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8:15-17 어린아이들을 금하지 말라....
언젠가 ‘아버지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참석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목사이기에 진행자로 참석을 했어야 하는데, 저 역시 아버지로서 참석을 하고 싶어서 그냥 평범한 참가자로 참석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일반 대학에서는 전공을 교육학을 해서 당신에 쓴 논문도 “아버지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쓸 정도로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았는데, 시간이 지나고 아버지가 되고, 자녀를 기르다보니 논문에서 쓴 내용과 현실은 한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 학교 모임 중에서 여러 아버지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깊게 깨달은 내용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눈높이”라는 것이였습니다. 아이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이 눈높이인데, 제 삶을 자세히 돌아보았더니 그 눈높이가 아이들이 아니라 저에게 맞춰져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바쁘니까 잠깐 시간을 내주는 것만이라도 대단하겠지라고 생각을 했고, 해외에서 일을 마치고 뭔가 선물을 사주면 좋겠지, 좋은 놀이 동산을 가서 놀아주는게 좋겠지라고 생각을 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었는데, 아버지 학교에서 얻은 깨달음은 그 모든 자녀와의 교제가 자녀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그것이 진행이 되어야지, 아버지 중심에서 자녀들이 맞추기 식으로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훈련을 마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눈높이를 위해 ‘인라인스케이트’를 샀습니다. 물론 처음 타는 것이라 보호 장비를 함께 구입을 했습니다. 당시 아이들이 유치원과 학교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막 배워서 한참 속도가 붙을 때였는데, 저는 난생 처음 타는거라 모든 장비를 다 하고 한걸음 한걸음을 띄고나니 참 불편했습니다. 아이들은 장비도 없이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는데, 아버지가 되서 자녀들보다 못하는게 있다고 생각되니 자존심도 상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제가 자기들보다 못하는 인라인스케이트로 같이 해주는 것만으로도 참 좋게 보았던 것 같습니다. 자기들이 제일 즐겁게 하는 일을 아빠가 같이 해 주니까, 아빠가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함께 자기들의 눈높이에서 놀아주니까 좋아해 주는 눈치였습니다.
CRM (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고객 관계관리) 이라는 전문 용어를 통해 고객의 눈높이에서 생각하는 경영방법은 이미 오래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옛날에는 물건만 만들어 놓으면 되었지만, 최근에는 소비자 중심으로 생각하고, 소비자의 마음을 읽는 제품들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됩니다. 러시아에서 잘 팔리는 한국산 냉장고는 보드카와 같은 술을 30분 안에 급속 냉장시켜 주는 공간이 있습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파티에서 보드카를 냉동시켜 마시는 것을 보고 만든 것입니다. 미국에서 인기리에 팔리고 있는 한국제 드럼식 세탁기도 미국인들이 빨래하는 방식을 잘 관찰한 결과를 적용해서 성공한 것입니다. 미국인들이 자주 빨래를 하고 세탁량이 많다는 점, 자주 열어보고 확인하는 습관, 건조기와 함께 사용하는 점 등을 관찰하고 나서 미국에 맞게 디자인을 했습니다. 용량을 키우고, 문을 투명하게 해서 빨래되는 과정을 볼 수 있게 하며, 세탁기와 같은 모양의 건조기도 개발했습니다. 미국 가정에 카메라를 설치하여 냉장고를 사용하는 방식을 조사한 결과 일반적으로 냉장고의 위쪽에 위치한 냉동실보다 냉장실의 문을 더 자주 여닫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덜 사용하는 냉동고를 아래쪽으로 옮겼습니다. 이 제품이 전통적인 미국 상표 냉장고에 익숙하던 미국 소비자들에게 빠르게 파고들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무디어진 것이지만, 좀 더 자세히 소비자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지고 접근하면 정말 필요한 것을 얻어낼 수 있는 지혜가 생깁니다.
