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7 나의 노래

      날짜 : 2014. 01. 22  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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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18 시편 1471-20 내 입술의 찬양

        저는 자기 일에 열중하고 집중하는 사람들을 보면 참 좋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을 합니다. 요즘 나는 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최근 가요계의 흐름이 아이돌 중심의 기획댄스를 주축으로 하다보니 가수의 본질인 노래보다는 외모나 보이는 부분에 신경을 쓰게 되었고, 진짜 노래하는 사람들이 외면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이 나는 가수다나가수라는 프로그램은 진짜 노래 잘하는 가수들을 경쟁 시켜서 진짜 노래를 잘 하는 가수를 가리는 프로그램인데, 이 프로그램이 최근 가수의 트랜드를 상업적이 아니라 예술적으로 바꿔나가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최근 이 프로그램에 가요계에 전설이라고 부르는 인순이라는 가수가 합류하면서 그 열기가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볼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지난주 프로그램을 보니, ‘자우림이라는 보컬 밴드가 인순이를 제치고 1위를 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이야기가 하나 있었습니다.

        자우림이라는 이 밴드 그룹은 김윤아라는 여성 보컬이 중심이 되는 활동하는 그룹인데, 역시 밴드라 강렬한 음악들이 많고, 항상 자우림만의 음악 색깔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꽤나 많은 팬들을 가진 그룹인데 이번 나가수에서는 꼴찌 아니면 끝에서 두 번째 성적으로 무척 저조했습니다. 인터넷에 보면 별별 댓글이 다 달려 있습니다. 나가수 프로그램에 나오기만 해도 영광이고, 여기서 잘 못해도 손해 볼게 없다는 것이 대중들의 평가인데, 계속되는 하위권 성적으로 곧 탈락직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지난주 프로그램에서는 뜻밖에 우승을 했습니다. 모두들 의아해 했습니다. 이유를 들어보니 이전에는 자기들만의 음악색깔로 프로그램에 참여를 했는데, 이번에는 나가수라는 프로그램에서 평가를 하는 청중들이 원하는 음악 스타일로 준비를 했다고 합니다. 자기 음악이라는 고집을 버리고 청중들이 원하는 음악으로 좋은 결과를 얻었던것 같다고 자신들의 1위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아무리 가수가 자기가 생각하는 음악을 잘 만들어도 대중가수라면 말 그대로 대중들의 마음을 잘 읽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음악이라도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우리의 신앙생활에 적용해보니 참으로 중요한 원칙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나름대로의 자기의 색깔이 있습니다.

        새벽 기도회와 같이 고요하게 영성을 쫓는 스타일을 좋아하는 분들도 계시고, 뜨겁게 주여 삼창을 외치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시는 분들도 있고, 음악과 찬양이 좋아서 그 분야로 봉사하시는 분들도 있고, 때로는 선교와 전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 분야에 집중하시는 분들이 있고, 오로지 말씀 연구가 제일 중요하다고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외에는 다른 것을 잘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쉽게 좋고 나쁘고가 드러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찬양입니다.

        사실 우리가 부르는 찬양도 음악적 성격이 다양합니다.

        그런데 크게 분류할 때 두 가지 스타일로 이야기 합니다. 음악 장르이기에 R&B, 힙합, 클래식 등의 다양한 성격이 있을텐데 제가 나름대로 분류한 찬양의 스타일을 옛날 찬양요즘 찬양입니다. 참 특이한 음악 장르죠. R&B나 힙합이 아니라 교회를 다니시는 분이 교회 찬양을 이야기 할 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법칙을 깨게 되었던 일이 있었습니다.

        중동에 오만 이라는 나라를 방문했었는데 그 오만은 정말 선교사가 정말 별로 없던 지역이였습니다. 그런데 이 가정에 초등학교 2학년짜리 아이가 있었는데, 가정에 가서 예배를 드려주는데 너 무슨 찬양 좋아하니라고 물으니까? 거침없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 인생 여정 끝나고 강 건너 언덕 이를 때..” 너 그 찬양 아냐고 물으니까? 아이가 눈을 지긋이 감고 오른손을 올리고 감동에 젖은 눈으로 이 찬양을 불렀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왜 이 찬양을 좋아하는가 물으니, 아빠 되는 선교사님이 설명해 주셨는데, 자신이 항상 이 찬양을 너무 좋아해서 이렇게 부르는데 이 모습을 자주 본 아이가 어느 순간부터 따라 하더라고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깨달은 것이 우리가 지금 찬양이 넘쳐서 이렇게 옛날찬양 요즘 찬양으로 구별하지, 사실은 한곡 한곡이 정말 은혜의 감격이 되는 영적 도구이기에 우리가 가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저 우리가 가진 편견과 선입견이 이 찬양에 대해서 벽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그 벽을 허물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이 찬양이라는 도구로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노래는 쉽게 할지 모르지만 찬양을 한다는 것은 좀 다르게 생각해야 합니다. 음을 붙여서 노래를 부르는 일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가사와 내용을 온전하게 인정하고 따른다는 고백이 되어야지만 찬양을 할 수 있습니다.

