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0월 16일 주일 설교
부부 싸움의 은혜 고전 13장 4-7절
한 장군이 자기 부하의 충성도를 살피기 위해 제시한 기준은 의외로 가정에 충실한 사람이였습니다. 좀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가정에서 부인과 잘 의사소통을 하는가를 알아보려고 어느 날 전 병사들을 모우고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오늘 우리 군대는 가정에도 충실한 군대가 되기를 원한다. 가정에 충실하려면 아내의 말을 잘 들어야 하는데, 집에서 “아내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은 청색 깃발 아래로 모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백색 깃발 아래로 모여라” 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모든 병사가 미리 입을 모았듯이 모두 아내의 말을 잘 듣는다면서 청색 깃발아래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유독 한 사람만이 백색 깃발 아래에 서 있었습니다. 이 장군이 백색 깃발 아래에 선 사람이 특이해서 그 사람에게 다가가서 물었습니다. “아니 너는 왜 유독 홀로 이 백색 깃발 아래 서 있느냐?” 그랬더니 그 병사가 이렇게 대답을 했습니다. “오늘 집사람이 사람 많은데 가지 말라고 그랬습니다.”
우리가 인도에 있다보니 의사소통이 더 쉽지 않습니다. 인도 생활에서 문제를 주는 것이 주로 의사소통이기에 그 의사소통의 문제가 가정까지 파고듭니다. 오해라고 하는 것은 삶이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이 될 때 생겨나는 부차적인 결과인데, 인도에서의 삶은 변수도 많고 예측하기 어려운 일도 많아서 많은 변화와 일들을 자세하게 잘 설명해 주기기 쉽지 않습니다.
인도에 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영국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선배 선교사님이신데, 중보기도 사역 아주 많이 하시고, 정말 기도의 사역자라고 불릴 만큼 많은 시간을 기도하시는 선교사님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이 전화로 인도 생활을 격려해 주시면서 선배 선교사로서 경험한 것 중에 아주 중요한 것이 있다고 말씀을 해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가정을 섬세하게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낮선 인도에서 살다보니, 중요한 외부의 일들은 그나마 조금 영어가 되는 제가 다하고, 가족들은 그 당시에는 언어가 잘 안되어서 저만 바라고, 필요한 것들을 요구하는데, 가뜩이나 잘 안 되는 의사소통으로 간신히 일을 해 놓으면 가족들은 더욱 많은 설명을 요구하고, 왜 그런지 추가 질문을 하고 그 결과를 저에게 요구합니다. 그런데 제가 지친다든지, 저도 힘들 때면 저도 깊게 설명을 잘 못해주는 상황이 생겨서 필요한 말만 대답을 하는데, 전체를 알고 싶어 하는 가족에게 일부만 설명을 해 주니, 무척 답답했던 모양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때 생각이 났던 것이 “선교지에서 초기에 섬세하게 섬기라”는 말이 무엇인지 잘 알게 되었습니다.
인도에서 이렇게 같이 살아도 이렇게 의사소통이 문제가 생기는데, 가족을 한국에 두고 오신 분들이나, 아니면 인도에서도 너무 바쁘고 출장이 잦으면 서로의 의사소통이 줄어들게 되고 결국 오해가 쌓이고 의견차이가 생기고 의견 충돌이 이어지게 됩니다.
어떤 분이 이런 고백을 하였습니다. “부부란 5단계 변화가 있습니다. 좋아서 살다가, 어쩔 수 없이 살다가, 필요해서 살다가, 불쌍해서 살다가, 묻어 주려고 삽니다.”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의 가정은 지금 어느 정도에 와 있습니까? 자녀들이 볼 때 우리 엄마 아빠가 어느 정도인 것 같습니까?
최근에 아주 재미있는 책 제목이 있어서 보게 된 내용이 바로 오늘 설교제목으로 말씀드린 “부부싸움의 기술”이라는 책입니다. 팀과 조이 다운스라는 부부가 공동 저술한 책인데 그 내용을 보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대목들이 있습니다.
그 내용을 보면 모든 경기에는 규칙이 있다는 것입니다. 축구도 11명의 선수가 뛰어야 하고, 전후반 정해진 시간이 있고, 사용하는 공에 대한 규격과 각종 규칙이 있습니다. 인도에 오니 크리켓이 온 국민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는데, 외국인이 우리가 볼 때 그 던지는 폼도 이상하고 경기 일정도 어떨때는 3-4일씩 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여기에도 분명한 규칙들이 있습니다. 규칙들을 잘 알고 경기를 진행할 때 게임은 순조롭게 진행이 됩니다.
그러나 규칙없는 게임이 있습니다.
- 이게 뭐야, 남편이 식탁에 영수증을 던집니다.
- 뭔데그래, 부인이 고개도 돌리지 않고 대꾸합니다.