이러한 자세는 사실 교회가 가져야 하는 중요한 자세입니다. 아니 교회가 먼저 가졌던 마음입니다. 남을 섬기기 위한 예수님의 자세,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마음과 같이 상대방을 먼저 배려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기본적인 심성이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한국사회에 나타나는 여러 교회들의 문제점은 이러한 기독교의 본질을 놓치고, 기독교가 기득권이 되었을 때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를 향해 이웃이 올린 글입니다. “저는 자영업자이고 종교는 불교입니다. 이곳에는 신도가 소위 대형교회가 있습니다.우스게 소리로 이 동네는 그 교회의 공화국이라고들 하지요. 이곳 교회 신자들은 공공연히 목사님들이 설교시 교회 신자들이 운영하는 가게를 이용하라고 한답니다. 그래서인지 자영업을 하다보면 손님들과 마찰이 있을 수 있는데 손님들 중 일부는 저보고 당신! 교회 안다니지하면서 이곳에서 장사할 수 있는지 두고보자라는 악담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일요일에는 교회 주변은 정말 가관입니다. 차량들로 뒤엉켜 주변 주민등에게 엄청난 불편을 주면서도 미안한 구석이 없답니다. 교통봉사를 한답시고 교회 신도 차량만 우선적으로 안내하는 것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집단이 기독교가 아닌가 싶습니다”
안티 기독교인이 의도적으로 올린 글 일수도 있지만, 어느 면에서는 상당히 공감되는 내용이 없지 않은 글입니다. 교회가 낮아져서 저들의 말을 들어주고 공감하도록 힘써야 하는데, 오히려 믿지 않는 자들이 낮은 곳에서 높은 곳에 있는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외치고 있습니다. 물론 일부교회를 향한 이야기이지만....
요즘은 교회가 말을 많이 하는 시대가 아니라 말을 많이 들어 주어야 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귀를 잘 귀울이고 듣다보면 교회가 섬겨야 할 일들이 나옵니다. 작은 소리들을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이런 문제와 같이 우리 교회 안에서도 우리가 쉽지 간과해버리고 놓치는 대상들이 있습니다. 무엇일 것 같습니까?
그것은 바로 교회의 조직과 구조가 상대적으로 어른 중심으로 구성되다보니, 어린 아이들이 외면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어린 아이는 교회 통계에도 넣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귀중하게 맡기신 미래의 일꾼들인데 이 어린이에 대한 배려와 섬김이 충분치 않습니다.
동안교회와 높은 뜻 숭의교회를 섬기면서 많은 청년들에게 지지를 받는 김동호 목사님의 목회철학은 분명합니다. 교회를 섬기는데 어른들이 예배드리는 본당에는 에어컨을 놓고 예배를 드리고, 아이들은 겨우 선풍기 틀어 놓고, 예배 시간에는 어린아이들이 미래의 일꾼이라며, 기도를 하는 모습이 어쩐지 아니라고 생각을 들으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회를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어른들은 믿음이 어느 정도 성숙해서 예배 시간에 더워도 참고 부채질하면서 예배드릴 수 있는데, 아이들은 참고 예배드릴 상황이 아닙니다. 본당과 교육관에 에어컨과 선풍기를 바꿔서 달아주십시오.” 라고 했다고 합니다.
저희 델리한인장로교회도 아이들의 눈높이에서 보니까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지금 저희예배는 청소년들까지는 수용하도록 예배가 어렵지 않게 하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 안내 영상도 넣고, 설교시에도 어려운 용어는 자료화면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물론 아이들도 이해를 해 주면 좋지만 쉽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점심 먹고 나서 12시 50분부터 1시30분까지 어린이 문화 예배 와우큐를 하지만, 사실 어린이 입장에서 보면, 거의 11시부터 1시 30분까지 2시간 30분을 기다리고 참아야 합니다. 부모님 따라와서 같이 예배 드리고, 점심먹고 기다렸다가 다시 12시 50분부터 어린이 문화 예배를 드려야 하는데, 그럼 그 시간에 부모님이 밖에서 또 기다려야 합니다. 아이들과 부모님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보니 아주 믿음이 좋지 않으면 참석하기가 힘든 구조였습니다.
이렇게 무리가 있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가정을 초청하거나 아이들을 초청하는 것은 다시 한번 돌이켜봐야 할 일일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행동설계학자인 칩히스와 댄히스라는 형제 학자는 “스위치”라는 저서를 발간했습니다. 그들의 연구 내용은 다이어트를 하려고 각오를 굳게 다지고 결심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의 식습관을 연구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하고, 그 식사습관을 고쳐나가는 행동을 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저는 간혹 ‘교회가 부흥이 되어야 한다’,‘출석을 많이 해야 한다’는 등의 구호를 앞세워서 사람들을 밀어 붙이기 식으로 오게하고, 이것이 신앙인 것처럼 칭찬하거나, 때로는 따르지 못해서 성도들을 책망하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성도들을 오라고 했으면 가장 최상의 상태로 올 수 있도록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만들고 초청해야 성도들이 기쁨으로 나아 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효과적인 구조는 만들지 않고, 일방적으로 오면 된다식의 초청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일단의 무리들이 자기의 자녀를 데리고 예수님께로 찾아옵니다.