        풍산개라는 영화는 남한과 북한을 오고가면서 일을 하는 특별한 사람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만든 영화인데, 이 영화의 끝 장면을 보면 남한 사람이 북한 사람을 잡아가두고 우리나라 애국가를 부르게 만듭니다. 그리고 입장이 바뀌어서 남한 사람이 북한 사람에게 붙잡혀서 김정일 만세를 부르고 김일성을 높이는 노래를 부르게 하는 고문을 하는데, 서로가 정말 무척이나 괴로워합니다.

        찬양을 한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닙니다.

        대전에서 강의를 하고 올라오는데 생각보다 늦게 도착이 되어서 집에 올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고속버스터미널 안에 있는 찜질방에 가서 몆시간 눈을 붙이고 와야하는 상황이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고속버스터미널 찜질방은 저같은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수면실이 전부 개인 침대처럼 잘 꾸며져 있었습니다. 잠자기 좋게 꾸며진 그곳인데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에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에이 씨...XX, 너 내가 죽여 버릴거야...나쁜 XX" 저는 누가 다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자면서 잠꼬대를 하는 것이였습니다. 아니 얼마나 세상에서 억울하고 힘들면 잠꼬대에서도 세상을 원망할까? 참 그 인생이 안되어보였습니다. 무의식속에서도 원망과 좌절을 하는 그 입술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것은 정말 상상하기 힘든 일이였습니다.

        찬양은 그러기에 우리의 삶의 방식, 경험, 사고 등을 다 내려놓고, 우리의 전 존재가 하나님을 고백하고 인정하고, 그분을 높일 때 부를 수 있는 중요한 영적인 도구입니다. 노래를 부르는 것은 흉내를 낼 수 있어도 찬양은 우리의 고백을 담기 때문에 흉내내는 것만으로는 안되는 것입니다.

        예수전도단에서 오랫동안 청년들과 함께 찬양 사역을 했던 문희곤 목사님은 오랫동안 찬양 사역을 하면서 발견한 중요한 사실을 이야기 해 주었는데, 지금 자신의 영적 상태을 알고 싶다면 요즘 자신의 입에 자주 맴도는 노래가 무엇인지 살펴보면 된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외롭다면 외로움에 관한 내용이 흐를 것이고 절망하고 있다면 비관적이고 슬픈 노래가 입에서 흐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적 상태도 마찬가지인데, 자신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찬양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곧바로 지금의 영적 상태를 알 수 있는데,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시는 분은 없네' 와 같은 찬양을 하고 있다면 위로와 치유를 필요로 하는 상태일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입은 우리 속에 있는 것들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자기 입의 노래를 바꾸면 자신의 상태도 바뀐다는 사실이입니다. 문희곤 목사님의 말에 의하면 만약 자신의 영적 상태를 바꾸길 원한다면 입술의 찬양을 바꾸면 된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입술의 노래를 좋아하시기에 우리 입술의 찬양을 들으시고 그대로 역사하신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정말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그러기에 이 찬양은 정말 중요한 도구이고, 내가 찬양을 드리는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스스로 점검해보면 자신의 영적 상태를 진단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최근 구약 성경 가운데 사무엘 상하, 열왕기 상하, 역대상,하 소위 이스라엘의 왕의 역사를 기록한 성경들을 읽으면서 아주 중요한 교훈을 하나 얻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에는 정말 하나님께 칭찬을 받은 왕들이 있는 반면에 정말 그 이름이 부끄러운 왕들이 있어습니다. 그 칭찬을 받는 왕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그 중심을 하나님께 온전히 드린 사람들이였습니다. 그리고 공통적인 한가지를 발견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무척이나 많은 에너지를 쏟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역대하에서 나타난 히스기야 왕의 이야기는 왕의 이야기보다는 어떻게 백성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집중할 것인가를 기록해 놓은 것과 같이 많은 부분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야기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서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이루는 순간의 이야기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찬양할 때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원수가 물러가기도 하고, 병이 났기도 하고, 물질의 축복을 받기도 하고,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기도 하면서, 찬양을 하면서 많은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깊은 교훈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찬양을 할 때 우리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찬양할 일이 있어야 찬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찬양하면 정말 찬양할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나도 그 일 가운데 도우실 하나님을 찬양하면 힘이 생깁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시고, 그 길을 열어 주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희 신혼 초기에 부모님과 함께 살 때 저희가 살던 집이 누군가에게 속아서 집이 경매가 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진짜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 같이 길에 내몰리게 되었는데, 은행에서의 빚독촉과 양 사방에서의 빚독촉은 정말 이제 처음 사역자로 나선 저에게 큰 시험거리였습니다.