- 50만원이라니...대체 그 많은 돈을 다 어디에다 쓴 거야
- 어디다 쓰긴 쓸데가 있어서 썼지
(아내가 말투가 얹잖아지면서 다시 묻습니다. - 왜 물어보지도 않고 그렇게 많이 썼냐고...
(남편도 반격을 시작합니다)
- 그러는 당신은 오늘 쇼핑몰가서 얼마나 썼어..당신이 돈을 얼마나 뿌리고 다니는지
한번도 직접적으로 말한적이 없는 것 같은데...안 그래
- 무슨 소리야 지금 난 쓸데없는 지출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데
(남편이 언성을 높입니다.)
- 쓸데없는 지출이라니 왜 내가 하는 지출만 쓸데없다는 거야..“
- 당신이 우리 돈을 낭비하고 있잖아
(방문을 닫고 나가는 남편의 둥뒤로 아내가 소리칩니다.)
- 당신이 돈에 대해 알기나 알아
여러분 어떠세요? 여러분 집에서 나온 이야기냐구요...
이런 이야기들이 집집마다 참 많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말도 하였습니다. “남녀간의 사랑은 5단계로 익어간다고 합니다. 황홀의 단계로 결혼은 시작합니다. 조금 살다 보면 단점이 드러나 실망의 단계, 아이를 낳고 살면서 포기의 단계로 접어듭니다. 그리고 미운 정 고운 정 다 드는 단계로 들어갑니다. 늙으면 등을 긁어줄 사람이 없어서 사는 단계라고도 표현을 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분명히 좋아서 결혼을 하고 황홀의 시간을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가정에는 싸움이 그치지 않습니다.
“부부싸움의 은혜”라는 책에서는 부부싸움도 일종의 경기라고 정의를 했습니다. 두선수가 있고, 시작점과 결승점이 있고, 경기장소가 있고, 제한시간과 승자와 패자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경기에는 규칙이 없다는 것입니다.
- 초창기 복싱은 단순한 원칙만 있었다고 합니다. 그 규칙은 “일단 상대방을 쳐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의 급소를 치거나, 눈을 찌르거나, 할퀴거나, 팔을 부러뜨려서 사람이 죽거나 정도가 심한 일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1800년대 ‘마르키스 드 퀸스베리’ 라는 사람이 복싱 규칙을 발표했습니다. 상대선수를 발로 차거나, 눈을 후비거나, 허리 아래를 치는 일은 없어야 하고 상대방의 귀를 물어 뜯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리고 규칙이 있다고 경기 진행이 잘 되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규칙도 필요하지만 그 경기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해보니 복싱경기의 심판의 역할은 싸움을 말리는 게 아니라 잘 싸우게 하는 사람입니다.
심판이 잇어야 정해진 규칙안에서 다치지 않고 잘 싸우게 됩니다.
그런데 부부의 관계에는 규칙도 없고, 심판도 없습니다. 오직 자기 자신이 법이고, 자기가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자기 말만 하고 나갑니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짜 온전한 하나님의 성품으로 부부싸움을 안하는 것이 제일 좋지만 그렇게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도 항상 스스로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의 연약함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부부싸움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성경에도 몇몇 사례가 나옵니다. 태초에 아담과 하와도 비록 하와가 뱀에게 꼬임을 받아 생명나무를 먹었지만, 그 책임을 하나님이 아담에게 묻자, 아담이 하는 말이 “하나님이 주신 저 여자가 꼬셔서 내가 먹게 되었다고 발뺌을 합니다” 가뜩이나 죄를 지어서 조금이나마 남편에게 피할 공간을 찾고 있던 하와는 남편에게 완전히 걷어차였습니다. 아마 그 날 무지하게 많은 부부싸움을 했을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아내 사라를 데리고 피해다니다가 어느 군주에게 붙잡혀 어려움을 당하자 자기 아내 사라를 누나라고 이야기하고 그 군주에게 보내 버립니다. 이런 사람이 어떻게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겠습니까? 우리 주변의 많은 믿음의 사람들도 모두가 나름대로 갈등을 가지고 부부싸움을 하지 완벽하게 살지는 않습니다.
단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배운데로 우리도 부부싸움을 은혜롭게 잘 하고, 정해진 규칙을 서로 지키고, 심판을 분명히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날 어르신들이 하는 말 가운데 “싸우려면 기분 좋게 싸워라” 라고 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부싸움을 통해 생산적인 가정관계가 이루어져야지, 완전히 피투성이가 되어서 서로 책임지지 못할 최악의 상태까지 가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합니다.
올 초에 부산에 있는 한 대학의 범죄수사학 전담 교수가 자기 부인을 죽여서 완전하게 혐의를 피해가려고 한적이 있는데, 이로인해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우리 스스로가 건강한 가정을 만들고, 우리 자녀들에게 건강한 모습을 보여 주고, “우리 이웃에게 와 저런 가정의 모습이면 나도 교회에 나가야겠다”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할 시기입니다.
