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8/28 창세기 2:18-23 우리가 꼭 불러야 할 이름
제가 알고 있는 사람중에 아주 키도 크고 멋있고, 근육남인데 이름이 좀 부르기 민망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름이 “김삼출”이라고 하는데, 아버지가 세 번째로 태어났기에 삼출이라고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또 한 친구는 성 때문에 항상 고민을 많이한 친구인데, 이름이 국정문입니다. 성 때문에 국간장, 국물 등 수 없이 많은 놀림을 받았는데, 그 이름에 제가 “천”자를 붙이니 “천국정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천국에 많은 사람을 오게하는 일꾼이라고 의미를 부여해 주니까 아주 좋아합니다. 그리고 이름대로 지금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만난 이름중에 제일 부담되는 사람은 성이 설씨고, 이름이 공주였습니다. 여자 전도사님이셨는데 이 분도 이름앞에 “백”자만 붙이면 백설공주가 됩니다. 왠지 그 전도사님 앞에서면 일곱난쟁이중에 하나처럼 작아져야 될 것 같아서....좀 부담스럽습니다.
이름에는 또 뜻이 있습니다.
제 이름은 폭포수 용자에 아홉구입니다. 이름대로라면 폭포수를 타고 올라가는 용 아홉 마리입니다. 무슨 판타지 소설에 등장하는 이상한 괴물 같은 이름이 제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이름이 심형래라는 사람이 코미디언으로 등장하면서 “영구”라는 이름으로 재편집되더니 늘상 별명이 되어서 돌아옵니다. 용구,영구....그리고 아주 안 좋을대는 영구라는 캐릭터와 같이 나오는 땡칠이 같이 묻혀서 불려지곤 했습니다. 한참 민감할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학창 시절 계속 이름 때문에 속앓이를 많이 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이름이나 성 때문에 고문해 보신 적은 없으십니까?
요즘 인도는 “안나 하자레” 라는 이름에 엄청난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사실 그 뜻이 뭔지는 잘 모릅니다. 올해 74세인 인도의 반부패 사회운동가인 안나 하자레는 강력한 반부패법 제정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이어가고 있는데, 제2의 간디라고 부르면서 어른부터 어린이 모두가 이 “안나 하자레”의 이름을 외쳐가며 많은 인도인들이 그를 지지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연일 인도 신문에 보도되는 기사와 거리에서의 변화를 직접 겪으면서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인도전체를 이렇게 흥분하게 만드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합니다.
이처럼 이름은 단순하게 불려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그 이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영향력만 있는게 아니라 어떤 경우에는 돈으로도 그 가치가 매겨지기도 합니다. 이를 사람들이 키워서 이야기 하는 것이 브랜드 가치라는 것인데, 우리 마음속에 자리잡은 최고의 세계적인 브랜드가 코카콜라였던 시대도 지나갔고, 지난 4년은 구글이라는 인터넷 포탈 사이트가 이 자리를 차지하다가 올해는 IT 회사인 애플사에게 1위 자리를 넘겨 주었습니다. 매년 조사되는 기업의 브랜드 가치를 평가하는 보고서에 보면 애플이라는 회사의 브랜드 가치는 1,530 억달러(약 166조원)이상으로 평가되어 졌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이 애플의 최고 경영자인 스티브 잡스가 건강상의 이유로 전격 사임을 했습니다. 이 엄청난 브랜드 가치를 지닌 애플사의 미래를 이야기 하면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의문은 과연 스티브 잡스의 후임자가 사람들의 기대만큼의 이름값을 제대로 할 것인가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운동선수들의 이름값에 따른 천정부지의 연봉도 관심이 있지만 사실 우리 자신의 이름값에도 우리는 상당히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은근히 우리의 이름값이 높여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없지는 않을 것입니다. 청년들하고 간혹 했던 게임인데, 인터넷에 자기 이름을 치면 관련기사가 얼마나 뜨나? 하는 좀 한심한 게임이 있습니다. 저도 해보니 처음에는 청소용구, 스포츠 전문용구 등으로 나왔는데, 가끔 저도 이 한심한 게임을 해 보는데, 정용구 목사, 정용구 선교사 라고 치면 그래도 꽤 관련기사가 뜹니다. 저하고 동명이인인 후배 목사님도 요즘에 조금씩 검색어가 늘어나고 있는데 없을 때보다 그래도 있을 때...약간은 위로가 됩니다.
저만 그런가요....오늘 집에 가셔서 다 한 번씩 해보실 것 같은데.....
이름....이 땅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하나씩 가지면서, 그리고 수 많은 이름들을 접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삶입니다.