        하필 왜 아들이였던 저에게 부모님이 당하는 고통을 지켜만 본다는 것은 큰 괴로움이였고, 당시 큰 아이를 임신한 아내와 당장 길거리로 내몰리게 된 우리의 가정은 정말 너무나 힘든 하루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입술에서 찬송가 한곡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이 눈에 아무증거 아니 뵈어도, 믿음만을 가지고서 늘 걸으면....이 귀에 아무 소리 아니 들려도 하나님의 약속위에 서리라.../ 2절에도 이미 얻은 증거대로 늘 믿으며.... 그 동안 QT를 하면서 들어 온 주님의 음성과 약속들을 기억하면서 지금 힘들고 어렵지만 이미 얻은 증거들이 많기에 뒤돌아 서지 말고 주의 길을 따르라는 음성을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후렴절에 걸어가세 믿음위에 서서 나가세 나가세 의심버리고, 걸어가세 믿음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증거 없어도...” 지금 내몰리게된 상황에서 아무 증거 없지만 믿음의 길을 포기하지 말고 걸아가라는 찬양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이 후에도 찬양대로 되는 일이 참 많았습니다.

        델리한인장로교회를 위해서도 교회를 시작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찬송가 302장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보다 깊다.....너 곧 닻줄을 끌러 깊은데로 저 한 가운데 가보라...” 계속 찬송을 부르는데 이 가사가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사실 아직 아직 인도에 온지 얼마 안되어서 아직 교회를 시작 안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저희 선교사 규정에는 선교사가 2년 동안 현지에서 언어에만 집중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이를 위해 저희를 후원하는 후원교회도 뭐라고 할 사람도 없습니다.

        저희가 편안하게 항상 그토록 바랬던 영어만 진짜 맘껏 공부해도 누가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데, 이 찬송이 드려지는 동안 저희에게 이제 닻줄을 끌러서 항해를 시작하라는 말씀으로 다가 왔습니다. 너희는 편하겠지만 이 지역에 오랫동안 교회를 사모했던 이들이 많은데 너희만 편하게 안정을 취하지 말라는 음성을 찬송가운데 듣게 되었습니다.

        오늘 시편 1471절에는 할렐루야 우리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이 선함이여 찬송하는 일이 아름답고 마땅하도다라고 합니다. 우리의 선택사항이 아니라 우리의 의무사항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 많은 이유들이 있다고 시편 147편은 누누이 이야기를 합니다. 그 중에서도 4절을 보면 그가 별들의 수효를 세시고 그것들을 다 이름대로 부르시는도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지난주에도 미국에서 새로운 우주의 신비가 발견되었다고 그 기사 때문에 떠들썩했습니다. 잠깐 발견한 것도 놀라운데, 성경에는 우리 하나님은 그 별들을 창조하시고, 그 별들의 수효 뿐만 아니라 그 많은 별들의 다 이름까지 부르신다고 하셨습니다. 얼마나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까?