성경은 곳곳에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여 우리의 가정을 돌볼 것을 권면해 주고 있습니다.
고린도 전서 13장 5정에는 “ 사랑은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진정한 사랑은 서로를 존중해 주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인 것은 맞지만 “내사람” 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보내 주신 사람”이라는 말이 제일 맞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맺혀 있기에 하나님을 섬기듯이 배우자를 섬겨야 합니다. 내 필요에 맞게 나를 채우려고 정해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도사 시절에 배우자를 위해서 기도를 하는데 그 기도제목이 이랬습니다. 제가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교에 헌신한 자매이고, 제가 교회를 개척하면 피아노 반주를 해 주어야 하고, 제가 당시에는 몸무게가 60KG에 자주 금식을 해서 몸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또 나온 기도제목이 간호학을 전공한 자매이든지 아니면, 아이들을 잘 돌보고 지켜주는 교사면 좋겠고,, 그리고 한인들이나, 한국적인 사역을 강조할 때 김치를 잘 담그면 좋으니 다른 것은 몰라도 김치 잘 담그는 사람으로 보내 주시옵소서....주시옵소서...주여..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선교단체에서 신앙훈련을 받아서 그런지 어떤 지체들은 알파벳 A-Z까지 다 항목으로 구하는 것이 당시 대세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독교 교계 신문을 보는데, 제가 기도했던 제목들이 어느 교회 여전도사 모집 광고하고 똑같았습니다. 선교에 헌신되고, 피아노 반주와 어린이 관련 전공자로, 주방봉사도 가능하신 분...그 기사를 보고 철이 들었습니다.
내가 아내를 구한 것이 아니라 이기적으로 내 필요를 채워줄 사람을 구했구나...결혼은 이런게 아니구나 내가 사역자의 길을 걸어도 나에게 필요한 것은 여전도사가 아니라 아내가 필요하구나. 아이를 돌보고, 나를 위해서 늘 함께 해주고, 내가 밖에서 지쳐도 나를 남편이라고 치켜세워주면서 우리 가정을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기도제목을 바꾸었습니다.
성경도 사랑을 실천하려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상대방을 배려하고 섬겨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기능을 위한 보조 수단이 아닙니다. 아내를 통해서, 남편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고 하나님이 만나게 해 주신 듯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하나님의 함께 이루기를 원하시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세울 부부싸움의 규칙은 상대방에게 무례히 행치 아니하고 자기의 유익만을 위해서 살지 말아야 합니다.
또 하나 기억해야 되는 말씀은 고린도 전서 13장 7절에 나온 것과 같이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결혼 주례를 7-8번 정도를 맡아서 한 적이 있습니다. 주례사를 할 때 꼭 전해주는 말씀중에 하나가 이 말씀입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빈 백지를 하나 주셔서 그 위에 함께 꿈꾸는 그림을 스케치하고 서로의 색깔을 잘 섞어서 부분부분 원하는 요소에 필요한 색을 칠해야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특별히 촌스러운 그림일수록 원색만을 많이 사용을 하는데, 이발소 표시되는 표지판을 보면 항상 변치않는 촌스러움이 유지됩니다. 그런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일수록 색과 색을 적절하게 잘 섞습니다. 횐색과 파란색을 섞으면 하늘색이 나오고, 횐색과 빨강색을 섞으면 분홍색이 나오고, 검정색과 횐색을 섞으면 회색이 나옵니다. 서로 섞일 때 자기 색이 없어져야 새로운 색이 나옵니다. 반면에 자기색을 주장하면 상대방의 색은 잘 표현되지 않습니다.
결혼은 성격과 가족문화, 의견과 가치, 꿈과 비전이 다른 사람의 만남입니다. 자기 색만을 주장하면 그림에 필요한 색이 나오지 못합니다. 때로는 필요에 따라 강약을 조정할 수는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파스텔톤이라는 예쁜 색이 나옵니다. 그렇게 나온색으로 함께 꿈꾸고 계획했던 밑그림인 스케치를 하나씩 칠해가면 그림이 완성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부부에게 원하신 그 그림을 잘 그려서 하나님 나라에 갈 때 평생 그림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출을 해야 하는데, 아쉽게도 요즘 우리 주위에는 그리다가마는 그림이 너무 많습니다.