저희 아파트에는 참 꽃이 많습니다. 처음에 인도에 왔을 때는 겨울이라 인도는 원래 이렇게 황량하구나라고 생각을 했는데, 지내고 나니 꽃들이 나름대로 아주 예뻤습니다. 멀리서 보면 장미 같은데 가까이에서 보면 꽃 한송이가 아니라 솜털이 장미꽃처럼 난 것도 있고, 고목나무 같은데, 꽃은 하얀 손수건을 묵어 놓은 것 같이 지지도 않고 계속 피어 있는 꽃도 있고, 생각보다 정말 많은 꽃을 인도에서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고민이 생겼습니다. 이 인도의 꽃들을 보면서 이름이 뭔지 알아보고 싶어서 몆번 시도를 해보았는데 현지 이름인지 사전에는 잘 안나오고, 복잡해서 그냥 제가 이름을 지어버리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름짓는게 생각보다 참 쉽지 않았습니다. 그냥 부르면 다 이름이 될 것 같은데 이름이 착 달라 붙지 않는 느낌이 많이 납니다.
저는 직접 운전을 하는데 아직 인도 지명이 익숙치 않아서 가끔 웃지 못할 일도 생깁니다.
전화가 와서 거기 어디냐고 하면, 가족들이 지나가다가 뭔가 함께 인상적인 것을 이야기를 하는데, 얼마전에는 “어 거기 개죽은데 있잖아..., 아니 그 개 말고 길에 죽어서 한 보름 누워 있다가 없어진데...”
그래서 그런지 요즘 인도에 와서 오늘 본문을 읽고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아담을 보니까, 이제 좀 이해가 될 만합니다. 최초의 인간이였던 아담이 주로 했던 일이 바로 이 이름짓는 일이였다는 것입니다. 새롭게 창조해 주신 이 땅에 곳곳에 새로운 이름을 붙여 주는게 아담의 일이였다는 것입니다. 창 2;19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 처음에는 참 쉬운 일이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는데 인도에서 살아보면서 한국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사물들을 만나고 겪으면서 느낀 것은, 아담이 하는 일들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종일 보는 것이 모든 것이 다 새로운 것인데 그것들을 다 하나씩 이름을 지어준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아담도 세상에 이름지을게 이렇게 많은지 몰랐을 것입니다. 요즘 간혹 뉴스를 보면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은 미생물, 벌레들이 간혹 발견되기도 하는데, 태초에 아담이 매일 혼자서 이렇게 이름 짓는 일을 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였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름 짓기는 쉬워도 다시 기억해 내느라 무척 애를 먹었을 것입니다.
인도에 오니 새로운 것이 많고, 인도식 이름으로 알아야 할 것 도 참 많습니다. 몇일전에는 아이들 숙제를 도와 주기위해서 코팅을 하러 시장에 갔는데, 이 코팅이라는 말을 도무지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종이를 넣고 비닐을 붙여서 높은 열로 붙이는 것이라라고 설명을 했더니, 프라스틱 필름이라고 알아 들었는지 플라스틱 파일을 주기도 하고, 빈 종이를 하나 주기도 하고, 비닐을 주기도 했습니다. 몆 집을 돌다보니까, 영어 쓰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정확한 표현으로 lamination(라미네이션) 이라는 단어를 인도에서는 사용한 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영어를 공부하다보니 이전에 한국과 다른 단어들을 사용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그 이름들이 있다는 자체가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뒤집개(Turner), 마포걸레(mop), 콩나물(bean sprouts), 애호박(young pumkin),오징어 문어는 알았는데 낙지는 또 다른 이름이 있습니다. common octopus, 그리고 갈치는 hairtail fish 등등..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모든 것이 다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익히는 과정이 힘들지만 그 이름을 알아 놓으면 우리에게 반드시 유용하게 될 이름들입니다.
성경에도 수 많은 이름들이 나옵니다. 그리고 신앙의 중요한 뼈대가 이 이름에서 나오게 됩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성경을 통해 믿어야 할 분의 이름과, 그리고 그분께 나아가는 방법, 그리고 그분이 우리이게 주실 축복을 이야기 할 때 역시 이 “이름”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가장 핵심을 이루고, 우리가 절대로 놓치지 말고 알아야 하고,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데 사용할 도구로서 이 이름은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이름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우리는 이 이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이 이름 때문에 죄에서 용서를 받았고, 이 이름으로 기도하고, 이 이름을 높이기 위해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 이름을 믿으면
믿는자에게는 특권을 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요 1:12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했고, 요한복음 14:14에는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고 하시면서 그 이름을 사용하라고 하셨고,
마가복음 16:17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 이름은 원수들을 쫓ㅊ아내는데도 사용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우리 일생에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이름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이어야 합니다.
우리 가슴에 새기고, 우리의 삶에, 우리의 모든 발걸음에 새기고 기억하고 들어야 하는 이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만약 우리 인생이 이 이름을 모르고 살아간다면, 이는 하나님의 자녀로 이 모든 축복을 포기하고, 일개의 피조물로만 사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 이름을 기억하고 살아갈 때 그 분이 우리의 인생을 가장 바르게 인도해 주시고, 우리가 이 땅에 온 이유를 알게 해 주시고, 우리가 정말 우리의 이름값을 하도록 인도해 주실 분이기에 우리는 절대로 그 분을 놓치 말아야 합니다. 이사야 58:11에는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고 했습니다.
