. 수 많은 친구 앞에서 톡톡히 망신을 당하고, 현금 대신 대체할 뭐가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만든 것이 바로 신용카드입니다. 두시간을 고민하다가 만든 것이 자신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계기와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이때 저녁을 먹다가 얻은 아이디어로 만들어서 이것이 세계 최초의 신용카드인 다이너스카드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실수가 우리에게 약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실수할 때가 많습니다. 성경에서 가장 대표격은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입니다. 자신 있고 당당하게 주님을 지킬 것이라는 그의 말은 온데간데 없고, 여자아이 앞에서도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정말 자격없는 엄청난 실수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부활하셔서 오신 예수님이 화내거나 분노하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노니 내 양을 치라고 다시 기회를 주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다시 회복이 됩니다. 가롯유다는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결국 자살을 택했지만, 주님 앞에 나와 아무말 못하고 울고 있는 베드로를 향해 주님은 다시 기회를 주십니다.

        아마 베드로는 평소 예수님이 가르쳐 주셨던 말씀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18: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용서에 대한 예수님의 메시지를 들으며 왜 주님이 그러셨는지 이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실수를 감추지 말고 주님께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앞에 내 놓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삼손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16:28을 보면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간청합니다. 비록 하나님의 거룩한 나실인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축복을 받았었지만, 인생 전체가 실수 투성이로 아쉬운 사람이였던 삼손에게 하나님은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사사기 16:30을 보면 삼손이 이르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들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라고 했습니다. 회개하고 자기의 인생 전체의 실수를 인정하고 하나님을 부르짖은 삼손에게 하나님은 더욱 풍성한 기회를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인도에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무슨 실수를 어떻게 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실수가 있을지라도 우리 주님을 붙잡고 살아간다면, 우리 주님은 그 실수를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ᄃᆞ. 우리의 실수도 주님께 붙잡히게 되면 더욱 유익한 주님의 도구로 사용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꼭 붙잡으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을 더욱 강하게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기도 : 하나님 우리의 연약함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우리가 실수하는 그 순간마다 간섭하여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받고도 삼손처럼 아쉬운 실수의 인생으로 살아가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보호하심을 받아 주님께 나아가는 주님과 함께 하는 생활이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 과거에 주님께 치명적인 실수로 주님을 떠났던 적이 있거나,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마음으로는 주님을 떠난 사람이 혹시 있습니까? 오늘 주님을 내 마음속에 다시 모십니다. 늘 주님을 모시고 새로운 마음으로 주님의 자녀로 살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파송의 말씀

        삼손의 뼈아픈 실수들....남 때문이 아니였습니다.

        자기 자신이 하나씩 만들어간 자신의 늪이였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실수를 인정하고, 고백하고, 그 실수 가운데서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내가 주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라고 고백하는 하나님의 사람, 공동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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