옛날 개그콘서트에 “대화가 필요해”라는 코너가 있었는데 그 때 나온 주제는 핸드폰 전화번호 입력 1번이 누구냐라는 내용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무뚝뚝한 남편이 의외로 자기 부인을 1번으로 입력해 놓았고, 이름을 아내 이름으로 안하고 “오렌지‘라고 했습니다. 아내가 몰래 확인하고 너무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고 아내가 남편에게 묻습니다. ”자기야 내가 최고지 자기 핸드폰 전화번호 입력 1번이데...“ ”가시나야 헛소리하지 말래이...이렇게 해야 니 전화 안받을 수 있거든....“ 그랬나...”근데 와 내 이름 놔두고 오렌지로 했나?“ ”알고 싶나...“ 오렌지처럼 니를 확 갈아 마셔버리고 싶어서 그랬다...됐나...”
혹시 여러분은 지금 전화번호 1번에 무슨 이름이 입력되어 있습니까?
제거 알고 싶으십니까? 웃지 마십시오 저는 “내가 사랑하는 아내”라고 입력해 놓았습니다. 고민 많이 한 겁니다. “내가 사랑하는 여자”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아내”라고 해도 이상합니다.....한참 생각했는데 인도에 와서 한 번 업그레이드 할 생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변함없이 사는 줄 아는데 이게 쉬운 이야기가 아닙니다. 성경은 그래서인지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면서 그것이 가능하도록 하는 규칙을 소개해 주는데 그것은 “오래 참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고린도전서 13:7에처럼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견디라는 어감이 참으라는 것과 다릅니다. 물론 같은 말이겠지만, 좀 더 깊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이 말씀을 기억하며 지금 힘든 문제가 있지만, 우리는 중간에 포기하거나, 때로는 속편하게 아예 기대도 안하고 방치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신 소망을 가지고 이 규칙을 잘 지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엡 2장 13절에 보면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그리고 16절에는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초반에 말씀드린대로 이제는 규칙도 중요하지만 심판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부부생활, 가정생활에 주님이 우리의 심판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그러려면 그 분이 심판이심을 인정하고 그분이 요청하는대로, 인도해 주시는대로 경기를 해야 합니다. 그분이 주신 규칙인 성경의 말씀을 부부가 늘 항상 함께 묵상하고 그분의 중재를 늘 따라야 합니다.
여러 위기에 처한 부부들이 이런저런 여러방법을 다 시도해도 회복되지 않았지만, 함께 교회를 나가고 믿음을 가지고 서로의 부족을 위로해 주고 채워주는 사례를 적지 않게 봅니다.
후배 전도사님이 사진에 아주 조예가 깊은 분인데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사진이라고 소개해 준 사진입니다. 두 부부가 큰 바다를 한 방향을 보고 저어가는 모습입니다. 비록 배는 바다에 비해 엄청 적지만, 그리고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서로 앞에서, 뒤에서 저어주는 이 모습이 부부의 모습이라고 그림을 저에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가서 2:10을 보면 “나의 사랑 내 어여쁜자야 일어나서 함께 가자”라고 합니다. 부부는 누가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함께 가는 그 발걸음에 하나님이 동행하십니다.
미국에 한 중년 부부가 있었는데 그만 아내가 수술이 잘못되어 실명하고 말았습니다. 그후 남편은 매일 같이 아내의 직장까지 아내를 출근시켜주고 하루 일과가 끝난 후에는 집까지 데려다 주었더랍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아내에게 서로 직장이 너무 머니까 혼자 출근하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에 아내는 남편에게 너무나 섭섭해했고, 사랑하는 남편이 그런 말을 한 것에 대해 배신감까지 느꼈습니다. 그리곤 이를 악물고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한 후 그 다음 날부터 혼자 출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버스를 타고 하면서 많이 넘어지기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혼자 다니는 훈련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익숙해진 2년 후 버스운전기사가 어느 날 이 부인에게 이렇게 얘기를 하였습니다. "아줌마는 복도 많소, 매일 남편이 버스에 함께 앉아 있어 주고 부인이 직장 건물에 들어가는 순간까지 지켜보다가 등뒤에 손을 흔들어 주는 보이지 않는 격려를 해주니까요"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제 우리가 이 이야기보다 더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이곳 인도에서의 부부관계가 오히려 더 아름다운 이야기로 가득차야 합니다. 힘든 곳이지만 가정이 오히려 웃음이 있는 가정 시편 128편에 나온 축복을 누리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가정이 되시기를,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이 이런 가정에서 자라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우리의 가정에 위기가 없을 수 없습니다. 인도이기에 예측하기 힘들고, 다른 문화와 환경이 우리를 때로는 힘들게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규칙을 세우고, 주님을 우리 가정에 심판으로 모십니다. 항상 주님 안에서 서로 무시하지 않고, 오래참고 견디며, 섬기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곳에서 사는 우리들의 가정이 이곳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게 하시고 우리의 가정들을 통해 복음의 통로로 사용하여 주시옵소서..
파송의 말씀
- 부부간에도 위기가 있습니다. 그 위기에 좌절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말씀의 규칙과 주님 을 우리의 심판으로 모셔서 주님 안에서 우리에게 맡겨진 경기를 잘 감당하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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