그 분은 이미 그분의 이름을 믿는 우리에게 주시기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분의 이름으로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이름을 놓친다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름에 더 메달리고, 메달리지 말아야 이름에 우리가 우리 인생을 허비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영향력이 없는 이름인데 영향력이 있는 줄 알고 우리의 모든 에너지를 잘못 사용합니다. 요 14:6에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했습니다. 다른 이름이 우리를 참된 평안으로 이끌어 주지 못합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라고 하시면서 그 분의 이름 앞에 나올 것을 요청하고 계십니다.
성경과 오늘의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호숫가에서 제자들을 만났을 때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작은 풍랑에도 흔들리는 갈대와 같은 인생을 살던 시몬에게 어떤 광풍에도 흔들리지 않는 반석 같은 사람이 되라고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성격이 급해서 화를 내고 독을 뿜던 요한에게는 ‘보아너게’, 곧 ‘우레의 아들’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고, 하나님 나라를 우뢰 소리처럼 사람들에게 전하는 자가 되라는 뜻이었습니다.
우리의 이름도 이제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불려지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계획한만큼 살아가는 우리 인생이 아니라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안에서 우리가 사용되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요10:10에는 “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 그리고 이사야 55:9에는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나보다 나를 더 존귀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으로 그분의 이름의 영향력을 온전히 알아가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창세기로 돌아갑니다.
수 많은 이름을 지은 아담을 보시고, 맡은 일을 충실히 담당하는 아담에게 하나님은 그의 필요를 채워주십니다. 2:18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하시고, 19절에 열심히 이름을 짓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는 그를 보시고 20절-22절을 보면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꼭 부부관계로만 제한해서 해석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좀 더 넓게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위해 충실하게 일하는 자인 아담 같이 하나님이 맡기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아담에게 돕는 베필을 주셨듯이 우리의 필요한 돕는 손길을 열어 주신다는 의미로도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너무나도 구체적으로 알고 계시기에 이 일이 가능하십니다.
좀 더 넓게 이 말씀을 우리 삶속에 적용을 시키면, 우리도 이 인도에서 아담과 같이 많은 새로운 이름들을 접하게 될 것입니다. 문화도 온통 낮설고, 거래처도, 살아가는 방식도, 새새한 것의 이름들도 다 낮설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이 이끄신 새로운 것을 보고 고민하고 그 이름을 짓기를 위해 힘썼던 것 같이, 우리도 이곳 인도 땅에서 낮선 이름들을 하나씩 하나씩 알아가며 생활하며, 하나님이 이곳 인도로 보낸 목적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도우십니다.
아담도 이름이 한방에 시원하게 지어지는 것 같이 잘 지어질때도 있었겠지만, 가장 좋은 이름을 짓기 위해 고민했을 것입니다. 대충대충했던 아담에게 이렇게 배려깊게 돕는 베필을 주실 정도로 사려 깊으신 하나님이 대충일하는 아담에게 이렇게 과잉 친절을 베풀지 않으셨을 것이라는 예상을 한다면, 아담도 자기의 일에 무척 고심을 많이 햇을 것입니다. 생각과 다르게 잘 안지어져서 여러번 고민도 하고일이 잘 안풀릴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름 짓기를 포기하고 싶은 것 같이 지금 우리의 일을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다 지었다 싶으면 또 새로운 것이 나타납니다. 이름을 짓고 짓고 또 지어도 계속 지어야 할 이름이 나타나는 것 같이 인도에서도 계속 산과 같이 넘어야 할 일이 계속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그 일로 지칠 수도 있습니다. 포기하고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담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하와를 깊은 잠 가운데 만들어 주신 것과 같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우리를 도우시려고 하십니다. 우리가 그 이름을 부를 때 그 분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요한 계시록 3:5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지키며 믿음을 배반하지 않는자에 대하여 주님께서 어떻게 하실지를 약속해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의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라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인정하면 주님도 우리를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우리의 이름을 시인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델리한인장로교회라는 공동체를 인도에서 얻게 되었습니다.
이 공동체는 그 분의 이름을 부르는 공동체입니다.
그분의 일을 감당하며, 인도에 있는 동안 더욱 가깝게 주님을 부르는 주의 도구가 되어야 합니다. 이 공동체에 하나님이 사람들을 보내주십니다. 이제 서로의 이름을 부를 것입니다.
아담의 돕는 배필처럼 서로 주의 이름을 부르는데 힘써야 합니다. 내가 아담이 될 수도 있고, 때로는 하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서로가 주님의 이름을 더욱 많이 부르고 잘 부르도록 도와야 합니다. 교회가 이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이 귀한 이름을 함께 높이고 하나님을 더욱 힘있게 부르는 믿음의 그림을 함께 그려나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고 여러분 개인 개인들의 삶속에서 더욱 하나님을 친밀하게 부르고 교제하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넘쳐나기를 기대합니다.
기도) 우리에게 주신 이름들 감사, 인도에서 새롭게 만나는 이름들을 잘 배우도록
그리고 인도에서 더욱 깊이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도록, 델리한인장로교회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로 차고 넘쳐서 하나님의 생명책에 많은 사람들이
기록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평화의 인사) 주님의 이름을 절대 놓치지 마세요.
인도에서 더욱 주님을 많이 부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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