18:15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식들을 랍비에게 데리고 와서 하나님의 축복을 구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사실 유대 배경에서 자랐던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러한 유대 전통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18:15절 후반절을 보면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사실 조금 의아한 부분입니다. 그런데 한 성서학자는 이러한 제자들의 행동은 예수님에 대한 사랑에서 기인했다고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계속되는 순례와 항상 긴장감 속에서 움직이던 예수님께 이 어린아이들이 모두 붙는다면 예수님이 엄청 피곤해지실 것이라는 알았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이렇게 아이들을 금했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제자들의 행동에 대해서 예수님이 보여 주신 태도는 분명하게 제자들과는 차이를 보였습니다.
18:16을 보면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이 아이들속에는 어린 아기, 그리고 갓난 아기, 젓먹이까지도 포함된 용어인데, 하찮게 보이는 그들이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하나의 인격적인 존재로 어린 아이들을 대해 주셨습니다. 어린이들은 스스로 할 수 잇는 일이 적어서 어떤 때는 성가시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다음 말씀은 우리가 깊게 주시해서 새겨야 할 말씀입니다. 18:16을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 나라” 라는 개념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이고 모든 메시지의 핵심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하나님 나라를 소개해 주시고, 그 하나님 나라의 최고 통치자, 그 하나님 나라의 정신을 이 땅에 분명히 보여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그 하나님 나라의 사명을 위해 십자가에 죽으시는 일까지 겪으셨습니다. 가장 핵심적이고 중요한 가치, 우리가 소위 천국, 천당이라고 하는 그 개념에 대해서 우리에게 명료하고 확실하게 소개를 해 주셨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 하나님 나라를 들어 올 수 있는 사람은 어린 아이 같이 받아들이는 사람만이 가능하다는 예를 들어 주시면서 이 어린아이에게서 오히려 신앙의 진리를 배우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8:3에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라고 하면서 좀 더 강한 어투로 이 어린 아이 같은 믿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 믿음을 가진 어린 아이들이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좀 심하다 싶을 정도의 말씀도 하십니다. 18:5,6을 보면 “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 이거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애들 실망시키려면 나가 되져라...좀 심했나요....당시 그리스, 이집트에서는 실제로 사용했던 처형 방식이였습니다. 아주 충격적인 요법으로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심하게 이야기 하실 정도면 우리가 사실 정신 차리고 잘 알ㄹ아들어야 하는 내용입니다.
우리 교회가 건강한 교회, 예수님께 칭찬 받는 교회가 되려면 우리 역시 이런 어린 아이들을 잘 맞이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아이들을 잘 맞이하기 위해서는 부산 수영로 교회 정필도 목사님은 첫째로 이들을 위해 헌신할 교사가 필요하고, 둘째는 잘 준비된 학습내용과 셋째는 이들을 위한 기도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더불어 장신대 기독교교육학과장으로 섬기는 박상진 교수님은 현재 “교회학교가 급감한다.. 6년간 교회학교가 15만명이 감소했다...주일학교 공과공부하는 시간을 연구해 보니 평균 15분이였다...”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15분 신앙 교육하는 것으로 아이들을 변화시키기는 정말 역부족입니다. 저희 교단 총회에서도 계속해서 이렇게 교회학교 감소가 진행되면 유럽과 서구의 교회와 같이 교회의 노령화와 텅빈 교회당을 맞이할 것이라는 연구보고를 중심주제로 채택하여 작년부터 “다음세대”라는 주제로 무너진 교회학교를 세우기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나씩 찾아야겠다는 목회 방침을 정하고, 몆 가지 내용들을 놓고 기도 중에 있습니다.
먼저는 지금의 11시 예배와 12시 50분 예배는 너무 동선이 길고, 아이들과 아이들을 가진 부모들이 선택을 하기에는 너무 부담이라는 생각을 하고, 이 동선을 줄이는게 좋겠다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리고 교회학교에 가장 영향력을 주는 요소가 두 가지가 있는데 교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48%이고, 프로그램이 42%라는 연구 보고가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저희 교회는 “와우큐”라는 어린이 문화예배라는 검증된 프로그램이 있는데, 이 프로그램을 위한 교사 양성 구조가 아직은 미약합니다. 그리고 주변의 교회들을 살펴보니 모두 마찬가지로 같은 시간에 예배를 드리고 같은 시간에 교회학교를 하기에 아이들을 섬기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자신의 예배를 희생해야 하는 구조가 깄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해외에서 가뜩이나 영성 관리가 되기 어려운데 교사 자신이 예배없이 계속 아이들을 섬기면 은혜가 없어지고, 영적으로 가르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주중에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할지...