        그런데 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찬양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11,12을 보면 여호와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들과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들을 기뻐하시는도다 예루살렘아 여호와를 찬송할지어다 시온아 네 하나님을 찬양할지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자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인도에서 사업을 시작하면서 무역에 대해서 공부하신 분이 해 주신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무역을 공부해보니, 옛날 중국이 조선에서 많은 조공을 얻어간 것으로만 기록이 되어 있어서 늘 빼앗긴줄로만 알았는데, 사실 중국은 자신들이 세계 최고라는 자존심이 있어서 작은 나라들에서 어느 정도의 조공을 얻어 가면 그것에 910배의 하사품으로 답례를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 굴욕이 아니라 무역의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우리가 빼앗긴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실제로 이를 안 베트남의 경우에는 중국이 거부해도 조세를 바치고 싶어서 사정사정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오히려 얻는 것이 더 많아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도 공짜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면 하나님은 그냥 그것만 받아서 누리고 참 좋네라고 그냥 넘기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14713,14절을 보면 그가 네 문빗장을 견고히 하시고 네 가운데에 있는 너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셨으며 네 경내를 평안하게 하시고 아름다운 밀로 너를 배불리시며 ...”라고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을 해 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가장 얻기 원하는 일들을 미리 아시고 하나님은 그 가운데 찬양을 통해 축복을 약속해 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역대하 3220,21절에 보면 히스기야 왕이 정권을 잡고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청결하게 하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조직을 가다듬고, 찬양이 흘러넘치게 하는 역사를 마쳤다는 이야기를 해 주고 있습니다.“히스기야가 온 유다에 이같이 행하되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와 진실함으로 행하였으니 그가 행하는 모든 일 곧 하나님의 전에 수종드는 일에나 율법에나 계명에나 그의 하나님을 찾고 한 마음으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뒤 321절을 보면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한 후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유다에 들어와서 견고한 성읍들을 향하여 진을 치고 쳐서 점령하고자 한지라 좀 뭐가 안 맞는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모든 충성된 일을 햇는데 축복이 아니라 이웃국가가 와서 곧 전쟁을 준비한다는 소리입니다. 그런데 역대하를 계속 읽다보면 히스기야를 엄청 괴롭힙니다. 그런데 역대하 3220,21을 보면 이러므로 히스기야 왕이 아모스의 아들 선지자 이사야와 더불어 하늘을 향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였더니 여호와께서 한 천사를 보내어 앗수르 왕의 진영에서 모든 큰 용사와 대장과 지휘관들을 멸하신지라 앗수르 왕이 낯이 뜨거워 그의 고국으로 돌아갔더니 그의 신의 전에 들어갔을 때에 그의 몸에서 난 자들이 거기서 칼로 죽였더라 라고 했습니다. 그냥 한 방에 처리해 주십니다. 단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도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는데 우선순위를 둔 것 뿐이데....좀 더 면밀히 말한면 하나님은 찬양하는 자들을 사랑하셔서 그를 보호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베풀어 주시는 분임을 알 수 가 있습니다.

        극동방송을 설립한 김장환 목사님은 이렇게 이야기를 한 적이 있으십니다.

        설교의 대상은 인간입니다. 설교는 사람을 움직입니다.

        기도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그리고 찬송은 하나님과 사람을 움직입니다. 성가대가 그래서 중요합니다.

        오늘 주님께서 부르시면 설교도, 기도도 끝납니다.

        그러나 찬송은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천사들이 찬양할 것입니다.

        다윗이 수금을 탈 때 사울 왕을 괴롭히던 귀신이 쫓겨 나갔습니다.

        다윗은 법궤를 메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할 때 너무 기뻐서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잔인한 죽음도 노래를 빼앗지는 못합니다. 신앙의 절정은 찬송을 통해서 나타납니다.

        당신의 입술에 찬송이 머물러 있다면 당신의 영혼은 살아 숨쉬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입술에 찬양이 멈추었다면 당신의 삶을 되돌아보십시오.

        당신의 삶은 메마른 가지일 것입니다.

        당신의 입술에 주님을 찬양하는 음율이 끝없이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라고 했습니다.

        에드워드 영이란 분은 찬양은 기도보다 더 거룩하다. 기도는 하늘로 가는 길을 우리에게 보여주나 찬양은 이미 그곳에 먼저 가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곳 인도에서 더욱 더 찬송의 능력을 경험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이스라엘 왕들이 찬양을 위해 조직을 정비했듯이 내가 이곳 인도에서 규칙적이고, 지속적으로 찬양을 하도록 여러분의 삶을 정비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술에서 찬양이 끊어지지 않도록 늘 찬양이 맴돌기를 바랍니다.

        저희 교회도 기회가 주어지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찬양을 정말 많이 드리는 예배로만 드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대중가수도 자기의 색깔을 버리고 대중들을 향해 노래를 부를 때 대중들이 그를 사랑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반대로 우리의 바쁨, 많은 약속들, 많은 일들이 잇고, 자기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그 모든 것을 뛰로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을 노래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키시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찬양할 일이 있어서 찬양하는 것도 좋지만, 찬양을 하면 정말 찬양할 일들로 우리의 삶이 윤택해집니다. 이 일을 위해 이제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함께 찬양하고, 아직 찬양할 줄 모르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얼마나 복된 삶인지를 알려주어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에서 그 찬양의 고백이 인도에서 더욱 풍성하게 퍼지는 하나님의 공동체, 가정, 사업체, 개인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 소망을 가진 여러분의 찬양의 입술을 하나님이 항상 찬양으로 맴돌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을 찬송하는 삶이 되어지고, 이 힘든 인도에서 하나님을 가장 많이 찬송하는 시간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찬송가운데 지키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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