그래서 구상중인 것이 예배를 1부와 2부로 두 번 드리는 것입니다.
10시 예배는 온전하게 봉사하며 섬기는 사람들 중심으로 예배를 드리고 11시 30분 예배는 2부 예배로 부모임들이 드리고 자녀들은 어린이 예배를 드리는 방법을 찾게 되었습니다. 물론 변수도 많습니다. 이제 겨우 안정을 취해서 예배 같은 예배를 성도들과 드리는데 이렇게 나누면 어떻게 될까? 라는 고민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예배도 힘든데, 두 번씩 드리면 더 힘들지 않을까?
그래도 이렇게 구조를 가능성 있게 가져야 교사도 안정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교회학교도 바르게 성장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실 한국에서는 주일날 예배를 아침 6시부터 5부까지 드리고 오후에 2시간 강의도 하고 저녁예배도 드리고 끝나고 밤 10시까지 교역자 회의를 했는데.....뭐가 힘드냐...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힘든 일이겠지만 마음을 내려놓고 포기하니 하나님이 보너스도 주셨습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린대로 인도에 정기적인 예배는 있어도 뜨겁게 찬양하고 기도하는 부흥회와 같은 예배가 없었는데, 1부 예배를 전통적인 예배 형식에 봉사자들 중심으로, 그리고 새로운 믿음을 가지려는 사람들 중심으로 드리고, 2부 예배를 정말 새로운 찬양과 뜨거운 찬양과 기도와 말씀으로만 드리는 경배와 찬양 중심으로 드리면, 이곳 인도에서도 더욱 풍성한 예배로 드려지겠구나...이 생각을 하니 여러 가지면에서 새로운 가능성들이 보여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하고 몆분에게 자문을 구했더니 이렇게 이야기 해 주셨습니다. 인도에서는 일요일에 운동하러 가시는 분들이 많아서 아침에 10시에 예배 드려야 되요, 그래야 12시부터 운동을 할 수 있대요..10시 예배 드리면 운동하시는 분들을 더 많이 전도할 수 잇겠네요....어이구 부흥회식으로 찬양 많이 부르고 기도 많이 하면 여기 유학온 청소년들, 대학, 청년들이 많이 찬양예배들이 없어서 갈급해 했는데 무척 좋아하겠네요...
...참....생각지도 않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다들 두 번 드리면 목사님 힘드시겠어요?”라고 할 줄 알았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반응들을 하셔서 처음에는 놀랐습니다. 처음에 기도하면서 깨달았을때는 힘든 일이고 불가능하다고 생각을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제가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하나님께 엎드려야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니 오히려 더 주님께 집중할 수 있게 되겠구나..주님이 기버하시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좀 더 기도하고, 여러분들의 이야기도 더 들어보고, 더 좋은 방향이 있는지 연구하고 하나씩 하나씩 순종하려고 합니다.
우리 교회의 이런 모습들... 인도에서 믿음 생활을 잘 못하는 우리 아이들이 우리 교회를 통해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가고, 비전을 가지도록 우리가 한마음으로 섬긴다면 하나님이 너무 기뻐하실 것 같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우리게게 주신 말씀인 마 18:5에 나온대로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라고 하신 말씀대로 우선순위를 두고 하나님이 이끄시는대로 순종하는 교회가 되고자 합니다.
인도에서 공부하는 한국 아이들은 인도에서 그래도 부유한 환경 속에서 공부합니다. 그리고 영어 공부를 통해 세계화를 일찍 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인도의 가난한 아이들을 너무나 많이 봅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이 상황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서 바른 신앙을 가지고 왜 공부를 해야한는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배워나가도록 교회가 돕고 섬긴다면 미래 세계선교의 주역으로 우리의 아이들이 크게 사용될 것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말씀대로 아이들이 오는 것을 막지 말고, 아이들이 오기 쉬운 구조로 만들고, 엄마가 보내서 교회오는 교회가 아니라 아이들이 오고 싶어하는 교회가 되도록 함께 만들어 나가기를 힘쓰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아이들..중요한 섬김의 대상....이 아이들이 하나님의 교회에 잘 참여하도록 지혜주시고, 하나님이 이를 돕는 교사들도 예비해 주시옵소서...작은 변화를 가지려합니다. 시작하는 교회이기에 오히려 이런 변화도 가능하리라고 봅니다. 하나님이 이를 통해 더욱 풍성히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 아이들의 눈 높이로 교회를 보았습니다.
- 아이들 보고 왜 안오냐고 다그치지 말고, 올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준비
- 어른이 불편해도 아이들이 믿음으로 가지도록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을 다라서 섬겨야 합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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